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화창한 4월이다.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 개화기도 빠르고 따뜻한 감이 빨리 찾아왔다. 강의실에만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기 답답하기만 한 청명한 4월에 직접 현장을 찾아 몸으로 느끼고 생각해본 것을 글로 남겨보는 현장 답사 수업은 신선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그런 현장 답사 수업을 본인이 평소 방문하고 싶었던 서대문 형무소로 다녀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과제의 시행이 만족스럽다.본인이 서대문 형무소를 답사의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평소 사진 찍으러 고궁이나 유적지를 즐겨 찾곤 하는데 얼마 전부터 일반에 개방되기 시작한 서대문 형무소를 찾지 못해 줄곧 가보고자하는 마음이 있었던 때문이 그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단순히 사진 촬영만을 위해 찾는 마음보 다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찾는다면 역사적으로 뜻 깊은 유적을 더욱 진지한 태도로 방문할 수 있 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2. 답사 소감서대문 형무소를 찾은 것은 식목일을 지낸 다음 날, 4월 6일 화창한 일요일의 이른 아침이었다. 독 립문 역에서 십여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은 이른 시각인데도 작은 소풍을 온 가족 단위나 가벼운 산책객들로 살짝 붐비고 있었다. 싸늘하게 비어있는 역사의 흔적처럼 덩그러 니 옛 형무소만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로서는 깨끗하게 정돈 된 너른 잔디와 작은 오 솔길, 갖가지 꽃나무들로 수놓인 독립공원의 모습이 일종의 작은 충격이었다. 대체로 역사의 현장 이 도시 개발 정책 등에 의해 훼손되고 간신히 그 터만을 유지하고 있기 마련인 오늘의 현실에서 잘 가꾸어진 독립공원으로 역사의 현장이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 고 흡족했다.잘 가꿔진 서대문 독립공원을 따라 쭈욱 올라가다 보니 붉은 색의 높은 벽돌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안 쪽으로 역시 붉은 담의 낮은 건물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바로 서대문 형무소가 있었다. 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낡은 붉은 담을 따라 걷다가 소액의 입형장, 나병사, 그리고 역사 박 물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굳은 철문이 놓인 형무소 겉담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역 사 박물관을 만났지만 나는 먼저 감옥 그 자체를 느끼고 싶어 옥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한 분홍 빛을 탐스럽게 뽐내는 벚꽃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곁에 제 9옥사가 눈에 들어왔다. 제 철을 맞아 아름드리 그 빛을 뽐내는 일본 국화인 벚꽃나무가 우리 역사의 아픔인 형무소 옥사 곁에 서 있는 모습이 어쩐지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옥사는 세월을 고스란히 몸에 묻힌 채 녹이 슨 굳은 철창 으로 시작되어 있었다. 건물은 대체로 T자형을 이루는데 이는 옥사를 효과적으로 감시하고자 했던 일제의 주도면밀함을 보여주는 예였다.감방은 대체로 그 규모가 일정하였고 내부에 바깥이 보이는 작은 창이 굳은 창살과 함께 하나, 높 이 뚫려 있었으며 굳은 철문은 밑으로는 식사를 제공하는 작은 구멍과 위로는 감시를 위한 좁고 길다란 철창 구멍이 뚫려 있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한참을 있자니 경험하지 못 했던 옛날의 조국의 수난과 아픔이 조금이나마 전해져 오는 듯해 마음이 숙연해졌다. 또, 일제가 1908년 경성감옥으로 신축한 이 형무소는 아마도 독립 운동가가 늘어남에 따라 그 수용 인구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늘어만 갔을 것이다. 현재 일반 주택의 화장실보다도 작은 평수에 수십 명의 독립 운동가들을 가두어 놓았을 것을 생각하니 입에서 절로 일제에 대한 욕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충격 이었던 것은 독방이었다. 한사람이 누우면 쉽게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이 좁아 보이는 독방은 그 어는 곳으로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게 어둡고 습했다. 이런 곳에 단 한 시간이라도 갇히게 된다 면 보통 정신으로는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얼마나 순고하고 그 의지가 결렬했단 말인가. 