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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류와 한식산업 평가A+최고예요
    < 목 차 >Ⅰ. 일본의 한류 열풍1. 한류 현상의 배경과 원인2. 한류 현상의 사회경제적 효과Ⅱ. 일본 시장에 침투하는 한국 식품1. 일본 시장에 불고 있는 한식 열풍2. 한국 식품이 일본 시장에서 주목 받는 이유Ⅲ.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 한국 식품 기업1. 진로소주2. 종가집 김치Ⅳ. 일본시장에서 한식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Ⅰ. 일본 내의 한류 열풍1. 한류현상의 배경과 원인일본에서 본격적인 한류 열풍은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방영이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겨울연가’나 ‘욘사마’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에는 일본에서의 한류 바람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갖기 힘들다. 그보다는 1990년대 초부터 쌓여온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겨울연가’와 욘사마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분출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또한 일본의 한국 붐은 양국 간의 이해관계와 월드컵의 개최 등의 상황이 이뤄낸 결과라 할 수 있다.(1) 일본내 한국대중문화의 흐름과 월드컵개최의 만남한국 대중문화는 1990년쯤에 서서히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각종 매체의 한국 대중문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서서히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이들은 한국의 드라마, 영화,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1996년에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공동 개최국으로 결정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의 드라마, 영화, 음반 등의 대중문화가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대표적으로 한국 드라마“겨울연가”, 한국가수 “보아”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출처 : 한국영화와한글 , www.seochon.net](2) 국가권력의 이해관계대중문화를 이용해 한일 간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를 무마해 보려는 일본의 움직임과, 한류를 '국력'으로 이용하려는 한국의 움직임이 절묘하게 결합되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한류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대중문화 교류를 통해 한일 상호 이해를 촉진함으로써 양국 간 역사 문제를 하고 있으며 언론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2. 한류현상의 사회 경제적 효과(1) 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겨울연가'가 일본 전역에 한류 열풍을 몰고 오면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SARS와 이라크 전쟁 등으로 부진했던 관광산업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준 것이다. '겨울연가'가 히트한 2004년1~7월 중 일본 관광객은 151만706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38.8% 이상 크게 증가하였다.일본에서 한류가 점차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고, 장기불황에서도 회복되고 있어 관광객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2) 한국어 붐 확산2004년 '겨울연가' 방영 이래 시작된 한류 붐은 곧 '한국어 배우기 붐'으로 확산되었다. NHK에서는 1984년부터 한국어 강좌를 방영하고 있었다. 이 강좌는 2000년대에 들어서 시청자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으며, '겨울연가' 이후로 급증하였다.1994년도의 NHK TV 어학 텍스트 발행 부수 순위(영어제외)를 살펴보면 독일어와 불어, 중국어, 스페인어 순이었으며 한국어는 약 8만 부를 발행하여 이탈리아어와 공동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0년 후인 2004년도의 발행 부수는 큰 순위 변동을 보였다. 2004년 TV한국어 강좌 텍스트는 20만부를 발행하여 1위에 등극했다. 특히, 2004년도 4월에 비해 2005년도 4월에 어학 텍스트 발행 부수가 2배로 증가하여 최근 일고 있는 한류 붐이 한국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 수 있다.(단위: 만부)1994년도2004년도순위언어발행부수순위언어발행부수1독일어141한국어20-181불어142중국어153중국어133이탈리아어124스페인어94독일어115한국어84불어11*출처: 노마 히데키, 나카지마 히토시(2005)- 일본의 한국어 교육(3) 한국에 대한 이미지 제고문화상품은 일반 제조상품에 비해 국가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류 붐이 일어난 이후, 여러 기관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주변국들에 대부감이 줄어든 까닭에 식료품은 물론 ‘삼성’, LG’같은 가전제품, ‘현대자동차’, 미용용품 등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 하였다고 하는 바이어의 의견이 많았다. 또한‘한류의 영향에 따른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라는 답변이 78.9%를 차지했다.이처럼 한류는 영화나 드라마의 시청으로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관광산업으로 발전되고, 관련 상품을 구입하는 등의 경제활동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Ⅱ. 일본 시장에 침투하는 한국 식품1. 일본 시장에 불고 있는 한식 열풍최근 일본에서는 한류 열풍과 더불어 한국 음식 붐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흔히 한국 음식이라고 하면 불고기와 김치 밖에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왔던 과거에 비하면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로 처음 편의점에 진출했다는 한국의 간판 식품인 김치는 이제는 대형백화점과 슈퍼마켓 식품매장 등에서 더 이상 조연이 아닌 주역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더욱이 김치는 일본의 전통식품인 쓰케모노(야채절임)시장이 점차 축소되는 가운데서도 수요가 크게 늘어 지금은 일본 전국의 식탁에 오르는 야채류 반찬 중에서 다쿠앙(단무지)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인의 필수 식품이 됐다. 