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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웰빙의 참의미
    현대는 바야흐로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다. 아마 현대인에게 있어서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투자의 대상’이라 말 할 수 있겠는데, 과거에는 외부의 상품들, 예를 들어 부동산이나 은행의 금융상품에 투자를 했다고 하면, 오늘날에는 그보다는 그 모든 것을 관리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상품에게 투자를 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젊은이들이 한 푼 이라도 모아 저축통장을 만드는 것을 보람으로 여겼다면, 현대의 젊은이들은 한 푼 이라도 모아 헬스클럽이나 요가강좌에 등록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계획을 세워 보아도 예상과 다르게 변동하는 주가와 달리, 자신이 운동한 만큼 정직하게 표현하는 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장기적으로 볼 때 자기 관리 능력의 향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기 관리 산업은 개인의 好惡(호오)와 관계없이 지나치게 팽창하고 있으며,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생활습관을 넘어서서 그것을 선택하도록(엄밀히 말하면 소비하도록) 부추김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이른바 ‘웰빙(well-being)’이라 불리는데, 언론에서 보도하는 소위 웰빙족의 생활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 명상과 요가를 한 뒤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육류보다 야채 중심으로 고르되 반드시 유기농 제품을 선택하며, 오후에는 아로마 테라피 요법을 곁들인 스파와 마사지와 피부 관리 등을 받는 등의 수순을 밟고 있다.웰빙을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해당한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행복과 안녕을 뜻하지만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웰빙은 물질적인 가치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마음의 평안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중시하는 태도와 라이프스타일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이다. 최근 여행과 레저 등 인생을 즐기며 자연을 누리고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웰빙은 완전한 생활습관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패션과 인테리어, 뷰티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쳐 하나의 트렌드처럼 여겨지고 있다. 요가나 명상, 자연 성분의 제품을 선호하는 것, 핸드메이드 제품의 사용, 채식 위주의 식생활, 아로마테라피 등은 모두 웰빙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그러나 웰빙의 정신에 감동 받았다고 하더라도 따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신문기사에 나오는 웰빙에 관한 내용을 보면 허브와 머드, 해초 등이 가미된 스파와 호텔에서 내놓은 유기농 식사, 피트니스, 마사지 등이 포함된 웰빙 패키지‘등은 코스에 따라 20만~80만원이 드는 고가의 서비스다. 자연친화적인 재료로 만든 피부 관리 제품도 기존의 제품보다 비싸다. 핸드메이드 제품과 유기농 제품을 소비하고 요가 등을 배우는데도 기초생활비 외에 추가비용이 든다. 장기적으로 보면 웰빙은 보통 사람들이 점점 더 따라잡기 어려운 이상적인 생활습관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빙은 바람직한 삶의 이상향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가 일어나기까지의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웰빙'은 말 그대로 건강한(well,안락한ㆍ만족한) 인생(being)을 살자는 의미다. 원래 미국에서 웰빙은 반전운동과 민권운동 정신을 계승한 중산층 이상시민들이 고도화된 첨단문명에 대항해 자연주의, 뉴에이지 문화 등을 받아들이면서 파생된 삶의 방식으로 부각됐다. 영어의 'Well-being'이란 말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 근원은 60~70년대 미국 히피이즘과 연관성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웰빙의 대표적인 문화적 코드인 요가 붐이나 명상은 60년대와 70년대 초미국의 히피들에 의해 크게 유행했고 80년대 여피(yuppie)족과 90년대 보보스족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웰빙은 중요한 요소였다. 물질적 가치에만 매달리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웰빙은 경제력으로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을 뜻하는 것이 아닌,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육체적으로 건전한 문화적인 삶으로 이해해야 한다.웰빙이 쉽게 말하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인만큼, 이는 현대인의 몸에 관한 지대한 관심을 반영한다고 읽어도 될 것이다. 