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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조선시대의 천문학 평가B괜찮아요
    1. 답사코스가. 조선의 천문학 관련 유물 자료 답사① 규장각(천상분야열차지도 고탁본)② 덕수궁 궁중 유물 전시관(천상분야열차지도 각석)③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신?구법 천문도)④ 현대 그룹 사옥(관상감 관천대)⑤ 창경궁(관천대)⑥ 고려대학교 박물관(혼천시계)나. 답사 내용서울대학교 내에 소재하고 있는 규장각을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일정의 답사를 실시하였다. 우선 규장각 내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 태조 때 만들어진 석각본을 보존하기 위해 영조 때 만들어졌다는 천상열차분야지도 목판본과 이에 대한 고탁본을 관찰하였다. 흔히 우리나라 과학사 관련 유물 서적에서 볼 수 있었던 사진의 모습 그대로였다.이후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태조본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을 찾아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이동하였다. 사람 키 하나 정도의 크기에 검은색 돌(烏石) 위에 새겨진 별자리의 모습과 짧은 한자 실력으로 도저히 그 뜻을 가늠할 수 없는 한자 어구들이 흐릿하게 남겨져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이모저모를 뜯어보면 관찰하던 도중 뒷면의 새기다 만듯한 형태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마음에 주변에 계신 전시관 내에서 유물 안내를 담당하시는 분과 궁금한 점들을 몇 가지 여쭈어보았다. 사소한 질문에도 꽤 성의 있게 답변해 주시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주변에 전시된 혼천의, 천문시계 등을 유심히 살펴본 뒤 전시관을 나섰다.자리를 경복궁으로 옮겨 18세기 제작된 신?구법 천문도를 관찰하기 위해 궁중유물전시관을 찾았다. 이는 기존의 전통적인 천상분야열차지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구법 천문도와 제작 당시 중국을 통해 서서히 유입되던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은 신법 천문도를 8폭의 병풍으로 담은 천문도였다. 오랜 시간만큼 꽤나 닳아버린 탓에 잘 확인할 수 없었지만, 세세한 별자리 하나까지 담겨있는 모습을 관찰할 때 이번 답사에 대한 흥미가 점점 고조 되어 감을 느꼈다.다시 전시관을 나서서 택시를 타고 창덕궁 옆에 위치한 현대 그룹 사옥 내의 관상감 관천대를 찾아보시아 왕자하고는 관심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서는 재이가 나타나면 위정자들은 근신을 해야 했었던 이유가 여기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천문학에 관련된 기사가 많이 수록되는 이유 또한 여기 있다.물론 이러한 재이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인가의 한계를 초월하는 자연은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재이에 관한 기록은 언제나 존재 한다. 그렇지만 예전과 조선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러한 재이가 위정자들을 정치적으로 제약하는지의 여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제약은 정확히는 조선시대 이전인 고려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유교가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은 것이 고려시대이기 때문이다. 에서도 재이게 관한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하늘과 인간의 감응에 의한 것이라고 이해하지는 아니 하였는데 이는 자연과 인간사회를 순환하는 질서 원리가 도덕이라는 인식에 이르지 않았음을 말한다. 왕의 도덕적 실천이 두 세계를 조절한다고 믿는 정치이념이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시대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것이 조선시대에 왕들이 군소리 없이 하늘을 섬겼던 이유이다.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하늘을 섬기기 위해서는 우선 하늘을 알아야 한다. 하늘에 관한 관심은 천문학 즉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전반적으로 성리학이 지배하였기 때문에 과학 기술은 천시 받는 경향이 있었다. 양반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하여 사서삼경을 공부하여야 하고 과학기술은 중인이나, 첩소생들이 하는 학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학만은 예외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그러함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천둥이 치고, 가뭄이 드는 것은 하늘이 노했기 때문이고, 하늘이 노한 것은 왕의 정지에 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귀결되게 된다. 