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뉴스는 미국 프로 풋볼(NFL) 슈퍼볼의 MVP인 한국계 미국인 풋볼선수 하인스 워드의 방한으로 한참 떠들썩했었다. 하인스 워드가 슈퍼볼 MVP에 뽑히면서 서서히 시작된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는 워드의 한국 방한으로 그 정점에 달했다. 입국에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실시간으로 보도하며 마지막 출국하는 날까지 그러한 관심은 그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미식 축구(American Football)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경기방식이나 득점방식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있어도 아주 소수에 불과할 것이고 미식축구란 것이 무엇인지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스포트라이트와 관심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하인스 워드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 단지 그 한 가지 때문이다. 미국에서 매우 인기 있는 스포츠 선수가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한국계라 자랑할만하다 이것이 기본적인 언론보도의 이유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어이없는 이유라고 개인적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언론매체의 기능이 사실의 보도이고 그중에서도 일반인의 관심을 중심으로 보도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언론의 하인스 워드모자(母子)에 대한 보도도 일반국민의 대중적인 관심이 있었으니 그렇게 많이 보도를 했을 것일게다.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은 혈통이나 민족을 매우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우리들의 성향은 민족이나 한국인이라는 이름 하에 단합되고 응집력강한 단결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국수주의적 망상이나 인종배타적인 태도 등 문제점들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나는 우리나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나 성향과 혼혈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단일민족이며 한겨레, 백의의 민족 등 순수한 한민족을 지칭하는 많은 말을 들어왔고 그것에 대해 항상 자부심을 갖도록 교육받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라에 대한 사랑과 충성 또한 요구 받고 교육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어느나라 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에 대한 자긍심은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혈통에 기초한 단일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자칫 한국인이라면 이래야 한다, 한국인의 모습은 이렇다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 깊게 자리 잡게 되어서 그러한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닌 타인으로 여겨버리고 배타적인 태도까지 보이게 된다. 그러한 예로 한국인과 외국인이 결혼해서 낳게 된 혼혈인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과 태도는 그동안 매우 배타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예전보다는 오늘날 외국인과의 결혼 내지 혼혈인에 대한 태도가 많이 개방적이고 수용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도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의 인식은 그들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대한민국에 세금을 내고 한국어를 사용하더라 하더라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즉 한국인의 모습 같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그러한 혼혈인에 대한 이러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다가도 그 혼혈인이 유명인이 되거나 성공하게 되면 한국과 관련해서 사소한 것까지 찾아가며 그를 띄우기에 바쁘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 스스로는 또 한국인이 역시 위대한 민족이다라는 근거로 삼게 된다. 한마디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중적인 잣대로 혼혈인들을 우리는 대하고 있는 것이다.하인스 워드만 해도 그렇다. 사실 워드의 어머니는 한국인이다(우리들이 생각하는 기준으로) 그녀는 한국에서 있던 젊은 시절 당시 한국에 주둔했던 흑인 주한미군과 결혼하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외국인과의 결혼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지 못하는데 그 당시에 외국인과의 결혼 그것도 흑인과의 결혼은 더욱더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대로 그녀는 가족들의 심한 반대와 갈등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녀가 낳은 하인스 워드 또한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외면 받게 된다. 결국 그녀는 20년 이상 살아온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흑인남편과 하인스 워드를 데리고 가게 된다. 나중에 그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는데 미국으로 떠난 결정적인 이유는 외국인과의 결혼에 대한 가족과 주변의 눈초리 보다는 아들인 하인스 워드의 장래를 위해 결심을 했다고 한다. 바로 아들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가진다 하더라도 혼혈인이라 이유, 피부색이 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받게 될 고통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미국에서 슈퍼볼의 히어로가 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져 미국으로 떠난 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들과 귀국하니 모든 사람으로부터 환영받질 않나 대통령과 오찬을 하질 않나 거의 국빈급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혼혈인에 대해 알 수 없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세계는 변하고 있다. 