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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론과 진화론의 비교 분석 평가A좋아요
    저는 이번 수업을 통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창조론과 진화론 두 가설을 공부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하게 되었다.지금까지 배워오던 과학의 이름을 내세워 배웠던 진화론.종교적인 믿음이었기 때문에 배제가 되었던 창조론.이 두 가지 이론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과학적이란 말이 너무나 무색해버린 진화론과 점점 알아 가면 갈수록 과학적으로 변하는 창조론. 하지만 두 가지 이론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 해줄 결정적인 근거가 없는 상태로 막을 내려야 할 것 같다.창조론과 진화론의 서로의 주장을 정리 해보고 비교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1 진화론과 창조론어느 것이 옳고 거짓이냐가 아닌 각각의 주장하는 점과 다른 점창조론 : 우주와 생명체를 창조한 자가 있다는 가정 하에 출발하나의 창조주가 모든 생명체를 완벽한 설계를 통해 만들었다. 성서를 통해 그 사실을 주장 하고 있다.진화론 : 우주는 무에서 생겼으며 창조 된 게 아니라 우연히 저절로 생명체가 생겼다는 가정 하에 출발창조론과 진화론은 누가 확실히 옳다고 증명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론'이라는 글자가 붙은 것입니다. 증명은 예외 없이 같은 결과를 가져와야 하고 언제든지 실험을 할 수 있어야 나오는데 창조와 진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둘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무엇이 옳다고 무조건 우기는 게 아니라 두 개의 주장을 보여주고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2 창조론=종교, 진화론=과학 ?창조론 : 종교라는 선입견 없이 과학적인 근거나 사실만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바라보겠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은 너무 창조론 = 종교 이런 마음가짐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창조론, 진화론 모두 완성되고 검증된 이론이 아닙니다. 당연히 반박과 주장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진화론 : 요즘은 방사선 동위원소를 가지고 지질의 연대를 측정 할 수 있다. 그 지질 연대별로 여러 가지 생물 화석을 정리하면 시기별로 생물의 종류가 변함을 알 수 있다. 또한 해부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꼬리뼈, 중추 돌기 등 퇴화의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퇴화도 진화의 한 과정이다. 창조론에서 진화론이 불완전하다면서 그것이 틀렸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원래 과학 이론이라는 게 오랫동안 시행착오와 수정을 거치면서 발달해나가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처음부터 정답을 내놓지 않았으니 틀렸다" 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3 창조론과 진화론의 주장창조론의 증거는 창조론의 기본가설로부터 나옵니다.창조론의 가설 : 태초의 인류로부터 현재 인류로 번창/ 각 동식물의 종으로부터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번창함 현재 과학적 증거는 화석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물리적 화학 실험적으로도 창조론에 더 가깝습니다.화석은 종의 구분이 뚜렷하고 생물학적 교배로는 종으로만 2세가 태어나며 물리화학적으로는 유에서만 유가 형성되며 아무리 간단히 미생물도 고도의 복잡한 설계를 가졌다는 것 입니다.객관적인 과학적 입장으로 보면 창조론이 보다 더 과학에 가깝다고 보인다.진화론의 가설 : 무에서 유가 생겨남 / 아메바에서 모든 인류 동식물로 진화함.無에서 有로 탄생하여 지금까지 대진화 소진화를 거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뿌리에서 진화 되었다. 위에서 말한 것 같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고 지금까지 단지 가설을 가설에 맞게 끼워 맞춰 나가면서 여러 가지를 주장 해 나가고 있다.진화론이 아니므로 창조론이 맞는다는 것이 아니다. 위의 답변처럼 창조론이 보다 과학적이므로 진화론이 틀리다는 게 더 맞는다고 봅니다. 