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선까치산 : 봉제산(매봉산) 일대에는 예로부터 까치가 많이 서식하였으나 화곡동 개발계획에 따라 봉제산 중턱까지 주택이 들어서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봉제산 일대의 까치들이 갈 곳이 없어지자 비교적 늦게 개발된 이곳 까치산(해발 73.5m)으로 몰려들게 되어 까치산이라는 산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여의나루 : 옛날 마포와 여의도를 잇는 나루터가 마포와 여의도 동쪽에 형성되어 교통을 원활하게 하였으나 한강다리 건설로 없어졌던 여의나루터에 1986년 유람선 선착장이 개장되었다. 여의나루 역명은 여의나루터 옛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다.애오개 : 애오개는 “작은 고개” 또는 어린애와 관련이 있는 고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만리현과 서북쪽의 대현이라는 두 큰 고개 사이에 있는 작은 고개라는 의미에서 아기고개, 아이고개, 애고개, 애우개로 호칭되었음광나루 : 도선장으로 강폭이 넓은 곳에 나루가 있다하여 얻어진 이름이며 너분나루라고 불려졌다. 옛부터 강원?충청 등지의 광물, 목재 등의 주요 운송로로 이용되었고 행인과 상인이 한양으로 들어가는 교통요충지로 고려조에는 이곳에 수참을 설치하였음. 1936년 광진교가 세워지면서 나루터의 기능을 잃게 됨굽은다리 : 당말이란 마을과 벽동이란 마을을 잇는 다리가 굽어있어 굽은다리라 불렀다. 두 마을을 합하여 굽은다리의 이름을 따서 곡교리라 하였다.6호선독바위 : 독박굴은 독바위굴의 줄임말로 독바위굴의 바위가 독(항아리)과 같다해서 붙여진 지명이라는 설과, 유달리 바위가 많아 숨기 편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있다. 다른 일설에 의하면 인조반정 당시 일등공신이었던 원두표 장군이 거사 직전까지 숨어 지내던 덕바위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연신내 : 옛날 이곳은 산골이었지만 한성부의 관할구역으로서 연서역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연서역은 조선초에 영서역이라고 칭하였는데 인조반정때 상단부사 이서가 이곳에 늦게 합류했다하여 영서역이 연서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흔히 이곳을 연신내라고 하는 것은 연서천을 이처럼 부르고 있는 것이다.새 절 : 새절은 신사의 한글 명칭으로 새절은 언제 어느 장소에 있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새절이 있었으므로 해서 유래된 명칭이다.버티고개 : 한남동에서 약수동으로 넘어가는 다산로(茶山路)고개를 버티고개라고 하는데 옛날 순라군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라 하며, 도둑을 쫓았으므로 번티(番峙)라 하다가 변하여 버티고개 또는 한자명으로 부어치(扶於峙)가 되었다고 한다.돌곶이 : 마을 동쪽에 있는 천장산의 한맥이 검정돌을 꽂아 놓은 즉, 수수팥떡 경단을 꼬지에 꿰어 놓은 것 같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돌곶이 마을이라 부른데서 유래하며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여 석관동(石串洞)이라 함.7호선마 들 : 예전 상계동에 역참기지가 있어 말들을 들에 놓아 키웠기 때문에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과 상계동 일대가 삼밭이어서 순우리말인 마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먹 골 : 먹골은 조선시대 먹을 제조하여 붙여진 묵동이라는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라고도 하며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먹을 이 마을의 이름으로 붙여야 학문이 발달할 것이라는 필기설에 따라 정해졌다는 설이 있다.뚝섬유원지(뚝섬遊園地) : 옛날 살곶이들이라고 하였으나 80년대 한강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연면적 547,000㎡(16만6천여평), 연인원 200만명의 시민이 이용하고 있는 뚝섬유원지가 있어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