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속의 과학기술《 차 례 》Ⅰ. 지중(地中)과 토규(土圭)의 발달은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가?Ⅱ. 유가(儒家)의 자연관의 특징을 들고, 그것은 다른 사상가들과 어떻게 다른가?Ⅲ. 개천설과 혼천설을 비교하시오.Ⅳ. 구장산술(九章算術)의 마지막장은 구고(九股)란 제목으로 되어있는데, 그 의미는?Ⅴ. 17C이래 중구의 서양 선교사들이 과학에 끼친 공헌과 그 한계를 설명하라.Ⅵ. 20C초 중국 지식층이 과학주의에 치우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그 이유를 말하라.Ⅶ. 나의 견해Ⅰ. 지중(地中)과 토규(土圭)의 발달은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가?토규(土圭)는 해의 그림자를 측정하는 기둥, 동지 시간, 태양의 길이와 폭 측정하는 것이다. 즉, 하지(토규의 그림자 가장 짧을 때) 고대에 일영(日影)을 재는 데 쓰는 옥을 말한다. 한마디로 해시계이다.토규는 나침반이 나오기 전까지 해의 길이로 방향을 측정하는 기구로서의 역할도 했다. 토규가 발달한다는 건 쉽게 말해서 풍수사상과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토규의 발달은 풍수지리사상의 발달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후대 제자백가 중에 음양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런데 이 토규 라는 건 기구이면서 하늘의 명을 점치는 방법의 총칭인 듯하다. 주왕조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이 천명을 받아 상왕조를 대신해 나라를 세웠다는 정권의 합법화, 신성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점을 쳐서 상제에게 도읍을 어디로 정할지를 물었다. 왕이 상제의 뜻을 받아 낙양을 천하의 중심으로 확정해야만 사람들이 복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큰 도읍을 세우면 그때부터 선조를 모시고 천신과 지신을 배향할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비로소 천하의 중심이 되어 다른 제후국을 지휘하고 왕권이 확립되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구체적으로 도읍을 건설할 때 토규의 방법을 사용했다는데『주례』「지관사도(地官司徒)」에서는 나라를 세울 때는 토규로써 토지를 측정하고 구역을 정한다고 하였고 해의 그림자가 5치일 때를 지중(地中)이라고 하는데 이때 천지가 합치있기는 하나 정확한 의미로는 이 내용을 말하고자 한다. 중국 주나라의 수도는 장안이었다. 장안은 국토의 한가운데 위치하지 않고 서쪽에 치우쳐 있었다. 그들은 이것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는 낙양을 제 2의 수도로 삼았다. 이후 낙양의 동남쪽 양성(陽城)을 '지중(地中)', 또는 '토중(中)'이라고 하고 모든 관측의 기준점으로 잡았다한다. 그리고 양성을 세상의 한복판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이른바 중화사상의 발달이었다.Ⅱ. 유가(儒家)의 자연관의 특징을 들고, 그것은 다른 사상가들과 어떻게 다른가?1) 유가의 자연관공자와 맹자를 중심으로 근본정신인 사람사이의 사랑(仁)에 있겠다.자연관이 없었고, 기술을 천시했다.2) 도가의 자연관노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자연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자연을 강조하였으나 회의적 경향과 신비적 특징으로 과학 발달과는 거리가 멀었다.유가와 도가는 자연관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여준다. 도가는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였으나 유가는 인위적 가치관을 존중한 부분이 그러하다. 이러한 관점으로 유가의 자연관과 특징을 다른 사상가들과 어떻게 다른지 말하고자 한다.유가(儒家)의 학문은 그 관심의 폭은 넓지만 요점을 선택하기가 어려워 번거롭기만 하고 그 효용이 적다. 그러나 군신 부자의 예를 세우고 부부장유의 질서를 세운 것은 매우 값진 것이다.묵가(墨家)의 학문은 지나치게 절약과 검소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완전히 실천에 옮기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생산의 소중함과 생활의 검약함을 강조한 내용은 버릴 수 없다.법가(法家)는 매우 엄격하며 인애가 없다. 그러나 군신 상하의 본분을 바르게 잡은 가르침은 매우 중요하다.도가(道家)는 사람의 정신을 하나로 모이게 하며 보이지 않는 도와 조화되는 행동을 가르쳐 마물의 자족함을 강조 한다. 그 가르침은 음양가의 큰 법칙 속에서 유가와 묵가의 장점을 취하였으며 법가의 요점을 채택하여 시간과 사물의 변화에 따라 적절히 대응 하도록 한다. 