백성부터 위정자까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찌 하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생각을 증명해 주는 것이, 고려시대에는 서운관이라는 조선시는 달리 이상한 천문 현상에 대해서는 점성술적인 설명이 따른다. 특히 바람, 비, 눈, 이슬, 서리, 안개, 우박, 천둥, 번개 등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천문학으로 분류할 수 없는 기상 현상 등도 상세하게 풀이했다.천체의 현상을 법칙화한 것이 역법인데, 역법은 정치이념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정확한 역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천체 현상의 법칙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하늘의 법칙 이를 알아내는 것이 성리학 사회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는 천체의 관측과 정확한 계산 기술이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역법, 수준급의 관측기구가 확보되고, 고도의 천문학자들이 동원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다행히도 세종 때의 천문학과 수학 수준은 여기에 미치고도 남았다. 당시에 최고로 여기던 수시력은 원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는 원나라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위도가 다를 한양에서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한양을 기준으로 관측한 우리의 것이 필요했다. 삼각산에서 관측한 한양의 북극 고도는 三十八度小 지금 도수로 환산하면 37°41′76″가 된다. 이는 거의 정확한 측정이라고 한다. 또한 일년의 길이는 365.2425일로 한달의 길이를 29.530593일로 거의 정확하게 계산했다. 역법의 기본이 되는 칠정(七政 : 해, 달, 화, 수, 목, 금, 토)의 복잡한 운동도 정확하게 계산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칠정산 내편에 담겨져 있다. 또한 칠정산 외편에서는 중국 역법서의 오류도 잡아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조선시대의 천문학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내편(좌), 외편(우)(규장각 소장).뿐만 아니라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자료는 성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공부해야할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성리학에서 얼마나 천체의 운행에 관심이 많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3. 조선시대 관측 유물가. 혼천의, 간의① 혼천의세종시대에 제작된 천문의기는 에 거명이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순지가 모두 세계 최정상급이었음을 말해준다.② 간의혼천의의 문제는 혼천의를 구성하는 기둥(距)과 환(環)이 많아 구조가 복잡하여 관측에 불편하다는 점이다. 이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의기가 간의(簡儀)이다.복원된 소간의(여주 영릉). 간의는 중국 원나라의 천문학자 곽수경이 만든 천문 의기다. 현대 천문학에서 적경에 해당하는 천체의 ‘적도수도(赤道宿度)’와 적위에 해당하는 ‘거극도(去極度)’를 측정하는 데 쓰인 관측기기로, 혼천의를 구성하는 부품 중 적도환, 백각환, 사유환만을 따로 떼어내 간략하게 만든 것이다. 혼천의가 천체의 위치뿐만 아니라 시각을 측정하고 태양이나 달의 운동을 측정할 수 있는 것에 반해, 간의는 주로 천체의 위치 측정에 쓰이도록 만든 것이다.세종의 학자들은 혼천의를 간략하게 하는 간의를 만들기 위해 먼저 ‘목간의(木簡儀)’를 제작했다. 목간의란 관측의 기본이 되는 한양의 북극고도를 측정하여 청동으로 된 간의를 만들기 전에 미리 나무를 만든 것이다.조선의 실정에 맞는 역법을 편찬하기 위해서는 한양에서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각과 북극 고도를 중심으로 한 일월과 행성과 천체의 위치를 정확히 관측해야 했다. 관측한 자료는 행성의 위치표를 만든 후 역법이나 천문도 등의 편찬과 제작에 이용되는데, 간의는 단순하고 편리하여 이런 작업에 매우 유용한 기기였다.대간의(大簡儀)는 중국 곽수경의 를 참고로 하여 만들어진 천체 관측을 위한 관측기기이다. 적도환은 주천(周天: 공전)을 365도 1/4로 나누어 동서로 운전하면서 칠정(일월과 5행성) 중 외관입수(外官入宿)의 도분(度分)을 쟀다. 백각환은 1일 중의 시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눈금을 새긴 둥근 환으로 조선 초기에는 1일을 100각으로 했으나 시헌력 도입 이후에는 96각으로 했다. 사유환은 적도환과 직교하며 남북극을 축으로 하여 동서로 회전하게 되어 있고, 그 안에 규형이 있어 상하로 움직일 수 있다. 규형은 속이 비어 있는 통으로 이것을 통해 별을 관측한다. 소간의(小簡儀)는 이러한 대간의를 간단히 만들어 휴대용으로 년)에 돌로 건립한 것이다. 