언론을 통해서 본고교평준화Ⅰ. 들어가며Ⅱ. 언론사별 고교평준화에 관한 입장과 근거 비교ⅰ. 한겨레신문의 주장과 근거1. 개별 주장과 근거2. 종합 판단ⅱ. 조선일보의 주장과 근거1. 개별 주장과 근거2. 종합 판단Ⅲ. 동일한 자료에 대한 상이한 접근ⅰ. 울산 출신 서울대 합격자가 2005년보다 7명 줄었다는 통계1. 한겨레신문2. 조선일보ⅱ. 평준화가 학업성취 높인다는 한구교육개발원의 연구결과1. 한겨레신문2. 조선일보Ⅳ. 두 언론사가 터하고 있는 교육관ⅰ. 한겨레신문ⅱ. 조선일보Ⅴ. 고교평준화에 대한 나의 입장 정리Ⅵ. 나오며Ⅶ. 참고문헌Ⅰ. 들어가며교육이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재능을 발견하여 계발시켜줄 수 있도록 다양화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교육은 시험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겨 줄을 세우는 획일주의적 입시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육이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이 평준화 탓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동감하기 어렵다. 현재 평준화 지역의 학교교육이나 비평준화 지역의 학교교육이나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작정 평준화제도를 없애면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흔히 고교평준화하면 하향평준화 획일적인 교육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고 있다. 마치 평준화해서 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교육이 다양화되지 못한 것처럼 비난이 따라 다닌다. 이런 비난은 평준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장하기 위한 선전에 불과하다. 조선일보에는‘평준화는 악이요 평준화는 나라를 망친다.’라는 칼럼까지 실려 있다. 최근에는 평준화 제도를 깨기 위해서 이데올로기적 공세까지 동원되고 있다. 평준화교육은 사회주의적 교육이라느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이 도입되어야 하느니 하는 말이 공공연하게 일부 보수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도대체 평준화가 무엇이며 왜 보수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는가? 평준화제도는 학생들을 학교에 배정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학교별 선발방법 심각하다. - 고교 비평준화제도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상위권 고교 진학을 위해 중학교 시절부터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학부모들도 막중한 사교육비 부담을 안고 있다. 또 상위권 학교생과 다른 학교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 좁은 지역사회에서 위화감도 나타난다.(6) 학력저하는 평준화 탓이 아니다. - 평준화 시행 이전과 이후 성적에 대한 객관적 근거자료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면서 평준화 논쟁을 다시 재연시키는 의도가 궁금하다. 이는 공교육의 근간을 흔들려는 것이나 다름없다.(7) 고교등급제를 한다고 해서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향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 툭목고 학생의 점수 하락폭이 평준화고보다 훨씬 크다. 고교 1학년 성적이 같은 학생들이 평준화 고교와 비평준화 고교에 진학했을 때, 비평준화 고교를 다닌 최상위권 학생의 3학년 때 성적은 평준화 고교에 다니는 학생보다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사교육비 지출 차이도 평준화가 아닌 경제력의 차이로 볼 수 있다.(8) 평준화가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비효율적이어서 상위권 학생들의 학력을 하향 평준화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 실제 특목고에 진학하는 학생 가운데는 중상위권 이하의 학생이 없다는 점에서 특목고의 교육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특목고에 진학하면 성적이 오르고, 평준화 학교에 가면 성적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2. 종합 판단고교 평준화를 폐지하면 암기위주 학교교육 부활 불 보듯 뻔하다.최근 고교 등급제 를 도입해 대학입학전형에서 고등학교 간 학력차를 반영하려는 일부의 움직임은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우려할 만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첫째, 학교 간 학력차를 인정할 경우 다시 학력 중심 의 입학 전형 체제로 회귀하고 초 중등교육이 암기 위주의 입시준비 과정으로 변질돼 교육의 비정상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2002학년도 새 대학입학전형제도의 핵심은 과거 학력 중심 의 우수학생 개념에서 탈피해 다양한 능력 소질 특성을 중시하는 우수학교차를 인정하는 것은 능력주의 이념에 무게를 실은 관점인 반면 인정하지 말자는 것은 학생이 어느 학교에서 공부했든 귀속 변인에 관계없이 절대평가에 의한 평가라는 동일한 준거 위에서 평등 의 개념을 실현하려는 시각이다.따라서 학교 간 학력차를 인정하자는 입장은 지역 간 학교 간 고교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촉진하고 균등한 대학 교육 기회를 보장하려는 현대사회의 대학입학전형제도의 이념과 배치된다.결론적으로 현 교육 상황에서 학교 간 학력차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 교육을 다시 과거로 회귀시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고교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하고 고교에서의 평가 결과를 대학에서 신뢰할 수 있도록 고교 교사들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그렇다면 고교평준화의 장점에 대해서 알아보자최근 고교평준화에 대한 비판이 늘고 있다. 