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복식 특징과영상매체 속 복식초등학교시절 사람이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3요소는 ‘의식주’라고 배웠다. 즉 먹고, 입고, 쉴 곳이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먹지 않는다면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살 집이 있어야 외부로의 공격으로부터 내 몸을 피해 잠을 잘 수 있을 것이고, 옷은 체온유지를 위해 입는 것이라면, 춥지 않은 지역에서는 굳이 옷을 입지 않아도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의문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아프리카의 밀림에는 아직도 나체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부족도 있고, 태초에 아담과 이브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살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왜 옷을 입어야만 하는 것일까?이유는 사람은 혼자 살지 않는 동물이라는 것에 있었다. 무리를 지어 살아야 하고 그 안에서의 ‘사회성’이라고 하는 특징이 나타나게 되면서 옷은 체온유지의 기능 외의 사람들의 신분이나 소속 등을 나타내는 징표였으며, 나아가서는 자신의 개성과 부(富) 등을 표출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당대의 사상이나 사람들의 의식, 사회체계의 큰 변화에 영향을 받아가면서 의복이 변화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중세시대 이후 바로크, 로코코로 나누어 특징 지어보고, 근세의복이 어떻게 영상매체를 통해 비추어 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Ⅰ. 바로크1. 바로크 의복의 시대적 배경17세기에 이르러 유럽 문명의 선두주자로서 번영했던 이탈리아는 쇠해지고, 30년 전쟁으로 독일의 번영도 퇴색되어졌다. 따라서 이전의 인위적이고 사치스러운 복장은 전쟁의 시기(30년 전쟁)에 적합하지 않아 더욱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복장, 과장 없고 기능적인 복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7c 중반 이후 프랑스 궁정으로 정치적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다시 호화로운 궁중, 귀족 문화가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직물산업에 있어서 자수와 염료의 발전과도 연관이 깊다.17세기 바로크 시대에 들어와 유럽의 정세는 크게 변화하였다. 이 시기에 있어서 가장 전따라 바로크양식은 현실 속에서 보여 지는 생명의 생성과 움직임을 포착하려고 했으며 이러한 예술양식은 복식에도 잘 반영되고 있다.2. 바로크 의복의 특징'바로크'라는 말은 ‘바로코 - 불규칙하고 뒤틀린 모양의 일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다. 문자 그대로 바로크 스타일은 이전과 달리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며 이질적인 것이 하나로 통합하는 감각적, 열정적 기풍을 보여 주고 있다.바로크 시대에는 산업과 무역의 발달로 부유해진 상인, 중산 계층이 새로운 복식 스타일의 창안과 유행에 참여하게 되어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종래의 인위적이고 호화로운 의상은 행동하기에 불편하고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활동하기에 편하고 검소한 형태로 변화하였다. 르네상스가 보석 장식의 시대였다면 바로크는 루프(loop)와 레이스, 리본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크 의상의 특징인 루프와 레이스 장식의 남용은 남성의 복장에서는 경박한 느낌을 주었으나, 여성의 복장에서는 오히려 우아하고 여성스러움을 주어 의상을 돋보이게 하였다.♀ 여자복식여자들은 1620년대 중기까지 활동에 불편한 귀족풍의 스페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1825년경부터 입기 편한 의상으로 변하여 스커트 속의 버팀대가 축소되었고 길이도 짧아져 16세기보다 기능적인 형태로 변했다.① 로브 : 소매의 부풀림도 줄어들고 상체도 딱딱한 패드나 바스크를 넣어 만들거나 금속제 코르셋으로 조이던 것이 활동하는데 편하도록 변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영향에 의한 간소환 복식은 17세기 전반부의 유행으로 끝나고, 루이 14세 즉위 이후 다시 허리를 조이고 스커트를 크게 부풀리는 거창한 실루엣이 등장하여 그 전보다 더욱 강조되었다. 17세기 장식의 코티프인 리본이나 루프 장식이 과도하게 사용되었으며, 특히 구성상 바디스와 스커트가 분리된 투피스식 의상이 착용에 의하여 원피스 같이 보인다.- 스터머커 : 부드럽고 타이트하지 않은 형태의 둥근 혹은 뾰족한 형태로 변형되었고, 더 넓고 길게 내려가 허리선이 확장 되었다. 허리선에 여러게 되었다. 소매는 소매 끝단을 접어서 폭을 넓게 한 커프스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③ 베스트 : 조끼의 원조라 할 수 있으며 푸르푸앵이 변형된 형태이다. 실내에서 입는 간단한 상의로 자리 잡게 된다.④ 오 드 쇼오스 : 실용적인 형태에서 후반에는 트리밍과 단추 등 화려하고 정교한 형태로 변화한다.