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도로서 사법고시를 위한 준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연주회를 위한 연습, 중간고사를 즈음하여 밀려드는 레포트,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중간고사에 대한 부담감. 이런 것들로 나는 심신이 지친 채 피로함을 느낄 여유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안똔 체홉의 ‘갈매기’를 추천하신 다는 교수님의 글을 보고 나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이 과제라는 것을 핑계삼아 그 동안 책 속에 파묻혀 정서가 메마르고 있던 나 자신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줌과 동시에 서정적 감성에 푹 젖어 볼 절호의 기회가 생겨버린 것이다.연극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함께 동행 할 것을 제안했다. 친구는 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는지 선뜻 대답하기에 앞서서 어떤 연극인지를 물어왔다. 그저 제목만 보고 극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내가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나는 급한대로 인터넷을 켜서 서거 100주년이 되었다는 ‘안똔 체홉’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안똔 체홉.러시아 남부의 항도 타간로크에서 출생하였다. 잡화상의 아들로, 조부는 지주에게 돈을 주고 해방된 농노였다. 16세 때 아버지의 파산으로 중학을 고학으로 마쳤다. 당시 러시아에는 다위니즘 ·실증주의 ·유물론 등이 속속 소개되었고 국내에서도 뛰어난 의사가 배출된 시기여서 그는 이에 영향을 받아 1879년에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는데, 그와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단편소설을 오락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하였다.남작(濫作)과 검열과 잡지사(社)의 무리한 요구 등에도 불구하고 1880년대 전반 수년 동안에 《관리의 죽음》(1883) 《카멜레온》(1884) 《하사관 프리시베예프》(85) 《슬픔》(1885) 등과 같은 풍자와 유머와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졌다. 188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젊은 체호프의 생활에 전기를 가져오게 한 것은 작가 D.V.그리고로비치가 1886년에 그에게 보낸 편지였다.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를 품에 그 영향의 흔적이 보인다.1880년대의 그의 창작과 생활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지루한 이야기》는 당시의 울적한 심리상태를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또한 시대적 요구에도 응답한 작품이다. 1870년대에 치열한 반제정(反帝政) 투쟁을 전개한 나로드니키(Narodniki)들은 1880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확고한 이념을 가지도록 요구하였으나, 작자는 주인공인 노교수(老敎授)로 하여금 “나에게는 사상이나 감정을 통일하는 공통 이념이 없다”고 대답하게 하였던 것이다.폐결핵 증세가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890년에는 단신으로 죄수들의 유형지인 극동의 사할린섬으로 갔다. 정신적인 정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으나, 그보다는 제정 러시아의 감옥제도의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사할린 여행에서 돌아온 후 집필한 르포르타주 《사할린섬 Ostrov Sakhalin》(1895)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유형지에서》(1892)와 《6호실 Palata No.6》(1892)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 후에는 톨스토이즘이나 스토아철학의 영향에 의한 금욕적이고도 자폐증적(自閉症的)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연을 인정하기 위한 인간성 해방에 눈을 돌렸다.사할린 여행으로 건강이 악화된 그는 1892년에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0마일쯤 떨어진 멜리호보라는 마을로 주거를 옮겨 창작을 계속함으로써 원숙기를 맞이하였다. 1899년에 결핵 요양을 위하여 크림반도의 얄타 교외로 옮겨갈 때까지 소설 《결투 Duel’》(1892) 《흑의의 사제 Chorny monakh》(1894) 《귀여운 여인 Dushechka》(1899)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 Dama s sobachkoy》(1899) 《골짜기에서 V ovrage》(1899) 등과 희곡 《갈매기 Chaika》(1896 발표, 1898 초연) 《바냐 아저씨 Dyadya Vanya》(1897 발표, 1899 초연) 등을 집필하였다. 이 작품들은 1890년대에 새로운해 아래 선구적인 근대 연극의 무대화에 성공하였다. 주제와 줄거리의 생략이라든지 무대에서의 사건의 후퇴, 사소한 일상사(日常事)의 재현에 의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인생의 진실과 미(美)를 시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희곡으로서 이 밖에 《세 자매 Tri sestry》(1901 초연)와 《벚꽃 동산 Vishnyovy sad》(1904 초연)을 완성하였다.M.고리키가 당국에 의하여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박탈당하였을 때 그는 V.G.코롤렌코와 함께 당국의 처사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반납하였다. 이처럼 혁명 전야에 그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였던 그는 앞에서 든 만년의 희곡과 소설로써 새로운 시대의 숨결을 올바로 전달하였고, 또 동시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한 인간의 눈으로 인생의 깊은 기조를 꿰뚫어 보았다. 예술극장의 여배우 올리가 크니페르와 1901년 결혼하고, 3년 후 독일의 요양지 바덴바덴에서 세상을 떠났다.