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후기문학 정리무신란이 일어나자 신라 이래로 권력을 독점하던 문벌귀족이 몰락하고, 문벌귀족의 문학 또한 청산되었다. 하지만 무신정권 담당자들은 스스로 새로운 문학을 일으킬 수 없었다. 파괴를 하는 데만 그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새로운 문학의 창조자는 지방향리 또는 중소 지주 출신의 문인들이었다. 이들은 문벌귀족이 국권을 장악한 동안에는 진출이 억제되었으나, 무신란 이후에 중앙정계에 등장해 새로운 문학을 이룩하는 주체가 되었는데, 신흥사대부 또는 신진사류라고 일컬어진다. 신흥사대부는 실무와 기술에 능통했다. 유학을 이념으로 해서 사회질서와 기강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며, 농민을 보호하면서 다스려야 한다는 애민의 이념을 제시했다. 산천의 아름다움이 아닌 농촌실정과 농민에게 관심을 갖고 농민시 또는 애민시를 마련하였다. 고려후기 동안 문벌귀족이 장악한 어지러운 정치 속에서도 사회발전이 꾸준히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신흥사대부의 역할이 컸다.중세전기에는 중세보편주의를 중국과 대등하게 구현하고자 희망했으나, 중세후기는 중세보편주의를 독자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시기였다. 중국 한족의 독주가 끝나고, 중국 안에서도 한족이 아닌 다른 여러 민족 출신 문인들이 대단한 활약을 했다.이인로는 용사를 소중하게 여겼다. 용사란 과거 명문의 표현이나 관련 사실을 재활용하는 창작방식이다. 용사를 통해서 문학의 고전적인 규범과 가치를 재현할 수 있으며 용사를 얼마나 능란하게 구사하는가는 글 쓰는 사람의 능력을 측정하는 가장 좋은 척도라고 생각했다. 문학 수련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옛 사람의 명문을 읽어서 자기 것으로 하는 데 있다고 했으며, 현실의 문제와 바로 만나는 경험은 그 때문에 배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인로는 심에서 마련한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 물을 이용한다고 하며, 아름답고 순수한 심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하는 중세전기의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이규보는 지방에 기반을 둔 향리 출신으로 대단치 않은 가문 출신이다. 이규보는 일상성이나 현실성을 추구하여 물설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다가 선승이 패배하고 사대부가 승리했다. 기존의 사고형태를 파괴하는 데서는 선종이 더 큰 힘을 발휘했지만, 그 대안이 되는 가치관을 찾아 생활에 정착시키는 데서는 사대부의 신유학이 우위를 확보했다. 고려말에는 선종이 진보적인 의의를 잃고 지배세력과 결탁해 신유학의 이념으로 새로운 왕조를 창건하는 사대부 혁신파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는 의 사대주의적 시각을 바로잡고자 한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의 뒤를 이은 설화집이기도 하고, 을 다시 쓴 고승전이다. 는 중세보편주의를 독자적으로 구현하는 중세후기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탁월한 성과를 이룩했다. 고대의 자기중심주의를 재평가하고 그 유산이 민족문화로 계승되고 이슨 것을 보여주어 설득력을 확보했다. 또한 한문 문장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다양한 문체를 갖추어, 서로 다른 문화형태가 각기 그것대로 지닌 특성이 손상되지 않게 했으며, 우리말의 어순과 어휘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당대에는 한문학의 수준을 저하시켰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오늘날에는 민족 주체성을 찾았다는 평가를 얻는다.고대에는 설화만 있다가, 중세에 전이 생겨나고, 근대에는 소설이 득세하고 전기는 밀려났다. 중세후기는 전이 문학창작에서 널리 이용되고 다양하게 변모되어, 사람의 일생을 다루는 교술문학이 서사문학보다 우위를 차지한 특징이 있는 시기였다. 이러한 사람의 일생을 다루는 글은 전만이 아니다. 비. 지. 전. 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여러 하위갈래가 있다. 비는 비문으로 돌을 세워 사람의 생애를 새겨놓은 것이고, 지는 묘지로 죽은 사람의 내력을 돌에다 새겨 무덤 속에 묻어두는 것이었다. 전은 전기이고, 장은 행장의 준말이다. 전은 작자의 뜻을 펼쳐보일 수 있는 작품이고, 행장은 정해진 순서와 격식에 따라 대상 인물을 소개하는 틀을 지켰다. 