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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체능]영화속에 나타난 패션 평가A+최고예요
    REPORT제목: 영화속에 나타난 패션Ⅰ. 서론영화산업의 발달은 유행과 그 전파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1920년부터 유명배우들의 옷 입는 방식은 화면 속의 역할을 통해서나 보도자료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인쇄매체보다 더욱 대중적이 되었다. 스타들의 머리 모양이나 화장법, 옷 입는 스타일이 즉시 모방되었으며 영화는 패션 그 자체를 변화시키고 정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TV의 등장은 방송매체에 의한 패션의 전파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책을 사거나 극장까지 갈필요도 없이 안방에서 그대로 최신 경향을 접할 수 있었으며 초기에는 패션 자체를 주제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으나 안방극장의 화면에 나타나는 모든 영상 이미지가 갖는 위력은 대단히 큰 파장의 효과를 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컬러방영이 시작되면서 그 위력은 더욱 커져서 패션 제품을 비롯한 모든 일상생활용품의 제조업자들은 매출증대를 위하여 소위 협찬이라는 이름의 우회 광고로 TV에 자신들의 제품이 비추어지기를 열망하게 되었다.여기서는 영상물이라는 대중매체 속에 나타난 패션과 그 영상물 중 특히 ‘영화’라는 분야와 패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영상물에 나타난 패션의 상징성오늘날, 대중매체의 영향력과 일상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볼 때, 대중매체에 나타난 패션의 사회적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도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라고 하겠다. 특히 노출빈도가 높은 연예계 스타들의 옷 입기는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계획된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기로하고 볼 수 있다.영상물에 의한 시각자극은 오늘날 그 어느 것보다도 영향력이 크다. 새로운 음악이 나와도 뮤직 비디오가 먼저 인기를 얻어야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을 끌게 된다고 말해질 정도로 영상물에 투자하는 노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영상 매체의 선두로 패션에 큰 영향을 미친 영화는 주제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영화에 나오는 스타들의 옷차림이 그 시대에 가장 멋진 차림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인 경우가 많다.Ⅲ. 패션과 영화의 상관관계1960년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헬렌로즈의 속치마 디자인이었다. 아카데미 의상상을 여덟 번이나 수상한 에디스 헤드는 을 통해서 1920~30년대의 클래식 패션을 재현했다. 또한 의 에디머피와 의 리처드 기어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정장을 입음으로써 남성 패션 장르에서 이탈리아 패션 붐을 선동하기도 하였다. 유명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회심작을 패션 쇼에서 선보이거나 부티크에 전시하는 것보다는 영화를 통해서 소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장르와 성별, 문화적 전통, 그리고 상식과 금기를 깨뜨리는 파격적 디자인으로 ‘패션계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장 폴 고티에는 아마도 그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고티에는 1989년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 와 장 피에르 주네의 1994년 영화 에서 무대 세트와 완벽하게 조화된 의상을 선보였다. 또한 에서는 란제리 패션, 시스루 룩 등의 전위적이고 세련된 의상을 통해 21세기의 뉴욕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의 시각적 가치를 상승시켜 주기도 하였다.1) 지방시와 티파니, 그리고 헵번 스타일영화속의 패션 디자인을 이야기 할 때는 오드리 헵번과 위베르 드 지방시의 관계가 자주 회자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에서 선보였던 단발머리로 ‘헵번 스타일’이라는 전 세계적 유행을 불러일으켰던 오드리 헵번이야말로 지방시를 세계적인 의상 디자이너로 성장시킨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귀족 가문 출신인 지방시는 사브리나에서 헵번의 옷을 전담하여 좋은 평을 얻었는데, 이후 을 계기로 완벽한 헵번 스타일의 창조자가 되었다. 깨끗한 라인이 특징이며 ‘ 독창적이고 격조 있는 품위’로 대변되는 지방시의 패션 디자인은 그녀의 청순한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렸던 것이다.헵번은 단발머리 스타일을 유행시켰다.지방시를 세계적 디자이너로 만든것이 헵번이었다.2) 이브 생 로랑, 랄프로렌, 버버리지방시와 오드리 헵번 이외에도 이브 생 로랑과 카트린느 드뇌브, 그리고 우디 앨런과 랄프 로렌이 있다. 이들의 관계는 의상의 특성을 영화 속 주인공의 이미지에 절묘하게 조화시킨 디자인적 쾌거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특히 랄프 로렌은 1981년의 영화 를 시작으로 패션 사업과 영화를 관련시켜 자신의 작품을 영화 의상에 성공적으로 적용시켜 나간 인물이었다. 그는 1974년 작품 에서 고전적인 우아함과 현대적 아름다움을 갖춘 폴로 브랜드를 개츠비에게 입혀 유명한 ‘개츠비 룩’을 탄생시켰다. 우디 앨런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랄프 로렌의 의상을 입고 나왔던 1977년 작품 에서는, 그와 함께 출연했던 다이앤 키튼 역시 랄프 로렌의 의상으로 지식층 전문 여성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여 ‘애니 홀 모드’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에서 여주인공은 외출할 때 항상 버버리를 입는다. 간결한 선과 베이지색으로 대표되는 버버리가 영화 속에서 담당했던 역할은 각별하다. 대통령 역할을 단골로 맡았던 헨리 폰다와 패튼 장군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던 조지 스코트 같은 이들은 버버리를 매우 사랑했던 배우들이다. 더스틴 호프만 또한 이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피터 셀러스의 경우는 좀 유별나다고 해야 할 것인데, 그는 중절모와 밝은 색 버버리로 상징화된 의 촬영기간 내내 언제나 두 벌의 버버리를 준비하고 다녔으니 말이다.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버버리를 입었고, 에서 마이클 더글라스는 증권가의 화이트 컬러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이 브랜드를 입고 나왔다. 특히 워렌 비티가 에서 노란 버버리를 걸친 채 밤거리를 누비는 장면은 연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영화 에서도 화면의 풍경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버버리 코트가 등장한다. 메릴 스트립이 헤어진 남편과 살고 있는 아들을 만나는 장면이 그것이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뒹구는 스산한 뉴욕의 센트럴 파크, 배경으로 흐르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만돌린과 현,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C장조’,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던 버버리 코트. 