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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데우스를 통해 본 로코코 의복
    (1) 의복1) 여자의 의복① 로브로코코 시대의 대표적인 여자 의상은 로브이다. 로브는 고딕 말기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18세기 로코코 시대에는 복식사상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18세기 로브의 전형적인 모습은 가슴 깊이 판 데콜테와 크게 부풀린 스커트에서 찾을 수 있다. 로브의 형태는 17세기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으나, 18세기 중엽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스커트 버팀대인 파니에 두블로 인해 구성법은 한층 더 복잡해 졌다. 당시의 네크라인은 유두가 보일 정도로 가슴을 깊게 파인 U나 형태로 어깨를 드러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로브의 가장 큰 특징은 소매 끝에 다는 3~4겹의 층을 이루는 레이스 러플, 앙가장트에 있다. 이 앙가장트는 소매를 더욱 우아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면서 팔발라(헝겊이나 레이스를 주름잡아 만든 트리밍)와 함께 18세기의 로브에서 가장 큰 장식적인 역할을 했다. 로브의 가슴을 장식하는 스터머커도 중요한 장식요소의 하나로 리본을 이용한 에셸스터머커가 있었다.(◀ 깊게 파인 네크라인과 리본으로 장식된에셸스터머커가 보인다.)뒤의 주름이 풍성한 와토 가운은 18세기의 대표적인 로브이다. 와토 가운은 그 형태에 따라 다시 앞까지 풍성한 로브 볼랑과 앞은 꼭 맞고 스커트가 더욱 넓어진 로브 아 라 프랑세즈로 나뉘어진다.(◀ 뒤에 주름이 잡혀 있는 와토 가운)? 로브 볼랑 : 로브 바탕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단정치 못한 네글리제(실내복) 같다는 평을 받았으나, 뒤 목둘레와 양 어깨로부터 생겨난 주름이 스커트 자락을 넓고 너울거리게 하여 그 모습이 매우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것으로 널리 환영받게 되었다.(◀ 임신했을 때 입고 있던 옷으로 루이 14세 때 몽테스판 부인이임신 중에 입었던 것이 유행된 로브 볼랑을 표현하려 한 듯싶다.)? 로브 아 라 프랑세즈 : 로브 볼랑의 변형으로 파니에 두블을 속에 입어 상체는 꼭 끼고 스커트는 양 옆으로 벌어지며 뒤에는 와토 주름을 넣어 풍성하게 했다. 가슴은 V자형으로 벌어지고 스커트는 형으로 벌어져 그 속으로 언더스커트가 보였다. 언더스커트는 위에 입은 로브와 같은 직물로 만들고 같은 장식을 했다. 리본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에셸스터머커가 특징이다. 이는 로코코 최성기 의상을 대표한다.(◀ 팔발라와 소매의 앙가장트가 보인다.레이스와 리본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언더스커트도 보인다.)? 로브 아 라 카라코 : 부인용 승마복에서 유래한 것으로 허리까지 오는 상의가 붙거나 허리선에 페플럼이 여러 장 늘어져 붙은 것 등이 있다.(◀ 상의가 허리까지 온다.)? 로브 아 라 폴로네즈 : 로코코 말기의 대표적인 로브로서 로코코 양식의 특성을 잘 나타내준다. 오버스커트를 여러 개의 드레이프로 부풀려서 양 옆과 힙 쪽에 놓이게 한 것으로 오버스커트는 밑바닥에 바느질된 틀을 통해 꿴 코드를 커튼처럼 잡아당겨 옷자락을 원하는 높이로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소매는 자보 슬리브로서 팔꿈치는 꼭 끼고 그 끝은 러플로 장식했다. 로브 아 라 프랑세즈보다 스커트의 통도 좁고 길이도 약간 짧아져 활동하기에 간편했다.? 로브 아 랑글레즈 : 몸에 꼭 끼는 바디스로 가슴을 강조했다. 이 가운은 파니에 없이 착용할 수 있고 간편하면서도 풍성했으므로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애용되었다.? 로브 아 라 레비트 : 스커트는 앞이 넓게 벌어져 속의 페티코트가 보이도록 했다.? 