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과 제 명 :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 이하 과제 작성모든 주택은 서로 다르다. 크기, 형상, 고저, 방향, 구조, 자재 등의 물리적 특성, 편의시설과의 접근성, 공해와 소음 등의 환경요인, 교육여건, 교통 등 주변지역의 인문적 특성, 특히 위치의 고정성 때문에 주택 소유자는 자기의 집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독점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근처에서 발생하는 매연이나 소음 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반면 주변에, 공공투자가 행해지거나 하면 큰 혜택을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독과점, 외부효과, 공공재의 문제로 해석한다면 주택시장은 시장실패요인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장실패 요인들이 주택의 효율적 배분 뿐 아니라 형평성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정당화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택이라는 재화는 국민의 의식주 문제에 있어 절대 빠질 수 없는 필수품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에 직결되는 공공적인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주택시장을 100% 민간에 맡기고 효율성만을 가치기준으로 삼기에는 국민의 삶의 질에 미치는 효과가 심히 중대하다. 주택정책은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주거수준을 보장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또한 주택은 부동산자산으로서 개인이 가진 부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소득의 원천일 뿐 아니라, 국부의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모든 다른 자산과 마찬가지로 국민경제의 움직임에 따라 그 가격이 영향을 받기도 하고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경기변동으로 인한 주택가격 상승폭이 사회 구성원 다수의 부담 능력을 초과할 경우 주택구입능력을 제고하는 등 주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정부의 개입이 요구 된다.그렇다면 정부가 주택시장에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피기 위해서 먼저 현재 주택시장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첫째, 지금 주택매매시장은 침체일로를 겪고 있는 반면 전세시장은 포화상태라고 할 만큼 수요자가 너무 많아 폭등한 전세보증금이 다시 내려갈 기미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대형 평형은 미분양이 속출하는 반면 중소평형대의 전세를 구하기란 매우 어려워 졌다. 왜일까? 세대원 숫자가 줄어들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며 주택소유에 대한 패러다임이 자가 소유에서 거주목적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은 미미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내 집을 갖고 싶지만 소득에 비해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전세를 구할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녹록치 않아 전세자금대출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더 이상 집값 상승으로 대출이자를 상쇄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어든 탓도 있다. 게다가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어 임대인 입장에서는 전세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고 있어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주거비용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의 소비심리는 점점 움츠러들어 주머니를 더 틀어쥐게 되고 경기는 침체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그런데 주택의 매매가가 점점 떨어지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0년 기준 약 7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하는 베이비붐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면서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하고-2010 주거실태조사 자료에 의하면 베이비붐세대의 자가보유율은 59%이고 가계자산 중 74.8%(출처: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부동산자산이다.- 규모를 줄이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고 그동안 쌓였던 거품이 꺼지면서 집값이 현실화 되어간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자가보유율은 2010년 61.3%, 자가거주율은 54.2%이다.(출처:통계청, LH토지주택연구원)) 반면 지난 노무현정권 시절 무리한 대출을 끼고 주택을 구입했지만 집값하락으로 이자부담도 버거운 하우스푸어 문제와 더불어 이제는 렌트푸어 문제도 상당하다. 2010년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전국의 하우스푸어 분포비율이 14.7%에 이른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11년 4분기 말까지 명목GDP대비 가계부채비율이 89%까지 상승했다. 가계대출 중 주택대출 비율은 2011년 기준 68%에 육박한다.이미 가계부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내수를 위협할 정도인 국내 현실을 봤을 때 주택금융을 확대하는 것은 제2의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기 쉬울 뿐 장기적으로 국민의 주거안정에는 별로 실효성이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DTI규제완화나 주택금융확대 등 억지로 주택 매매를 활성화하려는 정책보다는 집값은 이대로 하향 안정화되도록 놔두고 지금보다 더 많은 하우스푸어들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하여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것이 먼저이다. 집값이 더 내려가서 현실화 되면 사람들은 사지 말라고 해도 집을 살 것이고 자연히 전셋값도 현실화 될 것이다. 하우스푸어문제는 개인들의 투자책임도 크므로 그들을 직접 구제하기보다는 1주택자에 한정해 문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좋다. 무주택자와의 형평성차원에서도 공적자금투입보다는 개인과 금융기관이 협의해 변동금리대출을 가급적 고정금리대출로 전환하고, 거치식 일시상환에서 장기 원리금분할상환으로 바꾸는 등 금융권 스스로 주택담보대출부실화 가능성을 낮추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좋다.또한 좀 더 거시적으로 볼 때는 대부분의 사회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된 현상을 해결해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어야만 수도권 주택 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대대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 효율성만 추구하기 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중요한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당장 효율성이 매우 떨어져 보이더라도 국토의 균형발전에 유익한 것이라면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람들의 일자리가 수도권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인구의 편재성도 완화될 것이고 전세대란도 잠잠해질 것이다. 