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역사가와 사실1-(1)-① 역사적 사실의 특성19세기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실이란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이라고 믿었고 그리하여 역사상의 사실 자체는 더욱 높은 곳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은혜 깊고 끝없는 진보를 예정하는 최고의 사실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숭배는 문서숭배에 의해 완성되고 정당화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문서는 사실이라는 신정에 있는 신처럼 숭배 받고 있었습니다. 이를 공격하는 역사가들은 고개를 숙이며 문서에 접근했고, 공손한 어조로 문서에 대해 말했습니다. 문서에 있으면 뭐든 사실로 믿고 따랐습니다.1-(1)-② 역사의 기록 방식생선가게의 좌판 위에 놓여 있는 생선을 손에 넣듯이 역사가들은 사실을 문서나 비문들에서 입수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는 사실을 모아서 집으로 들고 와 조리해서 자기 구미에 맞게 요리를 한 다음 식탁에 내놓습니다. 19세기 역사가들은 간소한 요리를 만드는 취미가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조리만 한 채 거의 그대로 내놓기를 좋아했습니다. 즉 역사는 확증된 사실이 집적되어 이루어집니다.1-(1)-③ 역사의 의미역사란 반발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최대한 편찬하는 것입니다.1-(2) 이런 역사가들이 역사와 관련하여 가정했던 것을 설명그래드그라인드의 “내가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사실 뿐”랑케의 역사가의 임무란 “사실을 원래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데 있다”조지 클라크 경의 역사는 ‘사실이라는 단단한 핵’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이론의 여지가 많은 해석이라는 과일의 살’고 같다는 과일 대비 등이것들은 어찌 보면 “역사는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과거의 사실이다”라는 이 말은 19세기 역사가들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약 3세기 동안에 걸쳐 독일. 영국. 프랑스 등 각국의 모든 역사가들이 “사실을 원래 있었던 그대로”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이는 19세기의 모든 것에 만족스러워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보이지 않는실로 믿고 따랐습니다.1-(3) 그들의 역사관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영화 는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그 똑같은 장면(낮 12시~12시 23분)을 8명의 관점에서 반복하여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렇듯 실제로 일어난 사건 한가지에대해 모든 사람들이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기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역사가들은 누군가의 관점이 서려있는 문서를 신처럼 숭배했고 그런 문서를 통해 얻은 사실이 역사라는 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들은 플라톤 철학에서 언급되는 영원불변하고 단일한 세계인 “이데아”를 파악 할 수 있는 영혼의 눈을 가졌든지 문서 편집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19세기 역사가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만약 제가 역사가의 입장이라면 역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답답한 심정일 것 같습니다. 저는 마음 같아서는 타임캡슐을 타고 그 시대로 날아가 생생한 역사를 객관적으로 쓰고 싶은데 그 시대에 살아보지도 않았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 시대상을 알려주는 문서 밖에 없지.... 어쩌면 누군가의 관점으로라도 쓰인 과거 문서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역사가 허무맹랑한 소설이 아니라 객관성이 확보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2-(1)-① 역사적 사실의 특성1916년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가 “역사상의 사실이란 역사가가 이를 창조하기까지는 어떤 역사가에게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역사적 사실이란 역사가들이 그것을 찾았을 때만 살아 있습니다. 어떤 사실로, 어떤 순서로, 어떤 맥락에서 발언하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역사가입니다. 1066년에 해스팅스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역사가들이 그것을 역사적 대사건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서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수백만의 다른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어떤 문서라 할지라도 그 문서를 작성한 필자가 생각한 것 이상을 우리에게 말해줄 수는 없습니다. 필자가 일어났었다으로 처리되었을 때 비로소 역사가가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2-(1)-② 역사의 기록 방식역사가의 마음속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지하면서 행해집니다. 그러나 이 재구성 자체는 경험적 과정이 아니며, 사실의 단순한 열거로써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재구성의 과정이 사실의 선택과 해석을 지배하는 것입니다.만일 콜링우드의 말처럼 역사가가 자기 극중 인물의 마음속의 움직임을 사상 속에서 재연하는 것이라면 그 다음 차례로 독자는 독자 나름대로 역사가 마음속의 움직임을 재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역사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콜링우드가 말한 두 번째 점은 더 잘 알려진 사실로서 역사가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 사람이 행한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점은 현재의 시각을 통해서 보지 않으면 우리가 과거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과거를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가는 자기 시대에 속한 사람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데 필요한 여러 조건에 의하여 자기시대에 속박당하게 마련입니다. 