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생활과 화법 Report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의 상황별 화법분석 9712288 이 상 목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의 상황별 화법분석들어가는 말내가 참여연대의 김기식 사무처장에게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작년 초 참여연대의 대학생 공부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당시 그는 우리 모임에 대담자로서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다른 업무관계로 모임 후 술자리에서 보게 되었다.전설처럼 들려오는 그의 카리스마적인 업적과 이야기와는 달리 내가 본 그는 매우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고 따라서 한동안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수록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신념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것은 나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다.이후 그에 관해 잊고 있던 나는 탄핵 반대 촛불 시위 현장에서 그를 다시 만나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가 한 연설은 나에게 다시 한번 그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감동을 주었으나 그는 사적인 자리에서 보았던 그와는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TV토론을 시청했을 때 그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그리하여 수업 시간 보고서의 주제를 들었을 때 나는 김기식 사무처장이 떠올랐고 자료가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를 나의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 보고서를 통하여 이러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그의 화법을 분석하여 보고 이를 수업시간에 배운 근접거리 이론과 맞물려 보기로 한다. 이 조사를 위해 연설과 토론에 관한 동영상 자료와 음성 기록물, 그리고 신문 인터뷰 기사를 이용하였으며 또한 작년 그와의 사담에 대한 기억도 더듬어 보았다.인물 소개그는 1966년생이고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85학번으로 전형적이 ‘386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고 3시절 광주항쟁의 실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집권자가 동족을 향해 총을 쏘는 나라가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우리나라’인가 하는 충격과 의문이 밀어닥쳤다는 것이다. 그 후 대학에 진학해서는 이에요.’라고 말을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목소리는 매우 느렸고 그래서 어눌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발화 중 대부분 청자의 눈을 응시함으로써 그의 말에 대한 호소력을 강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발음은 매우 정확했고 적절한 유머와 함께 그의 지성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그에게 빠져들도록 하였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들의 질문에 답하는 태도 역시 매우 친절하였고 그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도 뛰어나서 일부러 뒤틀린 질문을 준비한 나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하였다.나의 기억을 더듬는 것에 한계를 느껴 그가 한겨례21에서 한 인터뷰를 참고해 본다.)김규항: 올해 초에 참여연대가 주도하는 소액주주운동이 개량주의적이라는 논란이 있었는데 그 얘기부터 해보죠.김기식: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에서 보면 비판할 소지가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의 운동이라는 게 체제적 수준에서 뭘 해보자는 게 아니라 현재의 틀 안에서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내려는 거고, 더군다나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액주주운동이 현실적으로도 진보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 그런 생각이에요.김규항: 실용적 측면에서 말이죠.이전 시민단체 비하발언으로 김기식 처장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김규항씨는 아마도 ‘실용적’이라는 표현보다 보다는 오히려 ‘현실 타협적’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때 역시 김기식 처장은 자신의 발언을 상대방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바로 뒤이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김기식: 예를 들어 노동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사주제도가 발전되어 있거든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주주이기도 하다는 얘기죠. 