로브 아 라 시르카시엔느 : 로브 아 라 폴로네즈의 변형으로 길이가 짧아져 다리가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치마가 짧아져서 다리가 보인다.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 복식 중에서 다리가 보였다.)? 슈미즈 아 라 렌느 : 목선은 깊이 데콜테 되었으며, 그 주위에는 러플로 메디치 칼라처럼 세워 달았다. 소매는 풍성한 것으로 가운데를 한 번 매 주었기 때문에 귀여운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스커트는 개더를 잡아 풍성하고 허리에는 새쉬벨트(천을 주름지게 접어 맨 허리띠)를 맸다. 실크나 울로 만들었다.? 르댕고트 가운 : 날씬한 외투로서 오늘날 여자 코트의 시조가 되었다. 앞단추는 더블이며 넓은 라펠이 있고, 허리를 가늘게 강조하였다. 속에는 하얀 천으로 만든 란제리 칼라와 러플 커프스가 있는 슈미즈를 입었다. 실용적 목적으로 울을 사용했다.? 버슬드레스 : 드레스를 폴로네즈시키고 힙을 부풀렸다.? 만투아 : 허리선에서 스커트 단까지 직각으로 퍼지고 앞뒤가 납작한 씰루엣을 이루고 있다.② 외투? 플리스 : 망토처럼 생겼다. 안 전체나 가장자리에 모피를 둘렀다. 크기는 다양했다.? 펠레린 : 후드가 달린 망토 스타일로 팔을 뺄 수 있는 슬릿이 양쪽에 있는 것도 있다.③ 콜셋콜셋의 버팀대인 코르발레네를 사용하면서 곡선과 직선의 고래수엽을 이용하여 배와 등을 판판하게 하고 유방을 더욱 풍만하게 보이는 방법을 창안했다. 허리를 가늘게 보이기 위해 앞 중앙을 향해 V자처럼 선을 만들며 구성했으며 3~4cm 간격으로 중앙을 향해 대각선 방향으로 꿰맸다. 콜셋의 오프닝은 앞 중심보다는 뒤에 위치하는 것이 많다.④ 슈미즈슈미즈의 목둘레선과 소맷부리, 단 등에 화려한 고급 레이스나 프릴을 장식했는데, 화려한 슈미즈가 로브 밑에 살짝 보이게 했다.⑤ 파니에콜셋으로 허리를 조인 위에 파니에라 부르는 스커트 버팀대를 슈미즈 위에 입음으로써 속옷차림이 끝난다. 사이드 후프, 즉 파니에 두블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후에 터무니없이 확대되어 수많은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2) 남자의 의복바로크 시대인 1670년쯤에 쥐스토코르라는 실용적인 의상이 확립되고, 남자의 복식은 기본형에는 이제 큰 변화를 볼 수 없다. 쥐스토코르, 베스트, 퀼로트가 한 세트로 되는 형식이 지속된다.① 코트? 쥐스토코르 : 허리는 여성복처럼 약간 들어가고 힙으로부터 단가지는 밖으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씰루엣을 특징으로 한다. 앞의 오프닝에는 단추를 달았는데, 단추의 크기는 다양했다. 쥐스토코르 안에 입은 아름다운 베스트를 보이기 위해 단추는 끼우지 않고 열어놓거나 허리에만 한 두개의 단추를 끼웠고 따라서 허리가 더 가늘어 보이면서 허리에서 단까지 퍼지는 곡선을 더욱 아름답게 강조되었다. 소매끝으로 슈미즈 소매의 레이스가 보이게 입었고 좁은 소매끝에 달린 넓은 커프스는 이 시대의 유행이었다. 쥐스토코르는 18세기 후반부터 일반인들에게 수수한 형태로 입혀졌다.(◀ 길이가 긴 베스트와 바지인 퀼로트가함께 보인다. 베스트를 보이기 위해단추를 채우지 않았다.)? 아비 아 라 프랑세즈 : 화려한 장식성이 강화되었으며 코트의 앞단이 허리부터 단에 걸쳐 조금씩 사선으로 잘려 나감으로써 플레어진 풍성함이 감소되었다.(◀ 베스트와 퀼로트, 호즈, 목에 두른 클라바트도 함께 보인다.)? 프락 : 아비 아 라 프랑세즈와 형태가 비슷한데, 보다 활동하기 편한 형태였다. 카튼과 울을 사용했고, 어두운 색을 이용함으로써 실용성을 고려했다. 루이 16세가 복장의 간소화를 위해 아비 아 라 프랑세즈 대신 프락을 궁중의 공식복장으로 사용하게 되어 명칭도 프락 아비에라고 바꿨다.(◀ 손목에 슈미즈가 나온 것이 보인다.베스트와 퀼로트를 함께 입었다. 또한 장식품인 볼드릭도 보인다.)? 르댕고트 : 영국의 승마용 라이딩 코트에서 유래되었다. 뒤 중앙에는 슬릿을 넣어 활동을 편하게 했다. 힙에 주름은 없으나 헴 둘레가 비교적 넓고 허리선이 들어갔다. 아리 아 라 프랑세즈 대신으로 착용하게 되었다.② 조끼? 베스트 : 길이는 초기에는 쥐스토코르나 프락보다 약간 짧게 넓적다리까지 왔다. 베스트에 사용된 옷감은 위에 입은 아비 아 라 프랑세즈와 잘 조화되는 고급의 씰크나 울을 사용했으며, 의상의 화려함을 전시할 수 있는 수단이었으므로 상업상 귀중한 품목의 하나가 되었다.