아직도 다쿠앙을 많이 먹는 시골까지 통계에 넣지 않고 도시만 따지면 사실상 김치가 1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이를 반영하듯 일본 음식점들에서도 작은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신주쿠 고층 빌딩가의 스테이크 전문점에서는 이런 일본인의 변화한 기호에 맞추려는 듯, 김치를 잘게 썰어 담은 통을 식탁에 놓고 손님들이 마음대로 김치를 덜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자연스럽게 김치를 주 반찬으로 접하는 일본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한국 음식의 대표주자인 김치를 비롯하여 한국의 젊은 층에게서도 인기가 많은 닭갈비요리가 일본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특히 많이 몰리는 시부야와 신주쿠 등에 닭갈비 전문점이 생겨 건강과 미용식으로 인식이 일본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앞에서 말했듯이 지난 몇 년간 일본 내에서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단순히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문화에도 일본인들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한류 열풍의 주역이라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누린 드라마 ‘겨울연가’를 비롯하여 ‘대장금’ 등이 잇달아 인기를 끌면서 단순한 호기심 정도에 지나지 않던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한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으로 바뀔 수 있었다.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많은 일본인들의 한국 관광객이 매우 증가하였는데, 이때 맛본 한국 음식의 맛에 일본인들은 계속해서 한국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이다.또한 드라마 ‘대장금’ 이 큰 인기를 끌면서 한국 농산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한국 음식이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특히 미용이나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일본 여성들에게 한국 음식은 그들의 기호와 잘 맞아떨어졌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다이어트에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김치를 비롯하여 닭갈비와 같은 음식들도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매운 맛에 익숙해진 일본인들이 문화적 거부감 없이 손쉽게 한국 요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또한 웰빙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에게 한국 음식들의 효능은 굉장히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맛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건강까지도 챙길 수 있는 한국 음식을 점점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식품 기업들이 택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한국 음식들이 일본에서 성공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음식들은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다시 탄생된 요리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젊은 여성층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닭갈비 요리 같은 경우에도 별로 맵지 않은 순한 맛 등을 개발하여 아직 한국 음식 특유의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까지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이를 비롯하여 다른 많은 음식들이 일본 현지 사정에 맞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적절한 마케팅 전략으로 일본인들의 서 알아보겠다.일본의 인구는 약 1억2천5백만 명으로 한국의 2.8배에 해당하며, 주류시장의 크기도 한국의 약 4배에 해당한다. 또한 일본인의 일인당 주류소비량은 81리터로 우리나라의 일인당 57리터에 비해 많은 편이다. 또한 가장 관심사인 소주시장은 매년 성장 중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진로가 진출하기에 아주 매력적인 시장이었다.한편, 일본시장의 유통구조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폐쇄적인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첫째로 영세한 소매업체 중심의 유통시스템을 보여준다. 일본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소매 업체수가 많으며 이는 유통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두 번째로 다단계 유통경로를 가지고 있다. 제조업체에서 소매점으로 바로 연결되는 제품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개가 도매점을 거친다.이와 같은 시장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 진로소주는 도매상들과의 반영구적 신뢰관계 구축, 중간상들에 대한 충분한 이윤보장, 직판체제 구축 등을 통해 까다로운 일본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이러한 일본의 주류시장을 어떻게 진로가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는지 그 전략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2) 진로의 일본시장 진입1) 제품 이미지 개선 전략일본 현지에서 진로는 소주가 아닌 ‘진로’라는 이미지를 강조함으로써 일반적인 술인 소주나 위스키가 아닌 독창적인 ‘진로’라는 영역을 구축했다.2) 제품의 현지화처음 일본에 시판될 때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춰 당도를 기존제품보다 10분의 1로 낮추고 이 제품이 다른 음료와 섞어 마실 때 많이 애용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담백하고 순수한 맛을 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병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이국적인 느낌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이끌어냄으로서 제품의 현지화에 성공하였다.3) 고가격 고품질 정책국내 제품들이 대부분 선진국에 수출될 때는 가격을 낮춰서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지만, 진로소주는 일반적인 관행과 달리, 일본소주보다 10% 이상 높은 가격을 책정하여 품질로 승부를 걸었다. 일본인들은 가격보다는다.