또한 가르침은 간략 하여 행 뒤에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을 지배 할 수 있다. 법이 있으면서도 마치 없는 것과 같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행동하며 규범이 있으면서도 마치 없는 것 과 같이 사물에 따라 맞추어 나간다. 무위 하면 큰 도에 합치 하여 무지무형인 채로 천하에 빛나게 되며 무명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생명을 부여 하는 것은 정신 이며 육체는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는 형태이다. 정신은 너무 쓰면 기진하고 육신이 너무 피로 하면 쓰러져 버린다. 육신과 정신이 분리 되면 죽는다. 정신은 삶의 근본이요 육신은 삶의 도구인 것이다.Ⅲ. 개천설과 혼천설을 비교하시오.1) 개천설(蓋天說)우산을 쓴 것처럼 하늘을 둥그스름한 뚜껑과 같은 모양으로 되어있고, 그 안에 평평한 땅이 있다고 생각하였다.중국 주(周)나라 때의 우주관이다. 주비법(周法)이라고도 한다. 2단계로 발달하였다. 제1단계는 천지가 모두 평행인 평면인데, 땅은 정사각형이고 하늘은 원형이라 하여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하늘이 원형이라 함은 하루 동안 태양의 운동이 북극점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한다고 본 데서 비롯되었다. 이에 의하면, 태양의 원궤도의 반지름은 하지(夏至)에 최소, 동지에 최대가 된다. 또, 낮과 밤이 생기는 것은 햇빛이 일정한 거리 이상에는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당시의 관측기계는 해시계였으며, 이것으로 원궤도의 반지름, 즉 하늘의 크기를 산출하였다. 제2단계는 천지는 모두 곡면이며 북극지방이 약간 불룩하게 솟은 삿갓 모양으로, 지상 8만 리(3만 2000km)를 덮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천문서인 《주비산경(周算經)》에 개천설이 기록되어 있다. 개천설은 춘분과 추분에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등 많은 결점이 있다. 전한(前漢) 중기에 등장한 혼천설에 의하여 이론적으로 밀리게 되었다.2) 혼천설(渾天設)하늘은 달걀의 껍질과 같고, 땅은 노른자와 갔다.고대 중국의 천문학적 우주관이다. 달걀의 껍질이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듯이 우주도 하늘이 땅을 둘러싼 모습으로 되있다. 또한 남극과 북극에 대하여 91° 떨어진 곳에 적도(赤道)를 두고, 적도에 대하여 다시 24° 기운 황도(黃道)가 있다. 이것은 각도의 개념이 오늘날과는 다소 다르지만 현대의 구면천문학의 개념과 매우 비슷하다. 다만, 태양이 낮에는 하늘을 따라 땅 위를 지나지만 밤에는 물속을 지난다고 생각한 결점이 있다. 한대(漢代) 이후의 학자들은 대부분 혼천설을 지지하였다. 이 점은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 이 설이 도입된 이래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정통적 우주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Ⅳ. 구장산술(九章算術)의 마지막장은 구고(九股)란 제목으로 되어있는데, 그 의미는?구장산술의 마지막장은 구고현(句股弦)이란 제목으로 되어있다. 구고현의 내용은 서양의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 구고현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중국에서 적어도 기원전 1000년쯤, 즉 지금부터 3000년 전에 이미 "구고현 정리"에 대한 개념이 나왔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이 정리를 발견한 것이 기원전 500년쯤이니까 그보다 500년 앞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직각삼각형의 세변 중에 직각을 낀 짧은 변이 구(句)이고, 긴 변이 고(股)이고, 빗변을 현(弦)이라 하고 일반적인 관계는 구고법(句股法), 구고현법(句股弦法)이라 하였다.현(弦)구(句)고(股)Ⅴ. 17C이래 중구의 서양 선교사들이 과학에 끼친 공헌과 그 한계를 설명하라.1) 마테오리치(이탈리아)- 1601년 이탈리아인으로 로마대학에서 서양 자연철학과 신학을 공부- 중국 북경에 정작. 선교활동과 서양 과학을 소개.⑴ 서광계와 함께 에오클레데스의 기하학을 번역 → 기학원본⑵ 중국 최초로 세계지도를 그려준다. → 만국여도⑶ 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천주실의→ 중세서양이 갖고 있던 그리스의 자연관을 소개2) 아담 샬 (독일)⑴ 서양식 역법 : 숭정역서(崇禎曆書)를 편찬 - 선교사들이 중국인들을 설득하는 수단⑵ 천문분야의 중앙관서로 흠천감정(欽天監正)을 만들어 놓고 그 책임자로 아담 샬을 임명 - 서양의 새 역법을 채 1645년부터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시행되었다. 