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별다른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집이다. 그러나 옛날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머니와 결혼한 후 얼마 되지 안아서 집에 불이 나고 더욱 살기 힘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집 농사를 지면서 남의 농사까지 하셨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벌은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가고 1981년도에 누나가 태어나고 1985년10월31일에 내가 태어났다. 누나와 내가 태어나고서 아버지께서는 재활용품을 다루는 공장에 취직을 하셨다. 물론 농사일도 계속하셨다. 이런 가정에서 나는 지금 까지 자랐고 자라고 있다.내가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은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생각을 가다듬어 써내려 가겠다.나는 애기 때 사진을 본적이 있다. 가족들과 찍은 것도 있고 외가의 친척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애기 때라서 그런지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 중 생각나는 것은 몇 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내가 우유를 잘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데 요구르트는 잘 먹었는데 하도 요구르트만 먹어서 이가 다 썩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다닐 때 치과 가는 일이 대수였다. 이건 비밀이지만 이를 너무 마니 뽑아서 틀니를 끼고 다닌 때도 있었다. 어렸을 적엔 그게 이가 아파서 그런 줄로만 알았지만. 초등학교 때 나는 시골에서 형, 동생들 그리고 친구들과 뛰어 놀며 자랐다.봄엔 학교가 끝나고 나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 나와서 축구도하고 농구도 했다. 만화 할 시간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쌩 하고 달려갔다.대보름 전날에는 밥 훔쳐먹는 날 이라고 해서 저녁이면 동네 큰 나무 밑에서 동네 아이들과 모였다. 손에는 숟가락과 그릇 그리고 큰 바가지가 들려있었다. 옛날처럼 생활이 어렵진 않아서 밥을 훔쳐먹진 않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아주머니들에게 밥을 달라고 해서 큰 바가지에 모은 다음 그것을 비벼서 먹었다. 그것이 그 날 저녁 식사였다. 배가 차고 나면 우리 동네에만 있는 시내조 라는 숨박꼭질 비슷한 놀이를 한다. 편을 두 편으로 갈라서 한 팀은 숨고 한 팀은 찾는 게임이다. 막상 다른 사람이 들으면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일반 숨박꼭질 처럼 한곳에만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를 전 영역으로 돌아다니며 숨는 놀이다. 그리고 대보름 날이 오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산에 올라가 썩은 나무와 나뭇가지 그리고 큰 나무 몇 개를 개울가에 갔다 놓는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망울이를 돌리기 위해 장비를 만든다. 망울이는 흔히 알고 있는 쥐불놀이 이다. 저녁이 되어서 개울로 가면 제일 먼저 개울둑에 있는 풀들을 다 태워버리고 모닥불을 피운다. 모닥불 속에는 감자, 고구마, 밤이 들어있고 그 위에는 망울이 통이 올려져있다. 통속에는 썩은 나무와 나뭇가지들이 들어 있는데 그것에 불이 붙으면 손잡이를 잡고 돌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속에 불이 꺼질 때쯤 개울 쪽 하늘 높이 망울이를 던지며 그 해 소원을 빈다.여름이 되면 동네 아이들과 나는 개울로 가서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는다. 손으로 잡을 때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도구로 잡을 때도 있다. 그렇게 개울에서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께 매우 혼이 난다. 깨끗하지도 않은 물에서 수영을 한다고. 그래도 다음 날 이면 어김없이 개울가로 향한다. 밤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간다. 담력 훈련을 한다고 올라가는 것이다. 거기서 한 사람씩 산소가 있는 곳이나 다른 으스스한 장소에 깃발을 놓고 오는 것이다. 그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그 장소에 가면 깃발이 놓여있다.여름의 더운 날씨 때문에 학교에선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받고 몸도 푹 쳐져있다. 그래도 하교 길에는 기운이 넘친다. 하교 길엔 학교 앞 슈퍼에 가서 두 명이 50원씩 내서 100원으로 쌍쌍바 라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하나씩 나눠 먹는다. 여름엔 그 재미로 학교 다닌 것 같기도 하다.가을이면 동네는 분주해진다. 추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면 나도 어머니를 도와 추수하고 있는 곳까지 식사를 나른다. 