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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는 ‘미시권력’이 작용하는 관계로 표현 될 수 있을 만큼 한쪽이 다른 한 쪽에 대해서 신체의 곳곳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또한 의사는 환자로부터 경외감을 받는다. 그것은 의사가 환자에 대해서 인격적, 사회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의사는 단지 환자에게 ‘의학’이라는 무기를 통해서 환자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며, 그러한 권력에 종속당하는 환자는 단지 ‘건강하지 못하고, 아픈 사람’ 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제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넘어서 건강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의사의 말 한마디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인터넷을 위시로 한 여러 매스 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현대의학이 하얀 천막으로 가려진 신비로운 영역으로 남아있을 수 이유도 그것이 단순히 고차원적인 첨단 과학의 총아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생명을 다룰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의학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란 ‘의학은 환자들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고 무결한 것.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의학을 다루는 의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된다는 것.’ 이다. 아마도 현대인들에게 당신들이 현대 의학에 대해서 얼마 정도나 믿고 있느냐고 물은 다면 100%는 되지 않는다 할지로도 아마 90%는 족히 상회하는 수치가 나올 것이다. 현대 문명의 첨단을 걷고 있는 과학 기술들이 인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분야가 의학이며, 앞서 말했듯이 그 무엇보다도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다룰 수 있는 권한이 바로 의학을 통해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사람들로부터 받는 권위가 더욱 그 권위를 더해가는 셈이다.그러나 이러한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외과 레지던트인 저자의 눈에는 의학은 그 자체로도 불완전한 학문이며, 더욱이 이 학문은 사람(의사)이라는 매개에 의해서 실현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불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의학을 다루는 의사란 존재를 여러 인간 군상이 모여 있으며, 실수도 저지를 수 있는, 한계점을 갖고 있는 존재로 본다. 즉, 이 책의 초점은 의학 자체의 불완전성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의사가 갖는 불완전성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의학과 의사의 관계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환자가 아파서 병원을 찾게 된 상황이란 대개가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 많으며 의사들은 언제나 그러한 때에 고독한 최고 결정권자로서 환자에 대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외로운 결정이란 항상 잘못된 결과를 나을 수 있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의 잘못된 결정이란 재화나 시간, 인적 자원의 낭비를 낳을 수 있겠지만 이 분야에서는 곧바로 인간의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결과를 낳는 다는 점에서 여타의 분야와는 완전히 다르다. 저자 아툴가완디는 우리가 병원에서 환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완전 무결해 보이는 의사들이 내리는 하나하나의 의료행위가 - 특히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들에 대해서는 - 실제로는 얼마나 가까스로 운좋게 위험을 피해가면서 이루어지는 것들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 나온 여러 사실적인 의료 상황들속에서 이러한 위험천만한 상황들은 의사들만이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며 환자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속편한 상황으로 그려지고 있다. 책에서 나온 예처럼 기도에서 발견된 종양이 어느 한쪽 폐를 완전히 막아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의사는 더 이상 제안된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저 응급실 의사들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방법을 곧바로 환자에 적용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수년간의 임상 경험에 의해서 나온 결정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교과서적인 조치라 말할 순 없다. 이것은 굉장히 적절한 은유로 쓰였는데 어느 한쪽 폐를 막아버릴지 모르는 기도 중간에 형성된 종양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 버릴지 모르는 흔들 바위로 묘사되었다. 결국 응급실에서의 의학이란 결국 우리가 시간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결국 무엇인가를 환자를 위해서 해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흔들바위를 그저 한번 건드려 봄으로서 어느 쪽으로 굴러갈지도 모르는 주사위 게임과 같은 상황에 놓이는 것과 유사하다. 