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옥사는 주로 2층에서 4층 정도의 높이로 지어진 것 같았으나 목조 건물로 매우 낡아 훼손의 위험 성이 있끄럽긴 했지만 모처럼의 기회로 온 답사인데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 다. 2층은 1층과 마찬가지로 질서 정연하게 일렬로 감방들이 늘어져 있었다. 1층과 별다를 것은 없 어 보였다. 옥사 건물은 한 개만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었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굳 게 닫힌 녹슨 철문의 철창 사이로 보이는 어두운 옥사 내부는 거의 모든 건물이 같은 형태를 이루 고 있었다.옥사의 관람을 마치고 밝은 바깥으로 나오니 옥사를 돌며 답답해진 가슴이 가느다란 한숨이 되어 쏟아졌다. 일제 강점기의 안타깝고 쓰라린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여년 전의 일이 되고 말았 다. 독립은 58년 전의 일이라 해도 이 서대문 형무소가 세워진 것도 벌써 95년 전의 일이다. 독립 은커녕 한 민족의 전쟁인 6.25조차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 있어서는 일제 강점기란 책 속의 역사요, 수능시험 속의 역사일 뿐이다. 나는 일제 강점기 때의 일본의 악행에 대해 비난하고 보상받고자 하 는 운동이 이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접할 때마다,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퇴보하는 우 리의 현 모습을 오히려 더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이런 내 모습이 제대로 된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지 못한, 교육 현실 속의 잘못 된 국사 교육 탓은 아닐까하는 안타까움이 자 리잡고 있었다. 옥사를 돌며 고통 속에 죽어갔을 독립투사들의 결렬한 의지를 조금이나마 손끝으 로 느껴보며 이런 안타까움은 더더욱 분명해졌다.일반 옥사 건물을 지나자 특이한 모형의 지붕을 가진 또 하나의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담장이나 외벽 없이 지붕만 가진 채로 남아 있는 지하 감옥은 여성 재소자를 가두어 두던 곳이다. 감방 자체 는 몇 개 되어 보이지 않았지만 그 공간은 일반 옥사에 비해 훨씬 협소해 보여 여자 재소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옥살이를 했을지, 그 안타까움에 가슴이 북받쳤다. 이 지하 감옥은 유관순 누나가 모진 고문에 결국 눈을 감아버린 곳으로서 -유관순굴-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형무소 근처의 이 화학당에 수 있었다.나병사와 역사 박물관을 차례로 돌고 마지막으로 발길을 놓은 곳은 바로 사형장이다. 작은 목조 건 물로 남아 있는 사형장은 아마도 그 당시에 쌓여졌을 법한 높은 담에 쌓여져 외부에서는 잘 보이 지 않았다. 목조 건물 그대로 보존되어 훼손의 방지를 위해 이 곳 또한 공개되지는 않았다. 사형장 내부에는 몇몇 나무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정면에 사형수의 목을 매달아 사형하던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많은 죄없는 독립투사들의 목이 걸어졌을 끈과 그들이 마지막으로 앉았을 의자, 그 리고 음습한 검은 커튼.... 사형장 곁에는 작은 미루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이 미루나무는 독립 투사들의 한이 서려 잘 자라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고 하니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을 일이었다.3. 서대문 형무소 관련 자료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보고 느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경험이겠지만 정확한 지식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 소중한 경험 또한 한낱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서대문 형무소에 관한 자료 조사를 해 보았다.서대문 형무소는 1907년 시텐노가즈마(四天王數馬)의 설계로 착공되어, 다음 해인 1908년에 문을 연 후 80년 동안 약 35만 명을 수감하며, 숱한 민족의 수난사를 잉태하였다. 형무소 개설 당시에는 감방 480평, 청사 및 부속건물 80평으로, 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다. 당시 전국에 있는 8개 감옥의 총 수용인원이 300명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였다고 할 수 있겠다. 후에는 1916 년 여사(女舍)를 개축, 1923년 새 청사와 사형장, 1935년 제1∼6사(舍) 등이 차례로 신축되어 1919년 3·1운동 때는 3,000여 명을 수감할 수 있는 감옥으로 확장되었다. 