높이 9.5m, 길이 14.4m, 너비 9.8m로써 지금 남아있는 관천대와 비교하여 상당히 큰 규모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이 간의대에 어떤 기기가 설치되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대의 이름이 간의대이므로 앞에서 설명한 간의와 방위의 지표로 삼는 정방안이 있었던 것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헌 자료 속에서 간의대에서 간의와 혼천의에 대해서 강론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할 때 혼천의 또한 대 위에 있었던 것 같다.우리가 답사한 현대그룹 사옥 내의 관천대는 옛날 관상감의 본부가 있었던 북부광화방 내의 광화방관천대로 불리었다. 다른 관천대에 비해 원형 그대로의 보존이 뛰어나 역사적 사료의 가치가 높다고 한다. 다음으로 찾은 창경궁 관천대 또한 예전 서운관 역내의 광화방관천대이다. 임진왜란 때 서운관의 여러 건물이 크게 손상을 입어 숙종 14년(1688년)에 창덕궁 금호문 밖에 옮겨서 재건되었으나 현재에는 창경궁 내로 옮겨져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본래의 설치된 방향과도 달라지는 등의 훼손이 많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제기되고 있다.한양에 있던 대간의대에서나 여러 관천대에서 관측하기 어려운 천문 현상이 생길 때가 종종 있었다. 그것은 주로 일식과 월식, 그리고 혜성과 같은 현상이 고도가 낮은 지평선 근처에서 일어날 때이다. 가령 일식이 동이 틀 무렵에 일어날 때는 동쪽 지평선에 가까운 위치에서 발생하므로 간의대나 관천대에 올라가 보아도 인가나 높은 나무에 가려서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주변의 높은 산을 임시 관측소로 이용하였다고 한다.라. 천상열차분야지도①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 배경과 독자성에 관한 학계의 논쟁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돌에 새겨 제작한 천문도이다. 우리나라 전통 과학사상 기념비적인 유물로서, 조선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했던 하늘에 관한 지식을 총집약해 놓은 천문도이다. 서울 정도 600년에 버금가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물이지만, 아직 까지 .
    인문/어학| 2004.12.28| 18페이지| 1,000원| 조회(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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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이중나선'을 읽고 평가A+최고예요
    이중나선을 읽고(The Double Helix by James D. Watson)1. 서 두이 책은 Nature誌에 라는 제목의 논문 한편을 싣기까지 왓슨과 크릭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을 둘러싼 여러 동료 과학자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왓슨의 시각에서 기술한 책이다. 1950년대 DNA의 구조가 밝혀짐으로써 향후 50년 동안 생명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DNA의 복제, 전사 등에 이어 단백질의 합성 과정이 규명됨으로써 최근 인간 게놈 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인간의 모든 유전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의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이렇듯 생명 과학에 있어서 놀라운 획기적인 전환을 만들어낸 DNA구조의 발견은 그 과학적 성과와 의의만큼이나 꽤나 흥미진진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왓슨의 책에서 기술된 DNA의 구조를 발견한 과정을 정리해보고, 그 과정 속에서 경쟁자 또는 조력자로 그려지고 있는 여러 과학자들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책 속에 그려지고 있는 과학자들의 세계를 엿보고 그에 대한 나의 소고를 적어보도록 하겠다.2. DNA의 구조 발견 과정1951년 가을 프랜시스 크릭은 당시 서른 다섯의 나이였으며 원래 물리학을 전공하였지만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이란 책을 읽고 생물학에 대한 연구에 심취한다. 제임스 왓슨은 이 책의 저자로써 당시 단백질의 3차원적 구조를 연구하고 있는 여러명의 물리학자 및 화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케임브리지대학의 캐븐디쉬 연구소에 있던 중이었으며, 이 곳에서 크릭과 만나 DNA의 구조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이 둘은 유전물질이 같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DNA에 대한 관심으로 연구를 시작하려하나, 당시 영국에서의 DNA 연구는 사실상 모리스 윌킨즈의 개인소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영국의 학풍상 윌킨즈의 연구에 왓슨과 크릭이 뛰어든다는 것은 페어 플레이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둘은 선뜻 연구에 나서지 못하였다. 