국가간의 물적 인적 교류는 날이 갈수록 활발해 지고 있고 거의 모든 나라로 1~2일 이내에 갈 수 있는 세상이다. 공산권 국가의 개방화 물결도 심해지고 있고 더 이상 구태의연한 예전의 생각들은 쓸모 없는 것들이 되어가고 있고 국제화나 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우리들의 의식이나 태도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그 큰 흐름 속에 예외일 수 없다. 국제결혼은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고 이주노동자와 같은 외국인들의 유입도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시골 농촌총각과 베트남, 필리핀, 몽골과 같은 국가의 처녀들의 결혼도 그 예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혼혈인 자녀와 혼혈인 한국인의 수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혼혈인의 추세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제는 그동안 순수한 혈통이니 피가 섞이지 않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점차 의미가 많이 약화될 것이다. 이렇게 현재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혼혈인에 대한 의식의 변화속도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아직도 피부색을 따지고 인종을 따지고 혈통을 따진다. 나를 돌아봐도 그렇다. 나 또한 혼혈인에 대해 관대해지고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하겠다라고 마음 먹었더라도 막상 혼혈인하고 마주하게 된다면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 국적을 가진 완벽한 한국인이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외국인 내지는 한국인이 아닌 타인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연유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의식이나 민족에 대한 자부심내지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기인한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또한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시대를 겪었기 때문에 일제로부터의 독립이나 자주적 해방을 위해서라도 민족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교육하여 민족해방의 열쇠로 삼으려하는 현실적인 필요성의 결과물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일제시대에서 해방한 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무수히 많은 교육을 받아왔으며 과거 정권들 또한 그러한 교육내지는 선동을 통해 민족주의를 내세워 정권의 공고화를 꾀하고 정당성을 민족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러므로 정권에 반하는 일은 곧 민족에 반하는 일이 되고 민족에 반하는 일은 그 어느 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고 그러한 것을 처단하는 것은 민족이란 이름 하에 무조건 옳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민족이란 이래야 한다는 당위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공고한 사회적 통념이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통념들과 고정관념들이 외국인이나 혼혈인을 보는 시각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본다.민족이란 과연 무엇일까? 민족이란 것은 누구의 말대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일뿐일까? 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족을 설명하는 데에는 언어, 지연, 역사, 전통, 문화의 동질성에 입각한 객관설이 있고 민족의식, 민족정체성, 충성과 같은 주관적 요소의 동질성을 중시하는 주관설이 있다. 또한 이러한 두 설을 절충하는 절충설로서 민족을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나 또한 절충설의 입장이다. 이러한 설에 따라서 우리나라의 민족주의 태동의 시기를 학자마다 다르게 보는데 언어나 문화 전통의 동질성이 생겨날 때부터 민족에 대한 의식이 싹텄다고 보는 입장과 정치학자를 중심으로 해방이후나 군사정권시절에 대내적 국민주권이나 대외적인 자주와 독립을 주장한 시기 이후 민족주의가 생겨났다고 보는 입장이 그것이다. 내 생각에는 둘 다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 사실 언어와 문화가 다른데 민족이란용어를 쓸 수 가 현실적으로 없고 언어와 문화내지는 인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설명할 수 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줄곧 한국에서 성장해서 한국어만 구사할 줄 알고 한국적 사고방식이나 문화를 향유한다고 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본다고 할 때 그를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라고 쉽게 얘기 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우리와 생김새가 다르다라는 하나 때문이라도 민족이라고 얘기하기를 모두가 꺼려할 것이다. 혼혈인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반면 미국에 있는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리 민족이라 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쉽게 수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생김새며 피부색은 한국인이며 부모 또한 한국인으로 혈통으로는 한민족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생각은 미국적일 것이며 한국어 또한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고 한국문화 또한 이해하지 못하므로 당연히 민족의 일체감내지는 민족의식에 대한 생각 또한 갖기 힘들 것이다. 