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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강독] 면앙정가 현대역
    면앙정가송순이 41세로 관직에서 물러나 전라도 담양 제월봉 아래에 면앙정을 짓고 그 곳에서 지내면서 경치와 계절에 따른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노래한 중종대의 가사이다. 면앙정의 지세로부터 시작하여 면앙정의 경치, 4계절의 경치 그리고 서정적 자아의 신선적 풍류 생활이 펼쳐지는 선경후정(仙境後情)의 작품이다. 서사, 본사, 결사의 3단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결사 부분의 ‘역군은 이샷다’라는 표현은 유학자로서의 본연의 자세를 나타내며, 우리나라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전형을 만들었다.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반복?점층?대구법 등을 적절히 썼고 경치를 실감나게 묘사한 뛰어난 가사로 평가된다. 이수관의 이나 홍만종의 등에서는 이 작품을 ‘호연지기를 유감없이 표현했으며 어사(語辭)가 淸婉(청완)하고 유창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정극인의 과 더불어 호남가사문학에 원류가 되며, 그 내용?형식?묘사 등에서 정철의 ?에 영향을 미쳤다.현대역무등산 한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있어멀리 떨치고 와 제월봉이 되었거늘끝없이 넓은 벌판에 어떤 뜻이 있어서일곱 굽이가 한 곳에 움츠려 무더기무더기 벌여놓은 듯 하고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혀 놓은 듯하니너럭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정자를 앉혔으니 구름이 탄 청학이천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리고 있는 듯옥천산, 용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정자 앞 넓은 들에 끊임없이 퍼진 듯이넓거든 길지나 말지, 푸르거나 희지나 말지두 마리 용이 몸을 뒤트는 듯, 긴 비단을 펼쳐 놓은 듯어디로 가느라고 무슨 일 바빠서달리는 듯, 따르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 듯물따라 펼쳐진 모래밭은 눈같이 하얗게 펴졌는데어지러운 기러기는 무엇을 통정하려고앉았다가 내렸다가, 모였다가 흩어졌다 하며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울면서 서로 따라다니는고?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높은 듯 낮은듯, 끊어지는 듯 잇는듯,숨기도하고 보이기도 하며, 가기도하고 머물기도 하며,어지러운 가운데유명한체하여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우뚝이 선 것이 추월산 머리 삼고,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어져 있으니멀리 가까이 푸른 언덕에 펼쳐진 것이 많기도 많구나흰 구름과 뿌연 안개와 노을 푸른 것은 산 아지랑이다.수많은 바위와 골짜기를 제 집으로 삼아두고나며 들며 아양도 떠는구나오르기도 하며 내리기도하며넓고 먼 하늘에 떠나기도 하고 넓은 들판을 건너가기도하니푸르락 붉으락, 옅으락 짙으락석양에 지는 해와 섞이어 보슬비마저 뿌리는구나뚜껑 없는 가마를 재촉해서 타고 소나무아래 굽은 길로오며가며 하는 때에푸른 들에서 지저귀는 꾀꼬리는 흥에 겨워 아양을 떠는 구나나무사이가 가득하여 녹음이 엉긴 때에긴 난간에서 긴 졸음을 내어 펴니물위에 서늘한 바람이 그칠 줄 모르는 구나된서리 걷힌 후에 산 빛이 수놓은 비단물결 같구나누렇게 익은 곡식은 또 어찌 넓은 들에 퍼져있는고?고기잡이하며 부는 피리도 흥을 이기지 못하여 달을 따라 부는 것인가?초목이 다 떨어진 후에 강과 산이 묻혀 있거늘조물주가 야단스러워 얼음과 눈으로 자연을 꾸며내니경궁요대와 옥해은산이 눈 아래 펼쳐있구나
    인문/어학| 2005.05.01| 3페이지| 1,000원| 조회(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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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윤리] 사회윤리란 무엇인가?