하지만 고교평준화에 대한 최근의 비판은 객관성이나 논리적 타당성도 없이 매우 감정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교평준화는 최근의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지 확대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1) 임시 부담으로부터의 해방그 중에 하나는 고교평준화가 학생과 학부모의 입시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고교평준화제도가 도입되기 전, 우리 아이들은 정상적인 성장을 위협받는다는 지적까지 받아 온 지독한 입시질병을 초등학교 6학년부터 매 3년마다 앓아야 했다. 하지만 고교평준화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이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고교평준화제도는 충분히 유지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2) 중상위권 학생들의 성적향상한국교육개발원이 경기도의 평준화지역과 비평준화지역 고등학생의 3년 간 개인별 성적변화를 토대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평준화지역 고교생이 비평준화지역의 고교생보다 성적이 상위 1%정도인 학생들만 오차의 범위 안에서 성적이 낮아졌을 뿐 이외의 모든 학생의 성적이 평균 12점 이상 향상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런 연구 결과는 그동안 있었던 3-4차례의 연구에서 도 청년 실업에 대한 처방은 그뿐인데도 프랑스 대학생들은 지난 3월 정부가 고용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하려던 최초고용계약법을 시위로 철회시켰다. 35년간에 걸친 대학 평준화가 프랑스 젊은이를 경쟁에 두려워하는 평준화형 인간으로 키워놓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평준화의 독약으로 국민을 한 번 마비시키면, 마비된 국민이 다시 국가의 장래를 뒤흔든다는 실례를 프랑스 교육 실패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3) 평준화는 학생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정책이다. - 평준화란 모든 학교의 수준이 고르게 돼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교육부가 자화자찬하는 것처럼 평준화가 성공했다면 이렇게 학교 간 격차가 크고 들쭉날쭉할 까닭이 없다. 평준화 아래서 이처럼 차이가 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똑같은 조건으로 아이들을 배정받아 어느 학교는 잘 가르치고 어느 학교는 반대로 망쳐놓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후자에 속한 아이들은 자기가 원해서 들어간 것도 아닌데 순전히 학교와 교사를 잘못 만나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셈이다.(4) 평준화 제도는 오히려 사교육을 불러일으킨다. - 평준화 고교를 가서 성적 향상을 이루지 못하느니 특목고를 선택하겠다는 학생과 학부모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 시장도 중등교육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5) 평준화는 지역 인재 공백을 일으킨다. - 평준화 고교 대신 특목고나 자사고를 선택해 지역에서 빠져나가는 교육 엑소더스가 계속될수록, 일산 지역 인문계고의 수준이 낮아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일산 지역 고교들을 예로 들자면 학교 수준이나 교사들 자질이 우수한데도 불구하고 대입 실적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할 수 있다.2. 종합 판단우리나라에 고교평준화 정책이 도입된지 약25년이 되고 있다. 본래 입시경쟁에 의해 자신이 고등학교를 선택하던 제도에서 기본적으로 자격고사만 통과하면 추첨으로 학교를 정해주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올 수능시험의 가채점 결과는 청소년들의 학력저하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등학교와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만 모여 있는 고등학교가 구분이 되었으나, 이제는 모든 학교에서 공부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섞여있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지 않은가 ?고교평준화 정책이 도입된 시점이 당시 핵심권력층의 자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시점과 일치하여 당시에는 핵심권력층의 자제가 3류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전체 고등학교를 평준화시켜버렸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뚜렷한 명분이 없었다.(3) 학교 내 심한 격차를 보이는 학생들의 수준더구나 고교평준화이후 모든 학교에서 학생지도에 어려움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공부에 관심이 있는 학생, 즉 대학에 진학할 마음이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한 교실에 같이 둔 상태에서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교사들에게도 고통이며, 학생들에게도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더욱이 평준화 이전에는 학교 내에 학생들의 수준이 비슷했으나 평준화 이후에는 학생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을 위주로 수업을 진행할 경우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이 문제고, 그 반대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가 생기므로 오히려,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과 학교 수업보다는 학원을 선호하게 되어 공교육이 와해되는 계기가 바로 고교평준화제도에 기인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이는 고교평준화가 입시경쟁의 폐지를 통해 학업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사교육비도 절감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은 학교수업이 수준이 낮아 태만하게 시간만 보내게 되고 방과 후에 각자의 수준에 맞는 학원을 다시 갈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학업에 대한 학생의 부담과 사교육비를 증대시킨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4) 비효율적인 학교운영 - 수준과 적성에 맞지 않는 천편일률적인 교육방식고교 평준화 이전에는 대부분 대학진학이 어려운 실력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속칭 3류 고등학교의 경우, 학교차원에서 나름대로 졸업 후 학생들의 취업 등을 위해 직업반을 운영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의 수준했다.