이렇듯 같은 민족이라는 말은 정의 내리기도 어렵거니와 다양한 것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차이는 정치적인 면도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로 사회주의는 사적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공동생산에 의한 공동분배를 통해 인민모두의 공유를 지향하지만 자본주의를 근본으로 한 민주주의는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처럼 사적소유를 인정하고 시장에서의 가격에 의해 부의 분배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을 기본경제체제로 삼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경제체제는 둘 다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바로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른 분배를 행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의욕은 떨어지고 그로 인해 경제는 하향 평준화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였고 한편 자본주의는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해 시장의 메커니즘에만 모든 것을 맡겨버리자 오히려 부의 불평등의 초래되고 가진 자는 계속 부유하고 못 가진 자는 기초적인 생활수급 조차 어려운 지경까지 초래됐다.결국 이러한 양 이데올로기 경제체제의 문제점들은 서로 상대체제의 장점을 부분수용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사회주의는 정치체제는 일당독재로 유지하지만 경제부분에서는 시장메커니즘을 적극 수용하여 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제한된 부분에서는 사적 소유까지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그 대표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등소평 이 후 변화된 경제체제하에서 중국은 급격하게 경제적 성장발전을 이루고 있다.자본주의 또한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에 맡겼던 것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국가가 나서서 부의 재분배를 조정하고 기업의 독과점 또한 막고 있다. 또한 사회보험과 공적부조를 통해 시장에 맡길수 만은 없는 의료서비스, 교육 서비스등을 지원하고 있고 기초적인 생활영유가 힘든 자들에게는 생활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즉 여러 형태로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러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천하고 있다.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통한 능력에 의한 부의 분배를 꾀한다고 한다면 사회주의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면 기회를 똑같이 가졌더라도 그 기회를 제대로 향유할 수 없는 사람들은 소외받게 된다. 수업시간에도 들었듯이 달리기를 할때 똑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였다고 평등하다고 한다면 한 쪽 발이 불편한 사람에게도 같은 평등일까. 아닐것이다. 그래서 현대 자본 민주주의국가들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평등한 처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기초생활보조금을 지급하여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등을 돕고 있다. 그러나 혹자들은 또 그렇게 보조금을 주는 것은 수혜자의 생산의욕을 더욱 감퇴시키고 그것에 의존하게 되어 결국 자활능력이 없게 되버려 문제있는 제도라고도 주장한다. 일견 일리 있는 말이다. 역사적으로도 증명되어 왔듯이 노력없는 댓가는 의욕감퇴를 초래해 국가에 전체적인 악역항을 끼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러한 제도는 국가의 입장에서도 생산 없이 소비만 하는 경우이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좋지 많은 않은 제도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출산인구가 줄어들고 수명은 늘어나 갈수록 노인들이 많아지는 노령화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인들 대부분이 기초생활보호자들은 아니더라 할지라도 그만큼 사회적 생산인원은 줄어드는 것이 분명하니 이대로 그냥 간다면 언젠가는 또 한번의 경제적인 위기가 닥쳐올지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인들이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여 사회적 생산물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및 제도들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런 맥락에서 기초생활보호제도도 단순히 어려운사람들에게 일정량의 돈만 떡하니 주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헤쳐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형국이 되어야 올바를 것이다. 흔히 애기하듯 고기를 잡아서 입에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internet). 돌이켜 보건대 내가 이 말을 들어본지도 10년도 채 안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동안에 인터넷은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이제는 인터넷은 컴퓨터 통신망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문화로써 사회, 경제,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크나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조간 신문을 보는 대신 인터넷 실시간 뉴스를 보고 백화점에서 발품 팔아 쇼핑하는 것 대신 인터넷 쇼핑몰이 일상화 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서도 인터넷 커뮤니티가 큰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런 바탕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성과 빨리빨리 문화의 영향이 컸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세계 최고의 인터넷 보급률과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나는 생각한다.하지만 이렇듯 빠른 성장의 이면에는 분명 문제가 생기듯이 인터넷의 무한한 성장속에서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갖가지 문제점이 생기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채팅을 통한 성매매, 장기매매, 각종 인터넷 사기, 저작권문제, 개인정보 유출, 그리고 인터넷상의 언어폭력등이 그것이다.