한마디로 의학은 절대로 단순한 계산에 의해서 딱딱 답이 떨어질 수는 없는 ‘복잡계의 과학’이다. (물론 인간의 몸은 대표적인 복잡계의 하나 이긴 하다.) 그러나 이 복잡계의 과학에 대해서 의사들은 물리학자들처럼 복잡한 수식을 쓸 수는 없으며 위급한 상황에서의 단호한 판단에 대해서 그 모든 것을 책임 져야 한다. 결국 이것은 노골적으로는 확률 게임이라는 단어로도 치환될 수 있을 듯하다.단순히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결정을 내려야 되는 고뇌의 순간 뿐만이 아니라 풋내기 의사가 한명의 숙련된 의사로 거듭나는 과정에서도 환자들은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도 눈여겨봐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만 해도 환자들이 가장 믿고 신뢰하는 병원들의 대다수가 대학병원이다. 그러나 대학병원이 의료기관인 동시에 교육기관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환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은 단순히 대학병원의 명망 있고 실력 있는 의대 교수들을 생각할 뿐이지 이제 막 자신의 전공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레지던트 1년차, 또는 이제 막 환자를 접하게 된 인턴들에 대해서는 별로 안중에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이들이 이 사회에 외과의사 또는 흉부외과 의사의 대가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발을 들여놓고자 하는 풋내기 의사들을 환자를 대상으로 끊임 없는 연습을 해야 하며 어쩔수 없이 환자들 또한 본의 아니게 이들의 실습 대상이 되어버리게 되어 있다. 이 사회가 숙련된 의사를 배출하기 까지는 환자 전체가 위험 부담을 해야 한다는 사실. 이 또한 현대 의료 체계의 피할 수 없는 약점의 하나로 저자는 분류해 놓고 있다.한편 미국에만 100만 명의 의사면허 소지자가 있듯이 이제 의사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조직이 하나의 사회를 이룰 만큼 그들의 수는 많아졌다. 그런 만큼 그들 중에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 어떠한 집단을 가져다 놓더라도 결국 그들은 정규분포 곡선을 띌 수밖에 없다는 의견처럼 의사들 중에서는 우울증, 알코올 중독, 이상성애, 또는 질병에 기인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많은 의사들 중에서는 그러한 소수도 있다 라는 식으로 이해 할만도 하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지 못할만한 의사들에 대한 은퇴 권고, 직접적으로 말해서는 퇴출 여부에 대해서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굉장히 미온적이라는 점에서 그에 따른 위험 부담을 환자가 지게 하고 있다. 물론 나라고 해도 같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친한 동료를 우선은 도와주고 싶고, 감싸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 반성을 해보면 과연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도의적 이유’ 에서만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부적격한 의사들을 감싸는 이유가 혹시나 우리가 나중에라도 그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동료 의사들에게 한번은 눈감아 달라는 식으로의 무언의 압력을 보내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분명 부도덕한 자세이다. 그 대신 우리는 용기 있게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들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 프로그램에 맡겨야 하며 갱생의 기회를 줘야한다.이 책은 3부에서 의료 결정권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내놓으면서 앞으로 의업에 종사하면서 고독한 최고 결정권자가 될 우리들을 (물론 자문해 볼 동료 의사도, 교과서도 있지만 결정에 대한 책임은 우리 자신이 지는 것이기 때문에) 깊은 성찰에 빠지게 하였다. 의학개론, 의료윤리에 관련한 수업들을 들으면서 항상 의사는 환자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며, 결국 중요한 의료상의 결정에 대해서는 환자가 자주적인 결정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중,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당연한 말처럼 오늘날의 의대생들에게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생각에 더 깊은 회의감에 빠지게 되었다. 우선 의사는 환자가 의료상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만한 충분한 지식을 전해 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책에서 예로 나왔듯이 반복되는 유방 조직 생검에 대해서 유방암을 피하기 위해서는 꼭 이 검사를 받아야 된다는 의사의 의견이 환자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다. 당장 여성 환자는 자신의 가슴에 자꾸만 흉터가 남는 것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할 뿐이다. 또한 촉박한 시간 동안에 (수 분 내지 수 시간) 의사가 의과대학 6년과 수련의 기간을 통해 배워온 지식을 얼마나 이해 가능하게 전달할지도 의문이다. 두 번째로 최고 결정권이 의사에서 환자로 넘어간다는 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냐에 대한 의문이다. 모든 의학적인 제반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더라도 확고한 결정을 내리기에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부지기수인데 과연 의학적 지식이 미숙한 환자에게 의사 대신 결정을 맡기는 것이 옳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더 중요한 사실은 환자의 자주적 결정을 위한다는 선의를 표방하고 있는 듯 한 이 권한 이양이 실제로는 책임 회피의 수단이 아닌지는 궁금하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점차 선진화됨에 따라 소송문화가 발달해가고 있으며 그것은 의료계에서 까지 큰 부담으로 다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앞을 컴컴하게 만드는 사실은 저자의 말처럼 모든 의사에게는 그만의 ‘엘리노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5.05.05| 3페이지| 1,500원| 조회(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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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 영화:마지막 황제
