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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 부활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 부활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 부활”을 읽고Chapter1. 초대교회를 세운 부활의 복음.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신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정도로 취급하는 정도는 그 중요성을 놓이는 것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승부수”였다(행17:31). 그래서 예수님은 표적을 바라는 이들에게 요나의 표적 즉, 부활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부활은 제자들의 모든 가치관을 바뀌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부활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확증하게 되었다. 한 인간의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사건과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해주었다.성령님은 사역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사역의 주체이시며 사역의 중요 메시지는 부활이었다. 성령님이 제자들을 통해 그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였다. 복음의 능력은 성령으로 역사하게 하시며 그 분의 능력을 드러내신다.부활의 능력은 과거 2000년 전 사건의 일로 그것을 믿는 것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나의 부활이며, 현재형이며, 진행형으로 다가와야 한다. 그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예수님과 함께 살아난 존재적 삶을 뒷받침해준다. 역시 현재형으로 오늘 지금 나에게 부활은 살아있고 실재이다. 그 부활은 초대교회를 존재하게 했고, 2020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존재하게 해준다. 초대교회의 생명력과 현대 교회의 생명력은 두 말할 것 없이 동일하며 현존한다.Chapter2. 하나님의 꿈, 교회 공동체.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신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그러기에 그 무엇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인생이 우리의 삶이다. 교회에서 모든 것을 서로 통용하고 사랑하는 공동체는 당연히 행복하다. 나는 죽고 예수로 다시 살아가는 부활 공동체이다. 그들의 사랑은 역시 예수님 수준, 말씀에게 정해 놓은 수준이다(요일 3:16). 이것은 공동체를 세우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 영혼의 구원은 단순히 그 영혼만 살면 그만이다는 생각은 오랜 시간 함께 하게 될 교회 공동체를 해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이루어가야 하는 운명 공동체가 되기 때문에 사랑으로 함께 하는 것은 핵심 가치이다.교회 공동체에게 주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반복해서 설교하며, 같은 본문이나 같은 주제를 가지고 반복해서 나누어 주어야 그 내용을 기억하고 묵상하게 된다. 복음의 내용은 반복하고 강조하여도 날마다 새로운 말씀과 같이 새롭게 다가온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시고 부활의 소망을 주기 위해 오신 육체로 나타나신 이유 역시 복음의 핵심이다.성령 층만이란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의식하고 붙잡는 것이다(p.143). 성령의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의식하고 있으면 사탄, 세상 그리고 육신의 공격에서 승리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의 통치가 내속에서 일어나며 초대교회와 같은 부흥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성령 충만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도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그 마음을 빼앗긴다면 모든 열정과 믿음을 잃어버리고 세상으로 떠나버리는 과오를 범하기도 한다.Chapter3. 생명보다 귀한 사명.저자는 생명보다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폐암도 두렵지 않았다. 복음의 능력은 죽음의 두려움도 삼키고, 큰 기쁨과 평강으로 전진했다. 그때 하나님은 폐암에서 완치하는 승리를 허락해주셨다. 그리스도인은 사명자이다. 사명을 잃어버리면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영적 노숙자로 전락하게 된다. 기도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영혼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며 합심하여 공동체가 기도하는 초대교회의 본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인본주의 사상이 팽배한 세상에서 세상의 가치를 따라서 그들의 말하는 논리와 가치관으로 물든다면, 교회에서 말씀의 능력은 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여 말씀 그대로를 믿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p.185). 이것은 교회를 무너뜨리고 사명을 버리게 하는 불신으로 이끈다.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푯대를 향해 달리는 사명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상을 붙들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초대교회의 신앙과 부흥의 핵심은 부활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이다. 초대교회가 생명체이며 조직이 아니었다. 한 몸이며 한 생명으로 부활 복음의 영양분을 날마다 공급받으며 생명력은 더욱 강하여 진다. 교회가 조직이 아니라 생명이기에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낳는 재생산의 기능을 감당하게 된다. 세계로 뻗어가는 복음은 국경을 초월하여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며 제대로 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문제의 벽은 정도를 가는 사람과 곁길로 가는 사람과는 다른 문제이며 그 횟수도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복음은 생명을 가지고 생명을 낫는 일로 생기는 문제가 생길 것이지만, 곁길로 가는 사람은 생명과 별개의 문제로 골치를 썩는 일이 많아 질 것이다. 본질을 찾아 연구하는 자에게 행복한 고민이 찾아오지만, 비본질에 집중하는 사역자에게는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가하며 하소연만 하게 될 것이다.Chapter4. 