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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중국의 철학 사상
    중국철학은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의 시대이다. 이는 주나라의 봉건제가 무너지면서 제후들이 독립하여 치열하게 싸우던 시기로 이른바 '춘추 전국 시대'로 불리운다. 이 때 중국 철학의 기초가 형성되었으며, 제자백가가 활약하였다. 둘째는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 말까지이다. 이 시기는 한과 수 당이라는 대통일 국가가 들어서기도 했지만, 그보다 오랫동안 지방으로 분열되어 싸우고 이민족이 침입했다. 한대에는 유교가 국가 공인의 철학이 되고 위진시대에는 현학으로서 도가가 유행했다. 또한 불교가 들어와서 수당 시대를 거치면서 지식인 사회를 석권했다. 셋째는 송명청 시대이다. 이 때는 한-당 시대의 정치 사회 내지 불교 도교에 대한 반성에서 신유학이 등장했다. 송대에 주희가 종합한 성리학이 형성되어 청말까지 지배 이념으로 자리잡았고 명대에 성리학에 대한 비판으로 양명학이 등장하여 개인의 절대적인 도덕적 주체성을 강조했다. 청대에는 성리학과 양명학의 이념 성향을 비판하고 실증을 강조하는 고증학이 주류를 이루었다.⑴ 춘추 전국 시대와 제자백가의 사상.철기 시대를 맞이하여 주나라의 봉건제가 무너지고,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온갖 사회적인 문제가 생겨났다. 이에 인간의 삶과 사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상가들이 나타났으니, 이들이 제자백가들이다. 공자는 모든 개인들이 서로 사랑하며(仁), 각자 맡은 바의 역할을 다하는 것(正名)이 사회 정치적 혼란을 제거하고 질서와 평화를 이루는 길이라 보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공자의 仁은 효제를 중심으로 하여 타인에게도 미친다는 사상이었다. 공자는 또한 인의 실천을 위해서는 禮라는 형식을 밟을 필요가 있다고 하였는데 예란 전통적?관습적 형식이며, 사회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유교에서 전통주의를 존중하고 형식을 존중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입각한 것이며, 예라는 형식에 따름으로써 인의 사회성과 객관성이 확실해진 것이다. 또 공자가 중시한 도덕 중에는 중용이 있는데 이는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시킬 수 없고, 항상 제3의 입장이 있는 것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공자는 인간중심주의여서 상식을 넘는 진리를 말하고자 하는 다른 사상가들에 비해 이 현실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한정되어있었다.한편 묵자는 공자의 마음 중심의 이론에 반론을 제기하고 유가의 학문과 예를 비판했다. 묵자는 공자의 가르침 뒤에도 정치적 투쟁과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일로에 있는 것을 인간 모두가 각기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이의 해결책을 “남을 사랑하기를 자신을 사랑하듯 해야만 된다”는 겸애로 설파했다. 공자가 귀천과 존비를 엄격히 구분하는 봉건제도를 옹호한데 비해, 묵자는 서민의 처지를 옹호하였는데 이런 면에서 그의 가르침이 유가와 대조적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사회상이 공자시대와는 달라 봉건사회의 계급질서는 사라지고 약자는 강자에게 병합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등과 평화를 내세워서 영토확장과 패권다툼 속에 팽개쳐진 민중을 구하려 했던 묵자의 사상은 전국시대 패권을 겨루던 강국의 군주들로부터 점차 환영받지 못하는 사상이 되었던 것이다.노자와 장자는 공자와 묵자의 이러한 이론들이 결국은 문명사회를 유지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사회적 혼란과 문제는 문명사회가 잘못 굴러가서 생긴 것이 아니라, 문명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것이어서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했다. 노자는 원시 모계 사회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혼란한 문명사회에서 사는 처세술을 제시하였고 장자는 문명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원시 공산 사회보다는 마음속의 이상향으로 침잠했다.한편 사람들의 마음에는 인격을 이룰 선한 싹이 있다고 하는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공자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일찍부터 공자의 가르침을 존경하고 믿어서, 공자의 뒤를 이은 대유가 되었다. 유교를 공맹의 도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맹자의 시대는, 공자가 살던 시대보다도 한층 더 전란의 양상이 심각하게 되었고, 또 제자백가가 다투어 일어났던 때이므로 맹자의 논의가 첨예화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유가의 사상계 내에서 맹자와 정반대의 극단에 위치하여 인간을 자연적인 존재, 즉 동물의 하나로 보고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가 있다. 순자는 사람의 마음은 욕망으로 가득차 있고 그것을 방치하면 사회의 혼란이 오기 때문에 욕망의 본성을 교화시켜 선하게 만드는 것이 문화와 문명이며 사회도덕과 제도라고 했다. 그는 이처럼 문명을 옹호하며 현재의 군주의 강력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공자의 입장은 덕과 예를 두줄기 요체로 삼은 것이었으며 순자도 유가이므로 역시 기본적으로는 그러했다. 그러나 순자의 시대는 공자의 시대보다 난세의 양상이 한층 격화되어 이미 사람들의 자발적인 도덕심에 호소하는 덕치주의로는 정치적 성공이 어려웠고 어떻게 해서라도 강제력을 가진 정치원리가 필요했다. 거기에는 예를 적용시킬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순자가 예치주의를 제창한 이유였다. 그렇게 순자는 유가의 한계선상에 있었고 조금 벗어나면 법가도 될수 있었다. 그리고 순자의 제자들이었지만 유가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법가의 학설을 지지한 자들이 법가의 대표자인 한비자와 이사이다.법가는 인간을 악한 존재로 보고 가만 두면 반드시 이기적으로 흘러 나쁜 짓만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국가 제도의 강력한 규제 아래 있어야 하고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과 권력과 신하 통제술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가 이론은 선진 제자백가사상의 최종 단계이며, 법가사상에 의해서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다.⑵ 한-당 시대와 유교 도교 불교 사상.분서갱유 등 지나치게 노골적인 법가정책이 법에 익숙치않은 국민들에게는 폭압정치로 비쳐져 진나라는 곧 무너지고 한나라가 들어선다. 전한 초기에는 국민을 자유롭게 하며 국가적인 통제는 거의 하지 않는 정책을 취하였는데, 이를 황로사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이 지나자 무위지치가 아닌 건설적인 계획이 더 요청되었고 한 무제는 관료의 철학인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공인했다. 