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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울서신에 대하여
    Ⅰ. 바울의 진정한 서신들◎ 데살로니가전서1. 기록 동기와 목적- 데살로니가 교회는 빠른 시일 내에 훌륭하게 성장했으나(1:3f.; 2:13), 유대인들이 바울과 일행의 성공적인 선교를 시기하여 그 도시의 불량배들을 선동했기 때문에 바울은 불가피하게 밤을 틈타 베뢰아로 피해야만 했고(행 17:5f.), 다시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도착하게 된다(행 17:13f.). 그 동안에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과의 “헤어짐으로 인하여 잠시 외로움을 느꼈었고”, 그는 그들을 그리워하여 두 번이나 데살로니가로 다시 가보려고 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그곳에 가지 못했다(살전 2:18).바울은 다시 데살로니가를 방문하려던 그의 계획이 좌절된 후, 매우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아덴에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던 것이다.바울은 아덴에서 디모데만 보낸 후 자신은 계속해서 고린도를 향해 갔다. 거기서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된다. 당시의 황제는 “유대인”들은 모두 로마를 떠나야 한다는 칙령을 내렸다.바울은 그 당시 고린도의 상황도 데살로니가와 다를 바 없이 모든 면에서 불확실하고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선교활동이 모두 허사가 되지 않을까 몹시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처럼 바울이 염려와 걱정에 빠져 있었을 때 데살로니가로부터 돌아온 디모데가 고린도에 있는 바울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 준다.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복음을 굳게 지키며, 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이러한 디모데의 선교 보고를 접한 바울은 그가 처해 있던 ‘고난’과 그를 짓눌렀던 ‘역경’에서 해방되었으며(3:7), 이제야말로 “다시 사는 보람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바울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데살로니가전서를 쓰게 된 것이다.2. 기록 시기와 장소- 데살로니가전서의 기록 시기와 장소는 매우 분명하게 확정지을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교회의 상황을 알기 위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게 되는 상황이 전제되고 있다(3:1f.시기와 장소- 고린도전서의 기록 장소는 먼저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16:19)로 미루어 우리는 소아시아의 선교 중심지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함께 있었던 곳인 에베소를 생각하게 된다.이 서신은 에베소에서의 두 번째 선교 활동을 하던 때에 쓰여진 것이다(16:8). 소스데네가 서문에 언급된 것은 아마도 그가 고린도 회당의 전직관리였던 것 같다(행 18:17). 바울은 고린도에 얼마 동안 가보지 못했으나(4:18), 지금은 그곳을 방문해서 겨울을 지낼 생각을 갖고 있다(16:6). 그리고 바울은 16장 8절에서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한다”고 말함으로써 기록 때가 봄인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기록시기는 기원 54년 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3. 특징- 이 서신은 분명히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처럼 어떤 일관된 논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린도 교회의 소식이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써 교회의 신앙과 생활에 관한 여러 특정 문제들을 취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문제를 다루는 개별 단락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러나 이 서신 속에는 초대교회의 실제적인 생활, 특히 교회가 이방 문화권 속에 처음 세워지면서 부딪쳤던 여러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담고 있어서 우리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서신이 된다.4. 내용 분해① 서신의 첫머리(1:1-9)- 인사말(1:1-3), 감사말(1:4-9)② 바울이 들은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문제들(1:10-6:20)? 분파문제(1:10-4:21)- 교회내의 분열(1:10-17),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선포(1:18-2:5), 하나님의 지혜(2:6-16),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3:1-23), 그리스도 의 사도(4:1-21)? 성적 부도덕성 문제(5:1-13)?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 문제(6:1-11)? 열광주의자들의 부도덕(6:12-20)③ 고린도 교회가 서신으로 바울에게 제기한 질문들(7:1-1 기록 시기를 기원 54년 봄이라고 한다면 후서의 마지막 서신은 적어도 기원 55년 가을이 될 것이다.장소는 서신들 가운데 ‘적대자들에 대한 바울의 첫 번째 방어서신’(2:14-6:13, 7:2-4)과 ‘눈물의 편지’(10:1-13:14)는 ‘에베소’에서 기록되었음이 확실하고, 그 외에 ‘화해의 서신’(1:1-2:13; 7:5-16)과 ‘디도를 위한 추천서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을 부탁하는 서신’(8:1-9:15)은 ‘마케도니아’에서 기록되었으리라 추정된다.3. 