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1. 변경 전통의 기원.2. 변경 전통들의 특징들.3. 오늘날의 변경 전통과 나가야 할 방향?들어가는 말?이번에 나는 여러 가지의 예배전통 중에 “변경의 예배”에 대해 서술하려 한다. 우리는 변경의 예배의 전통을 확인 하려면 미국의 개신교를 우선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전통이 변화됨은 변경 전통(the Frontier tradition) 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변경전통의 중요성은 변경에서 시작된 교회들의 예배에 형태를 부여한 그 자체의 활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통들을 자신(변경 전통)의 모습으로 재형성시킨 그 역사에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 변경에서의 개신교 예배의 기원을 살펴보고 그특징들을 개관하고 새로운 신앙 운동들에 있어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모델로서의 변경전통을 고찰한 다음 이 전통의 현재의 특성을 검토해 본다.1.변경 전통의 기원: 개신교 예배에서 변경 전통은 목회에 있어 실천적인 문제점에 대한 응답으로 일어났다. 주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인구를 어떻게 모이게 하고 복음을 전할 것 인가에 포커스를 두었다. 마침내 가장 실현 가능하다고 입증된 방법은 설교 예배에서가 아니라 성례 예배에서 도출되었다. 일년에 서너 번 성례절기를 갖는 스코틀렌드 장로교의 예배의식이 이 지역에 이식되었다. 여기에는 주님의 성찬을 위해 양심을 철저하게 검사하고 준비하는 기간이 수반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가스팔 강(Gaspal River)가에서 야외 성찬식을 갖는 야영 집회를 계획 하게 되는데 이때를 변경 전통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1801년에는 바스톤 스톤 목사의 주체로 대형 야영 집회가 열리게 되는데 이 집회가 성공을 거두며(인원의 참석률) 선교와 예배 두 가지 모두를 포괄하는 형태로서의 야영 집회의 지속성이 보장 된다. 이처럼 야영 집회가 서서히 자리 잡으며 아무리 완악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라도 계속적인 찬송과 설교로 인해 변화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게 된다. 야영 집회가 계속적으로 발전하여 신앙 부흥운동 형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 한다. 미국의 개신교에서 시작된 이 부흥운동이 예배의 전통의 변경의 한 산물이 된 것이며 기원이 된 것이다.2.변경 전통들의 특징: 한 예배전통의 발전은 절대로 단순 하지가 않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변경 전통의 주요 특징들 중 일부만을 개관 할 수밖에 없다. 변경 예배의 중요한 맥락은 주로 비교인들의 회심과 기독교 안으로의 부름이다. 선교의 주된 형태가 교육이나 사회활동이 아닌 예배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회심 자체가 예배의 주된 기능이 된 것은 중요한 역사적 변화 였다. 제 세레파와 성공회를 제외하고 개신교 예배의 대부분이 이 전통을 흡수하며 미국화의 과정을 통과 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 해 보아야 할 것은 변경의 기독교는 이전의 전통들의 분명한 많은 특징들을 삼켜버리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찬양의 참여의 자세와 표현, 건물의 전통이 서서히 미국식 변경의 기독교의 양식으로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전통의 중요성을 위한 녹스와 웨슬레가 모든 예배를 위한 책을 마련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런 예배서는 장로교인들과 감리교인들에게 분명 낯선 것이 되었다. 인종 면에서는 흑인 공동체들의 참여가 많은 기여를 하였다. 변경 예배와 부흥회의 활력 차고 능동적인 참여의 많은 부분이 아프리카에 조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언어적 측면에서는 또한 “살해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애통하라” 와 같은 강경한 술어들로 표현하며 “회심 아니면 비 회심”과 같은 문구로 절대개념의 표현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회심의 면에서 우리는 또한 성례와의 균형을 관과 할 수 없는데 성례의 경건은 주로 계몽운동의 합리주의에 의해 형성되었다. 합리주의 사상에 따라 성례가 단순화 되었다. 건축의 면에서는 따로 홀로 존재하는 예배당이 아닌 인구의 밀집도가 어느 정도 확보되면 곧 바로 작은 목재 예배당들이 지어졌다. 