진화론이 주장하는 과학적 증거는 사실 창조론의 과학적인 증거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진화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창조가 맞다가 아니라 창조되었다고 봐야할 복잡하게 설계된 흔적의 생명체들과 각 종의 세분화면 특성들 화석의 뚜렷한 종의 구분 등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많은 증거 이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역학적 고찰, 생물학적 고찰, 지질학과 대홍수, 화석학적 고찰, 수학 확률적)#4 창조론과 기독교성서를 기본으로 시작된 창조론을 지지 하는 기독교는 과학적 집단이나 단체도 아니고 그들은 과학자들도 아니다. 물론 기독교인들 중엔 과학자도 있지만, 기독교 = 과학자는 아닙니다. 창조론 자체는 하나의 종교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독교의 성경 글자 그대로를 과학에 적용할 순 없다. 창조론은 종교를 배제한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기독교의 성경과 다를 수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5 창조론 / 진화론유럽에서 창조론은 진화론보다 먼저 재기되었던 이론입니다. 창조론 이후 진화론이 등장 하였다. 종의 기원에서 관찰 가능했던 과학적 사실들과 다윈의 상상력은 분리 검증 되어야 한다. 진화론은 상상력과 과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실 사이에서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과학은 있는 사실만 말하면 되고 거기에 어떠한 상상력을 덧붙여서 믿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인류의 기원을 아메바에서부터 주장하는 진화론은 거기에 상당한 상상력이 결부되고 있다. 지금 있는 사실만을 살펴보면 창조론이 보다 더 과학적이고 납득할 만한 일 이 되었다. 진화론도 이젠 하나의 종교가 된 거 같다. 관찰 불가능한 현상으로부터 출발하고 모든 결과를 이론에 맞춰서 설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어차피 그것이 우리가 과거로 되돌아가서 확인 불가능한 가상의 세계로부터의 출발이라면 두 이론 모두 과학의 탈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구태여 과학인척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때문입니다.#6 창조론과 진화론의 과학이란?과학이란 그냥 순수한 객관적 사실만을 살펴보고 연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증명 해낼 수 없는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애써 어떤 하나의 이론에 꿰어 맞추려는 시도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소리 입니다. 창조론 진화론은 현재의 과학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자연과학| 2007.12.08| 3페이지| 1,000원| 조회(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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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건축 역사의 흐름
    시대구분과 건축 양식1. 개 요한 나라의 건축문화는 시대 변천에 다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여건이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이념과 가치관을 만들어 내는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어느 시대의 건축 문화적 특성을 그 시대의 건축 양식이라고 하며, 일반적인 시대구분 방법은 인문적인 여건 변혁의 근본 원인이 되는 국가 정치상황의 큰 변화에 따른다.시 대 구 분 과 건 축 양 식시 대건 축 양 식왕 조연 대도 읍건 축 유 구원시시대원시 건축구석기 시대B.C 3000년경~B.C 5000년경유사이전(有史以前)의 시대로서 원시 주거지 및 원시 분묘지신석기 시대B.C 5000년경~B.C 700청동기 시대B.C 700~B.C 400고대연맹왕국건축낙랑 건축고조선B.C4세기경 ~ B.C 108한국 건축문화의 발아기로서, 낙랑의 고분들과 만주의 집안 및 평양지방의 고구려 고분들, 익산의 미륵사지, 부여의 정림사지탑, 백제탑, 경주의 황룡사지와 분황사모전석탑 등이 있다.부 여B.C 4세기경 ~ 494삼 한B.C 3세기경 ~ 369한시군B.C 108 ~ 313낙랑토성지고구려 건축고구려B.C 37 ~ 668집안?