자기 자신의 전도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 쓰기도 했다. 이규보의 이나 최해의 처럼 자신을 어떤 가상적 인물에다 의탁해서 쓰기도 하였는데, 이것을 탁전이라고 한다.가전은 전으로서 격식을 갖추었으나, 한 관심을 한 데 모아 포괄적인 인식을 하는 것이 감탄스럽다고 했다. 작품 전체의 의미는 문학을 하는 능력으로 관직에 나아간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활을 자랑스럽게 나타내고 감격을 누린다고 하는 것이다.속악가사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고려가요이다. 고려후기에 국정을 장악한 권문세족은 국왕과 함께 향락에 탐닉했다. 궁중에서 노래와 춤으로 진행되는 노래를 즐겨, 당악정재 공연에 열을 올렸다. 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부르기 좋은 민요를 가져다가 흥미롭게 개조해서 썼는데, 이것은 하층문화가 표면에 부상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조선초기에 속악을 정리하고 아악을 새로 재정하면서 , , 은 곡조만 이용하고 사설은 배격했는데 , 이유가 남녀상열지사 혹은 민중 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서 상스럽다고 생각해 배격했다고 추정된다.소악부는 우리말 노래 특히 민요에 다가간 한시이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한시와 우리말 노래의 공존을 고려후기 신흥사대부가 다시 마련해 중세후기문학의 새로운 창조에 크게 기여했다. 그 둘을 한시에 근접시키기 위해 한편으로는 소악부를 창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말 노래가 한시와 같은 격조를 갖출 수 있게 하는 시조를 만들어냈다. 소악부를 비롯한 여러 악부시는 한시가 민족문학으로서 적극적인 의의를 가지도록 하는 의의가 있어 조선후기에 크게 늘어났다.고려후기는 향가가 사라진 시대였다. 신라 이래로 오랜 역사를 가진 향가가 고려전기와 함께 자취를 감추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고려전기에는 신라의 전통을 이은 문벌귀족이 상층문화를 담당해 향가가 지속되었으나, 무신란이 일어나 문벌귀족의 지배체제가 무너지자 향가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없어지고 중세전기문학의 오랜 시기가 끝났다. 오직 심만 소중하다고 하던 시대의 이념을 세계를 자아화해서 구현한 향가를 대신해 물과 도를 함께 중요시하는 중세후기에는 교술시를 새롭게 마련하고, 세계를 자아화하는 서정시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우리말 시가에서 중세전기는 서정시의 시대이고, 중세후기는 교술시와 서정시가 공존지방의 향리 출신이다. 무신란으로 인해 전대의 귀족이 몰락하자, 과거를 보아 중앙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사대부는 귀족이 아닌 자신들의 불리한 처지를 사상과 문학의 역량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신분적 특권보다 스스로 쌓은 실력을 정권 참여의 자격 요건으로 삼고, 도의와 염치에 입각해서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했다. 고문과 신유학을 받아들여 고려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질박하면서 내용이 있는 고문은 사대부의 존재의의를 입증시켜 주었고, 신유학 또한 사대부가 지닌 사물 자체를 존중하면서 마음의 바른 도리를 찾자는 사고방식을 체계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고려전기, 고려후기, 조선전기를 견주어보면, 왕조의 지속과는 관계없이 고려전기와 고려후기 사이에는 이질성이, 고려후기와 조선전기 사이에는 동질성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고려후기에 신흥사대부가 모색하고 주장하던 신유학 사상과 한문학이 조선전기에 와서 확고한 모습을 갖추고 널리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신유학 사상과 한문학뿐만 아니라, 경기체가, 시조, 가사 등에서도 지속성이 인정된다. 중세후기의 문학도 조선전기로 계승되다가 한계를 드러내는데, 그 다음 시기에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시작된다.왕조 교체기의 문학은 조선왕조의 건국사업을 담당한 관인문학과 고려를 위해서 충절을 지키려는 사림문학으로 노선이 분열되었다. 건국사업파에서는 정도전, 절의충절파에서는 길재를 대표자로 들 수 있다. 정도전은 조선왕조를 창건하는 문학을 하는 커다란 과업을 이룩하고 피살되었다. 