동네 어른들은 나를 보고 착하다고 하지만 시골에 있는 아이면 누구나 하는 일일 것이다.추수가 끝나고 나면 동네 곳곳엔 넓은 들판들이 생겨난다. 거기서 우리는 야구를 한다. 논에 있는 짚을 이용하여 1루, 2루, 3루, 홈을 만들고 자리 배정을 한다. 그리고 나면 시간이 가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놀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을이 진다.겨울이 되어 날씨가 쌀쌀해 지면 동네 어른들은 개울둑을 막아 논다. 그러면 개울물이 얼어붙어서 빙판이 되고 우리는 그 위에서 하키도 하고 썰매를 만들어 타기도 한다. 눈이 오면 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따라 눈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하고 동네 회관 앞에 큰 눈사람도 만들어 놓는다.이런 생활을 하다가 6학년이 되어서 청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시골에서 있다가 도시로 나오니 신기한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었다.청주 생활에 적응하면서 중학교를 갔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별다른 일없이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집에 오는 것이 일이었다.
나의 가족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라 하면 나도 그렇듯 누구나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가족의 역사, 이것은 조상님들과 같은 피를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했는지 어떤 소중한 일을 남기셨는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 이제부터 나의 가족의 역사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내 성은 황씨다. 창원 황씨의 26대 자손 중에 하나이다.내가 알기로 황씨를 성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부 친척이라고 들었다. 옛 날에 성이 황씨인 형제 셋이 있었는데 그 분들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나아서 지금에까지 와서 그렇다고 한다. 그 세분 중에 한 분이 나의 시조이신 황 안아공이다. 이분에 의해 뿌리내린 사람들이 바로 나와 직접적으로 피를 이은 친가 사람들이고, 다른 두 분에 의해 뿌리내린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먼 친척이라고 말하겠다.그럼 나의 친가 사람들에 대해 먼저 말을 하고 다른 친척들에 대해서 또한 말하겠다.나의 친가 사람들에 대해 말하려면 가장 가까운 가족을 먼저 말을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생각한다.나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이렇게 4식구이다. 아버지는 창원 황씨 25대 자손이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김해 김씨의 자손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한 분이시다. 누나는 나와 같은 창원 황씨 26대 자손이고 나를 가장 아껴주고 챙겨주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예전에는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내가 중학교 2학년 초에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 항상 예절에 대해 가르쳐주시고 지도해 주신 분이다. 할아버지의 말씀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형제와 항상 우애있게 지내라는 말이였다. 누나와 자주 싸우고 그래서 그런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데 그 속뜻은 나중에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다. 나중에 힘들 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친구도 있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형제지간이라고...예전에는 몰랐지만 커가면서 그 말에 동감을 하고 있다. 아직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더 커감에 따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할머니를 뵌 적이 없다. 할머니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아버지가 초등학교 때 할머니가 아프셔서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이 전부다. 나는 친구들 집에 놀러갔을 때 할머니께서 집에 계신 것을 보면 그 이유 하나로 나도 할머니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황씨에 대해서 생각하면 처음으로 생각는 누구나 그렇듯이 바로셀로나 마라톤 금메달 리스트인 황영조 선수와 황희 정승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에 대해 黃氏中央宗親會에서 적은 책의 내용을 몇 자 적어보겠다.