사실상 유가만이 대단히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으며, 심지어 공자의 신격화가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기타 사상은 모두 사라지고 유가만이 살아남은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가는 도가 법가 묵가 등의 학설을 흡수하여 더욱 다양하고 포용성 있는 사상체계를 이루었다.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 철학사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유교의 비중이 두드러지게 줄어드는 대신에 노장사상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도교라 불리우는 민중의 종교가 성립하였으며 또 후한 2백년간을 통해서 발붙일 여지도 없었던 불교가 노도와 같은 세력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귀족화한 사대부는 이미 유교에 구속되지 않고 노장이 가진 자연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소위 청담의 유행을 들 수 있다. 죽림칠현으로도 유명한 청담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담화라는 의미로 그 내용이 대부분 상식적인 유교 도덕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러한 초월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불교의 도입을 쉽게 했고 초기 불교는 도교의 이론을 통해서 이해되었다. 서역에서 승려들이 들어오고 경전이 대량으로 번역되면서 인도 불교의 각 학파가 점차 종파로 성립했다. 승조와 도생, 혜원 등의 이론적 공헌, 용수의 중관 철학에 근거한 삼론종 등이 성립하면서, 불교는 점차 중국화되었다. 중국화된 불교의 정점은 이론 불교의 천태종과 화엄종, 실천 불교의 정토종과 선종이다.위진 이래의 혼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적 강자들은 무력에 의존했으며 도덕은 무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하냐는 따질 수가 없다. 악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자라도 사회에 질서를 이룰 책임이 부여되고 이런 점에서 선과 악은 언제나 뒤엉켜 있으며, 죄 많은 범부가 붇다라고 주장하는 천태종은 당시의 혼란을 종식시키는데 영향을 주었다. 화엄은 나아가 모든 개체들이 조화롭게 자리잡고 있는 우주의 모습을 이 세상은 '꽃으로 장식된'(華嚴) 아름다운 조화라고 칭했다. 이는 당나라가 이룬 평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천태와 화엄이 이론 중심이라면, 정토와 선은 실천 중심이었다. 정토종은 지능도 권력도 재물도 없는 사람들, 그래서 죄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해탈을 하려면 복잡하고 방대한 불교 교리를 배워서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다면 하근기의 사람은 해탈을 포기해야 한다. 정토종은 그런 것을 포기하고, 단지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선하게 살아서 서방 극락 정토에 다시 태어나겠다고 외치기만 하면 해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불교는 상근기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무지와 집착 번뇌로 가득찬 사람의 마음이 바로 깨달은 자의 마음 그 자체라고 주장하고 그것은 다른 둘이 아니기때문에 번뇌를 닦아서 깨끗한 마음을 이룰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단지 번뇌하는 내 마음이 그대로 고스란히 불성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고 하여 자신의 마음의 절대적인 주체를 세우는 것을 선은 목표로 하였다.
    인문/어학| 2006.12.15| 4페이지| 1,000원| 조회(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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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공자와 노자의 사상 비교
    선진시대에 나온 문헌 가운데 공자의『논어』와 노자의『도덕경』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우선 그것들은 표현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논어와 도덕경은 대화체와 운문체가 문체상의 차이점으로 보통 지적된다. 그러나 그런 문체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서술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논어는 긍정적 서술이 주라면 도덕경은 부정적 서술이 주인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사고방식(혹은 시각)의 차이에서 유래하며, 나아가 이 사고 방식의 차이는 현실 파악 방식이나 현실에 대한 처방의 차이를 결정한다. 공자의 경우 당시에 무너져 가던 주나라의 제도를 회복하려 했으므로 ‘무엇 무엇을 행하라’는 것을 주로 말한다. 이는 표현상으로는 긍정적 서술로, 논리상으로는 정명론으로 나타난다. 노자는 사회 제도와 문명이 주는 억압과 혼란을 비판하고 그런 것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따라서 사회와 문명의 비판은 부정적 서술로 나타나고 논리상으로는 무명론으로 나타난다.논어에 보이는 공자의 거의 모든 사상은 정명론으로 연결된다. 공자의 정명론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말로 보통 요약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임금답고 신하다운지가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예’가 결정해 준다. 주례에 따르는 행동만이 임금답고 신하답다는 것이 공자의 견해이다. 그리고 왜 그런 예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마땅히’ 해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한다. 즉 ‘의’이기 때문이다. 유가에서 볼 때 사회란 인간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관계란 언제나 상대와 짝을 이루는 관계이다. 예컨대 임금-신하, 아버지-아들, 남편-아내, 친구-친구 등의 관계이다. 한 인간은 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상대에 따라서 자신의 역할이 결정되며, 어떤 역할을 맡는 상황이더라도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라는 것이 공자의 정명론이다.정명론이 인간의 덕, 즉 마음의 능력의 문제로 나타난 것이 공자의 仁사상이다. 인이란 ‘사랑의 원리.근원’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능력’을 의미한다.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가진 가장 중요한 능력이며, 이 능력을 완전히 실현시키면 그 사람은 완벽한 인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인은, 공자에 있어서는 ‘사랑함’과 ‘완벽한 인격’을 의미한다.정명론으로 볼 때 개인은 무수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이 역할의 수행은 하나의 근원적인 사랑의 다양한 표출이다. 또한 충효 등 역할 수행에 따른 덕목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덕목이 인에 포함된다. 역할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는 것이 ‘지’이며, 그 행동 방식이 ‘예’이며, 그렇게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용’이다. 