    ☆윤리교육과 사회윤리분과 분과자료☆사회윤리?? 너를 알고 싶다!!1. 도덕교육의 위기와 사회윤리학도덕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외면적인 강조에도 불구하고 도덕교육의 실제적인 성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되는 것에 기초해 도덕과 교육의 한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도덕교육의 사회윤리학적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사회윤리학이란 기존의 윤리학이 가지고 있는 개인의 도덕성 위주의 논의를 탈피하고자 하는 현대 윤리학의 새로운 분야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윤리적 문제들이 내포하고 있는 구조적 차원은 문제해결에 있어서의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어떠한 사회문제를 접했을 때 이제는 더 이상 개개인의 도덕성만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완전하게 담보되지 않는 도덕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윤리학적인 대한으로 마련된 사회윤리학적 대안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윤리는 윤리교육의 위기를 넘어서 윤리교육의 가능성과 실천성을 강화하기 위한 이론적 기초로서 매우 의미 있는 영역으로 이해된다.2. 현대사상의 특징과 사회윤리학의 대두현대윤리학의 새로운 분야인 사회윤리학의 대두라는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대 사상의 특장과의 연계성에 주목해야 한다.현대 사상은 서구적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서구사상을 의미하는 극단적 서구화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서구 중심의 현대사상은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우선 현태 초기에는 서구적 근대이성이 조금씩 그 한계를 보이면서도 여전히 지속적으로 그 주도권을 행사한다. 이 시기에 마르크스 철학이 이성적으로 재해석되는데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근원적 믿음에 기초하면서도 방법론으로 구조결정론적 대안을 제시하는 독특한 이론이다. 모든 인간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 구조 변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 이론은 관심을 모은다.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이나 도덕운동가들에게서 사회 구조적 차원의 도덕성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의 모색에서 선두에 선 것은 민중들과 함께 도덕적 삶을 추구하던 목회자들이었다. 그 결과 그리스도교 사회윤리학이 현대 사회윤리학의 초기적 모형으로 등장하게 된다.현대사상과 사회윤리학 사이의 연계성은 사상에 있어서 본능의 강조 움직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존의 이성중심 도덕성 논의에 타격을 미치면서 새로운 윤리관모색을 강요하던 프로이드적 사상체계는 새로운 윤리관 모색에 실패하고 만다. 그런 가운데 더 이상 개인의 도덕성 논의에 머물기보다는 사회구조적 차원으로 눈을 돌리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한 규범윤리학 자체를 부인하는 분석철학이 철학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하는 사회윤리학이 철학적 윤리학의 외부로부터 세력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3. 사회윤리의 구조사회윤리학은 먼저 공동체의 원형적 모형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런 후 그 모형에 맞춰 현재의 사회를 분석함과 동시에 그 문제점에 대해 사회정의라는 잣대로서 비판을 가한다. 이러한 토대위에서 사회윤리학은 기존의 개인윤리학과 사회윤리학의 접합점을 모색하게 된다. 물론 사회윤리학은 기존의 사회적 윤리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하기보다 사회 구조 변혁이나 제도 변경 등의 방법에 의존하는 특징을 보인다.4. 사회윤리의 요청현대사회로 진입하면서 기존의 전통 윤리학이 포용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환경파괴문제, 집단책임의 문제, 핵무기사용문제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개인의 도덕성에만 호소해서는 해결되지 않고 구조적 차원의 도덕성을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이러한 사회윤리는 공동체내의 연대성을 중시하고 개인적 차원과 함께 구조적 차원, 또는 공동체적 차원을 볼 수 있는 시야와 문제의식을 가진 ‘공동체적 개인’로써 가능하다.5. 사회윤리교육의 목표1. ‘공동체적 개인의 육성’-자신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연대감을 지닐 뿐 아니라 공동체 차원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수용하는 능력을 지닌 개인.2. 윤리문제를 개인의 도덕성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실제적 능력의 배양.출처 : 윤리학과 도덕교육1/박병기, 추병완/ 인간사랑.♡사회윤리분과를 더욱 새롭게!! 즐겁게!! 행복하게!!♡파릇파릇 깜찍발랄한 05 새내기들의 폭발적인 관심 속에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게 되는 분과원들과 더욱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여러분께 질문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분과의 새로운 활력을 위해 기깔나고 번뜩이는 답변부탁드립니다.나는 (새내기/ 04/ 03/ 02이상) 입니다.?기존의 분과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04이상):?분과에 무엇을 기대하고 왔나요?(새내기):?무엇을 토론하면 좋을까요?~?~:?원하는 토론 방식이나 시도해보고 싶은 토론방식을 말씀해주세요~
