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지학신승운 교수님2005. 11. 10丁丑子本문헌정보학과 2004313970서현아1. 정축자란정축자(丁丑字)는 세조 3년(1457) 9월에 만들어진 동활자이다. 세조는 젊은 나이로 죽은 의경세자(후에 덕종으로 추존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많은 불경을 인출하게 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그 경의 정문을 세조가 직접 써서 글자본을 삼고 주조한 대자의 동활자를 그 해의 간지를 따서 정축자라 일컫는다. 그리고 그 인본을 정축자판 또는 정축자본이라 일컫는다. 금강경(金剛經) 정문의 큰 자에 해당하므로 금강경대자(金剛經大字)라고도 한다.별 칭주 조 연 대자 본재료크 기(cm)자수인 본즉위기년간지서 기금강경대자세조 3정축1457세조 친서금강경 대자동2.0x1.9금강경오가해 ·금강경삼가해 대자 등2. 특징종래의 이 활자는 을해자(乙亥字)의 대자로 여겨져 왔으나 을해자의 대자는 가로 퍼짐이 심하고 둥근 필의를 짙게 나타내며, 이 정축자는 세조가 친히 쓴 세로가 길쭉한 서법의 해정한 필서체였으며, 활자의 주조가 정교하여 필력이 다른 활자의 대자보다 비교적 예리하게 나타나고 있다. ( 을해자 대자 1.8*2.3 )또 이 글자체는 갑인자(甲寅字)나 병진자(丙辰字)의 필체와 비교된다. 써이(以)자나 이차(此)자에서 보면 그 글씨체가 갑인자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병진자보다는 옆으로 좀 넓게 보이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3. 명칭의 논란『금강경오가해』정문의 큰 자는 정축자, 주석의 중간 자와 작은 자는 갑인자로 인출되었다. 그 때 이 정축자를 주조하기 위해 금강경의 정문을 세조가 몸소 쓴 것을 여러 발문에서 친사(親寫), 수사(手寫), 신한사(宸翰寫), 수서(手書), 어서(御書) 등의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애써 모사의 시각에서 해석하여 동궁이 생전에 쓴 금강경의 글씨를 모사하여 쓴 것으로 보고 덕종자로 일컫는 이가 있다.손보기의 한국의 고활자에서는 덕종자라 일컫고 있다. 본문을 살펴보면세자로 있다가 즉위하기 전에 아버지 세조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덕종이 생전에 금강경 정문을 쓴 일이 있는데, 세자를 잃은 세조가 슬퍼하며 몸소 이 글자를 본받아 썼기 때문이다.그 책이 전하고 있지 않아 그것을 모사한 것인지 또는 그 서체를 보고 임사한 것인지 또는 그 정문을 보고 단순히 깨끗하게 정서한 것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세조는 여러 글자체를 잘 썼으므로 바탕책을 그대로 모사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서체와 비슷하게 썼을 법한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세조가 몸소 쓴 이상 덕종자는 될 수 없고, 덕종체자로 부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안평대군이 조맹부의 서법으로 글씨를 쓴 경우와 같다 하겠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안평대군의 글씨이며, 서체상으로만 송설체로 부를 수 있을 뿐인 것이다. 따라서 그 글자의 명칭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하다.4. 정축자본『금강경오가해』오가란 육조대감, 규봉종밀, 예장종경, 쌍림부대사, 야부천의 다섯 종장을 말하는 것이며, 금강경오가해는 우리나라 함허 득통의 설의 및 결의를 합친 국역해이다. 세조가 동궁의 명유 천도를 위하여 찍어낸 각종 불경 중 하나로 이 경의 정문의 큰자는 정축자, 주석의 중간 자와 작은 자는 갑인자로 100부가 인출되었다.『금강경삼가해』삼가해는 야부와 종경의 주석에 우리나라 득통의 설의 및 결의를 합친 국역해이다. 이것은 세종의 명으로 착수하여 세조가 이어받은 것이나 끝을 맺지 못하고 승하하자 그의 비인 정희왕후가 학조로 하여금 완성시켜 성종 13년(1482) 300부를 인출케 한 것이다. 주석의 중간 자와 작은 자는 을해자 그리고 국문은 을해자 병용 한글자로 찍었다.※ 「금강경」에 대해서...「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반야바라밀경(能斷般若波羅蜜經)」이다. 공사상(空思想)을 근본으로 하는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못지 않게 많이 읽히고 있는 경이 바로 이 「금강경(金剛經)」이다. 「대반야경(大般若經)」처럼 방대하지도 않고 「반야심경」과 같이 간략하지도 않으면서 매우 요령있게 설하여져 있어 평소에 이 경을 독송한다던가 또는 남에게 부처님 말씀을 알림에 있어 가장 적합한 경이기도 하다.「반야심경」과 함께 널리 읽혀지고 있는 「금강경」은 교종이나 선종을 막론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金剛石)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菩薩行)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이라 할 수 있다.「금강경」은 분량이 약 300송쯤 되기 때문에 「삼백송반야경(三百頌般若經)」이라고도 부르는데, 전부 여섯 번 번역되었다. 이 중 가장 널리 독송되고 있는 것은 402년에 번역된 구라마집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경의 구성을 살펴보면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터득하고 있었다는 수보리와 부처님의 문답식의 대화를 전개해 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제1에서 시작하여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제32로 끝나고 있다. 그 사상의 골자는 철저한 공사상(空思想)에 입각한 윤리적 실천에 있다. 부처님이 사위국에서 수보리 등을 위하여 처음에 경계가 공(空)함을 말하고, 다음에 혜(慧)가 공함을 보이고, 뒤에 보살공(菩薩空)을 밝혀 공혜(空慧)로서 체(體)를 삼고 일체법(一切法) 무아(無我)의 이치를 말한 것을 요지로 하고 있다. 「금강경」은 반야부 계통 경전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사상(空思想)을 설하고 있지만 공(空)이란 글자를 전혀 사용치 않으면서도 공의 이치를 유감 없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이 경이 대승불교의 최초기에 성립된 것으로서 아직 공이라는 술어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