메를 스트립의 실루엣이 주위의 풍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 낸 애틋한 장면이었다.버버리의 디자인의 특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가 된다. 하나는 영국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품위있는 베이지색과 친근한 체크 무늬 패턴으로 대표되는 변치 않는 디자인이다. 코트를 구입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우산, 핸드백, 골프 웨어 등의 어느 제품을 구입하여도 항상 기존의 의상과 완벽한 코디네이션이 가능할 만큼 버버리의 패션은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속박된 옷이 아닌 편안한 옷’이라는 모토가 말해 주듯, 산업 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의 브랜드답게 실용성을 강조한 측면이다. 비와 안개가 많은 영국의 날씨에 어울리며 신사, 숙녀 모두에게 풍성함과 여유로움을 주는 버버리의 디자인은 오늘날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도 그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 브랜드는 또한 영국 왕실 지정 상표로서의 명예를 간직하며 영원한 코트의 대명사로 빛을 발하고 있다.간결한 선과 베이지색으로 대표되는 버버리가 영화 속에서 담당했던 역할은 각별했다.험프리보가트가 입은 버버리.3) 그 외 스크린 속의 패션큰 신발과 헐렁한 바지, 중절모로 대표되는 찰리 채플린의 ‘방랑자 패션’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되었던 와 , 의 로코코 시대 의상, 유럽에서 의상이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에서 오드리 헵번이 보여준 아름다운 패션과 순수의 시대를 수놓은 품격있는 정장. 이들은 각각의 영화에서 특정 장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 란과 꿈, 그리고 인도 영화인 카마수트라에서 보이는 전통 의상들은 그 화려한 색채와 아름다움으로 자국의 문화적 전통까지 전달해 주기도 한다. 의 무도 장면에 등장하는 총천연색의 의상과 란제리 패션은 다분히 연극적 요소를 지는 구성을 짜임새 있게 완성시켜 주고 있다. ‘영상의 마술사’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의 여주인공인 모니카 비티가 입은 자연 소재의 녹색 니트, 그리고 에서 주인공들이 입은 투명 비닐의 합성 소재 전투복, 이 두 패션이 보여주는 미적 정서상의 차이란 어떤 것인가.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첨단의 기계 문명에 내재한 메마름’의 차이 아닐까. 이처럼 패션은 영화가 침묵으로 말하는 하나의 의미 영역이다. 1940~1950년대의 에바 페론의 의상과 화장을 마돈나는 에서 훌륭히 재현해 냈고, 그것은 ‘에비타 룩’이라는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였다. 의 짐 캐리와 시리즈에 등장한 악당 조커와 리들러의 환상적인 색채의 의상, 의 화성인들이 입었던 원색의 패션들, 그리고 의 장 폴고티에가 연출했던 파격적인 의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 의한 영화 속의 패션 연출은 영화를 매우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예체능| 2006.06.28| 7페이지| 1,500원| 조회(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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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방송]드마라 속 신데렐라의 모습
    Ⅰ. 서론신데렐라 이야기는 동서양에서 인기 있는 이야기 소재로 사랑받아 왔다. 우리나라의 은 물론이고, 헐리우드의 , 과 같은 영화나 , 등의 TV 드라마들은 반복적으로 신데렐라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TV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골격으로 한 드라마들이 끊임없이 비판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이와 같이 신데렐라는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이야기로서 멜로드라마의 한 원형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으며, 우리의 TV 드라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동화 ‘신데렐라’와 두 편의 TV드라마의 비교를 통해 현대의 신데렐라는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동화 속 ‘신데렐라’내용 : 불우한 환경의 신데렐라가 요정의 도움으로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1) 역할 분석신데렐라왕 자계 모요 정유리구두신데렐라왕자계모와 언니들요정1.착하고 순수한 성격2.아름다운 외모3.귀족 출신 동화 속 캐릭터별 역할 캐릭터별 성격 및 배경캐릭터성격 및 배경신데렐라1. 몰락 귀족의 외동딸로서 아버지의 재혼으로 계모와 언니들과 살게 됨.2. 계모와 언니들의 구박에도 꿋꿋하며 낙천적임.3.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를 지님.4. 아름다움과 착한 성격으로 왕자와의 사랑을 이룸.왕 자1. 착하고 잘생김.2. 권위의식이 적으며 사랑에 대한 환상을 지님.3.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집착 보임.계모와언니들1. 신분상승에 대한 집착과 함께 그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2. 성격, 외모에서 신데렐라와 대조되며, 자신들과 다른 신데렐라를 미워하며 구박함.요정신데렐라를 공주로 만듦으로써 왕자와의 만남을 주선함.(2) 플롯 분석플롯동화 속 내용만 남1.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받던 신데렐라가 요정의 마법으로 공주로 변함.2. 공주로 변한 신데렐라는 무도회장에서 왕자를 만남.발 전1. 신데렐라는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왕자의 눈에 띄게 됨.2. 한눈에 사랑에 빠진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춤.갈 등1. 유리구두를 가지고 그녀를 그리워함.재 회1. 왕자가 유리구두를 이용해 신데렐라를 찾음.결 론1. 계모와 언니들은 신분상승에 실패하여 좌절함.2. 신데렐라와 왕자의 결혼과 행복한 결말. 플롯별 동화 내용 분석2. MBC 미니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안에’ 속 ‘신데렐라’방송기간 : 1994. 06. 06 ~ 1994. 07. 26 (전16회)출연진 : 차인표, 이승연, 신애라, 천호진, 강남길, 권해효내용 : 불우한 환경의 백화점 직원인 여주인공이 그 백화점 이사와 의 사랑에 성공하는 이야기.(1) 역할 분석신데렐라왕 자계 모요 정유리구두이진주(신애라)강풍호(차인표)정이사(천호진)친오빠(김기호)고은채(이승연)백화점동료(권해효, 박광정,이정섭)조차장(강남길)영지(곽진영)1.착하고 순수한 성격2.씩씩하고 당당함3.귀여운 외모 동화 속 캐릭터별 역할 캐릭터별 성격 및 배경캐릭터성격 및 배경이진주1.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백수인 친오빠와 살면서 가장의 역할.2. 매사에 씩씩하고 낙천적이며, 생활력이 강하고 자존심이 셈.3. 백화점 직원으로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감.4. 백화점 사원모델로 발탁되는 등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강풍호1. 백화점 사장의 아들로 잘생긴 외모와 착한 성격을 지님.2. 자신의 첫사랑인 은채를 정이사에게 빼앗김.3. 처음엔 아버지의 사업에 관심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백화점을 물 려 받아 이끌어 나감.정이사1. 