물론 앞에서 제기한 대로 웰빙으로 그려지는 소비문화에 대해서는 뒤에서 따로 지적할 필요가 있으나, 몸에 대한 부풀려진 관심의 맥락을 추적하는 것 역시 웰빙의 강조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몸에 대한 현대인의 지대한 관심을 분석하는 이론틀은 다양하지만, 기든스는 20세기 후반의 이러한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도의 근대성high modernity'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개인의 외부에서 존재론적, 실존론적 확실성을 구성하고 지탱해 주었던 종교적 세계가 쇠퇴하고 소비문화 속에서 몸이 상징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부각됨에 따라, 후기 근대사회의 사람들은 자아의 구성요소인 몸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종교와 화려한 정치적 서사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또한 개인을 초월한 의미구조들로부터 명확한 세계관이나 자아 정체성을 더 이상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자신의 몸이 신뢰할 만한 자아감을 재구성할 수 있는 탄탄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실제로 근대성이 끼친 수많은 영향중의 하나는 일반적으로 국민국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의료 전문직들이 시민들의 몸에 행사할 수 있는 통제력의 증가라고 여겨지고 있다. 또한 근대성은 몸을 정의하고 규제해 온 종교계의 힘을 축소시켰다. 근대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근대가 인간의 삶을 점점 세속화시켰으나 종교적 확실성을 과학적 확실성으로 대체하지는 못했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과학은 삶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을 증가시켜 주었을지언정(결정적으로 죽음을 정복하진 못했지만), 베버의 ‘탈주술성’논의에서 언급되었듯이 삶을 인도할 가치들을 우리에게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바우만은 이 지점에서 기든스와 마찬가지로 현재 죽음에 대한 종교적 차원의 생존전략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반면 자기관리 전략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가 지적한 대로, 죽음을 취소하는 것은 현실적인 인생 목표가 아니지만, 평생)의 건강유지는 실현 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즉, 일상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치관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과업이 종교적 차원에서 점차 개인들에게 떠넘겨지는 과정에서 죽음은 개별적 사유를 가진 개인적 사건으로 축소되고 몸에 대한 관심이 끊임없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관리 전략은 몸의 궁극적 죽음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몸 프로젝트"를 통해 어떻게 몸의 각 부분들이 갖는 특정한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역점을 두게 되며, 이러한 것들이 현재 ‘피트니스 산업’ 같은 것으로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관심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조성한 사회적 변화를 살펴보면, 제 2세대 페미니즘 운동, 노인들의 요구에 주목하게 된 서구사회의 인구학적 변화, 현대 자본주의 구조의 변화와 연루된 소비문화의 등장을 들 수 있다.)우선 1960년대 등장하여 발전한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은 산아제한과 낙태권에 대한 쟁점들을 정치적 의제로 설정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여성들이 남성의 지배와 학대로부터 자신들의 몸을 되찾기 위한 보다 더 일반적인 프로젝트를 만드는 배경이 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 포르노, 매춘, 대리모에 나타난 여성 육체의 상품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연구를 수행하였다. 여성들이 '과도하게 시달리는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그들의 지적과 '성차'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는 몸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였다.또한 서구사회에서 노령인구의 증가는 사회정책과 연금, 의료, 보호 서비스 및 시설에 소요되는 경비의 측면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니므로 자연스레 몸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연구가 수행되었다.마지막으로 저축, 투자지향성 및 노동력에 근거했던 경쟁 자본주의가 쇠퇴한 반면, 노동 시간의 단축과 생산성의 급증으로 여가를 지향하게 되면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현대인들은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열심히 소비하기를 장려 받는다. 이러한 소비문화 속에서 몸은 규칙적인 운동, 개인적인 건강 프로그램, 고섬유 식이요법, 그리고 세련된 옷차림을 통해 조율하고 보살피며 전시해야 할 일종의 기계, 상품으로 취급되게 된 것이다.사회적으로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부각되었는데 철학적인 측면에서의 웰빙은 어떠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경영/경제| 2004.07.06| 5페이지| 1,000원| 조회(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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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학사상] 논어와 대학