● 황영조제 25회 바로셀로나 올림픽의 마지막 경기 남자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孫基禎옹이 안겨준 감격을 56년 만에 재현해 낸것이다. 黃永祚宗親이 결승 테이프를 끊고 기진맥진 상태에서 트랙에 쓰러지는 순간, 한국마라톤계에 오욕과 회한의 과거를 딛고 다시 힘차게 일어났다.이번 마라톤 경기는 「올림픽의 꽃 중에 꽃」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한판의 멋진 드라마였다. 쥐가 오른 다리의 통증도 잊은 채 아테네병사가 승전보를 전하고 쓰러진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이번 바로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우승 금메달에 실려있는 그 많은 한과 눈물, 환희와 가능성이 그 이외의 방법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자맥질하던 어머니 모습 떠올라가난 떨쳐버리기 위해 달렸다.그 같은 복합감정은 黃永祚종친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60만 종친과 온 국민의 것이기도 했다. 또 그것이 바로 우승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한과 눈물을 머금고 환희와 가능성을 향해 뛴 것이다. 때문에 黃永祚종친의 이번 금메달은 다른 어떤 종목의 금메달보다도 더 높이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일본의 모리시다와 최후의 순간까지 각축을 거듭하다 따낸 것이어서 더 큰 상징성을 가진다. 黃永祚宗親의 금메달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의 황금빛을 56년 만에 되찾아 주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다.孫基禎옹 개인의 한풀이이자 우리 모두의 한풀이이기도 했다. 특히 黃永祚종친에게 끝없는 승부사적 추진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은 곤궁했을 당시 어머님의 모습이다. 생계를 위해 차가운 바닷물에 자맥질하고 나오는 어머님의 새파래진 얼굴을 黃永祚종친은 항상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번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우승한 뒤 가진 기자회견서 골인후 쓰러진 까닭을 묻자「고생만 하신 어머님께 금메달 바치게 됐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근육마비가 왔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라 黃永祚종친은 각종대회에서 우승할 때마다 가장 먼저 어머님에게 영광을 돌리곤 했다 한다.黃永祚宗親(선수)은 2男2女중 장남으로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초곡리 243번지에서 1970년 3월 22일 출생하였다.●황희(黃喜) 정승1363년 ∼1452년 『고려, 조선』문신, 초명은 수로, 자는 구부, 호는 방촌, 본관은 장수, 판강릉부사 군서의 아들로서 개성 가조리에서 출생하였다.공은 출생할 때부터 천품이 비범하였다. 송경 송악산(松嶽山)에 있는 용암폭포는 물줄기가 무지개 같고, 아무리 대한이 들어도 한 번도 물이 끊어진 일이 없었다. 그런 폭포가 공을 회잉한 그 달부터 흐름이 끊어지더니 공이 출생하자 폭포수가 다시 전과 같이 흘러 내렸다 한다. 이런 연유로 세상 사람들은 『공은 산천정기(山川精氣)를 타고 났다.』고 말하였다. 공은 어릴 때부터 총민(聰敏)함이 절륜(絶倫)하고 보는바가 명철하여 식자들은 『장차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고 한다.한국황씨중앙종친회(韓國黃氏中央宗親會)에서 나온 책자에는 황희(黃喜) 정승에 대한 유사가 9개 정도 있는데 그 중 몇가지만 소개해 보겠다.·유사(遺事) 一.공이 임종시에 가동이 공에게 묻기를 『대야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저희들은 무엇으로 생계를 하오릿까?』하고 물은즉 공의 말슴이 『공작도 날 거미줄을 먹고사는데 사람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하고 대답하였다.그 후 명나라에서 공작을 우리나라에 보내어 잘 사육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보는 새라 무엇을 먹여서 키워야 할지 몰라 조정에서 당황해 하였다.조신이 공의 집에 찾아와서 하는 말이 『공이 임종할 때 어떤 유언이 없었는가?』고 물었다. 가동이 공의 유언을 그대로 전하였더니 그때부터 공작에게 날 거미줄을 먹여본즉 사료에 적합하였다. 그 후 왕명으로 가동에게 상을 주었다 한다.이러한 일은 공이 오십여년을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청렴한 생활로 일관함과, 미물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유사(遺事) 二.공이 일찍이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어 서도지방을 순찰는데 길옆에서 노농(老農) 한 사람이 한 쟁기에 소 두 마리를 함께 메워서 밭을 갈고 있었다. 공은 그 고을 원의 사람됨을 물으려고 했으나 끄집어 낼 말이 어색하여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 길가에 앉아서 그 농부에게 말을 건넸다. 『그 두 마리 소 가운데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하느냐?』