    경영/경제| 2007.11.19| 13페이지| 1,500원| 조회(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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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어 수동 표현
    수동 표현()1. 정의우리들이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말할 때 행위자 측에서 "누가 무엇을 했다"라고 얘기하는 경우와, 시점을 행위를 당한 쪽으로 이동시켜 피해자의 측에서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수동표현은 후자인 피해자 쪽에 시점을 두고 얘기하는 문법형식이다.2. 수동형 만들기일본어의 수동형은 미연형에 수동접사인 ?~れる/~られる?를 접속시켜 만드는데, 동사의 종류(3가지)에 따라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Aが Bを ~する (A가 B를 하다) :능동Bは(が) Aに(から/によって/で) ~れる/られる (B는 A에게 ~ 당하다/되다/받다)(1) 1그룹 동사 수동형: 동사의 어미를 あ단으로 바꾸고 수동접사 「~れる」를 붙인다.が を こしました。→ は に こされました。엄마가 나를 깨웠습니다. → 나는 엄마에게 깨움 받았습니다. (뜻은 똑같다.)が さんを んだ。→ さんは に ばれた。사장이 김씨를 불렀다. → 김씨는 사장에게 부름 받았다.(2) 2그룹 동사 수동형: 동사의 어미「る」를 없애고 수동접사 「られる」를 붙인다.が を ほめた。→ は に ほめられた。엄마가 아이를 칭찬했다. → 아이는 엄마에게 칭찬 받았다.(3) 3그룹 동사 수동형: する→される る→られるだちが を した。→ は だちに された。친구가 나를 초대했다. → 나는 친구에게 초대 받았다.3. 일본어 수동의 종류일본어 수동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어가 누군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동작과 행동을 당하는 수동은 직접수동이고, 간접수동은 주어가 누군가에 의해 직접적인 동작이나 행위를 당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무엇인가의 영향(대체로 피해)을 입은 것을 나타내는 수동이다. 마지막으로 수동문 주어의 신체부위나 소유물, 소지품 등의 사물이나 관련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위를 받았을 때 쓰는 수동문인 소유자 수동이 있다.(1)직접수동(直接受動)が を る。 → 弟は 兄に ?られた。형이 동생을 때리다 → 동생은 형에게 맞다.が を りました。 → は に られました。선생님이 나를 꾸짖었습니다. → 나는 선생님에게 꾸중 들었습니다.능동문과 수동문은 동작주 중심으로 표현할 것인가, 아니면 피동작주를 중심으로 표현할 것인가 하는 차이점을 무시하면 기본적으로 지적인 의미에 있어서 동일한 내용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한편, ?る? ?す? ?える?와 같이 간접목적어와 직접목적어를 취하는 동사는 수동문에서는 능동문의 간접목적어가 수동문의 주어가 되고, 직접 목적어는 목적어 형태 그대로 수동문에 나타난다.が に を った。 → は に(から) を られた。키무라가 그녀에게 꽃을 선물했다. → 그녀는 키무라에게 꽃을 선물 받았다.하지만, 행하는 동작이 「書く?作る?建てる??明する?する」처럼 뭔가 창조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에서는 많은 경우, 다음경우처럼 행위자를 명시할 때「によって」가 쓰인다.有名な が この ビルを 建てた。→ この ビルは 有名な 建築家によって建てられた。유명한 건축가가 이 빌딩을 세웠다. → 이 빌딩은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세워졌다.(2) 간접수동(間接受動)간접수동이라는 것은 영어나 한국어에는 없는 것으로 주어가 어느 사태, 사건에 피해를 입은 경우가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수동이라고도 부른다. 사용되는 동사는 타동사와 자동사 양쪽으로, 피해를 받는 쪽이 주어인 경우가 많다. 「주어가/는 누군가에게 (주어의 소유물을) ~ 되버리다.」라고 해석 가능하다. 특히 자동사의 간접수동 형태를 の라 부른다.は 子供のときに 死んだ。→ は 子供のときに ?親に 死なれた。부모님은 어릴 때 돌아가셨다.일본어로 는 사실을 단순히 객관적인 사항으로 표현할 때는 능동문을 사용한다. 이에 대해 와 같이 주어가 피해를 입거나 해당 결과가 바람직하지 못한 의미를 나타낼 때 수동문이 쓰인다. 즉, 수동문에서 주어 ?彼?는 ??親が死ぬ(부모님이 돌아가시다)?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와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子供が 泣いた。→ 私は 子供に 泣かれた。아이가 밤중에 울었다.の人が ぐ。→ 私は 隣の人に ?がれる옆 사람이 떠들다.雨が ふりました。 → 私は 雨に ふられました。비를 맞다.(3)소유자 수동 (持ち主の受け身)목적어가 ?소유자+の+소유물?의 구조를 취하고 있는 능동타동사문에서 파생된 수동문을 ?소유자 수동?이라고 한다. 소유자 수동은 동작주의 직접적인 영향의 대상이 소유물고, 주어진 소유자는 동작주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들 수동문도 수적으로는 자동사문의 수동과 마찬가지로 어떤 행위의 결과가 당사자(주어)에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인문/어학| 2007.10.25| 4페이지| 1,000원| 조회(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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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레이시아 외환위기