역사가가 사용하는 말 그 자체 - 민주주의, 제국, 전쟁, 혁명과 같은 말 -가 그 시대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이러한 데서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역대 프랑스 역사가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큰 역할을 했던 파리의 군중들을 여러 이름 -레 상퀼로트, 르 푀플, 라 카나이유, 레 브라뉴 -을 사용해서 불러왔습니다만, 이 이름에 약속된 의미를 살펴보면 이들은 정치적인 연고가 있거나 특별한 해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선택할 의무가 있습니다. 용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중립이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2-(1)-③ 역사의 의미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2-(2)이런 역사가들이 역사와 관련하여 가정했던 것을 설명크로체는 “모든 역사가 현대사”라고 선언칼 베커의 “역사상의 사실이란 역사가가 이를 창조하사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 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 합니다. 심지어 오크셔트 교수의 “역사는 역사가의 경험이다. 그것은 역사가만이 만든 것으로, 역사를 쓰는 것은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2-(3) 그들의 역사관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1980년 5월 18일 우리나라 광주에서 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해석하는 시대와 주체의 차이가 ‘광주사태’, ‘광주민중항쟁’, ‘광주민중봉기’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 역사가가 용어를 선택하는 것조차 중립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렇듯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가의 주관이 작용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사실이라는 것은 문서에 기재되어 있건 없건 간에 역사가의 손으로 처리되었을 때 비로소 역사가가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던 것은 소설가와 역사가를 혼동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하물며 소설가도 한 소설을 쓰기 위해 배경지식차원에서 정보를 수집하는데 과거의 사실에 대해 가장 객관성을 확보 할 수 있는 문서를 무시하는 처사는 역사가의 주관 차원을 넘어서 역사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공상소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역사가는 과거 사건을 연구하면서도 이 사건이 현재 우리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뭔지를 찾으려고 합니다. 즉, 과거사건을 통해 오늘날의 문제를 푸는 열쇠로서 역사를 바라봅니다. 이것은 실용적인 사실관에 빠져, 정확한 해석의 기준이 현재의 어떤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으로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가설이 서게 되면 역사상의 사실은 아무것도 없게 되고 해석이 전부가 되고 말 것입니다.3-(1)-① 역사적 사실의 특성인간은 모두가 환경 속에 말려들어 가지 않고, 또 무조건 환경에 따르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절대적인 지배자도 아닙니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주제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역사가는 사실에 대한 미천한 노예도 니다.3-(1)-② 역사의 기록 방식E.H. carr은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조금 읽자마자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쓰기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쓴다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어느 곳을 쓰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읽는 것에 따라서 첨가해서 쓰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하며, 쓴 것을 고치기도 하고 빼버리기도 합니다. 또 읽은 것은 쓰는 것에 따라 방향이 주어집니다. 쓰면 쓸수록 carr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것을 한층 더 명확히 알게 되어 자신이 나타나고자 하는 의미와 중요성을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이 두 과정을 떼어 놓으려고 하거나 하나를 다른 것보다 우위에 놓으려고 한다면, 그 두 개의 모순 중에서 어느 한 모순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의미도 중요성도 없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선전문이나 역사소설 같은 것을 쓰게 되어,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어떤 종류의 문서를 장식하는 데 단지 과거의 사실을 이용하든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잠정적으로 사실 선택과 그러한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서 해석이나 사실의 선택 및 정리는 다 같이 쌍방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미묘하게, 어쩌면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겪게 됩니다.3-(1)-③ 역사의 의미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겠습니다.3-(2) 앞의 2가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칼의 역사관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설명20세기 중엽에 들어선 현 시점에서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의무를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역사가의 의무란 그 사실이 정확한가를 확인해야 하는 의무에만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가는 자기가 연구하는 주제나 기획하고 있는 해석에 어떤 의미에서든 관계가 있는 일체의 사실을 그려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규.