또한 성찬대의 양식도 변화하게 되는데 감리교의 성찬대 난간, 장로교의 성찬석을 제외하면 내부 장식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예배의 중요한 예배 센터는 강단이다. 20세기가 되며 강단은 단위에 놓인 설교대가 되었고 여기서 말씀의 전달이 중요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음악의 변화 역시 나타나기 시작 하는데 여러 개신교회에 오르간이 위치하게 되며 몇 명의 성악가들이 발전하여 성가대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는 공간의 실용주의적 발달을 알 수가 있으며 시간의 구성에서도 변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또한 예배들의 주간계획이 세워지고 여러 절기를 정형화 하여 회심의 포커스에 맞추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다. 이렇듯 변경전통 예배는 여러 변형을 가지고 왔으며 여러 가지 특징을 살리며 지금까지도 변화 발전해 오고 있다.3.오늘날의 변경 전통과 나가야 할 방향: 두 세기에 걸쳐 변경전통은 변영 해 왔다. 세속적인 말로 표현하여 소위 비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예배 사업은 가장 많은 청중을 끓어드림으로 번창하고 있고 미국의 모든 개신교 전통 중에서 가장 크게 시장 점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전통이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변형하며 발전 하듯이 이 예배의 전통도 변화하는 것이다, 미국에 있어 이 변화들의 훌륭한 지표는 건축가가 설계한 교회의 등장이다. 변경의 초기에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목재 교회를 지을 수가 있었다. 그 후 제정이 어느 정도 넉넉히 확보된 교회는 유명한 건축가들이 교회 건물을 설계하여 새롭게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 했다. 그러나 이 수준에 이르는 교회는 드물었고 변경 전통 출신의 교회는 극히 드물었는데 그 부분적인 이유는 명성 있는 건축가들의 취향에 맞추기 보다는 파괴의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음악의 경우 음악목사를 속속 배출하기 시작하며 기독교 음악의 변화 발전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성가대도 서서히 교회 음악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으며 예배에 없어서는 안 될 한 예배 형식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또한 예배의 공간적인 면에서 볼 때 앞에서 말한바와 오늘 날은 부흥회의 형식이 더욱 부각되며 설교자들은 청중이 모이는 어느 곳에든지 위치하며 복음을 전하게 된다. 교회의 의미가 더욱 확산되기 시작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로써 복음 전파의 공간적 한계성을 뛰어 넘게 된 것이다. 여러 방송 매체 에서도 설교가 방송이 되며 여러 가정에서의 가정예배도 확산이 된다.
REPORT(성공회 방문 감상문)학■ 성공회(서울 대 성당)의 신앙의 지표와 건물양식.Ⅰ. 성공회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그들의 주장): 성공회란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로 16세기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카톨릭 적이면서도 개혁적인 교회로 발전하게 된다. 성공회의 신앙은 성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초대교회의 신앙전통을 존중하고 구교와 신교를 포용하는 중용의 정신과 일치를 도모하는 신앙 안에서 토착적이고도 민족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공회의 신앙의 지표를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① 성서적 신앙: 신구약 6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외경을 믿음과 도덕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② 초대교회 신앙: 동서로 교회가 분리되기 전의 초대교회의 신앙을 지킨다. 그래서 성공회 의 신앙적인 유산을 지금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③ 중용적인 신앙: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의 극단적인 것들을 지양하고 중도의 길을 걷고 있다. 따라서 신 구교와의 분열된 교회의 일치를 위한 연합 운동에 크게 공헌을 하 고 있다.④ 토착화 민족적 신앙: 민족? 국가? 지역마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나는 대한 성공회의 배경과 특징을 조사하며 성공회는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카톨릭과 개신교의 중앙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주장을 중심으로 조사한 내용이라 종교적 중립상태의 서술은 될 수 없으나 직접 찾아가 느낀점중에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과 카톨릭 적이면서도 개신교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기에 나의 생각과 접목시켜 앞에 서술하여 보았다. 