    논어와 대학 보고서1.논어와 대학의 창작 배경1-1논어의 창작 배경공자는 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모친의 손에서 자랐는데, 그 모친마저 17세 때 여의고 말았다. 공자의 집안은 결코 유복하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나중에 공자는, "나는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쓸모 없는 일까지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생활의 서러움과 고통을 철저히 맛보며 자라났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후에 정치에 뜻을 두고 유세활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단념해야 하는 상태에 빠져들기까지 하였다.이 모든 시대의 아픔과 개인적인 비탄에 신음하면서도 끝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위대한 사상가의 기록이 바로 논어이다.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먹고 마시고 머리도 쓰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을 바에는 도박이라도 하여라."놀랄지도 모르지만, 공자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점잖은 성인은커녕, 꽤나 속이 트인 넓은 인품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공자는 언젠가 다음과 같은 감상을 토로했다."가난에 처해서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부자가 되어서 뻐기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다."이것은 역시 가난의 쓰라림이나 괴로움을 체험한 인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자신이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이 말은 성경에도 똑같이 나오는 명언이다.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예의라 할 수 있다.논어는 유교의 근본 사상이 된 논어는 공자의 언행과 사상, 자와 제야 인사와의 문답, 제자들간의 대화를 제자들(주로 증자 및 자사)이 기록해 두었다가 공자가 죽은 후 한나라 시대 공자의 제자들에 의하여 책으로 엮어졌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고본으로는 노논어, 제논어, 고논어의 세 종류가 있어 일부가 여러 사람에 의해 전해 오다가 단편들을 모아 한나라 시대 어느 정도의 원본이 만들어지면서 논어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었으며 현재 많이 사용하고 있는 논어는 송나라 시대 주희에 의해 만들어진 논어집주이다.1-2 대학의 창작 배경사서 가방책, 정치, 학술 등에 관한 것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내용은 매우 복잡하며 각 편 사이에 모순된 곳도 있다. 각 편의 성립시기도 또한 편에 따라 다르며 모든 편이 한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학과 중용은 유교 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중국유교의 역사를 당송을 기점으로 하여 당 이전의 유교를 오경 중심의 유교, 송 이후의 유교를 사서 중심의 유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오경의 대표적인 주석은 후한의 정현의 것이고 사서의 대표적인 주석은 남송의 주자의 것이다.대학의 작자는 분명하지 않다. 정현의 예기에 대한 주에서도 대학의 작자명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후인들이 혹 공자의 제자들이 서로 함께 들은 내용을 편찬한 것이라고도 하고, 공자의 손자인 자상의 작이라고도 하나 추측에서 나온 말들이다. 대학이 단순히 예기 중의 한 편으로서의 의미를 벗어나 하나의 귀중한 독립된 성전으로 표장된 것은 송대에 들어와서이지만 그 시작은 당의 한유에서 비롯된다. 한유는 그의 원도에서 대학의 내용인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 선치기국, 욕치기국자, 선제기가, 욕제기가자, 선수기신, 욕수기신자, 선정기심, 욕정기심자, 선성기의·를 인용함으로써 대학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이어서 후생서에도 대학의 격물치지를 설명하여 역시 대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송대가 되면 과거에 급제한 새로운 진사에게 대학, 중용 등을 천자가 하사하는 풍조가 생겨 세상에 더욱 유행하게 되었다. 대학을 처음으로 예기로부터 독립시켜 단행본으로 만든 사람은 사마광이다. 그는 대학광의라는 단행본을 저술하였으나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그후 대학의 내용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문장의 위치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정호의 대학정본과 정신의 대학정본이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계승한 주자는 자신의 체계에 따라 다시 정리하고 탈락이 있다고 여긴 부분에 134자를 보충하였으며 전편에 주석을 붙여 대학장구라는 독립적인 단행본을 저술하였다. 있으며 그 무렵에 용동 풍당의 집에서 위석조본이 나왔는데 이 또한 예기에있는 대학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다. 유종주가 이 위석경구를 근거로 하여 개정본을 만든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개정본을 만든 바 있고 한국에서는 조선조의 이언적이 대학장구에서 주자가 보충한 134자를 빼고 또 순서를 더욱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로 바꾸어 대학장구보유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는 한국유교사상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대학은 격물치지에서 시작하여 수신제가를 거쳐 치국평천하에서 끝나는 유학의 목적과 정무의 근본을 설명한 국가경론의 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삼민주의' 속에서 손문은 '중국에는 외국의 대정치가들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가장 체계적인 정치철학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이 곧 대학의 정치철학임을 역설하였다.2. 논어와 대학의 내용2-1 논어의 내용엄밀히 말하면, 어느 정도로 공자 본래의 가르침을 전하는가가 문제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논어가 불가결한 문헌임에는 틀림없다. 논어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수사(修辭)의 묘를 얻어 함축성이 깊다. 