한국의 잠재적 교육과정Ⅰ. 잠재적 교육과정의 이해1. 잠재적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2.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한 개념 정의3. 잠재적 교육과정의 등장 배경4. 잠재적 교육과정의 의의5. 표면적 교육과정과 잠재적 교육과정의 관계Ⅱ. 한국의 잠재적 교육과정1. 한국 초등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2. 한국 중등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Ⅲ. 교사의 역할Ⅰ. 잠재적 교육과정의 이해1. 잠재적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잠재적 교육과정이란 학교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학습결과를 초래하는 교육과정으로 학교의 물리적 조건, 제도 및 행정조직, 사회적?심리적 상황을 통하여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경험이다. 이 교육과정은 문서화되지 않는 비공식적인 교육과정으로 교사의 인격, 학급분위기, 인간관계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정의적 영역을 주로 다룬다. 학교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직되고 지도되는 표면적 교육과정에 비해 잠재적 교육과정은 학교생활에서 무의도적, 은연중에 학습된다. 학습영영은 주로 정의적인 영역(인간의 흥미?태도?가치관?도덕적?인격적인 면 등)이고 학습 경험은 학교문화풍토와 생활경험이 주를 이룬다. 표면적 교육과정에 비해 잠재적 교육과정은 학습기간이 장기적?반복적?항구적이며 바람직한 내용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못한 것도 포함된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개체의 흥미감, 태도, 가치관, 신념 등을 나타내며 어떤 상태로든 공문서화, 자료화, 구조화 등을 하기 어려운 상태를 나타내는 교육과정을 지칭하게 된다.2.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한 개념 정의잠재적 교육과정을 나타내는 유사한 의미의 용어의 개발과 함께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한 개념 정의 역시 다양하게 시도되었다.①공식적인 교육과정에 일반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으나 학교의 경험 중에 학생에 의하여 학습되는 가치와 기대(Eisner, 1985)②의도되었거나 또는 의도되지 않은 그러나 학습자에게 의식되지 않는 학습상태(Martin, 1976)③공식적인 문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비학문적인, 그러나 중요한 학교교육의 결과(Vallanc장연구를 통하여 초등학교에서 아동은 학교의 공식적인 교육과정의 목표 그리고 진술의 방향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의 정서적인 차원에서의 감정과 태도를 학습하고 있음을 밝혀 주었다. 그 대표적인 학습의 내용을 '군집(crowd), '권력(power)', '상찬(praise)'의 세 가지로 특징화시켰고 이를 초등학생에게 은연중에 전달되고 내면화되는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진술되지 않은 '잠재적 교육과정'으로서 명명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잠재적 교육과정의 존재가 아동의 교실생활과 학습 그리고 태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설득적으로 기술하였다. 잭슨의 잠재적 교육과정 연구는 교육현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해준다. 그것은 공식적인 교육과정의 시각으로는 붙잡기 어려운 교실의 사실적 삶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교실이라는 장소를 교사의 권력이라는 관점에서, 교사의 평가라는 관점에서, 집단이 함께 생활하는 군중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한 교실생활의 정치적 특성으로 인하여 아동이 자신의 교실생활을 어떻게 구조화시켜나가고 있는지를 근접하게 보여주었다.4. 잠재적 교육과정의 의의학교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는 문제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리하여 모든 수중의 교육의 주체들은 교육의 내용을 가능한 한 명시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여왔다.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교육내용을 체계화하며, 설정된 교육내용을 학생들이 잘 배워서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교육목표가 가능한 한 높은 수준으로 성취되는 것을 교육활동의 이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모든 교육기관들은 명료하게 설정된 교육목표가 어느 정도나 달성되고 있느냐, 즉 명료하게 설정된 교육내용들을 학생들이 얼마나 잘 배우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 달리 표현하면 표면적 교육과정에만 관심을 두었다.Jackson에 의하면 부각되고 널리 알려진 이와 같은 의미의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개념은 교사와 같은 교육실천가와 교육연구가들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지적인 활동주로 비지적인 정의적 영역주로 이론지식과 관련주로 생존기술(survival skills) 및 학교의 문화풍토와 관련일시적, 단기적장기적, 반복적, 영구적바람직한 내용바람직한 것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못한 것도 포함학교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조직, 교육의도되지 않았으나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에 은연중에 습득주로 교사의 지적, 기능적인 영향을 받음주로 교사의 인격적인 감화에 영향을 받음* 표면적 교육과정과 잠재적 교육과정이 서로 조화되고 상보적인 관계에 있을 때 학생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표면적 교육과정 자체에 잠재적 기능이 있다.