또한 성공회는 건물 안에 태극기를 가져다 놓을 만큼 그 지역의 특성을 중요시 여겼는데 이점은 우리 나라의 개신교에서 배울 점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파송의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지역이나 나라의 대표라는 의미를 심어 주기 위해 깃발이 사용된다면 더욱더 자부심과 책임감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 또한 해본다. 하지만 이 깃발이 성스러운 유물로 다시 말해 보여지는 성령, 우상시 되는 물건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듯 성공회의 신앙적인 특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성공회는 말씀의 신앙, 중요의 신앙, 민족적 신앙, 초대교회적 신앙 의 큰 특징이 있었다.Ⅱ. 건물양식: 서울 대 성당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본 것은 웅장한 덕수궁의 자태였다. 성터에 위치한 대 한 성공회는 이루 말할 것 없이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멋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 말한 민족성과 지역의 특성을 존중하는 종교라 그런지 지붕 위의 십자가는 아담하면서도 동양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또한 옛 궁의 건물들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면서도 당연히 보존하여야 할 것인데 우리 나라의 여러 건물들이 무자비하게 생기는 것을 생각해 보며 한숨을 뱉어 보기도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면에는 금박이 씌어 진 것과 같은 예수님의 벽화가 있었다. 조명이 비추어져 더욱더 신비스럽게 보여 졌는데 이런 양식을 많이 접하지 못한 나는 서먹하기도 했다. 또한 부유한 종교라 생각되리 만큼 여러 부분에서 화려하고도 정교함이 묻어나는 조형물들과 여러 장비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오르간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컸다. 이 오르간을 통해 찬양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놀라셔서 한번쯤은 쳐다봐 주시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또한 고급 호텔과 같은 대리석 바닥이 눈에 띄었다. 지하 성당을 들어 갔을 때는 그 대리석에 한 성직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왠지 바닥이지만 밟으면 안될 거 같아 피해 다니기도 했다. 나는 성공회를 갔다온 뒤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은 세상에서 어느 건물보다 크고 좋아야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 성전의 건축을 위해 쓰여지는 물질적인 부분으로 주님의 소외된 형제 자매를 도와주는 것이 옳을까?”라는 의문이다. 아직도 갈등이 되고 어느 한 부분을 선택하기란 힘이 들다. 무엇이든지 중심이 중요하듯 하나님을 위한 일에 있어 이 성공회는 중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개신교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번 성공회의 방문으로 인해 주님을 위해 아름다운 음악을 부르고 멋진 공연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내 마음에 있어 하나님의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참고: www. cathedral.com(대한성공회 홈페이지)―음악과 예배―■정교회 방문 감상문▲정교회 입구까지 가는 길의 개신교 신자의 마음:나는 개신교 신자이다. 정교회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고 찾아가 본 적은 없다.이번에 정교회 방문 수업이 수업일정에 예정되어 있어 기대감 과 불안한 맘이 서로 교차하였었다. “정교회는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 건물은 어떻게 생겼을까?”이러한 기대감과 궁금증이 생겼었으며 “나는 개신교인데 게다가 고신 교파인데 이러한 이단시하는 정교회에 가도 되는 것일까? 내가 그들에게 설득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불안한 마음이 생겼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며 계속 내 마음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나의 믿음과 지식으로는 혼자 이겨내기 힘든 만큼 너무 깊은 질문이었다. 그 질문은 바로 “개신교나 정교회나 뿌리는 같은 종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또한 같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런 것으로 서로의 편을 갈라놓듯이 개신교, 정교회 하는 것이지? 개신교가 옳냐? 정교회가 옳냐는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시지 않을까?”이러한 의문이자 나에게의 질문이었다.