    교양중국어 2학기 과제물 : 중국 영화 감상문『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1986)』의 감상민족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은식 선생은 민족혼을 갖고 있는 나라는 망해도 진정으로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만큼 민족의 정신은 그 나라와 민족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말이며, 그 자체가 나라와 민족을 대변할 만큼 중요하단 말이다. 그렇다면 민족혼을 이루는 중추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 나라의 유구한 역사에서 나올 것이다. 그럼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 중국인의 정신을 대변하는 그들의 역사 핵심은 무엇일까? 중국의 역사는 수많은 나라들을 누가 통일하여 새로운 황조를 새우는데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가 그 수많은 백성들과 영토를 하나로 묶어 하나의 국가를 세우며 맨 정상에 어떤 인물이 황제로 등극하는가는 우리가 배우는 중국 역사의 기초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다민족 국가인 중국을 이루는 수많은 민족과 소국들을 하나의 중국으로 묶어 주는 데는 면면히 이어져 오는 역사의식이 있고 또한 그 안에는 황제가 있었다. 황제와 중국의 역사 이 둘은 서로가 풀릴 수 없이 연결되어 상보적으로 둘의 존재를 가능케 한다.지금까지 내가 본 중국영화가 그리 적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데 있어서 이 영화를 주저 없이 고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 영화를 통틀어 3번 보게 되었다. 한번은 초등학생 시절에 본 것으로 기억하고 두 번째는 고등학교 때 텔레비전에서 그리고 이제는 나의 사고능력이 어느 정도 자리 잡혔다고 생각되는 대학생의 나이에 보게 되었다.나는 비평가는 아니지만 비평의 기본적인 원리에 내재적 비평과 외재적 비평이 있다고 들었다. 우선 나는 영화의 내재적인 면에서부터 논하고자 한다. 영화자체만을 두고 이야기 해본다면 이 영화는 참으로 대단한 영화이다. 우선 홍콩, 중국, 이탈리아, 미국의 합작영화라는 사실만으로 그 규모를 예상케 한다. 촬영 전, 준비작업에만 2년여가 걸렸다는 이작 품은 리틀 붓다라는 작품을 만든 베르톨루치 감독에 의해서 사상처음으로 현대 중국의 세계가 묘사된 작품이라고 한다. 별 생각 없이 보아도 느껴지는 수많은 엑스트라와 여느 역사물과는 다른 엑조틱한 로케이션과 황제, 황후 그리고 황실의 식구들이 입는 호화로운 의상들이 눈에 띄는 영화였다. 그러나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런 화려하고 장대한 영화 속의 화면보다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최후의 황제 부의를 향한 애정 가득한 접근의 솜씨였다. 한 인간을 통해 그 시대의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정통 역사물의 기본에 참으로 충실한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이 글을 통해 가장 할말이 많은 부분은 영화의 외재적 비평과 감상에 담고 싶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영화의 제작자들이 전하고 싶었던 무엇인가를 인식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대답하는 과정에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제를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 의 일생을 통해 근대의 서구의 침략에 의해 몰락하는 중국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그 시각 속에는 중국이 곧 황제이며 황제가 곧 중국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도 그러하며 나의 생각이 행여나 반민중적인 사관이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중국의 역사에 있어서 황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는 크게 공감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를 끝나는 순간에 나의 그러한 생각은 지워졌으며, 일반인들의 그러한 통속적인 주제에도 동의하고 싶지 않아졌다.황제 부의는 결코 그의 존재 자체로서 중국의 존재를 대신할 만큼 위대한 존재도 아니었다. 그의 능력이 그토록 중국을 이끌고 나가기에 뛰어나서 그는 3살의 나이에 황제에 오른 것이 아니다. 다만 그의 혈통에 의해서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귀한 핏줄 또한 전근대 중국의 명목을 이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황제라는 존재에 의해서 그 나라가 존재하게 되는 것은 그 황조를 세운 선구자적인 황제 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결국은 황제 개인이 아닌 황제라는 제도가 중국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아니, 중국이라는 국가가 황제라는 제도를 그토록 원해 왔는지도 모른다.