평양백제 건축백 제B.C 18(?) ~ 663공주?부여신라 건축신 라B.C 57(?) ~ 657경주중세통일신라 건축통일신라657 ~ 935경주중세 전반기 통일신라시대는 당의 영향을 받았으며, 불교가 융성하여 장대한 사찰들이 건축 되었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은 불국사 및 석굴암등이 있다.발 해698 ~ 926용천부고려 건축고 려초기918~1126개성중세 후반기 고려시대는 초기에는 송의 영향을 받았으며, 불교의 전성시대로서 한국의 최고의 목조 건축물에 속하는 안동봉정사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있다. 후기의 건축물로는 예산 수덕사 대웅전, 경천사지 10층 탑이 있다.중기1126~1258개성?강화도말기1258~1392개성근세조선 건축조 선초기1392~1592서울초기에는 명의 영향을 받았으며 대표적인 건축물로서는 서울 창경궁 및 숭례문, 평양 보통문 등이 있다. 후기경사로를 만들기도 하였다.?지붕을 지탱하기 위하여 수혈의 안쪽 벽을 따라 거의 원형으로 기둥을 세운 유구가 발견?우리나라의 수혈 주거지로는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평남 온천군 운하리 궁산, 함북 웅기 서포항, 평북 중간군 토성리, 서울 암사동, 공주 석장리, 부산 동삼동 등이 있다.신석기시대의 유구명 칭토지?지형수 혈노 지출 입 구주 요 유 물지탑리토성 내평지원형,바닥 점토다짐중앙, 타원형계단식1개소돌창(석창), 돌도끼(석부), 토기토성리토성 내평지장방형중앙, 타원형돌도끼, 돌화살촉(석족),가락바퀴(방추차), 토기운하리궁산작은 구릉지원형,바닥 점토다짐중앙, 타원형원추형?몽고포식 주거(과도기형)서포항작은 구릉지원형,바닥 점토다짐직경 4.2m중앙, 원형골각기, 그물추(망추), 돌도끼, 돌화살촉암사동강가원형 또는말각방형직경 5.5~6m중앙, 원형빗살무늬(즐문)토기, 석기, 뼈 조5◎ 청동기 시대?무문토기(무늬 없는 토기)를 사용하였다.?분묘(지석묘, 적석장, 석관장)와 입석을 하였다.?집단적인 취락 생활을 하여 읍락 사회를 만들었다.?수형주거로서 주초를 놓아서 기둥을 세웠고 주거지 안에 칸막이가 있었던 흔적으로 미루어 보아 주거공간의 기능분화가 나타났으며 작업내용에 평탄한 돌을 사용하였다.?대부분의 평면은 거의 장방형이며, 수혈의 단변과 장변의 비율은 1:1.4가 일반적이다.?바닥은 신석기시대와 같이 점토다짐으로 되어 있다.?주거로 출입하기 위한 시설은 거의 없어졌으며, 지붕을 지탱하기 위한 기둥을 수혈의 장변에 평행 하게 3~4줄로 배치 하였다.?기둥 배치로 보아 맞배지붕 또는 우진각지붕으로 추정 된다. 수혈 주거지로는 평북 강계 공귀리, 평북 영변군 세죽리, 함북 무산군 호곡동, 황해도 송림시 석탄리,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 경남 진양군 대평리, 충남 서산군 해미, 충남 부여군 송국리, 경기 파주 교하리 및 옥석리, 함북 회령군 오동 등이 있다.청동기시대의 유구명 칭입 지형 상주 요 유 물수 혈노(爐)공귀리강변 평지방형, 장방형점토다짐부정형작업대, 대석(大石),주로 북위의 영향을 받았으며, 진취적이고 건설적이며, 미의 목표가 세찬 힘의 표현이였다.고구려 벽화 고분의 우부주형도○ 도성?궁궐 건축?도성으로는 통구에 국내성, 위나엄산성과 환도성, 평양 대성산 밑의 평양성, 청암리 토성이 있다. 또한,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성곽도는 요동성총, 약수리 벽화 분, 용강대묘 및 삼실총이 있다.?궁궐건축은 『사기-천관서』에 있는 오성좌위에 따라 배치된 것으로 추측되며, 통구 국내성에 남아 있는 궁지초석과 평양 대성산 부근의 안학궁지 및 청암리 유지(遺址;터)가 있다.○ 사찰 건축?사찰건축의 기본 배치는 왕궁 건축에서 유래되며, 백제의 1탑식 가람 배치에 영향을 주었다.?청암리 건축 군지는 가람지로서, 중앙에 8각형 목탑기단부가 있고, 그 좌?우?북측에 방형 금당지가 세 개 있다. 이것은 3금당 형식이라고 부르며 한 대의 천문점성 사상에서 유래된다.오성좌와 청암리 건축군지 배치형태의 비교도○ 주거 건축?서민은 장갱을 만들어 온돌과 난방용으로 하고, 귀족은 안학3호분의 벽화로 볼 때 부엌, 창고, 방앗간, 고깃간, 와양간 등의 부속 건축물이 독립적으로 건축되었다.?누목식 건축과 고상식 건축이 있으며, 마선구 1호분의 벽화에서 고상식 귀틀집이 나온다.○ 분 묘?적석총(고구여 고유 묘제), 석총묘, 토총묘가 있다.?석총묘는 단형으로 된 장군총, 태왕릉, 천추총(대석총)이 있고, 토총묘는 연도가 있는 횡혈식 석실을 봉토로 덮는 형식으로, 인자 대공과 소로를 갖는 천왕지총, 팔각쌍주의 쌍영총, 각저총, 무용총, 구갑총, 성총 그리고 통구 사신총, 웅장한 사신도가 그려 져있는 강서 우현리 대총이 있다.◎ 백제 건축○ 개 요?백제시대의 건축물은 현존하는 일본 나라현 호류사 5층탑과 금당 및 부여박물관 소장 동편탑으로 미루어보아 고구려와 별로 다르지 않은 포작 집으로 판단된다.?