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북은 이제까지 성교육이 손을 못댄 과제. 그러니까 ‘성을 사회적으로 설명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객관화된 성이 아니라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속에서 기능하는 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이 책은 성의 사회적 성격을 가르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성이 어떻게 긍정적이고 포용력있는 사회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준다. 그 출발은 물론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저자 아멘트가 우리에게 권하고 있는 성교육의 핵심은 개인에게 자유를 주고 책임을 요구한다는 공식이다.저자가 부제에서 밝힌바, 이 책은 원래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위한 계몽서로 씌여진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젊은시절은 뒤로한 어른들이 읽어도 무척 배울것이 많은 책이다. 그러므로 아멘트가 맨앞 부분에서 권하고 있는대로 이 책은 ‘건너뛰지 말고, 재미있을 듯한 부분만 골라읽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고 꼼꼼하게 읽어야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섹스북이 ‘성 계몽서’의 범주의 들어있다 하여 고리타분한 한국의 성교육 관련 서적과 비교하면 안된다.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나 성욕은 건전한 신체적 정신적 활동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등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도덕 교과서와는 천지 차이다. 한국사회에서 성교육은 어디서고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포르노’로 왜곡된 성을 배우고, 여자아이들은 ‘하이틴 로맨스’로 역시 현실에 없는 성을 꿈꾸게 된다. 그나마 개방적인 독일에서도 충분히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니만큼, ‘젊잖은’ 우리의 정서에 비추어 본다면 다소 파격적이라는 부분이 있을수도 있겠다. 오죽하면 청소년 성 계몽서라면서 ‘19세 미만 구입불가’ 딱지를 붙여놨을까? 한국의 이런 고리타분한 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상하다.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성을 비롯한 주변 문제 (사랑, 결혼, 에이즈, 낙태 등) 들을 바라보는 두 성인 (아멘트 박사와 울리케)의 관점이다. 그들은 성을 부자유와 예속의 속박에 두려워 어떠한 의도도 경계한다.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결혼제도, 성을 상품화하기에만 급급한 자본주의 소비사회, 몸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하는 억압적인 법과 제도,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는 그럴듯한 담론들이 모두 경계의 대상이다. 그들은 시종일관 진보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그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미덕은 책의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러스한 감수성이다. 단순한 농담이나 말장난을 넘어서는 기상천외한 장난들도 종종 눈에 띈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임신중절을 규제하는 판결을 풍자하는 낙태수술업자연맹의 가상 광고, 독일어 ‘키스’를 가지고 만들어 낸 엽기적인 파생 단어들, 남성 성기의 크기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세태를 제압하는 한 컷의 비쥬얼 등 일일이 이곳에 옮겨 적는 것이 부질없음을 잘 알지만 혼자만 웃기에는 너무 아깝다.기억에 남는 부분은 여자나 남자나 결혼을 하더라도 바람은 절대 피우지 않겠다는 맹세는 거짓말이 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바람을 피는 것을 서로 인정해주더라도 그럴때마다 조심하자고 말해야 한다면 그건 사생활 침해가 되고 질병은 퍼지는데 서로 사생활도 보장해 주려면? 그래서 부부사이에서도 콘돔을 사용하자는 의견이 중간부분에 나오는데 참 인상적이다.지구상에서 가장 양성이 평등한 나라 스웨덴도 여성 불평등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들으면 좀 황당하지만, 그들의 고민은 여자국회의원이 50%에 달하지 못하다는데 있다. 우리가 가서 보면 여성 낙원이지만, 스웨덴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은 오죽할까? 독일에서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육아 휴가를 무급으로 장기간 받을수 있어서 언뜻 보면 차별이 사라진 제도가 정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버지가 육아휴가를 받기가 어려운데 그 이유는 경력이 같아도 남성의 월급이 더 많기 때문에 어머니 혼자 벌어서 가사 경제를 감당하기는 어렵다는데 있다는 현실은 이 책은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200420552 경영학부 남경호대중성-대중성을 사전에서 찾아보면1.일반대중이 널리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성질.2.대중의 기호에 맞는 성질 ex)“이 잡지는 대중성이 결여되어 있다.”라고 명시 되어 있다.