하고 물었더니 농부가 쟁기를 놓고 , 가까이 와서 공의 귀에 입을 대고 하는 말이 『왼쪽 소가 일을 더 잘 합니다.』라고 말하였다.공이 웃으면서『왜? 그렇게 작은 말로 하느냐?』하고 물은즉 농부가 하는 말이 『저것이 비록 짐승이지만 그 장단점을 그 면전에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다. 공이 그 말을 듣고 『그 미련한 소가 어찌 자네 말을 듣고 알겠느냐?』하고 말한즉, 농부가 하는 말이 『비록 무지한 미물이라도 그래서는 안되거늘 하물며 지각 있는 소가 어찌 사람의 말을 모르리요.』하였다.공은 경외한 마음으로 반성하면서 말하기를 『자네 말이 아니었다면 내가 경박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내가 자네 말을 약으로 삼아 내 병을 고치겠다.』고 말하였다. 공은 그 날부터 남의 허물은 말하지 아니하였다.사람들이 말하기를 공의 넓은 아량은 암행어사(暗行御史)때에 얻은바 카다고 하였다.·유사(遺事) 三.공이 젊은 시절에 하루는 어떤 점쟁이가 공을 보고하는 말이 『작위는 이상에 불과할 것이오. 수는 七十에 불과하리라.』고 하였는데 그 후 공이 六四세에 입상하여 수가 九○에 이르니 그 점쟁이가 말하기를 『내 점이 백에 한 사람도 틀림이 없는데 유독 공에게만 틀릴 리가 없다. 만일 틀린다고 하면 공은 반드시 음덕을 베푼 이 있을 것이외다.』라고 하는지라 공이 답하기를 『그런 일은 전무하다.』고 한즉 점쟁이 말이 『다시 한번 잘 생각하여 보십시오. 공께서 음덕을 베푼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저를 위하여 숨기지 마시옵소서!』하는지라, 공이 말하기를 『내가 남에게 음덕을 베푼 일은 없으나 젊어서 시문을 걸어서 지나가는데 땅에 물건이 떨어져 있기에 주워서 열어보니 그 속에는 금잔이 들어있는데 그 생김새를 보아 결코 백성들의 물건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곧 방을 써서 붙이기를 모월 모일 모시에 어떤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은 모가에 와서 찾아가라!』고 써 붙였다.
1. 프랑스의 지리적 모습지리적으로 프랑스를 말하면 우선 유럽을 생각하게 되고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도 파리하면 유행과 패션의 고장이라는 것과, 머리 속에 에펠탑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막연히 생각할 수 있는 프랑스이지만, 실제로 프랑스는 파리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파리는 프랑스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파리가 프랑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파리는 모습이나 외모에 있어서도 다양하면서도 하나로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런 모습이 프랑스의 지리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프랑스의 지리적 형세국토 면적이 약 552,000㎢인, 프랑스는 면적으로 보면 서부 유럽 국가들에서 가장 큰 국가이며, 유럽 전체로써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국가이다. 흔히 프랑스 지도 모양을 막히지 않은 6각형의 전형적인 모양으로 나타내는데, 그것은 자연적이고 정치적인 국경에 의해 외부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우선 바다와는 3개의 해안, 즉 영불해협, 대서양 그리고 지중해 쪽으로 해안이 제각각 열려 있고, 산맥과 산으로 내재해 있는 두 개의 내륙인 이베리아 반도와 유럽 대륙으로는 육지가 열려있다. 그리고 사방으로부터 통로가 뚫린 쥐라산맥과 알프스산맥은 프랑스를 스위스나 이탈리아로 근접하고 있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피레네산맥은 아직도 통행에 장애물로써 존재하며 프랑스를 이베리아 반도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다.·큰 강과 수로나무가 무성한 빽빽한 산과 더불어 프랑스 수로망은 프랑스를 강과 하천의 국가로써 프랑스 전역을 덮고 있다. 프랑스의 네 개의 젖줄인 세느 강, 루아르 강, 가론느 강, 론느 강은 프랑스 영토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놓고 있다. 이 강들은 각각 복잡한 유수량을 가졌지만, 그 동안 프랑스 사랑들에게 의해 잘 길들어졌고, 교통의 필요와 에너지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운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그래서 지금의 이 강들은 대부분 이 강들의 원래 자연적이고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모습은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결국 오늘날은 물 수량의 공급을 조절하는 관리 감시 체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적 추세가 그러하듯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 산업발달에 따른 환경 오염으로 이 강들을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 당국은 물의 수질 감시는 물론 환경 오염으로부터의 모든 원인을 차단하는데 힘을 기울여 나가고 있는 실정이 되고 말았다.