¤ 판탈롱 - 17c 초반 심이 없고 헐렁하게 입은 칠부 길이의 바지. 자루모양으로 볼록하여 풍성한 형태¤ 퀼로트 - 17c 후반부터 오 드 쇼오스의 명칭이 없어지며 등장한 대표적 남자하의.푸르푸앵이 작아져 연결할 수 없자 벨트로 바지를 허리에 고정. 초기에는 타이트했으나 점차 폭은 풍성하고 무릎 밑으로만 타이트한 형태가 되고 밑에는 무릎 장식인 카농을 입음¤ 랭그라브 - 스커트바지. 17c 중엽 유행⑤ 망토 : 르네상스와 비슷한 망토를 걸쳤다.(3) 머리 장식 및 신발※머리장식바로크 시대 남자의 머리 모양은 가장 여성스럽고 풍성한 모양으로 나타났다. 머리 모양이나 모자는 복장의 변화와 함께 특히 목둘레의 영향을 받으면서 달라졌는데, 플랫 칼라가 유행하게 되자 어깨까지 닿는 긴 머리를 정돈하는 여러 방법이 고안되었다.루이 14세 때 퐁땅쥬(fontanges)라는 우아하고 기교적인 여자의 머리형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철사 틀에 얇은 린넨이나 레이스를 주름잡아 씌운 장식을 앞머리 부분에 층층이 탑처럼 올려 다이아몬드나 진주를 박은 핀을 꽂아 마치 부채를 편 것 같이 보이게 한 것이다. 1670년대에는 컬이 잘 된 머리로 전체를 화려하고 커다랗게 부풀린 참신한 머리형이 유행했는데, 이것은 '꽃밭' 또는 '양배추형'으로 불리웠다.※신발남자 신발은 17세기 초 스페인풍의 짧은 바지인 오 드 쇼오스(haut de chausses)가 유행했을 때는 무릎 위까지의 장화가 애용되었으나, 오 드 쇼오스가 길어짐에 따라 짧은 부츠가 나타나게 되었다. 재료는 대체로 밝은 색의 부드러운 가죽을 사용했고, 목이 크게 벌어진 부츠에다 루프, 레이스로 나비나 장미 모양으로 아름답게 장식했다. 17라는 위스크 칼라나 폴링칼라가 아닌 르네상스 시대에 많이 착용하던 러프칼라를 착용하였고, 호박모양의 트루스를 입고 있지만 슬래시장식이 아닌 자수장식으로 되어있다.Ⅱ. 로코코1. 로코코 의복의 시대적 배경로코코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로카유(rocaille)와 코키유(coquille)인데, '정원의 장식으로 사용된 조개 껍질이나 작은 돌의 곡선'을 의미한다. 섬세하고 우아한 곡선이 주제를 이루며 밝고 화려하고 세련된 귀족 취미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로코코는 외형상의 양식이라기 보다는 장식의 개념에 치중한 것이다. 로코코 시대에는 새로운 부르조아 계급의 급성장으로, 아름다운 부인들을 중심으로 살롱(salon)문화가 발달하고 여기에서 여성 중심의 예술이 꽃피어 잔잔하고 섬세한 곡선미의 로코코 예술이 탄생되었다. 바로크 양식이 절대적인 국가의 왕성한 의욕을 나타내었다면, 로코코 양식은 인간적인 친근함과 상냥함을 가졌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취향은 귀족 사회가 퇴폐 해 가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로코코 양식은 전 유럽에 확산되었으며, 직물 및 복식에 뿐만 아니라 건축, 가구, 미술, 음악 등에 많은 영항을 미쳤다.르네상스에서 시작된 근대화의모습은 17세기에서 체제를 갖추고 18세기에 확고한 성격을 탄생시켜 세기말을 향해 새로운 전진을 한다. 17세기의 중상주의 결과는 종래의 귀족계급 외에 새로이 부르조아라는 강력한 지배계급을 등장시킴으로써, 이들이 이전의 지배계급인 귀족계급을 눌러 새 역사의 주체세력이 되었다.18세기는 사상적으로는 이성 만능의 시대이며 사회적으로는 향략 추구의 시대이기도 하였는데, 복식면에서도 이러한 영향에 의하여 우아하고 섬세한 곡선의 형태가 유행하였다.또한 영국에서의 산업 혁명은 18세기의 가장 획기적 현상 중 하나로, 여러 가지 기계 발명이 실체화되어 유럽 각지, 미국으로 파급되어 근대 복식의 발전에 가장 크게 공헌했다. 인쇄 기술의 발달로 18세기의 모드 전달 방법에도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잡지가 대량8세기의 복식사에서는 루이 15세의 애인인 마담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와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를 등장시켰는데, 이들은 18세기의 패선 리더로서 그들의 복식은 곧 프랑스 사교계에 유행이 되었고, 이는 다시 유럽 전역으로 파급되었다. 퐁파루드 부인은 가볍고 날아갈 것 같은 옷감을 즐겨 썼고 프릴, 러플, 레이스, 리본, 꽃 등의 장식요소를 사용하여 여성다움을 의상에 최대한으로 표현하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허영과 사치스러운 패션으로 로코코 양식의 패션 리더가 되어 의상과 머리형의 모델로 떠올랐고, 그녀의 스타일은 모든 살롱과 궁정에서 모방되었다. 여자 복식이 복식사상 최고조로 사치스럽고 화려한 경향을 띠게 되었다.① 로브 : 치마를 양 옆으로 퍼트리는 모양을 낼 수 있는 파니에가 사용되었고 깊게 파였지만 어깨를 드러내지 않는 네크라인과 소매 끝에 다는 3~4겹 층의 레이스 러플(앙가장트)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A형으로 벌어진 스커트의 가장자리에 팔발라라는 주름으로 트리밍하였고 스터머커에는 크기가 다른 리본장식을 하여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었다.¤ 와토가운 - 느슨한 주름이 어깨 뒤로부터 늘어져 스커트의 부분이 되는 것으로 드레스 위에 입음 → 로브볼랑(앞부분부터 풍성한 형태), 로브 아 프랑세즈(앞은 꼭 맡고 스커트가 더 넓어진 형태)¤ 점차 1770년대 후반부터 간소한 로브 등장. 스커트를 당겨 올려 소극적으로 부풀림 → 로브 아 라 폴로네즈(오버스커트를 여러 개의 드레이프로 부풀림), 로브 라 시르카엔느(치마의 길이가 짧아짐), 로브 아 라 카라코(힙을 부풀린 롱스커트에 재킷을 걸친 것과 같은 드레스형), 로브 아 랑글레즈(영국 스타일, 꼭 끼는 바디스로 가슴강조), 로브 아 라 레비트 (앙투와네트 임신복에서 유행), 슈미즈 아 라렌느(목선이 깊이 데콜테하고 주위를 러플로 메디치칼라처럼 세움), 르뎅고트가운(더플 앞단추와 넓은 라펠, 남성적 디자인), 만투아(허리선에서 스커트단까지다.