특징- 첫 번째 특징은 고린도후서의 문체가 매우 논쟁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고린도후서에는 여러 단편 서신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4. 내용 분해① 적대자들에 대한 바울의 첫 번째 변호 서신(2:14-6:13; 7:2-4)② 눈물의 편지(10:1-13:13)③ 화해의 서신(1:1-2:13; 7:5-16)④ 디도를 위한 추천서,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을 부탁하는 서신(8:1-9:15)⑤ 비바울적인 단편의 삽입(6:14-7:1) - 이 구절에 나타난 사상이나 어휘 모두가 바울의 것이 아니다. 일찍이 이 구절의 출처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다. 이 단편이 어떻게 고린도후서에 삽입되었 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빌립보서1. 빌립보서의 기록동기와 목적-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헌금을 모아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냈다(4:14, 18; 2:25). 이에 바울은 자신에 대한 빌립보 교회의 사랑과 염려, 그리고 선물에 감사하는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가장 신뢰했던 교회에 보낸 “사랑의 편지”로 불려지기도 한다. 사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세운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 늘 바울에게 큰 힘과 기쁨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별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서신에는 보다 친밀한 어조의 기쁨, 겸손, 성실, 그리고 감사에 대한 언급들이 돋보인다.2. 기록시기와 장소-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의 기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13-14, 20절). ‘로마’나 ‘가이사랴’는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에 ‘에베소’가 가장 개연성이 있다.고린도후서 6장 5절과 11장 23절의 진술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한 번 이상 수감되었음을 시사하는데, 사도행전에도 수감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반영되고 있으나, 로마에서의 수감은 28장 30절 이하에만 나타난다. 빌립보서 1장 12-26절과 빌레몬서의 상황은 에베소 수감설이 가장 잘 맞는다. 따라서 빌레몬서의 집필 장소나 시기도 빌립보서의 경우처럼 에베소와 기원 55년경이 된다.3. 특징- 이 서신에는 바울의 따뜻하고 신중하고 친절하고 공손한 면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교리적인 진술은 없고, 인간적인 면, 즉 한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의사 존중 등이 돋보인다. 바울이 도망쳐 나온 오네시모를 되돌려 보내는 것에서는 그리스도인도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더 나아가 그가 빌레몬에게 보낸 호소 편지에서는 사도이자 친구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억지나 강압이 아니라, 스스로 어려운 결정을 내리도록 도울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4. 내용 분해① 첫머리의 인사말(빌레몬과 교회에게, 1-3절)② 감사와 중보기도(4-7절)③ 본 론(8-20절)④ 결 어 : 문안 인사와 축도(빌레몬과 교회에게, 21-25절)◎ 갈라디아서1. 갈라디아서의 기록동기와 목적-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내에 자신에 대한 적대자들의 공공연한 활동과 이에 동조하려 드는 교인들의 근황을 알았을 때는 우선 자신의 사도직과 자신이 증거했던 복음을 동시에 변호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즉시 그리고 단호하게 서신을 썼던 것이다. 바울은 먼저 갈라디아서 1장 13절부터 2장 21절에서 갈라디아 교회에 떠도는 자신에 대한 비방이나 루머를 일축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나 권위를 향한 비방에 대한 해명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며, 그 후 그와 예루살렘 사도들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비교적 상세히 밝히바울이 ‘겐그레아’라는 고린도의 항구 도시 출신인 “뵈뵈”를 천거하고 있으며(16:1f.), 또한 바울의 개인적인 상황과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이 서신은 클라우디우스 칙령이 기원 54년에 네로에 의해 폐지된지 2-3sis 후에 쓰여졌으므로 일부 유대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돌아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16장에 나와 있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역시 그들 중에 속했을 것이다(16:3). 그러므로 이 서신은 바울이 50년대 중간쯤,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약 55년 혹은 56년 봄에 로마에 설립된 교회에 썼을 것이다.3. 특징- 로마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절대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갈라디아서와 같은 주제이다. 