흔하게 이러한 대중성은 상업성과 연관을 맺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상업성과 대중성의 가장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업성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상업성은 말 그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홍보를 하는 것이며, 대중성은 영리보다는 홍보자체에 첫째 목표가 있는 것이다.상업성이 있다면 대중성은 따라오지만 그 역 즉, 대중성이 있지만 상업성이 따라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분야는 대중성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노력을 한다. 예술 분야, 체육 분야는 물론이고, 심지어 철학도 대중성을 이루기 위한 시도를 한다.실례로 오페라를 대중적으로 하기위해 팝페라라는 변형된 장르로 대중성을 노리고, 체육의 경우 비인기종목의 대중화를 위하여 규칙을 바꾸어 흥미를 높이기 위해 애쓴다. 이 모든 것들이 영리를 목적으로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중성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대중성에 에매한 점이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총무인 박정하씨의 글에서,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한철연이 고민해온 문제들 중에 하나는 전문성/대중성의 문제이다. 좁은 아카데미즘에 빠져있지 않고 현실과 결합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자 하는 학술연구자들이 부딪히게 되는 고민 중 하나는 전문성과 대중성의 결합 문제이다 .한철연의 경우도 철학 운동의 활동 방향을 놓고 끊임없이 이 문제에 직면해 왔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문제 삼는 바탕에는 운동성이란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전문성과 대중성이 결합될 때 가장 강한 운동성을 가진다는 점은 자명한 공리인 듯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문성과 대중성 중에서 어느 쪽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라는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성과 대중성의 결합이라는 것을 이념으로 하면서, 현실공간 속에서 어느 쪽에 더 강조점을 두어야 강한 운동성을 담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 가지 방식으로만 정해지지는 않는다. 객관적으로는 현실상황과 역량에 따라, 주관적으로는 그 조직의 역량에 따라 선택하여야 할 문제이다.”‘대중성과 전문성의 중점에 대한 선택의 문제에서 어느 분야나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나의 견해는 지나친 전문성이 대중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멀어져 버리고, 지나친 대중성은 영리를 위한 상업성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이것의 중점을 잘 찾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는 일이 최우선이고, 그것이 대중들이나 모든 이들이 원하는 일일 것이다.’대중문화현대의 대중문화는 이전 단계에서 볼 수 있던 일부 엘리트만의 고급문화와, 기층(基層)에 있는 토착적인 민속문화와의 사이에 나타난 중간문화를 이르기도 한다. 종래 문화의 향수(享受)는 지극히 한정된 일부 계급 ·계층 사이에서 고급문화화 하였다. 그러나 생활수준의 향상 및 교육보급의 확대에 따른 문화향수 능력의 향상과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문화의 자유스러운 향수범위를 확대하여 대중문화 성립의 기반이 되었다.대중사회와 문화와의 관계는 가치체계의 전달형태나 사회화의 기능, 레크레이션이나 긴장처리의 기능 등을 분석함으로써 밝혀진다. 특히 전자의 경우로는 교육의 보급이나 매스 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방대한 인구가 문화의 향수자가 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6.25전쟁이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증설되었다. 또한 전국적인 텔레비전방송망이 갖추어지고, 출판물과 신문면수(新聞面數)가 증가하는 등 매스 미디어의 발달도 현저하다.이와 같이 대중이 교육에 의해서 사회화되는 기회가 증대되고, 매스 미디어와의 접촉기회가 많아졌다는 사실은 확실히 문화의 대중화를 상징한다 하겠으나, 이를 역(逆)으로 보면 교육이 산업화되고 확대되며, 매스컴 기업체가 거대화하여 문화의 향수
인간학 레포트200420552 (경영학부) 남경호저는 이번 레포트를 위해 체 게바라 평전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우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의 주인공이신 신영복씨는 1968년 7월 통혁당 사건으로 투옥되어 무기형을 받아 대전 전주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88년 8월 15일 가석방되었다.