멋있고, 매너가 좋으며 업무 능력도 뛰어난 팔방미인.2. 풍호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망을 지님.3. 은채와의 결혼은 성공하지만, 그녀의 마음까지는 얻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녀를 의심함.4. 진주와 풍호를 음모에 빠뜨려 사랑을 방해함.5. 결국엔 자신이 판 무덤에 스스로 자멸.친오빠1. 백수로 진주가 부양해야할 대상.2. 폭력적이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진주를 통해서 돈을 벌고자 함.고은채1. 풍호의 첫사랑이자 정이사의 아내.2. 아름답고 세련됨.3. 진주를 직접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지만, 풍호의 첫사랑으로 진주가 여행도 가는 등 둘을 맺어주기 위해 노력.(2) 플롯 분석플롯드라마 속 내용만 남1. 백수인 오빠와 단둘이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진주.2. 풍호의 아버지 소유인 서울백화점에 취직하는 진주.3. 풍호가 부친의 죽음으로 귀국, 이사로 출근하는 첫날 우연히 그의 오토바이에 진주가 치일뻔 함.4. 풍호는 첫눈에 호감을 품고 사랑을 느낌.발 전1. 풍호는 옛 애인 은채를 백화점의 2인자인 정이사에게 뺏김.2. 경영권을 놓고 풍호와 정이사가 경쟁하게 됨.3. 풍호는 첫눈에 진주에게 반하여 매력을 느끼지만, 힘든 결혼생활을 하는 은채가 신경쓰임.갈 등1. 정이사의 음모로 풍호와 은채의 사랑은 스캔들로 비화.2. 백화점 직원들이 진주를 괴롭힘.이 별1. 결국 진주는 백화점을 그만둠.2. 진주를 그리워하는 풍호.재 회주주총회에서 공개적으로 진주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편의점에 취직한 진주를 만남.결 론1. 정이사의 음모가 밝혀짐.2. 풍호와 진주는 입 맞추고 화해. 플롯별 드라마 내용 분석(3) 의미 분석이 드라마는 신데렐라 드라마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진주는 신데렐라와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능력도 없지만, 매사에 긍정적이고 씩씩하며, 아름답다. 또한 왕자인 풍호는 외모, 능력, 돈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왕자이다. 이들의 사랑이야기 역시 신데렐라 이야기와 같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둘은 서로 사랑에 빠지고, 정이사나 백화점 직원들의 시기로 둘은 헤어질 위기에 놓이나, 곧 둘은 서로의 사랑을 깨닫고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 급성장으로 인해 경제적 가치가 중요시되던 시기였다. 이에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왕자는 경제적 능력이 뛰어나다. 또한 과거 권위주의적 남성상에 혐오를 느낀 여성들은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남성상을 바라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드라마에 그대로 투영된다. 그러나 여성이 권위적 남성 소속에서 탈피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수동적 존재이다. 이 드라마 속 진주의 모습이 가난하고, 능력도마는 후속 신데렐라 드라마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드라마의 구조를 기반으로 신데렐라 드라마는 사회적 변화에 따른 캐릭터의 변화는 있지만, 큰 흐름은 변하지 않는 신데렐라 드라마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신데렐라 드라마는 여성들에게 ‘당신도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여성들을 끊임없이 호명하게 된다.3. MBC 미니시리즈 ‘신입사원’ 속 ‘신데렐라’방송기간: 2005. 03.23 - 05.26 (전16회)출연진: 문정혁, 한가인, 오지호, 이소연, 양희경내용: 가진 것은 없지만 무엇에도 주눅 들지 않는 남자주인공과 어려운 현실에도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여주인공의 사랑을 그리는 드라마.(1) 역할 분석신데렐라왕 자계 모요 정유리구두이미옥(한가인)강 호(문정혁)이봉삼(오지호)서현아(이소연)양마담(양희경)1.뛰어난 업무능력2.착한 성격3.아름다운 외모 동화 속 캐릭터별 역할 캐릭터별 성격 및 배경캐릭터성격 및 배경이미옥1. LK의 계약직 여직원이지만 능력은 뛰어남.2. 처음에는 촌스러웠으나 스스로 자신을 가꾸어 아름다워짐.3. 왕자에게 도움만 받는 수동적 존재에서 탈피, 왕자를 도와주며, 능력이 더 뛰 어난 왕자보다는 진실된 왕자를 선택.강 호1. 잘생긴 외모이나 학벌이나 경제적 상황은 좋지 않음.2. 우연과 회사의 실수로 LK에 입사하지만, 실력이 부족함.3. 정의감이 넘치고, 정이 많으며, 매사에 열심히 함.4. 예쁘고 배경 좋은 현아와 별볼일 없는 미옥 사이에서 미옥을 택함.5. 미옥의 사랑을 받는 왕자.이봉삼1. 잘생기고 똑똑함.2. 어렸을적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출세에 대한 야망이 크며, 올바르지 못한 방법 을 쓰면서 까지 출세를 하려함3. 미옥을 버리고 현아와 만났지만, 결국 현아에게 버림받고 다시 미옥에게 다가 가지만 미옥에게도 거절당함.서현아1. 미옥을 끊임없이 괴롭힘.2. 미옥에게서 봉삼을 뺏어가지만, 결국 봉삼은 다시 미옥을 그리워하고, 강호에게 관심을 주지만 마음을 얻진 못함.마담신데렐라와 왕자가 만봉삼은 이미옥에게 이별을 통보함.3. 상처를 받은 미옥은 한강다리위에서 뛰어내리려 함.4. 자살을 시도하려는 미옥을 살리고, 강호는 미옥에게 강한 인상을 받음.발 전1. 강호는 LK에 신입사원 원서접수를 하면서 미옥과 또다시 만나게 됨.2. 전산오류와 우연으로 강호가 LK에 입사하게 됨.갈 등1. 계약직이던 미옥은 현아의 음모로 퇴출당함.2. 자신이 빵점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 강호는 현아의 도움 받음.3. 현아와 강호의 사이를 오해한 미옥은 강호와 점차 멀어짐.이 별누명을 쓴 강호를 위해 현아에게 강호를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미옥.재 회1. 강호는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미옥을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2. 미옥은 강호의 누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줌.결 론미옥은 일과 강호와의 사랑을 모두 얻음. 플롯별 드라마 내용 분석(3) 의미 분석가장 최근에 방영된 이 드라마는 전형적 신데렐라 이야기 구조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첫 번째 차이점은 왕자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두 명의 왕자가 등장하는데, 신데렐라인 이미옥은 잘생기고 능력 좋은 옛사랑 이봉삼을 택하기 보다는, 능력은 없지만 착하고 진실된 강호를 선택한다. 즉, 과거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왕자들은 좋은 집안에 능력도 뛰어난 사람들이었지만, 이 드라마에서 신데렐라가 선택한 왕자는 배경이나 능력보다는 진실되고 착한 마음의 소유자이다. 이는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드라마가 경제적 능력이 좋은 왕자를 만들어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이 드라마의 또 다른 점은 신데렐라인 미옥의 모습이다. 지금까지의 드라마 속 신데렐라 는 자신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에 의해 왕자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미옥은 회사에서 퇴출당하고 나서, 살아 남기위한 방법으로 자신을 가꾸기 시작한다. 신데렐라 스스로가 요정의 도움 없이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미옥이 어려움을 극복함에 있어서도 왕자의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도 다른 신데렐라들과의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다.