현실적으로는 한 사람이 주주이면서 노동자이고, 소비자이기도 한 여러 측면이 있다는 거예요. 주주의 권리로서 기업의 가치가 다른 기업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면 특별상여금 요구투쟁 안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주식가치가 올라서 재산이 늘어나게 되는 결과를 짓게 된다는 거죠. 노조도 주주권리 당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이후 인터뷰의 뒷부분에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김기식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좀 풀어진다.)김규항: 김기식씨가 몇달 전인가 박원순 선생에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잡혀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사실입니까?김기식: 예, 정말 요구는 너무 많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노동조합이나 지역에서 와가지고 연대제안하는데 역량이 안 돼서 못하겠다 하면 섭섭해한다구요. “잘 나간다고 안 해주냐”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이름을 걸면 또 “여기도 이름 들어가고 저기도 들어가고 오만데 다 끼었다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 거죠. 요구는 많은데 한정된 인력과 재원으로 일하다보니 다들 격무예요. 지금은 나아진 거예요. 처음 만들었을 때 1년간 이틀 걸러 하루씩 밤샘을 했거든요.김어준: 일정 경력과 나이 이상의 시민운동가들을 기업이나 대학에서 해당분야 전문가, 로비스트 혹은 강사로 적극 활용하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그야말로 온몸으로 부딪쳐 실무를 익힌 전문가 집단이니까 사회는 그들의 전문성을 활용하고, 운동가들도 ‘생활’ 문제를 해결하고.김기식: 외국은 40대까지 꾸준히 운동하면 전문성과 실천에서 나오는 풍부함이 있다는 걸 인정해 겸임교수로 해서 그 사람이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가지고 있는 내공을 사회에 환원하게 하는 거죠. 동시에 일정한 생활을 보장하고 그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다지요.김규항; 기업은 어려워도 대학은 가능할 것 같은데. 요즘엔 연예인들도 많이 하고.김어준: 사회복지 이론만 백날 가르치면 뭐해, 1년이라도 현장에서 해본 사람이 낫지.김기식: 나도 대학에 강의 많이 가요. 요새는 바빠서 자주 못 가는데 사회복지 교수들은 ‘걱정하지 마라. 너는 준 전문가니까 나이 들면 사회행동론이나 사회정책 분야에서 겸임교수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죠. 내가 사실 작년에 대학 졸업했거든요. 언젠가 대학원생들 앉혀놓고 사회복지 강의하면서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고영 (자민련 대변인), 김창현(민노당 전국집행위원장), 김제선(총선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씨가 출연하였다.)김기식 : 네, 정부에서 많이 나오셔서 여러 가지 것들을 계속 제기하고 계셔서요. 몇 가지 간단하게 기준문제와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민운동에도 관여하셨던 김영선의원께서 시민단체를 패거리라고 표현하신 데에 대해서는 좀 유감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저는 기준적용에 대해서 오늘도 일부 정당과 언론이 저희 기준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면서 쟁점을 희석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예를 들면 대표발의건수를 저희가 낙천대상자로 선정한 적 없습니다. 만약에 대표발의건수를 낙천대상자로 선정할 경우에 대표발의건수가 0건인 의원이 37명입니다. 그러면 그 분들을 다 넣어야 되느냐? 제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뺐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요. 정책과 관련해서도 그 자체를 가지고 낙천대상자로 선정된 분이 없다는 점, 제가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분당문제를 아까 안의원님께서 제기하셨는데, 그런 기준으로 얘기를 하면 통합민주당 시절에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정계은퇴 약속을 번복하시고 복귀하셔가지고 명령 한마디에 당시 통합민주당에서 국민회의로 집단적으로 탈당해서 통합민주당을 껍데기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기준에서 보면 그 당시 국민회의에 참여했던 모든 의원들을 다 낙천대상자로 해야 되는거냐 라고 하는 점에서 우리 정치사의 불행으로 정당간의 이합집산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일률적으로 적용한다고 하면 아마 273명 국회의원 중에서 저는 낙천대상자가 안 될 분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그런 점에서 또 야당에서 여당으로 갔느냐, 여당에서 야당으로 갔느냐를 문제삼은 바가 없습니다. 