특히, 요즘에는 인터넷 각종 포탈싸이트 게시판이나 댓글 등을 통해 무분별한 언어폭력과 욕설 등이 넘쳐나 이른바 사이버 테러 라는 신조어까지 생기고 있는 실정인데 나는 이것에 관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생각해 보았다.표현의 자유 자신의 생각을 국가나 타인의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우리 어버이 세대에는 해서는 안될 말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었고 당시 정부나 대통령에 관련되는 말을 한 사람은 빨갱이 나 반체제주의자 라는 이름으로 억압되고 숙청되었다. 또한 당시에 언론이라는 것은 정부의 앞잡이나 홍보도우미에 불과 했었고 개인들은 그런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며 정부에 순한 양처럼 순종하기만 하였다.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사회는 변해서 이제는 정부나 대통령에게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국가 최고의 원수인 대통령을 탄핵하기까지에 이른다. 각종 언론사들에서는 정부나 대통령을 칭찬하는 기사보다는 어떻게 보면 작은 오점도 더욱 부각시켜 헐뜯을수록 언론 스스로의 기능에 충실했다고 믿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문화 예술분야에서도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되고 포르노인지 외설인지 구분이 모호한 연극이나 영화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상영되고 있다. 우리가 자주 보는 TV 드라마의 대사나 장면들도 그 이전에는 담지 못했던 것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물론 부작용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표현의 자유들이 개인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여 올드보이 같은 영화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고 다양하고 자유로운 의견 교류를 통한 토론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하여 결국 진정한 민주주주를 구현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인터넷과의 만남을 통해 어찌보면 가장 활발한 의견교류와 다양한 상상력의 나래를 펴고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매우 개방된 인터넷의 문화는 다양한 장점을 보이고 있는 반면 사이버 테러 와 같은 문제들도 생기게 하고 있다.인터넷을 서핑하다 보면 안타까운 사연이나 감동적인 뉴스에 악의적으로 비꼬는 글이나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해대는 댓글을 자주 접하게 된다. 또한 공인들의 홈페이지나 각종 공공기관의 게시판에는 익명에 기초하여 무분별한 루머들을 퍼뜨려 지고 있고 확인되지 않는 자료들도 마구 유포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심한 욕설과 인신공격등의 언어폭력은 여전하다. 이러한 언어폭력은 한 개인에게 심한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 우울증에 빠지게 하거나 심지어 자살에 이르게까지도 하고 있다. 또한 게시판이나 댓글은 익명이 보장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옳지 못한 글이나 호도된 내용이라 할지라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쉽게 동의하는 의견들이 달리고 어떠한 이슈에 대해서도 시간을 갖고 신중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이 대부분이다. 이른바 네티즌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속의 또 다른 우리는 익명성의 탈을 쓰고 빠른 시간 안에 한 개인이나 단체를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역적으로 만들었다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러한 네티즌의 태도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표현의 자유도 자유지만 쓸데 없는 문제들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고 또한 자신들의 신중하지 못한 타자놀림이 얼마나 큰 위험들을 내포하고 있는지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때문이다. 최근에 이러한 위험을 여실히 보여준 예가 바로 황우석 사태 라 할 수 있다.처음에 그의 연구 성과를 MBC에서 재검증하고 의혹을 제기 했을 때 이미 네티즌들은 민족주의적인 감성에 빠져서 그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웅 만들기에 나섰었고 그런 영웅만들기에 제동을 건 MBC PD수첩을 애국심을 버린 프로그램이니 매국노니 하면서 후원하는 회사에까지 압력을 행사해서 광고까지 끊게하는 저력(?)을 보였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공격적인 네티즌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겟는가. 더욱 웃긴 것은 그 이후이다. 결국 PD수첩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고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조작했음이 서울대 조사위의 조사로 밝혀지자 이제 네티즌의 마녀사냥은 PD수첩에서 황우석으로 선회했다. 또 한번 네티즌들은 우루루 몰려 댓글과 게시판을 통해 황우석을 비판이 아닌 비난하기에 앞장선 것이다.만약의 문제이고 앞으로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각종 포탈 싸이트나 뉴스관련 게시판과 댓글에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하여 자신의 이름과 나이가 쓰여져 있었다면 과연 이러한 네티즌의 여론몰이에 우왕좌왕하거나 언어폭력에 의한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나는 것이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 물론 자유로운 의견피력에 제재가 따른다는 것은 알지만 아직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파장을 주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까지 자유스럽게 열려있는 것은 분명 내 생각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게시판의 무분별한 욕설과 비방들이 그것을 자유스럽게 보고 있고 댓글 또한 달고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분명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나 개인의 생각으로는 인터넷의 실명제 도입에 찬성하는 쪽에 가깝다. 