복음이면 다 된다.부활의 복음을 붙잡아야 하는가? 첫째는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의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셋째, 부활은 십자가의 사건의 참된 의미와 보혈의 능력이 죽음에서 끝이 아니라 부활의 새생명은 어떤 것인지 재조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 명확한 이유와 부활 복음은 수많은 간증과 증인들을 통해서 확증된 내용이며 계속해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사도행전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변화만큼 변화되는 사람들을 배출하고 있는 부활의 복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부흥을 일으키고 있다. 부흥을 갈망한다면 부활의 신앙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25.10.11| 3페이지| 2,500원| 조회(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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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 - 폴 트립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 - 폴 트립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프로젝트-폴 트립 지음디모데 출판사< 서 론 >사람들은 누구나 한가지 이상의 문제와 해결하기 어려운 점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살고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은 정말 생명의 은인 같고 구세주와 같다. 좋은 해답과 안전한 길을 인도해 주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완벽한 안전한 길과 구세주가 있다. 치유와 회복을 위한 안내자들이 교회에 많은 수록 그 교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공통체로 나아 갈 것이다. 완벽한 상담자인 예수 그리스도께 상담을 맡기는 것이 어떤 원리를 가지고 있고 왜 그런지 본 저서를 내용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론 >1. 내용 요약본 저서를 읽는 동안 상담자의 마음의 자세와 내담자를 대하는 마음 상태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교인들을 상담하게 될 때 주의 사항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충분히 고려하며 그들의 입장과 마음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저자 폴 트립은 자신의 경험과 성경 말씀을 통찰한 이후 자신의 사례에 있어서 자신의 상담에 있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누가 이 상담의 결과를 책임지시고 올바르게 안내를 해 주었는지에 대해서 그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소개해 주었다. 다른 모든 만사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상담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 분이 진정한 해결자이며, 인간의 모든 고통을 이미 체휼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그 고통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이유를 명시해 준다.모든 문제가 마음으로부터 시작하기에 마음을 정결케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첫 장을 시작하면서 정의한다. 마음의 죄는 분쟁의 원인이 되는 원천이 된다. 우리의 죄과로 인한 어두운 마음들과 욕심이 하나님 대신 다른 것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게 한다. 하나님 대신 들어온 우상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고 그 욕구는 요구가 되며 필요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여 자신의 욕구를 정당화시킨다. 그 욕구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얻어 내려고 한다. 그 일을 가족에게 요구하게 될 때 충돌과 함께 분쟁을 일으키게 된다. 보물을 추구하는 마음은 모든 인간에게 있기에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보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냐 땅에 있는 것이냐에 따라 그 문제가 다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늘에 있는 보물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땅의 보물을 추구하기에 땅의 보물에 대한 정보와 그 상황들에 대해 아는 일도 중요하다. 아니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피지기 일지라도 사랑의 마음이 없이는 올바른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2. 비평과 보완1) 저자가 책을 통해 제시하는 주제필자는 상담을 잘하거나 상담을 많이 해본 사람을 아니지만 이 저자가 상담을 잘하는 상담가인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성과나 좋은 모델을 자신의 업적으로 부각시키지 않고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린다. 그러면서 가장 좋은 상담가의 모델은 그분이라고 소개한다. 상담가의 가장 좋은 자질과 탁월한 소스를 성경과 예수님의 사역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한 상담가인 예수님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주체이시며 성육신하신 분으로서 우리의 고통을 이미 체휼하신 분이면서(히 4:14-16) 그 어둠을 뚫고 오신 빛으로 어두움을 밝혀 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그분의 대사이다.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그의 뜻에 맞게 진행하며 그분을 내담자에게로 인도 및 소개해주는 일을 하는 대사이다. 그래서 대사는 내담자에게 그리스도가 원하는 자세로 대해야 하며 마음이 상하지 않게 문제가 해결되도록 그들에게 균형 잡힌 복음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규명함으로서 상담자의 위치를 중요성과 역할을 분명하게 해주고 있다.2) 과연 저자가 그 주제를 제시함에 있어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제시함에 있어 사용한 방법은?저자는 자신이 제시한 주제에 대해서 개인 사역을 통해 그러한 관계와 상담자의 역할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다. 개인 사역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거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자신이 일부분으로 사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일들을 자신에게 들고 올 때 그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부터 그분의 구속사건이 시작된다고 10장에서 말한다. 