그리고 가구당 세대원이 줄어드는 구조 변화를 감안한 중소형임대가구 공급에 정부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시프트와 같은 장기전세주택의 공급 확대를 통해 전세수요를 흡수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무주택자들에 대한 주거지원은 사회적 결속 강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둘째, 지은 지 30년이 넘어 재건축 등 정비가 필요한 노후 주택이 2010년 현재 10%에 조금 못 미치지만 이대로라면 2020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해 500만 가구를 돌파할 전망이며 전체 주택 재고의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기존 주택을 재건축하면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라 개발이익으로 재건축 비용을 충당했지만 갈수록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고 있어 앞으로는 개발이익을 기대하고 재건축 등을 추진하기 힘들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이전 아파트와는 달리 고밀도, 즉 용적률이 높게 지어져 재건축을 해도 개발이익은 한계가 있다. 2012년 현재 서울 시내 재정비 사업지구의 가구당 평균 추가부담금은 1억3000만~2억원으로 은퇴 생활자의 8~10년 치 최소 생활자금에 육박한다. 추가부담금은 공사기간(평균3년)에 내도록 돼 있어 소득이 적은 고령가구의 재정비 사업 반대로 아파트 노후화는 더 심각해지는 현상이 나타날 거라고 한다. 그 대안으로 리모델링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별로 실현가능성이 낮다. 그 주택이 지어질 당시의 안전기준이 현재의 기준에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부실 시공된 곳이 많아 그 건물을 토대로 증축을 한다거나 개?보수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재 이미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 많지만 그 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분별한 뉴타운 지정은 기존 주민들의 주거를 안정시키기보다 그들을 더 외곽으로 내몰기 쉽다. 추가 부담금을 내기 어려운 저소득 가구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해 재개발을 하려면 막대한 국고지원이 불가피 하다.
1. 주입식 교육관 대비 자연주의 교육관, 진보주의 교육관, 실존주의 교육관을 비교·설명2. 에릭슨의 성격발달단계이론, 그 교육적 시사점- 이하 과제 작성1. 주입식 교육관 대비 자연주의 교육관, 진보주의 교육관, 실존주의 교육관을 비교·설명주입식 교육관이란 본래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개인차를 무시하고 초개인적인 교의를 획일적으로 주입한 데서 유래하는데, 이 교육관에 따르면 사회는 개인에 우선한다. 교육의 주된 관심과 동기가 개인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사회적인 목적의 성취에 있다. 주체는 객체의 자발성에 관계없이 강압적으로 주입하며, 사회로부터 그 권리를 받는다. 객체는 사회의 신념과 가치체계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고 적응해 나가야 하는 존재이다.주입식교육에서의 대부분의 지식·기술은 아동의 현실생활과 무관하게 정립된 것이다. 따라서 아동의 입장에서 보면 학습내용이 어른들의 독선적인 지식이나 기술이기 쉬워 실생활에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또한 주입식 교육에 있어서 지식·기술의 교재순서는 아동의 심리적 성장이나 인식과정에 적합하게 짜여 있지 못하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일방적인 주도는 인식이나 습득에 있어서 아동의 주체적 능동활동을 억압하기 쉽다. 결국 주입식 교육은 아동의 생동감 ·흥미 ·능력 ·필요를 전혀 무시한 성인위주의 교육이 되기 쉽다. 이 전근대적인 교육방법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것으로 루소의 아동중심 교육관, 듀이의 경험주의 교육관 등이 있다.루소로 대표되는 자연주의 교육관에서 자연주의란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두라는 뜻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덕성과 선을 보존하며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며,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는 자연스러운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교육은 인간 내부의 자연성에 따르는 것으로서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흥미에 따라 자기가 당면하는 문제들을 풀어나가면서 주체적 사고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자율학습과 흥미에 의한 자유학습 등의 방법을 중해야 한다. 여기서 교육을 잘 받은 인간이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시켜 나갈 수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힘을 지닌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이다.듀이로 대표되는 진보주의 교육관은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과 미국에서 형성된 실용주의 철학 - 실용주의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경험으로 세계를 파악한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인식 가능한 세계만을 유일한 실재(實在)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상호작용은 우리의 생각, 신념, 욕구, 지식에 따라 다양화 되며 그 다양한 것 역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 한다. 그러므로 지식 또는 진리는 우리의 경험과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하고, 언제나 수정 가능한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이며,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진리와 마찬가지로 가치 역시 상대적인 것으로써 우리의 경험으로 유용성이 증명된 것 이어야만 가치를 지닌다. - 을 바탕으로 20세기 초기에서부터 미국사회에서 전개된 교육사조이다. 진보주의 교육철학은 지식암기 위주의 권위적이며 교사중심의 전통적 교육을 비판하고 아동의 개성·흥미·욕구·적성·자발성 등을 교육의 중요한 원리로 삼고 외부의 강제나 통제에 의한 교육을 배척하는, 이른바 아동중심 교육이 진보주의 교육운동의 동기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가 1930년경에 경제공황을 겪는 동안 진보주의가 사회의 비판적 여론의 대상이 되자,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관심을 높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기의 진보주의가 아동 중심적 특징을 가진다면 후기의 진보주의는 사회문제 중심적이다. 