윌킨즈는 정열적인 여성 과학자인 로절린드 프랭클린(로지)과 공동 연구를 진행 중에 있었는데, 회절에 관한 숙달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윌킨스나 왓슨, 크릭 DNA 연구에 있어서 그녀의 도움은 절실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당시 DNA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사람은 당대 세계 최고의 화학자로 일컬어지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라이너스 폴링이 있었다.크릭은 유전물질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올레 몰뢰의 연구실에서 파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다가 윌킨즈가 참석한 학회에서 그의 DNA X선 회절상을 보게되고 DNA연구에 대한 첫발을 내딛는다. 당시 라이너스 폴링이 해결한 단백질 구조 중 알파나선에 대한 실마리는 왓슨에게 DNA 구조에 대한 영감을 제시하게 된다. DNA 구조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X선 회절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함을 깨닫고 왓슨은 X선 회절의 분석 기술 습득을 위해 노력했다. 당시 캐빈디쉬 연구소 내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연구에 대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크릭은 왓슨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나선 형태의 DNA 사슬을 구상하나 실마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DNA의 안정적인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데옥시리보오스와 데옥시리보오스 사이의 인산디에스테르 결합의 인산기가 이온에 의해 DNA 나선의 안쪽 결합을 담당할 것이라는 잘못된 방향 설정이 왓슨과 크릭을 고전케 하였다.계속되는 실패에 지친 왓슨은 잠시 DNA가 아닌 RNA로 구성된 TMV 연구로 방향을 돌려 X선 회절의 분석 기술을 가다듬으며, 그들의 연구를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다. TMV 연구를 통해 나선형의 X선 회절 사진에 대한 분석력을 닦은 왓슨은 생화학자 에르빈 샤르가프가 제시한 DNA의 화학조성에 관한 기묘한 규칙성에 주목하게 된다. DNA를 구성하는 염기인 아데닌 분자의 수와 티민 분자의 수가 서로 비슷하고, 구아닌 분자의 수는 시토신의 분자의 수와 같다는 사실을 통해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시토신사이에 서로 결합이 형성되지 않을까하는 가능성을 타진해 보게 된다. 이는 그 당시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던 유전자 상보적 복제의 원리와도 부합하는 가 논문을 발표한다. 당-인산 뼈대를 안쪽에 둔 세 가닥의 나선구조 모델이었으나 왓슨과 크릭은 이 모델이 잘못된 것임을 직감한다. 이후 왓슨과 크릭은 기존의 불분명했던 A형 구조의 DNA X선 사진보다 진일보된 로지의 B형 구조의 DNA X선 사진을 보게 되고, 이를 통해 DNA는 34Å의 반복주기를 갖는 나선 구조임을 확신하게 된다. DNA의 X선 사진을 통해 계산된 수치를 이용 직접 분자 모형을 조립하는 방법으로 DNA의 구조를 연구하면서, 염기가 안쪽에 놓이고, 당-인산 뼈대를 바깥쪽에 배치한 이중나선의 형태를 구상하게 된다. 처음 왓슨이 고안한 모델은 아데닌은 아데닌과 짝을 이루듯이 같은 염기쌍끼리 서로 상보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모델이었으나 에놀(Enol)형태보다 케토(Keto)형태가 더 주된 호변이성이성질체(Tautomerism)의 형태임을 제리 다너휴에게 지적받고 근본적으로 염기끼리 수소결합이 불가능한 잘못된 모델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모델은 앞서 이야기한 샤르가프의 실험 결과 또한 설명하지 못하는 모델이기도 했다.염기간의 수소 결합의 배치를 고민하다 우연한 발상으로 인해 아데닌과 티민의 결합체와 구아닌과 시토신의 결합체가 모양이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DNA X선 사진의 결과물이 일정한 20Å의 직경을 갖는다는 사실과도 부합하며, 샤르가프의 실험 결과를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는 성공적인 모델이었다. 또한 이러한 상보적인 염기의 배열은 유전자의 복제 현상의 실마리를 규명해 낸 것으로 유전자 복제 시 풀어진 이중나선의 한 가닥이 주형으로 작용하여 주형 염기와 이루게 되는 수소 결합력에 의해 상보적 염기쌍이 이끌리게 되고, 이러한 염기쌍을 지닌 뉴클레오티드의 순차적인 중합이 이루어지는 복제 메커니즘 또한 성공적 설명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모델은 반 보존적 복제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앞에서 고안된 DNA 구조를 재현한 분자모델로써 입체적인 구조를 실제로 검증하는 작업을 거친 뒤 왓슨과 크릭은 90ish to suggest a structure for the salt of deoxyribose nucleic acid (D.N.A.). This structure has novel features which are of considerable biological interest.”“우리는 여기에 디옥시리보스핵산(D.N.A.)