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윤*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4
검색어 입력폼
  •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읽고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읽고그레이크 볼롬버그 지음“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읽고.hwp4“ 그레이크 볼롬버그의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읽으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공관복음을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냥 주입식으로 성경은 정확무오 한 것이고, 성경을 읽는 사람은 거의가, 특히 복음서를 읽을 때에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복음서를 읽을 때 저자가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여 알리려고 시도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서를 읽어보면 생생하면서도 잘 정돈되어 있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볼볼수 있다. 특히나 누가의 분명한 표현을 보면 이야기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모든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는 서술을 읽으면 더욱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연구할 때에 이러한 인상과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꼼꼼하고 비평적인 분석은 피해가려는 경향이 있다.공관복음이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해서 역사적 신빙성에 대해서 본서를 읽으면서 기대 했었던 것은 아마도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이라는 제목으로 인하여 많은 역사적인 증거와 함께 ‘입증자료’가 풍부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아직 공관복음 문제(Synoptic Problem)는 복음서를 설교해야 하는 목회자들에게는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본서를 통하여도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복음서의 연구 방법으로 역사적으로 있어왔던 두 문서 설, 또는 마가복음 우선 설, 큐 자료 설 등 여러 가지 가설(假說)들과 제안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제안들은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기 보다는 논쟁의 불씨를 각 주장마다 일으키는 역사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논쟁 속에서 새로운 제안은 없고, 낡은 자료가 반복 사용되어지고 진부한 주장과 유사한 답변만 계속되고 이러한 와중에 공관복음의 문제는 연구의 대상에서 점점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우리는 그동안 복음주의적 프리즘 안에서 주입식, 또는 연역적인 바탕위에서 성경은 정확무오 한 것이고, 공관복음의 역사성이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해서 역사적 신빙성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의심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앙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건전하지 못한 신학적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에서 이 문제를 덥고 지나치려고 한 것이 사실이다실제로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정서로 보아서는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이라는 제목 자체는 크게 환영받을 만하지는 않다. 한국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보수적이다 못해 거의 근본주의라고 할 정도이다.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이라는 제목이 주는 어떤 느낌이나 생각은 ‘과연 복음서가 역사적으로 믿을 만한가?’하는 것이다. 얼마나 신뢰하고 받아들일 만한 역사적인 근거가 있느냐하는 것이다. 늘 들어왔던 교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정확 무오하며, 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믿을만한가 하는 질문을 받게 되면 없지 않아 거부 반응이 보는 것이다.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편이다. 복음서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도 잘 인식을 하지 못할뿐더러, 혹시나 차이가 발견되더라도 그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믿으면 된다는 태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순수하게 신앙을 잘 지켜 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많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내용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실제의 삶에 유익만 있으면 되고,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에 신앙은 지성이 결여된 채로 맹목적인 신앙이 되거나, 미신적이 되며, 지나치게 주관적이 되어 가는 것이다.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창조과학회의 사람들이나 여러 기독 단체의 태도를 보면 객관적이고 비평적인 태도로 명확히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 발견하기보다는 보수적인 경향으로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서 더 깊은 연구에까지는 나가지 못함을 보게 된다. 거의 이단이나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듯한 진보적인 성향을 만나게 될 때에 그 도전 앞에서 거저 방어적인 태도로 우리의 가진 것을 옹호하는 데에 바쁜 모습만 보게 된다.우리가 가진 이 복음서가 정말 신뢰할만한 것이라면 여러 도전들 앞에서도 분명하게 진리로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그 진리가 깨어질 것 같은 위기감을 가지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던 간에 철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서 복음서가 진리라는 것이 드러날 것을 확신한다면 이런 도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복음서는 이러한 조사들을 훌륭하게 견뎌낼 수 있다. 역사적 조사를 통해 복음서의 내용이 보증되지 않을 경우 전통적인 믿음을 버려야만 한다는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이 책은 이렇게 성경을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역사적으로 분석하게 된 이래로 복음서의 신빙성에 대해서 도전을 받아 온 이후로의 성경 연구 방법을 소개하면서 이 복음서가 과연 믿을만한가를 보이고 있다.ⓐ 과거 18세기 동안의 전통적인 복음서 접근법들을 소개하면서 초대 교회로부터 문예부흥이 일어나기까지 복음서에서 발생하는 제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를 먼저 소개한다. (복음서의 역사성에 대한 논의는 일치와 모순점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다루어 왔던 양식 비평, 편집 비평, 미드라쉬 비평 그리고 최근의 해석학적 발전에 의하여 구조주의와 사회화학적 방법 등으로 접근 해 왔었음을 1장과 2장에서 서술)그리고 나서는ⓑ 복음서 연구의 새로운 방법들이 다양하게 일어났는데, 차례대로 양식비평, 편집비평, 등과 최근의 발전된 새로운 해석학의 방법들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복음서의 신빙성이 있음을 보이기보다는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믿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 절하한 것들이다.(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에 대하여 과학적, 철학적, 역사적 이유로서의 신빙성 문제를 3장에서 기적을 통해서) 그러면서ⓒ 공관복음 사이의 여러 모순점들, 즉 신학적인 문제, 사용된 언어와 문학적인 기법들, 그리고 연대기의 문제, 중복되기도 하지만 서로 생략된 부분들, 인명과 지명, 숫자 등의 부분에서 모순점들을 보이고 있다. (방법론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문에서의 문맥과 단어와 이름과 숫자와 인명과 지명 등의 구체적인 부분과 사례를 들며 4장을 통해 공관복음 사이의 모순점들을 구체적인 사례를)그리고는ⓓ 요한복음의 문제도 간략하게 소개를 하는데 공관복음과의 유사점과 모순으로 여겨지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요한복음과 공관 복음과의 상호 관계성을 5장에서)그리고ⓔ 성경자체 자료 이외에 예수에 대해서 전승되어오는 여러 자료들을 다루면서 (복음서 이외의 예수 전승에 대해서 많은 역사적 자료와 바울 서신과 신약 성경을 들어서 이야기 함) 마지막으로ⓕ 복음서의 양식에 대해 그리고 복음서 속의 특정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평가하는 방법론에 대해 결론적으로 고찰하고 있다(복음서의 여러 가지 문학 양식에 대한 입장과 함께 입증 책임 그리고 진정성에 대해서 폭넓게 서술)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이 확실한 방향으로 더 많은 결론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앞으로의 시대는 더 많은 도전이 있을 것이기도 하이 든다. 포스트모던이라는 사회에 살면서 절대 진리는 없다고 외치며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며, 모든 권위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이때에 계속해서 본문을 해체하고 분해하는 시도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두려워하거나 뒷걸음칠 이유는 없다.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빙거이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빙거일 뿐이다.