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이 널리 애독되는 것은 그의 작품이 속악(俗惡)과 허위를 싫어하고 인간과 근로(勤勞)에 대한 애정을 북돋우어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독자의 가슴속에 심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그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내가 예술계, 특히 문학쪽에 이렇게도 관심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처음 들어 보았으나 그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이고, 또 상당한 찬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보려는 연극 ‘갈매기’ 또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시작되어 공연되고 있었다.꼬리를 무는 인간 군상의 제각각 사랑법[서울경제 2004-10-07 17:36]인간의 일상적인 삶 속에 존재하는 갈등과 사랑을 그린 안톤 체홉의 연극 ‘갈매기’가 정동극장에서 오는 31일까지 무대에 오른다.19세기 말 모스크바 근교 쏘린의 영지. 젊은 작가지망생 꼬스챠는 젊고 순진무구한 처녀 니나를 사랑하지만, 니나는 그의 어머니 아르까지나의 정부인 소설가 뜨리고린을 사랑한다.뜨리고린은 젊고 순진한 니나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지만 사랑하고 화해하며 같이 살아간다.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꿈과 열정을 실현시키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노력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모두가 이기적이고 자기의 삶에 빠져있기 때문이다.체홉의 갈매기는 우리들에게 묻는다.우리 모두가 혹시 갈매기는 아닐까. 갈매기의 비극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달관의 경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답을 제시한다.체홉 서거 100주년 기념 공연인 이번 작품은 러시아 국립 쉐프킨 연극대 출신인 연출가 전훈의 구어체 대사와 사실적인 표현으로 100년간의 진지하고 무겁고 심각했던 갈매기의 분위기와 달리 경쾌하고 빠른 진행을 맛 볼 수 있다.송옥숙, 김인권, 조민기, 김호정 등 TV, 영화 연극 각 분야에서 우리들에게 익히 알려진 개성있는 연기자들의 연기대결도 볼 만 하다.이 정도 사전 조사를 해 보고 나니 연극을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일요일. 친구와 도서관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다가 벌떡 일어나 정동극장을 향해 길을 나섰다. 예상했던 대로 극장 근처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행여나 매진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였지만 줄을 서서 기다린 우리는 표라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극장 안에는 좌석을 배정받지 못했는지 계단에 자리를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팜플렛을 받아보니 극중 인물들 간의 애정관계가 도표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과연 전부를 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얽히고설킨 그들의 관계. 사랑의 화살표는 좀처럼 일치하기 어려운 것일까. 눈망울 가득히 호기심어린 채로 기대에 부풀어 극장의 어둠 속에 묻혀갔다.극장 안의 그 많은 사람들과 무대에 선 배우들이 마치 하나가 되어 가는 듯 연극은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다. 좁은 의자에 자리도 불편했지만 쉬는 시간이 되기까지의 1시간 20분간의 공연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쉬는 시간, 우리는 배우의 연기와 카리스마에 대해서 경탄을 금치 못했고 인물들의 캐릭터와 관계에 관해서 의논해 보기도 했다. 또, 포스터가 걸려져 보며 글의 소재거리를 읊는다. ‘한 소녀를 사랑한 남자. 그 남자는 이 갈매기처럼 그녀를 장난삼아 사랑하고 파멸에 몰아넣는다’ 너무나 밝은 분위기, 그리고 이제 막 사랑을 속삭이려는 남자가 그런 대사를 말한다는 것이 연극을 보는 당시에는 이상하다고 느껴졌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니나의 운명을 암시하는 강력한 복선이었다. 트리고린에게 버림받고 코스챠를 찾아온 니나는 자신이 갈매기라고 말한다. 한 남자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져 버린 그녀. 코스챠와 니나가 만나고 있던 방 옆에는 코스챠의 어머니와 그의 정부로 돌아간 트리고린이 가족들과 함께 신나게 웃고 떠들고 있다. 코스챠의 삼촌 소린이 고용한 집 안의 일꾼 샴레프는 트리고린에게 옛날에 그가 자신에게 했던 부탁을 상기시킨다. 그 부탁은 갈매기 박제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리고린은 그가 갈매기 박제를 가져다 그의 얼굴 앞에 들이대도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갈매기 박제는 트리고린의 니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트리고린은 처음에는 니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갈매기를 박제해 두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녀를 버렸고 자신이 그런 부탁을 했다는 것조차도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영원하다는 것, 특히나 사랑에 관한한 그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 작가는 갈매기를 통해서 코스챠와 니나, 그리고 트리고린 이 세 사람의 슬프고 가슴 아픈 사랑과 운명을 상징하려고 했던 것 같다.코스챠를 사랑했던 마샤는 그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을 보고 그를 잊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그녀를 짝사랑 해 오던 중학교 교사 메드베젠코와 결혼을 하고 만다.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통해 그녀가 마음 먹은 대로 코스챠를 잊을거라고 확신했으나 2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2년 전과 다름없이,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괴로운 삶을 산다. 과연 그녀의 선택은 옳았던 것일까. 정말로 사랑은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하여 이루어 지기 보다는 어긋나 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메드베젠코가 마샤를 사랑하고 마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