건축의 세부도 고구려와 비슷하여 기둥에는 배흘림이 있고, 기둥 상부에는 주두가 있어 그 굽이 곡면으로 되어 있고, 굽받침이 있으며 소로도 주두와 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삼국 중에서 문화 발전이 가장 뒤졌지만 북위의 영향을 받은 고구려와 남조의 영향을 받은 배제의 문화를 동시에 받아 좋합하여 신라적인 감각으로 재 창조 하였다.?『삼국사기-옥사조』와 출토된 기와조각들,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조 부재 등으로 미루어 주두, 첨차, 소로 등으로 포작한 목조가구식이었다.○ 도성?궁궐 건축?돌과 흙으로 쌓은 월성, 금성, 만월성이 있다.?궁궐건축은 남당이라는 정청과 대궁, 양궁, 사량궁등 궁 안의 일을 보는 부서 등이 「삼국사기」기록에 남아 있다.○ 불교 건축?사찰 가람 배치는 1탑식 가람 배치로서, 흥륜사지, 황룡사지가 있다. 특히, 황룡사 가람은 삼국시대의 가람배치 형식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금당 좌우에 또 다른 두 개의 전각을, 탑 전방 좌우에는 또 자른 건축물을 배치한, 고구려의 3금당 형식의 변형이다.?대표적인 사찰로는 황룡사, 실상사, 지원사, 삼랑사, 분황사, 영묘사 등이 있다.?탑의 기단은 대부분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황룡사 9층 석탑은 한국 최대의 목조탑이었으나 몽고의 침입시 소실되었다.?분황사 모전탑은 본래 9층탑으로 안삼암을 전(벽돌)처럼 깍아 만들어 축조한 모전석탑이다.○ 분 묘?외형은 모두 큰 봉토분으로 되어 있으나, 내부 구조는 적석목곽분과 석곽분의 두 형식으로 나누어지며 소수의 석실분이 있다.?적석목곽분은 동일 봉토 안에 한 개 이상의 목곽이 들어가는 다곽식묘와, 봉토가 연접와어 표형분이라 불리우는 연봉형묘가 있고, 석곽분은 관입구를 상부에 만든 종광식과 전면에 두어 연도를 갖고 있는 횡광식이 있다.?대표적인 것으로 금관총과 금령총, 경주 155호고분이 있다.3. 중세 건축 ◎ 개 요○ 당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독자적인 특성으로 발전 시켰다.○ 민족의 호국사상을 밑바탕으로 하여 천재적인 소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궁궐 건축○ 장엄 하였으나 현존하는 것은 없고, 그 옛터로 임해전지, 안압지 및 포석정이 있다.○ 와당과 전은 무늬와 종류가 다양하고, 그 모양이 우아하고 정교하여 한국 고유의 특색을 성 기법, 척도 기준사용, 기하학적 기법을 사용하였다.○ 분묘?부도?분묘- 왕가의 능묘에는 석실묘가 사용되었으며, 당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갖추어진 능묘제를 만들었다.- 능묘로서 태종무열왕릉, 봉릉, 각간묘, 신문왕릉, 성덕왕릉, 김유신묘, 문무왕 수중릉이 있다.?부도- 불승도들의 분묘인 부도 축조가 성행하기 시작 하였다.- 팔각당식이 기본 형식이며, 그밖에 석종형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원주 법흥사지 염거화상부도, 창원 봉림사 진경대사 보원공탑,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 울산 대화리 대화사지 12지 부도가 있다.4. 중세대 건축 < 고려 건축 >◎ 개 요고려시대 건축 특성구분내용초 기중 기후 기시 기태조 원년~인종 4년(918~1126년)(금과 대외적 평화 관계)『훈요십조』 남송과 교류 활발인종 4년~고종 45년(1126~1258)(원과 강화 조약)무신정권, 몽고 침입고려청자 손실고종 45년~우왕 14년(1258~1392)(고려 멸망)특 성신라 예술문화와 북송?요 문화 흡수제도?문물 다수 발견주심초 제1형식 사용남송 복건지방 건축형식과 종래 목조 건축이 발견주심포 제 2형식 사용몽고의 풍속문물의 도입으로 문화의 순수성이 사라짐불교 타락원의 영향으로 다포형식 사용건 축안동 봉정사 극락전예천 개심사 5층 석탑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예산 수덕사 대웅전남계원지 7층 석탑황주 심원사 보광전경천사지 10층 석탑◎ 도성?궁궐 건축- 왕궁지는 본궐인 개경의 만월대가 있고, 정자와 명화?과수등을 심은 수덕궁이 있으며,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여 원의 궁궐건축 형식을 본받아 지은 수녕궁이 있다.◎ 불교 건축○ 사찰 건축?신라의 불교문화를 이어 받았고, 송의 영향을 받았으며, 후기에는 원의 영향(다포형식)을 받았다.?사찰의 배치 형식은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되었던 2탑식 가람 배치가 계속 사용되었고, 중기 이후에는 불교와 민간 신앙의 샤머니즘 요소가 가미되어 밀교적 방향으로 정연한 배치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이었다.?중기에 도교의 영향으로 칠성각, 영산전, 산신각 등의 건축나왔다.
    공학/기술| 2007.12.08| 8페이지| 1,500원| 조회(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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