▲정교회 방문후의 개신교 신자의 마음● 정교회의 예배 형식정교회의 예배형식은 개신교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사항이 있다.첫째, 예배 시작하기전의 개신교 신자들은 찬양을 하며 예배를 준비 하지만 정교회는 조용한 가운데 촛불을 키거나 하며 준비 찬양 형식이 없이 예배 준비를 한다고 한다. 개신교는 표현의 종교라고 하면 정교회는 침묵의 종교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러한 한 예로 예배 중에 정교회는 악기사용을 극도로 제한한다고 한다. 악기가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주신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는 교회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한 사람으로 많은 의문점이 생긴다. 분명 목소리로 찬양하라는 성경말씀도 따라야겠지만 분명 여러 악기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이를 이용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찬양하는 것이 그들의 정통성의 한 부분이라 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에서 서로의 정당성을 가리기가 힘든 것은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다중적 인자함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 큰소리로 찬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조용히 묵상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는 하나님의 편에서는 언제나 동일시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둘째, 예배 형식을 보면 정교회는 어느 정교회를 가던지 같은 날짜에 같은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정교회 신부님이 설명하면서도 상당히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만큼 통일성을 중요시하는 종교가 정교회인 것 같다. 또한 개신교는 설교말씀을 긴 시간동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복음 전파를 중요시 여긴다고 하면 이들은 성경말씀을 앞에 서술한 거와 같이 묵상하거나 입으로 자신의 죄악을 짜여진 형식 “내탓이오 내탓이오” 이러한 문장들을 발설하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우리 개신교는 통성기도란 형식을 통해 입에서 밖에까지 기도가 들리게 되지만 이들은 이러한 예배 형식이 짜여져 있어 기본적으로 죄악을 발설하고 회계하는 통로가 갖추어져 있는 셈이었다.―음악과 예배―●정교회의 건물 형식: 처음 정교회에 도착하였을 가장 처음 보인 것은 멀리서도 보이는 둥근 지붕이었다. 돔 형식으로 둥근 지붕 형태였다. 이 부분은 앞에 말한 악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목소리로만 찬양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목소리 전달이 잘 되는 돔 형식을 정교회는 채택한 것이라고 했다. 정문을 통과하여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난 뒤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이동하였다. 입구에서부터 찬 기운이 흘러 나왔다. 돔 형식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발생되지만 또 한가지는 창문이 거의 없었다. 일사량이 적은 이유도 있는 듯 싶다. 그리고 여러 가지 벽화를 그리는 정교회이기에 벽의 중요성이 창문의 중요성보다 더 강조 된거 같았다. 벽화는 여러 가지 성경에 나오는 역사를 표현 해놓았다. 예수님 탄생부터 부활까지...여러 가지 벽화들이 있었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벽화에는 여러 에수님의 제자들이 그려져 있었으며 각자의 이름 또한 적혀 있었다. “정교회는 이러한 벽화를 통해 예수님의 인격적인 삶을 그리고 예수님을 기린다”고 하는데 나는 다른 생각을 해 본다.“이러한 벽화를 우상숭배시 하는 실수를 정교회는 하지 않을까?”이러한 의구심이 생겼다. 이러한 마음이 들 정도로 이 그림들은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운 그림들이었다. 정면에 위치한 유년의 예수님 그림과 마리아의 그림이 눈에 가장 잘 들어 왔다. 여기서 보면 마리아의 그림이 유년시절의 예수님 그림보다 훨씬 크며 높은 위치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보면 마리아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정면에 십자가의 형상이 있는 개신교의 교회들과는 또 다른 점이었다. 또한 개신교 건물 형식상 으로 보면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 위치에는 벽 같은 것이 하나 세워져 있었으며 3개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다가가기 힘들어 보였다. 신부 한 분이 “거기는 아무나 못 들어 가는 곳” 이라고 하였다. 또한 지성소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였다.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나에게는 하나님을 아무나 만나지 못한다는 말과 똑 같이 들렸다. 정교회는 건축양식부터가 철저히 정통성을 지키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이 건물양식부터 표현되고 있었다.