    인문/어학| 2005.05.01| 4페이지| 1,000원| 조회(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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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의 제문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라본 신의 문제 평가B괜찮아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라본 神의 문제1. 우리는 왜 신을 문제삼을까요~?/ 신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요~?고대의 신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걱정’의 신이 인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 신이 땅을 차지하고 있는 신에게 육체의 재료인 흙을 얻고 영혼의 신에게 영혼을 얻어 인간에게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었다. 흙과 영혼의 신이 인간을 갖고 싶은 욕심에 싸움이 시작되자 재판관이 세 신을 만족시키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 되었다. ‘인간이 죽으면 흙을 빌려준 신은 그 육체를 돌려받고, 영혼은 그 영혼을 도로 차지하라. 그러나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걱정, 불안 근심의 신이 소유하라.’ 그래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걱정의 노예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처럼 실로 인간은 온갖 번민으로 얼룩진 존재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번민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 인간의 번민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유한성에서 나온다. 바로 그 유한성의 절정은 죽음이다. 서양인의 자주 발견되는 묘비명 중 하나는 ‘Hodie mihi cras tibi’ 라는 라틴어 표현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오늘은 나의 차례, 내일은 너의 차례’라는 말이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은 확실하나 그 시간은 불확실하다(Mors certa, hora incerta)'. 시간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는 인간을 그 종착역으로 무자비하게 몰고 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와 소멸이 없는 한결같이 존재하는 영역을 꿈꾼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요, 그와 동시에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유일한 동물이다.신은 여러 가지의 뜻으로 인식된다. 전통적 의미의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은 全知, 全能, 全善 하며 영원한 존재이고, 또 이렇게 완전무결한 신이 이 세상을 無로부터 창조했다(creatio ex nihilo)’고 믿는다.이런 신이 존재하는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사람에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은 그러한 객관적인 존재의 정당화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철학자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신의 존재에 대해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시도한다.2.플라톤의 神 - “善의 이데아”지금의 우리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당시의 철학자들의 논변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리스의 일상적인 종교 관념이 지금의 우리의 생각과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미리 짚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신에 관해서 생각했고 느꼈던 방식을 우리의 마음속에 되살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것처럼 보인다. 신성의 본질적 속성으로 인격적 개념을 허용하는 것은 기독교 사상의 전통이지 그리스적 사상의 전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근본적인 神觀은 오히려 어떤 특수한 방식에 국한됨이 없이 상이한 여러 방식으로 현시될 수 있는 막연한 힘에 관한 것이다.플라톤에게 정신의 원인으로서 저 초월적인 “善 ”이란 (감각적인 세계에)존재하는 것들을 따라 일컫는 모둔 범주 너머의 탁월하며 능력에 찬 실체로서 마치 “태양”과도 같다. 어두운 동굴에 드리우는 그의 빛을 따라 우리를 ‘위로’ 이끄는 태양은 그러나 눈을 멀게 할 만큼 탁월하기에 우리는 “수면에 비춰진 그 그림자”를 통해 태양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선의 이데아란 이데아 중에서도 최고의 이데아를 말한다. 