저희가 기준을 삼았던 것은 단순한 당적변경을 문제 삼았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당적변경이라고 본질을 호도하고 계십니다.김기식 처장의 말대로 그들은 의도적으로 ‘단순히 대표발의 건수나 당적변경 등의 수치로 평가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 라는 쪽으로 이끌어 갔다. 기까?김영선 : 김기식 사무총장께서 합리적으로 생각하시는 건 좋습니다. 이 자리에 있어서 사오정 이다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것 그거 문제고요. 현재는 이.. 총선시민연대가 예를 들면 한여름밤의 우리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제공한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런데 3만명이나 되는 분들이 일정한 선거운동의 제한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한테 다니면서 매도하는 것, 딱지붙이는 것 이거가 기본적으로 반이성적이기 때문에 문제거든요. 그런데 이 토론장에까지 그렇게 얘기하시면 토론이 굉장히 비이성적으로 될 것 같습니다.그의 토론 화법의 또 하나의 특징을 규정하자면 의도적으로 ‘과격한 표현’을 쓴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기식 처장은 ‘사오정’처럼 토론석상에서 피해야할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누군가 그에게 논리 없이 횡설수설하며 공격하거나 논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등의 옳지 못한 토론자세를 보이면 그는 이러한 과격한 표현을 역시 침착한 어조로 내뱉음으로써 더욱 강력하게 감정을 건드려 상대방의 이성을 완전히 무너트린다. 위에서도 김영선 의원은 김기식 처장의 화법에 휘말려 근거 없는 이야기로 급기야 자신의 비합리성을 인정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장면은 다시 연출된다.이근진 : 저는 이 운동이 시민의 이름을 도용하지 말고 차라리 노사모운동이라든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 말했듯이 홍위병 운동이라고 하면 이걸 전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만 그러면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놀랍게도 자신을 후보로 공천해서 대통령으로 탄생시켜 준 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드셨는데 이런 배신과 분열의 죄를 민주당 박상천 당시 대표께서 국민에게 사과까지 했는데 이 분이 낙선운동에 놓여지고 또 정동영 의장, 또 평민당에서 하셨다가 민주당으로 가신 김원기 고문 같은 분, 또 제가 저기 신문자료를 들고 있는데, 개혁당을 만들어가지고 있다가 열린당으로 가신 유시민의원은 어떤 분은 1975년에 이모의원의 경우를 보면 1975년에 전과사실을 밝혔는데 이 분은 보니까 1985습니다.
포드가 단일기업으로 성장해온 것에 비해 GM은 여러회사들의 합병으로 시작되었다. 1904년 미국의 플리트시에서 마차 제조업을 하던 윌리엄 듀런트는 쓰러져가는 뷰익을 인수한다. 마차제조업에서 크게 성공한 그는 타고난 사업가였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신할 시대가 올 것을 자신했다. 듀런트는 1904년 28대 밖에 만들지 못한 뷰익을 손에 넣은지 4년만에 연산 8천820대를 자랑하는 회사로 키웠다. 듀런트는 뷰익의 성공을 바탕으로 다른 군소메이커의 인수에 들어갔다. 랜섬올즈가 창립해 커브드 대시를 만들고 있던 올즈를 1908년 흡수하면서 회사이름을 '제너럴 모터즈 컴퍼니'로 바꾸었다. 이후 캐딜락, 오클랜드 등을 차례로 합병해 오늘날 GM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1910년 모기업격인 뷰익이 판매부진에 빠지자 자금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듀런트는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 대신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GM에서 물러난 듀런트는 시보레를 인수해 베이드 그랜드와 로얄메일등 대중차를 생산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시보레 판매가 늘자 듀런트는 시보레의 주식과 GM의 주식을 맞바꾸기로 하고 재벌가의 후원을 얻어 5년만에 GM 사장으로 복귀했다. 이듬해인 1916년 GM은 회사체제를 새로이 정비하고 '제너럴 모터즈 코퍼레이션'이란 이름으로 새출발했다. 1920년대 들어 듀런트는 GM을 떠나게 되고 알프레드 슬론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자동차 그룹은 시보레, 뷰익, 올즈모빌, 오클랜드(현재의 폰티액), 캐딜락 사업부로 구성되었다. 1911년 해외 수출 전담회사를 세운 GM은 유럽공략에 나서 25년에는 영궁의 복스홀을, 30년에는 독일 오펠을 사들였다. 이들 업체들은 다른 디비전처럼 각자의 브랜드를 그대로 내걸고 지금까지 차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차가 전성기를 누리던 50∼60년대 GM의 모델로는 하리 얼이 디자인한 뷰익르세이버, 스카이락, 캐딜락 엘도라도, 시보레 코베트 등이 있다. 60년대 들어 유럽의 소형차들이 판매를 늘리기 시작하자 발빠른 GM은 미국 최초의 컴팩트카인 시보레 코르베어를 내놓고 컴팩트카 생산에 나섰다. 70년대 두차례의 오일쇼크 등으로 시련을 겪게 되자 GM은 유럽의 자회사인 오펠, 일본의 이스즈, 한국의 신진(대우의 전신) 등과 손잡고 월드카 생산에 나섰다. 70년대 중반 선보인 GM의 월드카는 부품을 함께 쓰면서도 제각기 이름과 모양을 달리했다. 오펠 카데트, 이스즈와 새한의 제미니, GM의 시베트 등이 그런 모델들이다. 80년대 일본 소형차가 미국시장 점유율을 높여가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 새턴 프로젝트다. 90년대 들면서 GM은 소형차 새턴, 고성능 엔진을 얹은 새 캐딜락 등을 발표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86년에는 영국 로터스를 인수하고 90년에는 스웨덴 사브의 주식 50%를 사들였다. 그러나 로터스는 94년 이태리의 부가티로 넘겼고 사브는 99년 나머지 주식도 모두 매입해 완전한 자회사로 만들었다. 90년 역사를 가진 GM은 많은 명차를 만들고 판매와 경영의 혁신으로 세계<font color=aaaaff>..</font>