이렇게 볼 때 인은 모든 덕을 다 포괄한다. 그 모든 덕을 다 실현하면 인자가 되며, 그는 곧 완벽한 인격을 갖춘 자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인의 이론은 내적인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정명론은 외적인 행동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서로 표리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정명론은 다른 한편으로는 충서의 이론으로 나타난다. 남에 대해서는 자기의 진심을 다하되 그 방법으로서의 원리를 채택하라는 것이 충서의 이론이다. 내 아들이 나에게 했을 때 기분 나쁜 행동을 나도 아들의 입장에서 나의 아버지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 ‘서’이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언제나 민감하게 가져서, 남을 헤아리는 동정의 마음을 갖는 것을 ‘충’이라 할 수 있다. 이 동정심은 ‘사랑함’으로서 인의 한 측면이다. 자신이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상대가 나에게 바라는 것을 감정이입으로 헤아려서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은 정명론의 또 다른 한 측면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정명론은 그 바탕에 역할들이 얽혀 있는 것으로서 ‘사회’의 질서를 옹호하는 이론인 것이다.반면, 노자 도덕경의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사고방식은 대립되는 것의 공존이다.공자에 있어서 이름은 영원불변하는 진리이며 정의이며, 현실적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노자는 이상적인 것으로서 불변의 기준인 이름을 부정한다. 예컨대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정명의 논리에 대한 반박이다. 인의예지 등 유가가 주장하는 도는 참된 영원한 도가 아니고 ‘임금이라 할 수 있는 임금, 신하라고 할 수 있는 신하’는 ‘영원하고 참된 임금이나 신하'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은 오히려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이름(이념)을 이용하는 무리들로 차 있다. 따라서 이름은 현실의 한 측면만을 규정할 뿐이다. 공자가 보는 시각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것을 규율하는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은 모든 사물에 필연적으로 부과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자가 보건대 이름이란 거기에 부과된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다. 공자는 이름을 중심으로 하여 현실 속의 개체를 보는데 비하여, 노자는 ‘이름'이 가진 영원 불변하는 기준 혹은 이상이라는 점을 배제하고 현실을 중심으로 하여 이름을 살펴본다. 이렇게 볼 때, 하나의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과 반대되는 것이 있으며, 이는 현상 세계의 본질적인 성격이라는 것이다.나아가 노자는 이름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 듯이 탐욕과 꾀와 같은, 이름을 부정하는 요소도 현상 세계에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세계에는 인 등의 이념이 본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탐욕과 꾀는 이념(이름)과 같은 뿌리를 가진 것으로 문명 사회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이와 같은 노자의 이름부정론[무명론]은 탐욕과 이기심에 의한 갈등과 투쟁이 극심했던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적 혼란을 부정하고 이념에 의해 새 질서를 수립하려고 했던 공자의 시도에 대한 회의이며 비판이다.예나 인의, 충효, 지혜 등은 모두 사회의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하여 제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상을 제시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그만큼 큰 혼란이 있다는 말이 되며, 반대로 그런 이념이 제시되면 그것에 의해서 사회는 더욱 혼란하게 된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이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이것은 유위함으로서 사회를 구제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 유위에 반대가 되는 것이 그것에 동반됨을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유위에서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상승적 작용(악순환)이라 한다면, 노자는 그것을 치유하기 위하여 상강적 작용을 제시한다. 이것을 노자는 무위라 한다. 즉 노자는 그 대립의 공존을 해결하기보다는 해소하려 한다. 지혜나 인의, 법령, 세금 등을 없애면 그것에 대립되는 큰 거짓, 불화, 도적, 백성의 굶주림 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무’의 범주에 의해 ‘유’의 범주를 해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들되 지배하지 않고 생산하되 소유하지 않는 것 등은 정명론이 가정하는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문명화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무위를 일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간의 마음은 근원인 본성의 고요함으로 돌아가고, 사회는 문명화되기 이전 상태인 원시 시대로 복귀하게 된다.노자의 체계는 대립이 공존하는 현실 세계와 그런 대립이 없는 도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도의 세계를 한편에서는 사변적으로 분석하여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해석한다. 사변적으로 분석 제시된 도의 세계는 허·고요함·무로서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이며, 형체가 없는 형체, 모습이 없는 모습이며, 황홀한 것이며, 오묘하고 또 오묘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해석된 도는 원시 상태이다. 문명사회의 언어가 없으므로 무명이며 문명사회의 행위가 없으므로 무위이다. 여기에서 부터 혼란과 억압이 증가되어 가는 문명의 과정을 노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최상의 정치는 백성이 통치자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통치자를 사랑하여 기리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두려워하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업신여긴다" 이 마지막은 통치자의 학정에 견디지 못하는 단계이다. 이것이 당시의 사회였을 것이다. 이것과 대비되는 최상의 사회를 노자는, 구성원들이 평생동안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서 살며 문자도 무기도 수레도 필요없이 무지무욕하게 사는 소국과민의 사회라고 한다. 이는 토지 공유제에 기초한 공동 생산 공동 분배의 원시 씨족 공동체 사회이다. 여기에서부터 역사는 사유재산제에 근거한 자사다욕으로 대립 투쟁한 춘추 전국 시대로 나아간 것이다.