REPORT(정교회 방문 감상문)학■ 정교회의 정통성 주장과 현 정교회의 종교적 위치.크리스트교의 역사는 곧 정교회의 역사이다. 정교회는 크리스트교의 발상지였던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당시 그리스도교 중심지였던 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의 다섯 개의 대관구로 성장하면서 세계 공의회(Holy Ecumenical Synod)를 통해서 하나의 교회로 현존하고 있었다. 이 세계 공의회에 의해서 교회의 기초가 되는 교의들과 전례가 공식적으로 형성, 완성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초대교회 이후 다섯 개의 대관구로 형성되어 내려오던 하나의 교회는 로마 총대주교좌의 수위권 문제와 필리오케(Filioque)논쟁으로 촉발된 비극적 상황 끝에 1054년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을 배경을 한 동방 정교회와 로마를 배경으로 한 로마 카톨릭(천주교)으로 동?서방 교회가 분열되고 말았다.동?서방 교회의 분열 이후 서방교회는 또 다시 1517년 천주교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서방에서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지금의 개신교를 이루는 여러 교파(영국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침례교등)가 천주교회에서 분열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했던 것이다. 하나인 교회로부터 한 지체가 바른 길에서 벗어 났을 때, 예수님의 기도(요한 17: 11)에 거슬러서 어떻게 서로 반목하고 분열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1054년의 서방교회의 분열과 그 후 연쇄적인 서방교회의 재분열을 통해 목격할 수 있다.그러나 바른 신앙과 전승에 충실했던 동방정교회는 1054년의 비극 이후에도 서방교회와 같은 교파의 분열없이 하나의 교회를 유지하면서, 고래(古來)의 4개 총대주교 관구와 10개의 독립교회, 6개의 자치교회 그리고 한국정교회를 위시한 선교 도상에 있는 여러 지역 교회들이 ?하나의 믿음?으로 연결되어 형제적인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1998년도 통계를 보면, 세계적인 지역별 신자 현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유럽 지역 5천만명, 러시아 연방 지역 1억 1천만명, 아프리카 지역 3천 2백만명, 북아메리카 지역 6백만명, 예루살렘 및 중동 지역 1천만명,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지역 6백만명, 남아메리카 지역 6십만 명이다.☞윗 글은 정교회를 소개하는 한 싸이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정교회를 이해하려면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정교회의 연혁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거 같아 편집을 해보았다. 이번 정교회 방문 보고서는 다음 장부터 나의 주관적인 소견에 의해 작성하겠다. 작성의 키 포인트는 개신교와의 비교이다. 또한 개신교인 입장에서의 정교회의 이질성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음악과 예배―■정교회 방문 감상문▲정교회 입구까지 가는 길의 개신교 신자의 마음:나는 개신교 신자이다. 정교회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고 찾아가 본 적은 없다.이번에 정교회 방문 수업이 수업일정에 예정되어 있어 기대감 과 불안한 맘이 서로 교차하였었다. “정교회는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 건물은 어떻게 생겼을까?”이러한 기대감과 궁금증이 생겼었으며 “나는 개신교인데 게다가 고신 교파인데 이러한 이단시하는 정교회에 가도 되는 것일까? 내가 그들에게 설득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불안한 마음이 생겼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며 계속 내 마음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나의 믿음과 지식으로는 혼자 이겨내기 힘든 만큼 너무 깊은 질문이었다. 그 질문은 바로 “개신교나 정교회나 뿌리는 같은 종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또한 같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런 것으로 서로의 편을 갈라놓듯이 개신교, 정교회 하는 것이지? 개신교가 옳냐? 정교회가 옳냐는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시지 않을까?”