{기업경제학 경제에세이환경운동의 경제적 효과=======================과목명 :교수명 : 교수님제출일 :학 과 :학 번 :성 명 :기업경제학 경제에세이학과학번성명{환경 운동의 경제적 효과Ⅰ.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환경 문제는 해결해야 할 하나의 큰 과제로 인식되어있다. 대부분의 국가에는 환경부 같은 기관이 존재하고 세계적으로 수많은 환경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인류의 존속을 위해서라는 절실한 명분 하에 환경보존을 강조한다. 환경의 파괴가 이처럼 문제가 된 것은 산업 혁명 이후 급격한 산업화에 기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끝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환경문제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인구의 증가, 도시화, 산업화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인구가 증가하면 생산과 소비를 그만큼 더 많이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되며, 오염 물질의 배출량도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엔트로피의 증가는 인류의 시작부터 있어온 문제였고 어느 정도의 자연 환경 파괴와 오염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그러나 산업 혁명 이후 급속하게 이루어진 산업화와 도시화 때문에 발생한 환경 문제는 그 정도가 다르다. 한 지역의 인구 증가는 자연적 증가와 더불어 지리적 이동에 따른 사회적 증가로 이루어진다. 근대적 산업이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하고,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게 되면서 도시는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다. 도시의 대규모 시설들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엄청난 양의 오염을 일으키고 그 후에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또한 도시에 밀집한 사람들은 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생활 용품을 소비하고, 오염 물질을 배출하게 된 것이다.이들 원인에 의한 환경의 오염은 인간의 도덕성 이라는 측면과 연계되어 인류가 해결해 나가야 할 하나의 큰 영역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단지 도덕성의 문제일 뿐 제한된 자원으로 인간의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합리적인 방데 그 목적이 있는 경제학이라는 분야에서의 의미는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환경문제의 현상 및 그에 대해 그들이 내놓은 해결책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운동으로서 환경운동이 미친 효과에 대해 예를 들어 알아보고자 한다.Ⅱ.환경을 지켜가려는 목적은 무엇보다 인류를 포함한 생태의 보존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삶이 그 중심에 서게 되고 이는 하나의 과학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윤리적인 책임이나 도의적인 생각을 배제한 채 논의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몇 년 전 아마존 우림 지역에서 멸종된 줄로만 알았던 종의 원숭이가 발견되었고 언론에서는 이를 우림 지역이 반드시 보존되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에 수긍을 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원숭이를 알지 못하고 살아왔고 그 원숭이의 멸종에 섭섭해 한 적도 없었으며 그 원숭이가 멸종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뻐하지도 않았다. 그 원숭이는 우리의 삶과 무관했고 경제학적인 효용 또한 전혀 가져다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림 지역의 개발은 이 원숭이와 같은 멸종 식물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큰 효용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문제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그 원숭이는 우림 지역의 개발문제에 있어 거의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환경문제는 이처럼 도의적인 문제를 배제한 채 경제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새로운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환경 오염은 수질오염, 대기오염, 토양오염의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환경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이행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먼저 수질 오염을 줄이기 위해 빨래를 최대한 모아서 하도록 하고 목욕 보다는 샤워를 권장한다.