    1. 서론199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아시아 경제위기는 1979년 제 2차 오일쇼크 이후 세계경제에 가장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및 동남아 국가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도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금융위기의 공식은 무척 간단하다. 적절한 규제 없이 대내적 금융자유화와 대외적 금융개방이 함께 진전되면 금융부문의 취약성이 심화되어 은행위기가 나타나고, 흔히 개방 이후 유입된 외국자본의 유출로 인해 환율폭락 등 외환위기의 형태로도 폭발한다. 그래서 은행 혹은 금융위기와 외환 위기가 흔히 동시에 나타나서 쌍둥이 위기(twin crisis)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Kaminsky and Reinhart, 1999) 물론 이러한 상황은 금융중개 기능의 붕괴와 외채부담 급증, 그리고 이로 인한 심각한 기업 파산과 실업 등 종내에는 전반적인 경제위기로까지 이르게 된다.이러한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두 가지 견해를 내놓았는데, 첫째, 각국의 취약한 경제기반과 금융시스템을 원인으로 꼽는 ‘기초 체력론’과, 둘째, 심리적 요인 탓이라는 ‘심리적 공황론’으로 분류하였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외환위기의 성격이나 요인에 관해서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나 무엇보다도 투자기회를 찾아 세계 금융시장을 옮겨 다니는 단기자본의 예측 불가능의 행태가 주요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말레이시아는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주변국들과는 다른 경제정책을 수행해 자본통제와 고정환율제를 실시하였다. 이 정책은 선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고 이후에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자본통제는 말레이시아가 처한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말레이시아는 한국? 태국과는 달리 외환유동성 문제는 없는 반면에 신용위기만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자본통제 이후에는 금융확대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금리와 통화공급 확대정책의 장애물인 환율안정을 위해 고정환율제를 실시하였다.말레이시아의 경제위기는 부동산 및 주식시장에 있어서 큰 폭락을 초래하였으며 이로 인해 금융기관이 부실문제가 확산되면서 말레이아의 고도성장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던 마하티르 수상의 철학이 크게 작용하였다. 마하티르는 동남아의 경제위기가 서구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국제투지 자본가들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말레이시아는 경제위기를 겪었던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국내 채무문제가 대외 채무문제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주로 대외채무문제를 해결하려는 IMF의 프로그램은 외국인 투자가의 신뢰회복보다는 국내 부채가 많은 기업을 살리기 위해 경기부양이 우선 필요했던 말레이시아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었다. 마지막으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불완전시장의 시정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IMF프로그램이 도입될 경우 인종간의 부, 교육지원, 기타 정부의 지원 등의 재분배 문제가 필연적으로 사회문제화 되어 혼란을 야기할 것을 우려하였던 것으로 보여 진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처음에는 IMF의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긴축정책을 실시하였다. 1997년 9월 대형 국책프로젝트의 추진을 중단하고 12월에는 경제긴급대책을 수립하여 1998년도 예산을 18%나 감축하는 등의 긴축정책을 발표하였다. 재정지출과 통화증가율이 억제되자 시중금리는 5~6%수준에서 11~12% 수준으로 상승하고 기업의 신용경색은 곧 각 부문에서 생산 활동을 저하시켰다. 그 결과 1998년 3월 이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되었고 링깃화의 평가절하와 주가지수의 폭락을 초래하였다.(1) 자본통제와 구조조정자본통제가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이론적인 가능성도 적지 않다. 우선, 효과적인 자본통제는 자본도피를 방지하여 국내에 금융자원을 가두어 투자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외환시장의 통제에 기초한 환율관리가 수출을 증가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개방 이후 위기를 우려해서 외환보유고를 쌓아 두는 비용도 피할 수 있다. 주로 금리가 낮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투자되는 외환보유고로 인한 비용은 심한 경우 GDP의 3%나 된다고 지적된다. 자본통제는 무엇보다도,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확대하여 팽창적 거시정책과 정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환율과 국내물가를 안정시킴으로써 국내투자여건을 개선하고 소비자들의 경제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위축되고 있는 소비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기대하였다. 역외 링깃화의 예금을 국내예금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링깃화의 해외유출을 제한한 것은 역외 링깃자금을 유입시켜 신용경색을 완화시킴으로써 확대금융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말레이시아 정부가 외국인의 자본시장에서의 활동을 통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외국인투자자들이 말레이시아 정부의 경제정책과 경제개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은 증권시장에 유입되어 있던 외자의 이탈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999년 2월 외자유치의 필요성, 자국 내 자본통제완화에 대한 요구 등을 수용, 자본유출세 도입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자본통제 완화책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1999년 2월 15일을 기준으로 이전에 유입된 자금원금에 대해서는 보유기간별로 차등해서 자본 유출세를 적용하고 이후에 유입되는 자금에 대해서는 이윤에만 자본이득세를 적용키로 하였다.1) 금융부문말레이시아 금융기관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전한 상태이나 경기침체에 따라 부실채권이 확대되어 왔으며 그 결과 부실화를 우려한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통화량 확대에도 불구하고 기업에 대한 대출을 기피해 신용경색이 발생하였다. 