다른 선교사들의 편의도 도모하는 한편 베이징에 온 조선 세자에게도 종교서적과 천문기기를 증정하는 등 선교에 힘썼으며 그는 혼천의·해시계·망원경 등 과학기계와 지도·성도 등을 제작했고 그 밖에 명나라 말기에는 대포도 많이 주조하였으며 한문으로 저술한 저서도 청나라 때의 숭정역서를 다시 편집한 서양신법역서 100권 등, 천문서를 중심으로 30여 편이 있었다. 이러한 중국에 전해진 서양 기술 중에 특히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대포, 역법, 지도 등 실제생활과 밀착된 기술 분야였다. 서광계가 마테오리치에게 유럽화기의 우수성을 듣고 대포의 주조를 황제에게 건의, 아담 샬로 하여금 대포를 주조하고 그 조작을 교련하게 하여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는 포탄의 파편에 맞아 죽고 만다. 나중에 청태종이 대포를 얻었을 때 그 기쁨은 대단하여 대포에 강이 대장군이라는 관직을 부여할 정도였다.새로운 천문학과 역법, 산학도 중국에 큰 영향을 주었다. 원래 중국에선 정확한 역을 만드는데 상당한 열의를 보였는데 서양천문 역학의 우수함이 실증되자 선교사들은 이 분야에서도 중용되었다. 아담 샬은 천문, 수리, 기계, 포술 등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많은 공헌을 하였다. 줄리오 알레니는 서학단에서 유럽의 철학, 논리학, 물리학, 수학 등을 소개했고, 강희제 때에 알레니는 천문역법서인 직방외기를 편찬하고 페르비스트는 곤여전도를 저술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부베는 강희제의 명을 받아 중국전토를 측량하여 1717년에 황여전람도를 만드는데 중국최초의 실측지도였다. 그러나 황제와 일부 위정자, 지식인들은 서양의 학문, 지식, 기술의 가치를 인식하여 채용하는데 열의를 보이나 그것은 지배체제의 유지에 필요한 범위 안에 드는 학문, 즉 천문학, 역학, 대포, 지리학 등 최소한 실용면에 한정되었다. 생산과 관계를 갖는 농학과 광산학 분야에서도 실용적인 지식만 받는데 그치고 과학적 연구나 원리에 대한 이해는 가지려하지 않아서 서양학술에 대한 중국인의한다.
경상도 사람들의 ‘쌀’vs‘살’경상도 사람들이 '쌀'을 '살'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경상도 방언에는 'ㅆ'이라는 음소가 없기 때문이다. 즉, 서울방언과 음운 체계가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상도 말에 'ㅆ'이라는 음소가 없기 때문에 경상도 방언을 쓰는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ㅆ'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경상도 사람들이 'ㅡ'와 'ㅓ'를 구별하지 못하고 '음악'을 '엄악'으로 발음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경상도 지방에서는 다른 말들은 도리어 된소리로 발음하고 있다. 이것은 경상도 사투리의 특징적인 음운현상 중에 하나이다. 축약과 생략의 정도가 강해지면서 음절과 모음이 생략되어 모음이 변동되고 경음화 현상이 함께 나타나게 되는것이다. 이것 말고도 ‘ㄴ'의 첨가와 ’ㄹ'의 불탈락으로 발음이 불안정해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반면, 어떤 경상도 사람들은 '쌀'과 '살'을 구별할 줄 알고 있는데, 이것은 학습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영어를 배워서 우리말에 없는 'r'을 발음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쌀‘의 어원을 찾아 보자면 고대 인도어인 "사리"가 어원으로 퉁구스에서 "시라"로 우리나라에서는 "쌀"로 단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쌀'을 경상도 지방에서는 대개 '살'이라 한다. 이 말은 '쌀'의 옛말이기도 하니, 그 지방에서는 이름이나마 우리의 옛 '쌀'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쌀'의 옛말은 '살'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원래 '쌀'의 뜻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알맹이' 또는 '(딱딱한 부분에서의) 부드러운 물질' 등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고기에 살이 많이 붙어 있다.'이 경우는 딱딱한 부분(뼈) 사이의 부드러운 부분을 뜻하고 있다.'보리 두 말을 대꼈더니(껍질을 깎았더니) 보리쌀이 한 말밖에 안 된다.'단순히 '보리'라고 하면 껍질이 있는 낟알이 되지만, '보리쌀'이라고 하면 보리의 껍질을 벗겨 낸 알갱이를 뜻하고 있다.그런데, 지금에 와서 단순히 '쌀'이라고 하면 '벼의 껍질을 벗겨 낸 알갱이'의 뜻으로 두루 통하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의 식생활에서 이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최서해의 『탈출기』◈ 차 례 ◈Ⅰ. 작가소개1) 작가의 생애와 활동2) 작가의 문학세계Ⅱ. 