나는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영화는 거대한 중국의 억조창생을 이끄는 황제의 옥좌에 의해 한 인간이 얼마나 구속받아 왔는지를 그리고 있는 영화라는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고 싶다. 그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일생 속에서 대게는 그를 이용하려는 자들만 있었다. 그 주체가 이 작품에서는 일본이라는 국가 그리고 중국인들 자체라고 그려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1912년의 신해혁명도 결국은 황제의 옥좌에서 물러나겠다는 약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그가 옥좌에서 물러나기 전에 실권을 누렸던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에 대한 자신과 타인의 인정에 의해서만 ‘고귀한 황제’는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비참하게도 부의는 황제의 존호를 폐지하지 않고 궁전과 사유재산 역시 계속 유지하겠다는 조건으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연간 400달러의 연봉도 보장되는 것과 더불어서 말이다.다시금 그들이 부의를 이용하는 것은 1931년 만주국의 성립을 통해서이다. 그들은 일본의 만주 침략을 위해서 그를 만주국 황제로 옹립한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감백 대위와 토거원 육군상사였다. 두 사람은 그에게 만주국 황제가 될 것을 권하고 부의는 천진을 탈출하여 장성으로 향한다. 완용과 중신들의 충고, 전 세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부의는 일본군에 의해서 만주국 건국과 함께 황제가 된다. 여기에서도 부의는 정치와 권력의 도구로서 이용된다. 한 인간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에 의해서 말이다. 단지 그의 지위 때문이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르나 그에게는 씻어버릴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그에게는 황제의 혈통이 있었다. 몇 백 년을 다스려온 한 왕조의 몰락과는 별개로 이는 한 인간에게 더할 나위 없는 구속이며 압박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의 부재로 인해 고통 속에서 삶을 마쳐야 하는 운명 그것은 결국 그의 만백성이 원하던, 그리고 중국이 원하던 황제제 때문이었다.특히나 결말부에서 나만의 이러한 관점에 맞아떨어지는 장면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그가 하얼빈 역 사무실에서 자살하려는 순간 공화군 병서에 의해 구조되어지고 형무소로 보내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수인번호 981번. 그것이 그의 새로운 이름이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자의로 이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전근대적인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범죄의 이름으로 강제적인 고백과 학습의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군의 중국 침략 뉴스 영화를 응시하는 부의와 그의 표정 속에 날카로운 반응이 스치는 장면은 부의라는 인물이 그가 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짐 때문에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가를 섬세하게 심리적으로 보여준다.
    독후감/창작| 2004.05.31| 3페이지| 1,500원| 조회(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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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서평 평가A+최고예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서평우선 이 책의 제목을 보왔을 때 이 책은 무분별한 경제성장을 비난 하는 환경운동가의 책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 책의 초중반부를 읽었을 때는 이 제목이 매우 협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경제적 측면뿐만이 아닌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의 것도 큰 부분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머리말에서도 저자가 말했듯이 이 책의 제목은 가 더 나을 듯 싶었다. 그러나 전체를 다 읽어본 지금 나는 제목으로서 지금의 것이 결국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상식’이 아닌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논리 기저에는 근본적으로 경제성장이 인류의 풍요를 가져오느냐는 물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은 가장 근본적인 것을 축약해서 담고 있는 셈이다.이 책의 머리말을 보면 그 끝에는 이 책을 읽어줄 독자를 상상하는 글이 나온다. 물론 이는 겉표지에도 나온다. 저자는 이들을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사람이 나닌 미래에 대한 회의, 그것이 결코 막연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읽기를 기대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이책의 목적이 좌파 이데올로기(저자의 견해에는 어느정도의 좌파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를 설파하려는 편향된 목적이 아닌 우리의 미래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모색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마치 일본국민에게 타이르듯히 말을 한다는 문체적 특성을 느꼈다. 