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 주목한 휴머니즘 시대-르네상스1. 르네상스1.1 르네상스란 무엇인가?란, 15세기(정확히 1452년)이탈리아 플로렌스를 기점으로 전 유럽에 파급된 학문, 예술상의 혁신 운동을 말하며 'Re(다시)+naissance(태어남)'의 조합어다. ‘르네상스’라는 단어는 학문 또는 예술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태리어의 ‘rinascimento’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운동은 인간성의 존중, 개성의 해방을 목표로 하였고,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부흥시킴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려고 하였으며, 그 범위는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다방면에 걸쳐 실현되었다.르네상스의 사상가들은 로마제국의 몰락(476)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았고, 그때부터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시기를 야만적이고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였으며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중세시대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르네상스 사상의 기본요소는 프란체스카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 이태리 학자, 시인, 인문주의자)가 설정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로 간주함으로써 문명을 다시 일으키고 사회를 개선하는 것은 고전학문을 통하여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당시의 예술가들은 현실적 이념으로 ‘신플라톤주의’를 바탕으로 초자연적이자 권위적인 중세시대에 대한 반발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인간과 종교, 철학과 신학의 올바른 균형과 이상미를 실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작업했다.이러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단어는 휴머니즘과 부활(재생)으로 볼 수 있다. 휴머니즘은 중세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인간관으로 변화를 뜻하며 부활은 과거 인간 중심의 사상을 뿌리에 두고 새롭게 인간을 발견한다는 의미이다.이를 자세히 살펴 보면, 단순하게 전통 문화(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의 작품)를 부활시키려는 단순한 복고 정신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가 들어 있다. 곧 중세 크리스트 교회가 인Arnolfini and his Wife, 1434, National Gallery, London[아르놀피니 부부의 약혼]은 이전 기독교적 세계관을 버리고 관찰을 통해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인간의 삶을 담은 초기 대표작이라는 것, 수수께끼 같은 상징을 심어 놓아 당시의 우주관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랄 수 있다.이 그림은 결혼식 장면을 담은 것이다. 어찌 보면 결혼증명화라는 게 보다 더 정확하다. 그런데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결혼식장이 아니라 조용한 실내, 즉 '신혼방'이다. 당시엔 보통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신혼방에서 몰래 결혼식을 치루는 것이 어딘가 수상하다. 바로 이 결혼이 가문끼리 하는 일종의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신랑의 표정처럼 그가 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한 탓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신랑 신부의 입장차이가 눈에 확연하다.신랑이름은 ‘조반니 아르놀피니’ 라는 사람으로 이탈리아에서 무역상으로 많은 돈을 번 사람이다. 그는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덤벼 들었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판단력도 우수해 정부 재무담당이라는 요직을 차지하는 등 당대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다. 반면 신랑과는 다르게 침착하고 얌전해 보이는 신부는 살포시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여자의 이름은 ‘조반나 체나미’ 라는 사람으로 이탈리아 유명 은행가의 자손이었다.세부적으로 보면,남자와 여자 사이로 보이는 거울에는 10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는 모두 그리스도의 수난을 표현한 것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죽음의 길을 걸을 때 머물렀던 장소이다. 거울 속엔 방 반대의 정경을 환히 비추고 있고 거기엔 아르놀피 부부 외에 또 다른 두 남자(얀 반 야이크 자신도 포함)의 모습이 들어있다. 그리고 거울 위해 라틴어로 “얀 반 아이크가 여기에 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 (Jan va모습에 반한 신들은 저마다 비너스를 아내로 맞이 하기를 원했지만,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곱추에다 못생긴, 그러나 가장 부지런한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비너스를 주어 버린다. 이는 제우스의 무기인 번개를 잘 단련시켜 준 데 대한 보답이었다.바다의 물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조개껍질 위에 서 있다. 이 조개껍질은 여성을 성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일렁이는 바다 물결(남성의 정자라는 의견도 있음)은 실제로 물결을 그리지 않고 V자 무늬로 나타내고 있다.서쪽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얼굴이 벌개지도록 봄바람을 불어주고 있다. 제피로스에게 엉켜 있는 여자는 요정인 클로리스다. 제피로스와 결혼한 클로리스는 꽃의 여신인 플로라가 된다.바람에 날리는 장미꽃들..신화에서는 장미를 비너스의 꽃이라고 한다. 장미의 아름다움과 짙은 향기는 사랑을 뜻한다.사랑과 욕망의 여신인 비너스,옷을 걸치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육감적인 이미지보다는 청순하고 왠지 슬픈 표정의 비너스다. 이 비너스의 모델은 메디치의 애인이었던 시모네타를 그려넣은 것이라고 한다피렌체 최고의 미녀였던 시모네타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고 마는데, 그녀가 죽은 후, 메디치의 주문으로 그려진 그녀의 초상이라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Cf. 