리포트1. 근대 유럽의 역사는“자유를 위한 투쟁”, “자유의 진보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때 자유는 어떤 의미인가?자유에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있습니다. ‘소극적 자유’란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서 국가로부터 제한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쉬고 싶은데 국가에서 강제로 연행해서 어딘가로 보내버린다면 그것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그러한 침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소극적 자유입니다. 반면 ‘적극적 자유’는 국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기관을 형성하는데 있어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참정권이 있습니다. 이는 직접 행사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적극적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근대 유럽의 역사는 사람들을 구속해 온 정치적, 경제적 및 정신적인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 ‘소극적 자유’입니다. 이는 구체적 현실로 경제적 자유주의, 정치적 민주주의, 종교적 자율, 그리고 각 개인의 삶에서의 개인주의 등의 원리로 표현되었습니다.2. 프롬이 볼 때, 인간의 성격구조 또는 본성 중에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부분(심리상태)는 무엇인지를 설명하시오.인간의 성격구조 또는 본성 중에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은 ‘자기보존을 위한 욕구’와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고독을 피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우선 ‘자기보존을 위한 욕구’는 인간성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절대적으로 만족을 취해야 하는 욕구가 입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굶주림, 갈증, 수면욕과 같은 인간의 생리적 조직에 뿌리를 둔 욕구입니다. 이들 각각의 욕구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를 넘을 때는 그 욕구를 만족시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며, 이때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성향은 전력 추구의 강력한 충동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자기보존의 욕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을 얻어야만 하는 인간성의 한 부분이며, 이는 인간 행동의 제 1차적인 동기를 형성합니다. 인간이란 먹고, 마시고, 잠을 그러나 일이란 결코 일반적인 것도 아니고, 추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일이란 언제나 구체적인 것으로, 특정한 경제조직에서 특정한 일입니다. 노예, 농부, 상인, 백화점의 여점원, 노동자 등과 같이 서로 다른 종류의 일은 전혀 다른 성격적 특성을 요구하며, 또한 이로써 타인과의 관계도 각각 달라집니다. 따라서 경제 제도의 특성에 의해 한 개인에게 정해진 삶의 양식이 그의 성격구조 전체를 결정하는 제 1차적인 요소가 됩니다.‘외부세계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고독을 피하는 욕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된 ‘육체적 고독’과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극도의 고립감에 억압당할 수 있는 ‘정신적 고독’이 있습니다. 개인은 여러 해 동안 육체적으로 고립되어 지낼 수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 사회의 사상, 가치, 적어도 ‘소속’감을 부여하는 사회적 행동양식과 관련성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반면 ‘정신적 고독’이 일정 한계가 넘어설 경우 정신분열적 불안으로 대표되는 정신 이상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는 고귀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지만 비록 가장 낮은 수준의 양식으로라도 관계를 맺는 일이 홀로 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부당하고 비천한 소성의 관습 또는 그런 신념과 마찬가지로 종교와 민족주의조차도 그것이 각 개인을 다른 사람들과 이어주기만 한다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즉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됩니다.3. 사람들은 자유가 주어지면, 오히려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다른 것(사람, 권위, 제도, 법률 등)에 복종하려는 경향을 나타내는데, 그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시오!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구분되는 별개의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 개체화입니다. 한 개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생물학적인 분리가 시작되지만 상당 기간동안 기능적으로는 여전히 그의 어머니와 일체를 이룬 채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동안 자유는 없지만 그에게 안정감과 소속감, 어디인가에 뿌리를 내차적 관계’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를 그의 어머니와, 원시 공동체의 구성원을 그 씨족과 자연에, 또는 중세의 인간을 교회와 그의 사회적 계급에 연결짓는 것은 모두 일차적 관계입니다. 그가 점차 성장하여 그런 관계를 벗어나 개체화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변증법적인 성질이 나타납니다. 우선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더욱 강해집니다. 각각 영역에서는 강렬성과 적극성이 증진되며, 그와 동시에 이들 영역은 점점 종합되어 갑니다. 개인적인 의지와 이성에 의해 유도되는 하나의 조직화된 구조가 발달합니다. 만일 이와 같이 조직화되고 통합된 성격 전체를 자아라고 한다면 ‘개체화의 점진적 진전 과정의 한 면은 자아의 힘의 상장‘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은 ‘고독의 증대’입니다. 그는 외부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자기는 고독하다는 것,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실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개인적인 존재와 비교해 본다면 압도적으로 강력하고 위협적인 외부 세계로부터의 이러한 분리는 무력감과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인간은 개인이 되면서부터 홀로 위험하고 압도적인 모든 측면에서 외부 세계와 마주서게 됩니다. 