즉시 저자의 신상을 알아본 결과 그는 현재 일본에서 집필을 하고 있는 중이며 일본에서 대학교수를 했던 일본을 아는 미국계 지식인 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 책의 배경이 일본에 가깝다는 말을 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하고 즐겨쓴 메타포인 타이타닉 현실 주의에서 타이타닉호의 빙산으로의 운행을 이끄는 큰 축을 결국 따지고 보면 미국과 일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 중 미국은 전세계에 풍요가 아닌 ‘파괴적 소비문화’의 전파를 주도한 나라 역사적으로 그들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패권주의의 패망도 맛보았으며, 또한 저자의 견해로는 그들에게는 전세계의 모범이 될 헌법 제 9조도 남아 있고,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 전환점에 해당하는 제로성장의 위치에 와 있다. 즉 일본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 전환의 ‘키’가 되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게 저자의 생각인 듯 싶다. 물론 한국인으로서는 그간의 역사적 감정도 있으며, 왜 그런 국가가 한국이 될 수 없을까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근본적인 것은 일본만이 그러한게 아니라 우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제1장에서부터 제 4장정도까지가 저자의 이데올로기가 집약된 부분이다. (저자가 지금의 현실주의를 상식이 아닌 이데올로기로 보았듯이 저자의 생각또한 완벽한 상식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 1장을 가장 단순한 문장으로 축약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저자는 현재 세계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상식아닌 상식일뿐이며 상식으로서의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말 하였다. 이 정의는 실로 정확하며 엄격하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공정한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상식은 그저 수적 다수의 생각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저자의 생각과 더불어 이 ‘상식’에는 어느정도의 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이 상식은 우리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즉 방향성이 있어야만 한다. 그 방향성이 좀 더 건전하고, 인류의 행복을 충족시킬수 있는 방법이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둘째로 상식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서야 한다는 것이다. 상식이 합리적 판단이 아닌 몇몇의 이해타산적 생각에 의해 좌지우지 한다면 그것은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셋째로 아무리 건전하며 합리적인 상식이라 할지라도 자신에 대한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항상 이 지구의 상황은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는 것에대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위기를 이다. 이대로의 파괴적 소비문화로는 이제 인류가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기정사실화 되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이데올로기는 그러한 것에 염두해 두고 있는 가를 생각해보면 그들은 이 세계를 마지 자신들만이 쓰고 버릴 일회용 화장지쯤으로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일회용 화장지처럼 편할때로 실컷 써버린다음에 다음 사람, 또는 자신들이 다시 그것이 필요할때는 생각을 안하는 사람처럼 세계인은 행동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 직접 민주주의에서 대의적 민주주의로 바뀐 역사적 현실이 우리의 행복을 지향하냐는 물음에도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논리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신문, 뉴스를 볼 때 느끼는 소외감 자체가 그렇다. 국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정부에서 어떠한 정책을 집행하는지 우린 도무지 관심이 없다. 또한 그것들이 우리의 의지에 의해 행해지냐는 것에도 의문이 든다.두 번째로 상식이 합리적인 것인가라는 물음에도 이또한 아니다라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모호하게 아닌 것이 아니며 확실이 아닌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바대로 이제 곧 낭떨어지로 떨어질텐데도 계속해서 달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 물론 타이타닉호의 운행이 계속되는 이유 자체가 불합리 하다는 것은 아니다. 타이타닉호의 운행 중단은 그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준다. 그러나 진정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면 지금의 단기적인 혼란과 미래의 되돌릴수 없는 파멸사이에 냉청한 저울질을 해 봐야 한다. 그런면에서 이 세계의 방향은 단순히 우리들이 지금까지 해오고 있던 것을 유지하며 현상유지 하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셋째로 우리의 상식은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불충분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확실히 우리가 이런 비판을 할 수 있는 생각의 자유가 있으며, 그것을 말할 언론의 자유또한 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비판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이러한 비이 받아들여진다 해도 큰 효용은 없다는 말이다.