통혁당 사건이 어떤 사건이었길래 여러 명이 사형을 당하고 신영복씨도 무기형을 선고받았다가 20년을 살고 가석방 되었는지 궁금해서 통혁당 사건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 통혁당 사건은 1968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의 규모가 남한의 상당지역에 미치고 있고 통혁당이 재건되어 현재까지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재편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정도로 지속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 정도로 규모가 큰 사건이었고 그러했기에 통혁당 활동을 한 신영복씨가 무기형을 받은 것은 당시 법과 상황에 근거하여 '당연' 한 것이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감옥에 들어와서 느낀 반성이나 사회에 대한 생각, 비판이 아닌 자기 자신의 생각들을 써 놓은 20년 짜리 편지글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옥에서 외부로 보내는 편지글을 수필집 형식으로 모아놓은 책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뒷이야기를 조사해 보니 하루에 2장씩 나누어 주는 휴지 2장에 써서 남긴 종이를 하나하나 모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라는 책을 만들었을 정도로 감옥에서 자기의 생각을 온몸으로 쓴 글이었고 신영복씨의 사색 20년을 압축해 놓은 정말 귀중한 책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 글을 읽으면서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조금조금씩 풍겨 나오는 온기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영복씨가 정범구의 세상읽기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감옥이라는 건 한 마디로 얘기하면 정보가 거의 제로인 공간이죠. 그래서 그 쪽에서의 생각은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작은 사물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많은 걸 상상해내는 그런 사고를 많이 한 것 같구요. 반대로 밖에는 정보의 홍수, 너무나 많은 정보를 어떻게 할 건가. 오히려 아주 혼란이 되는 정반대의 상황을 겪게 되요."1985년 8월 28일 대전에서 쓴 여름 징역살이라는 편지에서도 이런 면이 잘 나타난다."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일생 생활 속에서의 우리는 한 여름날 옆에 있는 사람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 생각해 보는 기회는 별로 없다. 그러나 감옥에서의 신영복씨는 남과 나를 바꿔 생각해서 자신이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고 생각을 한다. 증오한다고 생각할 줄 안다는게 뭐 별거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여름날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증오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본다면 신영복씨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는 것은 엄청난 사색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이 사색의 결과는 분명한 개인차가 있다. 신영복씨가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트인생각을 하고 교도소라는 환경에서 이러한 사색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기수들과는 달랐을 것이다. 다른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한탄하며 좌절하고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사색의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똑같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잡느냐 못잡느냐가 승패의 관건인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신영복씨는 자신의 기회를 잘 알았고, 그 기회를 자신의 발전으로 가져간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려 노력한다. 긍정적인 사고를 갖다보면, 좌절하는 일이 적어지고 좀 더 생각의 트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항상 이러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고, 후일에 나의 모습으로 증명해 보이겠다.체 게바라...이 이름에 대해 내가 알고있던 것은 '남미의 전설적인 게릴라'...이것이 전부였다.게바라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의 로자리오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아버지 에르네스토 게바라 린치는 귀족의 후손이었으며 어머니 세실리아 데 라 세르나는 독립전쟁 당시의 군인집안에서 태어났다.에르네스토가 두 살 때 천식에 걸려 고생을 한 이후 그의 가족은 모두 코르도바(근처의 알타그라시아)로 이사를 갔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에르네스토에게 여러 가지 운동을 가르쳤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당시 그는 활동적이고 자립심이 강했다고 한다. 돈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옷차림에도 신경쓰지 않았으며 자유롭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종종 고독을 즐기기도 했으며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공부에도 열심이었다고 한다.에르네스토의 부모는 결혼생활에 불화를 일으켜 1950년에 이혼한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맡게 되었다. 청년 에르네스토는 어려워진 집안살림을 돕고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했다. 그래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한 건설회사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다.