    인문/어학| 2019.01.09| 4페이지| 5,500원| 조회(260)
    미리보기
  • 변증학레포트
    The Defence of the Faith by Cornelius Van Til변 증 학1. 들어가는 말기독교 변증학(Christian Apologetic)이란 무엇인가? 불신 세상 앞에서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주장하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에 대하여 참 지식을 가졌다는 주장을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변호하는 지적인 작업이다. 또한 좁은 의미에서 「변증학」이란 개인의 신앙의 변증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 기독교의 교리, 신앙, 그리고 성경에 주어진 계시에 대한 공격에서 답변하는 것이다. 회의론자들과 불신자들의 공격에 대해서 기독교 신앙과 성경과 주어진 계시를 변증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며, 성경에 주어진 사실들, 하나님의 계시의 합리성, 그것으로 영적필요를 온전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충족성에 대한 적극적 진술을 성경에 의지해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변증학」은 소극적, 변호적일 뿐만 아니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하나님과 성경에 대하여 변증한다는 것이 신앙과 믿음을 가진 나로서는 참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독교 「변증학」이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에 대한 진리에 대해 더욱더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 이 학문은 신학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기독교 「변증학」은 세상 앞에서 기독교 신앙의 진리주장, 특히 살아계신 참 하나님에 대하여 배타적인 참 지식을 가졌다는 주장을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변호하는 지적인 노력은 소극적이며 변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작업이기도 하며, 복음을 변증하는 데에만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데에도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코넬리우스 반틸의 「변증학」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에 대한 복음의 변호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기독교 변증학의 중요한 인물인 코넬리우스 반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 변증에 있어서 개혁주의에 지대한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린스턴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승천하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성경의 그리스도를 전할 때에, 그것이 불신자들에게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와 그가 하신 사역에 대하여 말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이 우주의 유래는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성경은 우리들에게 역사 자체를 제공 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이해 할 역사 철학도 제공하고 있다. 즉 성경의 다른 부분, 즉 성경이 물질적인 우주 등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분리해 내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거부 했을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기에 우리는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의 체계 바로 그것을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세계관과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인 패러다임이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등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가지고 갈 때, 마음대로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거나 가감하기도 한다. 즉 로마가톨릭의 절충적인 변증학적 방법론은 자연인을 구원하고, 나아가서는 자연인의 문화까지도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생각과 삶에 강력한 도전을 가 할 수 있는 그리스도가 결여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개신교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어떠한 상태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며, 또 자신이 무엇을 행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는지를 철저히 깨달음으로써 자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마음껏 찬양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타협되고 가감된 변증은 자연인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 위에 이 시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저자의 이 중요한 책을 읽고자 하는 요청은 끊임없이 계속 되었다. 저도 또한 이 책을 학부 때 조직신학 강의를 통해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어 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배우다 보니 조금씩 납득이 가게 되었고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이 되었다. 또한 이 변증학은 저자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이라 생각이 된다. 또한 코넬리우스 반틸 박사는(Dr. Cornelius Van Til)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변증학 교수로 1929년부터 1976년까지 봉직을 하였다. 또한 화란에서 출생한 반틸 박사는 칼빈대학(Calvin College)과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반틸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들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라고 말하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말씀을 기초로 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창1:1; 요1:14;계4:11)등에 관한 교리와 죄(창 3:17; 6:7; 렘 17:9; 고전2:14;유1:7등)에 관한 교리 그리고 구속(마18:11; 20:26-29; 요3:5-8; 행4:10-12; 계2:1-4; 19-21등)에 관한 교리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본서는 ‘전제와 일관성’의 변증 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철저하게, 전제와 일관성이라는 두 용어로써 성경 주의적 세계관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변증학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하면 타협이나 가감 없이 효과적으로 세상의 문화 속으로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학문 분야이다. 기독교를 오로지 사실에 대한 논쟁을 통하여 하나의 역사적인 종교로서 변증하려는 노력은 불가능한 것이고 또한 가능하다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무덤으로부터 살아나셨다고 전파한다. 