    예체능| 2008.04.11| 7페이지| 1,000원| 조회(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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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집트 왕자를 통해 본 이집트 복식
    (1) 의복이집트의 의복 형은 신체의 일부에 간단히 걸치거나 전체에 헐렁하게 둘러 입는 식의 밀착되지 않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체열의 발산을 최대한 크게 할 수 있었다. 마직 리넨이 주 소재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얇고 가벼울 뿐 아니라 통기성, 흡습성이 좋아 그들의 기후 풍토에 매우 적합했을 것이다.왕의 의복에는 수직선의 주름을 잡아 태양신의 아들임을 과시했고, 상? 하 이집트신의 상징인 독수리와 성사(뱀) 등을 중요한 장신구에 반드시 조형화 하였다.다신교 신앙은 주위의 상징적 자연물을 조형화하여 복식을 비롯한 모든 의장에 사용되었다. 장식의 모티프는 세력의 영구불멸을 의미하는 뜻으로 태양이 많이 사용되었다.① 로인 클로스(▲ 로인클로스를 입은 신하와 일반백성들)(▲ 파뉴와 쉔도트를 입은 왕과 왕자들)바느질을 하지 않고 천을 그대로 허리에 두른 가장 간단한 형태의 의상으로 남녀가 입는 기본적인 옷이다. 많은 활동이 필요할 때 애용되었다.? 파뉴 : 왕족의 남자들이 둘러 입었던 로인 클로스, 쉔티, 킬트의 총칭이다. 길이는 허리에서 무릎 위 또는 발목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이고, 여기에 핀턱주름이 전면적으로 잡혀 있다. 후에 주름이 많이 잡힌 파뉴를 가리켜 갈라 스커트라 했다.? 쉔도트 : 왕족의 남자들이 파뉴 위에 두르는 에이프런형의 장식패널로 매우 정교하고 호화롭다.? 트라이앵귤러 에이프런 : 장식적 효과를 위해 왕족의 남자들만이 착용했다. 태양의 햇살 모양을 상징하는 주름이 있었으며, 왕은 뱀 머리 모양의 장식을 하기도 했다.② 쉬스 스커트어깨끈이 달린 긴 스커트로 여자가 주로 착용했다. 어깨끈을 V자나 11자로 단 형태로 하이웨이스트로 하여 유방이 그대로 드러났다. 재료는 주로 두꺼운 리넨이나 울에 자수를 하거나 구슬로 장식을 했으며, 또는 가죽을 무의대로 잘라 내거나 끈으로 그물처럼 엮어 짜 사용한 것 같고, 전면에 기하학적 무늬나 수 장식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③ 칼라시리스직사각형의 반투명한 리넨 천을 가운데에 목둘레선을 내고 양 옆을 앞으로 접거나 앞자락을 뒤로 돌리고 뒷자락을 앞으로 돌린 후 허리띠를 매거나 핀을 꽂아 입는 의상이다.(▲ 쉬스 스커트와 칼라시리스를 입은 여자들)④ 튜닉블라우스처럼 상의로 입혀진 짧고 넓은 튜닉이 있는데, 왕족의 축제 때 입었다.⑤ 하이크몸에 걸치거나 두르는 숄형 의상을 가리킨다. 몸에 걸치거나 두르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이 연출될 수 있다. 이집트 의상 가운데 가장 우아한 형태로 독창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2) 머리장식남녀를 막론하고 가발이나 머릿수건인 네메스를 사용했다. 가발재료는 리넨이나 종려나무 섬유를 사용하다가 울이나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부피를 크게 만들어 모자처럼 사용했다.가발은 신 왕국 시대에 한층 더 장식적이고 화려해져 왕의 상징적인 신분이나 위엄을 나타냈다. 왕은 뱀 머리와 독수리를 왕관에 장식하여 왕의 권위를 나타냈다.두껍고 빳빳한 헝겊으로 만든 피라미드 모양의 머릿수건을 썼는데 이를 커치프라 했다. 왕이나 여왕이 쓴 커치프는 클라프트라 했는데 이것은 황금색과 청색의 줄무늬가 있었다.이집트인의 독창적인 장식성은 뱀의 표피를 모방한 인공적 턱수염에서도 드러난다.(▲ 가발과 머리수건을 쓴 사람들)(▲ 클라프트를 쓴 왕. 뱀의 표피를 모방한 인공적 턱수염인 포티쉐.