상담사역이 성경적이어야 하며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해석자로 창조된 인간은 그 상황이 부부관계, 자녀문제 그리고 결혼문제 등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온전한 대사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4.10.22| 4페이지| 1,000원| 조회(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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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 제임스 사이어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 제임스 사이어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하나님의 장엄으로 가득 찬 우주: 기독교 유신론-Ⅰ.서론본 저서는 제임스 사이어가 2004년에 출판한 것을 2009년에 한국어로 출간한 것이다. 개혁주의 복음주의 철학자인 저자로 다양한 사상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기독교 사상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지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변증을 통해 기독교의 유신론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들을 정리하였다. 특별히 두 번째 장에 기독교 유신론을 설명하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연주의, 허무주의, 범신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가깝게 다가온 시대에 크리스천으로 본질을 더 알고 지키는 지식이 중요하기에 우주에 가득 찬 하나님의 임재를 보려고 한다.Ⅱ.본론1.다양해진 세계관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점점 더 다양해진다. 중세 서양에서 살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세계관은 창조된 세상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을 통해 보려고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당시 동양에 사는 사람들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마음에 두고 선하게 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오늘날은 어디에 사느냐가 세계관을 결정하는 일은 과거보다 줄어 들었다. 누구의 영향을 받고 어떤 신을 섬기느냐도 과거와 다르게 천차만별이다. 한 가족 안에서도 서로 다른 종교와 세계관을 가지고 갈등을 빚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과거 어느 때 보다 많아졌다.2.유신론으로 접근인간이 신을 인정하던지 그렇지 않던지 신이 있다면, 그 인정과 상관없이 신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신은 인간의 능력으로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 그 이상의 능력이 없다면 신으로서 지위을 인간이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과 같이 비슷한 존재라면 또 하나의 피조물이지 인류가 신의 존재로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저자는 1700년대부터 1900년 사이에 발생한 세계관들이 유신론에서 출발했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 이 유신론은 성경에서 비롯된 세계관이다. 인간과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만드셨고 특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을 닮게 만들어진 인간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속성을 통해 하나님을 또한 알아 갈 수 있다.1)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속성모든 인간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인격은 하나님의 인격에 근거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격에 있는 자율성이 우리 안에 투영된 것이다.또한 인간의 존엄성도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다.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우리는 존엄하다. 작가에 의해 작품의 값어치가 평가되는 형식이다. 인간의 속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지성, 도덕적 기준, 창조의 속성이 모두 인간에게도 발휘될 수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능력과 가치가 인간 스스로에게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고 그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존재이다.2)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역사란 그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계시이다. 인류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은 하나님의 계시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역사의 시작은 인간의 타락으로 시작이 되었다. 물론 타락 이전 인간이 있었지만,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은 인간의 타락으로 비롯된 것이다. 그 타락한 인간의 역사 속에 인간들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등장하셔서 계속 그들을 회개를 촉구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완전한 회복과 구원을 이루기 위한 전적인 출현이 인류 역사의 끝이 될 것이다. 더 이상 타락한 인간으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그때에 다시 오실 것이다. 한 인간의 끝이 죽음으로 더 이상 세상 속에 타락한 존재가 아닌 결론적인 존재가 되듯이 인류에게 끝은 온 인류의 존재를 결론적인 존재로 결론내리는 날 말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과 같이 타락으로 시작한 인류에게 죽음이라는 끝과 같은 끝이 있다.그래서 역사관은 직선이다. 돌이킬 수 없는 끝이 있는 시간 속에 사는 인간의 역사는 끝이 있다. 반복하지도 순환하지도 않는다.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은 그분의 위대성을 드러내며 돌이킬 수 없는 인간들에게 기회 즉 사랑을 충족시켜 준다.3.유신론의 입장에서 범신론1)범신론의 신에 대한 입장기독교 유일신은 인격적이며 인간이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신이다. 