지역사회, 학교생활 중심 교육 등은 후기운동의 두드러진 특색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교육은 아동이 생활 속에서 부딫이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돕고, 스스로의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행동에 의한 학습’, 또는 경험중심 교육을 그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아동의 경험이 확장되도록 교육의 과정에서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교육에서 협동은 아동을 동기화시키는 중요한것은 교과가 아니라 아동 자신이다. 진보주의는 현대의 민주적 교육의 본질을 정립하여 미국사회 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교육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교육을 생활화, 교육방법을 실용화하고 초등교육과 의무교육 발전, 단선형 학제 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실존주의는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에서 대두된 철학이다. 인간의 본질이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을 부정한다. 인간은 아무 것도 없는 無의 상태로 세상에 던져졌을 뿐이며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본질을 창조해 가는 존재이다. 즉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의미이다. 부버로 대표되는 실존주의 교육관은 인간을 저마다 나름대로 독특한 문제를 지니고 이 세상을 고통스럽게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존재, 불완전한 존재로서 완전과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즉 형성되어 가는 존재, 자신의 삶을 자기의 자유의지에 의해 창조해 나가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 관점에 의하면, 교육의 목적은 자유롭고 창조적인 인간 형성에 있다. 즉 비주체적인 인간,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인간을 길러 내는 활동이 아니라,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스스로 형성해 나가는 실존적 자유인을 길러내는 교육관이다. 또한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기위해 전인적인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전인교육이란 인간의 신체적 성장, 지적 성장, 정서적 발달, 사회성의 발달을 조화시킴으로써 균형 잡힌 전일체(全一體)로서의 인간을 육성하려는 교육을 말한다. 상대방과 인격적으로 교감하는 대화, 만남, 참여 등의 비연속적 형식의 자아인지의 과정을 통해 각각의 개인들 나름의 독특한 자아를 가지도록 한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비연속성 교육으로서의 한계와 모호하고 암시적인 특성 때문에 실천적 교육이론으로서의 구체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2. 에릭슨 성격발달단계이론에릭슨은 프로이드의 이론에서 성적 욕구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고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두어 인간 발달 특성을 밝히려고 하였다.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같은 속에서 에릭슨은 인생의 주기를 여덟 단계로 구분하였다. 각 단계마다 습득해야 할 기본적인 과업이 있고, 필연적으로 발달에 상반되는 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 갈등과 위기를 잘 극복 했을 때 발달하게 되는 자아자질 또는 덕성이 함께 제시된다. 각 단계는 상호 의존적이어서 다음 단계의 성취는 이전의 위기가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달려있다. 개인이 각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은 개인의 자아상과 사회를 보는 눈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초기 단계에서의 건강하지 못한 문제 해결은 종종 이후 단계에서 손상이 회복될 수 있을지라도 인생전반에 걸쳐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갖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전 생애에 걸쳐 성품이 형성된다고 본다. 각 단계는 아래와 같다.①제1단계(0-1세): 기본적 신뢰감 대 불신감초기 영아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는 기본적인 신뢰감이다. 이 신뢰감은 부모가 영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음식을 먹고 배변활동이 원활하며 부모의 애정을 일관성 있게 받음으로서 영아는 기본적 신뢰감을 형성하고 희망이라는 덕성을 갖게 된다. 만일 영아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일관성이 없다면 영아는 의심과 공포감을 갖고 불신감을 형성한다.②제2단계(1-3세):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이 시기의 유아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는데 부모가 유아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허용하고 격려 하면 유아는 자율성을 형성하고 의지력을 갖게 된다. 반면 유아가 스스로 하는 놀이나 혼자 걷기, 음식 먹기, 대소변 가리기 등의 행동에 대해서 부모가 지나친 통제나 간섭을 하게 된다면 유아는 자기 능력에 대해 의심을 갖는다. 더해서 유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수치심을 준다면 심한 수치심과 회의감에 빠질 수도 있다.③제3단계(3-5세): 주도성 대 죄책감부모의 신뢰감을 얻게 되고 자신의 욕구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자율감을 발달시키면 어린이는 독립하고자 한다. 자신의 의지에 따른 자율적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유아는 더 탐색하고 활동하도록 허락해주는 것이 좋다. 또 유아는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증을 해결하려 하므로 부모는 유아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주며 문제 해결에 자발적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결 시에는 주도성과 목적의식이 형성되나, 유아의 활동을 간섭하고 통제하며 질문을 하찮게 여길 경우에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무가치심을 느낀다.④제4단계(5-12세): 근면성 대 열등감이 시기의 아동은 인지적이고 사회적이게 되어 지적 호기심과 성취동기에 의해 행동하게 된다. 스스로가 결과물을 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결과에 대해 인정을 해 주며, 실패하더라도 재시도를 격려해 주면 근면성 및 유능감이 생기며 반대로 과제를 해결 못 하거나 낮은 평가만 받게 된다면 열등감과 무능감을 형성하게 된다.⑤제5단계(청소년기): 정체감 대 정체감 혼미아동기에 형성되었던 내면의 세계가 새로운 가치와 이념으로 변화되는 질풍노도의 시기(a time of storm and stress)이다. 이러한 격변 때문에 자아 정체성의 문제가 등장하는데, 정체성이란 과거에 형성된 한 인간의 내면적 통일성과 일관성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보이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들어서고 부모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을 하게 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역할이나 타인의 시선 등을 의식하여 계속된 자기 질문을 통해 고민하고 자아를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민하여 자아정체감과 성실감을 얻어 진로와 인생관을 확립하게 되면 본인이 선택한 가치들에 스스로 충성을 지키는 충성심이 형성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역할혼미, 정체감 분산, 갈등 등이 생긴다. 이는 직업 선택이나 성 역할 등에 혼란을 가져오고 인생관과 가치관의 확립에 심한 갈등을 일으킨다. 이 혼란은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없는 이상적인 인물이나 연예인 등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 경우에 흔히 나타나게 된다. 다.