하지만 빨래를 모으기 위해서는 입었던 옷을 다시 입게 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좋아하는 옷을 원하는 날에 입지 못하게 되는 데 대하여 효용이 감소하게 된다. 또을 때의 효용이 샤워를 했을 때의 효용 보다 훨씬 큰 사람에 있어서는 물을 아끼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효용의 희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환경의 보존이라는 더 큰 효용을 가져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물을 맘껏 쓰는 사치를 누리기 위해 '약간의 수질오염'이라는 기회비용을 부담할 가치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또한 환경주의자들은 대기 오염과 토양오염을 줄이기 위하여 녹지를 훼손해서는 안되고 공장의 매연을 규제하여야 한다고 한다.예컨대 자연 녹지를 개간·포장하여 도로를 만들자고 한다면 이를 둘러싼 논쟁이 예상된다. 많은 사람들은 녹지 그 자체를 원할 것이고 또 많은 사람들은 도로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욕구는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지 도덕성이라는 문제가 개입될 여지는 없다고 하겠다. 여기서 환경주의자들은 도로 건설이라는 결정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혹은 '미래세대를 생각할' 때 자연녹지가 도로에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로를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할 경우도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오늘 도로를 건설하지 않는다면 오늘 그 도로를 통하여 가고자 하는 곳을 더 빨리 갈 수 있는 우리의 기회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또 미래 세대가 도로를 자연 녹지보다 선호하는 효용함수를 가지고 있다면 정 반대의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또한 산림 보호를 위한 종이의 재활용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산림을 보호하기 위하여 극단적으로 종이를 재활용하여 쓰도록 한다면 이는 앞의 예처럼 개인 효용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종이 수요를 감소시키고 이에 따라 종이 값은 떨어지므로 제지회사에서는 공급량을 줄이려 할 것이다. 이로써 종이의 재료인 나무 수요가 감소하고 결과적으로는 나무를 심는 데 전보다 적은 노력이 기울여지게 된다. 따라서 오히려 산림은 감소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제지 회사의 수익 또한 떨어져 많은 제지회사들이 도산하게 되고 이는 곧바로 실업의 증가로 이어져 전체 경제 흐름의 독이 될 수도 Ⅲ.그러나 현재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환경오염의 해결책들은 현재 환경주의자들에 의해 환경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운동의 대표적인 예로 아나바다 운동을 들 수가 있다. 아나바다 란 나 한 사람이라도 물건을 아껴 쓰고, 쓰다 남은 것을 나누어 쓰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바꾸어 쓰고, 못 쓰게 된 것을 고쳐서 다시 쓴다면, 그만큼 자원은 적게 소비되고 환경 오염과 파괴는 줄어들 것이라는 환경운동의 모토 중 하나이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인구증가, 산업화로 인한 오염의 속도를 줄여보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로 인한 에너지의 소비 감소는 환경의 보존보다 더 큰 해를 가져올 수 있고 그 근본적인 해결책 또한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먼저 이러한 운동으로 소비자가 자신이 평소 소비하는 양보다 소비를 감소시킨다면 수요곡선을 인위적으로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D→D') 따라서 자원의 가격이 결정되는 균형점은 아래쪽으로 움직이고 재화의 가격은 하락한다. 이로 인해 자원 개발의 양(공급 측면의 Q값)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인 절약 효과는 가져올 수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모든 재화에 적용될 경우 국민 경제 전체에 심각한 해를 입힌다는 데 있다. 사회 전반적인 재화공급의 감소는 재화를 생산하는 기업의 조업도 감소를 가져올 것이고 이 역시 실업의 증가를 초래하게 된다. 이는 개개인의 효용을 떨어트릴 뿐 아니라 결국 국민의 부를 감소시키고 이로 인하여 소비의 성향은 더욱 위축된다. 