이러한 의문이자 나에게의 질문이었다.▲정교회 방문후의 개신교 신자의 마음● 정교회의 예배 형식정교회의 예배형식은 개신교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사항이 있다.첫째, 예배 시작하기전의 개신교 신자들은 찬양을 하며 예배를 준비 하지만 정교회는 조용한 가운데 촛불을 키거나 하며 준비 찬양 형식이 없이 예배 준비를 한다고 한다. 개신교는 표현의 종교라고 하면 정교회는 침묵의 종교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러한 한 예로 예배 중에 정교회는 악기사용을 극도로 제한한다고 한다. 악기가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주신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는 교회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한 사람으로 많은 의문점이 생긴다. 분명 목소리로 찬양하라는 성경말씀도 따라야겠지만 분명 여러 악기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이를 이용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찬양하는 것이 그들의 정통성의 한 부분이라 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에서 서로의 정당성을 가리기가 힘든 것은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다중적 인자함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 큰소리로 찬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조용히 묵상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는 하나님의 편에서는 언제나 동일시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둘째, 예배 형식을 보면 정교회는 어느 정교회를 가던지 같은 날짜에 같은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정교회 신부님이 설명하면서도 상당히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만큼 통일성을 중요시하는 종교가 정교회인 것 같다. 또한 개신교는 설교말씀을 긴 시간동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복음 전파를 중요시 여긴다고 하면 이들은 성경말씀을 앞에 서술한 거와 같이 묵상하거나 입으로 자신의 죄악을 짜여진 형식 “내탓이오 내탓이오” 이러한 문장들을 발설하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우리 개신교는 통성기도란 형식을 통해 입에서 밖에까지 기도가 들리게 되지만 이들은 이러한 예배 형식이 짜여져 있어 기본적으로 죄악을 발설하고 회계하는 통로가 갖추어져 있는 셈이었다.―음악과 예배―●정교회의 건물 형식: 처음 정교회에 도착하였을 가장 처음 보인 것은 멀리서도 보이는 둥근 지붕이었다. 돔 형식으로 둥근 지붕 형태였다. 이 부분은 앞에 말한 악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목소리로만 찬양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목소리 전달이 잘 되는 돔 형식을 정교회는 채택한 것이라고 했다. 정문을 통과하여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난 뒤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이동하였다. 입구에서부터 찬 기운이 흘러 나왔다. 돔 형식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발생되지만 또 한가지는 창문이 거의 없었다. 일사량이 적은 이유도 있는 듯 싶다. 그리고 여러 가지 벽화를 그리는 정교회이기에 벽의 중요성이 창문의 중요성보다 더 강조 된거 같았다. 벽화는 여러 가지 성경에 나오는 역사를 표현 해놓았다. 예수님 탄생부터 부활까지...여러 가지 벽화들이 있었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벽화에는 여러 에수님의 제자들이 그려져 있었으며 각자의 이름 또한 적혀 있었다. “정교회는 이러한 벽화를 통해 예수님의 인격적인 삶을 그리고 예수님을 기린다”고 하는데 나는 다른 생각을 해 본다.“이러한 벽화를 우상숭배시 하는 실수를 정교회는 하지 않을까?”이러한 의구심이 생겼다. 이러한 마음이 들 정도로 이 그림들은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운 그림들이었다. 정면에 위치한 유년의 예수님 그림과 마리아의 그림이 눈에 가장 잘 들어 왔다. 여기서 보면 마리아의 그림이 유년시절의 예수님 그림보다 훨씬 크며 높은 위치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보면 마리아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정면에 십자가의 형상이 있는 개신교의 교회들과는 또 다른 점이었다. 또한 개신교 건물 형식상 으로 보면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 위치에는 벽 같은 것이 하나 세워져 있었으며 3개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다가가기 힘들어 보였다. 신부 한 분이 “거기는 아무나 못 들어 가는 곳” 이라고 하였다. 또한 지성소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였다.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나에게는 하나님을 아무나 만나지 못한다는 말과 똑 같이 들렸다. 정교회는 건축양식부터가 철저히 정통성을 지키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이 건물양식부터 표현되고 있었다.