청사는 전동(典洞)에 있던 흥사단 건물을 이축(移築)한 것으로, 6·25전쟁 휴전 직후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 관사(官 舍)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건축물은 군집형태로 묶여져 있고, 이 중 붉은 담벽·감시탑·출입문· 구치감·감방(남사·여사·외국인사)·사형장·일반사무부채꼴로 설계하고, 감방 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게 되어 있으며, 복도 천장을 뚫어 철망 사이로 위층을 볼 수 있게 하였다. 특이할 점은 무엇보다도 이곳에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지하 여자감옥, 윤봉길 의사가 복역 중 만들었다는 붉은 벽돌, 강우규 의사가 처형당한 사형장, 여러 독립투사들이 투옥되 었던 1평 남짓한 좁은 감옥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서대문 형무소의 뿌리는 구한말의 전옥서(典獄署)로서, 1904년 경무청감옥서(警務廳監獄署)로 바뀌고, 1908년 경성감옥(京城監獄)으로 개칭되면서 무악재로 옮긴이래,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6년 경성형무소, 1950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등의 명칭을 거 쳐 1967년 7월 7일 서울구치소로 개칭되었고, 1987년 경기 의왕시로 옥사를 이전한 이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주로 민족지도자와 독립운동가, 4·19혁명 이후 1980년대까지는 정 치인·기업인·세도가·군장성·재야인사·운동권 학생 등과 이 밖에 살인·강도 등의 흉악범과 대형 경제사범·간첩·잡범 등 다양한 범법자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실로 민족사의 수난을 한 몸 으로 받아낸 산 현장이 아닐 수 없다.1988년 서울시는 이곳을 민족의 수난과 독립운동의 역사교육 현장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구한말의 독립관을 복원하고, 공원을 조성하여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불렀는데, 1995년 '독립공원 사적지 성 역화' 계획을 마련, 독립관 복원 공사에 착수한데 이어 서울구치소가 의왕으로 이전될 당시 옥사는 모두 15개 동이었으나 모두 없애고 보존가치가 있는 제9·10·11·12·13옥사와 중앙사, 나병사, 보안과청사, 사형장, 담장, 망루 2곳을 원형대로 되살려 1996년 유료공원화하기로 하였다. 그 중 순 국선열들이 옥고를 치른 제10·11·12옥사와 사형장은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으며 9사, 13사와 구여사(舊女舍) 및 지하감옥은 매몰되었던 것을 복원하였다. 구여사는 1920년 유관순이 고문 끝에 숨했다.
1. 제 7차 국어과 교육 과정 개정의 중점가. 교육 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제 7차 국어 교과 교육 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은 총론이 제시한 21세기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 이라는 틀 아래 다음 4가지를 교육과정 구성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였다.첫째, 학습자의 창의적 국어사용 능력 배양을 중시하는 교육과정.둘째, 학습자의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을 중시하는 교육과정.셋째, 교육 내용의 사회적·개인적·학문적 적합성을 추구하는 교육 과정.넷째, 국어 교육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교육 과정.나. 교육 과정 개정의 중점1) 국어 교과 성격 규정의 명료화제 7차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창의적 국어사용 능력 향상을 국어과 교육의 최상위 목표로 설정하고 이 목표 달성에 필요한 교육 내용을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언어 능력의 여섯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것이 발전 지향적인 국어 문화의 창조에 연계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관점에 국어과 성격을 규정하였다.제6차 교육 과정에서는 국어과가 언어사용 능력, 언어, 문학의 세 영역으로 구성된 교과임을 밝힌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학교급별로 강조점을 달리 제시한 방식을 택하였다. 즉, 국어과의 성격을 학교급별로 다르게 규정하였다.하지만, 제7차 국어과 교육 과정에서는 첫째, 국민공통 기본 교육 기간 동안 적용하는 국어과의 심화·보충형 수준별 교육 과정으로 운영하게 되었고, 둘째, 고등학교 2∼3학년에서 교과군의 개념을 도입하고, 각 교과군에 개설한 과목을 선택 중심 교육 과정으로 운영하게 되었다.2) 국어과 목표 체계의 일원화초등하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기간 즉, 국민 공통 기본 교욱 기간인 10년 동안 학습한 결과로서, 학습자의 도달해야 할 최종 성취 수준을 국어과의 교육 목표로 설정하였다. 