Ⅱ. 한국의 잠재적 교육과정잠재적 교육과정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교육 결과를 이끌어내는 첫 번째 사례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통해서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이들은 자아중심성이 강하다. 어린아이들일수록 자신의 외모가 가장 예쁘고 잘생겼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양한 또래 집단의 친구들을 만나게 됨으로써 점차 자신의 외모가 절대적으로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다양한 교과를 접하는 과정에서의 사람마다 잘하고 못하는 분야가 있음을 알게 되고 능력의 차이도 인식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이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갖게 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으나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깨닫게 되고 세상에는 다양한 외모와 능력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실제로 교생실습을 나가서 만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교실에서 만나는 또래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다양성을 인식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 가운데는 성적과 외모라는 잣대만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사고방식을 지닌 학생도 있었으나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의 능력과 장단점을 파악해감으로서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특수성을 발견해가는 학생도 있었다.서 수용되기 어려운 '복종적 태도', '순종', '경쟁심'과 같은 부정적인 가치들이 학생에게 전달되고 내면화되기도 한다.잠재적 교육과정의 부정적인 측면 중 한 가지는 학교생활을 통해 학생들은 거짓말을 배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구수업을 전개할 때 수업담당교사가 모범적인 수업을 전개하고자 하는 심리적 압박감에서 공개할 연구수업을 여러 차례 연습시킬 경우 참관자도 속이고 학생에게도‘속임수’를 가르치게 된다. 실제로 교생대표가 실시하는 교생 연구수업에서 상급교사들이 교장과 교감 앞에서 모범적인 수업을 전개하도록 하기 위해 연구 수업 리허설을 하도록 했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사와 더불어 참관자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배우게 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러한 거짓말이 학교와 같은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서도 통용된다는 사실마저 인지하게 될 것이다.두 번째로 학생들은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불평등을 인정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불평등이란 능력차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결과의 차이가 아닌 당연히 평등해야할 상황에서 불평등을 겪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는 데 있어서 교사는 수업시간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모범정답을 말할만한 학생을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 수업의 맥락에 어긋나는 질문을 하는 학생들의 발표나 질문을 다 받아주게 될 경우 수업의 전개에 차질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장기간 지명에서 제외된 학생들은 학습참여의 적극적 태도를 잃거나 사회적 초연을 학습하게 된다. 또한 발표기회의 불균등한 배분이 인간불평등을 받아들이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사를 혐오하게 된다.세 번째로 결과 지향의 학교 풍토 속에서 학생들은 학년이 높아짐에 따라 성적순으로 친구들을 평가하게 된다. 성적이 높은 아이들에게는 관대한 학교분위기 내에서 자연스럽게 비교적 떨어지는 학생들은 단순한 성적이 높은 아이를 우러러 보는 풍토를 낳게 한다. 또한 이처럼 결과만을 중시하는 학교풍토 속에서 과정을 게을리 하고 눈치껏 하는 습관을 배우기도 한다.고 그것의 영향력은 심각한 것이었기 때문에 학생의 말의 내용이 맞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동의 말이 존경어를 통한 문화적 형태로서 포장되어 제시되지 않았을 때는 잘못된 것으로서 평가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학생 : 2 더하기 2는 4이다.교사 : 뭐라고?학생 : 2 더하기 2는 4입니다.교사 : 좋아요.③ 위계적인 수업상호작용초등학교에서의 권위적인 학습의 세계는 교사가 사용하는 다음의 두 가지 방식을 통하여 만들어지고 있었다. 첫째는 교사의 통제적인, 명령적인 언어의 사용이었으며, 둘째는 체벌과 폭력의 등장이었다.예) 해봐, 해, 안 할래?, 주목, 모두 조용히 해, 손 무릎에, 입 다물고, 계속 다른 짓 하는 사람 누구야, 예쁘게 앉아 있어, 너는 몇 번을 말해야 알겠니, 귀가 먹었어?, 까부는 것은 일등이지.예) 움직임 없이 서 있기, 무릎 꿇고 앉아 있기, 손 들고 있기, 교사의 신체나 물체의 사용 성차별초등학교의 생활이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사회화를 재생산하는 인간발달의 환경이다. 