? 2004 전국 미래춤 페스티벌에 대한 감상평 ?서론: 미래춤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서울 교육문화 회관으로 향하며 미래춤이 무엇일가를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춤에 대한 무지한 나로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서울교육 문회회관에 도착하여 공연을 보며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던 많은 질문들의 답이 공연으로 인해 풀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춤에 대한 전문적 지식인은 아니나 내가 보고 느낀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다.본론: 처음에 공연이 시작되고 나는 여러 가지 음향에 관심이 생겼다. 역시나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을 숨길수가 없었나 보다. 공연에 나오는 음향과 여러 조명들의 조합자체로만 으로도 하나의 인위적인 춤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이었다. 무대위에서 여러 가지 인간의 초자연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공연자들에게 이 음향과 조명이 추가 되면서 더욱더 감동의 극대화를 이끌어 냈다. 사실 그 춤의 표현에 있어서는 공연자들의 피와 땀이 한 방울 한 방울 어려 있어 쉽게 얘기 할 수 없는 것이 관객의 입장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는 공연을 보며 인간의 여러 가지 표현에 대해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춤에 대한 일반적 지식으로는 공연을 나에게 있어서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인간의 삶이 이렇듯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가지 표현의 한 종류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나의 지식에 한번 돌을 던져보는 좋은 공연 이었다.결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러한 공연에서 나를 감동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생긴다. 많은 시간 생각 끝에 한 가지 쉽고도 어려운 답이 나왔다. 바로 여러 공연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문화적 경험과 그에 따른 지식의 겸비를 하자는 다짐과도 같은 답이었다. 다시 말해 여러 가지 문화적 공연에 있어 편식과도 같은 영화에만 나는 치우쳐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러 다니며 나는 자연스레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생기게 되었으며 어느 정도의 감상 평을 쓸 만큼 영화에 있어서는 성장 하였다. 하지만 나는 여러 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의 성장이 정지된 상태 이었던 것이다. 나는 불균형적인 성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 미래춤 공연으로 많은 것을 깨닫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힘쓰는 공연자들과 특히 교수님께 실례가 되는 레포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러한 공연을 통해 이러한 성장을 다짐했다는 것은 숨길일이 아니며 이제부터라도 문화적 편식을 하지 않겠다는 여러 공연자들과의 약속이 됨으로 이러한 무지한 지식으로 한 장 적어 본다.
REPORT(발성법 연구)학부:♬횡경막이 노래에 미치는 영향♬▲횡경막의 역할(허파와의 관계성)동물과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숨을 쉴 때에 허파로 숨을 쉰다. 다시 말해서 허파의 용적이 커지면 공기가 들어가고 줄어들면 공기가 나오는 것이다. 횡경막의 중요성과 노래에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사용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허파의 구조부터를 알아야 한다. 허파는 근육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보조 기관에서 이 허파를 움직여 줘야한다. 이 보조기관이 바로 횡경막이다. 