인간은 만물 속에 그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고 날마다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돌보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다원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이 다른 신들을 서로 인정하고 절대적인 기준이나 가치를 정해 놓는 것은 비인격적이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사상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가 주요 타켓이 되기도 한다.207페이지 후반부에 라마크리슈나는 “교리나 종교를 두고 왈가왈부하지 말라. 결국에는 한가지 밖에 없다. 모든 강은 대양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당신도, 또 다른 사람들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하며 모든 신은 하나의 대양과 같이 하나의 존재라고 여긴다. 비록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 다르게 느끼고 표현하는 것 뿐이지 모두 하나의 신을 모시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2)기독교 입장에서 변증흔히들 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이쪽으로 가도 되고 반대편으로 가도 된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너희들의 길만 정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고집하냐고 기독교 유일신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힐문한다. 산의 정상은 분명히 하나이고 정상에 가본 사람만 그 정상의 위치나 경관을 알 수 있다. 다른 종교에서 서로가 맞다고 인정하는 정상과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정상이 다르다면 분명히 서로 다른 곳에 있다는 증거이다.위 산의 모습은 서로 다른 목표와 다른 산을 가고 있을 경우의 그림을 표시한 것이다.그런데 그림 1과 2로 설명한 그림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제일 신과 제이 신 그리고 제삼 신이 있다라는 것에 발목이 잡힐 수 있는 그림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산 중턱에 있는 다른 신들과 그들 위에 정상에 위치한 유일신의 모습을 산으로 비유한 그림이다. 모두 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개라고 말하며 올라간 곳은 산 중턱이다. 그곳까지 가서 다른 신들의 모습과 존재를 느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유일신은 거기가 아니라고 말하며 진정한 정상은 더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분명히 다르다고 유일신 자신의 존재를 말하고 그를 따를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게 한다.
    독후감/창작| 2024.10.22| 5페이지| 1,000원| 조회(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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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그러면 유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프란시스 쉐퍼
    그러면 유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프란시스 쉐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서론본 저서는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의 사상을 담은 글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기독교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과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살펴 보면서 저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고대 로마로부터 중세와 르네상스, 종교개혁 시대와 계몽주의, 그리고 현대에 있어 과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역할을 서술하였다.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시대마다 기독교의 위상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런 다양한 모습을 현대인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그 분석한 내용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올바른 자화상을 그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한다.그래서 필자는 처음 다섯 장 즉, 고대 로마로부터 종교개혁 시대까지를 선택하여 이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들을 보면서 각 장의 기본적인 논지가 무엇인지를 열거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내용에 동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왜 그런지에 대하여 서술할 것이다.본론1.고대 로마1)고대 로마의 기독교로마의 문명은 현대 서구 세계의 직접적인 원조이기 때문에 서구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로마는 1000년 이상 제국을 유지하며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상 등 내면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실 사람을 진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외부의 압력이나 권력보다 내부의 자발적인 동기를 주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다. 그래서 내면의 생각과 사상에 따라서 외부의 행동들이 결정이 된다.그래서 로마는 제국을 다스리는데 내부의 결속과 제국의 질서 유지를 위해 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이 황제 신이다. 인간 신을 바라보고 제국의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고 질서 유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되었다. 황제 신 역시 인간이기에 그가 바라보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통치를 감행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순수성과 신앙에는 전혀 변함이 없고 오히려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점점 더 강한 통치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2)몰락하는 로마와 기독교그래서 로마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허락해 주고 그들은 권력의 품으로 들였다.