학교는 여학생에게 남학생이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에서의 학교경험을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학생들에게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이미지를 수용하고 내면화시키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점은 우리의 학교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규범으로 전승되어온 남존여비와 부부유별의 가치를 확연하게 재생산시키고 있는 효과적인 문화전승의 도구로서 작용하고 있다.① 남성중심의 학교조직남성 교사와 행정가에 의한 학교조직에서의 권력의 점유는 교실의 아동생활과 조직에서도 자연스럽게 반영되고 있다. 초등학교 교실의 공식적인 행정조직인 임직원제도는 그것이 민주화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남학생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행정조직의 정점에 있는 ‘회장’직은 대부분 남학생이 맡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교실교사가 가지고 있는 회장직에서의 남아선호 사상에 의하여 교묘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만들어지고 있다.선생님 : 좋아. 지혜가 체육부 부장으로 선출되었지만 지혜는 여자예요. 여러분들은 지혜가 이 일을 잘해낼 수었다.
청산별곡1. 들어가며「청산별곡」은 총 8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고려 가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구성에 있어 논리성이 두드러지고 내용 또한 고도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악장가사(樂章歌詞) 에 전문이 실려 있고,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에 곡조와 제 1연이 실려 있다. 이 밖에도 악학편고(樂學便考) 에도 전문이 실려 있으나 그 내용은 악장가사와 큰 차이가 없다.「청산별곡」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하여 여러 분야에 걸쳐서 연구되어 왔다.고려 가요 전체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된 것은 어구나 어석(語釋)에 대한 연구이다. 작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미적 해석이 이루어져야 본격적인 작품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청산별곡」에 대해서도 양주동의 여요전주(麗謠箋註) 를 시작으로, 전규태, 박병채, 김완진, 서재극 등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어석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발생 연대 및 작자층, 주제 등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들에 의해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되었다.「청산별곡」의 성격에 대한 지금까지의 견해는 이 노래를 현실도피적인 것으로 보는 쪽과 이와는 달리 현실에 대한 집착으로 보는 견해, 유랑민의 생활고를 읊은 것으로 보는 견해로 크게 나뉘어 왔다. 조윤제는 “어떤 실연(失戀)에서 세상을 비관하여 한 많고 쓰라린 속세를 버리고 차라리 청산에 파묻혀 머루와 다래를 따먹으며 여생을 보내리라 하였다”라고 하였고, 양주동은 짝사랑의 비애를 중심으로 하여 맘 둘 곳 없는 생의 비애를 노래한 것이라고 하였다. 김형규는 어떤 젊은이가 사랑에 실패함인지, 또는 그 당시 혼란하고 부패한 사회에 싫증이 나서인지 속세를 떠나 청산이나 바닷가로 헤매면서 자기의 애달픈 심정과 생에 대한 비애를 노래한 것으로, 슬프면서도 원망하는 것이 없고 憂愁 중에서도 낙천적 성격을 가진 노래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견해들은 모두 이 노래를 현실 도피 혹은 은둔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이능우, 박진태 등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반면 위의 견해와는 전혀 다.2. 청산별곡의 어석 상의 논란가. 1연① 살어리랏다박병채, 전규태, 박노준정병욱, 김형기, 이인모살으리라, 살아갈 것이로다살았을 것을,살았으면 좋았을 것을② 청산머루, 다래와 같은 야생 적인 식물이 있는 비세속적 공간 : 정병욱거주와 안주의 장소로서의 자연공간 : 김복희에서의 청산을 현실적 공간으로 보거나 이상적 동경의 대상지로 볼 수도 있다. 또는 머루다래로 연명해도 현재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고통이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일 수도 있다. 당시 내우외환으로 극도의 혼란을 겪던 고려인들의 마음속에 깃들여 잇던 안식의 공간으로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이 아닌 마음의 표상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는 ‘청산’을 하나의 이상향으로 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마음에서 밖에 이루어 질 수 없는, 어쩌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청산’이라 볼 수도 있다. 또는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청산으로도 볼 수 있다.나. 2연① 우러라‘울다’의 감탄형 : 우는구나 - 양주동‘울다’의 명령형 : 울어라 - 김형규, 박병채노래하라, 지저귀어라- 이어령② 니러 : 일어나③ 널라와 시름한 : 너보다 시름 많은다. 3연① 가던 새날아가던 새 : 양주동, 박병채, 서수생, 전규태갈던 사래 : 서재극, 신동욱, 박노준가던 사람 : 이인모가던 도중에 : 장지영,김형규, 박병채는 날아가던 새의 의미로 해석했고 전규태 역시 같은 견해를 표했으나 막연하게 가는 것(行)이라기 보다는 날아가는(飛行)으로 풀이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동욱, 서재극은 ‘가던 새’를 갈던(耕) 사래로 풀이하였다. 그 외에 서수생은 ‘가던 새’를 ‘믈 아래’와 결부시켜 ‘공중으로 날아가던 새의 그림자가 물에 비친 것으로 보았고, 김재용은 ’새‘를 자유를 갈망하는 시적 자아의 객관적 상관물로 보았다.② 믈아래물 아래 - 양주동, 박병채, 전규태, 서수생평원지대 - 정병욱물 건너 마을 - 서재극강하류- 박노준양주동, 서수생, 전규태, 박병채는 ‘물 밑, 김형규)마. 5연① 어듸라 : 어디다, 어디에다어디- 어?의 방위격라 - 의문조사 ‘다’의 변형② 더디던 : 던지던③ 누리라눌 : 누의 목적격형이라 : 의문조사④ 마치던 : 맞히던바. 6연① 바?