물론 그러한 개인의 실명제를 통한 개인정보가 악용될 수 있을 수 있으니 철저한 감시와 기술적인 조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사실 이러한 실명제가 실시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선거와 관련된 언론이나 각종 선거관련 게시판이다. 2004년 3월 12일 개정 공포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에 규정된 개념으로 제 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대비해 익명성을 악용해 인터넷 공간에서 불법선거운동을 하짐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어길 경우는 1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 언론사 범위의 불명확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주민등록번호 노출에 따른 개인 인권의 침해, 국민의 정치참여 제한에 따른 정치적 자유의 침해등 여러 가지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 언개련(언론개혁시민연대)에서는 헌재에 위헌소송을 제기한 이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들어가며..사실 난 수필이라는 장르가 현대에 와서야 쓰여 진 것으로만 여겼었다. 하지만 레포트가 동기이긴 했지만 교수님의 한국 고수필 문학 을 읽으면서 이렇게 오래전에도 자신의 주변의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수필들을 썼었다는 것에 대해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다 한자로 이루어졌지만 자세한 번역이 되어있어서 읽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고 사실 다 읽는 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흥미 있게 읽어 내려갔다. 여기에 수록된 수필들은 주로 간단한 일상의 경험이나 얘기들을 겪고 그에 관해 작자가 느낀 점이 주 내용이라 하겠다. 비록 오래전에 쓰여 진 수필들이지만 결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었고 우리들에게 많은 부분을 시사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처해진 환경만 다를 뿐 다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옛날 선인들이 했던 고민들도 현재 우리들도 하고 있고 그들이 문제 삼았던 것들도 지금 또한 문제시 되고 있는 것 일게다. 또한 수필 중간 중간에도 작자들이 후대사람들에게 알려 경계시키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 역시 이러한 이치를 이미 깨우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때문에 나는 각각의 수필들의 내용들 중에 특히 내가 크게 공감하고 혹은 뉘우치기 까지 했던 부분을 중심으로 나의 감상과 그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들의 세태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犬說이 수필의 내용은 한마디로 모든 생명의 가치는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손(客)이 죽는 것을 불쌍히 여겨 그 뒤로 개고기나 돼지고기를 안 먹겠다는 다짐을 하는 데 이에 작자가 화로에 이를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이를 그 뒤로 잡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한다. 이에 객이 자기를 놀리는 것이냐고 화를 내자 작자는 모든 미물에는 다 살고 싶고 죽기싫어 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의 몸집이 크던 작던 간에 모든 생명은 하늘로부터 기를 받아 숨쉬는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꾸짖는 내용이다.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에 좋다고 하면 곰의 쓸개며 사슴이며 가리지 않는다. 이미 생명 경시 풍조는 이젠 더 이상 문제라고 말하기에도 지칠 정도이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와 자식 간에도 피를 흘리는 일이 생기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사회가 근대화 되고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법으로도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사회적 분위기와 세태들은 거꾸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것들은 넓게 보면 오늘날에는 개발과 환경으로 귀속될 수도 있을 듯 싶다. 우리나라를 보자. 우리나라는 여전히 좁은 땅덩어리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다 보니 자연히 푸르고 높은 산은 깎이고 계곡은 메워지고 바다는 막아진다. 개발이란 이름 하에 오랜 세월 동안 우리들의 자랑이었던 아름다운 강산들은 이제 언젠가는 찾아서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연을 훼손하면서 우리들은 자연 속에서 정말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며 스스로의 질서로 유지되던 여러 생명들을 앗아갔고 아직 느끼지 못하지만 그러한 화살들은 다시 우리를 겨냥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들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속에서 질서를 이루며 살아가는 좀 더 몸집이 큰 생명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자연을 맘대로 생각 없이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해서 훼손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가 자연을 온전히 물려줘야할 후손들에게도 크나큰 해가 될 것이다.借馬說이 수필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있는 듯 하다. 눈에 익고 내용 또한 아는 내용이였지만 그 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랄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큰 것이라 이 수필을 제쳐 놓을 수는 없었다.작자는 말을 빌려 타는 데에서 말의 상태에 따라 자신의 심경이 변화됨을 알았고 그로 인해 인정세태의 원리를 깨닫게 된다. 