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포용하면서 기독교는 황제의 궁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보호보다 로마 권력의 보호를 더 좋아하고 가까이 하게 되었다. 로마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이 보장해 주는 것과 비슷한 것들을 제공해 주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보다 로마의 권력을 신으로 모시게 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순수성을 잃어가고 신앙은 점점 빛을 잃게 되어 로마 제국에도 정신적인 힘이 되지 못하고 기독교인들에게도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 이차적인 보호 장치처럼 완전한 신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 결과 로마의 패배로 기독교의 승리를 인정했지만, 오히려 로마의 패배 인정은 기독교의 순수성과 강력한 신앙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로마가 승리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둘 다 함께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다. 로마는 역사의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기독교는 그 순수성이 로마와 함께 타락의 길로 내려갔다.결국 정신적인 힘을 유지하는 기독교의 몰락은 가시적인 국가와 제도를 구원시키지 못하고 함께 침몰하게 하였다. 인간이 운영하는 국가는 국가 제도가 인간을 지켜주고 보호하기보다는 반대로 인간이 한계성을 가진 제도를 잘 지켜주고 인도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올바른 대처를 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인 절대자를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인간의 보호나 권력이 결코 절대자를 대신할 수도 없다.(3)인간에게 필요한 절대자인간은 누구에게나 해결해야 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인간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커다란 문제가 있다. 그것이 생명과 죽음의 문제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생명이 어수밖에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동일한 절대자이기 때문이다.2.중세1)중세의 문화(1)예술의 발전중세에서 기독교는 정치권력에만 존재하는 세력이 아니었다. 보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술에도 그 모습이 드러났다. 벽화, 조각, 그림들에서 성모와 제자들, 예수님의 모습 등 다양한 소재들이 나타났다. 다양한 소재와 많은 작품은 미술의 발전을 도모하기에 좋았다. 샤를마뉴가 통치하는 시대에는 교회는 문화세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였다. 그래서 당시 대부분의 종교적 물품과 서책들은 예술적 성향이 깊은 스며들어 있는 것이 많았다.또한 음악과 건축 역시 교회 음악의 발전과 같이 음악의 수준이 함께 향상되었고 건축은 성당의 건축으로 그 미와 기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중세에 건축 양식의 발전과 건축 및 수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2)인본주의의 태동르네상스의 태동은 인간사고 방식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절대자를 통해 인간과 사물을 보던 사고방식이 인간을 통해 사물을 보는 것으로 시각이 변한 것이다. 고대의 비기독교적인 철학이 등극한 것으로 인본주의 요소가 들어와 여러 분야에 새롭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이성이 신의 계시와 같은 위상은 갖게 되었다. 이것은 그동안 유지하던 사고에 도전이고 기독교의 근본적인 사상에 배치되는 사고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보지 않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신과의 분리를 시도이다.2)중세에 나타난 왜곡들(1)성경의 왜곡교회의 권위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커다란 착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행하는 일들이 곧 세상의 법이 된다는 착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적용하는 법을 이 세상의 치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치리까지 할 수 있는 것 마냥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원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와 비기독교적인 사상이 혼합으로 사람들이 자존자(自存子)로서의 인간을 모색하기 시작했.창조주가 만든 모든 피조물 속에 담겨 있는 잠재력과 원리를 얼마만큼 깨닫고 사용하느냐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창조활동의 전부이다. 중세에 예술 활동의 진보와 개인의 창의적 작품의 향상 역시 피조물이 조물주를 얼마만큼 신뢰하고 따르느냐에 따라 그 결실이 결정된다. 왜냐하면 모든 시작은 인간 스스로가 아니라 창조주로부터 발생하였기 때문이다.그래서 결론적으로 중세의 문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비성경적 기독교의 모습과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요소들은 인간들이 스스로 자처한 몰락의 길이다. 이것은 창조적 활동은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감을 배제한 다른 것을 찾아보겠다는 시도이다. 창조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처사이다.3.르네상스(1)인본주의인간을 판단의 척도로 삼고 전적으로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존재라는 신념에 뿌리내리고 있는 체계로 이전에 고전을 “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자신들을 “재탄생”의 시대라고 불렀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사람들은 인간을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고 그리기 시작하였다. 비성경적 개념이라도 상관없이 예술 작품은 다양한 주제와 소재 그리고 표현법 등을 선택하였다. 인간의 위대함을 표현하고 인간의 자유로움과 승리를 표현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을 스스로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신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세계에 태어났다는 몸부림이었다.(2)혼합되지 않는 기독교기독교의 사상은 절대자를 강조하고 그 절대자의 원리는 인간이 바꿀 수 없다.