또 다시 이는 수요 감소로 발전되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게다가 이는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자원만이 자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정은 오직 가정일 뿐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천연 자원이라 함은 지구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을 모두 소진하게되면 인류는 그대로 멸망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기존 에너지원이 다 소그 희소성에 대하여 높은 가격을 매기게 될 것이고 물론 어느 정도의 비탄력성이 작용하겠지만 이는 수요의 감소로 나타나 조금씩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급격한 수요 증가로 새로운 에너지원을 발견하려는 공급측면에서의 노력 또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에너지가격이 상승하면 장기적으로 에너지 효율적인 자본장비의 생산을 촉진하게 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자연자원, 에너지 및 자본간에 보완관계가 많이 나타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대체관계에 있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그러나 환경 운동의 대부분이 이러한 폐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책들이 이들에 의해 입안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나라의 경우 쓰레기 종량제이다. 물론 어떤 정책이던지 고려해야 하는 요인은 대단히 많다. 쓰레기 종량제는 환경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로 받아들여지는데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소비자의 불편은 얼마나 크며 이를 측정했을 때 환경 보호효과와 이 불편의 득과 실은 어느 것이 더 큰 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그래프를 보면 어떤 사람의 부와 그의 쓰레기 배출량에 소비하는 비율에 대한 예산선 B와 무차별 곡선 A 그려져 있다. 여기서 이 사람은 쓰레기 배출을 늘일 때마다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따라서 그의 부는 감소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효용함수와 만나는 점 X만큼의 쓰레기를 배출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할 경우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는 기회는 B'로 표시된다. 이는 X'이상의 쓰레기를 배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사람의 경우 쓰레기의 배출량은 오히려 많아지고 효용은 오히려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평소 쓰레기를 극히 적게 버리고 쓰레기 배출에 극히 적은 부를 할당하는 사람의 극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의 효용은 결과적으로 줄어들게 되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국민 전체의 효용 감소와 환경 보호라는 명분의 무게는 신중히 측정해야할 .
{{Individual Term paper일본애니메이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한국 진출사례일본에서는 전 국민이 그의 작품을 기다린다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야자 키하야오』라는 감독은 그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몰고 옵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은 일본과 달라서 이 감독의 인지도가 현격히 떨어지죠. 물론 제패니 메이션 매니아 층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진 이름이겠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경 로를 통해서 이 작품을 본 적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 따라서 우리의 타겟은 이 사람들이 아니라, 미야자키하야오를 모르는 일반 어린이와 가족들이었습니 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에서의 핵심적인 홍보전략을 과감히 버리고 어린이와 함께 보아도 충분히 교육적이고 작품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캐릭터 나 국제영화제 수상기록과 같은 점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주)브에나비스타 인터네셔널 코리아 이은미 팀장과의 인터뷰 중에서학과학번이름과목명국제경영론교수명{{Indivisual Term paper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 코리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국 진출{{{≪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한국진출 사례≫Ⅰ.영화는 반은 예술이고 반은 비즈니스라는 두 개의 모순된 성질이 존재한다. 