그렇다면 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상식은 바꾸어야 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바꿀 수 없는 존재란 말인가? 그렇담 우리의 노력은 헛수고 일것이며 이러한 논의를 하고 있는 책또한 아까운 종이를 낭비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 책을 통해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는 지금 전력으로 바위를 밀고 있냐는 것이다’. 야구에서 말하는 전력투구를 하고 있냐는 것이다. 이 사실에는 모두가 아니라고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온몸으로 이 현실을 막고 있는게 아닌, 언젠가는 바뀌겠지, 누군가는 바꾸어 놓겠지 란 안일한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게 사실이다. 필자 또한 상식의 조건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아 그 세 번째 조건으로 현실을 비판하기에 앞서서 정말 실천하는 지성인이 되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의 내용을 만약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어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변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저자가 갖고 있는 궁극적 목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러나 우리는 이 책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 책의 주장또한 허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필자가 말한 상식의 두 번째 조건에 맞지 않는다. 즉 우리의 지금까지의 자동차를 타고 컴퓨터를 쓰며, 한 여름의 에어콘을 쓰는 생활을 포기할 만큼 이 책의 논리가 합리적이며 진리에 가깝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여기서 나오는 주장들이 상식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있다.우선 살펴볼 것이 과연 인류가 한계상황에 직면했냐는 것이다. 저자는 지구를 스페이스셔틀과 같은 상황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원이 한정된 폐쇄적 공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반대편 주장에서 생각해보면 그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우리에겐 무한한 에너지인 태양에너지가 있는 것을 비롯하여 우린 아직 저 깊숙이 아직 인류가 다다르지 못한 해양세계로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즉, 이 책의 저자가 말한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빙산은 결국 존재하는 것일수도 있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타이타닉 현실주의가 만들어 놓은 전제가 고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봐도 좋다.두 번째 문제는 특히 제 5장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는 아니다’에서 드러난 문제점인데,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에는 군대가 있어도 안되고, 진정한 여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며, 선거제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를 느끼고 있다. 나도 이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너무 이상적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는 가능하나 그것에 대한 부정은 불가능하리라 본다. 현재의 인구는 너무나도 많다. 이들이 모두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혹자는 우리의 발달된 이기는 정보 통신 시스템을 이용해 전자민주주의를 시행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우리가 충분한 민주주의(현실체계가 규정하고 있는)를 누리기위해서는 또한 충분한 부가 필요하고 그것은 우리의 노동에서 나온다. 그러다 보면 결국 우리의 여가시간은 부족해지며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그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가장 현명할 선택을 할 정치적 엘리트는 필요한 것이며(물론 이 정치적 엘리트들이 지극히 청렴하며, 개인적인 권력욕을 갖지 못하도록 국민이 감시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 정치적 엘리트의 선택권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물론 이러한 발언이 현실체계를 옹호하는 발언과 같지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것과 같이 경제발전 상의 하나의 인과적 고리를 끊는 다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혼란과 우리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이 책에서는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언급한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에는 단단한 인과적 고리(저자는 이것을 악순환이라고 말할수도 있을것이다.)가 있다. 이것을 끊으면 일순간의
    독후감/창작| 2004.05.31| 5페이지| 1,500원| 조회(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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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를 읽고 평가A좋아요