    사회과학| 2006.06.28| 8페이지| 2,500원| 조회(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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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어중문]문화대혁명과 해서파관
    Ⅰ. 서론문화대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게 되면서『해서파관』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서파관』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공산주의와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화대혁명이라는 큰 사건의 서두를 장식하는 불씨의 역할을 한 작품이다. 국문학을 전공으로 하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보았는데, 문화대혁명을 알아보면서 『해서파관』이라는 것에 대해 자연히 관심이 가게 되었다.그렇다면 『해서파관』이라는 작품의 내용, 문화대혁명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Ⅱ.『해서파관』의 내용『해서파관』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명대 말기 가정황제가 포악하고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호부의 주사였던 해서가 인민의 고통을 고려하여 정사를 잘 보살펴 달라고 가정제에게 직접 상소문을 올렸다.글 속에는 지주들이 수탈한 토지는 반드시 일반백성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군주의 전제주의적 독재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가정황제는 노하여 해서를 감옥에 가두고 사형시키려 하였는데 황제가 갑자기 죽게 되자 화를 면하게 되었다. 이후 융경황제가 등극하자 민심에 따라 해서를 사면해 주었다.Ⅲ.『해서파관』의 탄생에서 〈신편 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한다〉까지1966년 5월 중국사회와 공산당을 혁명적으로 재편성하려고 한 모택동의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운동은 마침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그러면 문화대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어떻게 준비되었는가? 이야기는 요문원의 〈신편 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한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문원은 당시 해방일보의 편집위원 겸 문예부 주임이었다. 문혁 발동 후, 강청 등과 더불어 극좌 4인방으로 악명이 놓았던 사람이다. 그가 쓴 논문은 1965년 11월 10일, 상해의 일간지『문회보』에 게재되었고,『해방일보』에는 이틀 뒤에 실렸다. 이것이 그 후 10년간 중국대륙을 휩쓴 문화대혁명의 봉화였다.『해서파관』은 북경의 부시장이자 명대 역사의 전문가인 오함이 1960년에 쓴 경극 가본의 제목이다. 황제려고 하는 풍조를 탓하면서 명대의 청백리로 집권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을 위해 할말을 다한 해서의 정신을 강조한 한편, 자신의 비서인 호교목에게 해서를 선전하도록 지시를 했다. 그리하여 호교목이 오함에게 글을 쓰게 의뢰했던 것이다.그리하여 오함은 그 해 4월『인민일보』에 첫 번째 글〈해서, 황제를 비난하다〉를 발표한다. 여기서 그는 해서가 비록 황제에게 충성했지만,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굶주리는 동안 명 왕조가 국고를 낭비하고 있음을 비판했던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이어 오함은 두 번째 글〈해서를 논한다〉를 1959년 9월『인민일보』에 발표했다. 그는 해서를 처벌의 위험에도 겁먹지 않고 남아있던 언제나 용기 있는 인물로 칭송했다. 그러나 해서가 섬겼던 황제는 무모하게 불사에 집착하고 편견이 많고 비판을 수용할 줄 모르는 인물로 묘사했다. 그리고 황제를 보위한 대부분의 관리들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그것에 반대하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으로 묘사했다.당시 여산회의에서 모택동이 팽덕회의 직언을 꺾어버리고 오히려 그 직위를 해임한 즈음이라 모택동은 해서정신을 제창하고는 있었지만, 황제에게 간언한 해서를 높이 평가하게 되면 팽덕회를 변호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호교목은 오함의 글에 해서와 팽덕회는 같지 않다는 “해서는 우파가 아니다”라는 내용 한 구절을 덧붙여 발표했다. 이것은 당시 글을 쓸 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흔히 사용한 한 방법이었다.그래서 그러했는지는 몰라도 이 두 글은 발표 당시에는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뒤 1959년 하반기에 오함은 북경 경극단의 명배우 마연량의 부탁을 받아 역사극『해서파관』의 각본을 썼다. 1960년 오함은 극본을 완성했는데, 여기서는 주로 해서가 응천부의 행정장관에 임용되었을 때 악질 관리들을 제거하고 토지를 백성들에게 돌려준 일을 묘사했다.『해서파관』은 1961년 1월 북경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고, 같은 해 여름 출판 황제를 속인다만일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당신은 밤이나 낮이나 편치 못하리라이상과 같이 오함의 ‘해서’에 관한 글들은 모두 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수많은 작품의 큰 흐름 가운데 하나였으며,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배경도 모택동의 지시에 따랐던 것이다.그런데 화살은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날아왔다. 그것을 비판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은 모택동의 아내 강청이었다. 1962년의 일이었다. 1964년 강생도 모택동을 향해 『해서파관』과 여산회의는 관련이 있으며, 팽덕회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1964년 강청은 북경에서 오함의 글을 비판할 사람을 물색했으나 거절당했다.1965년 2월, 강청은 비밀리에 상해로 내려가 상해시 당위원회 선전부장 겸 시당위원회 후보서기인 장춘교와 합작하여 상해에서 북경으로 진격하기로 작정했다. 강청은 상해시 당위원회 제 1서기 겸 시장인 가경시의 지지 하에 장춘교와 협의하여 상해의 『해방』잡지의 편집위원인 요문원으로 하여금『해서파관』을 비판하는 글을 쓰게 한다. 그리고 주은래 총리를 포함한 당 중앙에는 비밀로 하였다.강청이 요문원에게 쓰게 한 논문은 “황제에게 간언한 봉건시대의 관리를 미화해서 묘사하는 것은 우파에 의한 자본주의 부활의 음모”라고 단정지은 것이다. 그리고『해서파관』을 비판하는 것은 학술적인 문제일뿐만 아니라, ‘팽덕회의 번안(팽덕회사건을 뒤엎는 것)’을 반격하는 것이라고 했다.〈신편 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한다〉라는 글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경극『해서파관』중에 쓰여진 “땅을 돌려주자”, “억울하게 누명 쓴 것을 재심리해 명백히 진상을 밝이다”라는 문구와 이른바 1961년의 ‘단간풍’(자본주의적 경영)과 ‘번안풍’을 연결시켜 “이 두 부분은 바로 당시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및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하는 투쟁의 초점이다.『해서파관』은 바로 이러한 계급투쟁의 한 형식의 반영이다. 한 포기의 독초이다”라고 주장했다.