작품소개1) 발표연대 및 발표연대2) 주제3) 등장인물4) 시점5) 구성6) 문체7) 『탈출기』제목의 의미8) 작품 줄거리Ⅲ. 작품해석 및 감상1) 작품 해석2) 나의 비평 및 감상《 참고문헌 》Ⅰ. 작가소개최서해(崔曙海, 1901년 1월 21일 ~ 1932년 7월 9일)본명은 학송(鶴松). 호는 서해(曙海) 이다.그의 작품은 모두가 빈곤의 참상과 체험을 토대로 묘사한 것이어서 그 간결 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힘입어 한층 더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했던 탓으로 초기의 인기를 지속하지 못하고 불우한 말년을 살다가 일찍 죽었다.1) 작가의 생애함북 성진(城津)에서 출생했다. 학력은 성진의 보통학교 졸업설이 유력하다. 그는 한문을 배웠는데, 부친은 한방 의사였으나 일찍 가출하여 만주 등지를 유랑하였다. 성진보통학교 5년 중퇴 후 막노동과 날품팔이를 하며 인생의 바닥 생활을 하였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각지로 전전하며 품팔이?나무장수?두부장수 등 밑바닥 생활을 뼈저리게 체험, 그러한 귀중한 체험이 그의 문학의 바탕을 이루었다. 1924년《동아일보》에『토혈(吐血)』을, 단편『고국(故國)』이《조선 문단》지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 계속『탈출기(脫出記)』『기아(飢餓)와 살륙(殺戮)』(1925) 을 발표하면서 프로문학에도 가담하여, 신경향파문학의 기수로서 각광을 받았다. 특히『탈출기』는 살 길을 찾아 간도로 이주한 가난한 부부와 노모 세 식구의 눈물겨운 참상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신경향파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가 빈곤의 참상과 체험을 토대로 묘사한 것이어서 그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힘입어 한층 더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했던 탓으로 초기의 인기를 지속하지 못하고 불우한 말년을 살다가 일찍 죽었다. 그가 신경향파의 대표적 작가이면서도 후일 그가 카프(KAPF)를 탈퇴한 것도, 그의 '빈궁해의 작품에서 보게 되는 반항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거한 의식적이고 집단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라, 본능적이며 개인적인 감정의 폭발이라는 점이다.최서해 문학의 특징으로서 이 밖에도 간도 소재의 작품이 많다든가, 작품 결말이 살인, 방화, 발광 등 격렬성을 보이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간도 소재의 작품이 많은 것은 앞서 말한 대로 그가 체험의 작가이기 때문이며, 작품의 결말이 극적인 것은 최서해 소설의 인물들이 환경에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불과 피로 거기에 항쟁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⑵ 최서해 소설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최서해는 일본의 식민지 수탈이 극대화해 가는 시기의 작가로서 비교적 성실하게 시대의 의미를 천착하였다. 그의 삶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하였으며 그의 예술가적 책임은 식민지적 현실 - 즉 궁핍화 현실에 대한 문제로 집약된다. 그가 다룬 이야기의 대부분이 '가난'이었으며 그의 세계는 모두 하층민, 소작민, 유랑민, 노동자의 것이었다.그의 소설적 공간을 이루고 있었던 당대 식민지 사회의 구체적 현실은 크게 다음의 몇 가지 항목을 들 수 있다. 식민지 체제의 강화로 인한 토지조사 결과 한국 농민의 빈궁화가 2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되었으며, 또한 문화정치를 모방한 사이또오 총독 시대의 도시 생활의 궁핍화는 빈번한 노동 쟁의를 발생케 하였으며, 민족자본은 이미 붕괴한 지 오래였으며, 어업령을 제정, 한국 수산업에 대한 식민지적 재편성을 단행하였으며, 안민?신민회 사건 이후 3ㆍ1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의 항일 운동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현실은 그의 문학과 불가피한 동기적 관련을 맺게 되는데, 그는 모두 그러한 상황을 직접 체험한 현장인이면서 작품 속에 그것을 '비극'으로 안식한 시대의식을 보이고 있다. 다음의 인용은 당시의 현실을 잘 말해 주고 있다 하겠다.① 최근 조선인은 '우리들은 죽을 수밖에는 길이 없다.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하는 말을 거의 유행어와 같이 입에 담는 것을 본다.…… 그렇다, '다 죽의 체험한 바의 그것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경우 우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의 문학에 체험 세계의 확대와 심화라는 점에서 그를 위해 평화적인 여건으로 간주할 수 잇는 역설이 성립할 수 있다. 