    예체능| 2008.04.11| 4페이지| 1,000원| 조회(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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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멜롯의 전설을 통해 본 중세 복식
    (1) 의복① 블리오중류 이상의 귀족남녀들이 착용한 것으로 상체가 몸의 윤곽선이 나타날 정도로 끼고 하체는 통이 넓어지게 되었고, 발등을 덮는 길이였다. 위나 옆을 트고 끈으로 X자로 묶었다. 깔때기처럼 넓은 소매가 특징이고, 긴 허리장식 끈을 허리에 한 번 돌린 다음 다시 아랫배에서 매고 끝을 앞에다 길게 늘어뜨린 것이다. 울과 씰크의 교직을 많이 사용했고, 블라우스는 이 블리오에 기원을 두고 있다.(영화에서는 소매가 퍼지지 않았고 허리띠가 없다. 등 뒤로 X자로 묶은 끈이 보인다.)② 튜닉일반 서민들이 착용한 겉옷으로 무릎 정도로 짧게 입고 벨트를 맸다.(브레와 같이 입은 것이 보인다.)③ 쉥즈리넨이나 얇은 울로 만든 튜닉의 속옷으로 몸에 끼는 듯 한 이 옷은 발목까지의 길이에다 폭이 좁고 소매통도 좁다. 중세 말기에 슈미즈로 바뀐다.(영화에서는 쉥즈 안에 소매가 없는 속옷이 하나 더 있었다.)④ 지퐁십자군 병사가 착용했던 조끼 형태의 옷이다. 추위나 적군의 무기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⑤ 코르사주몸에 꽉 끼고 앞이 트이지 않는 조끼 스타일로 블리오 위에 입었는데 몸의 곡선을 나타내기 위해 블리오처럼 등 뒤를 트고 끈을 끼워 잡아당겼다. 울과 씰크의 교직물을 두?세 겹 겹쳐서 누볐다.⑥ 브레남자들이 튜닉 밑에 착용한 헐렁한 바지이다.⑦ 망토블리오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망토의 길이도 길어졌다.(2) 신발비잔틴의 영향으로 11세기 말경부터는 앞이 뾰족한 구두가 유행했다. 후기로 갈수록 본격적으로 앞이 뾰족하게 돌출되었다.(3) 머리장식짧은 단발이 주를 이루었고, 남녀공용으로 후드가 애용되었다. 여자들 사이에서는 턱에다 끈을 묶는 코이프가 상류층에서 애용되었다. 여자의 머리 모양은 앞가리마를 타서 머리를 두 가닥이나 세 가닥으로 땋아 길게 내려뜨린 형태가 주를 이뤘고, 흰색의 베일이 있었는데 이를 윔플이라 했다.