그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 빌리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즉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위와 부귀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와 귀함을 누리며, 아들은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은 상전으로부터, 소유 정부의 행태를 빗대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소위 민선으로 뽑힌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또 대표적으로 대통령 등은 이 수필의 내용처럼 누가 보거나 제도적으로도 국민들 혹은 시민들의 의견과 결정의 힘을 빌려서 그들의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민주주의를 정치체제로 하고 대의제도를 정치제도로 하는 우리나라의 이념과 통치체제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이 국민들의 공통의 이익은 아닐 지라도 대부부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즉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 귀결점이라 할 수 있는데 과연 우리들의 대표자들은 그것을 찾고자 하는 지 의심이 든다. 아니 과연 찾을 생각은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하찮은 권력투쟁만 하고 있다. 결국 밥그릇 찾기다. 우리들은 선거전에 그들이 고개 숙여 우리들에게 약속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았고 당선되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 후의 비춰진 모습들은 서로를 헐뜯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 뿐 이었다. 그들에게서는 그들의 권위가 우리들의 힘으로 얻어진 것을 이미 잊어버린 듯 했고 오히려 그 권위만을 앞세워 무언가만 행세하려는 모습만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 대부분의 문제들이 있지만 근본적인 치유책은 난 우리들 뿐 이라고 본다. 결국 심판은 선거에서 우리들이 그러한 권위와 지위를 자기들의 소유라고만 착각하는 이들을 떨어뜨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날까지는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다. 특히 지역감정은 다른 분야에서는 모르겠지만 특히 정치풍토만큼은 아직도 공고하다. 이것에 대해 솔직히 나의 결론은 우리 다음 세대일 뿐이라고 본다. 바로 나의 아들세대이다. 나 또한 어릴 적부터 부모님 혹은 사회적으로 당시 민주당 , 김대중 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어찌 보면 세뇌를 받아왔다고도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 지워지기 힘든 것으로 이미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속에 내재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다음 세대들 즉 그러한 영향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많은데 때문에 촉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온 개들은 맑은 해를 보면 짖는다는 것을 보고 촉나라의 개가 해 때문에 짓는 것이 아닌 다만 일상적이지 않은 것에 기이하게 여겨 짖는 것이라 말하고 이 것을 당시 세태에 빗대어 나쁜 습관들과 사악함이 세상을 어둑어둑하게 만들었는데 간혹 이것을 고치고자 하는 자가 나타나면 용납하지 않고 없애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작자는 이러한 행태도 행태지만 이렇게 바르지 않고 사악하고 병폐적인 것들이 우리들의 일상적인 것이 된 것에 더욱 큰 환멸을 느끼고 비판하고 있다.얼마 전에 TV광고 중에 누구나 네 라고 대답할 때 아니오 라고 대답하고 누구나 아니오 라고 대답할 때 네 라고 대답하는 용기를 주요 테마로 하는 광고가 방영된 적이 있다. 이 광고가 주는 메시지는 곧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 잡고 그것을 지적하여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일상적인 것들이 늘 옳은 것이라고 여기고 모든 사람들이 늘 공감하는 것들이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것을 어기고 비판을 가하고 뒤집어서 생각하려 하면 자신의 옳음의 증명을 수 적 우세의 비난이란 방패로 막아낸다. 이러한 태도들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민족주의 내지는 애국주의와 맞물려 더 욱 깨뜨리기 힘든 성벽을 쌓을 때가 종종 있다.가까운 예로 황우석 사태를 보더라도 그렇다. 처음에 황우석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세계적인 논문을 작성해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드높아지자 우리 국민들은 너나 할 것없이 이것에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지지와 환영을 보낸다. 누구 하나 그의 논문과 결과에 대해 문제를 제가하는 자가 없었고 그 것을 제기하는 것조차 매국노로 낙인찍히는 무서운 결과를 양산했다. 이러한 현상 속에 MBC의 PD수첩만이 이의를 제기했었다. 이에 우리들은 어떠했는가? 우리들은 그들을 매국노란 이름으로 규탄하며 시청거부운동이며 광고까지 끊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들 또한 앞뒤 제지 않고 그러한 국민적 정서에 동참해 그들을 비난하고 조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민주시민 의식도 많은 부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뿌리 깊게 박혀서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애국심을 위장한 군중노선이다. 난 이것을 군중노선 이라고 칭한다. 우리들은 애국심이란 명분아래 그 모든 것은 정당화되어지고 민족주의아래 그 모든 독재가 자행되어졌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들은 애국에 관련된 것이면 정당하며 무슨 일이든지 옳은 일처럼 생각해버리곤 한다. 물론 애국 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원래의 본질을 호도하고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모든 것은 색안경 속에 가려지게 된다. 세상어디에도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를 하는데 가슴에 손을 대고 서서 애국가를 제창하는 곳은 없다. 