o 과 제 명 : 청년실업문제와 대안으로서의 사회적기업- 이하 과제 작성인간의 본성은 어떤 것일까. 인간이 지나온 자취는 본성이라는 수레의 기본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본성이란 것이 태곳적부터 불변하는 것이 맞다면, 과연 그것은 어떤 것이고 어떤 자취를 만들어 왔을까.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싶어 하고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지배와 피지배라는 계급차이는 바로 이러한 본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근대 이전에는 왕과 함께 저 아래에 노예가 항상 있어왔고, 근대 이후에는 끊임없이 혁신하는 기업가와 노동자가 함께 해왔다. 기업가와 노동자 사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왔겠지만,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계급관계와 대체로 비슷하게 이어져 왔다.근대화 시절, 기업가는 더 많은 생산을 하고 싶어 했고 따라서 더 많은 노동자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기술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끊임 없이 진보해왔다. 설비는 자동화 되고, 산업구조는 단순육체노동자보다는 창의적인 지식근로자가 필요한 지식산업 쪽으로 무게중심을 확연히 바꾸고 있다. 보다 중요한 업종-중심지-에서 일하는 엘리트(전체노동자의 20%정도)와 보다 덜 중요하고 주변화된 업종의 노동자로 세상은 점 점 양분 되고 있다. 주변화된 노동자는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도려내야할 귀찮은 짐이 되었다. 주식시장은 구조조정을 통해 좀 더 많은 짐-불필요한 노동자들-을 덜어내고 가벼워질 때에야 그 기업에 대한 평가를 새로이 격상시킨다. 쓸모없다고 버려짐과 함께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노동자들은 넘쳐나는데 복지는 점점 거대화된 자본가들의 구호에 맞춰 축소되어가는 추세이다. 이대로라면 주변화된 노동자들은 점 점 더 낮은 임금도 감내하고라도 생계를 위해 더 열악한 근로조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어 결국에는 자연도태되고, 소수의 기득권층과 그들에게 서비스할 노예적 처지로 전락한 극빈한 노동자들만이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영화같은 상상까지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일까?아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본성뿐인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삶이 힘겨워지고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일 때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연대해왔다. 이러한 비관적인 상황을 타개할 대안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대안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점점 양극화되고 비루해져가는 실업문제의 중심에 청년실업문제가 있다. 청년 실업(靑年失業)이란 일을 할 수 있고 또 일을 할 의사(意思)도 있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일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일을 말한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2011년 1월 기준으로 8.5%이다. 이는 전체실업률(3.8%)의 두 배가 넘는다. 이 것은 실망실업자-구직단념자, 실질적으로 실업자와 다를 바 없으나 단지 구직활동을 포기했기 때문에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어 실업자 통계에서 빠진 사람들-와 아르바이트 등의 임시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제외한 수치이므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사료된다.그렇다면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단순히 청년들이 힘들고 폼 안나는 직장을 꺼려하고 그럴듯한 직업에만 관심을 가지는 허황됨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거꾸로, 그럴듯한 직업만을 원하는 청년층 수에 비해 그럴듯한 직장은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역설도 가능할 것이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2011년 3월 한국노동자의 33.8%(577만명)가 비정규직이다. 노동계는 이보다 좀 더 많은 48.7%라고 한다. 1988년 도입된 법정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10년 196만명(11.5%)이며 저임금 근로자는 26.5%에 달한다. 이런 작금의 현실에서 청년들이 실업상태인 것은 자신의 그릇을 모르고, 허황된 꿈만 쫓기 때문이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닥치고‘ 마주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일까?물론 그 뒤엔 사회적으로 나의 실력을 증명해보여야만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러한 생각은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화려하고 명예로운- 일을 하지 못하면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정규직이며 제법 괜찮은 임금과 대우를 받는 직업을 가져야만 남들과 비교해 소위 “꿀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괜찮은 집에 살 수 있고 큰 차를 타고,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맘에 드는 스타일의 멋진 패션을 과시하며 살 수 있는 삶. 온갖 매체의 광고들에서는 ‘멋져 보이는’ 그런 삶으로 시시때때로 어디서나 우리를 유혹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그렇게 멋진 직장에 취직하고 그에 따른 멋진 소비생활을 누릴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좌절하고 ‘잉여인간’을 자처한다. 이것은 분명 개인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다.그리고 세계화. 어디서나 지구촌이란 슬로건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재.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그저 순진한 믿음으로 그 구호를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현실이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리는 그 이면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자본도, 기업도 모두 세계화 되고 점점 거대해지고 있는 것을 그저 희망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짓이었다. 