작가 개인의 고통이 곧 독자의 고통은 아닌 것이며 그것은 다만 개인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로 연결될 때에만 가능한가. 물론 서해는 자기 체험의 객관화에 비교적 성공하고 있으며 개인의 아픔을 동시대인 전체의 아픔으로 환치시키려 하였다.⑶ 최서해 문학과 신경향파 문학① 빈궁의 문학② 저항적 태도③ 개인과 사회의 관계 인식1920년대 초 백조파의 감상적 낭만주의, 창조파의 자연주의 등 이전의 문학경향을 부정 혹은 발전시킨 결과인 사회주의 경향의 새로운 문학, '경향(tendency, tendenz)'이란 말은 '무엇인가를 가지려 하다'라는 뜻을 지닌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경향을 '습관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일정한 대상에 대해 병적 애정의 증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향의 형태는 특히 윤리적?정치적?사상적?미적인 측면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속성을 지닌다. 경향은 광의로는 일정한'신념?주의?이상?사조 등을 지향하는 것'이 되며, 협의로는 '사회주의8)사상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를 뜻한다. 1920년대 한국문단에서 유행어가 되었던 '신경향파문학'이란 용어는 광의로 쓰인 것이며, 이에 비해 '경향문학'이라는 용어는 협의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20년대 전반기의 한국문단에 '경향'이란 용어를 처음 소개하였던 박영희(朴英熙)는 '경향문학'보다 '신경향파문학'이란 용어를 자주 썼다. 이 점에 있어서는 백철(白鐵)도 마찬가지다. 박영희는 신경향파문학이란 말을 사회주의 색채를 띤 문학이라는 뜻과 신흥문학, 신사조(新思潮)의 문학이라는 뜻을 섞어서 사용하였다.9) 그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는 별다른 구별 없이 혼용되었다. 1920년대 후반에 경향문학 또는 신경향파문학이라는 용어는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프로문학?카프문학?무산자문학?계급문학?마르크시즘문학?사회주의같은 것들이 있다.Ⅱ. 작품소개1) 발표연대 및 발표연대1925년 3월 1일에 《조선 문단》6호에 발표 되었다.이 작품은 원래 소설이 아니었는데, 1925년 3월 1일 《조선 문단》에 투고한 것을 읽은 이광수의 권유에 따라 소설로 고쳐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체험이 곧 작품화된 것이다. 이 작품은 결함도 내포하고 있지만, 간도에서의 혹독한 체험이 정제되거나 여과되지 않은 채 독자의 가슴에 직접 와 부딪히는 감동을 느끼게 한다. 사실과 허구의 양면을 갖춘 것이 소설이고, 그 중에서도 허구성이 많이 강조된다고 하지만, 체험의 밀도가 높은 작품을 만날 때 허구는 사실성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2) 주제절대 궁핍한 원인과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적 삶의 결의를 보여준다. 특히, 가난한 삶의 고발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면서 이면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만주 이주민의 빈궁한 삶에 대한 고발과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나는 나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들, 험악한 이 공기의 원류를 쳐부수어야 한다."는 주인공의 말은 주제를 직접 노출시킨 것이므로 이 작품은 함축적 방법보다는 명시적 방법으로 제시했다.『탈출기』『레드메이드 인생』공통점식민지 하층민의 빈궁한 삶인텔리 계열의 인물 설정차이점적극적 저항과 반항의식당시 풍토적 배경과 상황 풍자3) 등장인물⑴ 나 (박 君) : 주인공(작품의 화자). 동적인 인물로 고향을 떠나 간도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집을 탈출한 가난한 지식인이다. 세상을 성실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빈궁한 현실과 허위에 찬 제도 때문에 저항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현실의 모순을 개혁하기 위해 ××단에 가입한다.