친환경적 소재의 의상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도 늘어난 지금,, 친환경소재의 의상이 뜨고있다. 화려하거나 기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친환경적이고 친숙한 소재, 독특한 소재로 만들어진 의상에 대해 살펴보자. 의상학과 200439118 이정은1.친환경 소재① Portillo와 Cori 의 매장인 고디:에코-시크 부티크 의 친환경 제품들 이매장은 현대적 스타일의 의류와 지구 보존의 목적을 가진 상품들만을 취급한다. 재활용 옷감으로 만든 귀엽고, 현대적인 목욕 가운 뿐만 아니라 린넨, 유기농 원면, 삼베, 몽고산 캐시미어 및 펄프 등으로 만든 세련된 상의와 티셔츠 등이 이 매장의 특징이다. (자동차 내부장식재료를 재활용하여 만든 현대적 감각의 핸드백)② 옥수수로 만든 웨딩드레스옥수수로 웨딩드레스를 만들 수 있을까? 서울 논현동 T스페이스에서 10월 8일까지 열리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전에서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이색 웨딩드레스를 감상할 수 있다.환경 친화적 의상을 디자인하며 녹색결혼식 운동을 펼치는 그린디자이너 이경재(27) 씨이다. 이 드레스들은, 땅에 묻으면 5주 내로 분해되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었다. 1회성 의복이면서도 과소비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어온 웨딩드레스 원단을, 환경 친화적 재료로 대체한 발상이 독특하다.② 옥수수로 만든 웨딩드레스옥수수 원단 외에 모시, 명주 등 천연 직물을 함께 사용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예식이 끝난 후 장식을 떼고 명주 재킷을 걸치면, 피로연복으로 입을 수 있게 디자인했다. 옥수수 원단 외에 천연 직물을 함께 사용해 장식성을 살렸다. 재킷은 천연 소재인 명주에 황백 염색을 했고, 모시 옷고름은 쪽과 황백으로 염색했다. 디자인 면에서도 과다한 장식과 부피를 줄여 간소한 결혼식을 지향하는 의도를 살렸다. 치렁치렁 거추장스럽게 늘어지는 대형 치마 대신, 활동성을 강조하면서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탈부착이 가능한 장식을 떼어내면 피로연복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한 드레스도 선보였다.② 옥수수로 만든 웨딩드레스땅에 묻으면 5주 이내에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옥수수 전분 원단의 특성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장면.③ 대나무 섬유제일모직 부모님께 건강과 젊음을 선물해요 제일모직은 어린이날 자녀들을 위한 선물로 '빈폴키즈'를 추천했다. 부모님을 위한 천연 소재 니트와 청바지도 젊음을 선물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중략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의 스타일을 멋지게 변신시켜 드리는 것도 좋은 효도다. 무난한 아이템인 자켓과 니트에 패션성이 돋보이는 디자인을 담는다면 한 층 젊어보이고 화사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부모님이 평소에 입던 스타일에 얽매이면 고루한 옷을 고르기 쉽다”며 “조금 더 과감한 디자인이라면 '자식이 사준 멋진 옷'이라고 부모님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모님 옷 고르는 요령을 전했다. 로가디스는 멋은 물론, 건강까지 고려했다. 세균과 냄새를 억제하는 항균소취 기능이 뛰어나고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방출해 주는 '대나무 니트'가 그것이다. 중국 사천성에서 자생하는 대나무 천연 섬유로 만든 친환경 의류 '대나무 니트'는 그린과 퍼플, 오렌지 색까지 더해 화사함을 강조했다. 평소 부모님이 손수 사기 힘든 청바지도 가정의 달 선물로 권할 만하다. 최근에는 중년 남성의 체형을 고려한 제품도 많이 나와있다. 로가디스는 밑위 길이를 늘리고 바지통을 넓힌 '도네이션진'을 선보인다. 신축성이 뛰어난 스트레치 원단으로 입었을 때 편한할 뿐 아니라 어떤 색상의 옷과도 매치가 자연스럽다. 최정호기자 lovepill@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④ 이색 데님의상'데님 같지 않은 데님' 중국과 프랑스 패션계 진출을 적극 추진중인 디자이너 한송(37.사진)씨가 '이색 데님(denim)의상'을 다양하게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참신한 소재와 독창적 라인을 선보여온 한송씨는 21일 오후 6시 서울무역전시장에서 '05/06FW서울컬렉션'의 일환으로 자신의 패션쇼를 개최했다. '한송 꾸띠르'라는 브랜드로, 여성을 위한 패션을 선보여온 한씨는 이번 컬렉션에서 새로우면서도 고급스런 '한송식 데님 의상'을 다양하게 발표한 것. 한씨가 선보인 데님은 기존의 면 소재 데님이 아니라, 모시에 실크를 섞어 천연염색한 데님으로, 데님의 경쾌함을 지니되 우아함을 선사하는 것이 특징. 얼핏 보면 데님 같으나 실제론 모시+실크 소재여서 일반 데님보다 한결 고급스러워 보인다. 한씨는 또 이날 한국의 고문서를 프린트한 색다른 소재를 활용한 의상과 가죽을 새롭게 해석한 의상, 검정 울(모직)을 이용한 정장류 등도 내놓았다. 