래 : 바?(바다)+애② ??자기 : 나문재③ 구조개 : 굴 + 조개조개의 한 종류 : 장지영사. 7연① 드로라듣노라 : 박병채들어보아라 : 서수생들었노라 : 전규태② 에정지사람들 간에 가장 극심한 견해 차이를 보이는 부분으로서 김완진은 ‘어딘가(특정장소)’, 신동욱은 ‘놀이가 벌어진 곳’, 전규태는 ‘마당 또는 벌’, 김형규는 접두사‘에’+‘부엌’ 김상억은‘농가의 부엌’, 이호석은 한자어의 ‘예정지(豫定地)’, 서재극은 ‘에지엉지(어정어정)’ 또는 ‘에지랑날에(해저물녘에)로 보았다. 또한 장혜원은 경상도 방언으로 여적지(이제까지)로 제시하였다. 또 박노준처럼 이 부분을 해독하지 않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③ 사?미 짐대에 올아셔 奚琴을 혀거를 드로라사?(鹿)의 주격형- 양주동(해학적 표현)‘사?미’의 오자 - 김형규사슴으로 분장한 인물, 山臺雜戱를 공연하는 광대 : 박병채, 서재극, 김완진, 박노준지배계급, 당시 부조리한 사회에서의 귀족계층 : 전규태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기적을 의미하며 기적을 바란다 : 정병욱, 이승명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을 비유하거나 마음의 소지를 듣는 것 : 이인모, 홍기문, 김복희김형규는 짐대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사람이므로 사?미는 사?미의 誤記라 보았고, 정병욱은 있을 수 없는 일, 즉 기적이라 보았다. 이승명은 네다리가 장대에 묶인 사슴이 애처롭게 울어 대는 것을 해학적으로 비유한 것이라고 보았고 김완진, 박병채, 서재극등은 사?으로 분장한 사람이라고 보았는데 이 설은 사?미는 단어를 변형시키지 않고서 해금을 켜는 주체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당하다고 하겠다.아. 8연① 가다니가더니의 古形- 양주동, 박병채가라니 의문의 뜻- 김형규가득히 : 서수생② ?브른 도긔 : 배부른, 배가 불룩한 독에③ 설진 : ?진(肥)의 변형 ‘술보니 오직 벗이 되어 주는 것은 새 뿐이다. 자기와 더불어 이 세상을 저주하고 괴로운 심정을 통곡으로 지새우는 비탄 속에 잠긴 작중화자를 위로해주는 새를 통해 작중화자의 고독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3연에서는, 2연에서 보여준 유일한 벗이었던 새마저 이제 자기를 배반하고 떠나버렸다는 것을 일러 주고 있다. 그러나 비록 나를 배반하고 떠나는 새일망정 그를 미워할 수 없기 때문에 “잉무든 장기” 즉 “녹슨 무기”를 손에 들고 자기 곁을 떠나는 새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3연에서 유일한 벗이었던 새마저 떠나버린 화자는 4연에 와서 “ 그래도 밝은 낮에는 이러 저러하여 지낼 수 있었지만 나를 찾아 줄 사람도 없고 내가 찾아 갈 어느 누구도 없는 밤을 어찌 지낼 것이가.” 라고 하여 절망에 빠지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밤’이라는 어휘가 가져다 주는 이미지를 생각해야 한다. 암흑의 세계, 광명이 없는 세계, 그것이 바로 작중화자의 절망적인 심정을 나타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다음에 5연에서는 한가지 문제점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5?6연 교체설이 나오게 된다. 은 흔히 ‘청산’과 ‘바다’의 두단락으로 구분되는데 5연과 6연을 바꾸어야 내용상 대칭구조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6연부터 보게 되면 괴로운 청산으로부터 바닷가로 생활 무대를 바꾸어 보려고 한다. 이 바닷가도 앞서 본 청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딴 곳임은 “??자기 구조개" 로써 표현되고 있다. 그런 바닷가에 와서도 괴로운 것을 달랠 수가 없다. 그래서 왜 이리 괴로우며 통곡의 낮밤을 지새워야 하는가 이유를 생각해 본 것이 5연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미워한 적도, 사랑한 적도 없는데 어디서인지 날아온 돌에 맞아서 울고 있다는 것이다. 작중화자는 자기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은 운명 때문이며 그 운명을 전환시키기 위하여 다시 새로운 세계를 찾아 무한히 가보는 것이다. 그러나 7연에서 새 세계를 추구한 끝에 얻은 것은 사슴이 높은 짐대 위에 올라가서 해금을 켜는 광경이다. 사슴이 른 것이다.3연은 땅의 세계로 시선을 옮겨서 노래하고 있다. 7연과 같이 조용한 세계를 표현했다. 하지만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을 담고 있다. 특히 ‘가던 새를 본다‘를 세 번 반복하고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갈던 사래로 본다. 작품의 화자는 농토를 잃었거나 농사일을 할 수 없는 불행한 농민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며 가던 사래는 갈 수 없는 곳이다. 즉 가던 새(갈던 사래)는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이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과거의 것이자 금역의 장소이다. 반복과 이끼 낀 쟁기라는 표현은 평상적인 삶의 정지와 과거에 대한 애착과 귀환 심정을 나타낸다.4연은 혼자서 아무 의지할 곳도 없는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시간이 주는 고통을 빌려서 표현했다. ‘바므란 ?엇디하리오’는 시간과 시간끼리인 ‘낮 -밤’의 대립을 통해 절망적 순간이 임박을 두려워함을 표현했다. 여기서 외로움은 살아가기에 매우 고달프다는 뜻과도 연결이 되는데 이는 전란과 과중한 부역과 세금은 보통 사람들의 정상적인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유민으로 떠돌게 하는 시대적 중압감과도 연결이 된다.5연은 돌에 맞아 우는 화자가 믜리도 괴리도 없다고 하는 것은 평민의 소박한 삶의 의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저항계층이 아닌 순박한 평민이기에 가능한 표현이다. 화자는 그 억울함을 혼잣말로 풀고 있을 뿐이다. 만약 저항계층의 노래였다면 이 표현은 달라졌을 것이다.6연은 노래의 무대가 바다로 바뀌었다. 청산에서조차 살 수 없게 된 주인공이 바다를 자신의 목적지로 생각하고 떠난다. 1연과 구조상은 비슷하나 그 바닥에 있는 내면은 다르다. 만약 청산별곡이 두 노래의 합성이거나 청산과 바다의 대비로 볼 경우와 이것을 하나의 연결된 노래로 볼 경우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일 수가 있다. 즉 합성의 경우나 대비의 경우는 새로운 노래의 시작일 뿐이지만, 원래부터 연결된 순차적인 것으로 본다면 1연보다 더 큰 슬픔을 가지게 하고 있다. 이것은 주인공을 쟁기로 사래를 갈던 농촌에 가까운 평민으로 본다면 .