    인문/어학| 2006.12.15| 3페이지| 1,000원| 조회(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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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중국철학사상의 흐름과 특징 평가A좋아요
    중국최초의 왕조였던 하왕조는 태평성대를 이루었지만 그 뒤를 잇는 은왕조는 주왕의 폭정으로 주왕조에게 망하게 되었다. 봉건제도로 천하는 일가라고 하는 대가주의의 정신을 지배원리로 하였던 주나라는 창립초기에는 좋았지만,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혈연의식이 희박해져 종래의 혈연의 원리보다 힘의 원리가 점차로 지배되었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뉘는데 춘추시대는 아직 주나라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제후들이 조심스럽게 견제하는 시대였지만 전국시대는 제후 상호간에 실력 다툼이 격화되어 사실상 군웅할거의 상태에 돌입하였다. 전란의 상태가 한층 격화된 전국시대에는 많은 유세객이 발생하는 사태가 생긴다. 그것은 국가의 흥망이 격화되었기 때문에 망국의 신하들이 직위를 잃고 새로운 자리를 구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들 유세객은 한 치의 혀를 생명으로 하는 지식층 유세객이었다. 넓은 중국에서는 한 두 번의 싸움으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적으로 장기전의 형상이 된다. 따라서 직접적인 전력보다는 기초적인 정치력이나 경제력의 정도가 훨씬 중요했다. 그 때문에 군인보다는 정치나 경제에 밝은 문인을 존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열국간에 경쟁이 격화된 전국시대에는 지식층 유세객을 환영하는 풍조가 생겼다. 종래의 제후국에는 봉건적인 동족회사풍의 경영이 행하여져 수뇌부의 구성도 모두 세습적인 신분에 의해서 결정되었던 것인데, 이것으로는 경쟁의 시대에 대응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졌다. 자연히 새로운 두뇌를 도입할 필요를 통감하게 되었고, 거기에는 당시 엄청나게 발생하였던 지식층 유세객의 두뇌를 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동족회사풍의 전통이 강한 제후의 나라에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곤란이 많았고, 다만 유세자로서 일시적인 고용에 만족해야 하는 자가 많았다. 요컨대 지식층 유세객의 대부분은 국가경영의 상담에 응하는 고문이 된 것이었다. 이처럼 정치나 경제적인 학식을 자본으로 해서 제후의 사이에 유세하였던 고문, 실업 유세객이 고위 제자백가적 형식이며, 사회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유교에서 전통주의를 존중하고 형식을 존중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입각한 것이며, 예라는 형식에 따름으로써 인의 사회성과 객관성이 확실해진 것이다. 이처럼 공자의 사상은 사회적?정치적 인간을 위한 도덕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보편성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하늘의 존재도 생각하고 있었다. 공자로서는 하늘이 뜨거운 종교적 심정으로 받들어지는 불가지의 존재였지만, 이는 인간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신일지언정, 인간을 압박하는 신은 아니었다. 공자의 사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저서가 없었지만 제자 또는 그 후의 제자들에 의해서 편집된 그의 언행록인 『논어』에서 보면 공자는 상식인이고 범인이었다. 상식을 부정해, 상식을 넘는 진리를 말하고자 하는 다른 사상가들에 비해 공자의 관심은 오로지 이 현실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한정되어있었던 것이다. 또 공자가 중시한 도덕 중에는 “중(中)할수록 평범하다”는 중용인데 이는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시킬 수 없고, 항상 제 3 의 입장이 있는 것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공자의 가르침은 모두 상식의 가르침이었다. 단지 공자는 상식을 벗어나기보다는 상식의 아래에 숨어있는 진리를 발굴하고자 힘썼다. 상식을 벗어난 진리는 없다고 하여 상식 가운데 있는 진리를 찾았다. 그 의미에서 공자는 위대한 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공자의 입장은, 이상을 이 세상에 없는 높고 먼 곳에서 구하지 않고, 가까운 현실 가운데서 찾고자 한 범신론적인 세계관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전국시대에는 공자를 이어받은 맹자(BC372~BC289)가 등장하게 된다. 맹자는 공자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일찍부터 공자의 가르침을 존경하고 믿어서, 공자의 뒤를 이은 대유가 되었다. 유교를 공맹의 도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맹자의 시대는, 공자가 살던 시대보다도 한층 더 전란의 양상이 심각하게 되었고, 또 제자백가가 다투어 일어났던 때이므로 맹자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하였고, 지식과 가치의 문제에서는 시비가 양행하는 상대주의와 반지주의를 주창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장자의 개체의 절대자유?절대평등의 사상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도가의 중심인물인 노자(老子:BC 580?~480?)와 장자(莊子:BC 370?~280?)의 사상만을 가리켜 노장사상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사상이 도가사상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므로 노장사상을 일반적으로 도가사상과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 당시 노자와 장자는 몰락한 주나라의 문물제도가 지닌 허위성과 형식성을 문제삼는 반문명적 사상을 키우면서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상은 공자와 맹자의 가치철학과 상반적일 수밖에 없었고 부정과 역설의 논리를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즉 그들은 유가와는 달리 반형식, 탈가치의식을 가지고 일체의 인위조작, 예를 들면 대사회적인 가치체계나 제도 및 형식에 그치지 않고 그 근원으로서의 내적 도덕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하여, 어떻게 궁극적으로 자유자재하는 자아해탈의 상태와 무위자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노자와 장자는 지식문제에서는 회의론과 상대주의의 입장이어서, 궁극적으로는 반지주의를 통하여 현학적 초월지를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하였으며, 한편 사회정치론에서는 소국과민 등 방임주의적 이론을 제시하였다.묵자는 공자의 뒤를 이어 나타난 대학자였는데, 유가의 학문과 예와 악(樂)를 비판했다. 묵자는 공자의 가르침 뒤에도 정치적 투쟁과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일로에 있는 것을 인간 모두가 각기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이의 해결책을 “남을 사랑하기를 자신을 사랑하듯 해야만 된다”는 겸애야 말로 만 어지러운 사회를 구하는 덕목이라고 설파했다. 공자가 귀천과 존비를 엄격히 구분하는 봉건제도를 옹호한데 비해, 묵자는 서민의 처지를 옹호하는 정신을 표방했다. 이런 면에서 그의 가르침이 유가와 대조적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사회상이 공자시대와는 달라 봉건사회의 계급질서는 사라지고 약자는 도 제정하지 않고 백성을 번거롭게 안한다는 무위지치를 방침으로 하였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이 지나자 무위지치가 아닌 건설적인 계획이 더 요청되었다. 