또한 우리는 이 부활의 사건이 그의 산성의 증거라고 전파한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 이 점이야 말로 거듭 강조되어야만 할 중요한 포인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는 절대적이지만 하나님의 의식은 시간의 변화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고서야 가능하다.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참된 지식이 존재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의식이 동일 연장성을 갖는 것임을 강하게 주장 할 때 범신론의 오류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필히 주목되어져야 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식은 결코 중립적(neutral)일 수 없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지식은 자기 분석적(analytical)이며 자기 해석적이나, 인간의 지식과 인식은 하나님께 의존적이며 유추적(analogical)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인식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한에서, 수용적이고 재구성적(receptively reconstructive)이지, 이성에 근거한 창조적이어서는(creatively constructive)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와 어떻게 접촉할 것인가? 이 때 발생하는 문제가 그리스도인이 비 그리스도인과 만나는 접점(point of contact)의 문제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 사이에 접점은 없으며, 그 접점을 찾으려 하는 순간 진리의 체계는 무너진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가지고 간다는 것은 그 동안 그들이 쌓아온 이성이나 경험 등 기존의 세계관에 그리스도의 세계관을 덧입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기존가치와 세계관을 완전히 허물고 처음부터 기초를 쌓는 일이다. 이것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그들의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리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순수한 성경적 입장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법이 그 속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접점으로 확신한다. 이러한 사실로만으로도 순수한 성경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접점에 관한 한 안심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과하나님의 제한적 선택으로 인한 전적인 은혜의 결과라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개혁주의가 다른 복음주의자나 로마 가톨릭 등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을 접촉할 때, 개혁 주의적 하나님을 전제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접점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기억 속에서 하나님을 떨쳐 버리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인간의 상식이나 이성, 경험을 접점으로 삼게 되면, 참된 그리스도를 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핫지나 벤틸은 이성을 면도칼이라고 주장하지만 개혁주의 신학자인 칼빈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지각한다고 말하였다. 이성 그 자체는 좋은 것이나 그 칼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성은 중생한 사람의 손에 의해 사용될 때 바로 사용된다.로마 가톨릭에 있어서는 교회의 권위 특히 교황의 권위, 즉 엑스 카세드라(ex cathedra)는 궁극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모든 것은 전제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변증은 성경 안에서 절대적인 권위로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와 성자, 성령을 처음부터 전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전제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전제는 주관적인 나를 부인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제, 이를테면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 등으로 불신자들과 접점을 이루려 한다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려 한다면 이는 또 하나의 우상을 만드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인은 이성의 사용에 있어서 만일 그것이 전문가의 권위일 경우에 국한하여 권위의 개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거나, 혹은 권위에 대한 개념은 죄인의 자율성에 대한 가정과 매우 통하는 개념이다. 본서의 저자는 자연인의 생각에 그것이 자율성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다고 느껴지기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보고자 제시를 하였다. 첫째로, 사실적 대상이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에 필요하게 되는 권위,이다.
    인문/어학| 2019.01.09| 5페이지| 4,500원| 조회(283)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이란 무엇인가?
    ●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의 세 측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 나를 아는 지식, 계시신학은 데오스(하나님) + 로고스(말씀)의 합성어이다.신학의 이해 - 하나님의 관한 학문은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고 하나님에 관해 말씀하신다. 모든 것은 알려지는 존재다. 나 자신도 알려지는 존재가 된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나와 주변에 모든 것들이 알려지게 된다. 모든 사물들은 알려지는 존재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알려지고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우리에 대한 지식을 우리가 수납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알려지는 것이다(코람데오).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지시지만은 아버지를 알리기 위한 빛이었다. 그래서 신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적나라하게 하나님 앞에 알려지는 것이다. 그때 비로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나도 알아가는 것이다. 보통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먼저라고 하지만 동시에 두가지가 이야기가 되야 한다. 순서로 따지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먼저이지만 구지 순서를 정할 필요는 없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 자신이 아는 지식과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했다. 어거스틴은 신학을 바로 하나님의 관한 그러함과 말씀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을 하나님에 의해서 가르쳐지고 하나님을 가르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물론 인식론이 틀리긴 하다. 