그밖에 수많은 강들이 이 같은 프랑스의 주요 강으로 이루어진 수로 망을 보조하면서 여러 저기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북해와 대서양쪽의 강들로써 솜므 강이나 오른느 강은 겨울의 높은 고지의 물을 흐르게 하면서 비 많이 오는 해양적인 특징을 가진 지역의 강물로써 홍수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지중해의 오드 강, 에로 강, 테 강 등은 두 계절마다 다른 형태의 범람을 가진, 즉 봄에는 눈 녹음으로 유발되고 가을에는 비바람에 의해 유발되는, 급류성 특징을 가지고 있는 강들로써, 지역 범람을 미리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2. 프랑스 사람들과 프랑스 사회·프랑스인의 사회 생활상과 사고 방식프랑스 말에는 작은 자기 집이 다른 사람의 큰 집에 사는 것 보다 더 낫다 라는 말처럼, 그들의 주거, 특히 단독 주택의 주인이 되기를 꿈꾸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주택 문제는 항상 골칫거리다. 물론 최근에 수많은 개인 저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자기집 소유는 많은 프랑스 가정의 목적이기도 하며, 오늘날 그런 그들의 목적은 현실로 되어 가고 있다.프랑스인들은 스포츠 감상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들이 야외에서 서로 만날 때는 특히 경기장 의자 좌석에 앉아 럭비팀의 광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일 것이며, 축구 역시 큰 열정을 프랑스 사람들에게 야기시키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그들 여가 일부분을 축구로 즐기고있다. 축구와 럭비 다음에는 자전거 경기가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야구나 농구는 없다. 미국을 모방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쿠바 등에서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여름의 큰 스포츠 행사의 하나가 된 자전거 경기인 투르 드 프랑스 때는 길을 따라 어김없이 떼를 지어 구경하는 군중이 따라오는 경기가 되었으며, 길가의 군중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열심히 보는 그런 경기가 된 지 오래이다. 거기다가 텔레비전을 통한 이런 경기나 시합들의 재방송 또한 프랑스 사람을 열광시키고 있다.·프랑스 사회 계층 구조프랑스 사회는 각 사회 계층간에 폭넓은 불평등으로 특징지울 수 있는 아주 계층화된 사회로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준을 따라 삶의 양식과 계층간의 문화적 차이를 참조해야만 알 수 있다.19세기에 프랑스는 두 개의 큰 사회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나는 소유 계층인 부르주아 계층이고, 또 다른 계층은 보통 국민으로써 소위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는 무산계급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부르주아라는 용어가 실질적으로 지배 계층 전체를 포함하게 되었으며, 부르주아와 귀족 계층의 구별이 희미해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결혼으로 결합하기도 하고 같은 교육을 받으며 같은 삶의 양식을 나누게 되었던 것이다.그래서 오늘날은 출생과 연관된 법규적 범주에 근본을 둔 것이 아닌, 경제적 기준으로 사회의 새로운 균열을 깨닫기 위해서, 사회계층이라는 용어를 다시 새롭게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용어의 사용이 일반화되고 만 것이다.결국 이런 사회적 계층 개념이 지금까지 내려와 요즘의 사회계층이라는 개념은 수입뿐만 아니라 교육 수준, 삶의 방식, 권력이나 문화 수준의 관계로 특징 지워지는, 희미한 한계로 사회학자들에 의해 사회 그룹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이다.3. 프랑스인의 문화생활·일과 후 여가 선용여가에 대한 앙케트에 의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여가로써, 자유시간의 40%를 텔레비전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 시청을 여가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너무 텔레비전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그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또한 여가 활동을 위해 여가 활동 장비, 즉 텔레비전, 비디오, 전축, 디스크, 컴퓨터 등에 예산을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그리고 문화적 활동에 있어서 프랑스는 세계적으로 문화에 있어서 다양성을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는 일부 문화 공연 관람에 있어서 대중화는 실패를 했다. 그래서 비록 여가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진척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70%의 프랑스 사람들은 고전 음악 콘서트에 결코 가지 않으며 춤 같은 공연을 보러 가지 않는다고 조사되어 프랑스 사람들은 음악적인 면은 다소 낙후된 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프랑스인들의 여가로 즐기는 것은 독서, 영화와 공연 관람, 스포츠와 경기 관람이 있으며 심지어는 잡일도 여가로 보고 있다.