패션쇼 후 한씨는 “데님 의상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 무척 기쁘다. 평소 진을 좋아하지만 아무 곳에서나 입긴 곤란해 모시에 실크를 혼합해 나만의 데님 소재를 개발했다. 특히 청바지는 염색과정에서 환경을 많이 훼손하지만 이 소재는 친환경소재인 것도 장점 이라고 말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헤럴드 생생뉴스 2005-04-22 11:38]⑤콩단백질 섬유(SPF)SPF섬유는 천연섬유나 합성섬유보다도 월등한 흡수력이나 통풍 그리고 섬유의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콩 속에 포함된 16아미노산이 사람의 피부건강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이 섬유를 사용하는 옷은 단지 소재만으로도 상품 이미지의 차별화나 고급화를 맛볼 수 있다.2. 천연염색최근에는 삶의 질을 생각하고 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활 속에서 자연친화 제품을 가까이하는'자연주의 생활법'이 유행이다. 우리 몸을 편안하게 해주고 면역력을 높여서 몸의 자연치유력을 회복시켜주는 자연주의 생활법 중 대표적인 것이 천연염색이나 표백제 등을 사용하지 않은 천연섬유이다. 염색재료 대부분이 한약재이기 때문에 천연재료로 염색한 옷이나 침구는 몸에 좋은 한약재를 걸치는 것과 같다. 그만큼 우리 몸에 해가 없으며 좋은 작용을 한다. 항균작용을 하는 약재인 황백으로 염색한 옷은 아토피성 피부나 건성 피부에 좋다. 홍화도 세균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천연염색 제품은 값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이때는 집에서 직접 염색할 수도 있다. 요즘은 천연염색을 배울 수 있는 염색교실이 많이 열리기 때문에 눈여겨보았다가 배워두면 좋다. 자녀들과 함께 염색을 하다보면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염색재료도 생활 속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운 보랏빛을 내는 포도를 비롯해 결명자, 오미자, 쑥, 감, 치자, 황토, 봉선화 등으로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색상을 낼 수 있다.2.천연염색2.천연염색천연염색으로 제작한 방석3. 이색소재의 의상① 초콜릿의상 ◀ 10일(현지시간) 미 뉴욕에서 열릴 예정인 제7회 초콜릿 박람회에서 한 제과사가 모델 의상에 초콜릿을 붙이고 있다.②재활용 의류{nameOfApplication=Show}
미래파(FUTURISM)미래파(FUTURISM) 우리들은 우리의 주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현대적 감수성은 속도의 관념을 파악하는 데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도시와 도로를 뚫고 질주하는 힘찬 자동차, 흥분된 군중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원천이 되는 이러한 것들은 2쪽의 사과 보다도 더 강하게 우리들의 서정적, 또는 극적인 세계의 감각을 만족시켜 준다.”제 1차 세계대전 직전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나 파리로 파급된 예술 운동.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 역동주의 미술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효시 - 움직이는 대상이 아니라 대상의 움직임을 포착 양식적으로 미래주의는 형상의 분해라는 입체파의 이론 기원 이론적으로 미래주의는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모든것을 추구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 속도를 시각화할 것을 요구(움직임, 속도, 기계, 에너지 과격함) 기계 문명의 찬미가 군국주의의 칭송과 상통(정치적인 색채)미래파(FUTURISM)카를로 카라, 옴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쟈코모 발라의 5인의 화가가 연명으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운동으로 전개 강한 상징적 효과를 얻기 위해 강렬한 색채, 힘찻 붓질, 모티브를 선택 미래파는 큐비즘, 영국의 보르티시즘(Vorticism), 독일 표현주의의 일부영역, 1913- 15년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20세기 건축 등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미술사상 소재에 관련된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의마리네티 (Marinetti, Filippo Tommaso, 1878~1944)이탈리아의 소설가, 시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생. 이집트에서 초등교육, 파리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스위스 제네바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다. 회화 및 문학, 정치분야에서 미래파 선동 1909년 2월 20일 파리의 《피가로》지(紙)에 《미래파 선언》을 발표, 미래주의운동의 기치를 올렸다. 소설 작품으로 《미래파의 사람 마파르카 Mafarka le Futuriste》(1910), 스피드와 전투를 예찬한 《트리폴리 전쟁》(1911) 등이 있다. 1910년 2월 밀라노에서의 '미래파 화가 선언', 동년 4월 '미래파 회화의 테크닉 선언' 발표우리는 장대한 세상이 새로운 미, 속도의 미로 풍요로워졌다고 주장한다. 