통치자는 이것을 유가에서 가져왔다. 무제는 유가를 관학으로 삼는다고 공포하고 법가와 종횡가의 이론을 가진 철학가는 모두 관직에서 파면한다는 명을 내렸다. 사실상 유가만이 대단히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으며, 심지어 공자의 신격화가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유가만이 홀로 살아남고 기타 사상은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가는 도가 법가 묵가 등의 학설을 흡수하여 더욱 다양하고 포용성 있는 사상체계를 이루었다.후한이 220년에 멸망한 뒤 중국은 위 촉 오 세 나라로 분열되었다. 이후 수나라가 589년에 천하통일을 하기 전까지는 육조라 불리는 분열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더욱이 317년 서진이 멸망한 이후에는 북방의 오랑캐부족이 중국북부를 점령하여 왕조는 남반을 지배하는데에 그쳤다. 이를 위진남북조시대라고 하는데 시대가 혼란스러워 철학사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유교의 비중이 두드러지게 줄어드는 대신에 노장사상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도교라 불리우는 민중의 종교가 성립하였으며 또 후한 2백년간을 통해서 발붙일 여지도 없었던 불교가 노도와 같은 세력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귀족화한 사대부는 이미 유교에 구속되지 않고 노장이 가진 자연주의, 자유로운 생활의 태도에 빠지게 되었다. 노장사상을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소위 청담의 유행을 들 수 있다. 죽림칠현으로도 유명한 청담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담화라는 의미로 그 내용이 대부분 상식적인 유교 도덕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 배후에 노장의 자연사상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위진남북조의 4백년에 가까운 분열시대의 뒤를 이어서 수당의 3백년에 걸친 대제국의 통일시대가 들어섰다. 본디 수의 통일은 겨우 30여년 밖에 안되므로 수당의 사상사라고 해도 실제로는 당대가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당대 3백년간의 사상계에 700년의 전통을 가진 귀족은 그 형태를 완전히 갖추게 되었고 그에따라 사상에도 커다란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오대의 뒤를 이어받은 송은 남북을 합쳐서 3백년의 통일을 이룩하였는데 그 정치와 문화를 담당한 사대부는 이미 문벌귀족의 성격을 가지지 못하고, 관리가 되어도 자식에게 세습하지 못했으며, 원칙적으로 일반서민 사이에서 등용되었다. 수당시대부터 문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설치한 과거 제도는 송대에 들어와서부터 그 실효를 발휘하게되었다. 일대에 한하여 관리가 되면 사대부도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고 하는 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정치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거기다 북송시대는 정당의 다툼이 계속되는 상태였는데 이것이 관리인 사대부의 정치의식을 높이고, 치국평천하의 학문인 유학을 진흥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송학이라는 신유학이 생긴것도 이같은 사회배경 때문이다. 육조수당시대의 주역이었던 문벌귀족들은 관리이면서도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고 반대로 문학예술이나 철학종교와 같은 보다 개인주의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바로 이점이 개인 영혼의 구원을 목표로 하는 불교의 전성을 가져다준 근본적인 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에 직면한 송대의 사대부들은 바야흐로 불교에서 벗어나 치국평천하를 주장하는 유교로 복귀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송학은 불교에 대한 유교의 반격으로 생긴 결과인 것이다. 송학이란 남송의 주자학이나, 북송의 사상 가운데 주자학에 영향을 주었던 원류를 말하는 것으로 理를 중요하게 여겨 성리학이라고도 한다. 이 남송이래의 주자학은 명목으로나마 사대부 사이에 행하여졌고, 원나라 중엽에는 관학으로서 채용되었다. 이는 주자학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원대 백년간에는 특별히 취급을 논 할만한 사상가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몽고인은 남하해서 중국의 북부로 들어가 화북을 지배했던 금나라를 멸하고 나아가서는 남송을 병합하는 것에 성공해서 천하의 통일을 실현했다. 국호를 원이라 하고 수도를 북경이다.
    인문/어학| 2006.10.24| 7페이지| 2,000원| 조회(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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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생태학] 붉은귀 거북
    1. 서 론몇 일전 TV에서 붉은귀거북에 대해서 보고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10분도 채 안되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황소개구리와 같은 붉은귀거북에 나름대로 관심이 많이 갔고, 이번 레포트의 주제를 정하는 대에도 도움이 되었다. 토종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중 최상위 포식자 붉은귀거북. 한강은 지금 온통 그들의 세상이다!이 레포트에서는 환경스페셜 『미시시피 붉은귀거북, 한강을 점령하다.』편을 보고, 대략적인 내용과 감상을 쓰고자 한다.2. 본 론이 다큐멘터리는 한강 둔치에서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는 붉은귀거북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단단해 보이는 등껍질을 가지고 있는 이 거북은 북아메리카의 미시시피강이 고향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에 그 수가 너무 많아져 토종으로 오해까지 할 정도이다.한강의 가운데 자리한 밤섬은 생태계 보존 지역으로 지정된 한강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한다. 그러나 밤섬의 생태조사를 위해 쳐진 그물에는 당연히 있어야할 물고기들은 없고 온통 붉은귀거북들 뿐이었다. 하루에 잡힌 붉은귀거북만해도 60여마리라고하니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이다. 한가지 종이 유난히 많다는 것은 그 지역 생태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적신호이다. 밤섬 뿐만이 아니라, 한강 곳곳에서도 붉은귀거북이 발견되었다. 5, 6년 전 만해도 많았던 황소개구리가 요즘 들어 안 보이는 이유도 이 붉은귀거북이 한강을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붉은귀거북은 그물을 쳐놓으면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집힐 만큼 한강 상류에서 하류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람의 접근이 금지되어있는 경안천에서도 붉은귀거북은 쉽게 발견되었다. 이곳의 붉은귀거북은 크기도 밤섬 인근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커 27Cm 정도 되었다. 크기로 봐선 우리나라에서 20년이상 살아온 것이다. 이 거북은 등껍질에서 각질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 각질은 몸이 크면서 허물처럼 떨어지는 것으로, 영양상태가 좋아 아직도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고 한다.폐수가 그대로 흘러드는 난자천. 악취가 진동하고, 한눈에도 생물이 살수 없을 것 같은 이곳에서도 붉은귀거북은 살고있었다. 