그것은 곧 신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다른 일체의 이데아를 포괄하며 세계이성(Nous)이라고 볼 수 있다. 선의 이데아는 마치 태양이 빛고 침투하여 일체의 생명력을 불어넣듯이 현실의 일체를 형성하는 최고의 원리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를 모조리 언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인간의 언어는 “참된 것” 자체를 고스란히 담을 수 없다. 이를 극복하는 법은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신에게 호소하는 일이다. 플라톤이 “신에게 호소하는 까닭”은 “신 자신이 자신을 가장 정확히 전해준다”는 사실 이외도 또한 신이 우리로 하여금 이해를 돕는다는 데 있다. 결국 인간의 언어가 참된 것을 닮은 것에 이르게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에게는 저편의 세계(이데아)와 감각적 세계 사이에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상호 유비적인 관계가 자리한다.3.아리스토텔레스의 神- “움직이지 않는 운동자”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생물학으로부터 성장했다. 세계의 모든 것은 내부의 충동에 따라 지금보다도 더 큰 것이 되고자 한다. 모든 것은 질료였던 어떤 것으로부터 성장한 형상이다. 질료는 형상의 가능성이고 형상은 질료의 현실태이다. 형상은 질료의 잠재적 능력의 실현으로서 모든 사물에 깃들여 있는 활동의 힘, 존재의 힘, 생성의 힘의 총화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신의 섭리는 자연적인 원인의 작용과 완전히 일치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존재한다. 그의 神 역시 미숙한 정신의 애교있는 의인관에 의해 상상된 단순하고 인간적인 신은 아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래된 운동에 대한 수수께끼로부터 이 문제에 접근한다. 「어떻게 운동이 시작 되었는가」라고 그가 묻는다. 그는 운동에는 반드시 근원이 있다고 말한다. 이 문제를 한 발 한 발 한없이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무형적, 불가분적, 비공간적, 완전하고 변화 없으며 영원한 어떤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에 예속되어 있지 않은, 그러기에 질료에도 속박되어 있지 않는 그것은 어떤 류의 잠세태도 갖지 않는 순수한 활성태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름 아닌 순수사유이자 순수정신으로서의 신성에 관하여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신은 오직 至高한 것 또는 가장 완전한 것만을 사유할 뿐이며 순수 사고활동이 최고 형식의 활동이므로 그의 사고는 ‘사고의 사고’일 수밖에 없다. 순수 사고 활동에서는 사고와 사고의 대상 간에 아무런 차이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신의 영원한 사고 활동은 그의 사고의 대상이 되는 온갖 것들의 영원한 존재성과 구별될 수 없다는 말이다. 신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 신은 기계적인 힘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활동의 포괄적 동인(動因)으로서 세계를 움직인다. 「신은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움직이듯이 세계를 움직인다.」.신은 순수한 현실태이며 능동성 자체이다. 이 신은 인격이라기보다는 자력(磁力)이다.
    인문/어학| 2005.05.01| 2페이지| 1,000원| 조회(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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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윤리] 법과 도덕에서의 도덕의 법적 강제 문제.
    ☆사회윤리분과? 학술제 자료☆법과 도덕에서의 도덕의 법적 강제 문제.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한 법철학적 물음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제기된다. 우선 법개념론과 법효력론의 차원에서는 도덕의 핵심을 법개념에 포함시켜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 도덕의 핵심을 위반하는 법은 법으로서 효력이 있는가 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특히 두 번째 차원의 문제는 어떤 도덕을 법적 강제에 의해 보호해야 하는가 하는 법정책적인 것이다. ‘도덕의 법적 강제’라는 표제아래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들에는 성과 관련된 문제뿐아니라, 교통과 관련된문제등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어떤 도덕 기준들이 법에 의해서 보호될 가치가 있는 것들일까?1. 출발점 : 밀의 ‘해악의 원칙’법으로 보호해야 할 도덕기준들과 그렇지 않은 도덕기준들의 구분을 위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원칙은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제시한 ‘해악의 원칙’이다. : “문명 사회의 각 구성원에 대해 그 의지에 반하여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 경우에는 그 강제력의 행사 목적이 타인에 대한 해악을 방지하기 위한 때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타인관련적인 행동과 자기 자신에게만 관련된 행동을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에는 공공의 안전을 위하여 규제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간섭할 수 없다라는 밀의 ‘해악의 원칙’은 이후의 자유주의적 법정책의 시금석으로 활용되었다.2. 