다시 말해, 국어 교육을 받은 학습자가 도달해야 할 수준으로서의 목표가 학교급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목표는 동일하되 학습자가 이해하고 표현하는 언어 자료(텍스트)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을 고려 지향제7차 교육 과정이 수준별 교육 과정을 도입한 목적은 필수 학습 내용의 정선과 각가의 학습 내용에 대해 깊이 있게 학습하여 교육 경험의 질적 변화를 꾀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국어과의 교육내용은 국어과의 교육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정선된 내용을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4) 교육 내용의 학습 범위와 수준의 구체화수준별 교육 과정에서 수준 의 개념은 세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그 첫째는 학생들의 학습 능력과 관련된 수준, 두 번째는 학생들의 학습하는 내용과 관련된 수준, 세 번째는 학생들이 학습한 결과로서 성취한 정도와 관련되 수준이다. 제7차 국어과 교육 과정은 이 세 가지 차원의 수준의 의미를 동시에 고려하여 교육 내용의 범위와 수준을 정하는 방식으로 수준별 교육 과정으로 구성하였다.5) 교육 내용의 제시 방식 개선행동과 내용을 결합하여 목표 형태로 내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학습 내용의 수준과 범위를 명확하게 제시하고자 하였고, 이것이 성취 기준으로서의 기능을 다하도록 하여 교육 과정의 질 관리 차원에서 활용되도록 하였다.6) 방법 에 관한 사항의 상세화수준별 교육 과정은 학습의 개별화, 인격화, 자기 주도적 학습 등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제7차 교육과정은 방법에 관한 내용을 크게 교수·학습 계획 , 교수·학습 방법 , 교수·학습 자료 로 나누어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였다.7) 평가 에 관한 사항의 상세화제7차 교육 과정에서는 평가 에 관한 사항을 첫째, 평가 계획. 둘째, 평가 목표와 내용. 셋째, 평가 방법. 넷째, 평가 결과의 활용으로 세분하고, 각 세부 항목의 내용을 구체화하여 학교의 국어 교욱 평가의 개선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2. 제7차 교육 과정 국어과 내용가. 내용체계1) 내용 체계 구성의 기본 관점· 국민 공통 기본 교육 기간 10년을 하나의 단위로 보아 단일한 내용 체계 를 마련하였다.·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 지식, 문학 영역의 교육 내사용 능력의 질적인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내용 체계를 마련하였다.· 국어 교육의 내용을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지식, 문학 영역의 순으로 제시하였다.·전까지 사용하였던 언어 라는 교육 내용 영역명을 국어지식 으로 조정하였다.2) 국어 교육의 내용 범주화· 국어 교과의 교육 내용은 학습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으로서의 학습 요소 와 이 학습 요소를 학습함으로써 학습자가 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서의 수행 두 차원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 또, 국어과는 학습자가 지적으로 성숙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려 깊은 국어 사용자로 성장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인지적 교육 내용과 정의적 교육 내용을 균형 있게 선정하고자 하였다.· 국어과의 인지적 교육 내용으로서 지식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그 첫 번째 유형은 명제적 지식인데, 이 지식은 무엇은 무엇이다 와 같이 명제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으로 진리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지식으로 본질 이라 하였다. 두 번째 유형은 방법, 절차에 관한 지식인데, 이 지식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와 방법 및 전략에 대한 지식으로 원리 라고 할 수 있는 지식이다. 즉, 본질 과 원리 로 구분하여 내용 체계를 구조화하였다.·국어과의 정의적 교육 내용에는 국어 사용과 관련되는, 국어에 대한, 문학에 대한 심리적 물리적 요인으로서 자세, 태도, 습관, 흥미, 동기, 가치 등이 있다. 이러한 교육 내용을 태도 라는 범주명을 사용하여 구분하였다.·학습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학습 요소로서, 본질 , 원리 , 태도 에 관한 지식을 학습한다고 하여 학습자의 국어 사용 능력이 저절로 향상되지 않는다. 