자본도 기업도 거대해질수록 더더 큰 권력을 쥘 수 있었고-웬만한 국가권력을 압도할만한- 잘못하면 지구상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만큼 파괴력 또한 거대해졌다.(거대 다국적기업들이나, 거대자본은행들.) 다국적기업들은 그 땅의 노동자들이 맘에 들지 않으면 더 좋은 조건으로 그들을 환대하는 다른 저개발 국가에 공장을 옮기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면 되는 편리한 여건이 세계화의 슬로건 아래 태연히 제공되었다. 그에 반해 노동자는 더 좋은 여건을 제시하는 사용자를 찾아 세계를 이동하기엔 시간적, 경제적으로 매우 불리한 조건에 서있다. 효율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업들의 전쟁터에서는 점점 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가 조금씩이나마 제공될 것이고 우리는 그 ‘조금’의 일자리나마 감사히 여기며 일 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요구할 수 있다.“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에서 위와 같이 외쳤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러한 선언이 절실하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라도 노동조합이 있고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단결하여 정부, 기업과 교섭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전체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한국의 제도는 정규 고용, 기업에 장기간 근무할 경우 노동조합 가입이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법 제29조는 정규직 이기주의를 법으로 강제한다. 노동조합은 사업장 전체 임금 근로자가 아니라 오직 조합원만을 위해서 단체교섭을 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동이 잦고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주변부 노동자는 자연히 노동조합의 일원이 될 가능성이 매우 적어진다. 2010년 기준, 300인 이상 기업 노동자의 42.4%가 노동조합에 가입했지만 30인 미만기업 노동자의 가입률은 0.2%이다. 정규직은 16.3%가 조합원이나 비정규직은 조합원비중이 3.1%에 불과하다. 주변부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한 보호조차 받지 못하여 나쁜 근로 상황을 개선할 여지가 별로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그러나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의 단결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그들의 고통을 공적인 관심의 문제로 만들지 못하거나, 그렇게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 대개가 생계를 잇기에 벅차고 ‘남들이 다 하는 것 같은’ 소비를 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이 큰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 대부분이 근본 문제 자체를 구체적으로 인식하지를 못한다.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과 가난에 대한 푸념을 하거나, 멋져 보이는 소비생활을 하는 이들을 동경하는 정도로 그칠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왜 그토록 일해도 계속 가난한지 근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해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무지하다. 그래서 대부분 체념한 체 살아진다.-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진다. 삶을 이끌지 못하고 삶에 끌려 다니게 되는. 내가 내 삶의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에 대한 삶의 철학보다는 현란한 광고와 화려한 연예인들의 겉모습에 현혹되어 그것을 부러워하고 탐닉하는 것에 그나마 가진 시간(여가시간)을 허비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그들의 대부분은 부모 또한 가난했고 사회적 각성의 계기를 갖지 못했다. 바로 여기에 교육의 중요성이 있다. 그들의 부모가 깨우치지 못했고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을 공교육이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 것은 사회의 책임이지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다. 교육은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가르쳐 줘야 한다. 그리고 부당한 것은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을 가르쳐 줘야 한다. 개인의 개성을 지켜줘야 하고 노동시장에 나와 많은 돈을 버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인생은 아니라는 것, 공동체와 가정으로 돌아와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노동을 하는 소박한 인생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자발적인 소박함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지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변부에 놓여있던 청년들은 보다 많은 임금을 주는 대기업이나 명예로운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것만이 성공적인 인생이 아님을 알고 각자의 개성대로 보다 다양한 진로를(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선택지를 가지는 것이 노동자의 협상력에 얼마나 유리한지를 알게 될 것이고 보다 좋은 근로조건을 만들기 위해 단결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목차1. 서론2. 비정규직의 정의와 그 현황2.1. 비정규직의 정의와 대두 배경2.2. 비정규직노동자 규모 및 근로조건2.3. 비정규직 관련법 내용과 그 한계3. 비정규직문제의 사회적 파급효과와 삶의 질3.1. 임금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3.2. 빈곤의 악순환3.3. 삶의 질 저하4. 비정규직 문제의 개선방안5. 결론1. 서론우리나라의 출산율은 OECD국가 중 최저를 기록했다. 또한 자살율은 OECD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서점에서는 요즘 힐링이 대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등 이런 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지 꽤 되었다. 그만큼 지금의 삶을 각박하다고 느끼는 이가 많아졌다는 반증이다. 대학생은 졸업 후 진로가 두려워 졸업을 미루고 휴학을 선택하는 게 하나의 수순처럼 되었다. 또는, 이미 졸업을 했음에도 취업을 하지 못해 부모님께 용돈을 타서 생활하거나 그 것도 여의치 않은 이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취업준비를 병행하는 것은 아주 흔한 광경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 대부분은 비정규직 또는 100만원 남짓의 저임금 일자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다. 일자리의 절반가까이가 비정규직이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첫 번째 좌절을 맛본다. 비단 사회초년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다가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중장년 여성들에게는 더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 대부분은 청소용역회사를 통해 작업현장에 파견되는 형태로 일을 하는데 많으면 100만원이 좀 넘는 임금을 그나마도 용역회사와 나누어 가져야한다.