말레이시아는 동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이후 경제개혁의 일환으로써 금융기관의 건전성 강화 이를 위한 부실채권 처리 등을 중심으로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하였다.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1998년 중반기 이후 경제정책기조를 긴축에서 경기부양으로 전환하면서 199년 상반기까지 금융부문에 대한 개혁을 늦추었으며 그 추진방향도 다소 변화시켰다.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여 건전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신용경색으로 위기에 직면한 기업에 대한 대출을 확대하도록 촉구하고 부실금융기관에 대해 정부가 공적자금을 제공하는 등 일반적인 금융개혁과는 보전을 위해 국영기업을 민영화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경제정책기조를 경기 부양 쪽으로 전환하고서부터는 공기업의 민영화보다는 국영기업을 이용하여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추진하는 등 원래개혁의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또한 말레이시아 정부 현재 누적되고 있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처리와 국내 대기업들에 대한 구제금융 그리고 경기부양책을 위해서는 최소한 600억 링깃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중 상당액을 정부관할하에 있는 국영기업 등을 통해 조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조치는 경제개혁에 역행하는 것으로 말레이시아에 대한 대외신용도를 크게 떨어뜨릴 것으로 보이나 이러한 움직임은 마하티르 총리가 기존부터 가지고 있단 국수주의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으로써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외환위기 이후 경기침체로 파산기업의 수가 확대됨에 따라 말레이시아 정부는 파산상태에 직면한 기업 중 생존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대해 회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중앙은행 내에 민간채무 구조조정위원회를 설치, 기업들의 채무구조조정을 지원하고 있다. 동 위원회는 법정관리를 신청해야만 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채권자들과의 채무조정을 유도하고 있으며 채권자인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채무자들에게 재무상태를 건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3) 경상수지 안정화1997년 10월 말레이시아 정부는 외환위기가 시작되자 경상수지 적자축소를 위해 설비장치와 자동차 등에 대한 수입관세를 인하하는 한편 수출절차의 대폭적인 간소화 및 수출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였다. 또한 1997년 12월에는 긴급경제대책을 통해 비행기, 선박 등 고가품목의 수입을 연기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더불어 수출증대와 경기부양을 위해 각종 세금감면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는데, 말레이시아인 소우기업의 수출 증가분에 대해 70%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현지에서 생산된 냉장고와 텔레비전, 그리고 에어컨에 대한 당시 6~10%의 소비세를 면제키로 하였다. 아울러 말레이시아 정부는 1999년에 트 뱅크가 12.3%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이 파이낸스 회사로 8.6%, 상업은행이 가장 낮은 5.7%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1999년 전체 여신 대비 부실채권의 비율은 6.6%로 동남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아시아 지역의 금융위기가 확산되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1998년 1월 국가경제 행동평의회(NEAC)를 구성하고 국가경제회복계획(NERP) 수립에 착수하였다. NEAC는 금융위기의 본질이 금융권이 안고 있는 거액의 부실채권에 있음을 인식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분리운영 할 기관과 금융기관의 취약한 자본구조를 확충해 줄 기관의 설치를 권고하게 되었다. Danaharta (Pengurusan Danaharta National Berhad)는 이렇게 해서 Company Act 1965에 의해 1998년 6월 설립되었다.Danaharta의 임무는 은행권으로부터 부실채권을 제거하고 취득한 자산의 회복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즉, Danaharta에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부실채권을 정상적으로 협상된 가격의 채권이나 현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Danaharta는 은행으로부터 부실채권을 매입하면 채무자와의 협상을 통해 부채상환계약을 수정하거나 부채의 출자전환을 하게 된다. Danaharta가 부실채권을 매입하더라도 담보물은 대출에 의해 전과 동일한 조건 그대로 채무자와의 명의로 남아 있고, Danaharta는 은행이 가졌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Danaharta는 금융권으로부터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대가로 정부보증증권이나 현금을 금융기관에 제공한다. 이 증권은 최초 5sys 채로 발행되며 그 이후 Danaharta의 재량에 의하여 다음 5년동안 연장을 선택할 수 있는 형태로 발행되고 있다. 또한 Danaharta가 자산을 처분함으로써 매입비용을 초과하는 이익을 얻게 되면 그 이익은 은행과 Danaharta가 80대 20의 비율로 나누게 된다.Danaharta는 1999년 연말까지 455억 2,1000만 링깃에 달하는 부실채권
    인문/어학| 2006.11.18| 7페이지| 1,000원| 조회(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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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도네시아 헌법 개정