여기서 의문이 가는 것은 1960년 쓰여진『해서파관』을 뜻밖에도 1961년에시작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것은 당시 국내외적 정세의 요인이 모택동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 모택동 자신이 강력히 추진한 대약진이라는 이름의 급진적인 사회주의 경제정책이 실패했고, 그것을 재건하기 위하여 조정정책을 채택한 유소기나 등소평 등 실무파들은 그 정책의 성공으로 권력을 확장하여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다고 모택동은 느끼고 있었다. 국외적으로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아래, 마르크스주의의 길을 이탈하여 ‘수정주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소련공산당과 중국(모택동과)의 대립이 심해지고, 중국(모택동)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었다.그러한 상황에서 당내 실권파과 소련 수정주의자가 손을 잡는다는 것은 모택동에게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일찍이 당내 국제파와의 권력투쟁이나 팽덕회 사건의 재연은 모택동에게는 감히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여기에서 모택동의 당시 심경을 추측할 수가 있다.팽덕회에게 동조하는 자는 지금도 당내에 상당수가 남아 있다. 명조의 가정제의 악정을 간하고 파면 당한 ‘해서’를 주인공으로 하는『해서파관』은 팽덕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해임한 모택동에 대한 야유로 쓰여졌다고 말하는 자도 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함이 부시장을 맡은 북경시 당위원회 제 1서기인 팽진은 ‘실권파’ 유소기와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당 중앙은 문예계의 비혁명적 풍조를 바로잡기 위해 1964년에 ‘문화혁명 5인소조’를 조직했는데, 조장인 팽진은 활동다운 활동을 하지 않았다.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적어도 “『해서파관』은 반당분자인 팽덕회를 옹호하는 것이다”라는 비판을 통해서 실권파를 향한 정치투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모택동은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내 권력강화와 반대파 제거를 위해 사상과 문예면에서 ‘정풍’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혁명 근거지인 연안시대부터 모택동이 써온 상투적인 수법이었다.모택동은 1967년 2월과 5월 알바니아의 국가원수와 군사대표단을 각각 접견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해서파관』에 대해 나는 세 번이나 읽고 기본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강청으로 하여금 가져가 발표하도록 했고, 중앙 지도자들에게도 한번 읽히는 것이 좋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강청은 “논문을 주은래나 강생 동지에게 보여줄 필요 없이 그대로 발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했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에게 보여주면 바로 당 중앙부주석 유소기?총서기 등소평?팽진?당 중앙선전부장 육정일 등에게 보여 줄 것이며 유소기와 등소평 등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이는 바로『해서파관』을 비판하는 요문원의 논문은 모택동의 지지하에 강청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강청도 1967년 4월 12일 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주석이 윤허하였기 때문에 나는 감히 그 논문을 조직했다 그것은 가경시의 지지 하에 장춘교?요문원 동지와 7~8개월 비밀을 유지하며 썼다고 했다.Ⅳ. 문예비판의 확대실권파 측에서는 요문원의 오함에 대한 비판의 논문이 실리게 되자 재빠르게 오함으로 하여금 자아비판을 하도록 하여 이 문제를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택동은 한 발 더 나아가 그 불똥을 경극의 다른 작품에도 확대하여 비판하고 나아가 경극정책까지도 비판을 가하였다. 문예비판의 확대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모택동 측에서 문예비판의 확대를 의도적으로 계획함에 따라 실권파 중앙정부도 1966년 2월에 ‘문화혁명 5인소조’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2월제강’이라는 지침서를 작성하고 이에 따라 문예비평 활동을 무마시키려고 하였다. 비록 ‘2월제강’의 지침서가 담고 있는 내용들이 문예비평에 대한 학술적 논쟁을 잘 수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가열된 문예정풍 운동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1966년 그해 3월 모택동의 부인 강청은 국방부장관 임표과 결탁을 하게 되자 상해에서 군부대문예좌담회를 개회하면서 반사회주의 문예활동을 청산시켜야 한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모택동과 그 무리들은 실권파의 ‘2월제강’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인문/어학| 2006.06.28| 6페이지| 1,500원| 조회(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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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국문]문학과 현대매체 - 임진록 평가A+최고예요
    Ⅰ. 서론과거와 관련성이 없는 현재와 미래는 드물다. 각종 영상 미디어 매체들이 주류를 이루는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의 예전 소설, 민담, 설화 등 고전의 숨결은 조금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에 모 방송국에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누렸던 ‘쾌걸 춘향’이 있다. 이 드라마는 ‘춘향전’을 모티브로 삼아 춘향과 몽룡의 모습을 적절하게 현대화하여 매우 큰 인기를 얻었었다. 또한 ‘해신’이라는 드라마 역시 삼국사기의 기록과 현존하는 장보고에 대한 기록, 소설 등을 모티브로 삼아 작가의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만든 드라마로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비단 드라마 뿐 만이 아니라, 영화, 음악, 만화, 광고 등에도 우리 고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수없이 많다. 단지 사람들이 우리 고전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잘 몰라서, 인식하지 않은 채로 접하기에 모르고 즐기기에만 급급한 것이다.현대 사회에는 다른 무엇보다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온라인 세상의 중요성도 매우 커졌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프로 게이머’라는 직업이 나올 정도로 ‘인터넷’의 급속 확산과 함께 커진 게임 분야에도 우리의 고전은 여전히 살아있고,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게임 속에 고전을 활용한 예를 살펴보자면, 충무공전은 난중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고, 홍길동전을 반영한 모바일 홍길동, 삼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천년의 신화 등 이 밖에 알려지지 않은 게임들은 수 없이 많다. 게임 분야는 고전과의 융합이 다소 어렵다는 견해가 많은데, 이것은 게이머들의 무관심과 제작사 측의 무성의 등도 한 몫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요즘 일본과의 독도 문제, 우리 어선을 사이에 둔 해상에서의 신경전 등으로 일본과의 감정이 극에 달해 있는 이 시기에, ‘일본정벌’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 ‘임진록2-조선의 반격’과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우리 고전 ‘임진록’의 반영 양상에 대해 알아보고, 소설과 게임의 배경이 되고 있는 임진왜란에 대해서도 알 아니라 표현에 있어서도 많이 다른 것이다. 