    식민지 시대의 허구적 근대성일제시대. 나는 이 단어를 생각하면 상투가 잘린 채 신음하는 불쌍한 우리 선조, 콧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총을 들고 일본군과 싸우는 모습, 순사들이 칼을 차고 농민들의 양식을 빼앗아 가는 장면이 생각난다. 교과서라는 역사관을 통해 인식된 일제시대는 나에게는 민족의 한이요, 눈물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 새로이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중,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인식해 왔던 식민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헌병경찰통치시대, 문화통치시대, 민족말살정책시대 등의 용어로 도식화 되어 있는 나의 일제시대는 나이 드신 우리 시골 할아버지가 겪으셨을 험난하고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시대이다. 과연 그러한 시대에 모던이란 말이 어울리기나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이 책을 읽으면서 생긴 첫 번째 물음은 왜 교과서는 식민지 시대의 민족 투쟁적 모습만을 비춰주는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그리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일제시대는 우리 민족을 탄압한 식민 당국과 민족주의 열사들 그리고 그들과 사상적으로 대립한 사회주의자들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또 다른 관점이 있었다. 이른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적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문화사적 측면이라 할 수 도 있겠다. ‘일본을 거친 왜곡된 신문화가 기존의 조선 문화와 어떻게 문화 접변 현상을 일으키는가’ 이것이 이 책이 다루는 일제시대이다. 아니 그 용어도 틀린 것 같다. 식민지 근대기이다. 물론 식민지 근대성(Colonial Modernity)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친일파라고 손가락질 당할만한 시대는 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도처에 깔린 ‘일제강점기는 일제와 우리민족의 투쟁사일 뿐이다’라는 생각은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물론 내가 사학을 전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또한 사학에서의 좀 더 많은 관점과 분야에서의 역사적 연구는 사학을 더욱 꽃피울 수 있는 실천이라고 생각이 든다.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1920년대~1930년대의 시기를 문화적 번영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때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양키문화가 들어와 우리의 역사를 긍정적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분명한 기만적 문화통치와 민족말살정책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아는 이 시기의 역사가 다만 ‘어두운 석회의 잿빛 경성’은 아니란 점이다. 만문만화를 통해서 볼 수 있었던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은 통한의 역사에 분통해 하는 한 많은 사람들의 그것이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생각들이다. 은행 대출로 새 집을 샀는데 그 빚을 걱정하며, 중간고사가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 학생이 자신을 뽐낼만한 것들을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그런 생각들이다. 나이든 어른들은 요즘 것들은 왜 다들 그렇게 벗고 다니는지 걱정하며, 요란한 음악에 왜 그리 또 딴스를 야하게 추는지 걱정한다. 오늘날의 걱정들과 무엇 그리 틀린 것들이 없다.내가 느낀 점은 그 때의 시대와 오늘날의 시대가 무척이나 외양적으로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외국에서 공부했고, 또한 고등교육기관에서 배운 학생들이 일본이란 프리즘을 거친 해외의 문화를 배워와 그것을 통해 경성의 신문화로 일구었다. 또한 지금은 세계로 이어진 인터넷의 케이블 선을 통해 CNN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며 위성방송의 전파들을 통해 우리는 팝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본다. 안석주 선생의 만문만화처럼 우리 세태를 재밌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어디를 가나 우리의 어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찬다. 적어도 경성 안에서는 우리는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유행에 따라가는 것이며 연애며 그런 것은 말이다.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시대는 지금과 틀리다. 여기서 근본적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과 의의에 있다. 그것에 대해서 몇 가지 의문들 던져보면 알 수 있다. 왜 그들은 그토록 모던에 열광하였을까? 우선 지금의 시대에서 유추해 생각해보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신문화의 자유로움, 스타일리쉬함 그러한 것들이 마음에 들은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왜 좋냐고 물어보면 그냥이라고 답하는 신세대들의 대답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과는 다른 식민지 시대 젊은 지성인들만의 이유 또한 있다.그들이 당시의 참담한 조선의 정치적상황과 신음하는 민족의 고통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누구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기민한 그들일 것이다. 