    인도네시아 헌법 개정1. 헌법 개정의 배경32년간 독재정치를 했던 수하르토가 전격 하야한 1998년 5월 이후 2002년까지 인도네시아의 국민협의회(MPR)는 총 4차례 헌법을 개정한다. 4차례에 걸친 이 헌법개정은 독립 이래 수카르노 시대를 거쳐 수하르토 시대까지 정치적 이념으로 작용한 45년 헌법(UUD-45)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한 것이었다. 독립이전에 준비되어 1945년 8월 17일 독립과 함께 선포한 45년 헌법은 인도네시아 건국이념과 국가운영의 원리를 신성화하고 절대화 하는 역할을 하였다. 수카르노와 수하르토는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각각 계엄령을 선포하여 교도 민주주의 시대를 열고, 9?30사태를 평정한 후 신질서시대를 개막할 수 있었다. 1945년 헌법은 독립국가 건설 이후 보다 영구적인 성격의 헌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선포한 ‘선언적인 헌법’ 이였으므로 세부적인 후속작업은 후진들에게 넘긴 셈이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의 정치체제를 정하는 과제는 1998년 수하르토가 퇴진할 때까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45년 헌법은 두 가지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균형과 견제의 원리를 명시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함을써 ‘행정부 과도체제’를 낳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둘째는 핵심 국가기구들의 역할과 기능, 이들 기구 간의 협조관계, 그리고 각 기구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경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집권세력의 해석에 따라서 임의로 운영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결과적으로 인도네시아 45년 헌법은 권위주의적 정권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이용되었던 것이다.45년 헌법의 제 1조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협의회가 이를 전적으로 행사한다’ 라고 규정되어 국민협의회가 이 나라 최고 권력기관으로 군림하였다. 그리고 헌법 제 2조에는 국민협의회의 구성을 ‘국회의원과 법률에 따라 정해진 지역대표와 직능대표’로 규정되어 직능대표로서 군부가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즉 문민정부 이전의 인도네시아는 국민협의회(MPR)과 군부가 정치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렇게 헌법이 악용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문민정부는 헙법을 개정하게 된다.그럼 4번의 헌법개정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면 그 내용은 어떠한지 살펴보도록 하겠다.2. 헌법개정의 내용1) 제1차 헌법개정(1999년 10월)1999년 10월 국민협의회(MPR)는 압두라흐만 와히드(Abdurrahman Wahid)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 기간동안 국민협의회는 그동안 악용되었던 헌법을 개정하기 시작한다.제1차 헌법개정의 핵심내용은 대통령과 행정부에 과도하게 부여된 권력은 입법부로 이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직을 2회에 한해서 중임할 수 있도록 개정하여 전임대통령이었던 수하르토와 같은 장기집권을 막았다. 다음으로 국회(DPR)와 여타 동급의 정치기구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하였다. 기존의 헌법에는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 하에 법률을 제정할 수 있었는데 개정 후 국회가 입법초안을 제출하도록 하였다.또한 대통령은 이전과는 달리 대사를 임명하거나 외국으로부터 대사 또는 외교사절을 접수하는데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였다.이 외에도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정안이 많이 만들어졌고 이에 문민정부가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2) 제2차 헌법개정 (200년 8월)제2차 헌법개정을 위한 2000년 8월의 국민협의회는 지방자치의 기본원칙들과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을 헌법에 반영하였다. 또 인도제시아의 정치체제가 ‘대통령제’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그 내용은 제1차 헌법개정에 있었던 대통령 권한의 축소를 계속해서 진행하였고 모든 국회의원은 총선거를 통해서만 선출된다는 조항이 특별히 추가되었다. 이것은 군부와 경찰군이 더 이상 비선거직으로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는 국회포고령에 따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 기간을 2009년까지는 유지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지방자치와 관련해서 주지사와 시장?군수 등 지방행정 책임자의 선출과 지방정부가 갖게 될 권한은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다는 점과 지역사회의 관습법을 존중할 것이라는 점을 명시하였다.3) 제3차 헌법개정 (2001년 11월)2001년 11월의 제 3차 헌법개정에서 국민협의회(MPR)는 빤쨔실라 원칙을 근거로 한 헌법 전문과 통일된 단일국가체제에 대한 원칙을 재확인하고, 대통령제에 대한 기본골격을 세웠다. 헌법재판소를 기존의 대법원으로부터 분리하여 신설하기로 합의하였다.특히, 대통령을 국민협의회가 선출하는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대통령제가 직접선거를 통해서 선출되는 보편적인 대통령제로 바꾼 것이 제3차 헌법개정이 가져온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그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주권을 헌법에 따라서 행사되도록 하였고,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고 탄핵하는 절차를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2004년 총선거로 새로이 구성될 지역대표의회(DPD)의 의원은 각 주에서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도록 명문화하였다. 또 총선거와 관련하여 국회와 지방의회(DPRD) 선거는 정책 대결로 정당간의 우열을 가리는 기존의 선거형태를 유지할 것이나, 지역대표의회(DPD) 선거는 정당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자격으로 출마하도록 규정하였다. 예산운영과 감사원에 관한 조항도 법률을 통해 엄격히 규정하였고 ‘사법부의 독립’과 관련된 조항으로 대법원은 법률에 근거해서 청원을 접수하고 관련된 규정에 의거 심의하는 확고한 권한을 갖게 되었다.4) 제4차 헌법개정 (2002년 8월)