자신의 개체성을 포기하고 완전히 외부 세계에 몰입되었을 때 고독감과 무력감을 이겨내고자 하는 충동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충동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새로운 관계들은 성장 과정에서 끊어져버린 일차적 관계들과는 같지 않습니다.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난 어린아이가 육체적으로 다시 모태 안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정신적으로도 개체화 과정을 역행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굳이 그렇게 하려고 하면 그때는 필연적으로 복종이 나타나게 됩니다. 복종함으로 해서 그는 의식적으로 안전하고 만족스럽게 느끼고 있을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치르는 대가가 자신의 자아의 힘과 완전함에 대해 포기하게 됩니다.4.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하시오.저는 옷을 사는 것을 좋아해서 저희 집의 수납장에 옷이 가득변사람들이 그런 옷을 입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노래 부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쩌다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게 되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매번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엠피쓰리에 최신 곡을 담아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만의 옷 스타일을 가질 수 있는 자유, 제가 좋아하는 노래만 부를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대중화 현상 속에서 유행에 민감하고, 될 수 있는 한 남들처럼 살려고 합니다. 즉, 또래 집단, 친구집단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의 영향에 따라 행동하는 타인지향형입니다. 이것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현대인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대중화된 사회로 대중은 과거의 일방적인 지위에서 벗어나, 생산의 주체로서, 또 소비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지위의 향상 뿐 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보통 선거의 실시와 같은 정치 제도의 개혁을 통해서 주권자로서 국가 사회의 중심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또 근로, 교육, 후생 등 생활권을 보장받음으로써 사회적 지위도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량생산, 도시화, 획일화, 규격화 등으로 말미암아 지역의 특수성이 사라져 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개성을 잃고 획일적인 것에 익숙해지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의식주가 평준화되고 사람들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됩니다.제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보면 피곤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 제가 만약 버티고 앉아 자는 척을 하거나 모르는 척을 한다면 주변사람들이 ‘노인 공경 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제가 제 신체도 편히 쉬게 할 자유조차 없이 관습적인 규율에 맞게 행동하게 되었습니다.5. 개인화의 과정에서 발생되는 고독, 불안(허전함), 무력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식이 무엇인가를 간략히 설명하고, 오늘날 우리 자신의 생활모습에서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일상적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하편으로는 이러한 개체화 증가로 말미암아 고립감과 불안이 증진하며, 그로 인해 커가는 이 세계에서의 자기의 역할과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 그와 함께 개인으로서의 인간 자신의 증가하는 무력감과 허무감이 쌓이기도 합니다. 모든 일차적 관계는 일단 단절되는 날이면 다시는 복원시킬 수 없습니다. 개체화된 인간의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가능하고 생산적인 해결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차적 관계에 의하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그를 다시 외부 세상과 연결해 주는, 모든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결속과 자발적인 활동, 곧 사랑과 일입니다.제가 유화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화랑’이라는 그림동아리에 들어 사람들과 함께 그림도 그리고, 전시회도 개최하고, 유명한 전시회장도 가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사랑과 동정, 그리고 책임감과 관심에 입각한 삶을 살 경우 그는 자신의 인격과 정체성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에게 속하는 재산이나 지위, 권력, 가족,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확보하고자 할 경우 자신의 정체성과 인격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라는 주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의식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 사물을 사랑하고 그것들에 책임을 지며 능동적으로 관심을 갖고 살 경우에만 가능합니다.그리고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항거하는 전국적 촛불시위는 자발적인 활동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투표하는 기계가 아니라 항상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있고 그들의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선거를 통해 뽑은 사람들을 통해 또 다시 비합리적으로 억압당하기보다 그들에게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이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이 마땅히 자신이 누려야할 자유와 권리를 저버리고 정치 권력의 행동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권력은 선전, 조작을 통해 교묘하게 개인을 억압하는 기제를 계속 만들어 낼 것이고 국민의 요구에 부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제 2장 사회와 개인E.H. Carr의 제 2장 “사회와 개인 - 역사가의 연구대상은 개인의 행위인가 사회적 힘의 작용인가?”