또한 문장간의 연계가 없는 듯하면서도 깊이 생각해보면, 공자의 인격으로 귀일(歸一)되어 있다.공자의 불요불굴(不撓不屈)의 구도(求道)의 태도, 관용(寬容) 중에서도 사람을 이상선(理想善)인 ‘인(仁)’으로 이끌고야 마는 교육, 그리고 공자를 중심으로 하여 겸허(謙虛)한 안연(顔淵), 직정(直情)의 자로(子路), 현명(賢明)한 자공(子貢), 그 밖의 제자들의 각기 개성에 따른 상호간의 독려 등,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인도주의(人道主義) 사상과 자각자율(自覺自律)의 도덕설(道德說)을 제시한 공자학단(孔子學團)의 활동이 잘 묘사되었다. 모든 내용이 인생 경험의 깊은 영지(英智)의 결정(結晶)으로 음미할수록 가치가 있는 교훈들이다. 즉 예를 들어 이인편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자하지 못한 자는 검소한 곳에서 오래 하는 것이 불가하고, 즐기는 곳에서 길게 하는 것이 불가하다. 인자한 자는 인행동을 하든 사회인으로 행동할 때는 당사자인 자신은 물론 그 상대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배려의 자세 없이는 제대로 행동할 수가 없는 법인데 인자함은 자신을 생각하듯 남을 생각하며 사심 없이 남을 위하는 마음이므로 인자함에 하면 언제나 상대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배려의 마음을 쓰도록 해서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므로 모든 행동을 할 때는 반드시 인자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자함은 남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므로 어떤 행동을 할 때 상대에게 충분한 이해와 배려의 마음을 쓰도록 해서 그 행동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하면 그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지혜로운 자는 그 같은 이치를 깨달아 이로움을 취하고자 할 때도 반드시 인자함에 하며 구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1. 학이편-유자가 말하기를 효성과 우애가 있는 사람으로서 윗사람에게 도리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윗사람에게 도리어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법을 어기고 어지럽힌 사람은 여지껏 없었다. 군자는 기본이 도는 일에 힘써야 하며 모든일에 근본이 서야만 도(道)가 생겨난다. 효성과 우애는 바로 인(人)을 실천하는 근본인 것이다.-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매일 나 자신을 세가지로 반성한다. 남을 위해서 제시해주는 데 정성을 다하였는가? 벗들과 더불어 서로 사귀는 데 신의를 다하였는가?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전하지는 않았던가?”-어진 사람을 어질게 여겨 섬기되 미색을 좋아하듯 좋아하며, 부모를 섬기되 힘을 다할 것이며, 임금을 섬기되 몸을 바쳐 충성할 것이며, 벗과 사귀되 말에 믿음이 있으며 상대방이 비록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학문이 있는 자라고 말하리라.-유자가 말하기를 “약속이 의(義)에 가까우면 그 말을 실천하는 것이 옳으며, 공손함이 예(禮)에 가까우면 욕된 것을 멀리하며, 부탁함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을 사귄다면 역시 으뜸이라 할 수 있다.”-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이 나를 알지 못함을 탓하지 말고, 내가 남을 삶은 원래 정직한 것이니라. 정직하지 않아도 살아있음이 요행으로 면하는 것이니라.-도를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같지 못하느니라.-어진 사람은 어려움은 남보다 먼저 하고, 보답은 남보다 뒤에 얻으면 참으로 어질다 할 수 있다.9. 자한편-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시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도다. 밤낮으로 흘러 그치지 아니하도다.-학문은 비유컨대 마치 산을 만듦과 같아서 한 삼태기를 마저 이루지 못하고 그만두어도 내가 그만둠이며, 비유컨대 땅을 평평하게 하는 것과 같아서 비록 흙 한 삼태기를 부었다 하더라도 나아감은 내가 나아감이니라.-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기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느니라.12. 안연편-학문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단속하면 가히 도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리라.-군자는 남의 좋은점을 키어주고 남의 나쁜점을 키워주지 아니하나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자공이 벗을 사귀는 것에 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의로써 잘못을 일러주고 착함을 권하여서 잘 이끌어주되, 그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그만두어서 자기까지 욕보지 않도록 하여야 하느니라.”13. 자로편-강직하고, 의연하고, 질박하고, 어눌함은 인에 가까우니라.17. 양화편-사람의 천성은 서로 근사하나 습관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느니라.-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큰 길에서 듣고 작은 길에 와서 이야기한다면 덕을 버리는 것이니라.이런 종류의 내용이 담겨 있다.2-2 대학의 내용위의 대학의 창작 배경에서 설명했듯이 격물치지에서 시작하여 수신제가를 거쳐 치국평천하에서 끝나는 유학의 목적과 정무의 근본을 설명한 국가경론의 학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내용은 학문의 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학문의 과정을 밝았던 덕을 밝히는 것, 백성과 하나가 되는 것, 지극히 좋은 상태에서 머무는 것 등의 세가지 강령과 사물에 이르는 것, 지혜를 이루는 것,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것이다.