헬라 사람들은 신들의 시들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나중에는 철학적인 요소가 가미가 되어서 근원에 대한 지식, 존재, 출발, 지식을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 적용되었다. 동방 교부들은 신학이라는 단어를 그리스도를 다루는 좁은 기독교 학문의 한 부분을 정하였다. 갑바도기아 교부들도 그랬다. 오이코노미아는 경륜을 말한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오이코노미아와 그리스도의 자체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을 구별했다. 라틴 신학자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와 관련된 계시에 관한 지식으로 이해했다. 대부분 신학자들은 신학을 하나님한 필연성에 의해서 그 자신께서 그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표현하시는 한 알려질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알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계시가 어떠하며 지식이 없다. 물론 어떤 하난미의 조직적인 지식이나 학문도 없다. 우리가 그에게 다다르는 것은 어떠한 사상이나 추론에 의해서 언제 가능하는가? 그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맞추어주시고 말씀의 사역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자기 자신을 들어내실 때에만이 우리가 그를 이해할 수 있다(Warfield,9.58).하나님의 맞추심(accommodatio Dei): 시편에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시다. 여기서는 원수의 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다양한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우리는 완전 타락했다. 하나님은 끌어올리셨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영화단계는 아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맞추심이다. 우리에게 낮춰주시고 맞추어주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완전하지 못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표현만 좋다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조차도 맞추어 주신다. 우리의 인격뿐만 아니라 행위조차도 맞추어 준다. 하나님이 의사, 교사, 아버지, 술 취한 사람, 적으로 낮추어서 맞추어 주신다. 맞추어 주신다는 것은 변형이 아니고 의인화가 아니다. 계시 자체가 굴절되고 변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기의 계시가 모형 계시가 진리 자체이지 변형되어서 맞추심이 아니다. 인큐베이터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라!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얼굴이다. 아내한테는 수고했어! 아이한테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이다. 변형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맞추어주셨다는 것은 진리 그 자체를 말한 것이다. accommodation par excellence 즉 최고의 맞추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낮추심과 승귀이다. 우리의 인격을 맞추시는데 우리의 부족한 행위까지도 의롭다고 맞추어 주신다.헤르만 바빙크: 하나님의 자기 계시, 하나님은 스스로 진리이시다. 자기 지식이 진리이시다. 하나님은 존재시의 주관성을 말했다. 감정이라는 것으로 신학을 다 바꿔버렸다. 절대 의존 절대 감정이다. 감정으로부터 신학을 바꿔놓았다. 너무 무감각하고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슐라이엘마허는 경종을 말했다. 교회는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대에 냉소주의자들에게 이끄러 말했다. 믿음의 의식에 대한 교리는 잘못된 것이다. 믿음의 성향과 신학적인 지식을 구분하지 않고 비중생자의 신학이라는 개념을 도출하고자 한다. 누구든지 공동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의식을 신학이라고 한다. 주관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말한다. 특히 변증학을 강조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변증학하는 것과 다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참 감정인지 거짓 감정인지 그런 것이 과연 기독교적 감정인지 첫 번째로 검증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절대의존감정이다. 슐라이엘마허는 종교의 전체의 총합은 느끼는 것이다. “아주 최고의 일치성에 관해서 우리 안에 감정가운데 움직이는 것은 하나이다. 이런 공통성 일체감이 있는데 하나님을 통하여서 우리가 존재하고 일체적 감정(삼단논법) 모든 것에 있어서 공통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다. 유니티, 무빙어스 하나님은 절대적 감정과 다르지 않다. 그는 파이어트를 강조한다. 모라비안 교도에 영향을 받았다. 찰스웨슬리에게 영향을 주었다. 경건주의자들이다. 경건이라는 말은 너무 좋다. 신학적으로 immediate는 즉각적으로 중보자 없이라는 뜻이다. 함부로 이 단어를 쓰면 안 된다. 우리는 모든 지식과 모든 영화를 아는 중보자로 알고 있다. 어디에도 신이라는 말은 없고 무한자, 영원자, 전체 이것이 슐라이엘마허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슐라이엘마허에 있어서 예수는 무엇인가? 신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대표자이다. 놀랍게도 틀린 이야기이지만 슐라이엘마허의 가설을 가지고 읽으면 맞는 내용이다. 중보자가 다양해야 한다. 예수님만 중보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은 중보자의 대표자에 불과하다. 우리를 통하여 묘사되는 것이다. 세계로서의 우리에게 오고 세계 안으로서 우리에적 사고이다. 계시의 기여자이다. 포스트모더니티이다.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 가운데 다양한 감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감화가 시대적으로 표현되어서 시대적 윤리로 나올 수 있다. 진리 자체를 바꾸면서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계시는 하나이고 역사적 감화력 있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에도 이와 같은 것이 나온다. 리츨은 신론, 삼위일체론, 기독론을 제쳐두고 우리 입장에서 느낌의 종합, 공동체적 주관적 의식이다. 신학은 신앙의 학문이라고 말한다. 신앙이 말씀에 앞선다. 이것은 주관적 신앙이 객관적 신앙에 앞선다. 신앙이 말씀을 형성한다. 결국 그러한 개념에서 리츨은 도덕적 가치를 높이 존중한다. 진리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진리가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가면서 교회가 성장한다. 이것은 계시 진화론적 사고이다. 결국은 변증법적으로 바뀌어 간다. 진리가 성령의 감화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낙관론이 있는 것이다.칼바르트에 있어서 실존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실존하는 것을 뜻한다. 그 행위가 어떠한 실존을 가지느냐? 결국은 윤리적 차원으로 나간다. 우리도 하나님 수준에서 할 수 있다. 내가 끌어올려주든지 하나님이 끌어주는지 둘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이 하나님답지 않으시게 내려오시든지 해서 우리가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명령은 거기에 있다. 너희는 할 수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공에 의지하라는 것이다. 명령에는 약속이 있다. 그 명령은 어느 명령인가? 그것은 하나님 수준의 명령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즉시 명령이 있는 곳에는 약속이 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다. 