    인문/어학| 2006.07.12| 3페이지| 1,000원| 조회(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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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문화]이지메 평가A+최고예요
    ♣ 이지메란?이지메라는 용어는 집단 따돌림을 최초로 사용한 국가인 일본에서는 이지메(괴롭힘)를 ‘특정한 개인 위협하기, 밀기, 밀어붙이기, 또는 주먹으로 때리기 등을 포함하는 신체적 또는 언어적 공격과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는 따돌리기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심리적 압력’이라고 정의했다. 구본용(1997)은 집단 따돌림은 두 명 이상이 집단을 이루어 특정인(혹은 특정 집단)을 그가 소속해 있는 집단 속에서 소외시켜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제약을 가하거나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언어적 신체적 일체의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집단 따돌림은 다수로 구성된 집단이 소수의 집단원 또는 개인을 집단적으로 소외시키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하이네만(Heinemann, 1973)은 최초로 ‘모빙(mobb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스칸디나비나 반도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영어에서 ’모브(mob)'란 괴롭힘에 연관된 다수의 익명의 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집단이 그 집단의 일반적인 활동을 방해하는 즉 한 개인을 공격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미스(Smith, 1991)는 집단 따돌림을 다른 학생에게 신체적 또는 심리적인 가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이상의 정의를 통해 집단 따돌림인 왕따를 종합적으로 정의하면, 두 사람 이상의 비슷한 또래들 간에 일어나는 직?간접적인 폭력적인 행위로서 특정한 한 사람을 표적으로 정신적?신체적 폭력을 사용하여 집단적으로 소외시키는 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지메의 원인 및 발생현황이지메는 ① 자기보다 약한 자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② 구체적 심리적인 공격을 계속적으로 가해, ③ 상대가 심각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며, ④ 일으킨 장소는 학교의 내외를 막론하지 않는 것이다.이지메는 생도들, 특히 중/고교생은 진학시험 대비의 끊임없는 경쟁교육으로 인한 불안을 자아내는 학교교육환경, 핵가족화와 전가족 직장화에 따른 부모와 자식간에 애정부재등 가족환경 요인, 사춘기 요인에 의한 스트레스 등의 심리적 갈등으로 인한 산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와같은 이지메는 행위자 자신은 욕구불만의 보상행위나 불안의 해소 방법을 나타나면서 신체적인 질병이나 정신적 신경증을 유발하고, 피해자에게는 자연계의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되는 신체적 침해와 더불어 정신적 피해를 자아내는 비행으로 나타나게 된다.일본에서의 2000년 이지메 발생현황을 보면, 30,918건(전년도 31,359건)으로 1.4%가 감소되었다. 공립 초/중/고등학교 및 특수교육 학교별 이지메 발생건수는 초등학교 9,114건, 중학교 19,371건, 고등학교 2,327건, 특수교육 모든 학교 106건이다. 이지메는 1985년 정점을 이루다가, 1986년 급격히 감소하여 최근에는 1995년을 고비로 5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이 통계자료를 보면 ‘이지메’는 연차적으로 서서히 감소의 추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발생건수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점과 ‘이지메’의 방법의 변화에 의하여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이지메’는 싹트고 있지 않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이지메’ 발생건수의 연차적인 감소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1980년 대 후반까지는 이지메는 초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였으나, 점차 중학교에서 발생빈도가 높아져 현재는 다른 폭력행위와 유사하게 중학교에서 가장 빈번하다. 또한 이지메는 학교 입학 후 점차 학년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다가 중학 1학년 때 정점을 이루고, 여학생의 경우 남학생보다 성숙이 빠르므로,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남학생과 비슷한 정도의 발생빈도를 보인다. 결국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시절이 가장 이지메가 심한 영역임을 알 수 있다.이지메의 유형에는 언어협박, 냉소, 물건숨김, 집단소외, 집단무시, 폭력행사, 협박(금품갈취), 쓸데없는 참견, 강요 등이 있다. 이중에서 냉소의 발생비율이 가장 높으며, 언어협박, 폭력행사, 집단소외 등의 순이다.또한 초등학생은 냉소가 월등한 지위를 차지하지만 점차 폭력의 비율이 높아져(냉소 29.6% ,폭력 14.4%), 고등학교 때는 폭력의 비율이 가장 높아짐(냉소 2.4%, 폭력 22.8%)을 알 수 있었다.