격정적인 숨을 뿜어내는 뱀같이 생긴 커다란 튜브가 장착된 본네트를 가진 경주용 자동차는 승리의 여신보다 아름답다.지노 세베리니 (Gino Severini 1883~1966)코르토나 출생 미래파와 입체파의 양식을 종합하여 이탈리아 외의 국가에서 미래파 운동을 인정박게 하는데 크게 이바지 인상주의와 쇠라의 점묘주의의 영향 미래주의운동에 참가하여 분할주의적 수법에 의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10년경부터는 피카소의 입체주의나 콜라주 등의 기법에 관심을 가졌으나 다시 고전주의로 돌아와 '정물(靜物, 1923)' 등을 그렸다. 그러나 40년대에는 또 다시 신입체주의 작풍으로 돌아와 기하학적 추상의 경향을 보였다. 주로 춤추는 사람의 모습을 소재로 하여 형태를 역동적으로 분해함으로써 움직임을 표현하는 분할주의적 요소가 담긴 미래주의 탐구 계속. The Blue Dancer,타바랭 춤의 활기차고 기묘한 형상,적십자 열차Dancer(1913)Dynamism of a Dancer(1912)The Blue Dancer(1912)타바랭 춤의 활기차고 기묘한 형상 1912armoured train(무장열차)형태의 역동성:공간속의 빛보치오니 (Umberto Boccioni 1882~1916)이탈리아 화가·조각가. 초기에는 산업화된 도시 풍경들을 분할주의기법으로 그림 1910년경 일체주의를 접목 - 집단의 의지나 운동감을 표현 1912년 4월 11일 「미래주의 조각선언」을 발표. 상당수의 조각작품이 미래주의 회화에서와 똑같은 종류의 이질적인 대상들(머리, 창문, 광선)의 상호 침투를 많이 이용하였다.보치오니 (Umberto Boccioni 1882~1916)파리·러시아 등지를 여행한 뒤 근대적 공업도시를 주제로 하여 그렸고, 분리파의 상징주의와 E. 뭉크의 표현주의로 기울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출정하여 33세로 전사 「대회랑의 폭동」,「일어나는 도시」 「마음의 상태」도시가 일어서다 1910대회랑의 폭동공간에서 연속되는 독특한 형태 (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마음의 상태 : 이별동시적인 관점 ,1911{nameOfApplication=Show}
위조품 : 무엇이 나쁜가?위조품의 양면성목 차제 1장. 서론 / 2제 2장. 본론 / 31. 위조품의 미적 특질‥‥‥‥‥‥‥‥‥32. 위조품의 도덕적, 규범적 특질‥‥‥‥43. 미술과 공연 예술 위조품의 차이‥‥‥54. 위조품과 독창성의 고찰‥‥‥‥‥‥‥65. 예술에서의 독창성의 중요성‥‥‥‥‥8제 3장. 결론 / 9위조품: 무엇이 나쁜가?위조품의 양면성서 론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즉, 위조품에 있어 잘못된 것이 무엇이냐 라는 물음이다. 이 물음은 위조품에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다는 사실을 가정하고 있다. 위조품이라는 말이 진짜 혹은 진품과 같은 개념을 포함해야만 하는 대비되는 현상을 언급할 때만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규범적인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어떠한 종류의 가치인가라는 식의 물음이 제기 될 때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미술 작품에 있어서 위조품의 경우를 다룰 때 우리는 미적 가치의 부재 혹은 부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위조품은 미적으로 열등한 미술작이라고 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같은 사실 때문에 순수 미학만으로는 위조품이 설명되지 않는다.위조품에 있어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 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그것의 미적 가치의 입장에서는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먼저 명백히 되지 않는 한 그 잘못을 이해할 수 있기란 불가능하다.여기 위조품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이 있다. 반 미게렌이라는 20세기의 작가가 자신의 8개의 그림 중 6개는 )베르미어의 것으로, 2개는 드 후의 것으로 합법적으로 경매했다는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당시 1945년 미술께와 미술 비평가들을 자족해 하고 있는 고요함을 뒤흔들어 놨다. 특히 그가 위조한 「The Disciples at Emmaus」는 저명한 비평가들에 의해 베르미어의 가장 훌륭한 업적 중의 하나로 극도의 찬사를 받아가며 보이만스 박물관에 7년이나 걸려있었다. 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반 미게렌은 바로 이 같은 논점을 잘 증명해줬고 있기 때문이다. 위조 미술품들이 있게 된 데 커다란 책임이 있는 것은 미술가의 명성과 혹은 캔버스의 연륜 혹은 가격과 같은 비미적 규준들에 대한 고려가 미술계에서 횡행했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몇 안되는 잉크스케치가 무명의 미술가가 그린 풍경화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만약 드가의 열등한 스케치와 아름다운 죤스나 스미스 혹은 X의 작품을 선택하라는 제안은 받았을 때 우리 중에 얼마만큼이 후자를 택할 것인가? 이러한 사실이 얼마나 심각하고 유감스러운 일인가? 