비너스의 탄생3.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1483-1520)생애라파엘로 1483-1520)는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작가 의 한 사람으로 조숙한 천재였으며, 우르비노 지방화가에서 바티칸 교황청 궁정화가까지 최고의 사회적 영예와 세속적 성공을 누린 예술가이다.1483년 우르비노의 화가 지오바니 산지오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페루지아의 화가 페루지노의 문하에서 그림 공부를 했었다. 초기의 작품은 페루지노의 것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흡사했으나 에서 에로의 발전은 서정적인 스승의 예술을 점차 순화하고 형식미로 통일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1504년 예술의 중심지인 피렌체로 옮겨 래를 부르고 갈라테아는 그 우스꽝스러운 노래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사랑의 신들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일제히 그녀를 향해서 사랑의 화살을 겨냥하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것은 갈라테아의 사랑의 승리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모든 유혹을 거부하고 두려움 없이 행진을 계속해 나갈 테니 말이다.갈라테아의 승리는 ‘사랑의 승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르네상스를 완성하는 마지막 대가 라파엘의 승리이기도 하다. 중앙의 갈라테아를 중심으로 모든 인물들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왼편의 천사는 오른편의 천사와 동작에 있어서 완전히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중앙의 천사는 화면 화단의 천사와 완전히 대칭을 이루고 있다. 네 쌍의 해신들도 마찬가지의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런 엄격한 대칭은 과학과 미술이 하나였으며 관찰을 통하여 자연의 질서를 읽어나가며 감탄하던 르네상스 당시의 지성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엄격한 대칭 뒤의 있는 일견 혼란스러운 듯한 비대칭의 아름다움은 다빈치에게서 조심스럽게 실험되고 있는 정도였다.라파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완벽한 대칭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생동감이 넘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이런 대칭이 생경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혼란스러운 듯한, 그러나 고전적인 리듬의 운무 둘러싸인 갈라테아의 동작은 동적이고 힘이 넘치고 있다. 즉,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화면 전체에 끊임없이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있음.라파엘로 회화4.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1512, Biblioteca Reale, Turin생애전성기 르네상스의 최초의 거장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데 그는 역사상 어 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만능의 천재였다. 그는 그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 고 있었으나 항공학·동물학을 포함한 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빛을 던진 과학 자이기도 했다. 레오나르도는 예술을 과학적 이해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예술가는 가장 뛰어난 관찰자로서 사물의 본질을 규명하고, 그것에 따라 이해하고 습득한 것을 다른 사람에 있어서는 인간은 유일무이하게 신을 닮은 존재였다. 또한 예술가란 냉철하게 관찰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그의 손에 잡히면 생명 없는 사물도 기적적으로 생명 있는 것으로 되는 창조자였다. 이러한 기적을 이루려면 예술가는 뛰어난 정신 그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즉, 신―어떤 의미에서는 예술가의 경쟁 상대―으로부터 부여된 영감에 따라 타오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천재성를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있어 때로는 은혜라기보다는 일종의 저주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천재보다 더 높은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손으로 만든 모든 작품에 신뢰를 두고 있었다. 항상 희망과 절망 사이로 방황하고 있던 강렬한 개성의 인물인 미켈란젤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틀림없는 천재라는 사실을 확신시켰다.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형상을 포함하는 그림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예술이라고 생각한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미켈란젤로는 철두철미한 조각가였다. 즉, 회화는 조각의 입체성을 모방한 것이며, 건축은 인간 신체의 유기적 성격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으로 그는 믿고 있었다.미켈란젤로의 창조 과정은 “형상을 가두어 놓고 있는 대리석으로부터 그 형상을 해방시킨다”는 말로 웅변되고 있다. 그는 채석장에서 금방 운반되어 온 대리석 덩어리에서 조각해야 할 형상을 생각해 내려고 했다. 그가 즐겨 대리석 채석장에 나가서 그 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돌을 고르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만들어 내려고 하는 조각의 형상을 처음부터 명확히 떠오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의 생명의 표지로서, 즉 대리석 표면을 그 속에서 밀어 올리고 있는 듯한 무릎이나 팔꿈치가 보였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미켈란젤로에 있어서 예술이란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었다).변하기 쉽고 어렴풋이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확실히 붙잡아 두기 위해 그는 반복해서 소묘를 하든가 때로는 밀납이나 점토로 소형의 모형을 만드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연후에 대리석에 감금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