⑵ 아내 : 보조적 인물로 순박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시골 여인으로 궁핍한 상황에서도 순응하며 살아가는 어머니와 비슷한 당시 한국 여성의 전형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⑶ 어머니 : 보조적 인물로 궁핍한 현실에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우리의 전형적인 어머니라고 힐난하는데 대한 자기 해명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살길을 찾아 만주로 건너간 주인공이 어머니와 아내를 먹여 살리려고 절망적인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 없었던 고된 삶과, 그것들의 실패, 그 때문에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막다른 지경에서 탈가 하기까지의 과정과 사고의 추이를 상대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차분하고 진정어린 목소리로 진술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진술에 합당하게끔, 서간문체는 정경묘사체보다 더 논리적이고 담담하면서도 당당하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볼 때, 최서해의 출세작이 서간문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것이 정경 묘사체로 객관화하기에는 작가의 체험이 너무나 절박하였고 주관적인 토로 이외의 방법으로는 한 인간의 삶을 소개하기에 너무나 미흡했으리란 집작이 가능하다. 그의 체험문학의 연유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겠거니와,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자신의 삶에는 어떤 문학적 조작이나 수식이 오히려 무의미해지고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바로 그 정도만으로써 당시의 어떤 작가보다 생생한 문학적 공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7) 『탈출기』제목의 의미제목인‘탈출기’는‘탈가기’라고 해야 옳겠으나 의미를 보다 강조하고 감정의 심도를 더하기 위하여 그렇게 명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탈출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집으로부터의 탈출이고, 다른 하나는 부조리하고 모순된 세상 또는 사회로부터의 탈출이 그것이다. 주인공이 탈출한 집은 바로 굶주림의 현장이고 사회는 민중을 억압하는 험악한 사회현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탈출기 는 부조리한 사회, 불합리한 사회, 모순된 사회에 대한 민중의 반항의식을 보여준 이 소설의 주제를 잘 암시하고 있는 제목이라 하겠다. 이렇게 서해는 제목하나에도 깊은 사색을 기울였으니 이 하나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소설의 기법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8) 작품 줄거리나는 5년 전 고향을 떠나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
이상「날개」【 차 례 】Ⅰ. 작가소개Ⅱ. 작품소개1) 발표연대 및 발표지2) 주제3) 등장인물4) 시점5) 구성6) 문체 및 표현 기법7) 작품 줄거리Ⅲ. 작품해석 및 비평1) 작품해석2) 비평 및 견해〔참고자료〕Ⅰ. 작가소개이상(1910 ~ 1937) -본명 : 김해경 -필명 : 이상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서울 출생으로 1929년 경성공고 건축과 졸업하였다. 1931년 시「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파편의 경치」「의 유희」「공복」「삼차각설계도」등을 에 발표하는 한편 이해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양화「자화상」을 출품하여 입선되었다. 1932년 역시 에 시「건축 무한 6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 무렵 그는 백부의 알선으로 조선총독부 내무부 건축과 기수로, 또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전전하며 근무하였다. 이상이란 이름은 기수 시절 인부들이 그를 가리켜‘리상'이라고 부른 데 연유한다지만 고공 졸업앨범에 그러한 별명이 나와 있다는 설도 있다. 에 발표된 그의 초기 시편들은 주로 일본어로 쓰여 있는데, 내용이나 형식이 실험적이고 이색적이어서 당시의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미 그에게는 전통적 문학의 계승이니 혹은 그 정서적 바탕 위에서 언어를 갈고 닦는 등 서정의 맛은 없었다. 숫자와 기하학적 낱말, 그리고 관념적 한자 언어로 구성된 극히 난해한 문학으로 나타났던 것이다.그러나 이 난해한 문학이야말로 그가 22세에 시도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의식세계에 대한 내시적 추구였으며 지금도 일부의 추종자 또는 그 유사한 시도자들을 낳고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 1933년 폐결핵에 의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가 기생 금홍을 알게 된 그는 금홍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백부가 물려 준 통인동 집을 처분하고‘제비'라는 다방을 차렸다. 