♣ 이지메의 사례와 법적 판례일본에서 1986년 中野區立富士見중학교에서 일어난 한 학생의 이지메 자살 사건은 학교폭력에 의한 신체적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해를 동반하는 ‘이지메’라는 현상의 심각성을 사회전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학교사고의 일부로 처리되어 온 이지메 사건이 독립된 현상으로 명확히 구별되게 되었다. 이 富士見중학교 사건은 학교측의 책임을 묻는 소송으로 번지게 되었으며, 이후 80년대를 통해서 다수의 ‘이지메’ 사건이 법적 문제로서 소송이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다.일본에서 ‘이지메’에 대해 최초로 학교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1985년 2월 25일에 있었다. 이 판결의 의의는 이 판결을 시작으로 학교 사고에 있어서의 설치자의 책임의 법리를 적용하여 시의 ‘이지메’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이것을 시작으로 오늘날에 와서는 이 법리를 이용하여 책임을 묻는 논리가 완전히 정착하게 된 것이다.또한 같은 해에 ‘이지메’ 가해자에 대해 친권자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있었다(1985년 4월 1일). 이 판결은 학교 사고판례, 학생간 사고 판례 중 첫 번째 ‘이지메’ 사고 판결에 속한다. 그 이유는 ‘이지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의도적 인권 침해성’, ‘일방적 가해성’, ‘계속성’, ‘집단구조성’ 등이 인정된 판결이기 때문이다. 이 판결로 인하여 ‘친권자의 학교측의 감독 책임의 병존 원칙’이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사가 직접적으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제 배려와 감독을 하는 ‘주의, 감독 의무’가 더 강화되었다. 또한 ‘이지메’ 가해자에 관한 친권자의 의무, 책임의 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이지메’에 대한 학교측의 예견가능성을 인정한 사례의 판례도 있다. 이 판결은 당시의 신문에 ‘이지메-신고하지 않아도 방지의무’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될 정도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 판결에서는 가해자의 폭력 행위가 계속적으로 행해졌고, 학교측에서도 일정 범위에서는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학교측의 예견가능성을 인정하였다.♣ ‘왕따’ 현상과 ‘이지메’ 현상의 차이점한국의 ‘왕따’ 현상과 일본의 ‘이지메’ 현상은 특정 대상을 집단적으로 괴롭히고 따돌린다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첫째, 근본원인의 차이가 있다. 한국의 ‘왕따’ 현상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개인주의, 이기주의화 되면서 발생되었지만, ‘이지메’ 현상은 일본의 집단주의라는 문화적 특성에 기초해서 과거부터 당연시 되어 온 것이다. "이지메가 전혀 없는 집단은 일본에 거의 없다. 이지메가 없이는 집단이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 일본 사회이다"라는 말을 한 것에서도 차이를 알 수 있다.둘째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대상의 측면에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왕따’의 대상은 이유가 있다고 여겨지는 인물들이다. 예를 들면 고자질을 잘 한다거나 잘난척 하는 아이, 또는 이유 없이 거짓말 하는 아이들이 왕따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지메’의 대상은 집단에서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예를 들면 외국인이라든가 어떤 면에서건 집단에서 튀는 인물은 어김없이 따돌림의 대상이 되고 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은 일본에서처럼 신체적으로 허약한 아이 혹은 장애가 있는 아이가 ‘왕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셋째로 따돌림의 방법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이지메’의 수법이 점점 악랄해져서 문제화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왕따’를 하면서 ‘이지메’처럼 악랄한 방법으로 따돌리지는 않는다.넷째로 따돌림의 유형이다. 한국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적어도 한 반에 친구한명정도는 가지고 있지만, ‘이지메’의 경우에는 반전체가 따돌림을 한다. 이것은 개인주의화에 의해서 발생한 한국의 ‘왕따’ 현상과 집단주의에 근거해서 발생한 일본의 ‘이지메’ 현상의 분명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지메의 해결 방법1) 가정의 역할가정은 청소년들의 따돌림 문제에 있어서 가해 학생과 피해학생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 부모의 바른 생활 태도가 중요하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 부모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 즉, 따돌림과 관련하여, 폭언, 거짓말, 타인 흉보기 등 자녀에게 모범이 되지 못한 행동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모들의 편견과 잘못된 의식이 잠재적으로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둘째, 아버지의 역할이다. 자녀 문제에 대해서는 주로 어머니의 몫으로 돌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경우 따돌림을 포함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피해학생의 경우 아버지를 포함한 전 가족들의 지지와 수용이 문제해결을 위해 결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들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녀가 따돌림 및 폭력의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을 어머니만 알고 아버지는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인문/어학| 2006.07.12| 5페이지| 1,000원| 조회(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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