성경에서 명령하는 것은 기쁘게 받아드려야 한다. 바르트는 나도 신적 통보가 있다.경건하고 올바른 삶의 규범: 경건하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올바르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루터는 율법은 항상 정죄한다. 우리 개혁신학에서는 원래 삶의 규범이다. 하나님의 증거는 부활이고 미래적이다. 너 생각하게 된다. 구약시대 때는 표상이지만 예수님이 현재에도 계신다는 것이다. 율법은 현재와 표상을 계시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메시야를 계시하신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지낼 때는 메시야를 생각하고 제사를 지냈다. 믿음의 조상들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다.analogia promissio-perfeitio-analogia - 구속사와 동시적 사고 → 공생fide: vimbra-substantia - 그림자-실체(인격) → 인격이 계신다.어느 시점에 공시적으로 계신 것이다. 어느 시점에 계신 예수님을 현재이다. 현재와 동시에 그 분은 오실 메시야를 표상한다. (presnetia-repaesatatio) 너무 약속만 바라본다면 세대주의에 빠지게 된다. 구약도 언약이다. 이 표상과 현재의 만남은 로고스와 성육신이다. 현재하시던 분이 실체이다. 우리가 바라던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 성육신 가운데 드러난 것이다. 구약시대의 백성들이 얼마나 고대했던가? 우리는 그 분을 전해졌는데 그 말씀이 예수라는 것이 증거되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이 말씀이 오시매 영생이 이르게 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그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의해서 잉태로부터 성육신이 임하게 된 것이다.참 신학은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서 증거가 되어야 한다. 우리 겉에 계신 것이다. 주님은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것인데 자연에서부터 찾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주님 안에서 신앙을 가는 것이지 주님을 떠난 신학은 내재신학이고 자연신학이다. 내재신학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고 자연신학은 피조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어진 것을 물론 하나님의 도구요 찬미의 도구이지만 그 지으신 분을 생각해야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이다. 천사는 지성에다가 지성의 총체를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이 천사이다. 하나님은 지성자체이다. 이것은 존재의 유비이다. 피조물과 조물주의 관계가 차별이 없다. 반신이 피조물을 만들어서 피조물에게 나눠준 것이다.
    인문/어학| 2018.02.11| 39페이지| 5,000원| 조회(257)
    미리보기
  •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평가B괜찮아요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하여- 마 5.1 - 12을 중심으로 하여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대표할 만한 것으로 마태복음 5 - 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을 들 수 있다. 그 중 맨 앞에 나오는 팔복에 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산상설교 중 팔복은 마태복음서 5장 1절로 12절에 나오며, 누가의 평지 설교에서 4복 4화는 6장 20 - 26절에 나온다. 두 본문은 한 전승 - Q자료 - 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즉 두 본문의 근원은 하나이며, 각자의 공동체의 특성에 맞게 마태와 누가는 그들의 편집적 의도를 가지고 오늘과 같은 두 본문을 형성한 것이다. 따라서 보다 긴 마태의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고 마태와 누가의 차이점에 관해 언급함으로 성서 기자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팔복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Ⅰ. 두 본문의 유사점과 차이점(마 5.1-12; 눅 6.20-26)두 본문의 유사점을 먼저 살펴보면, 두 본문의 양식이 축복선언 다음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고, 다음의 공통된 내용을 담고 있다. 둘은 모두 μακαριοι οι πτωχοι, οτι??? εστιν η βασιλεια, μακαριοι οι πεινωντεs, μακαριοι εστε οταν ????υμαs, ονειδισωσιν, πονηρον, χαιρετε, ο μισθοs υμων πολυs εν???, γαρ 를 사용하고 있다. 즉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굶주린 자,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받는 자의 축복을 선언하고 있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두 본문 사이에는 차이점도 많이 있다. 첫째, 문자적으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누가에는 οι πτωχοι로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는 οι πτωχοι에 τω πνευματι가 첨가되어 있다. 이외에도 마태는 πενθουντεs와 αγαλλιαξω를 사용하는데 반하여, 누가는 κλαιοντεs와 σκιρταξω를 사용한다. 둘째, 마태복음에는 8복이 선언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4복 다음에 4화가 선언되고 있다복선언을 말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복수 2인칭으로 말하고 있다. 마태의 복수 3인칭은 일반적인 진리를 서술하는데 사용하는 양식이다. 반면 누가의 2인칭은 이 4복 4화를 읽어주는 이가 그의 공동체를 향하여 읖을 때 마치 예수께서 직접 그 공동체에 말씀하시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생동감을 갖고 있다. 이 두 본문 중 누가의 본문이 자연스러우나, 마태의 3인칭이 예수님의 말씀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유대의 지혜문학에서는 복수 2인칭 대신 복수 3인칭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마태의 본문 보다는 누가의 짧은 본문들이 원문에 가깝다는 점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그것은 누가가 마태에 있는 여러 축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생략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의 본문이 원전승에 가까운 것이라면 마태의 산상설교는 마태의 신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무엇인지를 이제부터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밝히기 위해 마태의 첨가된 부분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태는 누가의 본문에는 없는, 온유한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의 축복을 첨가시켜 놓았다. 그리고 제 1복에서 ‘가난한 자’를 ‘마음이 가난한 자’로 하고 있으며, 단순히 ‘주린 자들’이 아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라 했다. 이런 사실은 마태의 주된 관심이 공동체의 교육 즉 윤리적 교훈을 하려는 데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5장 2절의 “가르쳐 가라사대”에서 “가르치다”는 그 시제가 미완료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저자는 이 말씀들을 공동체를 통해 계속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으로 보았음을 시사한다. 