길재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을 찾아가 고려를 위해서 충절을 지키며 심성의 도리를 찾는 문학을 했다고 해서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왕조가 정착되자 정도전의 혁명은 위험하다고 배격하고, 길재의 충절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여러 방면에 걸쳐 민족문화 정리 사업을 하였다. 이 때, 한문학 작품을 집성하는 것도 긴요한 과업이라고 여겨 을 방대한 규모로 이룩했다. 우리 한문학은 중국의 것과 대등하게 평가되어 마땅하고 후대로 온전하게 전해져야 한중세전기는 상층남성이 한문을 사용했고, 중세후기에는 상층남성은 한문을, 상층여성은 국문을 자기 글로 삼았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는 상층남성은 한문을, 상층여성과 하층남성은 국문을 사용했다. 근대에는 하층여성이 국문 사용에 동참하고 상층남성도 한문을 버림으로서, 국문이 국민 전체의 공유물이 되었다.와 은 훈민정음 창제 직후에 지은 것이다. 는 건국 시조들의 활약상과 조선왕조의 창건을 기린 노래이고, 은 석가의 일생을 노래한 서사시이다. 두 편 모두 새롭게 창조된 훈민정음을 시험해 보려고 지은 것이다.조선전기 국문시가는 악장, 경기체가, 가사, 시조이다. 시조는 서정시이고 나머지 셋은 교술시이다. 교술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중세 후기의 특징이다. 악장을 조선왕조에서 새로 지으면서 우리말을 사용하기도 한 것은 전에 볼 수 없던 일이다. 경기체가와 가사는 고려후기에 생겨나 조선전기에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악장과 경기체가는 자취를 감추고 가사만 계속 번창한다. 악장은 나라에서 거행하는 공식적인 행사에 소용되는 노래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형식을 갖추기 못했다. 경기체가는 형식 요건이 까다로워 나타내는 내용의 폭이 좁았다. 경기체가를 창안하던 단계에서는 개별적인 사물의 의의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흥겹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가, 사물의 세계를 더욱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표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자 가사가 필요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악장, 경기체가, 가사는 모두 음악이면서 문학이었다. 하지만 비중은 각기 달랐다. 악장, 경기체가, 가사 순으로 음악의 비중이 작아지고 문학의 비중이 컸다. 공적인 갈래에서는 음악의 비중이 크고, 사적인 갈래에서는 문학의 비중이 컸다. 건국사업에서는 음악의 비중이 큰 공적인 문학의 갈래가 긴요한 구실을 했으나, 사대부문화로서 지속적인 의의를 가진 쪽은 문학의 비중이 큰 사적인 갈래였다. 가사가 오랜 생명을 누린 것도 그 때문이다.경기체가는 고려후기에 생겨나 조선전기에 본격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
-신용목200522268 조미영신용목의 시집에는 시인의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이 가득하다. 시인은 차분한 시선으로 자신의 내적 어둠이나 상처를 바라보고 아울러 시대의 주변부나 타자들의 삶까지 바라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신용목 시인의 시적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시인은 대상을 단순히 묘사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특별한 시각으로 대상을 재해석한다. 사실 자신의 내적 상처를 보여주거나 시대의 주변부에 위치한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모든 시인들의 시편들에서 보편적으로 다루어지는 흔한 소재이다. 하지만 신용목의 시에서는 흔하지 않은 표현법으로 흔한 소재들이 재해석되어 탄생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의 시를 읽을 때 익숙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를 읽으면서 시인이 창조해낸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각별한 감상의 맛을 즐길 수 있다.돌 하나 집어넣어도 / 짧게 몸, 열었다/ 금방 닫는 강물 / 말 없다-비명이 갇힌 푸른 멍 / (지난겨울 등에 찍힌 도끼자국은 어디에 숨겼는가)나그네처럼 / 발목 검게 적시고 선 / 나루, 사랑했고 / 사랑하며 사랑할 일들이 / 던지는 팔매마다 가는 손가락 / 여린 순으로 돋아 / 빈 손 저릴 때- 부분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 /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罪가 아름답겠다 /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갈퀴 / 하얀 독으로 스미는 罪가 나를 씻어주겠다- 전문시인의 시적대상을 새롭게 표현해내는 특별한 능력이 녹아있는 작품들이다. 