즉 미술의 영역에 비미적인 판단 기준이 범람해 있어, 때로는 에술적인 가치를 경제적인 가치와 구분하기가 불가능하고, 취미나 유행을 진정한 예술적 탁월함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훌륭한 예술가를 영리한 사업가와 구분가는 것이 불가능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 심각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점이다.이 같은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껏 우리가 해온 논점을 다시 인식시켜 준다. 즉 진품과 위조품의 문제는 단지 또 다른 비미적인 판단기준이라는 것이다. 어떤 미술작품이 위조품이라는 사실은 미술가가 그것을 창조한 시대, 정치적 상황, 작품에 처음 붙여졌던 가격, 사용된 재료의 종료, 양식적인 영향, 미술가의 심리적 상태, 그것을 그린 목적 등과 같은 수준의 미술작품 정보중의 한가지이다. 이러한 모든 정보는 미적대상으로서의 미술작품에 기껏해야 주변부적인 관심사에 속하는 것들이다. 즉 전기가 미술사, 사회학이나 심리학의 관심사에 해당된다. 이는 더 나은 미술 감식가가 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미술작품에 있어서 본직적인 것이라거나, 미적 경험에 있어서 본직적인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이의가 제기될 수도 있다.따라서 「The Disciples」가 위조품이라는 사실이 어떠한 관심거리도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베르미어나 반 미게렌이라는 이이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대다수의 위조품이나 모조품들이 법적인 위조품이 되어 왔던 것은 아니였고, 미술작품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인한 단순한 실수나 오해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례들은 위조품의 범주에서 배제하고, 고의적인 사기성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들에만 한정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사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단순한 복사를 비롯해 명칭의 도용, 짜깁기식 구성, 혹은 명성 있는 미술가의 “방식을 쫓은”작품이며 그들을 포함한 위조품의 커다란 집합이 있다. 이러한 위조품들의 경우들에 있어서 미술가나 미술상은 어떤 예술작품을 사실은 그것이 아닌 어떤 것으로 속이고 있다. 이러한 일은 행하는 동기는 대게 경제적인 이유에서 인데 때때로 반 미게렌의 경우에서처럼 개인적인 명성이나 보복을 위한 심리적 동기를 포함할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 이든 그러한 계획적인 위조품은 도덕적인 근거에서 비난 받을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위조품은 의식적인 사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위조품에 있어 잘못된 것이 무엇이냐라는 우리의 물음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으로서 이 같은 위의 정의는 실패하고 만다. 그 이유는 어떤 것을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속여 넘기는 것이 사기를 구성한다는 것이 어느 것도 진실이고, 따라서 그러한 사실이 바람직하지 않고 꺼림직 한 것이라는 사실이 어느 정도 진실이기는 하지만, 저급한 어떤 것을 우수한 어떤 것으로 속여 넘기는 경우는 어떠한가? 엄격히 말해, 진짜 드 후의 작품을 베르미어의 속으로 속여 넘기는 것 또한 일종의 비도덕한 사기행위이지만, 그것을 위조품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이 경우 추정상 저급한 작품을 우수한 작품으로 속여 넘기는 것이다. 그러니 반 미게렌의 작품을 베르미어의 작품이라고 속여 넘기는 것과 똑 같은 의미의 위조품만을 위조품이라고 해두자.그렇다면 위조품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인 정의를 더욱 정확히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등한 것을 월등한 것으로 속여 넘긴다”라는 일에 대한 설명구된다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것의 요점은 공연과 미술작품 양자 모두가 이러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정도에 따라 상당히 그리고 의미심장한 변모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위조품은 독창성이라는 개념에 조회시켜볼 때에만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조품은 재현적 활동이나 테크닉컬한 활동이 아니라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간주되는 예술에만 적용된다. 예술에 있어서 공연 혹은 테크닉이라는 요소는 위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테크닉은 위조가 가능한 대상일수 없다. 왜냐하면 테크닉이란 것은 공적이기 때문이다. 테크닉은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않을 수도 있고, 획득하거나 배울 수도 있다. 또 우리는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 척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테크닉을 위조할 수는 없다. 