애국심은 나라가 발전함을 자랑스러워하고 그것에 자신이 자신의 일을 하면서 일조할 때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지 강요당하고 그렇게 해야만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애국심이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어질 필요는 없을뿐더러 보통의 국민의 애국적 정서에 어긋난다고 극도로 몰아 부쳐 비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월드컵 때 우리나라를 응원할 때 하지 않을 수 있고 스위스전 오프사이드 판정이 옳은 것이며 주심의 휘슬이 없는데도 끝까지 뛰지 않는 선수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개개인의 의사표현의 자유롭고 누구도 그것을 막지 않으며 서로 다른 의견을 대화와 토론을 통해 더욱 더 좋은 결론을 도출해 내는 방식이다. 이를 볼 때 현재 우리들의 의식에 과연 문제점들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啞器說이 수필은 벙어리 라는 이름을 가진 물건에 대해 상인과 작자간의 대화 내용과 왜 그것이 벙어리라는 이름을 가졌는지에 대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겠다. 또한 '벙어리 에 대한 것에 대한 옆에 서 듣고 있던 여관 주인의 해석이 작자에게 느끼는 바가 크게 한다. 즉 사람들이 이 벙어리란 물건을 사서 그 말 뜻을 헤아려 본다면 하나는 사람이 말을 마땅히 해야 함에도 말하지 않는 벙어리와 같음을 비웃는 .
-러시아 혁명-목 차1. 러시아의 구체제2. 혁명사상의 전개와 혁명운동의 성장1) 혁명사상의 전개▷인민주의▷맑스주의2) 혁명운동의 성장3. 1905년 혁명과 스똘리삔의 반동1) 1905년 혁명2) 스똘리삔의 반동4. 제국주의전쟁에서 사회주의혁명으로1) 2월혁명▷4월 테제▷4월 위기▷7월위기2) 10월 혁명5. 러시아혁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1. 러시아의 구체제19세기 전반의 러시아는 정치적으로는 짜르 1인의 지배 아래 놓여있는 전제국가였으며, 경제적으로는 농노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상공업부문의 자본주의 발달도 서유럽 사회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진 일종의 봉건적 경제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귀족과 농노라는 두 신분을 축으로 하는 신분제 사회이자, 자유로운 시민층의 형성 기회가 거의 봉쇄되어 있던 신민사회에 머물러 있었다. 러시아가 유럽 열강의 일원임을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전제체제의 버팀목이기도 한 군사력이었다. 그러나 끄림전쟁에서의 군사적 패배를 시작으로 열강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를 고수하기 위해, 그리고 대내적으로 전제체제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짜르 알렉산드르 2세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알렉산드르 3세는 정치적으로는 부왕 알렉산드르 2세보다 훨씬 반동적이었지만, 바로 그의 통치하에서 국가주도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1880년대부터).19세기 후반 전체정부가 추진한 개혁의 또 하나의 부문은 농민?농업부문이었다. 1861년의 농노해방 선언으로 농민들은 토지를 분배받기는 하였으나 문제는 토지분배 및 상한조건과 그 이후의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 규정된 농업구조였다. 즉 1인당 토지면적이 좁은 농업지역의 경우 그 토지는 대부분 그들이 농노제 하에서 분여지(分與地, nadel)의 형태로 경작하던 토지에 비해 더 적은 것이었으며, 그 반면 농민층이 지불해야 되는 상환금은 당시의 토지시가에 비해 높이 책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토지 부족 및 농업인구 과잉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와는 달리 토지생후반에서 20세기초에 걸쳐 러시아는 정치적으로는 전제정이 온존되고 있으되, 경제적으로는 전반적으로 비교적 역동적인 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던 사회이다. 그러나 국민경제 내부적으로는 개별 부문간의 편차와 지역간의 편차가 대단히 심각했으며, 사회적으로도 봉건적 계급들과 자본주의적 계급들이 병존하면서, 계급간 갈등구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여기에 제국내 민족간의 편차가 보태짐으로써 이같은 불균형상태는 구체제의 짐이 되어 20세기초까지 넘겨졌다.2. 혁명사상의 전개와 혁명운동의 성장1) 혁명사상의 전개▷인민주의농노해방을 전후한 시기부터 오랫동안 러시아 혁명세력의 이념적 바탕을 이룬 것은 인민주의였다. 서구 부르주아계급이 정치권력의 획득 후 무산대중을 배신하는 것을 목격한 인민주의자들은 러시아는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봉건적 단계로부터) 바로 사회주의 단계로 넘어가야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제정을 타도하고 ‘토지와 자유’라는 농민적 유토피아의 실현이었다. 1870년대에 전개된‘인민 속으로’(V narod)는 그 대표적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낮은 정치의식 수준에서 비롯되는 짜르 숭배에 젖어 있었던 농민들로 인해 인민 전체의 혁명적 역량에 대한 인민주의자의 신념은 실천의 장으로 옮겨지면서 근본적인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맑스주의지식인들 사이에서 근대적 혁명이념으로서의 인민주의의 현실 적합성에 대한 회의가 생겨나면서 현실변혁의 새로운 논리로서 맑스주의가 도입되고 또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반사적으로 혁명의 사회적 기반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에 대한 신뢰를 굳혀 주었는데 맑스주의자들이 볼 때 이 프롤레타리아층은 바로 자본주의사회의 양대 계급 가운데 하나이다. 자본주의는 가혹하기는 하되, 그 특유의 생산조직과 교환형태로 노동계급의 의식을 각성시키며 사회주의를 위한 물적 기반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도 반드시 거칠 필요가 있는 단계이다. 이같은 논거에 입각하여 쁠레하노프-러시아 맑스주의의 창시자-는 2단계 혁명론목할 만한 현상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 농민운동에서는 흔히 촌락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봉기단위가 되어 공동체 원로의 지휘 아래 조직적으로 움직였고 이같은 양상은 농민층의 정치의식에 대한 지식인들의 낮은 평가를 바꾸어 놓는 계기와 함께 촌락공동체가 가진 농민층에 대한 결속기능이 새로이 인식되기도 하였다. 한편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및 일부 자유주의적 지주들도 정치조직(젬스뜨보연맹, 해방동맹)을 결성하여 입헌체제에 대한 요구를 보다 집중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하였고, 고양되어 가는 혁명적 분위기에 부딪혀 짜르정부가 출구로 택한 것은 대외전쟁이었다.3. 