학습한 지식을 구체적인 국어 사용 상황에 직접 적용해 보는 실제적인 국어 사용 경험을 체화할 때 효과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데, 이를 실제 라는 범주명으로 구분하였다.3) 국어 교육의 내용 체계 구조화 관점·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 지식, 문학의 교육 활동은 각 영역의 본질 , 원리 , 태도 범주의 교육 내되어야 의도한 교육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고 내용 체계 를 구조화하였다.·국어 지식 영역의 교육 내용은 국어의 본질 , 국어의 이해와 탐구 , 국어에 대한 태도 , 국어의 규범과 적용 의 네 가지로 범주화한 뒤 내용 체계 를 구조화하였다.·문학 영역의 교육 내용은 문학의 본질 , 문학의 수용과 창작 , 문학에 관한 태도 의 학습에 개별 문학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실제의 문학 활동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내용 체계 를 구조화하였다.3. 제 7차 교육 과정 국어과 학년별 내용가. 학년별 내용을 선정, 조직한 기본 원리(가) 본질, 원리, 태도 영역에서 균형 있게 선정하고, 실제와 관련하여 체계를 세워 다음원리에 따라 배열하였다. 학년별 내용은 '학습활동의 예'를 제시할 때 학습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언어자료를 함께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언어 자료는 말 그대로 예시이기 때문에 더 적절한 것을 추가 해 가는 방식으로 학습활동의 예를 풍부히 하는 노력이 국어교육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하는 적극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나) 본질 범주의 교육내용은 필요성, 목적, 개념, 방법, 상황, 특성 의 순으로 배열하고(단, 국어 지식 영역은 언어의 특성, 국어의 특질, 국어의 변천/ 문학 영역은 문학의 특성, 문학의 갈래, 한국 문학의 특질, 한국 문학의 사적 전개의 하위범주로 구조화), 1)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2)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3)흥미 유발에서 지식의 인식-지식의 조절 순으로 학습할 수 있게 배열하였다.(다) 원리 범주의 교육 내용은 본질 원리의 일반 내용을 준용하되, 1)규범적인 것(이렇게 해야한다)에서 상황적인 것(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한다), 2)기초 기능 훈련에서 고차적인 전략의 조절 등의 순으로 배열하였다.(라) 태도 범주의 교육 내용은 흥미나 동기 유발에서 사회적 습관형성의 순으로 배열하였다.(마) 실제 (언어자료/텍스트) 범주의 교육내용은 1)개인적인 것(놀이)에서 사회적인 것(토의와 토론), 2)정서적인합하게(예: 학교에서 있었던 일-사회적 쟁점) 3)일상적인 것에서 전문적인 것의 순으로 배열하였다.나. 학년별 내용을 선정, 조직, 배열할 때 고려한 사항(가) 듣기 영역의 학년별 내용은 듣고 말하는 언어 사용의 상호 작용성을 긴밀하게 관련지어 내용을 선정, 조직, 배열하였다. 특히 듣기와 말하기의 상호 작용적 특성을 고려하여듣기 영역과 말하기 영역의 교육 내용이 유사한 경우 관련 내용을 동일 학년에서 함께 제시하여 학습의 밀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였다.(나) 말하기 영역의 학년 별 내용은 발음과 발성 범주를 신설하여 표준 발음학습의 근거를 마련하였다.(다) 읽기 영역의 학년별 내용은 내용 체계의 하위 범주를 고려하되, 특히 학년이 올라 갈수록 평가와 감상에 대한 내용을 강조하였다. 이는 제7차 교육과정이 의도하고 있는 정확하고 해석적이며,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수준으로 국어사용 능력을 향상시켜 학습자가 자신의 국어 세계를 넓혀가도록 하기 위함이다.(라) 쓰기 영역의 학년별 내용은 텍스트의 유형과 예상독자, 주제와 글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특히 국어 지식과의 관련성을 강조하여 언어 단위(한 문장-두세 문장- 한 문단-두세 문단-완전한 구조를 가진 글)도 중시하여 배열하였다.(마) 국어 지식 영역의 학년별 내용은 지식의 난이도와 순차성, 언어구조의 복잡성, 동일 학년 내에서 다른 영역의 교육 내용과의 관련성을 중시하여 배열하였다. 국어 이해와 탐구 범주의 교육 내용은 언어의 본질적 속성-언어와 주변 세계와의 관계 순으로, 국어에 대한 태도 범주의 교육 내용은 우리말의 중요성 인식-규범에 맞는 국어사용의 태도 형성-우리말을 가꾸고 발전시키려는 태도 형성 순으로 배열하였다.(바) 문학 영역의 학년별 내용은 내용 자체의 난이도, 텍스트 등을 고려하고, 계열성과 반복성을 강조하여 배열하였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명문화한 문학의 창작 과 관련된 교육 내용은 전문적인 문예작품의 창작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능동적 반응을 강조한 것으로 문학적 표현활동을 의도하였기 때문에 였다.