비정규직의 대부분이 저임금이기 때문에 이들은 일을 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워킹푸어가 된다. 또한 비정규직 대부분은 근로조건이 열악하다. 저임금도 물론이지만 장시간 노동에 언제 떠나야할지 모르는 불안정함 등 많은 문제를 수반한다. 청소직 등의 경우는 대부분이 격주마다 하루를 쉬는 식이므로 휴가철에 남들처럼 편히 휴가를 떠난다거나 주말에 친인으로만 연관 지어 봐도 우리 사회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큰 짐인 것은 분명하다. 굳이 미래까지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현재 그들은 행복한가? 그게 더 중요하다. 오늘 하루가 행복하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행복한 인생이 된다. 그런데 조금 더 경제가 성장하고 더 커져야만 행복해지니까 지금은 힘들어도 참아야한다는 경제성장제일주의의 논리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경제가 성장하려면 기업이 살아야 하고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비정규직은 불가피하다? 기업은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현란한 광고들에서 소비자들을 유혹해 주머니를 털어가려 안달이지만 그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은? 필자는 합리를 가장하는 기업의 성장 논리가 오히려 얼마나 비합리적인 궤변이었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2. 비정규직의 정의와 그 현황2.1. 비정규직의 정의와 대두 배경비정규직이란 근로 방식 및 기간, 고용의 지속성 등에서 정규직과 달리 보장을 받지 못하는 직위나 직무. 계약직, 임시직, 일용직 따위를 말한다. 본래 비정규직은 일의 필요에 따라 외부 업체의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쓰고자 만들어진 제도였다. 서비스 산업의 경우 노동 수요의 변화가 많고, 하루일과 중에도 수요가 일정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 파트타임 노동자 고용을 선호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대형 마트에서는 시간대에 따라 필요한 노동력이 시시각각 변화한다. 또한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도 늘어났지만, 많은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이 어려웠고 파트타임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파트타임 노동자가 등장했지만 기업들은 임금을 적게 주고,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해 정규직과의 차별 등 여러가지 문제도 생기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김대중정권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하며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났다.비정규직의 종류에는 간접고용, 일용직, 특수고용, 계약직 등이 있다. 간접고용은 원청업체가 노동자를 직공기관 노동자, 목욕탕 때밀이 등에서 볼 수 있다. 노동기간이 짦을 뿐더러 고용과 실업이 반복되므로 가장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특수고용은 노동자들을 개별사업자로 규정하는 것으로 학습지 교사, 화물, 건설 중장비 기사, 우체국 위탁 택배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노동력을 제공하여 임금을 받는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의 권리인 노동3권이 존중되지 않으며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의 사회안전망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계약직은 기간제라고도 한다. 고용기간을 정해놓고 계약을 맺음으로써 고용된 노동자이다. 사용자가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여 직접 고용한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다. 무기계약직이라고 해서 고용기간이 없는 계약직 노동자도 생겼다. 2년계약의 우체국 상시집배원등이 계약직 또는 기간제에 해당한다.2.2. 비정규직노동자 규모 및 근로조건정부 발표에 의하면 2011년 3월 한국 노동자의 33.8%(577만명)가 비정규직이다. 노동계는 이보다 많은 48.7%라고 발표했다. 공공부문도 마찬가지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1 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평가’를 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와 지난해를 비교해 봤을 때, 공공기관의 정규직 비율은 2008년 75.3%에서 2011년 73.4%로 줄었고, 비정규직 비율은 같은 기간 24.7%에서 26.6%로 확대됐다. 기획재정부의 기획재정위원회는 2010년 3월 기준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에는 103만6000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비정규직은 정규직과의 차별대우-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의 50~70%를 받고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복지가 비정규직에게는 없음-와 저임금/장시간 노동-최저임금제에서 정한 금액과 큰 차이가 없는 임금, 휴식시간이 거의 없는 지나친 업무강도 등을 감수해야하며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불안고용, 어용노조가 아닌, 민주적 노동조합 결성시 회사문을 닫음으로써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근로계약 연장을 조건으로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는 등의 불평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2.3. 비정규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2월 12일 국회입법조사처가 한국노동연구원(연구자 이병희 은수미)에 맡긴 ‘비정규직법의 고용 영향 분석’ 보고서를 보면,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2005년 8월~2006년 8월에 계약직 노동자가 1년 뒤 파견·용역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5.9%에서 법 시행 3년 만인 2009년 8월~2010년 8월에 11.4%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또 간접고용 노동자 중 1년 전 계약직이었던 비중을 살펴봐도 법 시행 전에 31.4%에서 3년 만에 42.1%로 증가했다. 지난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 당시부터 우려되던 ‘풍선효과’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정규직 채용을 유도하기 위해 법으로 계약직에 대한 보호를 강화했더니,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또다른 비정규직인 간접고용 노동자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간접고용 가운데 노동법 규제가 없는 용역노동자가 파견보다 전환 비율이 더 컸다. 파견노동은 2년 이상 고용을 할 수 없으며 비슷한 업무에 대해 정규직과 차별도 금지돼 있는 반면, 용역노동자는 아무런 보호방안이 없다. 계약직노동자가 1년 뒤 용역노동자로 전환된 비율은 법 시행 전에 4.8%였으나 2008년 8월~2009년 8월 8.3%, 2009년 8월~2010년 8월 7.9%로 늘었다. 