이 무렵부터 격심한 고독과 절망, 그리고 자의식에 침전돼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온종일 어둠침침한 방에 박혀 술만 마시기도 하였다.1934년 난해의 극을 이루자신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박재된 천재의 번득임이 나타나 있다.「날개」를 발표할 무렵 같이 폐를 앓고 있던 작가 김유정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1936년 여름, 친구인 화가의 여동생과 돈암동 홍천사에서 결혼했으나 생활은 비참했고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이해 암담한 생활과 자신에 대한 회오의 눈물을 남긴 채 도일, 이듬해 토쿄 거리를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며 배회하다 사상불온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 나왔다. 자기 생활의 결산과도 같은 장편「종생기」1편을 남기고 그 해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죽었다. 작품으로는「1933년 6월1일」「꽃나무」「이런 詩」「거울」「보통기념」「오감도」「지팽이」「소영위제」「정식」「산촌여정」「서망표도」「조춘점묘」「약수」「행복」「위독」「봉별기」「동해」「황소와 도깨비」「19세기식」등을 남겼는데 시 . 소설. 수필. 평론 등을 합하여 모두 80여 편이 전한다. 1957년 그의 전 작품을 정리한『이상전집』 전 3권이 간행되었다.Ⅱ. 작품소개1) 발표연대 및 발표지1936년 에 단편소설「날개」를 발표함으로써 시에서 시도했던 자의식을 소설로 승화시켰다.「날개」는 그의 첫사랑 금홍과 2년여에 걸친 무궤도한 생활에서 얻어진 작품으로 그 자신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박재된 천재의 번득임이 나타나 있다.「날개」를 발표할 무렵 같이 폐를 앓고 있던 작가 김유정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2) 주제ㆍ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의식의 심화와 그 초극을 위한 몸부림ㆍ전도된 삶으로부터 초월적 자아를 확인해 가는 인간의 의지ㆍ식민지 지식인의 자의식3) 등장인물⑴ 나 : 경제적 생활 능력 결여, 사회 활동 전무(全無) 성적(性的) 무기력한 남편으로 아내보다 열등한 상태에 놓여 있는 남성이다. 아내의 부정과 자아의식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켜 극히 불안한 심리적 자의식을 보이는 인물이다, '나'와 아내의 관계는 '닭이나 강아지처럼'이란 동물적 비유가 의미하듯 종속적 관계이다. 날개의 소생(蘇生으로 묘사함으로써 '나'가 제시하는 여러 상황에 독자를 참여하게 하여 자신의 의식 세계를 더욱 사실적으로 돋보이게 한다.5) 구성주인공 '나'가 집에서 보고 느낀 의식, 무의식의 상태와 외출해서 느낀 점 등을 순차적으로 단순 구성으로 그리고 있다.도입(prologue)'나'의 독백. 기지와 풍자가 넘치는 짧은 경구(epigram)들.지적인 역설로 분열된 자아 제시.발단33번지 유곽(遊廓). 해가 들지 않는 '나'의 방.전개내객(來客)이 있는 아내. 일찍 귀가한 '나'와 아내의 조우(遭遇)위기감기약 대신 수면제를 먹인 아내의 의도 파악에 부심(腐心)하는 '나'.절정정상적인 삶에 대한 욕구.결말6) 문체 및 표현 기법주인공 '나'의 내부 심리를 주인공 자신이 독백체로써 직접 서술하고 있다. 기성 문법에 반역하는 충격적 문체를 사용하였다. 인물이 처한 처지와 심리를 상징적 상황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주제를 암시하였다.매춘부인 아내에게 기생해 사는 어느 무기력한 지식인의 암울한 내면이 묘사된다. 즉 '나'라는 비일상적인 인물의 삶을 통해 삶의 무의미성을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일상적인 상식의 세계를 떠나 그날그날 그저 까닭 없이, 의욕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시간이나 공간의 필연적인 전환이 무시되고, 사건의 인과적 줄거리가 설정되지 않은 채 주인공의 자의식을 좇는 소위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정당한 인간관계를 상실한 현대인의 자폐스러운 심리 상태를 그리면서 '날개' 라는 상징어로써 욕망의 탄생과 억압된 세계 안에서의 비극적 초월을 구현한다.7) 작품 줄거리33번지 유곽-해가 들지 않는 음침한 나의 방은 아내의 방을 거쳐 미닫이를 열어야 들어설 수 있다. 나는 그날그날을 의욕도 없이 방 속에서만 뒹굴며 지낸다. 아내에게는 매일같이 손이 온다. 아내가 외출을 하면 아내의 방으로 가서 화장품 냄새를 맡고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며 아내의 체취를 맡는다. 내가 잠을 자고 있으면 은화 한 푼을 내 머리맡에 놓고 가곤 했다. 어느 날 나는 아내가 사다 준 벙어리에어떤 선고가 내리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다음날부터 나는 아내의 방이 몹시 아쉬웠다. 