를 읽고 아래의 문제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것을 정리하시오.1. 다음은 의 입장이다. 아래의 문제에 대해 각각 설명하시오.(1) 역사가의 연구 대상1) Thomas Carlyle“역사란 위인들의 전기”2,500만의 사람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던 굶주림, 추위, 당연시되는 고통, 이것이야말로-철학을 즐기는 변호사나 돈 많은 상점 주인이나 지방 귀족들의 허영심이나 대립하려는 철학보다도-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었다. 이것은 어떤 국가의 모든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백만이 라는 것은 수백만의 개인이라는 것이며, 거기에는 비개인적인 요소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논의할 때에는 종종 익명성과 비인간성이 혼동되게 됩니다.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로 해서 사람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개인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이름도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이야말로, 많든 적든 간에 무의식적으로 협력해서 하나의 사회적인 힘을 형성하는 개인인 것입니다. 평범한 상황에서라면 불만을 품은 한 농부나 한 촌락에 관한 일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천 개 촌락의 수백만의 농부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면 이는 어떤 역사가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2) C.V. Wdegewood“내게는 개인으로서의 인간 행위가 계급으로서의 행위보다 흥미가 있다. 어느 쪽을 기초로 하더라도 역사는 쓸 수 있는 것이고, 어느 쪽이라도 사람들을 오해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본서는...사람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지, 또 그들 자신의 기분에서 볼 때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이것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데 있다.”예를 들어 로우즈 박사가 말했듯이, 엘리자베스 체제가 붕괴 된 것은 제임스 1세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17세기의 영국혁명은 스튜어트 왕조 초기의 두 국왕이 우둔했기 때문에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임스 닐은 로우즈 박사에 비하면 훨씬 더 엄격한 역사가입니다만, 그도 튜더 왕조의 성격을 설명하기보다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찬미하는 데 열심이었던 경우라고 보입니다.개인으로서의 인간 행위는 집단이나 계급의 일원으로서의 그들의 행위와는 별개의 것이며 역사가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그 한쪽만을 골라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는 그들 행동의 의식적인 동기를 연구한다는 것입니다.3) I. Berlin몇 년 전에 이라는 제목의 재치 있으면서도 평이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 그는 엘리어트의 작품에서 “거대한 비인간적 힘”이라는 말을 인용해서, 이를 바탕으로 전권을 통해 역사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요인은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비인간적인 힘”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였습니다. 카가 인용한 “존 왕은 포악한 군주”-역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의 성격과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견해-라고 일컬어지는 인식은 오랜 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역사의 창조력을 개인적인 천재성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 단계의 특징입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과거의 이러한 업적을 올리는 데 공헌한 종주격인 인물들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를 좋아했습니다.4) A.J. Taylor“현대의 유럽사는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레닌의 3대 거인을 통해서 쓸 수 있다”(2)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연구방법”을 간략히 요약하시오.개인으로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는 그들 행동의 의식적인 동기를 연구한다는 것입니다.(3) 그들이 역사를 그렇게 연구하도록 만들었던 관점, 즉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사회와 개인의 관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가?)과 “사회를 이해하는 관점”(사회와 개인의 관계에서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시오!개인으로서의 인간 행위는 집단이나 계급의 일원으로서의 그들의 행위와는 별개의 것으로개인주의자인 밀은 “많은 인간을 함께 모아 놓는다 해도 다른 종류의 개체로 변하지 않는다.”고 피력하였습니다. 이렇듯이 사회를 개인의 집합체로 보고 정치가 소수의 유명한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았고 ‘사회혁명’은 어떤 새로운 사회집단을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언제라도 개인을 통해서, 또 개인의 발견에 신선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룩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초기단계에 있어서도 생산과 분배의 단위가 일반적으로 한 개인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질서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창의적 능력에 의존해야 했습니다.2. 다음은 의 입장이다. 