실기는 자신이 겪은 일의 실상을 전하면서 술회하는 방식으로 쓰여 졌는데 전란의 경과나 그 뒤에 일어난 일에 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참고자료를 모으고, 참상을 절실하게 나타내면서 개탄하는 마음을 설명이 아닌 묘사의 방법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실기는 사실의 기록과 구성의 단순함이라는 형식상의 특징으로 인해서 순발력 있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될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실기의 대부분이 편년체로 되어 있으며, 양적인 면에서도 상상적 문학을 능가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결국, 이러한 실기는 조선조의 문학 장르의 다양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장르의 다양화는 결국 과거의 제한적 형식과 표현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내용물의 범람을 의미한다. 전통적 외형을 유지한 채 벅찬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형식과 내용의 부조화와 혼란이 야기되었다. 여기서 얻은 새로운 표현의 수단은 장르의 다양화 내지 변화현상으로 나타났다.실기는 실존 인물이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겪은 체험의 실상을 전, 기, 록과 같은 문체로 기록, 표현한 것으로 역사와 같은 사실지향적인 서술태도를 보이면서도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생체험 중심의 서사문학이라 할 수 있다. 즉, 실기는 전쟁이나 난과 같은 특수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상황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는 반드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개요와 작가 개인의 경험세계가 아울러져 있다. 이른바 역사와 유사한 성격을 띤 사실적 체험담인 것이다. 그러나 실기는 정사와는 달리 작자 자신의 주변적 사실과 개인적인 생활현실을 다루고 있다. 때문에 정사에서와 같이 사회 전반적인 문제나 소재는 별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혹 다루더라도 보는 안목이 크게 제약되어 있어 사실 전달이 불완전하거나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 정서적 풍부함, 상황묘사의 박진감 등은 소설과 같은 가공의 세계보다도 훨씬 긴장감있게 서을 따름이고, 그 하나하나의 사건이 작가 경험세계를 구축해 전쟁 속의 한 개인의 정서적 추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임난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 때도 석지영의 , 남업의 , 남이웅의 그리고 와 같은 실기가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임란을 배경으로 저술된 실기들은 저자의 체험세계, 신분 및 위치, 활동 양상 등을 중심으로 편의상 종군실기, 피란실기, 포로실기로 나눌 수가 있다.임란 종군실기는 실제 전투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체험담이기 때문에 전쟁상황과 피아간의 인명피해, 장수들의 활약상, 우리측 전략의 허와 실, 왜군의 잔혹상 등 전투관련 제 양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종군실기에는 직접 전투에 참가하면서 쓴 진중일기와,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작전 명령을 하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글도 포함된다. 이순신의 , 유성룡의 , 이노의 이탁영의 등이 있다.조정의 , 오희문의 , 유진의 등이 있다. 유진의 은 전형적인 피란실기인데 한글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진(1582-1635)은 유성룡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1살의 나이에 임란을 당하여 경기도, 강원도, 평안도 등지로 피란하였다. 그는 비록 유성룡의 아들이었으나, 부친이 왕을 호종하여 가족을 돌볼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부득이 매형 이문형의 손에 이끌려 피란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은 그때의 체험 주 저자가 직접 겪은 11개월간의 일들을 기록한 것인데, 실제 기록이 된 시점은 그의 나이 53세인 1634년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실기는 일종의 회상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저자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바를 대상으로 하여 기술하였다는 점에서는 실기라 할 수 있다. 의 구성은 시간과 사건의 특징에 따라 크게 삼분할 수 있는데 첫 부분은 임란이 발생하자 가족과 헤어져 매형에게로 간 것. 둘째부분은 매형의 가족과 함께 피란하면서 겪은 체험. 셋째부분은 아버지에게 가려고 매형의 가족과 헤어지고 난 뒤 다시 가족이 함께 모인 부분으로 전체적는 다음과 같다.유거사(겸암)은 유성룡의 숙부(형)으로 안동에 묻혀 바보 행세를 하면서 살았기 때믄에 늘 바보 취급을 당했다. 하루는 유성룡을 불러 바둑을 두어 이김으로 자신이 바보가 아님을 밝혔다. 유거사는 유성룡에게 중으로 변장하여 유성룡을 죽이려 온 왜장을 자기에게 보내게 하여 퇴치했다. 유거사는 조선의 전쟁을 천명이라 하면서 왜장을 살려 보내며 후일 조선에 오더라도 안동만은 범하지 말라고 했다.위 이야기에서 겸암은 초야에 묻혀 스스로 바보 행세를 하며 살고 있지만, 일국의 재상인 유성룡마저 겸암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바보로 여기는 데서 현달한 유성룡에 대한 비판이 가해진다. 그러나 겸암은 왜장이 조선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조선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을 정도로 비범한 자이다. 이렇게 볼 때 여기에는 두기지의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 능력 있는 자가 인정받지 못하고 묻혀 산다는 것이고, 하나는 위정자의 입장에서 능력 있는 자를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자신에게 닥칠 위기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발상에는 문헌설화 담당계층의 가장 큰 관심사인 조정의 인재등용에 있어서의 모순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설화에서 겸암은 자신의 능력으로 왜장을 퇴치하기는 했지만, 그 행위에는 이기적인 한계성이 보인다. 겸암은 조선의 전쟁이 천명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왜장을 살려 보내며 후일 조선을 침략하더라도 안동만은 범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설화에서는 임란 때 안동이 무사했던 것을 겸암의 공덕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문헌설화 담당자인 정치적 민중들에게 제일 중요한 관심사는 조정의 득실이나 인재등용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투철한 국가관이나 정치적인 사명감이 있어서였다고 볼 수는 없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설화에서 겸암의 행위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설화에서 겸암은 자신의 저로 대처했다. 