그러나 내게는 돈이 없었으므로 울고 있었더니 아내는 돈을 주며 자정이 넘거든 돌아오라 했다. 그 날 밤 나는 비를 함빡 맞아 기어코 감기로 앓아눕고 말았다. 나는 그 후 얼마 동안 아내가 주는 약을 먹고는 잠들곤 했다. 며칠 후 나는 아내의 경대 위에서 최면약(아달린)을 발견했다. 감기약(아스피린)이라면서 주던 약에 틀림없었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나는 그것을 가지고 산으로 가 그 약을 먹고는 잠들고 말았다. 이튿날 집에 돌아와 아내의 방을 지나려다 기어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내는 내 멱살을 쥐고 나를 덮치고 물어뜯었다. 나는 거리로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쓰꼬시백화점(和信百貨店)으로 갔다. 나는 거기서 스물여섯 해를 회고했다. 피로와 공포 때문에 오탁의 거리를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굽어보니 현란한 현실 속에 사람들이 수선을 떨고 있다.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자꾸나. 나는 이렇게 외쳤다.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 오늘은 없는 이 날개를 떠올린다.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친다."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Ⅲ. 작품해석 및 비평1) 작품해석매춘부인 아내에 붙어사는 무기력한 '나'를 통해 자아의 분열을 그린 한국 최초의 심리주의 소설이다. 주인공 '나'의 유일한 삶의 지반이었던 아내로부터의 배반감이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그러므로,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란 그의 외침은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탈출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종속적인 관계이다.이런 종속 관계는 시간과 공간의 소유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내의 매음 현장이 '나'에게는 금단의 공간이며, 외출을 통해 아내의 가학적 감금에서 일단 풀려 나온 '나'는 다시 아내가 쳐 놓은 시간에 감금된다. 자정 전에는 절대로 집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외출 시간은 아내의 매음과 자신의 자유방임이 묵계된 시간이다.이러한 자정의 시간과 반대쪽인 정오의 사이렌은 강요된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전기가 된다. 즉, 대낮의 정점으로서의 정오는 '나'의 유폐성 극복과 도착된 아내와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전환점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의 날개와 비상에의 소망은 박제와 무력과 유폐된 시간으로부터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릴 수 있는 탈출의 욕망이며, 아내라는 구속성과 거짓됨에 맞설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자아의 확인이자 건전성에 대한 향수이다.2) 비평 및 견해이 소설은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자기 소모적이고 해채적인 삶을 통해 사회 현실의 문제를 심리적 의식이고 내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내는 나를 제압하며 구속하고 압박하는 당위성의 거대함을 보여주고 나는 동물처럼 그에 길들여진 존재의 왜소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 당위와 존재라고 하는 상반된 입장이 서로 대립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게으름과 삶의 권태에 찌든 주인공이 아내에게 승복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존재와 당위의 불화 없는 공존 관계가 성립되지만 이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나는 돈으로 인해 외출에의 계기를 갖게 되고 나의 외출로 인해 아내는 나의 존재를 구속한다. 다섯 차례에 걸친 외출이 의미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비본질적인 자아에 눌려 마비되었던 본질적 자아를 자각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본질적 자아를 되찾는 의지적인 인간 회복에의 과정이다. 이작품은 소위 의식의 흐름 수법을 시도하고 주관적 내면 의식을 객관화시켜 드러내는 등의 현대문학적인 기법을 선보임으로써 발표 당시부터 문단에 상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