이제 마태의 본문들을 자세히 고찰함으로 이를 증명하고자 한다.Ⅱ. 팔복의 구조 분석(마 5.3 - 12)마태의 팔복 선언은 히브리 시의 줄맞추기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구조상 두 연으로 되어 있다. 제 1연은 3 - 6절이고, 제 2연은 7 - 10절까지이다.제 1연 : μακαριοι οι πτωχοι τω πνευματι, 영이 가난한 자들σιλεια των ουρανων 왜냐하면 하늘들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4절 μακαριοι οι πενθουντεs, 슬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οτι αυτοι παρακληθησονται. 왜냐하면 그들은 위로받을 것이기 때문이다.5절 μακαριοι οι πραειs, 친절한 자들은 복이 있다.οτι αυτοι κληρονομησουσιν την γην.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상속할 것이기때문이다.6절 μακαριοι οι πεινωντεs και διψωντεs την 공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οτι αυτοι χορτασθησονται δικαιοσυνην. 왜냐하면 그들은 만족하게 될 것이기때문이다.제 2연 : μακαριοι οι ελεημονεs, 자비로운 자들은 복이 있다.οτι αυτοι ελεηθησονται. 왜냐하면 그들이 자비로운 대접을 받게 될 것이기때문이다.8절 μακαριοι οι καθαροι τη καρδια, 마음이 정결한 자들은 복이 있다.οτι αυτοι τον θεον οψονται.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9절 μακαριοι οι ειρηνοποιοι, 화평케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οτι αυτοι υιοι θεου κληθησονται.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칭함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0절 μακαριοι οι δεδιωγμενοι ενεκεν δικαιοσυνηs. 공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있다.οτι αυτων εστιν η βασιλεια των ουρανων. 왜냐하면 하늘들의 왕국이 그들의것이기 때문이다.위 본문을 본 사람은 즉각적으로 이 말씀이 잘 정형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 본문들의 구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각 축복의 시작이 μακαριοι οι(--하는 자들)이라고 하는 형용사의 명사적 용법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 그 원인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모두 οτι αυτοι(절은 주격 대신 속격인 οτι αυτων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3절과 10절은 “하늘들의 왕국이 저희들의 것이다.”하는 댓구를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의 구절들의 내용들을 잘 감싸주고 있는 듯한 수미쌍관의 수법을 쓰고 있다. 각 연의 마지막 끝에 δικαιοσυνην(5.6a)와 δικαιοσυνηs(5.10a)의 ”의(義)“가 댓구를 이루고 있다.내용상으로도 제 1복 선언과 제3복 선언, 제 2복 선언과 제 4복 선언은 서로 병행한다. 제 1연의 3절과 5절은 “영이 가난한 자들” 즉 “겸손한 자들”과 “친절한 자들”이 댓구를 이루며,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다”와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가 댓구를 이루는 동시에, 천구은 현재 상속받았으나 땅의 상속은 미래에 일어날 것을 말함으로 시제 상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1연의 4절과 6절도 내용상의 댓구를 이루고 있다. “슬퍼하는 자들”, “공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과 “위로받게 될 것이다”, “만족하게(배부르게)될 것이다”가 서로 병행을 이룬다. 또한 모두 미래 수동태의 형식으로 하나님의 선물로써 이러한 것들이 주어질 것임을 말하고 있다.제 2연에서는 8절과 9절이 댓구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우게 될 것이다” 가 댓구를 이루고 있다. 또한 미래시제로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8절은 중간태 디포넌트로서 형태는 수동이나 내용적으로 능동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9절의 수동태와는 대조적이다.이러한 팔복은 각 개의 독립적인 구절들이라기 보다는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축복”이라기 보다는 덕목들을 나열한 성격을 갖는다. 즉 1연의 덕목들 없이는 2연의 덕목들이 있을 수 없고, 그 반대도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애통함” 없이는 “심령의 가난”이 있을 수 없고, “의”에 주리고 목마름 없이는 애통할 수 없는 것이다. 온유함(친절함)이 없이는 마음에 정결함이 없고, 마음에 정결함이 없이는 화평케 함이 있을 수 없다. 이처럼 팔복 선언의 주된 관심은 메시아 보여준다. 표 2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각 연의 마지막에 의(義)를 주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 1연과 제 2연의 자료들을 분석해 보면, 제 1연은 Q에서 온 것이 셋, 마태의 첨가가 하나, 제 2연은 Q에서 온 것이 하나, 마태의 첨가가 셋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첨가된 것(온유, 마음정결, 긍휼, 화평)이 모두 그리스도인의 덕목 내지는 내적 성향에 관한 것이다.Ⅲ. 결 론이러한 구조의 분석을 통하여 살펴본 결과, 예수님의 말씀을 마태는 자신의 신학적 관심에 따라 재구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의도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제시함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의(義)라고 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는 팔복 뿐만 아니라 산상수훈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 6장의 경우를 살펴보면 유대교의 경건과 의(義)의 3대 요소인 자선, 기도, 금식에 관하여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시함으로 기독교적인 경건과 의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다. 이는 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90년 얌니야 공의회의 결과에 따른 시대적, 공동체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께서 헐리라고 말씀하신 성전이 무너진지 20여년이 지나도록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도래하지 않고, 그들에게 90년 얌니아 회의를 기점으로 유대교와 로마의 핍박은 가속화되어진 상황에서 마태공동체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가치관을 수립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복음서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마태복음서가 기록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록된 마태복음서는 교회의 사도직의 권위를 강조하며, 유대교의 율법에 재해석으로 함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팔복을 이해하여야 한다. 즉, 축복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인이 지켜야 할 덕목이라는 점이다. 이 글의 목적은 팔복이 마태의 신학적 의도에 따라 재구성되어진 것으로, 잘 정형화되어 문학적 매카니즘을 가지고 있으며, 이 팔복의 목적이 오늘날 교회에서 외쳐온 복보다는 기독교인의 윤리에 더 중점을 두어 해석해야 될 것임을 밝히고자 하였기 때문에, 한다.