단 돈 500원을 훔쳤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고 가정하자. 그것도 극죄수만을 가두는 악명 높은 감옥 에. 탈출 시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독방에 갇혔다. 그것도 3년이나. 창문은커녕, 변기, 침대도 없고, 사방 은 곰팡이가 피어있고 거미, 쥐새끼가 가끔 느껴질 뿐 홀로 3년을 지하 감방에서 보냈다면? 그 상황을 견 뎌낸다는 것은{{상상할 수도 없다.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극한 상황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 까? 헨리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은 결국 이런 엄청난 상황을 겪은 후 유일하게 남아있는 본능에 의한 것, 즉 살의 없는 살인이었던 것이다.흔히들, 나조차도 기존 질서, 기존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미 갖추어진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은 그 구조가 아무리 썩고 낡았다 하더라도 스스로 몰락하지 않는 이상 개개인의 힘으로 무너뜨리는 어렵다고 단정한다. 만적의 난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조선 양반 사회는 그 몰락이 스스로 이루 어졌다고 봐도 될 것이다(물론 왜적의 침입이라는 외부적 압력이 크게 작용하지만 않았더라면 시민 하나 하나의 힘으로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개인 내부세계의 혁 신과 혁파 없이는 구조의 변화를 이루기 힘들고 또한 외부세계의 혁파와 쇄신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개인 의 자아혁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할 뿐이다. 영화 일급살인 을 통해 그것을 확인하고자 한 다.영화 일급살인 에는 중요한 인물이 둘 등장한다. 하나는 바로 앞서 말한 헨리 영, 다른 하나는 헨리 영의 변호를 맡은 국선 변호사 제임스이다. 이 둘은 이 영화 내에서 - 내가 말하고자 하는 - 자아 혁신을 통해 구조의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인물들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헨리 영은 살인을 저 지르고 재판대에 오르면서 이미 자신은 당연히 사형을 당할 것이다, 알카트라즈 감옥에서 인간 이하의 삶 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하고 행복하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에게 구조의 변화는커녕 자기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조차 지옥 같았다. 구조의 변화 따위에 관심도 없던 것은 제임스 역시 마찬가 지였다. 제임스는 잘 나가는 변호사인 자신의 형을 배경으로 한 신참내기 변호인이다. 자신이 맡은 사건, 알카트라즈의 한 죄수가 그것도 보잘 것 없는 죄수가 다른 죄수를 죽인 것에 대한 변호 따위를 통해 구 조, 알카트라즈 감옥의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현실을 폭로하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러나 그들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들 내부세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그것은 잘 못 된 현실, 알카트라즈라는 비인간적인 감옥의 진실을 폭로하고 변화시키기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죽음보다도 더한 고통 속에서 헨리 영은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헨리 영은 누가 뭐라해도 이 영화에 서 가장 처참한 피해자이다. 우리가 60-70년대에 그러했듯이 잘못 된 구조 속에서 있는 힘껏 몸부림 쳐 도 결국은 그 구조를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굴복하고 말게 된다. 그것은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 심리 의 본능적 반응이 아닐까싶다. 3년 동안 단 3번 30분 동안만 지하 감옥을 벗어나 바깥에 나와 공기를 마 실 수 있었다. 추위에 떨고 질병과 싸우고 굶주림과 싸우는 동안 헨리 영에게는 단지 본능만 남았다. 그리 고 구조에 복종하지 않으면 얼마나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되는 지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닫게(?) 되었다. 헨 리를 지하 감옥에서 끌어내 악을 단죄한다는 명목하에 그에게 인간됨(?)을 가르치려는 글렌부소장에게 헨리가 내뱉는 말들은 처참하다. 노예적으로 복종하는 헨리의 모습은 극단적으로 표현되고 있기는 하지 만 결국 현실에 만족하며 구조의 잘못됨을 느끼지조차 못하며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 중 다수의 단상이 다. 