아래의 문제에 대해 각각 설명하시오(1) 역사가의 연구대상1) A. Smith개개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할지라도, 개인을 ‘보이지 않는 손’이 을 위해 일하게 하고 그 목적을 위해 이바지하게 한다는 뜻입니다.2) G.W.F. Hegel‘이성의 간계’라는 것도 비록 개개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할지라도 개인을 ‘이성’을 위해 일하게 하고 그 목적을 위해 이바지하게 한다는 뜻입니다.3) H. Butterfield“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역사의 진행을 바꾸어 놓는 성질이 있다”(2)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연구 방법”을 간략히 요약하시오.과거에 대한 역사가들의 전망이 현재의 문제에 대한 통찰에 기초하여 조명하는 것(3) 그들이 역사를 그렇게 연구하도록 만들었던 관점, 즉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사회와 개인의 관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가?)과 “사회를 이해하는 관점”(사회와 개인의 관계에서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시오사회를 떠나 개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즉, 우리들이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하여, 우리들을 단순한 생물적인 개체로부터 사회적 통일체로 변화시키게 합니다. 역사 시대건 역사 이전 시대건 어떤 계층의 인간도 하나의 사회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태어난 직후부터 이 사회에 의해서 인간의 참모습을 형성해가게 됩니다. 따라서 그가 사용하는 언어도 개인적으로 상속된 것이 아니라 그가 자라나는 집단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획득물입니다. 언어와 환경은 인간 정신의 성격을 결정해 주는 작용을 합니다. 어린 시절 갖게 되는 관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로부터 벗어난 인간이 언어나 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사실로서 인정되고 있습니다.3. 를 보는 카아의 입장이다. 아래의 문제에 대해 각각 설명하시오(1) E.H. Carr는 “역사가의 연구대상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지를 정리하시오.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을 극복하는 자기가 그러한 조건 속에 얼마나 깊이 관련되고 잇는가를 인식해야 하는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 하십시오” 지금은 이에 덧붙여서 “역사가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 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 및 사회의 산물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두 가지 의미에서 역사가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2) 카아가 취하는 “역사의 연구방법”이 지닌 특징을 간략히 요약하시오.역사가는 하나의 개인입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많은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고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격으로 그들은 역사적인 과거의 사실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역사과정을 ‘진행하는 행렬’이라고 말합니다. 역사가도 이러한 행렬의 한 편에 끼어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보잘것없는 인물밖에는 안 됩니다. 더구나 행렬이 구부러지거나, 우측 혹은 좌측으로 돌며, 때로는 거꾸로 되돌아오고 함에 따라, 행렬 각 부분의 상대적인 위치가 잘리게 되어 변하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역사가의 시각은 역사의 일부분만을 보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즉 그가 참여하고 있는 행렬의 지점이 과거에 대한 그의 시각을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역사가는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로 그 입장 자체가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입니다.그리고 인간의 행위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개인적인 인간의 행위는 행위자 자신은 물론 다른 어떤 개인도 의도하지 않거나 요구하지도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수가 있다고 일치된 견해를 표명해 왔습니다. 행위자가 왜 “자기들 기분에 따라 이런 행동을 했는가”를 토대로 해서 역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체의 사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사실은 여러 개인에 관한 사실임에는 틀림없지만, 고립된 개인의 행동에 관한 사실이 아니라면, 모든 개인들이 자기 행동의 동기였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한 사실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모든 개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또한 개인행위로부터 점차 행위자 자신이 의도하고 있던 결과와는 다른, 아니 때로는 반대의 결과까지 초래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힘에 관한 사실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완전히 인식하고 있는 동기, 자신이 인정한 동기에 의해선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동기나 본인이 인정하지 않은 동기에 의한 통찰을 배제하는 것은, 일부러 한쪽 눈을 감고 일을 시작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즉, 역사가의 연구가 자기의 연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정확히 반영해 낼 것인가에 있습니다.