데블린-하트의 논쟁1957년 영국의 웰펜든 보고서는, 밀의 ‘해악의 원칙’에 따라서, ‘사적으로 행해지는 비도덕적 행위’, 즉 가령 성인 사이의 동성애 행위나 성매매 행위는 법적 제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러한 자유주의적 입장은 영국의 데블린 판사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비판되었다. 데블린은 사회는 자신의 존립을 지킬 권리를 가진다는 전제 위에서 지배도덕이 사회 존립을 위한 필요조건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만일 어떤 행위가 밀의 의미에서 타인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지배적 공공도덕을 훼손한다면, 사회는 사회의 존립을 위해서 필수적인 질서를 보호하려고 법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공공도덕을 유지하기 위해 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블린의 주된 논지는 사회의 존립자체를 위해 필수적인 공공도덕의 핵심요소는 형벌에 의해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법으로 보호되어야 할 공공도덕의 요소는 그 내용이 정당하냐 않느냐에 상관없이 사회에서 널리 인정되고 공유되어서 사회의 안정에 중대한 기능을 수행하는 내용의 도덕기준을 일컫는다. 데블린의 논리는 하트에 의해서 비판받는데 비판의 핵심요지는 다음과 같다. 하트는 데블린은 공공도덕의 핵심이 법에 의해서 보호되어야 한다고 막연하게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하트는 데블린이 뜻하는 ‘도덕’이 광범위하게 공유된 분개심, 편협성, 혐모감이라면 이러한 편견에 법의 보호를 부여할 정당한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최소한의 도덕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해야 하며 증거와 논변의 기준을 통과하는 비판적 도덕의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블린과 하트 양자 공공도덕의 핵심적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면 이것은 법에 의해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데서는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무엇이 공공도덕의 핵심을 구성하는가’를 확정하는 것이 관건이라 할 수 있겠다.
    인문/어학| 2005.05.01| 2페이지| 1,000원| 조회(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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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적 인간학] 쾌락의 정원, 에피쿠로스학파 평가A좋아요
    쾌락의 정원, 에피쿠로스학파1). 인간 에피쿠로스의 생애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에 사모스 섬에서 아테네 이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세에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서 아테네로 갔다. 그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대왕 사후 정치적 혼란의 기류 속에서 곧장 아테네를 떠나 칼키스로 돌아가서 얼마 안 있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후계자인 테오프라스토스는 소요학파의 주도권을 넘겨받아 그 도시의 가장 인기 있는 철학교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으며,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크세노크라테스에 의해서 지도되었다.하지만 에피쿠로스는 그의 강의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에피쿠로스는 그의 가족을 따라 콜로폰으로 이주하였다. 이어지는 몇 해 동안 에피쿠로스는 테오스출신의 데모쿠리토스의 제자 나우시파네스 곁에서 연구기간을 보냈다. 그는 나우시파네스를 통해서 피론에 대해서 들었는데 이는 그의 철학의 토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에피쿠로스는 31세부터 독자적으로 철학을 가르치다가 기원전 306년에 아테네로 갔다. 그는 교외에 정원을 샀는데, 그 정원을 따라 훗날 그의 학원은 ?에피쿠로스의 정원? 이라고 불렸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271년에 죽을 때까지 아테네에서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고 연구했다. 에피쿠로스는 절제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는 빵과 치즈, 올리브를 먹고, 포도주를 조금 마시고, 해먹에서 잠자고, 정원을 산책하면서 친구들과 대화를 즐기는 생활을 했다. 만년에, 그는 길고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해야 했으나 죽을 때까지 위엄과 용기를 잃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누구든 행복한 삶에 다가갈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에, 그 공동체에는 여자들과 노예들도 속해 있었다. 