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봉사 실습보고서( 안산외국인 노동자센터 )Major: 정보경영공학Subject: 사회봉사 (YP178)Professor: 정희준 교수님Name: 이 시 영Student No.: 1998054776사회봉사 과목을 신청을 할 때 한번은 해보고 싶은 과목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것 밖에 없지만 사회봉사를 통해서라도 나의 조금이라도 사회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 과목을 신청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봉사'라는 말을 많이 들어는 봤지만 내가 직접 봉사라는 것을 하는 것에는 항상 '나중에'라는 생각만을 했었지 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고등학교 땐 대학에 가기 위해 자율이 아닌 타율에 의한 봉사란 것 한 것을 제외하고) 이번 안산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하는 봉사 또한 자율이 아닌 타율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번 봉사는 나에게 다른 의미의 봉사가 되었다.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땐 그저 학점을 쉽게 딸 수 있다고 좋아만 했었는데 봉사를 할수록 처음의 안일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차츰 기분이 좋아지고 배풀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즐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안산 외국인 노동자 센터의 나의 첫날 봉사는 행사 진행 도우미였다. 오전에 여의도 광장에서 시민단체들이 같이 모여서 단합대회하는 곳에서 천막도 쳐주고 여러 가지 전시 물품들을 전시하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도왔다. 첨에는 약간 긴장한 탓에 의욕이 앞섰는지 일이 잘되지 않았지만 차츰 나아지면서 나도 남을 위해 뭔가를 도운 다는 일에 정말 보람찬 하루가 되었다.그리고 그 후에는 센터에서 있던 각종 봉사일 을 거드는 일을 했다. 외국인 한국어 교육현장과 무료로 컴퓨터교육을 하는 곳에 가서 취재도 하고 사진도 찍는 업무도 했다. 내 자신이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대견했고 한편 자랑스러웠다.4주차 째였던 걸로 기억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매우 큰 행사가 원곡동에서 열렸는데 그때 역시 나는 봉사를 나갔었다. 내가 맡은 일은 풍선을 불어서 외국인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맡았었다. 아이들이 내가 만든 풍선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이 정말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행사중간 중간 짐도 나르고 열심히 참여하고 나중에 외국음식맛보기에서 음식도 맛보고 재밌고 보람된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그리고 저번 주까지 외국어를 번역하는 업무를 맡아서 해왔는데 너무 어려운 책이라서 그런지 조금 힘들었던 걸로 기억된다.이번 봉사활동으로 인해 나는 '봉사'라는 말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정의(?)가 되었다. 전에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봉사해라, 봉사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 봉사라는 것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딘가에 따로 있는 사람처럼 느꼈었는데 이번 봉사활동을 마친 나로서는 봉사라는 것은 어렵거나 힘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누구나 할 수 있는 봉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 강연내용 요약강의 전에 의원님에 대해서 동기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한마디로 ‘수석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셨다. 부럽기도 했고 대단하다고 생각 됐다.의원님께서는 강의의 시작을 자신의 인생 이야기로 여셨다.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3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고 하셨다. 첫 번째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제주도 태생부터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서울대학교 법대에 수석 입학하기 까지를 자신의 인생의 서막으로 표현하셨다. 제주도에서 학창시절에 정말 어렵게 공부하셨다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 정말 대단한 의지와 확고한 신념을 갖지 않았더라면 그럴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노력의 결실로 이루어 진 것을 겸손하게 표현하신 부분도 재미있었다.다음으로 두 번째 인생이라고 말씀해 주신 부분은 대학시절 학생운동 이야기였다. 광주 민주화 항쟁 직후에 대학 생활로 접어든 의원님이셨기에 민주화에 대해 당연히 관심이 깊으셨고 직접 학생운동에 참여해서 민주화를 부르짖었다고 하셨다. 당연히 학업은 뒷전이 되었으며 학생운동에 열정을 쏟으셨고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셨다. 이때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중요한 시기라고 말씀하셨다.세 번째는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확실히 설정한 시기다. 1990년대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민주화가 제도를 통해 자리 잡혀 가고 있었고 세계화의 추세가 사회주의가 몰락해가고 자본주의가 주를 이뤄 가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연히 의원님은 진정 우리나라에 필요한 사회 체제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거의 10년 정도를 자신에게 투자하여 자신의 신념을 정리하고 확고히 다져서 법조인의 길을 걷다가 결국 정치권에 입문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부담이 되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있다면 최선의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결코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절대로 노력 없이 쉽게 얻으려고 하지는 말라고도 충고하셨는데 마음에 확 와 닿았다.역시 빠르게 높은 지위에 올라온 만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셨을 것이고 정말 확실한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의원님께서 인생 이야기를 이렇게 간략하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셨다. 딱딱한 강의보다는 이 질문시간이 더욱 재미있었고 도움도 많이 된 것 같다. 그러면 질문내용과 답변을 요약해 보겠다.질문 #1.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의원님이 한나라 당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는지,친일파 청산문제에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답변 : 먼저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건 그 구분 틀이 보수와 진보가 놓여있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 시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보면 틀은 있습니다. 보통 보수 시장에 대한 차이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 공동체의 번영, 이런 것들의 축을 기준으로 해서 나뉘게 됩니다. 그것은 학문 적인 차원에서의 보수와 진보인 것입니다. 45년 이후 분단된 상태에서 보니 한쪽이 제약된 보수, 진보 논의가 되어왔습니다. 