1905년 혁명과 스똘리삔의 반동1) 1905년 혁명흔히 제1차 러시아혁명이라 불리기도 하는 1905년 혁명은 러일전쟁에서의 패배로 동요하고 있던 사회분위기 속에서 ‘피의 일요일)’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민중의 요구는 민주공화정의 수립, 8시간 노동제, 대토지 몰수 및 농민에의 분배라는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으며, 이는 반(反)봉건 시민민주주의혁명으로서의 1905년 혁명의 본질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사회주의혁명 정당들은 이러한 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에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끼는 이 민주주의혁명을 노동자?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에 의해 수행할 것을 주장하였고, 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에서 농민층을 노동계급의 확고한 동맹세력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토지 국유화를 농업강령으로 택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반해 멘셰비끼는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지보다 주도적으로 전제정에 맞서 투쟁하되, 전제정이 타도된 후 수립될 임시정부에 프롤레타리아가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취했다.당시 멘셰비끼진영에 속해 있던 뜨로쯔끼는 파르부스의 영향하에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이 그 자체의 논리 혹은 동력에 의해 사회주의혁명으로 직접 ‘성장하여 전화(轉化)한다’는 영구혁명론을 전개하였다. 이는 농민층에 대한 불신을 견지하면서 노동계급의 역할을 가장 두드러지게 강조하는부여할 것-을 약속하는 이른바 10월선언을 발표함으로써 혁명세력에 대한 반격의 기회를 되찾았다. 당시 짜르정부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느끼고 있던 것은 재정위기였다. 마침 독일의 팽창주의적 욕구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던 프랑스는 1906년 4월 22억여 프랑(8억여 루블)이라는 거액의 차관을 러시아에 제공하였다.2) 스똘리삔의 반동수상 스똘리삔은 1907년 6월 의원 대다수가 전제정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이루어져 있던 2차 두마를 전격적으로 해산하고 선거법 개정과 함께 1906년 4월의 제국기본법-짜르의 무제한의 입법권 및 국가예산에 대한 무제한의 처분권을 포기함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에 따라 혁명세력의 정치적 권리를 무력화시켜 버렸다. 이리하여 제1차 러시아혁명은 패배로 끝을 맺었다. 스똘리삔이 이같은 정치적 반동을 단행하면서 사회적 기반확보를 위해 추진한 것이 바로 일련의 농업개혁으로 구상의 핵심은 촌락공동체의 폐지였다. 스똘리삔의 개혁은 전제정과 지주적 토지소유의 기본골격을 유지한 채 이를 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과 접합시킴으로써, 군주정, 지주층, 부르주아지를 유착시키는 일종의 프로이센적 경로의 자본주의 발달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었다.1907년에 시작된 반동은 혁명운동 전체에 한때나마 심각한 타격을 가하였고, 노동운동은 합법적 노동조합운동에 거의 국한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1910년 이후 호경기가 시작되면서 노동운동은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농민봉기도 간헐적으로나마 계속되었다. 이에 힘입어서 혁명정당들도 조직?선전활동을 강화하였다. 체제-반체제세력 사이에는 몇 차례의 심각한 충돌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세력균형 상태가 계속 유지되었나 1차대전은 이같은 상태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4. 제국주의전쟁에서 사회주의혁명으로1) 2월혁명1914년 8월 독일, 오스트리아 등 중부 열강의 대(對) 세르비아 선전포고로 1차대전이 일어나자, 짜르 치하의 러시아도 곧 연합국측의 일원으로 참전을 선언했다. 여기에는 봉기에 의해서 일어났다. 고립무원상태에 놓인 니꼴라이 2세가 퇴위선언문에 서명하자(3월 2일) 2월봉기의 과정중에 조직된 뻬뜨로그라드 소비예뜨는 1905년 혁명 당시의 활발했던 투쟁의 경험을 살려 사실상 봉기 지도부의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예뜨는 공식적인 권력장악을 거부했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적 소비예뜨와 부르주아적 임시정부가 공존하는 이른바 ‘이원적 권력’ 상태가 성립되었다.한편, 전쟁문제에 대해 소비예뜨는 공식적으로 무병합?무배상?민족자결원칙에 입각한 조기 전면강화를 주장하였지만, 다른 한편 혁명적 방위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전쟁문제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소비예뜨는 막강한 권력기반을 가지고도 인민의 절박한 관심사를 처리하지 못한 채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마저 표류하게 하고 있었다. 스딸린, 까메네프, 무라노프 등 세 지도자로 대표되는 국내파 볼셰비끼도 일관되게 부르주아혁명이라는 견해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시간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2단계 혁명론에 입각해 있으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구상을 하지 않았고, 전쟁문제에 대해서도 혁명적 방위파와 사실상 동일한 입장을 취하면서, 이를 위한 혁명적 민주세력의 광범한 연합에 찬동하였다.▷4월 테제이러한 상태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레닌의 4월 테제였다. 평화의 문제, 혁명권력의 문제, 국민경제 재편성의 문제, 당 및 인터내셔날의 문제를 내용으로 하는 4월테제는 그때까지 모든 볼셰비끼가 민주혁명단계에서의 계급동맹을 기본원칙으로 삼아 왔던 노동자?농민의 혁명적?민주주의적 독재론, 곧 2단계 혁명론을 전면 수정하여, 부르주아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직접적 성장?전화라는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실상 1905년 혁명 당시 뜨로쯔끼가 주장했던 영구혁명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4월 위기하지만 2월 혁명 직후 소비예뜨를 향해 쏟아졌던 노동자?병사의 열광적인 지지와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바뀌어 갔다. 1917년 4월 18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