이러한 예술성과 상업성이 공존하기에 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라는 일본의 국민적 감독 야마다 요지(山田洋次)의 말처럼1) 영화는 비즈니스만도 아니고 예술만도 아닌 양면성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영화의 흥행 성공도 이 둘의 조화 속에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 만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하 센과 치히로)은 일본 극장 판 애니메이션으로는 보기 힘든 흥행 성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기존의 재패니메이션 또한 그 작품 자체의 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으나 일본과 한국 내에서의 인기와 관객의 욕구에도 불구하고 극장 판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있어 센과 치히로의 성공은 대단히 눈에 띄는 것이었고 애니메이션계에 하나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를 배제하더라도 많은 제작비가 소요되므로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관객 동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시장이 매우 협소한 편이라서 이의 제작 자체가 하나의 모험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실정이다.또한 영화는 유통기한을 지닌 상품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비싼 상품임에도 영화는 어느 정도의 기한이 지나면 극장에서는 더 이상 상영이 불가능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 가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 기간 동안에 집중적인 마케팅으로 관객을 확보하는 일이 강조되는 것이다.다음으로 수명주기를 가진 상품이라는 점이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영화는 극장 개봉을 시작으로 정해진 형태의 순서로 그 유통적 변환을 꾀하며 결국에는 시장에서 사라지는 형태를 보인다.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인 배가게임(snowball's chance)이라는 점이다. 영화 제작에 있어 막대한 원가도 앞서 말한 수명 주기를 거치면서 여러 번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참조) 이처럼 다양한 수익 창구는 영화산업에 엄청난 매력도를 부여하는 것이라 하겠다.이러한 특성은 영화 비즈니스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며 센과 치히로는 이를 적극 활용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Ⅲ.「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한국 진출 경과▲ 베를린 영화제 수상센과 치히로의 한국 개봉은 2002년 2월 6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제52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폴 그린래스 감독의 과 함께 금곰상(그랑프리)을 수상하면서부터 계획되었다. 이로서 메이저 영화제 사상 최초로 대상을 받은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영화산업에 있어서 매우 큰 흥행요인으로 작용하는 구전효과 또한 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 문화 수입에 단계적 제한을 두고 있어, 영화의 경우 세계 영화제에서 지정된 상을 수상하지 못하면 국내에 수입조차 될 수 없는 실정이므로 이 수상은 한국 개봉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었다.4)▲ 배급망의 확보한국 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영화산업은 매우 복잡한 구조를 띄고 있다. 한국에 수입되는 사가 직접 각 지역의 개봉관과 직접 공급계약을 맺어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처럼 국내 자회사에서 담당하는 경우에는 판권 계약이 사실상 의미가 없으며 영화에서의 흥행수익 중 많은 부분을 디즈니에서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브에나비스타는 그들의 막강한 채널을 이용하여, 만화영화로서는 매우 많다고 볼 수 있는, 서울에서만 32개의 스크린을 확보하였다. 특히 상영관에 있어서는 복합영화관(multiplex)를 중심으로 하여 굳이 센과 치히로를 관람하기 위해 온 관람객이 아니더라도 선택의 폭이 넓은 복합영화관에서 수개의 영화 중 하나로서 센과 치히로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물론 많은 영화를 배급하여오고 있는 브에나비스타를 선택함으로써 가져올 수 있는 위험요소도 분명히 있었다. 2002년 7월 브에나비스타는 디즈니 제작물인 릴로와 스피치 를 센과 치히로 개봉 중에 배급하기 위하여 기존 상영관을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수익성이나 스튜디오 지브리에서의 계약 위반에 따른 클레임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릴로와 스피치 의 한국 개봉은 극히 제한된 상영관에 한하였고 이는 브에나비스타 측에서 센과 치히로에 더욱 주력할 수 있도록 하였다.4)▲ 개봉시기2002년 6월 국내 영화계는 월드컵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영화관람의 대체제로서 축구가 작용한 것이었다. 따라서 많은 수의 영화가 그랬듯 월드컵 시즌이 끝나갈 무렵 6월28일로 그 개봉시기를 잡았고 이는 곧바로 여름방학 시즌과 연계되었다. 