(롬1:25) 그 바꿀 수 없는 원리를 인간의 입장에서 조금만 바꾸어도 절대자의 원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시도하려는 철학자들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개별자를 강조하고 플라톤의 사상은 보편자를 강조하였다. 르네상스의 사람들은 이들의 사상을 기독교와 결합하여 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다 인간 위주의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자 하였다.그러나 앞에서 전제했던 것과 같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 절대자를 대신 할 수 있는 개별자도 없고 개별자를 연구해서 보편자를 찾아 낼 수도 없다. 절대자를리를 선언한다.르네상스가 인간에게 집중하는 것이라면 종교개혁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로 인식하여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는 기반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개별자와 보편자가 가지는 연약함과 궁극적 빈곤함이 해결되어 반석 위에 서 있게 되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과 초대 교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왜곡된 교회에 첨가된 인본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게 되었다.2)종교개혁과 예술의 관계종교개혁이 예술 그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과 함께 시편으로 구성된 “비텐베르크 찬송가”를 펴냈다. 그리고 요한 세바스찬 바하(Johnn Sebastian Bach)는 종교 개혁이 낳은 최고의 작곡자로 의식적으로 자기 음악과 형식과 언어를 모두 성경의 진리에 연결시켰다. 마치 기독교의 건강 회복이 음악적 창의성의 상승과 비례하듯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하나님은 위대한 창조주로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창조한 분이다. 그래서 그 인간에게는 창조성이 부여되었다. 물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스도인만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개혁 시기에 창조적 그림들이 렘브란트(Rembrandt)와 화란의 많은 화가들이 이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예술에 있어서도 방향을 바로 잡았고, 자연과 모든 삶은 위엄 있고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3)종교개혁과 예술 간의 상관관계종교개혁시기 예술은 무시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음악과 미술 분야에 있어서 서로는 좋은 동반자의 역할을 하였다. 찬송가를 통해 음악을 더 잘 사용되었고 음악을 통해 종교개혁의 의지는 더 쉽게 알려 졌다. 그리고 성경의 내용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과 함께 소개되었다. 그림은 성경 속 이야기들을 표현함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성경의 심오함과 그 의미를 전달해 주었다. 미술 작가들은 종교 개혁을 통해 성경을 바로 보고, 새로운 영감을 얻고, 영혼 깊은 곳으로 나오는 것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4.10.22| 11페이지| 1,000원| 조회(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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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친만큼 아름답다 - 헨리 브란트, 케리 스키너
    고친만큼 아름답다헨리 브란트, 케리 스키너 지음죠이선교회출판부서론책의 제목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사람들은 외모를 고치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마음의 변화와 속사람의 맵시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외모는 사람이 보고 중심은 하나님이 보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외모보다 속사람에 더 치중하는 것이 더 성경적인 삶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기준으로 결혼하고 이혼하고 올라서는 것에만 관심이 많다. 이 저서를 통해 왜 고쳐야하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본론1. 내용 요약처음 내용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상담을 통해 평안으로 가는 길이 장소, 활동, 물질 그리고 사람에게 있지 않다고 말한다. 죄를 해결하여 예수께로 가는 것만이 죄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평안을 주는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세상의 것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이다.(요 16:33) 세상의 좋은 것들은 잠시 잠깐 만족과 위안 그리고 성취감을 줄 뿐 진정한 평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상처를 제거하는 치유가 아닌 상처의 치료와 상관이 없는 위안이며, 근본적 치료가 아닌 임시방편의 진통제이다.특히 죄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관계, 마음의 상처, 잘못된 습관 등등(엡 4:31) 이 모든 것은 인본주의 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으며 진통제의 역할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4장과 5장에서 저자의 실례를 들어 주장한다.또한 용서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계속해서 그 올무에 걸리게 되어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 적개심이나 원한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것을 더욱 애지중지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감정에 대해서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나(마 5:44) 사람들이 그 용서와 사랑을 하기 전에 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일은 원한과 분노와 같은 파괴적인 감정을 자신에게 주었던 사람으로 인해 자리 잡혀 있는 감정을 먼저 용서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 해결해야 하는 용서하는 일과 용서받는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다.2. 