조선 후기 신분구조의 변동Ⅰ. 들어가며조선 사회는 유교적 신분제가 이끌던 사회였다. 물론 초기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에 유동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계층적 신분 질서 자체를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초기 신분 변동은 주로 과거를 통하여 진출하는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평민층에게 과거시험을 금하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평민들 중에는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 응시하는데 신분이 중요하였기 때문에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보다 광범위한 신분변화가 일어났다. 초기 신분변동은 주로 과거를 통한 것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 요인이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Ⅱ. 신분구조의 변동1. 양반 계층의 분화(1) 양반인구의 증가유형원은 양반을 문무반의 정직에 참여할 수 있는 대부, 사의 자손과 족당으로 정의하고 있다. 양반은 또한 사족의 존칭으로서 사족과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양반은 관직이나 가문에 의해 그 명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장적에서는 일반적으로 군역을 면제받아야 하고, 선후세대간에 양반신분을 세습 이동해야 하며, 양반 상호간에 신분내혼이 이루어져야 하는 등의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양반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양반의 직역은 전 ? 현직관 및 대품직자(가계 및 가족의 신분표시가 양반신분인 자), 진사, 생원, 급제, 출신, 유학, 충의위(18세기 중반까지), 업유, 업무(숙종 22년 이전)등으로 파악되며, 부녀자에 있어서는 성에 「씨」가 붙여진 경우가 양반으로 간주된다. 양반호의 구성비는 각 지역과 연구자의 부류기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후대로 올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대체로 17세기 후반에는 9~19%, 18세기 전반에는 12~26%, 18세기 후반에는 24~57%, 19세기에는 39~80%정도의 분포를 보였던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양반층의 급증현상은 단순히 서민들의 신분상승 만으로 이루어졌다유향소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향소의 직무가 고역으로 전락함에 따라 사족들이 하나는 유향소를 통한 향권 장악을 위하여 유향소에 참여하고자 하는 태도로, 다른 하나는 고역의 담당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나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른바 유향 분기가 나타나게 되었다. 즉, 사족들이 향임을 모피하게 됨에 따라 향임을 맡는 품관층은 사족 내에서 차별화된 하나의 계층으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향족들의 향안 입록이 향적권을 쥐고 있는 사족들로부터 제한을 당하게 되자 향족들이 반발하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향안이 파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향촌지배층 내부의 이와 같은 분화현상은 결국 그들이 소속했던 향촌지배기구의 차이라든가 그들 간의 족적 기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와 향은 좁은 의미에서는 유임과 향임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넓게는 유가 서원이나 향교를 근거로 결집했던 유림 ? 유생을 가리키며, 향은 향소를 근거로 삼는 향품 ? 향족을 지칭하였던 것이다. 특히 향족은 좌수 ? 별감 등 향소를 지칭할 뿐 아니라 각종 명목의 감관과 그 직을 세습하려는 족당까지를 포함하며, 향임은 지방통치행정에 참여하는 좌수 ? 별감 ? 감관 ? 도감 등과 면임 ? 도장까지도 포괄하는 표현이었다.향품에는 18세기 후반 이후 하층으로부터 올라오는 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향품 층은 고을에 따라 수백 내지 수천 명에 이르는 무리를 형성할 정도였으며 특히 양서와 관동이 심하였는데, 이는 그들 지역이 사족의 전통이 없기 때문에 각 읍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매향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매향은 곧 임로자체의 문란을 초래하였고, 그에 따라 미천한 자들도 경제적 부력을 바탕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부를 축적하여 새로 향품에 참여하는 부민층이 크게 확대되어 갔음을 의미한다. 부민층을 주요 대상으로 한 권분과 원납은 부민층의 신분상승과 수탈체계에서의 이탈, 그리고 관권과의 결탁을 보다 용이하게 한 수단이 되었다. 이들은 점차 양반층으다. 또 업유의 아들이나 손자 때부터는 양반과 같은 호칭인 유학을 쓸 수 있도록 하였다. 동시에 납속허통법을 개정하여 납속이란 전제조건을 삭제, 서얼들이 문무과에 와 생진시에 응시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서얼들의 벼슬길은 그렇게 넓기 못하였고 사회적 차대 또한 조금도 완화되지 못하여 결국 18 ? 19세기의 사회환경과 역사조건의 변화와 서얼들의 양적 축적으로 인하여 집단적이며 조직적인 소통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위정자들은 서얼들의 벼슬길 확대와 승반화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일부 사족들도 서얼들의 상속상의 지위상승을 인정하게 되었다. 서얼들의 벼슬길 진출은 18세기 후반부터 활발해져 18세기말경인 정조대에 이르면 30명이나 되었고, 비록 청직이나 고위직의 취임이 불가능하였지만 다음 시대를 여는 데 큰 몫을 하였다. 결국 19세기 중엽에 이르면 서얼통청운동에 앞장선 서얼관료 출신자 중 정언 ? 지평 ? 장령 등 청직을 지내는 경우도 나타나게 되었다. 