흥행영화의 30%가 여름방학과 크리스마스/새해 시즌에 상영된다는6) 점에서 볼 수 있듯 여름방학을 공략한 개봉시기는 많은 경쟁자와 함께 평소보다 더 큰 시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을 겪으면서 일본영화가 우리나라에 진출함에 있어 큰 장벽으로 작용하였던 반일감정이 누그러지는 효과 또한 누릴 수 있었다.4)▲ 홍보 전략브에나비스타 측에서 센과 치히로 개봉에 있어 가장 많은 노력을 투입· 홍보한 것과도 상충되는 것으로서 국내에서의 잇단 흥행참패로서 얻은 교훈, 즉 아직도 한국에서는 만화영화는 어린이를 위한 것 이라는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었다. 따라서 독특한 캐릭터와 소재로 흥미를 유발할만한 포스터로서 관심을 유도하였고 주인공이 소녀 임을 강조하였다.또한 코믹 코드를 부각시키면서도 베를린 영화제에서의 수상을 강조하여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흥행영화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데 노력하였다.○ 홍보시점그 동안의 재패니메이션 실패원인 중 불법 복제 CD의 유통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미 오래 전에 일본 및 전 세계 시장에서 출시된 DVD나 비디오를 복제하여 자막처리한 CD로 인하여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뒤 뒤늦게 국내에 개봉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센과 치히로는 홍보시점을 앞당겨 개봉 3주전부터 한국 개봉을 알리려 하였다.4)○ PR전략어린이/ 가족 시장을 목표로 정한만큼 어린 자녀를 가진 가족에게 노출될 수 있는 매체를 적극 이용하였고 TV의 경우 그 시간대를 정하였다. 또한 월드컵으로 달아올라있는 각 매체의 흐름을 활용하였고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 기획기사를 이용하였다.5)○ 광고전략광고는 대부분 4대매체(TV, 신문, 잡지, 라디오)를 이용하였으며 에서와 같이 단계별 전략을 이용하였다.5)먼저 1단계(개봉 3주전)에는 먼저 사람들이 센과 치히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신문이나 방송 등에 티져 형식의 광고를 이용하였고 2단계(개봉2주전∼개봉직전)에는 여름이라는 점을 감안, 시원한 배경과 일본에서의 흥행성적을 강조하는 카피, 그리고 L자형 신문광고와 같이 큼지막한 지면으로 시선을 사로잡으려고 했다. 또한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 내에서 재패니메이션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을 강조한 데 반해, 그 인지도가 한국에서 현격히 떨어지며 일본인의 이름이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표면화한다고 판단, 일본에서의 광고전략의 핵심으로 꼽혔던 감독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과감유도하였다. 또한 관람 후 행동과 구전효과 극대화를 위한 동기부여 방법으로 홈페이지 게시판의 활성화, 캐릭터 인기투표, 퀴즈 경품 이벤트 등을 택해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Ⅳ.결과 분석▲ 성과센과 치히로가 일구어낸 성과는 가히 경이적인 수준이었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 개봉 영화 중 가장 많은 좌석 점유율(관람객 수 / 전체 상영 좌석수)을 보였고 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때문에 다른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적을 스크린 수만을 확보할 수밖에 없는 실상4)을 감안할 때 사실상의 1위 흥행임을 말해준다. 또한 에서 보이듯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그 동안 상상할 수 없었던 220만이라는 성적을 보여주었다. 이는 슈렉(235만명)에 이어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역대 2위의 성적으로서 이는 흥행수익만 해도 65억이 넘는 것이었다.7) 2000년 6월, 정부의 일본문화 3차 개방조치에 따라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된 재패니메이션이 당초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흥행에 부진을 겪어서 「무사쥬베이」나「포켓몬스터」,「인랑」「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이웃집 토토로」등 그간 선보인 작품의 경우, 관객 수는 작품 당 6천500여명~25만명 수준이었고 이에 따라「마녀 배달부 키키」,「추억은 방울방울」,「천공의 성 라퓨타」,「반딧불의 묘」,「아키라」,「스프리건」,「에반게리온 1,2」등도 수 년째 수입사의 창고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 될 정도였다.8) 이러한 상황에서 센과 치히로의 성공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극장에서의 성공은 앞서 말한 배가게임의 법칙에 의해 이어지는 흥행으로 나타났다. 2002년11월25일에는 비디오가 4가지 형태로(자막없음, 한글자막, 한국어더빙, Gift Set) 출시되어 1달 이상 비디오 대여 순위 5위 이내의 성적을 이루어 냈고 2003년 2월 24일에는 DVD로 만들어져 또 한번 많은 수익을 창출했다.9) 게다가 영화의 개봉과 거의 동시에 발매된 O.S.T는 8월까지 약 1달 동안 2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10)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