이곳의 물은 한강물보다 4배나 탁하고 용존산소량도 생물이 살수없을 수치여서, 물고기도 살 수 없었다. 이러한 곳에서 붉은귀거북은 오염된 물에서 자라는 녹조류인 해캄, 실지렁이를 먹고살고 있었다. 놀라운 적응력이었다. 이처럼 붉은귀거북은 어떠한 수질이나 환경에도 적응하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붉은귀거북은 자기보다 크건 작건 무조건 잡아먹어 버리고, 보통 거북들과는 달리 먹이를 쫓아다니면서 사냥을 한다. 징거미가 잡아놓은 먹이 감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갑각류인 징거미까지도 잡아먹고, 또다시 다른 먹이 감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 먹는 양도 굉장해서 한번에 5, 6마리는 잡아먹어야 한다. 그리고 배설물의 양도 다른 물고기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양이어서 당연히 호수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 그렇듯 붉은귀거북은 상위 포식자로 군림을 하고있는 것이다.이처럼 붉은귀거북이 문제가 되자, 일산 호수공원관리사업부는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포획을 시작하였다. 올 한해만해도 800여마리를 잡아들였지만, 그래도 그 수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붉은귀거북들은 70년대 후반, 애완용으로 처음 수입되었지만, 요즘은 거북을 귀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정서와도 맞아서 방생용으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환경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공식적으로 수입한 붉은귀거북만해도 580만마리이며, 50억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팔려나간 붉은귀거북의 대다수는 하천이나 연못에 방생된다. 그 중에는 종교적인 방생뿐 아니라 애완용으로 기르다 버려진 것들도 많다. 이유는 관리의 어려움 때문이다. 처음에는 귀엽고 관리하기도 쉽지만, 5, 6년이 지나면 크기가 15Cm 가 넘게되고, 엄청난 배설물 때문에 물이 쉽게 더러워져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환경부에선 2001년 12월 붉은귀거북의 수가 위험수위까지 오르자, 생태계 유해외래종으로 지정하였다. 블루길, 큰입베스, 황소개구리 다음으로 네 번째이다. 생태계 유해 외래종 지정과 함께, 수입도 금지시켰다. 그리고 종교계에서도 방생을 금지하도록 하였다.환경부에선 붉은귀거북이 생존하는데는 모래사장이라던지 나름대로의 서식여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러한 모래사장이 매우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후면 자연적으로 도태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모래톱이 없는 호수공원에서 붉은귀거북의 새끼가 발견되었고, 이는 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호수 안의 작은 섬을 탐사한 결과 붉은귀거북은 일반 흙에서 산란을 하고 있었고, 부화도 이루어졌다. 일반 거북종류들이 보통 모래톱에 알을 낳고 모래가 햇빛을 받아 그 열으로 부화가 된다고 교과서 적으로 알고있는데 아주 급한 상황에서는 바위 밑이라든가 일반 흑에서도 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부화율을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곳에서 알을 낳는다는 것은 붉은귀거북이 철저하게 생존에 대비를 한다는 것이다. 미시시피유역 아열대 기후에서 살던 붉은귀거북이 한강의 혹독한 겨울을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이미 환경에 적응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미 환경에 적응해버린 붉은귀거북은 환경 조건이 맞기 때문에 토착화되었고, 또한 토착화되었기 때문에 숫자는 줄일 수 있을지라도 제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우리의 토종 거북인 남생이는 붉은귀거북과 서식조건이나 먹이가 비슷하여 필연적으로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격이 온순한 남생이는 붉은귀거북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고 붉은귀거북이 하천을 점령하면서 더욱 그 숫자가 줄어들어 버려 지금은 하천에서는 보기 힘든 희귀종이 되어버렸다. 두 종이 같은 서식지를 공존하지 못하여 붉은귀거북이 남생이를 도태시킬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도록 대책을 철저히 새워야 한다.붉은귀거북이 유해 외래종으로 지정된 지 29개월. 수입이 금지된 지금도 한강 곳곳에서는 붉은귀거북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강한 적응력과 포식성으로 토종이 쇠약해진 틈을 비집고 점점 토착화하고 있다. 처음 붉은귀거북을 들여오면서 녀석들에 토종의 자리를 빼앗길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이들은 토종생태계를 향한 무서운 역습을 시작한 것이다.3. 결 론붉은귀거북이 비정상적으로 늘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붉은귀거북이 좋지 않게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무조건 붉은귀거북만을 원망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붉은귀거북을 처음으로 수입해온 사람도 우리이고, 방생해준 사람도 우리이다. 우리가 일 벌여놓고 우리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솔직히 붉은귀거북이 그렇게 나쁜 거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지금 생태계를 파괴시킨다는 점만이 부각되어 붉은귀거북이 나쁘게 몰아져 가고있지만, 낯선 환경에서 한꺼번에 많이 방생되었으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붉은귀거북 뿐만이 아니라 다른 거북류도 무자비하게 방생시키면 똑같아 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붉은귀거북이 가격이 싸서 방생용으로 잘 쓰인 것이고 나머지 거북들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방생을 안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본능적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붉은귀거북만을 욕할 것 이 아니라, 거북을 사서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방생시킨 주인들의 잘못이 크다. 인간에 의해 선택받고, 인간에 의해 버려진 미시시피 붉은귀거북. 결국 인간의 섣부른 욕심이 우리의 한강을 붉은귀거북에게 빼앗긴 것이다.참고자료청거북(붉은귀거북)영명: red-eared turtle, pond slider학명: Chrysemys scripta elegans[분류] 거북목(Testudines) 늪거북과(Emydidae)에 딸린 민물거북. 빨간귀거북이라고도 불린다.{{[형태] 몸길이는 수컷이 평균 15.6cm, 암컷 20cm이며 최대 29cm까지 자란다. 귀쪽에 빨간색무늬가 있다. 청거북의 암수 구별은 먼저 발톱을 비교해 보면 성숙한 청거북은 수컷의 앞발톱이 자신의 뒷발톱이나 암컷의 발톱에 비해 두배 정도로 길게 자란다. 항문의 경우, 수컷의 경우 꼬리에 위치한 항문이 거북갑의 끝을 벗어나 위치하고 있는데 반해 암컷의 경우 벗어나지 못한다. 꼬리를 보면 수컷의 것은 굵고 긴 것에 비해 암컷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외 늙은 수컷의 경우 후천적 Melanism이 생기는데, 몸에 있던 노란색의 무늬는 전부 없어질 정도로 검게 변하는데 암컷의 경우도 약간의 Melanism이 생기기는 하지만 수컷의 경우처럼 심하게 되지는 않는다.[서식지] 청거북은 주로 물이 많고 비교적 흐름이 약한 호수나 큰강의 소에서 살지만, 때로는 등이 완전히 감기지 않을 정도의 작은 웅덩이에서도 발견된다. 호수나 강변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늪지대와 같이 수초가 많이 자생하는 곳을 좋아한다.