    예체능| 2008.04.11| 3페이지| 1,000원| 조회(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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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통해 본 고딕 복식
    (1) 의복① 꼬뜨(Cotte)남녀가 함께 입은 튜닉형 원피스드레스로 블리오가 없어지고 대신 생긴 것이다. 단순한 형태와 서민적인 성격을 띠며, 울이 주로 사용되었다. 상체가 비교적 여유롭게 맞고 스커트 부분이 넓어져서 자연스러운 드레이프가 생겼다. 소매는 돌먼슬리브나 소매통이 전체적으로 좁은 소매가 달려 현대적 감각을 느끼게 했다. 길이는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었다.(◀ 길이가 약간 짧게 표현된 듯하다.)② 코타르디(Cotehardie)꼬뜨의 변형으로 허리는 맞고 앞 중앙선에 장식적인 단추를 달았으며, 여자의 것은 스커트가 길고 풍성한 스타일에 남자의 것은 짧은 무릎길이로 타이트하고 힙 근처를 값진 벨트로 장식했다. 상체는 단추를 달거나 끈으로 여미었고 목이 파인 것이 보통이다. 행잉슬리브라는 장식소매 형태를 이루기도 하였으며, 허리 양쪽에 슬릿이 있어 여기에 손을 넣어 스커트를 들고 다닐 수 있었다.후에는 소매가 짧아지고 거기에 따로 행잉슬리브를 달기도 했는데, 이는 장식적인 것으로 후에 티핏으로 불리었다. 14세기 말부터 귀족부인들은 의상에다 가문을 나타내는 문장을 수놓기 시작했다.(◀ 망토와 모자가 보인다.)(쇼오스를 입고 부츠를 신었다. ▶)③ 쉬르코? 쉬르코십자군 전쟁 때 갑옷 위에 입기 시작한 의상으로 차차 일반에게도 유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두 개의 직사각형 천을 양쪽 어깨에서 꿰매어 걸쳤는데, 후에는 옆솔기선을 꿰매기도 하고 가슴부터 스커트 단까지 풍성한 주름을 잡아 넓히는 등 씰루엣이 다양해졌다.? 쉬르코투베르쉬르코가 변형되어 화려하고 독특한 스타일로 발전한 것인데, 주로 상류층 귀족들이 애용했다. 진동이 크게 벌어져 허리선이나 힙까지 보이는 점퍼스커트형이다. 꼬뜨나 코타르디 위에 입혀지는 장식적인 겉옷이므로 씰크와 고급 울로 만들어졌으며, 화려한 단색으로 안팎 또는 좌우가 대조되는 색상을 배합했다.④ 푸르푸앵(Pourpoint)지퐁이 변형, 발달된 것으로 앞이 트이고 단추로 여민 점이 지퐁과 다르다. 앞 중앙에 오프닝에 단추가 촘촘히 달렸고, 길고 타이트한 소매에도 팔꿈치부터 단추가 촘촘히 달렸다. 후기로 갈수록 몸체가 꼭 맞고 패드를 넣어 가슴과 어깨를 부풀린 것이 특징이다. 브레나 양말과 같은 쇼오스와 함께 입혀졌는데, 이는 남성만이 착용했던 특유한 의상이다.(◀ 브레와쇼오스도보인다.)(◀ 푸르푸앵에 쇼오스를 입고 있다.푸르푸앵의 앞면에는 문장이 보인다.소매부분에는 슈미즈가 보인다.)⑤ 우플랑드(Houppelande)풍성한 품에 매우 넓고 긴 소매와 귀밑까지 높게 세운 칼라가 특이한 씰루엣으로 코트 스타일의 원피스 드레스이다. 이 의상의 특징은 소매의 디자인에 있는데 소매 끝이 바닥에까지 끌리며, 소맷단 끝이 깔때기처럼 거창하게 넓어져 다양한 무늬가 장식되었다. 귀족과 대상인들은 우플랑드의 폭과 길이를 더 늘려서 기이한 모양을 더욱 강조했다.(◀ 소매가 잎사귀무늬로 장식되어있다. 원래 풍성한 품이지만슬림하게 표현된 듯 하다.)⑥ 슈미즈(Chemise)로마네스크 시대의 쉥즈와 같은 것으로 고운 리넨으로 만들어졌으며, 목둘레와 소맷부리에 금실이나 색실로 자수를 하거나 레이스로 장식했다.(◀ 치마속에 슈미즈가보인다.)⑦ 브레(Braies), 쇼오스(Chausses)종래의 바지 형태이던 브레는 속옷으로 바뀌고 쇼오스가 대신 바지로 되어 푸르푸앵과 아래위 한 벌의 남자 옷이 되었다. 쇼오스는 이 당시 문장의 표시가 유행했던 것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양쪽 다리의 색을 달리하는 것이 많았다.⑧ 로브(Robe)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복식이다. 네크라인이 V자로 하이 웨이스트까지 깊게 파이고 이 부분을 슈미즈나 대비생상의 천으로 장식했으며, 후에 이것은 스터머커로 변화되었다. 소매는 길고 풍성하며 뒷부분에 트레인을 달거나 뒷부분을 길게 땅에 끌리게 디자인했다.