테크닉을 위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미 그 테크닉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며, 그러한 경우 테크닉을 위조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반 미게렌이 위조한 것은 베르미어의 테크닉이 아니라, 베르미어가 개발한 테크닉, 그리고 그러한 테크닉을 사용한 것, 즉 베르미어의 독창성을 위조한 것이다. 베르비어의 구성, 색채, 그리고 많은 특징들이 베르미어의 독창적인 것이지 반 미게렌에게는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위조된 것이다.만약 반 미게렌이 「The Disciples」을 그져 베르미어의 작품을 교묘히 복사한 것이 아니라 베르미어의 스타일로 그려진 참신한 그림이었다면 논의를 마감할 수도 있겠다.그러나 이 특정한 위조품은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히 독창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가 내린 정의를 위협하고 있다.4. 위조품과 독창성의 고찰달리 말해, 위조품문제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이며, 따라서 위조품이란 미술작품에 있어서 독창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라는 정의에 만족하기 전에 어E한 의미에서 그것이 의미 있고 정당하게 위조품이라 불리울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미술적 맥락에서 독창성이라는 말을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 가능한 다양한 의미들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것은 무의미한 것처럼 베르미어의 회화적 구성감각, 밝은 색체의 사용, 빛에 대한 테크닉이 베르미어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베르미어의 작품이 독창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러한 독창성은 미술사에 의해서 정의될 수 있는 특질인 것이다.두 번째로 중요한 점은 어느 한 예술작품이 어떤 스타일이나 어떤 예술운동의 독창성을 구현하고 있는 전형적인 에라는 의미에서 예술작품 속에 독창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이다.「The Disciples」를 다시 살펴보면 이 그림의 기만적인 특성은 우리가 고찰한 다섯 번째, 즉 마지막 의미의 독창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적절히 정의될 수 있다. 그 그림이 떠한 종류의 독창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든지 간에 어느 한 스타일이나 시대, 혹은 테크닉의 소산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독창적이지 못하다. 바로 이러한 것이 베르미어의 그림과 반 미게렌의 그림을 구분하는 것이다. 즉 베르미어의 작품은 17세기 속에서 고려될 때 독창적이다라고 부를 수 있는 예술적, 창조적 혁신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에 반 미게렌의 작품은 20세기 안에서 고려될 때 그것이 진짜 베르미어의 그림처럼 아름다울 지라도 미술사에서 전혀 새롭거나 창조적인 것이 아니다.위조품을 이렇게 정의하면 “적절한 역사적 백락”이라는 구절이 미술작품의 제작일자에 관련된 것이지, 미술사상 그 작품의 스타일이나 주제에 관련된 미술사적 시기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The Disciples」을 위조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그것의 양식적인 특징과 그것의 실제 제작 날짜 사이의 불일치 혹은 갭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불일치가 「The Disciples」가 정직함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반 미게렌은 이 위조품을 만들 때 “비평가들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아니면 내가 베르미어만큼이나 위대한 화가라는 사실을 이전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러한 사고는 건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의 추론 속에 포함되어있는 위대성은 우리가다.
코코샤넬(CoCo Chanel)?코코샤넬,, 이책 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읽었던 책이다. 이책은 처음 접했을 때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내게 아주 흥미롭고 교훈적인 책이다.샤넬이라는 익숙한 브랜드에서 알 수 있듯이 코코샤넬은 샤넬의 창시자이다. 샤넬이라는 여성 디자이너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을까. 그때는 막 시민사회가 형성된 시기로 남성의 권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때였다. 그러한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점,, 자신만의 고집과 자존심으로 세계적인 여성 디자이너가 됐다는 점에서 코코샤넬은 고등학생이였을 때인 과거나 디자인을 배우고 있는 현재에도 내게 흥미롭고 본받고 싶은 존재임에 확실하다.?