그러나 전문학교까지 나온 인텔리를 룸펜이 되게 하거나 아님 운전수 학원을 다니게 만드는 뼈아픈 현실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잊고 싶게 만들었을 것이다. 세상만사를 다 잊게 만들어 주는 것 중에는 무엇보다도 자극적인 것이 좋다. 새로운 것, 휘황찬란한 것 그리고 매혹적인 것들의 집합체인 신문화가 그들의 시대적 아픔을 대신해주는 환각제와 같은 것이었다.또한 그들의 식민지 시대는 허구적 모던의 시대 이었다. 온갖 근대화된 문명의 이기와 새로운 사조가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지 못하게 한데에는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있었다. 모던껄들이 걸치던 여우털 목도리나 마네킹껄로 유혹하는 백화점의 상품들과 당대 식민지의 착취적 경제의 모순은 그 모든 신문화의 산물들이 거짓된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당시의 우리의 빈곤한 경제적 기반으로 서구에서 쏟아져 오는 그들의 값비싼 모던의 상징물들을 구매한다는 것은 그것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증거이다.또한 근대화 초기의 문화적 융성기의 사회의 활기찬 분위기는 모든 민중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부르주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일부의 계층들이 그러한 감각적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으며 경성외의 지역에서는 아직까지도 그들 말대로의 전근대적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어 그대로 당시의 식민지 경성인 들은 부르주아지, 성안의 사람들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모던의 문화는 계급적 그리고 특정지역에 국한된 하위적 문화라고 규정지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었다. 물론 그것이 모던의 시대를 허구로 보는 충분한 이유는 될 수 없다. 문화는 한계층에서 다른 계층으로 퍼질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문화의 계층간 유동현상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금전적 조건이 당시의 식민지 시대에도 따라줬을지는 의문이다.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왔던 점은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인식한 내용을 현대사학에서 있어서의 핫이슈인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란과 어떻게 결부 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닌 어디까지나 관점의 문제 이었다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식민지의 역사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닌 하나의 정치적 담론(discourse) 이었다. 공산주의로부터 체제를 수호하며 경제성장을 위해 민족을 단결시키기 위해서 역사라는 내용물을 ‘민족주의’라는 포장지로 잘 포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들의 반대편이 친일이란 누명을 덮어씌울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의도된 정치적 담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담론의 특성으로서 기존의 식민지 역사관의 패러다임과 권력 투쟁을 벌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 까지나 관점의 균형을 찾기 위한 일종의 반동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그래, 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 민족에게 많은 모더니티를 주었고, 결국 그것이 지금의 많은 근대적 사상을 낳았어’ 라고 말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 만문만화 작가의 눈을 통해서 내가 본 당시의 20,30년대의 모너니티는 그들이 진정으로 간절히 원해온 자유와 평등에서 온 것이 아니며, 단지 그들이 향유하고 싶어 하는 멋남, 짜릿한 자극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빈약한 경제적 생산기반에 있어서의 소비적 모던 문화는 본국의 내지사람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한 하나의 미끼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무엇 하나 완전한 역사관은 없으며 우리는 좀 더 다양한 역사관속에서 어떠한 것이 우리가 한 시대를 바라보는데 좀 더 타당하며,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 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4.05.31| 3페이지| 1,500원| 조회(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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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독후감] 체 게바라 평가C아쉬워요
    My impression after reading "Che Guevara" Recollectioning the time when I see his name from small red book in my freshman in high school I look back on my life after reading "Che Guevara". Che doesn't motivated my willing to enter medical college. Only I want to get was hypocritic little impression on biography about him when I wrote a essay which had to be submited in entering university.
    독후감/창작| 2004.05.31| 2페이지| 1,500원| 조회(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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