    인문/어학| 2014.12.11| 4페이지| 1,500원| 조회(146)
    미리보기
  • 태국핸드북
    너희는 모든 족속을 제자삼아 아버지와 아들과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네게 분부한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주최: 청년부일시: 2004. 8. 8 ~ 8. 14. (6박7일)선교국: 태국 치앙마이2004 태국 단기선교 개요1.일시 : 2004년 8월 8일(주일) -8월 14일(토) 6박 7일2.장소 : 태국 치앙마이3.목적 :1) 타문화권에 대한 이해 넓히기.2) 선교현장을 살피고 올바른 선교관 확립.3) 현지 선교사님의 사역지원4) 공동체 생활을 통한 인격 성장과 섬김 훈련.5) 청년회의 영적 발돋움과 비전 확립.4.참가자-10명인솔자:단기선교총무: 회 계 :서기/기록 : 비디오, 사진찰영 :의 약 품 : 물품관리 :여 권 :팀팀장팀원지원사역1팀만들기(미술)와 풍선아트, 환경미화2팀워십 및 율동3팀물품지원, 사진촬영4팀찬양과 율동, 의료지원5. 단기선교팀 명단번호이름영문이름전화번호여 권 확인비고12345*************. 일정표월일시간8월8일 (Su)8월 9일(Mo)8월 10일(TU)8월 11일(We)8월 12일(Th)8월 13일(Fr)8월14일(Sa)06시치앙마이행 탑승기상과 큐티식사하루일정점검및회의기상과 큐티식사하루일정점검및회의기상과 큐티식사하루일정점검및회의기상과 큐티식사하루일정점검및회의짐정리07시치앙마이 도착08시예수원 도착한국으로 출발09시짐정리및휴식10시예수원 봉사꾼뚠 미을봉사예수원 모든이와함께....치앙마이 문화탐방및복음전도11시12시점심식사점심과 휴식오후일정점검모임13시개회예배 및기도회점심과 휴식오후일정점검모임점심과 휴식오후일정점검모임14시파안마을 봉사점심식사15시단기선교파송예배선교사님 일정설명 및 세미나후에이미 마울봉사예수원 아이들과함께치앙마이 문화탐방및복음전도16시17시교회에서 공항출발 수속절차확인저녁식사및휴식저녁식사및휴식18시저녁식사및휴식저녁식사및휴식저녁식사및휴식19시예수원 밤발표회및예배?안마을밤 집회및발표회20시후에이미 마을밤집회및발표회예수원밤 환영식에 참가나이트바자참가21시방콕항에 탑승방콕항에 도착 및 공항대기22시23원은 한국과 비교할 때 다른 면이 많다. 태국에서는 누워있는 불상들을 흔히 볼수 있다. ‘와트 힛야이 나이’사원에 가보면 누운 불상의 길이가 약40미터 정도나 된다. 그리고 서원 안에는 코끼리 상들도 있고 코끼리에도 금종이를 붙여놓았다.Ⅲ-9. 주의 사항태국 사람들은 이 두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모욕하지 않는 한 모든 종류의 행위에 대하여 관대하다. 왕의 얼굴이 있는 물건도 마치 진짜 왕처럼 생각하는데 사진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거나 왕의 얼굴이 있는 동전이나 지폐를 함부로 다루는 것은 삼가 할 일이다. 불교는 중요한 종교이며 오렌지색 가사를 입은 승려와 금, 대리석, 돌로 만든 불상들은 보통 볼 수 있는 환경이다. 일반화된 불교의 형태는 성인이나 도사의 도움 없이는 열반을 이룰 수 있도록 개인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Theravda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 사원을 방문할 때에는 적절한 옷차림을 해야한다. 반바지나 소매 없는 옷을 만든다.Ⅳ. 태국의 통화량 및 전화, 전압태국화폐의 기본단위는 바트(Baht)이묘며 1바트는 32원 정도이다. (US$1=45바트/2001. 5. 25현재). 1바트는 100사탕으로 나뉘어진다. 동으로는 된 동전은 25사탕과 50사탕짜리이다. 은으로 된 동전은 1바트, 5바트, 10바트 짜리이다. 황색 지폐는 10파트, 녹색은 20바트, 적색은 100바트, 자색은500바트, 회색은 1000바트 이다.Ⅳ-1. 전압전국적으로 220V가 통용된다. 플러가 소켓을 쉽게 찾을수 있으며, 면도기, 녹음기등 기타 가전제품을 이용하려면 어댑터를 휴대할것, 고급호텔에서는 110V용 변합기를 제공한다.Ⅳ-2. 전화/ 한국으로의 전화☞ 서울에서 방콕: 001-66-2+전화번호☞ 방콕에서 서울: 001-82-0을 뺀 지역번호+전화번호☞ 태국에서 한국 수신자 부담으로 걸려면:001-999-82-1000+한국인 교환과 대화Ⅴ. 문화?예술태국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으며 태국의 전통예술을 통해서 이러한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Ⅴ-1. 콘(khon): 이(찡르쁠라우)- 정말입니다 : 찡크랍- 거짓입니다. : 마이찡 크랍- 가끔 : 방티- 가깝습니까 - 얼마나 됩니까(거리가) : 끌라이 삭케나이- 이것은 얼마입니까 : 니 타오라이- 어디 있습니까 : 유티난- 이것은 가격이 얼마입니까 : 니 라카 타오라이- 오백원입니다 : 하 러이 원- 주제가 무엇입니까 : 미 르앙 아라이- 저와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 폼짜폽쿤 다이 티나이- 나이가 몇 살이지요 : 아유 타우라이- 천천히 말해주십시오 : 풋 차차 너이 크랍- 아름답군요-아름다워요 : 쑤와이(여자의 경우)- 아주 좋습니다 : 디막- 뭐라구요 : 아라이 나- 관심 있습니다-흥미롭군요 : 나 쏜짜이- 맛있습니다 : 아로이 막- 배부릅니다 : 임 레우- 아주 피곤하군요 : 느아이 막- 당신은 어떤 신앙(종교를)을 가지고 있습니까 : 쿤 납트 쌋싸나 아라이 크랍- 전에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요 : 쿤커이다이인르앙라우프라예수크릿마이Ⅵ-1-1. 1.당신은 예수를 믿나요? : 쿤츠아프라예수 마이- 잠시 시간이 있습니까 ? : 쿤 미웰라 왕마이 캅2.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 쿤쿠이깝폼(디찬) 닉능다이 마이 캅(카)3.당신에게 전하고픈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 폼(디찬) 미 카우쁘라쓷 티짜 벅하이쿤4. 3~4분이면 됩니다 : 커차이웰라 닉능나캅(쌈르씨나티 타우난)5.당신을 만나 이 소식을 전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 폼(디찬) 카우마 쁘라텟니 프아티짜폽깝쿤 레 짜벅카우니하이쿤6.