더구나 19세기 말엽이 되면 청직을 거쳐서 대관에 이른 자가 많았다. 특히 노론계의 서얼 중에는 청환 ? 달관이 많았다고 한다. 서얼들이 이와 같이 공경대부의 자리를 많이 차지하게 되자 여러 가문에서 서얼들을 「승적」시켜서 후사로 삼았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적서 차대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고 사회의식 속에 남아 있어서 벼슬길에 진출한 서얼일지라도 일부 지방에서는 향안 입록이 거부되고 있었다.(2) 서얼통청운동조선 중기 이후 서얼들은 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으며, 서얼금고)의 지속으로 많은 인재가 사장되고 있었으므로 집권층에서는 서얼소통을 논의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납속허통법을 만들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서얼을 관료로 등용하였다. 그러나 납속허통법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일부 부유한 서얼들뿐이었고 벼슬로 진출하는 자도 극소수라 서얼들의 불만과 사회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이를 다시 개정하였다. 친서얼인 경우에는 업유ㆍ업무를 호칭하도록 하여 일반 상민과 구별을 하고, 업유의 아들이나 신분상승을 노리고 사회경제적으로 지위향상을 갈구한 중인층이었다. 중간계층에 속할 수 있는 납속부민에는 여러 층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연구로 한량 ? 향품 ? 향인 ? 업무 ? 업유 등은 반상의 중간층인 중인이다. 신분 상승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군관직을 얻고 다음에는 유학과 대등한 신분을 얻고, 마지막에는 직접 유학을 얻는 것을 주 목표로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17~18세기에는 군관직 취득이 신분변동의 한 통로가 되고 있었고, 중인층에 속하는 한량 ? 향품과, 절충 ? 가선의 품계를 지닌 사람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정부의 권분 모속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계층이었다.(2) 중인의 통청운동조선 후기에는 서얼을 비롯한 이서층 (吏胥層; 경아전), 전문직 중인들의 신분 상승 운동이 있었다. 철종 2년(1851) 4월 15일에는 서얼을 허통하여 벼슬에 채용하도록 한 것을 계기로 중인들은 치밀한 계획 하에 통청운동이 전개되었다. 정부는 서얼과 기술직 중인의 운동과는 달리, 경아전 중심의 위항문학운동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경아전의 운동은 그들의 정책방향과 부합하고 운동의 초점이 지배 계층을 가리키고 있지 않았으나 서얼이나 기술직 중인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이권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연대기에 이들의 상소문의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기술직 중인들의 통청운동은 제동이 걸렸거나 실패한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 중반에 중인통청운동은 비록 중도에 좌절되기는 하였으나 시도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영ㆍ정조대에는 각종 산성보수 등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서 공명첩을 발매하고 부민권분) 논상제도를 실시하였다. 중인층의 신분변동을 납속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실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들은 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부민층으로 그 핵심계층은 양반으로의 신분상승을 노리고 사회ㆍ경제적으로 지위향상을 갈구해온 중인층이다. 말단 지배층인 중인은 양반보다 토지소유와 경제력 면에서 월등히 우세하였고, 평민층 중. 그리고 왕조의 전반기까지는 그 신분해방의 길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왕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특히 두 차례 큰 전쟁을 겪으면서 노비신분해방의 길도 크게 확대되어갔다. 전쟁에서 적을 베면 관노나 사노를 막론하고 종양될 수 있었으며, 이밖에도 임진왜란 때는 공?사천 무과가 설치되어 노들의 종양의 길이 되었다. 노들이 무과를 보아 합격하면 양인 신분을 얻는 이 과거제도는 신분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 하여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중의 군졸 충당에 고심하던 정부는 일시적으로나마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기회에 많은 노들이 양인신분으로 해방되었다. 조선왕조 정부는 재정적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납속보관과 함께 납속종양의 길도 열어놓아서 임진왜란 이전에도 이미 어느 사노비가 흉년에 곡식 3천 섬을 바치고 아들 셋을 종량시킨 기록이 있다. 노비들의 납속종량의 길은 전쟁 과정을 통해 더욱 크게 열렸다.이밖에도 노비들이 해방될 수 있는 길은 대구면천이 있었고, 훈련도감이나 속오군과 같은 군영에 들어가 면천의 기회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관노가 아닌 사노의 경우 전쟁공로나 납속을 통한 면천에는 정부가 그 소유주에게 대신 보상을 해주었다. 왕조 후기로 오면서 합법적인 면천의 길도 넓어졌으나 이 시기 노비해방의 더 넓은 길은 그들 스스로가 피역하거나 도망하는 길이었다. 특히 관노비의 경우 전쟁으로 인한 노비문서의 소실과 통치체제의 이완에 따른 행정상의 허점이 피역 및 도망의 길을 크게 열어놓았다노비신분 해방의 길이 합법적으로 혹은 불법적으로 넓어져감에 따라 그 신분 세습법에도 하나의 변화가 나타났다. 노비종모법의 확정이 그것이다. 노비는 고대사회에서부터 전쟁포로, 형벌, 인신매매 등을 통해 생겨났다. 통일신라시대 이전에는 3국 사이의 전쟁이 빈번하여 포로의 노비화에 의한 1세 노비 공급원이 넓었던 것 같고, 이 때문에 노비의 신분세습제는 그다지 철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수모법 혹은 종모법이라 했지만, 실제는 종모종부법이 적용되어 부모 중 어느 한쪽만 노비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