허파의 용적을 조절해 허파 안으로 공기가 들어갔다 나왔다를 할 수 있게 허파의 용적을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노래 할 때의 횡경막의 영향앞에서 허파와 횡경막의 관계성을 알아 봤듯이 노래할 때 호흡을 조절하는 한 부분인 허파를 움직이는 기관인 만큼 횡경막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호흡을 들이 마실 땐 근육질로 된 횡경막이 밑으로 내려와 주기 때문에 허파 안의 공기압이 낮아져 공기가 허파 안으로 들어간다. 숨을 내 쉴 경우는 이와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나 자신의 짧은 소견이지만 호흡에 영향을 많이 주지만 음의 높낮이 부분에서는 관여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노래 연습을 하며 횡경막을 느껴 보려했지만 잘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호흡을 들이 마실 때에 몸 속으로 공기가 들어와 뭔가의 장기에 의해 공기가 이동해서 배에 머물 수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이 횡경막이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기가 내 몸 어느 장기에 저장이 되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횡경막은 호흡에 많은 영향을 준다. 호흡은 노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이 부분에 관여하는 횡경막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한 횡경막 단련(횡경막도 하나의 근육이기에 꾸준한 단련을 하면 더 많은 공기와 빠른 호흡 전환에 도움이 됨)을 통해 호흡법의 부류인 복식호흡과 흉식 바이브레이션과 호흡방식을 사용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횡경막 단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리포팅을 통해 다시 한번 알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경우 호흡을 배에서 꼭 잡고 있으려고만 하였지 호흡의 양을 이 횡경막 단련을 통해 늘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계속적인 횡경막 단련을 통해 호흡을 자유로이 쉽게 조절하도록 노력 할 것이다.―발성법 연구―♬평소 노래 할 때보다 호흡을 높게 하였을 때 달라진 점♬▲리포팅에 앞서 “호흡을 높게 하였을 때”에 대한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야 겠다. “호흡을 높게 하였을 때”로 정의 한 것은 나의 경우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지시하신 방식으로 입안을 더욱 넓게 열고 하품을 하듯이 노래하였을 때 호흡이 높아 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를 냄새를 맡을 때에는 코 안에 있는 텅 비어 있는 부분이 머리끝까지 그 냄새를 맡으려고 좁게 쪼이고 있던 문이 확 열리는 것처럼 그와 유사한 느낌이다. 이렇듯 평소에는 목에서 호흡이 걸러지며 입으로 나오는 느낌이지만 호흡을 높게 다시 말해 나의 머릿속의 생각부터를 밝은 생각 뭔가 좋은 냄새를 맡을 때처럼 하였을 시... 하품을 할 때 입안과 코 안의 통로가 열리듯이 하였을 때 이 상태를 유지하며 노래를 때에는 목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 나 같은 경우 복식호흡을 가장 중요시하고 배에다 힘을 주는 편인데 이렇게 호흡과 피칭을 높게 하였을 때에는 가슴에 좀 힘을 주게 된다. 소리는 평소보다 높은 위치에서 나가려고 하고 호흡은 평소와 같이 배에서 꽉 잡고 있다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다. 호흡이 자연스레 가슴으로 올라가 가슴에서 더욱 빠른 속도로 머리까지 도달하려고 꿈틀꿈틀 거리는거 같다. 이렇게 높은 위치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가성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나의 경우 가성을 할 시에 호흡을 내 보내는 양이 급격히 늘어난다. 목에서 호흡을 쪼여주지 않고 코의 윗 부분에서 소리를 바로 내려고 하기에 호흡을 쪼여 줄 수 있는 부분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입 밖으로 내보내는 공기의 양이 많은 만큼 그 호흡에 더욱더 높은 음의 음들을 살짝 올려 놓을 수 있다. 입 밖으로 나가는 호흡의 양이 많기에 흔들림 없는 소리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호흡의 높이를 높게 하였을 때에는 높은음에 도달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목에 무리가 없이 편안히 노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리가 힘이 없이 들리기도 했다. 호흡이 배에 있는 것이 정상일 테이지만 나의 경우 호흡이 가슴으로 이동을 하여 음을 제어하는데 사용하였던 복식호흡이 잘 되지 않았다. 또한 호흡을 높게 하였을 시에는 전에 많이 사용했던 아주 나쁜 버릇인 코맹맹이 소리가 좀 줄어들었다. 또한 위의 방식으로 노래를 할 시에는 두성과 같이 뒤통수 부분이 울린다. 이렇게 울리는 부분이 생겨 바이브레이션의 형식은 좀 쉽게 할 수가 있었다. 이렇듯 호흡을 높게 하였을 때에는 나에게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