저자가 책을 통해 제시하는 주제저자는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고 사람을 미워하며 용서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개인적인 심리문제 역시 죄의 문제로 발생하는 것이 있어서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또한 이런 문제는 죄를 해결하면 해결이 되며 성령을 좇아 살면(갈 5:25) 역시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에 대해서 성령 안에서 해결하며 꾸짖고 회개하는 과정을 통해 고쳐 나갈 수 있다고 7장에서 실례를 들어 말한다.3. 과연 저자가 그 주제를 제시함에 있어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제시함에 있어 사용한 방법은?7장에서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이 피해를 입는 사람’, ‘꾸짖고 용서하라’ 의 내용에는 비행기의 날개에 머리를 치이게 한 조종사와 저자 사이에 문제해결과 저자와 아내사이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있어서 4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는 성령 안에서 행해야 한다. 둘째, 행동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셋째,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이 꾸짖음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반응을 다루어야 한다. 넷째,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보상, 처벌, 훈련 그리고 해고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위 4가지 원칙을 자신에게 적용을 하였고 또 다른 내담자에게 실행할 것을 권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대부분의 경우가 바로 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훈련과정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해결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해결이 되었기는 하나 이런 훈련은 다른 어떤 일에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문을 세게 닫는 일이나 안경을 아무데나 두는 일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 참고 기다려주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꾸짖고 용서하는 기본 원칙 외에도 충분한 대화와 적당한 방법론을 통해서도 이런 일은 시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주 실수하는 장소나 물건에 주의 할 것을 메모를 하거나 표시를 해 놓아도 얼마든지 대화를 통한 사전 인식작업을 통해 문제해결에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 원칙 중에 첫째 성령 안에서 한다는 말은 자신의 혈기로 문제를 감정적으로 풀거나 불거지게 만들지 않게 한다는 방향과 넷째 관계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는 얼마든지 다른 지시나 원칙으로 수정할 수 있다고 본다.4. 이 책이 주장을 충분히 하였는가?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명의 저자가 하나의 책에 몇 가지 주장을 하면서 그 맥이 얼마나 잘 통하게 서술을 할 수 있을까 약간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러나 참 놀랍게도 일목요연하게 서술을 잘 하였고 두 명의 저자가 다른 개인적인 실례를 들어서 누가 이 부분을 썼는지 파악을 할 수 있었지, 주장하는 기본 맥락은 마지막까지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또한 내용에 있어서 적절한 예 사용하여 그 내용의 신빙성을 한층 더 해주었다. 게다가 매 장마다 성경구절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단지 사견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것임을 밝힘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받아 들이기에 무리가 없도록 배치하였다.5.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은?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백성이기에 세상 사람들과 문제를 보는 시각이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문제의 원인 진단과 그 처방이 인본주의 방법과 같다면 성경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모두가 무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성경적인 방법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가능성과 확신을 성경에서 찾아낸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안되는 일들이 세상에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말씀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며 그것에 성공담을 제시함으로 인해 목회 현장에 적용이 무리가 아님을 보여준다.책에서 제시한 방법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기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다양한 임상실험을 통해 상담가가 된 전문가의 치료방식을 모든 독자들이 자신에게 찾아온 내담자에게 책에서 제시한 관점에서 다가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실제적인 방법의 제시라기보다는 문제와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죄로 인한 문제점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관점을 일러주는 정도로 볼 수 있다.6. 저자가 자기 주장에 대해 제시한 성경적 신학적 토대는?인간에게 있는 감정의 분출 중에 분노를 조절하는 것에 대해 9장에서 다루고 있다. 저자는 분노를 정상적인 감정이나 성스러운 감정이 아니라고 말하며 분노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성경은 사랑하라고 말하는 성경구절을 제시한다.(마 5:44, 엡 5:25, 딛 2:4, 마 22:39, 롬 12:19, 벧전 2:17, 살전 3:12) 그리고 분노는 옛사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며 죄라고 말한다.(약 1:20, 시 37:89, 전 7:9, 잠 22:24-5, 잠 14:17, 마 5:22, 엡 4:31, 골 3:8)분노는 죄이며 죄에서 구원하실 자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며(행 4:12), 분노의 죄는 다른 죄과들과 마찬가지로 자백하면 씻겨 지고(요일 1:9), 그 분노를 성령의 열매로 바꾸라고(갈 5:22-23) 주장한다. 분노의 문제 뿐 아니라 모든 문제를 역시 하나님께 가지고 가라고(요일 2:1-2)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인문/어학| 2012.05.08| 5페이지| 1,000원| 조회(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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