실제 용역노동자 규모도 2006년 8월 49만8000명에서 지난해 8월 67만3000명으로 5년 만에 17만5000명이 증가했다. 파견노동은 법 시행 전에 1.1%에서 같은 기간 각각 1.3%, 3.5%로 늘었다.간접고용의 확대는 공공부문이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의 자료를 보면, 공공부문의 경우 비정규직법 시행 전인 2006년 6만4822명이던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가 지난해 9만9643명으로 3만4821명이 늘었다.3. 비정규직문제의 사회적 파급효과와 삶의 질3.1. 임금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50%정도로 300인 이상 대기업과 100인 미만 중 13% 내외에 불과하다. 유럽 국가의 이동률이 30~40% 수준인 것과 비교된다. 20%의 그들과 비교했을 때 80%의 주변부 노동자는 끊임없이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그렇게 ‘멋진 직장’에 취직해 소위 말하는 ‘성공’을 하고 그에 따른 ‘멋진 소비생활’을 누릴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좌절하고 ‘잉여인간’을 자처한다.3.2. 빈곤의 악순환한국의 제도는 정규 고용, 기업에 장기간 근무할 경우 노동조합 가입이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 노동조합은 사업장의 전체 임금 근로자가 아니라 오직 조합원만을 위해 단체교섭을 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사내 하청 노동자 혹은 다른 임금 근로자를 위해 교섭을 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단체협약적용률이 낮아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을 통해 나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도 한국은 1인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이면 의무 가입해야 하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를 갖고 있다. 고용보험이나 건강보험, 국민연금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00여만 명의 임금 노동자 중 약 400만 명 정도가 세 개 보험 모두에 가입해 있지 않다.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게 나타난다. 그들은 당장 생계 잇기에도 빠듯해 개인적으로 노후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그들의 자녀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자녀들 또한 취업난에 시달리다 비정규직에 저임금을 수용하며 빈곤이 대물림된다.3.3. 삶의 질 저하삶의 질은 사람들의 복지나 행복의 정도를 말한다. 생활 수준과는 달리,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 앞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삶의 질'이라는 개념에는 물질적인 측면(건강, 식사, 고통의 부재 등)과 정신적인 측면(스트레스나 걱정이 없고 즐거움 등)이 있다. 사람마다 어떤 것들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만족을 느끼는지가 다르므로, 특정한 사람의 삶의 질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다.
1. 탑(塔)의 의미와 변천탑은 탑파(塔婆)를 줄인 말로 원래는 범어(梵語 ; Sanskrit)의 'Stupa' 또는 파리어(巴梨語 ; Pali)의 'Thupa'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탑파는 불교가 발생하기 전부터 고대인도에서 '무덤'의 뜻으로, 즉 사람이 죽고 나면 화장(火葬)을 한 후 흙과 돌로 돔(Dome)과 원분(圓墳)을 만든 것을 가리켰다. 이러한 탑파는 불교발생과 더불어 교주인 석가모니가 입멸(入滅, 涅槃)하자 제자들이 그의 유해를 당시의 사회 장속(葬俗)에 따라 다비(茶毘 ; 火葬)하였고, 다비 후 그 유골인 사리(舍利)를 봉안하면서 불교적인 조형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탑파의 의미는 '신골(身骨)을 담고 흙과 돌을 쌓아올린 불신골(佛身骨, 眞身舍利)을 봉안하는 묘(墓)'라는 뜻에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당시 인도에서는 8국이 석가모니의 사리를 서로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제자인 도노나(徒盧那)의 의견에 따라 사리를 똑같이 나누어 각각 탑을 세우니 이를 '분사리(分舍利)' 또는 '사리팔분(舍利八分)'이라 한다. 사리신앙은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이며, 불탑의 기원 역시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백년이 지나서 대인도제국을 건설한 마우리아(Maurya)왕조의 아육왕(阿育王 ; Asoka, 272∼232 B.C.)은 불사리를 봉안한 8개의 탑을 발굴하여 다시 8만 4천으로 나누어 전국에 널리 사리탑을 세우고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따라서 불탑의 성격은 처음에는 불신골을 모신 무덤이었으나 점차 불교의 거룩한 가르침을 뚜렷이 표시함으로써 그 믿음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기 위한 기념물로 바뀌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도의 불탑으로 초기의 것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기원전 3세기경의 산치(sanchi)대탑을 보면, 반구형의 그릇을 뒤집어 놓은 듯한 복발(覆鉢)을 봉분(峯墳)하듯 흙과 돌로 쌓아 올리고, 그 위리 절터등지에서 조사된 탑자링서는 제법규모가 큰 팔각의 목탑이 세워졌던 자취가 확인되었는데, 이탑들은 한결같이 절 안의 한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주변의 동,서,북편에는 법당이 하나씩 배치되는 이른바 1탑 3당식의 배치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상의 사실들을 검토해 보면 고구려의 불탑으로 기록상으로는 토탑이나 석탑이 일부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거대한 8각 다층의 목탑이 주류를 이루면서 조탑술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추정된다.@백제의 특징백제의 조탑기술은 실로 뛰어났음이 국내외의 자료와 유적으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상의 불탑으로 기록되는 신라 황룡사 구층탑도 사실은 백제의 공장 아비지가 신라의 초청으로 백여명의 기술자를 이끌고 가서 완성한 것이며, 일본최고의 탑으로 알려진 호류지의 목탑도 백제의 목탑은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오직 국립부여박물관에 청동으로 제작된 탑신 일부가 전하고 있어 당시의 목탑의 형태를 추정할 뿐이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목탑의 자취 또한 부여와 익산지역에 편중되어 있을 뿐이며 그중에서 대표적인 목탑의 자취는 부여의 군수리 절터와 익산의 미륵사터, 제석사터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백제의 탑에서 현저한 특징으로 주목 되는 것은 7세기이후에 목탑을 석탑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익산의 미륵사지석탑은 낮은 2층 기단위에 석재를 목재와 같이 잘게 나누어 짠 목조건물 모양의 탑신을 올리고 있다. 1층 탑신의 네 면은 밑이 넓고 위가 좁은 기둥들을 각면에 여러개씩 세우고 중심부에는 사방에서 내부로 통하는 통로를 내어 목탑에서의 사방을 출입문을 내는 형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탑신 내부의 중심부에는 탑신을 떠받치는 중심축과 같은 철주가 세워져 있는 것도 목탑의 구조와 흡사하다. 