에피쿠로스와 그의 제자들의 편지에 담겨진 단편들은 학원의 모든 구성원들의 개인적 운명에 대한 그들의 생생한 관심을 보여주며, 그들이 재정적 정치적인 어려움 속에서 서로서로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등 300여 권에 이르는 저서가 있지만 그 대부분이고 지속적인 쾌락의 추구를 강조한다.이러한 쾌락이 단순히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ataraxia)'를 유지시켜 줄 때에 바람직한 삶의 가치가 되며, 이때에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타락시아는 말하자면, 신체의 건강과 마음에 평정이며 다른 사물에 의존치 않는 자유로운 정신상태이다.이에 에피쿠로스학파는 플라톤의 4주덕3)을 수용했다. 에피쿠로스는 4주덕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되고, 행위의 정당한 판별을 이루어내며, 검소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3)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에피쿠로스의 윤리학은 그의 위대한 선구자들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같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만 도덕적으로 올바른가?? 라는 근본물음에 대한 도덕 이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행복에 관한 이론이다. 따라서 에피쿠로스가 쾌락주의자였다는 사실이 특별히 의미하는 것은 그가 가능한 한 가장 많은 즐거움이나 기쁨을 구하는 행동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견해를 주장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은 최대한의 기쁨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에피쿠로스 윤리학은 스토아 학파와 동일한 기본전제 아래 출발한다.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성취 할 수 없는 모든 행위들에 대하여 무가치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인간의 가능성들에 대해서 보다 현실적이며 실천저이 평가를 앞세운다. 그는 이성적으로 불가해소저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보아 ‘쾌락과 불쾌감’에 따른 감정에 근거한 판단을 받아들이고 있다.(가) 최고의 善에피쿠로스가 ‘최고의 선’에 관해서 말할 경우, 과연 ‘쾌락’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다른 한편, ‘불쾌감으로부터의 해방’ 역시 그 동일한 善이라는 이름아래 주장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에피크로스는 사람의 감정상태를 3가지로 구분하는데 이 구분형식은 이미 퀴레네 학파에게서도 발견된다. 인간의 감정은 ‘바다의 여러 가지 상태’와 비교되는데 사나운 바다는 ‘불쾌감’을 상징하고 잔잔한 수면의 상태는 ‘쾌락’을, 그리고 중간 상태는 ‘중립적인 은 다른 것에 의해 모든 영향에 앞서서 가령 불이 뜨겁다던가 눈이 희다 같은 지각들과 똑같이 자명하거니와 더 이상의 근거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와 함께 기쁨은 어떤 좋은 것(선)이요, 고통은 어떤 나쁜 것(악)이다. 이에 에피크로스는 “모든 선과 악은 느낌안에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에우다이모니아(Eodaimonia), 곧 행복은 내적인 평화를 의미하며, 동시에 그것은 확실하게 느껴져야 한다. 쾌락과 불쾌감이라는 느낌은 원천적인 가치들을 전달한다. 불쾌감이란 자연적 욕구에 따른 결핍감정을 가리키며, 여기서 쾌락이란 ‘다시금 채워짐’의 감정을 나타낸다.즉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자연은 우리의 행위결정을 위한 유일한 방향설정 수단으로 기쁨과 고통의 느낌을 우리에게 부여했다. 그에 따르면 선의 개념은 쾌적함의 경험에서, 악의 개념은 고통의 경험에서 유래하며 그리하여 가능한 한 최선의 삶은 가능한 한 가장 유쾌한 것이어야만 한다.에피크로스는 쾌락을 ‘텔로스’라고 강조하면서도 ‘미식가의 쾌락’이나, ‘어린아이와 아낙네 혹은 물고기들이 즐기는 쾌락’ 이 아니라 ‘육체의 고통과 영혼의 흥분상태로부터의 해방’과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 그는 감각적 쾌락과 육체적 쾌락을 구분하였고, 나아가 정신적 쾌락에 우위성을 두었다. 왜냐하면 정신은 육체와 달리, 직접적으로 그래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감정에만 국한하지 않고, 오히려 그 현실적인 순간을 넘어서 미래적인 상황에 대해서 앞서 바라보고, 또한 과거의 쾌락마저 기억할수 있다는 점에서 우위성을 갖는다는 것이다.(나) 쾌락의 ‘실현 가능성’그의 입장대로 감각을 통해 주어지는 가치가 많을수록, 현실적으로 성취할 수 없는 위기감은 더욱 고조된다. 에피쿠로스는 이제 막 태어난 젖먹이를 예를 들어 증명하고자 한다. 곶 순수 감각적인 자연 그대로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이내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감을 피한다. 그래서 쾌락은 유일하고 참된 절대적 가치이다. 유일한 까닭은 젖먹이에게 쾌락을 쫒고 불쾌감을 피하는 일 이외에 다른 행위가치가 해 ‘더욱 유쾌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그 역시 다채로운 변화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것들은 서로 균등하다.