    인문/어학| 2004.07.06| 6페이지| 1,000원| 조회(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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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학] 성선설과 성악설
    성선설과 성악설중국에서 인성문제가 철학적으로 처음 제기되는 것은 공자로부터이다. 孔子는 『사람의 性은 서로 비슷하나 習으로 서로 멀어진다... 오직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서로 바뀌어 질 수 없다.』라하여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孟子(372∼289 B.C.)는 "사람의 性은 善하다."라 하였고, 한 세기 뒤에 荀子(313∼238B.C.)는 "사람의 性은 惡하다."라 하였다.맹자의 성선설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하자면 인간의 본성은 선이라고 하는 공자의 설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맹자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에는 덕으로 향하려는 네 종류의 마음이 있다고 논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측은(동정의 마음),수오(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함의 마음),사양(겸손의 마음),시비(정을 정이라 하고 부정을 부정이라 한다)의 마음이다. 이 사심이 仁. 義. 禮. 智라는 德의 근본이라 하고, 이것은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쁜 환경 속에 들어가면 욕심이 생겨, 그와 같은 덕으로 향하려는 올바른 마음의 판단이 결여되어 선을 잃게 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맹자는 인간의 선성이 만개한 경지인 호연지기와 선의 표준을 제시해주는 규구의 개념으로 인간의 본성인 선을 극대화하여 이상적인 인간관을 구축하기위한 개념의 설명으로 성선설을 제시한 것이다. 반면에 순자의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한 사회상에 바탕을 두었다. 성악설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욕망에 주목하고, 그것을 방임해 두면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악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수양은 사람에게 잠재해 있는 것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가르침이나 예의에 의하여 후천적으로 쌓아올려야 한다고 하였다.인간이 합리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불합리한 존재인가. 이 문제가 중국 철학에서 성선설과 성악설로 드러나는데, 이는 本性을 선과 악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는 이론이다. '性'이란 인간의 마음에 '본래적인 것', '타고난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性'을 일단 '本性'이라고 번역하자. 성선론자들은 '본래적인 것', '본질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중시하므로 그들이 쓰는 '본성'이라는 말은 '도덕적 이성'을 가리킨다. 그 이성이야말로 인간에게 본래적인 것이며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타고난 것'이라는 뜻을 중시하는 성악론자들에게 본성은 '감정 욕망'을 의미한다. 인간이 태어날 때 '타고난 것'은 바로 감정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자에 따라 가리키는 대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본성'이라고 할 때는 일단 인간의 능력, 특히 마음의 본질을 말하며, '행위의 원동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원동력이 선한가 악한가 또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를 탐구하는 이론이 바로 성선설과 성악설이다. 따라서 성선설과 성악설 모두 결국은 선악의 문제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문제 삼는다.인간을 비합리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하는 성악설로 드러난다. 그런데 성악설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있다. 즉 성악설은 '인간을 멸시하는 이론'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성악설이 모든 인간은 악하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언제나 비합리적이라는 것도 아니고, 악과 불의를 위한 이론인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비이성적이라면 이 세상에 남는 것은 무질서와 혼돈 뿐이며, 아무런 철학도 심지어는 성악설 자체도 펼 수 없을 것이다. 성악설은 오히려 이 세상의 악과 불의를 물리치기 위해 악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처하자는 데서 나온 것이다. 즉,얼핏보면 성선설과 성악설을 대립한다고 보게되지만, 맹자의 성선설에서 말하는 본성이 인간의 이성을 가리킨다면, 순자의 성악설에 말하는 본성은 인간의 "본능"이나 "욕망"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기에 맹자가 그것을 잘 '보존하기 위해'인의에 기초한 교화가 절실하다고 한 반면, 순자는 그것을 잘 '다스리기 위해'예법에 따른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인문/어학| 2004.04.16| 1페이지| 1,000원| 조회(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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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