뿐만 아니라 기둥위로 처마를 구성하는 방식이나 넓은판석을 덮어 지붕을 내고 추녀 끝에 네귀에서 살짝 위로 올린 듯 처리한 것도 목탑과 비슷하여 이 탑은 비록 석탑이지만 전체적인 외형은 목탑을 충실이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후로는 신라왕실의 쇠망과 함께 석탑의 규모가 축소되고 결구법식도 일부 생략되며 탑의 장식이 증가되기는 하나 전체적인 조형성이 퇴조를 보인다, 오히려 이 때에는 선종 불교의 등장과 함게 지방의 사찰에서 선승들의 승탑과 탑비 가격도 높게 조형되어 신라시대 석조미술의 또다른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석탑양식의 성립삼국을 통일한 신라왕조에서는 삼국의 문화적 융합이 이루어지며 특히 석탑에 있어서는 신라적인 요소와 백제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이와 같은 시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는 의성탑리 오층석탑을 들 수 있다. 이 탑은 약간 돋아진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는데 기단과 탑신에 별개의 기둥을 배치하고 각 층의 부재들은 여러개의 석재들로 짜맞추고 있다. 초창탑신의 앞면에는 문틀을 내고 감실을 마련하여 내부에 출입할 수 있도록 문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지붕의 형태는 처마 밑과 윗 쪽의 경사면을 층단형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기본적으로 목탑을 본뜬 백제식의 석탑을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지붕의 형태는 분황사 모전석탑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백제탑과 신라탑의 절충형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그런데 같은 시대의 석탑인 경주 부근동해변은 감은사지삼층석탑이나 국립경주박물관의 고선사지삼층석탑에서는 기단이 2층으로 높아지고 탑신부의 지붕돌 윗면은 밋밋한 빗면을 처리하면서 처마 끝이 네 귀에서 살짝 들리는 등 진전된 형식을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신문왕 2년 (682)에 낙성된 사찰이므로 탑의 건립 또한 이때로 추정되는데 2층 기단은 여려 개의 기둥돌과 벽판석으로 짜맞추어 잘 정비되어 있다. 탑신은 네 개의 기둥돌과 네 개의 벽판석으로 짜여지고 지붕돌은 여뎗 개의 몸돌과 네 개의 받침돌로 구성 되었는데 처마 밑의 충단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은 경주의 고선사지 삼층석탑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어 두 탑에서는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 완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리하여 7세기 후반에 이미 전형을 이루기 시작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은 8세기 초의 하고,전체적인 조화가 아름다워 신라 석조미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전남 구례의 화엄 사 사 사자 삼층석탑은 상층기단을 네 마리의 돌사자와 가운데 공양상을 배치하고 갑석을 얹은 다음 삼층의 탑신을 받고 있으며, 경주 부근의 정혜사지 삼층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초층탑신을 목탑처럼 기둥돌과 벽면석으로 거대하게 조립하고 2층부터는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마치 12층의 지붕돌만 포개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석굴암 앞의 삼층석탑과 강원도 철원의 도피안사 삼층석탑은 탑신이 사각형이데 반하여 기단은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도피안사 서탑은 단층의 기단에 위 아래로 연꽃무늬를 두르고 있어 마치 불상의 연꽃대좌를 연상케 한다. 전라북도 남원실상사백자암삼층석탑은 단층기단 위의 탑신 전체에 난간, 신중, 주악천인상들이 조각되어 있고 경주 남산동동삼층석탑,경주 서악동삼층석탑 등은 기단과 탑신에 기둥을 새기지 않고 지붕도 위 아래 모두 층단을 내고 있어 형식은 일반형을 따르고 있지만 조형기법은 전탑을 모방하고 있다. 이 밖에 경남 양산의 통도사금강계단은 우리나라 석종형사리탑의 대표적 유적으로 최초의 건립은 선덕여왕 때부터이며 고려시대와 조신시대까지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이와 같이 탑신 전체 또는 이루를 변형시켜 새로운 형태를 보이는 석탑이 조성되는 배경에는 불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탑을 신앙적인 차원에서 더욱 엄숙하게 장식하려는 욕구에서 착상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시기적으로 이형석탑이 등장하는 것은 돌을 다루는 기술이 축적되어 능란하게 석탑을 조성할 수 있는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므로 불국사 다보탑이나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등은 8세기 중엽 이후에 들어 바야흐로 석탑조형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한 가운데 이룩된 것이라고 하겠다.@전 탑전탑이란 벽돌을 구어 층층히 쌓아올린 탑으로 우리나라 전탑의 시조는 비록 전탑은 아니지만 신라 선덕여왕3년(622)에 돌을 벽돌처럼 잘라 축조한 경주 분황사모전석탑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는 탑의 축조에 벽돌을 많이 이용하는 사찰의 조영과 불탑의 건립에 왕공귀족뿐만아니라 토착세력의 참여도 높여져서 고려사회의 새로운 성격이 부각되는 10세기 후반부터는 석탑에서도 새로운 조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첫째로 고려시대에는 석탑이 지방적인 양식을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영남지방에서는 신라식의 석탑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옛 백제지역에서는 백제식의 석탑이 일부 부활되고 있으며 개성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지방에서는 고구려 탑의 전통과 중국불탑의 영향으로 다각 다층석탑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백제계의 고려석탑으로는 전북 익산의왕궁리 오층석탑을 비롯하여 충남 부여의 장하리 삼층석탑과 무량사오층석탑, 충남 서천의 비인오층석탑, 공주의 계룡산남매탑, 전북 김제의 귀신사삼층석탑과 옥구의 죽산리삼층석잡, 전남 강진의 월남사지모전석탑 전남진도의 금골산오층석탑등을 들수 있으며 이러한 탑들은 백제때 세워진 익산미륵사지다층석탑이나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모델로 하고 있다다각다층석탑으로는 강원도 오대산의 월정사팔각구층탑을 비롯하여 평남대동군의 원광사지육각칠층석탑과 율리 사팔각오층석탑, 평안북도 영변의 보현사팔각십삼층석잡, 그리고 평양 영명사와 광명사의 팔각오층석탑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탑들은 한결같이 기단부에 무늬장식을 하고 위아래로 연꽃무늬를 베풀어 기단을 불상대좌와 같은 형태로 꾸미고 있으며 탑신부는 5층 이상을 올려 다각다층의 길쭉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이탑들은 한강 이북 중에서도 평양 부근에 집중 분포하고 있는 것이 지역적인 특색이다.이밖에도 지역적이지만 전남 광주일대, 강원도 춘천 일대 등지에서도 소규모적인 지방양식의 석탑이 조사되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많은 지방양식 석탑의 계보가 찾아질 것이다. 이러한 지방양식의 석탑이 조성되는 배경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신라석탑의 조형이 이미 쇠잔해진 가운데 각 지방의 우수한 석탑의 여파가 시대를 불문하고 지방양식의 모델로서의 영향을 미치거나 토착세력의 부각에 따른 새로운 형식의 고안, 또는 복고풍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