천식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 에르네스토는 이 경험 때문에 1947년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의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회만 있으면 여행을 떠났다. 게바라는 남미 도보여행을 통해서 그곳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과 그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사회과학적 안목을 길렀고 인간해방에 기초한 인식의 굳건한 토대를 쌓게 되었다.이러한 계기로 체 게바라는 안락한 의사에서 급진적인 변혁주의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영원한 전진!!체 게바라는 편지말미에 항상 위의 말을 적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영원한 전진!'. 책 여기저기에 나오던 이 문구가 책 말미, 체 게바라의 죽음 이후 추모성명에서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 다시한번 언급되는데 이상하게도 가슴깊이 찡하게 맺혔다.체 게바라야말로 '영원한 전진!'. 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문구에 걸맞는 삶을 살다간 인물인 듯 싶다.아르헨티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의사자격증까지 얻었지만, 그 모든것을 포기하고 쿠바혁명을 위해 혁명운동에 가세. 갖은 고생끝에 혁명달성.쿠바혁명성공이후 쿠바국립은행총재와 재무장관까지 역임하며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쿠바의 2인자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혁명정신을 간직했던 그의 모습.이 모든 지위와 영예를 버리고, 콩고민중혁명을 위해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나 다시 게릴라전 전개.그 이후 다시 볼리비아 민중혁명을 위해 아마존의 정글로 들어가 게릴라전 전개..갖은 고생 끝에 결국 볼리비아군에 붙잡혀 사살. 후퇴와 안주를 모르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앞을 향해 나아간 그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탄핵에 대한 대담..우리당 : 안녕하십니까. 의원님들. 탄핵에 대해 토론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이게 되었는데요. 우선 저희 입장에서는 탄핵은 정당하지 않다고 봅니다.딴나라당 : 탄핵이 정당하지 않다니요. 국민이 뽑은 대표인 우리 국회의원들이 법적 절차에 맞게 가결시킨 그런 정당한 절차가 어떤 연유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지가 의문이네요.우리당 : 지금 국민이 뽑은 대표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럼 대통령은 누가 뽑았죠? 대통령 을 뽑은 사람들은 국민이 아닌가요? 그리고 지금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70% 를 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계시는지?딴나라당 : 우리당에서도 그렇게 많이 할말은 없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대통령 탄핵소 가결에 항의하며 소속의원 전원이 사퇴하겠다고 밝혔던 열린우리당이 사퇴를 철회키로 공식 결정한 것은 대국민 약속이자 정치적 진퇴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지지가 오르자 번복한 것 아닌가요? 국고 지원금 54억원과 총선 기호 3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요?우리당 :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선 솔직히 말씀드려 전원 사퇴를 하게 되면 총선에서도 불리한 번호가 되고. 국고 지원금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면 사퇴보다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퇴를 철회시킨 것 입니다. 그 결과 이번총선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국민들이 바라시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딴나라당 : 어쨌든 우리당의 행태는 정치 신의 상으로나 책임정치면으로나 국민을 허탈하게 만드는 소극입니다. 탄핵사태로 지지율이 급등하니 의원직 사퇴를 철회해 지지율을 조금 까먹어도 그까짓 것 괜찮다 고 생각해 눈 딱 감고 백지화한 것 같습니다. 정치적 오만인가요? 비디오 정치는 원래 그런 것입니까?우리당 :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저희는 탄핵반대의 목표를 필두로 항상 생각했고, 노력했고, 실천했습니다. 만약 의원직 사퇴가 탄핵반대에 더욱 용이했다면 의원직 사퇴를 했을 것입니다. 탄핵이 정당하지 않고 잘못되어진 것이란 점을 확신했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을 했던 것이고요.딴나라당 : 자꾸 탄핵이 정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데. 탄핵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나 문제가 없는 형태의 정당한 대응책 이었습니다.우리당 : 국민은 반대하고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주관한 이번 탄핵은 국가적 망신이며, 국회의 가장 큰 잘못입니다. 이러한 잘못을 만회할 길은 원칙으로 회귀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피할수록 거짓과 위선과 고통만 증가될 뿐입니다. 원칙이란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의 이념입니다. 어떤 ‘합법성’(이번 탄핵 사건은 합법성도 없지만)도 국민 다수가 반대하면 그건 철회할 수밖에 없다는 국민 주권 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