학습 단계 및 과정교수-학습 과정시간자료 및 유의점인지갈등유발*실험 11. 두 개의 얼음을 준비하여 하나는 솜으로 감싸고 하나는 그냥 둔다2. 얼음이 녹는 속도를 비교한다.(수업 시간 내에 결과를 빨리 보기위하여 20cm거리에 촛불을 각각 얼음 옆에 둔다)R2 "와!! 솜으로 감싼 얼음이 그대로 둔 얼음보다 덜 녹았네~“C1 "겨울철에 옷을 두껍게 입으면 체온이 올라가는데.. R1감싼 얼음이 더 녹아야 하는데 왜 그렇지?“10‘*교사는 미리 수업 시작하기 전에 실험을 준비해 놓는다.개념 도입*개념설명열은 따뜻한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이동하는데 그 이동을 막기 때문에 물체가 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솜으로 얼음을 감쌌을 때 얼음은 솜에 의해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솜이 열의 이동을 막음으로써 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옷을 따뜻하게 입는 것도 사람의 체온, 즉 열이 공기 중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따뜻함을 느끼는 것이다.C2 "아~ 솜은 열의 이동을 막아주는 물질이구나~“10‘인지갈등*실험 21. 두 개의 얼음을 준비하여 하나는 솜으로 감싸고 하나는 천으로 감싼다.2. 얼음이 녹는 속도를 비교한다.R3 "어? 솜으로 감싼 얼음이 천으로 감싼 얼음보 다 덜 녹았네~“C2 "둘 다 열의 이동을 막아 제 온도를 유지할텐데 왜R2천으로 감싼 얼음이 더 빨리 녹았을까?“5'*첫 번째 실험을 할 때 함께 시작 해 가만히 두었다가 두 번째 인지갈등을 일으킬 때 보여준다.개념 도입*개념 설명공기는 열전도율이 매우 낮아 열을 얻지도 뺏기지도 않기 때문에 물체가 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솜과 천은 모두 열의 이동을 막았지만 솜이 천보다 공기를 많이 포함하므로 솜으로 감싼 얼음이 제 온도를 더 잘 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추운겨울에 구멍이 난 스웨터를 입는 것이다.
교육복지 소외지역인 농산어촌 초등학생들의학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20060292 미술교육과 임진옥Ⅰ. 서론Ⅱ. 교육복지 소외지역의 초등학생들의 학습실태Ⅲ. 교육복지 소외지역 초등학생들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Ⅰ. 서론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출신으로 유년시절 비교적 교육복지 소외지역에서 자랐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진주로 유학가기 전까지 교육 문화적 혜택을 잘 받지 못했다. 심지어 초등학생 때 에스컬레이터, 지하철이 뭔지 몰랐고 함양읍 내에 영화관이 없어서 차를 타고 1시간이상 진주로 나기지 않는 이상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기회도 없었다. 이런 교육 문화적 빈곤 때문에 부모님께서 나를 진주로 유학 보내셨나 보다.농산어촌 지역의 교육 문화적 빈곤은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이농의 결과이며 농산어촌 지역의 열악한 교육 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농산어촌을 떠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농산어촌 교육문제가 산업 경제적 상황에 종속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산업경제는 고도화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이에 따라 농산어촌의 산업 경제도 악화될 것이므로 사람들은 농산어촌 교육 또한 악화될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악화되는 농산어촌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효율적이고 헛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까지의 농어촌 교육은 통폐합 정책이었다. 1982년부터 2001년까지 전국에서 2922개의 학교가 폐교되었는데 이는 현재 초?중?고등학교 숫자의 1/3에 달한다. 이중 대부분이 농산어촌 학교라 할 때 농산어촌의 많은 학교가 사라진 셈이다. 농산어촌에 사는 많은 주민들은 이런 통폐합정책을 보면서 자녀교육을 위해 이농을 결심하게 되고 이는 도시지역의 과밀, 과대 학교를 증가시켜 그 지역의 교육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또 다른 문제점을 낳는다.국가의 공적 실패를 보상하는 정책적 차원에서, 그리고 수입개방으로 인한 농업기반의 파괴로 농어촌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현시대에, 교육복지 소외지역에 놓인 학생 수가 적을 경우 반에서 꼴등을 해도 9등이 되는 등 학생들 간의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아 학습의욕이 저하된다.학교가 소규모화 됨에 따라 복식학급과 분교 등 교육적 소외 속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Piaget의 인지발달 이론에 따르면 아동은 현재의 지적 발달단계에 따라 질적으로 다르게 정보를 해석 조작하기 때문에 아동의 각각 발달단계 특성에 맞추어 학급과제를 조직, 해석,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복식수업을 하게 되면 학생들에 해당하는 발달단계가 제각각이 되기 때문에 수업을 학생들의 현재 지적 발달 단계에 알맞도록 조정하기가 힘들어 진다. (ex. Piaget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길이의 서열화는 7~8세쯤에, 무게의 서열화는 9세쯤에, 부피의 서열화는 12세가 되어야 획득된다.) 복식학급편성은 교육적으로 이런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이 보다 학부모의 불안감 유발 정도가 심각하다. 왜냐하면 학부모의 불안감이 이농과 전학으로 이어져 문제가 악순환으로 접어들기 때문이다.현대사회에서 가정의 교육적 기능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도시지역에서는 이에 대해서 왜곡된 형태이기는 하나 사교육이 가정의 교육기능을 대체하고 있지만 농산어촌에서는 사교육 시설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아 이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농산어촌에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 사교육 시설 뿐 만아니라 교육, 문화적 토대도 빈약하여 학생들에게 공부에 대한 자극이 없고, 다양한 경험이 부족하다.농산어촌의 학부모들은 농사, 가사 일에 바쁜 나머지 자녀들에게 학습에 대한 도움을 주기 힘들어 지고 이는 농산어촌 학생들에게 저학년에서부터의 학력저하를 일으킨다.작은 학교에서 적은 교원 수로 인해 공문처리 등 잡무부담이 심각하여 수업준비와 교재연구 시간이 부족하게 되는 등 학생 교육에 전념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농어촌 학교의 환경과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교육과정운영이 문제가 되고 있다. 도시와 같은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써, 교수 교원들의 도시지역 근무선호와 교대 졸업생들의 농산어촌 지역 임용시험 기피로 농산어촌지역 초등교원 부족현상이 발생했다. 2004년에는 교대 졸업생의 농산어촌 지역 임용시험 기피현상으로 6개도가 미달 되었으며, 초등 현직교원의 임용시험 응시자 중 대도시 희망자가 89%를 차지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산어촌은 40대 이상 교원 연령 비율이 높고 도시는 상대적으로 젊은 교원비율이 높아졌다. 40대 이상 교원 중 57.3%가 농산어촌에 근무하고 있으며 49.3%가 도시에서 근무하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젊은 교원들이 수업에 대한 적극성을 좀 더 갖고 있을 것이고 농산어촌에서 근무하는 교원들은 대부분 마지못해 오거나 승진가산점을 획득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양질의 수업을 기대하기는 조금 어렵다.Ⅲ. 