·한 달 이상 바캉스를 즐기는 프랑스 사람들아직 우나 나라에서 휴가는 명목상 있을 뿐, 실제로 한 달 이상의 여름 휴가를 가지는 사람은 학생들과 학교에 교직을 가지고 있는 교사나 교수들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모든 직장인들은 한달 이상의 휴가를 보낸다.그래서 요즘에 프랑스 사람들의 70% 이상이 한해에 적어도 한번 이상은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물론 휴가를 떠나는 횟수도 각자의 직업이나 사회적 처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농부들은 4명 중 단지 한 명 꼴로 휴가를 떠나며, 노동자들은 2명 중 한 명 꼴로 그 빈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고위 간부들과 그의 가족들은 모든 가족 구성원이 휴가를 즐기러 떠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보다 더 많이 휴가를 떠나고 있다.대부분은(약 81%) 그들의 바캉스를 프랑스에서 보내고 있으며, 그들이 선호하는 곳은 태양이 있는 곳으로 수영할 수 있는 곳, 그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곳을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절반 정도가 바다로 가며, 22%가 시골로 그리고 13%의 정도가 산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그 박의 사람들은 여행 삼아 국내를 돌고 있다. 그리고 잠자는 거처는 거의 절반 이상이 부모 집이나 아니면 친구 집 또는 별장에서 지내게 된다.4. 프랑스인의 직장생활·노동법과 근로 조건기업이 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프랑스에서는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고용 계약은 고용 기간이 정해진 계약 (CDD)과 고용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계약 (CDI)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근로 조건이 명문화되어 있든 안되어 있든 간에 계약에는 고용주와 봉급자인 고용인을 위한 권리와 의무가 내포되어 있다.한편 해고는 일부 규정에 따르게 하고 있다. 그래서 고용주가 해고의 이유를 정확하게 명시한 사전 통고를 등기 우편으로 미리 보냄으로써 당사자가 해고될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고용주는 해고당할 사람이 기업에 머문 기간을 계산해 보상금과 임금을 지불해야 된다. 해고당할 봉급 생활자 역시 그의 적장을 떠나기 전에 사전 해고 통지내용을 존중해야 하며, 프랑스에서 이 사전 통고 예고 기간은 노동자들에게는 일반적으로 8일, 사무직 고용인은 한달, 간부는 3개월로 고정되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어머니, 아버지께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시간이면 저는 아마 곁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 밝은 빛을 보며 건강히 키워주신, 세상 누구보다 저를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저의 이런 글을 부모님이 먼저 읽기에 너무나 불효했던 저의 모습들이 후회스러운 기억들로 남아있어 더더욱 가슴이 아려옵니다. 함께 했던 시간들 중에는 너무나 무심히 넘겨왔던 일들이 지금에와 이처럼 후회가 되는지, 저의 작은 상처까지 감싸주시던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잘하고 싶었는데 잘한 게 없네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하라고 늘 상 주위에서 그랬지만 효도는커녕 부모님의 두 눈으로 떠나는 제 뒷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불효까지 드리고 가니 너무나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항상 무기력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늘나라가 정말 있다면 착한 천사가 되어 부모님이 하시는 일들 모두 잘 풀릴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몸이 비록 먼저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저를 거친 세상 속에서 따뜻하게 방패막이 되어주신 부모님의 사랑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떠나갑니다.누나, 내게 하나뿐인 누나. 누나한테는 미안하다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온다. 거의 매일같이 짜증만 부리고 화냈었는데 그럴 때마다 누나는 속으로 참으며 이해했었지. 아마 화도 많이 나고 그랬을 텐데 이제 와서야 누나에게 미안해진다. 근데 누나 그거 알아? 누나 앞에서는 누나를 미워하는 거 같고 귀찮아하는 거 같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누나 자랑하고 다닌다. 우리누나 엄청 착해 , 누나가 엄청 잘 해줘 라고 말이야. 