    예체능| 2008.04.11| 5페이지| 1,000원| 조회(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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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엠마를 통해 본 엠파이어 복식
    (1) 여자의 복식1) 혁명시대슈미즈 가운으로 그다지 폭이 넓지 않은 긴 스커트, 하이 웨이스트 라인, 짧은 소매 등의 간편한 스타일을 특징으로 한다. 하이 웨이스트 라인에 파니에를 받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매의 미적효과를 주면서 입고 활동하는데 편해 기능적인 효과도 함께 발휘했다.2) 총재 정부 시대머리형이 단순화됨에 따라 모자에 관심이 많아져 다채로운 장식을 붙인 보닛이 유행했다.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캡형 또는 큰 리본으로 장식한 밀짚모자 등도 애용되었다.낮은 굽의 펌프스가 유행했고, 고대풍의 슈미즈 가운이 먼저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이 슈미즈 가운은 보통 짧은 소매가 달렸기 때문에 팔꿈치까지 오는 긴 장갑을 끼는 것이 유행했다.총재정부 시대 초기에는 스커트의 뒷길이가 앞보다 약간 길어서 마루에 살짝 끌리면서 한 손으로 무릎이 보일 정도로 끌어 올리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다. 무늬 있는 얇은 카튼이나 리노 등으로 된 숄을 걸쳤다. 슈미즈 가운은 흰색 바탕에 수를 놓은 것이 많았고, 숄에는 캐시미어도 사용되었다. 단발의 간단한 스타일과 남자머리처럼 짧게 컬한 형도 유행했고 그리스의 머리형처럼 자연스럽게 컬 되어 장식 밴드로 올려 맨 것과 같은 옛 모습이 유행했다. 장신구도 고대풍을 보였다.3) 집정 시대와 제 1 제정 시대집정 시대의 복식은 총재정부 시대의 것을 그대로 계승하였는데, 부자연스러운 것이나 인공적인 것은 많이 정리되고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통일되었다. 슈미즈가운은 가슴을 더 넓게 파고 더욱 부드럽고 얇은 옷감을 사용함으로써 육체미를 그대로 나타내려는 경향을 띠었다. 이 시대의 슈미즈 가운이 혁명기나 총재정부 시대와 다른 것은 허리선이 위로 더욱 올 리가 유방 바로 아래에 머물렀고 짧은 소매에 퍼프가 생기거나 소매가 더욱 좁고 길어진 것이다.장식용 스커트를 뒤에 트레인처럼 길게 달아주었다. 장식용 스커트는 몸판과 합쳐져 드레스를 두개 입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하였다. 숄은 작은 것이 방한용 또는 장식용으로서 애용되었다.(◀ 드레스를 두 개입은듯한 트레인장식)(어깨에 걸친 숄 ▶)제 1제정 시대의 복식은 집정시대의 것보다 한층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 우아함을 더했다. 뒤에 끌리는 장식적인 트레인과 데콜테를 따라 달린 주름 칼라인 콜레트와 넓어지는 스커트 폭 등은 단순한 슈미즈 가운을 로브로 변형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콜레트는 풀을 먹인 모슬린이나 레이스를 곱게 주름잡아 데콜테 네크라인을 따라 한 두 단 또는 세 단을 겹쳐서 단 것이다.1808년부터 엠파이어 드레스는 씰루엣이 다소 변하였는데, 길이는 발목이 보일 정도로 짧아지고 스커트 폭은 조금 넓어졌다. 소매는 단순한 의상형태에 변화를 준 주요 부분으로 다양한 취향으로 전개되었다. 소매도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 이 시대에 애용된 외투로는 총재정부 시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스펜서가 있는데, 이는 로브의 하이 웨이스트 라인이 제 허리위치로 내려옴에 따라 유행에서 사라졌다.(◀스펜서) (◀르댕고트) (◀짧아진 길이)몸 전체를 덮는 외투로는 플리스가 있었다. 르댕고트는 플리스보다 완전한 방한용 외투로서 18세기 말기부터 유행되어 왔다. 속옷으로는 슈미즈가 종전대로 사용되었으나 몸매를 그대로 나타내려는 엠파이어 스타일에 있어서 속옷은 필요하지 않았고, 속옷의 종류도 적었고 형태도 다양하지 못했던 것 같다.(2) 남자의 복식궁정에서는 종전의 옷차림으로 부드러운 실크로 만든 목장식 자보를 보이며, 칼라를 높이 세운 상의 프락 아비에와 짧은 조끼로서 베스트, 그리고 꼭 끼는 바지 퀼로트의 완전한 정장 차림이 여전히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짧고 꼭 끼는 퀼로트가 길고 헐렁한 판탈롱으로 바뀐 것이다. 판탈롱은 귀족 사회의 몰락과 민중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남자 복식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판탈롱 위에는 허리에 닿는 짧은 길이의 카르마뇰이라고 하는 시민복인 상의를 입거나 르댕고트형의 긴 상의를 입었다.
    예체능| 2008.04.11| 4페이지| 1,000원| 조회(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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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