염의 구조를 제창하고자 한다. 이 구조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흥미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비록 이 두 과학자의 연구 성과가 900단어 남짓의 짧은 논문으로 집약되었지만, 향후 이 한편의 논문은 50년간의 유전공학자들에게 무궁무진한 과제를 부여하였고, 앞으로도 수많은 연구의 기초가 될 것임은 더할 나위 없다.3. 과학자의 세계와 심상이 책은 처음 출간된 이후 독자들 사이에서 다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생물학적 업적으로 손꼽아도 손색없는 DNA 구조의 발견 과정이 일반인들이 생각했던 바와는 매우 다르게 묘사되고 있었기에 그랬던 것으로 생각된다. 과학자의 세계 또한 인간들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이므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사회의 면모가 그대로 투영되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우선, 글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생명과학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 될 것을 직감한 여러 과학자들의 치열한 연구 경쟁의 묘사이었다. DNA 구조 발견의 공로가 인정되어 훗날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는 왓슨과 크릭, 윌킨즈였으나 당시 DNA 구조에 대한 연구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나머지 과학자들, 로절린드 플랭클린과 라이너스 폴링이 있었기에 DNA 구조의 발견은 가능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진화론하면 다윈, DNA하면 왓슨과 크릭을 연상하도록 DNA의 구조를 반드시 해명하고 싶다”는 책 속의 저자 말처럼 우리는 DNA 구조의 발견을 이야기할 때, 왓슨과 크릭만을 기억하고 있다.얼마 전 배아 줄기 세포를 얻기 위한 인간 배아 복제 연구의 성공으로 큰 주목을 얻고 계신 서울대학교 황우석 교수님이까지 과학적 연구를 유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과학 분야의 성격상 같은 연구 성과에 대해서도 몇 시간 앞서 논문을 공표하느냐에 따라 그 과학적 업적의 귀속이 좌우되는 것을 고려하여,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하신 적이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자신의 오랜 노력이 순간의 늦어짐 때문에 과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과학자의 불안감을 십분 엿볼 수 있다.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연구를 수행한 저자 왓슨은 자신의 연구 성과가 다른 우수한 과학자, 특히 라이너스 폴링을 지목하며 그에게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녀왔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의식은 보다 진취적으로 연구 활동을 고무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이것이 지나치게 된다면, 과학 지식의 적절한 공유를 통해 훨씬 효율적인 연구수행을 방해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오늘날 과학적 연구 수행이 보다 고도화된 환경 속에서는 이러한 과학자들 간의 지나친 경쟁의식을 지양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서로 협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책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당시 과학자들의 위상은 현재 우리나라 사회 속에서 인식되고 있는 과학자의 위상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를 동경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자의 사회적인 입지가 그다지 넓어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연구 과정 속에서 중간 중간에 왓슨이 묘사하고 있는 그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다양한 사교적 활동을 벌이는 직업으로 과학자를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과학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자신들의 직업에 대한 대단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음은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우리사회 속에서 맹목적으로 과학자에게 좋은 대우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을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환경 속에서 과학이라는 학문을 중요한다.
    독후감/창작| 2004.12.28| 5페이지| 1,000원| 조회(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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