에서의 화자는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있는가 보다. 돌이 날아가 물에 떨어지면서 수면 위로 파문이 이는 것을 보면서 이것을 강물이 몸을 짧게 열었다가 금방 닫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지난겨울 등에 찍힌 도끼자국은 강물이 얼었을 때 얼음 위로 그어진 금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시인의 상상력은 에서 더욱 돋보인다. 여기서는 하늘을 밤의 입천장으로, 별들을 뾰족한 잔 이빨들로 비유했다. 보통 별이라 하면 서정시에서 그리움이나, 희망 같은 감정을 표현해내는 훌륭한 매개체 역할을 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신용목 시인은 자칫하면 상투적인 소재가 될 수도 있는 별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표현해내는데 성공했다. 기존의 상투적인 표현들을 버리고 뾰족한 잔 이빨들을 별에 비유하고 있는데, 사실 이빨이라는 것이 별의 이미지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위의 시에서는 두 이미지가 적절히 잘 녹아들어 있고, 나아가 신선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별들이 반짝반짝 거리는 모양을 독사의 혓바닥이 날름거리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그 별빛을 하얀 독으로 보았다. 그리고 하얀 독, 즉 별빛은 나의 죄를 씻어주는 대상으로 승화된다. 시인의 독창적인 상상력에 기가 찰 정도이다. 이러한 독창적인 표현법은 타인을 보는 시각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그는 철제 뗏목을 타고 있다 먼 고향에서 / 발원한 한 가닥 지류를 타고 / (..중략..) / 그가 배운 것은 암벽타기였다 매일 아침 / 한 짝식 슬리퍼 장갑을 끼고 / 허공의 뼈를 유영하듯 타고 올라 쌍쌍의 / 검은 물고기떼를 노렸다 욕망을 거울처럼 / (..중략..) / 그의 뗏목에는 그 슬픔의 이름이 검게 쓰여 있다 / 구두수선 구두닦음- 부분허기가 허연 김의 몸을 입고 피어오르는 사발 속에는 / 빗물의 흰머리인 국숫발 / 젓가락마다 어떤 노동이 매달리는가 / 이국의 노동자들이 붉은 얼굴로 지구 저편을 기다리는, / 궁동의 버스종점 / (..생략)- 부분그는 말뚝에 앉아 고삐 / 끝에 힘을 준다 / (..중략..) / 우리를 나서 해가 지면 / 돌아오는 등 굽은 가축을 헤느라 / 손가락은 휘어졌으나 / (..중략..) / 우리마다 가죽은 마르고 / 이쪽 동에서 저쪽 동으로 / 푸른 잎은 몸을 뉘고 말뚝에 앉은 / 그는 고비 끝에 힘을 준다- 부분위의 시들은 각각 구두닦이, 외국인 노동자, 경비원을 소재로 하여 쓴 시들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시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소재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거치면 이러한 소재들도 새롭게 다가온다. 의 허봉수는 아마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시인은 그가 바닥을 기어가는 몸짓을 암벽타기, 혹은 유영하는 모습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또한 구두를 검은 물고기로, 구두냄새를 고향의 냄새로 비유한다. 구두닦이가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 그의 특별한 시각을 통해 철제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다니는 한 사나이가 있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에서는 이국 노동자들의 삶의 애환과 그들이 떠올리는 가족 등을 묘사한다. 에서도 시인은 경비원을 아파트 주민들을 보살피는 대상으로 본다. 그의 시 세계에서 주민들은 경비원에게 보살핌 당하는 가축으로 변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위의 시들에 나타는 구두닦이, 외국인 노동자, 경비원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의 시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바람의 이미지와도 연결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