코코샤넬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8월 19일에 프랑스 소뮈르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방 도시를 돌며 물건을 파는 가난한 행상인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세 자녀를 버리고 오바진 고아원에 보낸다. 가브리엘은 오바진 고아원에서 살던 삶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아주 꺼렸다고 한다. 아마도 자존심과 독립심이 무척 강하고 성공심리가 강한 그녀에게 자신의 초라한 과거는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가브리엘은 답답한 고아원을 벗어나 노트르담 기숙사에 들어가게 된다. 샤넬은 자매인 아드리엔과 함께 수녀들이 마련해준 주선해준 수선 집에서 일을 했다. 뛰어난 수선 솜씨와 남다른 패션 감각, 사교성 덕분에 그녀들은 점점 그곳에서?유명해져갔다.?그 시절 여성들은 여전히 구시대적 패션을 따랐다. 화려한 모자를 쓰고 코르셋을 조여매고 하체를 풍만히 덮는 치마 등. 그녀는 여성들이 남자들 눈에 비칠 아름다움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그 때 당시엔 코르셋을 하지 않는 것이 상당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당당하게 코르셋을 벗었다. 앞으로도 그녀의 개혁적인 패션이 계속된다. 놀라울 뿐이다.?아드리엔과 함께 물랭의 중심 구역에 방을 얻어 독립했다. 그동안 그녀들은 상류 사회의 남성들에게도 꽤 유명해 져서 그들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했다. 그들은 가브리엘에게 상류사회의 생활을 접하게 해준다. 그녀는 점점 삶에 여유가 생겼다. 노래를 좋아하고 또 자질도 꽤 가졌다. 결국 꼭 노래를 부르고 싶은 곳이었던 ‘로통드’까페에서 노래 부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녀의 매혹적인 매력은 어디서나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 곳에서도 그녀는 인기를 누렸고 단역인데도 불구 두 곡 씩이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곡 중에 후렴구에 계속 ‘코코’ 라는 가사가 반복 된다. 청중들은 열광하며 ‘코코’를 부르짖었다. 그렇게 1905년 그녀는 코코 샤넬이 되었다.그 후 그녀는 ‘에티엔 발장’ 이란 남자의 위로를 받을 기회가 되었다. 그도 역시 귀족집안 이었고 코코에게 새 일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코코는 상류사회에 참가할 수 있었으며 또 잘 이용했다. 그녀는 에티엔 발장 집에 살게 되었다. 주변의 ‘정부’라는 수군거림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녀의 깍아내려지는 자존심을 승마로 풀었다. 그렇게라도 구속당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자존심 하나는 대단했다. 그녀의 자존심은 패션에서도 빛을 발했다. 경마장에 갈 때 단순한 모자에 승마 바지를 수선하여 입었다. 여자들이 크고 화려한 모자에 치마만 입던 시절에 그 것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에티엔 발장’과의 이별후에 코코에게 두 번째로 큰 영향을 준 남자가 생긴다. 그의 이름은 ‘보이 카펠’로 그녀가 감탄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남자였다. 남자 복이 많다라고생각할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샤넬 그녀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기에 당연히 어울렸던 것이다.그녀는 보이 카펠의 힘을 빌려 모자 점을 오픈한다. 예상대로 모자점은 점점 잘 되어 갔다. 그녀는 기술이 뛰어난 ‘뤼시엔‘이라는 디자이너와 자신의 동생을 포함해 셋이서 작업을 하게 된다.코코는 패션이 단순하고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모자를 만들었다. 샤넬모드 모자점은 점점 호황을 누렸고 코코는 어느 정도 여유와 사치를 즐길 수 있었다. 이제 이 모자점은 종합적인 패션을 취급하는 뷰티크로 변했다.편안한 의상. 그녀는 그 원칙을 준수했다. 남성 스포츠 웨어를 이용해 여성복을 만든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분명 여성 진보의 선구자였다. ?????1920년대는 샤넬의 성공이 절정에 도달하는 시기였다. 코코 샤넬은 계속해서 새로운 패션을 유행 시켰다.예를 들어 ‘저지 하우스‘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옷이 되었다. 샤넬은 그녀의 모조품이 시장에 나도는 것을 기뻐했고 이용하여 그녀의 명성을 날렸다.성공가도를 달리는 그녀의 부의 절정은 향수와 함께 짙어진다. 원래 그 시절까진 장미향, 오렌지향 등 한가지의 향만 섞었다고 한다. 그녀는 많은 향을 조합시킨 세계 최초의 향을 개발했다. 이름하여 ’샤넬 NO?5'. 또한 마케팅의 대가였던 그녀는 가게마다 그 향을 뿌려놓아 출시 전부터 사람들이 그 향에 적응 시키도록 만든다. 이 향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명성을 누린다.그러나 세계 2차 대전은 그녀에게 허탈감을 안겨 주었다. 그녀의 사업은 점차 몰락으로 치달았고 그녀는 향수와 악세사리 컬렉션만 열고 나머지는 닫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