그렇게 3년을 견뎌낸 헨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동물적 본능 뿐이지 않았을까?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영화적 설정이었는지는 몰라도 자신을 소장에게 밀고한 죄수를 죽이러 달려가는 헨리의 모습은 짐승의 울부짖음과 같았다. 그것은 빼앗긴 인간성을 향한 울부짖음이 아니었을까.헨리가 일급살인이라는 죄명을 받고 재판에 기소되면서 알카트라즈를 떠나 있던 시간은 우리에게 중요 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것이 바로 시간적 거리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간적 거리둠을 통해 헨리 는 결국 강하게 부인하던 자신의 변화, 자신이 얼마나 처참한 피해자였는지를 인정하는 과정을 힘겨웠지 만 끝내는 받아들이고 만다.수업 시간에 시간적 거리둠 에 대해 배울 때는 사실 감이 잘 잡히지 않았었다. 시간적 거리둠이라는 말, 어감에서 오는 시간 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 의미의 시간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적 거리둠이란 대상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헨리와 제임스는 시간적 거리둠을 통해 자신들이 어떠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한 였다. 의미 없을 것만 같았던 헨리와 제임스의 야구 이야기부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제임스는 헨리 에게서 진정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파괴한 알카트라즈의 파행에 분노한 것이 아닐까? 현실 구조에 분노하게 하는 계기는 그 구조에 의해 찢겨지고 상처 입고 처참하게 짓밟히는 개인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 예를 지난 미군 장갑차에 숨진 여중생들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고 생각 한다. 미군 장갑차에 숨진 여중생은 말할 수 없이 처참하게 죽어간 우리의 어린 생명이다. 우리가 처음부 터 SOFA의 철회와 미군 단죄를 외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우리의 정부가 앞장서서 그 잘못에 대한 사죄를 받아내는 것. 우리는 진실을 왜곡하고 강자가 살아남아 약자를 비웃는 이 아이러니한 구조,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원망하기에 앞서 그들의 인간애, 그들이 잘못을 인정 하는 작은 것을 바랬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끝까지 외면했고 우리는 결국 잘못된 구조의 혁신 을 부르짖기에 이르렀다.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불붙은 촛불 시위는 개인의 혁신을 통한 구조의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요즘 곳곳에서 촛불 시위가 잦은데 촛불 시위는 강요와 억압에 의한 것이 아 니다. 이제까지 화염병이 날라가고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휘두르는 곤봉에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는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잔잔한 촛불의 환한 빛으로 시위가 이루어지고지고 있다. 촛불 시위는 개인 의 마음이 움직여서 개인이 자기 내부세계의 변화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시작은 미미했던 여중생 사망 사건 관련 촛불 시위는 이제 대규모 집회로 번지고 있다. 정부의 무반응에도 불구 하고 벌써 몇 회째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위를 통해 국민 하나하나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조의 변화는 바로 개개인의 변화로부터 온다는 것을 우리는 점점 깨우치고 있는지도 모른다.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흐른 것 같은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헨리의 자아 혁신을 이끌은 제임 스의 노력은 상당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헨리를 비롯하여 글렌부소장까지도 나는 잘못된 구조의 피해자 라고 생각한다. 헨리는 가장 처참한 피해자이지만 악을 단죄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조차 잘못됨을 느끼지 못하는, 혹은 그 잘못됨을 처음에는 느꼈을 지 몰라도 이제는 자신조차 그것이 옳다고 소리치는 글렌은 잘못된 구조, 외부세계로 인해 철저히 세뇌 당한 오히려 더 안타까운 피해자인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글렌의 모습에서 우리를 볼 수 있다. 이는 제임스의 모습과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