겸암이 임종때 ‘삼각산 드렁칡이 좋지, 구월산 쪼록사리가 좋지’하고 유성룡에게 유언했다. 이여송이 조선에 구원 올 때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겠다고 했다. 유성룡이 겸암의 유언대로 삼각산에 있는 칡덩쿨과 구월산의 싸리를 엮어 정교를 만들어 건너게 했다.위 설화에서 겸암의 행위는 문헌설화에 비하여 훨씬 다양하면서도 적극적인 대응의지를 보여준다. 겸암은 유성룡과의 대결에서 승리한다. 이것은 묻힌 자와 현달한 자의 대결에서 묻힌 자가 승리하는 것으로 이를 통하여 위정자들의 무능이 비판적으로 조명된다. 겸암은 조선의 전쟁을 천명이라 하면서 유성룡을 죽이러 온 왜장을 질책하고 살려 보내지만, 이는 문헌 설화와는 다른 차원으로 되어 있다. 문헌설화에는 왜에 대한 징계의 한계성과 안동만 무사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기인되어 있지만, 구비설화에서는 왜장 수길을 죽이면 수길과 같은 자 12명이 다시 조선으로 나오기 때문에 더 큰 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수길을 살려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어, 문헌 설화에 비하여 더 적극적인 대응의지를 보여준다.에는 내용과 체제, 그리고 성격이 완전히 다른 역사계열, 최일영 계열, 관운장 계열 등이 있다.1) 역사계열 : 역사계열에는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수용하고 있지만, 그들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실들과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진다. 소설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임란을 통해 드러났던 위정자들의 무능과 사회적인 모순들이 특히 강조되어 있는 점을 통하여 임란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계열과 비슷한 양상으로 임란의 역사를 서술한 야사 기록물에는 , , , , , 단실거사의 , 등이 있다. 역사계열은 어느 특정한 역사 기록물을 토대로 하여 형성되었다라기 보다는 기존의 역사기록물들을 토대로 하면서 항간의 이야기들을 사입시키며, 일부 이야기들을 의도적으로 꾸미기도 하여 형성된 계열임을 알 수 있다. 역사계열에 들어 있는 허구적인 이야기들은 문헌 설화에 보여지거나 문헌설화와 유사한준다.
    인문/어학| 2006.06.28| 8페이지| 1,500원| 조회(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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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국문]치환비유와 병치비유의 실제
    REPORT제목: 치환비유와 병치비유의 실제Ⅰ. 비유의 의미비유라는 말은 원래 희랍어의 metaphora에서 온 말이다. 이 중에서 meta는 운동 또는 변화를 나타내며, phora는 '운반하다, 이동하다' 등을 뜻하는 pherein의 변화형이다. 그러므로 비유라는 말에는 언어의 운동 개념 즉 전이(轉移) 또는 이월(移越)이라는 의미가 원래부터 담겨 있었으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즉 비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이나 관념을 그것과 유사한 다른 사물이나 관념에 빗대어, 보다 생동감 있고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표현방법이다. 비유는 두 사물의 유사점에 근거하여(유추관계) 이루어진다. 이 때, 표현하려는 대상을 원관념, 비교되는 매개물을 보조관념이라고 한다.표현기법으로서의 비유는 시가 시일 수 있는 특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이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비유를 통하여 형상화하고, 독자들은 이런 비유적 표현을 통해 시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감지하게 된다. 따라서 시적 형상화를 위해서는 비유가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는 시의 품격과 시로서의 자질을 정해주는 잣대라고도 할 수 있다.Ⅱ. 죽은 비유와 살아있는 비유좋은 시는 우리에게 인지의 충격과 경이감을 던져준다. 우리의 체험과 삶을 활성화시키고 풍요롭게 하며 우리들 자신을 신장시켜 나가도록 만든다.비유는 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인식과 상상력에 의해 미지의 사물을 우리 앞에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시적 원리이며 표현방법이다. 이 비유를 통하여 사물의 새로운 모습과 새로운 발견, 새로운 의미,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그런데 모든 비유가 이러한 창조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유를 이루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이 상상력을 필요치 않는 상식수준이거나, 습관화된 인식 속에서 나온 것이거나, 너무 낯익어서 진부한 것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세계와 사물에 대하여 그 어떠한 경이감과 충격을 자아내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비유를 죽은 비유라고 하는데, 즉 비유로서흘림먼 별에서 별에로의길섶 위에 떨궈진다시는 못 돌이킬엇갈림의 핏방울꺼질 듯보드라운황홀한 한 떨기의아름다운 靜寂펼치면 일렁이는사랑의湖心아.- 박두진 「꽃」이 시에 나타나 있는 '꽃'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아름다움, 정열, 사랑, 황홀 등 자동적, 관습적으로 받아들였던 꽃의 모습이 아니다. 시인의 눈에 의해서 발견된 '속삭임', '울음', '핏방울', '정적', '호심' 등의 비유는 우리가 예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꽃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의미들을 탄생시키고 있다.Ⅲ. p.휠라이트의 비유1. 치환은유P. 휠라이트는 비유의 개념을 최초로 수집한 예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찾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한 명칭이 (일상적으로 지시하는 바에서 다른 대상으로) 치환된 것〉이라고 규정한 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치환(置換)에 해당되는 희랍어는 epiphora이다. 그리고 이때 epi는 〈향해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phora는 movement 곧 동작이다. 본래 우리에게는 하나의 구체적이고 포착하기 쉬운 이미지로부터 모호하고 석연치 않은 낯선 것을 향해 이동하는 속성이 있다. 그리고 이때 이용된 비유가 치환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한편 휠라이트는 치환의 궁극적인 의의를 지적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스스로 비교적 익숙하고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보다는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후자를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느끼게 하고, 알리고 싶어한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말로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치환비유(置換比喩)는 바로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상의 도구에 해당된다. 또한 이 비유는 그 의미작용을 가능케 하는 확실한 축어적(逐語的) 바탕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 우리는 〈인생은 꿈이다〉라는 소박한 말을 생각해 보아도 좋다. 