교육복지 소외지역 초등학생들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소규모 학교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통학거리 내에 있는 인근 2~3개의 작은 학교를 하나의 학교 군으로 구성, 교육과정 및 시설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2004년 6개 학교 군에서 2009년 86개 학교 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 군 내 학교 간 교통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각 학교마다 소규모 학교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유지하고 학교 군 측면에서는 소규모 학교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군 측면에서는 학생 수가 적은 것이 아니므로 소규모 학교에서 가졌던 사회성형성 결여 문제, 학생 수가 적어서 학생들 간의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문제, 그리고 학생 수가 적어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특기적성교육 문제 등을 학교 군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농산어촌의 지역적 특성과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살려 독자적 운영이 바람직한 학교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09년까지 200개교가 목표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분교와 소규모 학교에 대한 열악한 지원으로 인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권한을 제한하는 제도와 평가제도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복식학급 편성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004년 학년 당 7~10명 이하이면 복식학급을 편성했던 기준에서 편성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하여 2009년에는 학년 당 5명 이하, 2개 학년 10명 이하가 되어야 복식 학급을 편성하는 기준까지 강화하는 게 목표이다. 복식학급 편성기준을 강화함으로써 복식학급의 숫자는 줄일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복식학급 모두를 없앨 수는 없어 복식학급으로 인한 문제는 여전히 어느 몇 몇 학교에는 남아 있을 것이다.농산어촌 지역의 여건을 고려하여 농산어촌 형 수업교재 및 프로그램 개발, 보급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농산어촌에서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의 수업준비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학생들의 학습 효과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농산어촌 학생 및 교사의 영어의사소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를 배치시키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원어민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지역적 한계성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줄 수 있다.농산어촌 학생의 특기적성 교육기회를 확대시키기 위해 문화?예술관련 강사 풀 제 활용 및 순회강사 확보, 교재?교구 등을 통해 방과 후 교육을 활성화 시키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 수가 적다는 이유로 제대로 실행될 수 없었던 특기적성교육이 농산어촌 학생들의 적성과 특기 등을 고려하며 다양하게 실행 될 수 있을 거시다. 이 방법도 괜찮지만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군제도를 통해 학교군내 학교들이 방과 후 특기 적성 교육을 함께 실시함으로써 특기적성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비용적인 면에서 더 나을 듯싶다. 이 문단 처음에 소개된 방법은 학교군 제도를 실행할 수 없는 지역의 학교에 한해서만 적용하는 게 경제적인 면에서 효율적이라 생각한다.농산어촌에 교육 문화적 토대가 빈약하여 문화적 자극을 받을 수 없었던 면 지역이하 초등학생들에게 문화적 자극을 주기 위해 도시문화 체험학습 방학캠프를 운영 지원하고 있다. 수혜인원은 2004년 13,000명에서 2009년 60,000이 목표이고 만 3?4세아 무상교육 수혜인원은 2004년 7,000명에서 2009년 19,000명이 목표이다. 유치원의 경우 환경개선비 등을 지원하여 농산어촌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유아교육 및 보육여건을 개선하고 있다. 발달원리에 따르면 발달의 초기단계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생의 초기단계인 유아기의 발달은 이후의 모든 단계의 성장, 발달을 좌우한다. 즉, 유아기 교육결핍은 초등학교 진학 후 학력 저하로 이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방법들로 인해 조금이나마 농산어촌 초등학생들의 학력저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교육감 추천으로 교대에 신?편입학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렇게 해서 교대에 들어온 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졸업 후 당해 지역의 교원임용시험에 응시하게 하며, 고사 임용 후 일정기간 복무를 의무화 하여 초등교원 확보의 어려움을 완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 제도를 4개도에서 7개도로 확대하고 장학금 지원도 2004년 877명에서 2009년 3,800명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서?벽지 교원에 한해 지원하는 도서?벽지 근무수당(월 3~6만원)과는 별도로 2개 이상 학교를 순회하면서 수업하는 교사에게 순회교사수당을 지급하고 2개 이상 학년을 1학급으로 편성하여 수업하는 교사에게 복식수업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순회교사에게 지급하는 순회교사수당은 특히 학교군 제도를 활성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도서?벽지 등 오지학교 교직원들의 사택을 확충하고 노후시설을 현대화하고 있다. 이렇게 농산어촌 교원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함으로써 우수교원을 농산어촌으로 유인하고 있다. 특히 교직원들의 사택확충은 교원들이 장거리 통근을 하지 않고 학교근처에 머물 수 있게 해주어 방과 후 학생지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위에 제시된 제도들은 농산어촌에 좀 더 우수한 교원들이 오게끔 하고 그들로 하여금 농어촌 교육에 헌신할 수 있게 하여 농산어촌 학생들이 양질의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