    자연과학| 2005.06.27| 6페이지| 2,000원| 조회(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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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권] 엘리어트 파동이론 (Elliott Wave Principle)
    엘리어트 파동이론(Elliott Wave Principle)R.N.Elliott 는 1946년 '자연의 법칙-우주의 신비(Nature's Law-The Secret of the Universe)'라는 이론을 발표하였다.엘리어트는, 우리가 그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우리를 둘러싼 우주 또는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어떤 법칙이 존재하고 있음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해가 지고 해가 뜨며,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이 연이어 나타나고, 밤과 낮의 변화, 춥고 더운 계절의 변화가 질서 있게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법칙이 없고서야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는 주식 시장에서의 주가도 인간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또한 삼라만상을 구성하는 일부분이 되므로, 당연히 우주 또는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법칙이 주식 시장에도 적용될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엘리어트는 단순히 경험적 직관적으로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과거 75년 동안의 방대한 주가 움직임을 월간, 주간, 일간, 시간, 심지어는 30분 단위까지의 세밀한 자료들로 모아서 오랜 시간 연구 검토한 끝에 주식 시장의 주가 움직임에 대한 법칙을 발견해 낸 것이다. 이 연구에서 그는 주식시장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상승 5파, 하락 3파의 사이클에 따라 가격이 변화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Prechter를 비롯하여 여러 분석가들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엘리어트 파동이론은 오늘날 중요한 기술적 분석기법으로 자리잡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다.Ⅰ. 엘리어트 파동이론의 기본개념엘리어트 파동이론은 패턴(pattern), 비율(ratio), 시간(time)의 세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패턴은 상승5파와 하락 3파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다음으로 Fibonacci 수열을 이용해 조정의 폭과 목표가격을 예측하는데 필요한 비율분석, 시간은 패턴이나 비율보다 중요성이 떨어지지만 패턴분석과 비율분석이 정확한 지를 확인하는데 사용된다. 엘동일 경우가 많다. 상승장이라면 거래량이 폭증하고 지수의 가파른 상승이 나타난다. 이때 보통 일반투자자는 일단 무조건 사놓고 보자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하락장이라면 가격 낙폭이 가장 커 깡통계좌가 속출하는 시기이기도 하다.이때는 어제의 최고가(최저가)와 오늘의 최저가(최고가)가 차이가 너무 커 차트상에 빈 공간인 갭이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이 파동은 가장 강력하기 때문에 충격파동(1,3,5번)중 가장 짧은 파동이 절대로 될 수 없다.4 4번 파동충격파동인 3번 파동에 대한 조정파동으로서 거래량도 줄고 일정한 조정을 나타낸다. 가장 큰 특징은 4번 파동의 바닥과 1번 파동의 꼭지점이 겹치지 않는 특징이 있으며 (절대법칙)보통 다음의 성질을 보인다.첫째, 3번 파동을 38.2%만큼 되돌리는 경우가 많다.둘째, 4번 파동의 마지막은 앞서 진행된 3번 파동을 한 등급 낮은 파동으로 세분해 보았을 때, 그 중의 네 번째 파동의 최저점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4번 소파동의 법칙)셋째, 종종 2번 파동의 길이와 같게 형성되기도 한다.5 5번 파동.상승 추세의 마지막 단계로 지표가 과열된 상태이다. 모든 일반투자자들이 공격적으로 매수세에 가담하여 사기만 하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널리 확산된다. 보통 1번 파동의 길이와 같거나 1번 파동의 61.8%만큼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5번 파동의 막바지에서는 주가는 상승하지만 거래량은 줄어드는등 조만간 조정이 나타날 것을 예고한다.{{아울러 5번 파동에서는 경우에 따라 세 개씩 작은 파동으로 형성된 다섯 개의 파동으로 이루어진 삼각 쐐기형(diagonal triangle)을 형성 하기도 한다. 5번 파동 이후는 급등/급락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된다.【삼각 쐐기형(wedge) 5번 파동 】6 미달형(failure)과 파동의 연장(extension)a. 미달형.미달형은 5번 파동이 3번 파동의 꼭지점을 넘지 못하거나 평균적인 채널기법으로 보아 예상 목표치에 미달하는 형태로 발생빈도는 낮다. 5번 파동역시 충격파동이자자들은 다시 주가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이 파동이 B파동으로 해석된다. B 파동은 A 파동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하락 추세에 반발하여 나타나는 일시적인 상승 추세로서, 주식 시장에서의 거래량은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아직 5번 파동때 매도시점을 놓친 투자자는 주식을 처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B 파동은 A 파동이 있음을 알았다면 A 파동의 61.8%(38.2%)의 크기를 보이므로 파동수준을 쉽게 예측 할 수 있다.3C 파동C 파동은 반드시 5개의 소파동으로 구성되며 매우 강력한 파동으로 A 파동보다 1.618배 정도 큰 경우가 많다. 