지금까지 누나가 나한테 해준거 내가 받아온거 다시 돌려주고 싶었는데 그게 안되네. 부모님이 나를 누나 동생으로 낳아 준걸 내가 얼마나 감사하는 줄 알아? 그만큼 내가, 누나 동생이란 것이 좋았고 행복했어. 그리고 누나한테 항상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누나 고마워 그리고 고마웠어. 나는 다음 세상에서도 누나 동생으로 태어나고 싶어. 그땐 이제까지 내가 받아왔던 것 보다 더 많이 누나한테 해주고 싶거든. 누나 이거 보면 다음 세상에도 다시 내 누나로 태어난다고 약속 해줘. 알았지?누나, 나 대신 부모님 잘 부탁해. 그리고 미안해.질투와 시기로 가끔씩 멀리했던 내 친구들. 못되게 굴어도 단 한번 화낸 얼굴 보이지 않고 말 그대로 친구 로서 내 옆에 있어 주어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가끔은 나에게 편리한 쪽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했었던 것 미안하고 또 미안해. 너희들이 있어서 내 삶이 더욱 재미있었고 보람있었나봐. 살아오면서 가족만큼이나 많이 함께 했던 너희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지금 대학교 친구들. 너희들과 함께 했던 일들이 평소에는 생각도 잘 안 나더니 이제야 하나씩, 하나씩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 우리 산에서, 개울가에서 그리고 들판에서 뛰어 놀고 그랬는데. 우리 여름엔 개울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물놀이도 하고 그랬는데. 그리고는 집에 가서 많이 혼났지. 더러운 물에서 물놀이한다고. 가을엔 추수한 논에 가서 야구도 하고 축구도 했지. 겨울엔 산에서 눈썰매 타고, 꽝꽝 얼은 개울에서 스케이트도 탔지. 그때만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나나 너희들이나 별로 놀지도 못했지. 학교에서 공부하랴 학원 가서 공부하랴 참 바빴는데. 그래도 선생님, 부모님 눈 피해서 게임방도 가고 오락실도 가고 그랬지. 그 땐 참 재미있었는데. 내일이면 그런 재미조차 못 느끼겠다. 대학교에 와서 사귄 친구들아 너희와 서로 알게 된지는 얼마 안됐지만 그 전에 사귀었던 다른 친구들처럼이나 정이 가고 함께 하고 싶다. 스포츠레저학부 04학번 동기라는 이유로 다른 과 보다 더 하나였었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는 우리. 그런 너희들과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내일이면 끝이구나. 잠깐이었지만 너희들과 함께 지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인연이 있으면 다음 세상에서 만나겠지. 나는 너희들 모두와 인연이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들아 다음 세상에서 또 한번 친구로 지내자.미애야. 이렇게 네 이름 불러본지도 오랜만이다. 너랑 사귈 때는 참 많이 불렀었는데. 죽기 전에 편지를 쓰다보니까 네가 생각나더라. 사귀고 있었을 때나 지금이나 내가 널 많이 좋아하나 보다. 너 그거 생각나? 우리 친한 친구였을 때 내가 다른 여자한테 바람맞아서 시무룩할 때 너 새벽에 나와서 나 위로해줬던거. 추운 겨울인데 나와서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고 축 처진 내 어깨를 다시 피게끔 해줬지. 그리고 너랑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대학오기 전 날 너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백했었는데. 그 다음 날이 되서야 좋다 는 말을 들었지만, 나 그 어느 때 보다 기분 좋았다. 나를 좋아해 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좋았고, 네가 있다는 이유하나로 좋았어. 3달도 안 되어서 헤어지기는 했지만 그 안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너랑 같이 손잡고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그 어떤 연인들의 남자들보다 좋았고 부러울 게 없었다. 그리고 사진도 찍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드라이브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자는 말에 내 기분이 어땠는 줄 알아? 화도 치밀어 오고, 배신감도 느껴졌지만 그보다도 미안했어. 내가 얼마나 잘해주지 못 했기에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까 하고. 그리고는 다시 생각해달라고 너한테 찾아갔었지. 알았다고는 했지만 얼마 못 가서 다시 헤어졌지. 아직도 나는 왜 네가 헤어지자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렇든 저렇든 이제 그런 것은 아무 필요 없어. 내일이면 너를 생각하고 싶어도 생각할 수 없고, 보고싶어도 볼 수 없으니까. 그런데 미애야, 확실한 것은 아마 저 세상에서도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을 것 같다는 거야. 그만큼 널 좋아했기에…. 만약에 다시 태어나서 이런 기회가 온다면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쉽게 놓치지 안을 꺼야. 그 여자가 다시 너였으면 좋겠다. 그땐 네가 떠나지 안도록 잘해줄게 미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