여기서 〈인생〉이란 한마디로 체험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른 두 대상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미지의 대상인 원관념을 구체적인 대상(보조관념)으로 전이하여 의미의 확대 또는 변용을 가져오는 것이 이 치환은유를 만드는 방법이다. 치환은유는 'A는 B, C, D…'와 같은 형태로 원관념 하나에 여러 개의 보조관념을 결합시켜준다.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저어 오오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내 마음은 촉불이요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내 마음은 나그네요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내 마음은 낙엽이요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그대를 떠나오리다.- 김동명 「내 마음」이 시에서 내 마음은 원관념이요,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은 보조관념이다. 원관념에 여러 가지 보조 관념을 결합시켜 비유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유를 이루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은 각기 다른 이질적인 대상들이다. 이질적인 대상이 서로 결합하여 비유를 만들 수 있는 근거는 바로 동일성 내지 유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각기 다른 사물의 이질성 속에서 발견한 동일성 혹은 유사성이 비유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이 시의 제1연을 보면 원관념인 '내 마음'과 보조관념인 '호수'는 분명 이질적인 대상이다. 그러나 이 두 대상 사이에서 우리는 동일성, 유사성을 유추해 낼 수 있다.'내 마음'은 관념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것이다. 그것은 고정의 틀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시로 변화한다. 그래서 불꽃같이 타오르는 느낌이 드는가 하면 때로는 잔잔하고, 맑고, 고요하고, 깊고, 푸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주관적인 느낌들이 '호수'라는 사물에서 받는 인상과 서로 닮았다. 즉 서로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동일성의 발견은 과학적 법칙을 찾아내는 것처럼 객관적인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다. 상상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유치환(柳致環), 〈깃발〉전문―② 모든 울음은 여리고 간결하다.들은 지금 막 단조로운 여름의 마지막 미사를 읊었고귀뚜라미 야위어 가는 영구자처럼건초 사이에서 기어 나온다.All cries are thin and terse;The field has droned the summer's final mass;A Cricket like a dwindling hearseCrawls from the dry grass.―Richard Wilbur, ―①에서 주지(主旨)가 되는 것은 〈기(旗)〉 내지 〈깃발〉이다. 그런데 이 제재 내지 주지(主旨)는 완전히 열린 상태에서 생기 있는 심상을 갖지 못한다. 그것을 이 작품에서는 몇 개의 매체(媒體)로 선명한 심상이 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가 갖는 체험에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차원이 마련된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치환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②에 대해서도 아주 비슷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이 작품의 무대배경은 막 제철에 접어든 가을의 전원(田園) 또는 시골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 주지는 건초가 쌓이고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며, 그 속에서 느끼는 화자의 정감 같은 것이다. 그런데 제재 상태에서 그런 정감은 막연하고 테두리를 갖지 않는다. 그것이 이 작품에서는 여러 현상의 제시, 또는 매체 쪽으로의 전이를 통해서 구체적이며 신선한 느낌을 주는 심상으로 바뀌어진다. 특히 인용된 부분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아주 독특한 체험에 부딪힌다. 치환비유란 이런 모양의 비유를 가리킨다.이처럼 치환은유는 두 대상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원관념이 보조관념으로 전이하여 시적 의미를 확대시키고 의미의 변용을 만들어 내는 은유라는 것을 알 수 있다.2. 병치은유비유의 생명은 우리에게 신선한 심상을 지니게 하거나 긴장된 언어형태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이런 사실을 병치비유의 속성에 견주어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병치비유에서 우리가 긴장감을 더욱 크게 맛보는 경우는 손쉽게 주지와 n)시킨 경우를 가정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비유를 우리는 병치비유(竝置比喩) 곧 diaphora라고 한다. 휠라이트에 따르면 여기서 dia는 through 곧 통과를 뜻하며, phora는 movement 곧 동작이다. 그러니까 병치비유는 비유를 이루는 두 개의 요소가 서로 대등하게 작용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다. 이때 두 요소는 외견상 대립상태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실에 있어서 서로는 독특한 상호작용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병치의 원리에 따라서 거기에는 새로운 의미가 탄생한다. 이와 같은 설명과 함께 휠라이트는 이 비유의 보기로 다음과 같은 작품(作品)을 들었다.인총(人叢) 속에 끼어 있는 이 얼굴들의 환영(幻影)비에 젖은 검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Petals on a wet, black bough.―Ezra Pound, ―이 작품에서 주제어가 되고 있는 것은 환영(幻影) 곧 apparition과, 꽃잎들 곧 petals다. 그리고 이들 주제어는 치환비유의 경우처럼 주지, 매체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독립된 상태를 유지한 채다. 그러면서도 이 병치비유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의미 내지 심상의 제시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빚어진 심상 내지 의미가 표현 또는 표시의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표현 또는 표시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먼저 효과적으로 나타내어야 할 그 무엇이 있는 법이다. 범박한 의미에서 그것은 미메시스의 테두리에 드는 언어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전혀 그런 선행조건(先行條件)이 없이 한 쌍의 이미지가 대조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비유의 또 다른 속성을 믿는 결과 나타난 제시방식이라 할 것이다.앞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비유 가운데는 분명히 유사성이나 연접성에 의거하는 것이 있다. 아무리 주지(主旨)와 매체(媒體) 사이의 거리가 먼 경우라도 그 형성은 이런 비유의 원리에 입각하는 것이다. 그
    인문/어학| 2006.06.28| 8페이지| 1,500원| 조회(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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