그리하여 그는 이제 현실적 쾌락개념을 생각함으로써 인생의 목적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 개념의 설정을 통하여 그는 가장 먼저 욕망에 대하여 분석한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욕망에는 두 가지가 있으므로, 그 욕구를 충족함으로서 얻어지는 쾌락에도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곧, 자연스러운 욕망(이것은 다시 둘로 나뉜다)와 헛된 욕망이다.* 자연스러운 욕망- 필요한 욕망 (식욕이나 잠을 자고 싶은 욕망)- 불필요한 욕망 (성욕)* 헛된 욕망 (화려한 옷을 입고 싶다든가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망)자연스럽고 필요한 욕망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며 또 쉽게 충족될 수 있다. 그런 욕망은 선하고 이상적인 쾌락을 낳으며,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는 경우는 거의 없다. 헛된 욕망은 이성이 ‘다채로움’을 그 어떤 가치로 잘못 오해한 것이다. 이는 충족될 필요가 없고 충족되기도 쉽지 않다. 그런 욕망에는 자연스러운 제한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도를 지나치게 되고 고통스러운 결과를 빚는 경우가 아주 많다.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대개는 극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욕의 충족은 지나치게 격렬한 쾌락을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욕이 주는 쾌락은 대개 궁극적으로는 쾌락이라기보다 고통에 가까우며, 때로는 극단적인 고통까지 수반하는 경우가 있다.자연스럽고 필요한 욕망들 중에서 에피쿠로스가 특히 중시하는 것은 휴식의 욕망이다. 여기서 휴식이란 몸과 마음 모두의 휴식을 가리킨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즉, 가장 큰 쾌락을 경험하는 사람)은 모든 불필요한 욕망들을 극복하고, 자신의 필요한 욕망들을 가장 적당한 방식으로 충족시키며, 많은 시간을 몸과 마음의 휴식으로 보내고,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이다.에피크로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神들에 대한 두려움’에 관해서 매우 특별하게 취급한다. 더욱이 선대의 철학에서는 이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았지만, 에피크로스에게는 매우어떤 방식이 결국에는 더 유쾌하게 사는 방식이라고 고려할 수 있다면 거꾸로 고통을 떠맡는 일이 분명히 생길 수 있다. 이런 쾌락주의적 계산을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기쁨이나 고통이 어디에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그것들을 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적절한 표상을 필요로 한다.우리는 이전의 기쁨들에 대한 상기나 다가올 개선에 대한 희망에 대해서 자신의 심적인 안정을 유지함으로써 육체적인 고통들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고통이 강하다면 그것은 짧게 지속한다. 만일 그것이 길게 지속한다면, 그것은 가볍다?는 에피쿠로스학파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인생의 지혜이다. 곧 고통이란 머지않아 사라지니, 마침내 쾌락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라는 의미이다.그러나 이런 사고로 고통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에피크로스의 의도는 ‘행복’에 대해 쾌락이‘우세한’자를 두고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에피쿠로스는 “현자가 행복하지 않은 적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현자는 그가 의지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보다는 행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더 많이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욕구들이 마지막까지 현자의 내면적인 평정과 균형을 위기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자는 고문과 같은 고통 중에도 침착할 수 있고 곧 고통이 중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어떻게든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다) 생활규칙들만일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대한 가르침을 수긍했다면, 그의 생활규칙들 역시 낮서은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진정한 쾌락의 확보를 위해서는 우리가 쾌락에 대한 올바른 내면적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에피쿠로스의 기본규칙은 “행복의 주된 요소는 내면적 마음가짐이요, 그 주인이 우리 자신이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다시 이성활동과 관련된 ‘행위준칙’이 보충적으로 뒤따른다. 먼저 실천적인 지혜가 높은 가치로 여겨진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은 이성적 통찰을 통하여 쾌.
    사회과학| 2004.05.22| 7페이지| 1,000원| 조회(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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