당신의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 인데, 당신이 잠깐이라도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해요 : 르앙니 뺀르앙끼아우깝치윗니란레미쾀쌈칸막 약하이황르앙니7.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갑니다 : 타쿤츠아프라예수레우 짜다이랍치윗니란 레싸맛카우나이 싸완다이8.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 쿤짜염랍프라예수 뺀프라푸추워이하이럿컹쿤 마이9.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커우워이펀치윗컹쿤나이프라남컹프라예수10.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커컵프라쿤 티염쌀라웰s that comes through Jesus Christ-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묵상 도우미]집사(1절) 초대 교회에서 주로 구제 사업을 담당했던 직분이었다.그리스도 예수의 날(6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을 의미한다.매임(7절) 바울의 매임에 참예하였다는 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옥중에 있는 바울을 물질적으로 도운 사실을 말하는 듯하다(4:18).▧ 오늘의 명구 / 바울의 심장은 ‘그리스도의 심장’과 함께 고동쳤다. - J. B. 라이트푸트▧ 본문 해설복음에서 교제하는 삶 (1:1~7)그리스도의 피로 자기의 죄 값이 치러졌기에 이제는 ‘죄와 사망의 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이라고 고백하는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늘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었을 때부터 줄곧 “복음에서 교제”해 왔기 때문입니다(5절). 즉,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게 된 것과 바울을 후원하여 복음 전파 사역에 동참한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일이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신 “착한 일”(6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는 자(believer)가 되는 것이요, 나아가 복음 전파 사역에 동참하는 자(co-worker)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계속하셔서 온 땅에 복음이 전해지는 일을 완성시키실 것입니다.분별력 있는 사랑 (1:8~11)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고 말할 만큼, 또 자신의 사랑에 대해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 주신다고 말할 만큼 깊이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면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제목은 먼저 그들의 사랑이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이었습니다(9절). 그래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게 되는 것이었습니다(10절). 다양한 가치들 앞에서 n your joy in Christ Jesus will overflow on account of me.복음에 합당한 삶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27 Whatever happens, conduct yourselves in a manner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 Then, whether I come and see you or only hear about you in my absence, I will know that you stand firm in one spirit, contending as one man for the faith of the gospel28 without being frightened in any way by those who oppose you. This is a sign to them that they will be destroyed, but that you will be saved-and that by God.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29 For it has been granted to you on behalf of Christ not only to believe on him, but also to suffer for him,30 since you are going through the same struggle you saw I had, and now hear that I still have.[묵상 도우미]간절한 기대와 소망(20하소서
    교육서식| 2018.06.06| 43페이지| 10,000원| 조회(199)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8
8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2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2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2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05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30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