50~90 년도까지 여와 야의 경쟁은 있지만 그것은 결국 보수 내에서의 경쟁이였지 본격적인 진보 세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7대의 민주노동당을 본격적인 진보 세력으로 볼 수 있는데 앞으로 보수, 진보 정치 영역에서도 경쟁이 예상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대한민국 전체에 앞으로의 운영방향을 놓고 양 날개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거의 부패와 특권, 일반적인 반공논리, 편협 된 이데올로기, 부정적 이미지를 털고 미래지향적인 보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진보는 저항적인 대결적인 투쟁적인 모습이지만 이제는 책임지는 집권세력의 모습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있는 것이지요.한나라당의 컬러에 대해서는 개혁적인 중도 우파 정도의 스펙트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제가 생각하는 상대적인 저희 깃발은 선진국으로 가는 선진 깃발입니다. 보수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는 검증된 가치를 지켜야 하는 보수와 두 번째는 검증된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냉전체제 속에서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체계를 선택한 우리나라는 이념적인 선택에 대한 보수를 이어가야 하고 산업화의 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독과점에 안주하는 문제, 극단적인 반공논리, 지역대결에 안주하는 과거의 퇴행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사회를 억압하던 것들을 당연히 깨야합니다. 저는 결국 보수 내에서의 혁신적인 미래지향적인 변화와 함께 우리 사회를 선진국으로 끌고 나가기 위한 발전의 동력을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할 것인가 그러한 것에 고민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지점에 서있는 것이고 잘 이끌어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친일파 청산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전혀 의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꼭 밝히고 싶은 것은 과거 지향적이고 우리 공동체 내부 지향적인 이러 것이 화두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세계를 향해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점이 화두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거지향적인 것은 이제 배제하고 세계적으로 엄청난 도전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의 공동체 위상은 당연히 위기에 부닥칠 것입니다. 과연 어떤 것이 먼저인지를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질문 #2. 16대 정치 시절에 탄핵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에 대한 의견과촛불 집회에 대한 의원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마지막으로 17대 국회에서 의원님의 포부를 듣고 싶습니다.답변 : 한마디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집단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장 보람 있게 생각 하는 일은 과태료 50만원 선거법을 개정한 것이 가장 보람 있지만 반대로 가장 후회하는 일은 이 일을 막지 못했던 점 끝가지 탄핵을 반대하지 못했던 점을 가장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혼자 남게 되더라도 후회되는 일이 없게 반대할 것은 반대하겠습니다.우리 헌법은 대의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참여주의, 직접민주주의를 보충하여 채택하고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국회가 탄핵 하느냐, 국민이 뽑지 않는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을 하느냐? 이러한 논의 자체에 대해서 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촛불시위 이런 것들은 당연한 국민의 기본권이고,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간집회는 엄격히 법으로 제한되기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는 법을 개정하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저는 17대 국회에서 꼭 한나라당내에서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고 나가는 예인선 역할, 개혁파로서 활동을 하겠습니다. 16회 국회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비판이 결정적일 때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당내에서 개혁을 부르짖지만 국민의 생활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인 메시지, 희망의 대한이 없지 않느냐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확실히 해결할 수 있도록 보여드리겠습니다.질문 #3. 제주도 출신이라 당연히 4.3사건에 대해 잘 아실텐데그것에 대한 의원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그리고 의원님이 옆에서 보신 5공화국때의 정치인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답변 : 국회에서 여야 주도는 민주당이 했지만 여야 공동에 의해서 4.3 합동 위령제와 공원까지 만들어지고 있지만, 4.3사건에 대해 5.18처럼 뭐 민주 항쟁 민주화투쟁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의 이념대결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하고 그 부분의 대한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찬성하고 또 법의 의해서 입법이 되어 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우리 집안에도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제주도의 사람의 입장으로서 아직 불만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5공화국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탄핵과 총선을 거치면서 5공화국에서 지금까지 쭉 계시던 5공화국 사람들은 거의 없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좀 과장을 보태면 붕괴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당연히 많이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인재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 당은 현대사의 50년을 이끌어왔던 주축이고 반공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왔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공은 있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 더 나은 정치를 이끌기 위해서는 젊고 유능한 인재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질문 #4. 학생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노선을 변경하셨는데노선 변경이 너무 급격했던 거 아닌가요?답변 :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급격하게 변한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저 나름대로 준비기간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신념을 세우는 기간도 가졌고 여러 가지 변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결국 저의 노선은 혁명노선에서 개혁적인 노선으로 변경되었다고 말할수 있겠지요. 급격하게 변한거 아니고 준비했습니다.질문 #5. 입당할 당시 한나라 당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계셨는지,한나라 당에서 박근혜 대표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계시고,마지막으로 한나라 당에서 탈당하게 되면 새로운 당을 창당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당으로 가실 것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