이때는 3번 파동때 처럼 갭이 자주 발생할 정도로 강한 파동이다.4조정파동(Correctives Waves)의 형태형태가 완성이 불분명하고, 예외가 있으므로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통 지그재그(zigzag), 플랫(flat), 삼각형(triangle), 이중혼합(double three), 삼중혼합(triple three)의 형태로 나뉜다.a. 지그재그(zigzag, 5/3/5패턴)와 더블 지그재그(double zigzag, x파의 삽입)지그재그 조정은 위 그림과 같이 5/3/5의 강력한 조정파동으로 B 파동은 A 파동의 61.8%이하의 크기로 나타나고 C 파동은 충격파동이므로 강력해 A 파동의 저점 밑으로 뚫고 내려간다. 일반적인 지그재그 형태에서는 A 파동의 길이와 C 파동의 길이가 비슷한 경우가 많아 C 파동의 크기를 예측할 수 있다. 또한 흔치 않는 경우로 지그재그 조정이 두 번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중간에 X파가 삽입된 형태로 나타난다.【 조정파동의 형태 】{b. 플랫(flat, 3/3/5패턴)지그재그 조정이 5/3/5의 형태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플랫형은 3/3/5의 형태를 보인다. 보통 플랫조정이 보이면 시장의 상승추세에 미비한 조정을 보여 약한 조정을 보인다.플랫은 다음의 특징을 가진다.첫째, 지그재그 조정은 b 파동이 a 파동의 61.8%정도에 그치는데 반해 플랫은 b 파, 전형적인 조정 파동과 달리 5개의 파동으로 구성된다.(abcde)둘째, 보통 파동을 세분해보면 5개의 소파동과 3개의 소파동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삼각형은 5개의 소파동 모두 3개의 소파동으만 세분된다.셋째, 엘리어트의 절대 불가침의 법칙에 어긋나는 유일한 파동이다. 즉, 삼각형에서는 4번 파동의 바닥이 1번 파동의 꼭지점보다도 아래쪽에 형성된다.넷째, 5번 파동에서 나타나는 삼각 쐐기형(wedge)는 지지선과 저항선이 같은 방향으로 형성되지만 4번 파동에서의 삼각형은 주로 지지선과 저항선중 하나는 수평에 근접한 형태를 보인다.삼각형은 모양을 살펴보면 추세가 계속 진행된다면 어느 지점으로 모이거나 혹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므로 상승이나 하락형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5 혼합형(Combination)엘리어트는 혼합형을 이중 3파(double three) 또는 삼중 3파(triple three)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이중 3파는 플랫과 지그재그의 결합이고 삼중 3파는 플랫, 지그재그, 불규칙조정이 결합된 것이다. 이러한 조정형태에서는 각 파동사이에 X파동이 삽입되어 조정이 일어난다.{【 X파가 삽입된 이중 3파(double threes) 】{Ⅱ. 피보나치 수열과 엘리어트 파동이론피보나치는 '산술교본(Liber Abaci, Book of calculation)'에서 여러 가지 수학적인 문제를 연구하였다. 그중에서 피라미드 축조과정에 사용된 일정한 수의 원칙을 발견하고 이 숫자들은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설명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한 숫자들의 배열이 바로 피보나치 수열이다.1,1,2,3,5,8,13,21,34,55,89,144,233,377,.....의미 없이 보이는 이 숫자들이 자연의 질서를 지배하는 숫자이다.피보나치 수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첫째, 이어지는 두 숫자를 더하면 그 다음 숫자가 된다.둘째, 어느 숫자이건 하나 건너 숫자로 나누면 그 몫은 2가 되고, 나머지 값은 나눈 숫자의 바로 직전 숫자가 된다. 예를 들어 21을 8로 나누면 몫은 2이며 연장되었다면 나머지 두 파동의 길이와 기간은 균등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파동균등의 법칙에 따라 3번 파동이 연장되었다면, 5번 파동과 1번 파동의 길이는 같거나, 아니면 길이가 짧은 1번 파동은 5번 파동의 61.8%의 크기로 산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파동균등의 법칙은 절대법칙은 아니다.4 약세시장(Bear Market)의 법칙 - 4번 소파동의 법칙엘리어트 파동이론에서 'bear market should not fall below the bottom of the previous fourth wave'라고 하였다. 이는 상승 5파 후의 조정 3파가 조정을 할 때에는 4번 파동의 밑으로 하락조정해서는 안된다. 또한 4번 파동은 직전의 파동인 3번 파동의 5개의 소파동중 4번째 소파동의 밑으로 내려가면 안된다. 마찬가지로, 상승 5파중 2번 파동의 경우도 그 직전 파동인 1번 파동을 구성하고 있는 5개의 소파동중 4번째 소파동의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이는 융통성이 있으며 알아두면 유익한 법칙이다.5 중요도(the Order of Importance)의 법칙파동의 형식(forms), 비율(ratio), 시간(time)의 세부분중 형식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파동의 비율분석이나 시간분석 때문에 파동의 형태가 손상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의 우선순위는 비율분석이다. 이때는 피보나치의 비율을 대입해보면 계산이 용이하다.ⅱ) 각 파동에서의 거래전략1 상승장을 예로 설명하므로 거꾸로 하면 하락장의 예가됨.a. 1번 파동에서의 거래전략1번 파동이 완성되기 전에는 지금의 파동이 5개의 파동으로 완성될지 아니면 3개의 파동으로 될지 모른다. 따라서 1번파동에서는 보통 매입하기가 어렵다. 앞으로 있을 2번, 3번 파동에서 매입해도 얼마든지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b. 2번 파동에서의 거래전략강력한 3파동앞에서의 하락파동. 적극적 매입 적기. 2번 파동의 바닥은 1번 파동의 바닥 이하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2다.
    경영/경제| 2005.06.27| 11페이지| 1,000원| 조회(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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