바울은 이 서신에서 인간의 구원은 “율법의 행위”나 민족적, 문화적 우월성과 아무 관계없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얻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서신은 후대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과 발전에 신약성서의 어떤 다른 책보다도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베드로전서, 히브리서에 영향을 준 것은 물론 속사도 시대의 저술들, 교부들의 사상, 종교개혁자들, 현대 신학자들의 사상에도 크게 공헌했고, 최근에는 특히 토착화 논의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듯이, 로마서는 바울이 평온한 사색중에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핵심을 체계화시키고 자신의 신학을 조직적으로 기술했던 서신은 아니다.4. 내용 분해① 머리말(1:1-17)? 인 사(1:1-7)? 감사의 집필 동기(1:8-15)? 바울의 복음 :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1:16-17)② 논리의 전제 : 하나님의 의의 필요성(1:18-3:20)? 인간의 타락상(1:18-2:29) - 이방인(1:18-32), 유대인(2:1-29)? 모든 사람은 죄 아래 있다(3:1-20) - 유대인은 자랑할 것이 없다(3:1-8),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사람은 없다(3:9-20)③ 은혜의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3:21-4:25)? 명제 : 믿음을 통한 의(3:2다.
    인문/어학| 2006.09.14| 11페이지| 2,000원| 조회(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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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한국 문화와 역사
    과 목 명 : 한국 역사와 문화뜻으로 본 한국역사학 과 :교 수 명 :학 번 :제 출 일 :이 름 :◎ 비 평먼저 이 책을 읽는 동안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고 또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한국 역사는 진행되는 동안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이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우리나라의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사건들이 단순한 과거에 있었던 일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 영향을 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할 수 있었다.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주로 역사의 이해인데 예로부터 인간을 가르치는 일에는 반드시 일종의 우주사가 들어있으며 모든 종교의 경전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이 자기를 드려다 보고 있을 때는 자기가 절대적인 줄로 아나 사실은 자신 또한 고립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나는 나일 뿐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전체 속에서의 자신을 발견할 때 비로소 안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화이며 우주사인데 우리가 인생의 튼튼함을 느끼는 때가 우주사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는 때라고 하니 인류 생활이 있는 한 그치지 않을 역사 이해의 요구 역시 우주사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역사는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세계관이 거의 해체되고 보편적 세계 사상이 결핍된 현대는 모든 정력을 소모하고 비참해져 가고 있다. 그의 예로 이 책에서는 핵무기의 실험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우리가 사는 지금이 이 책에서 말하는 비참한 시대인 듯하다. 현대 사람들은 군축회의니 경제회의니 해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세계 이상을 세울 수 있는 머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고쳐 읽어야 할 것이다.우리가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의 정의를 먼저 바로잡아야 하는데 먼저 ‘역사는 지나간 일이다’ 라는 정의를 살펴보면, 역사는 결코 지나간 것이 아니며 만일 정말로 지나간 것이라고 하면 현대의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고 우리의 조상들이 발명하신 물건들을 실생활에 이용하고 있다. 역사는 지나간 일이 아니라 현재 안에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역사는 사실이냐 아니냐는 문제에서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해석에 따른 차이일 뿐이다. 역사의 생명은 사실의 뜻을 붙잡는 해석에 있다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것이 조선시대의 역사가가 보면 나라를 세운 것이지만 고려시대의 역사가가 보면 나라를 무너뜨린 것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도 기독교인들의 위치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이김이지만 세속적인 면에서 보면 30세 청년의 죽음일 뿐이다. 따라서 참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주, 인생에서 역사를 굽어보고 쓴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관없이 쓴 역사는 참 역사가 아니며 사관에 이르지 못한 역사 이해도 참 역사의 이해가 아닌 것이다.우리 나라의 역사는 지리적으로도 짐작 해 볼 수 있듯이 고난의 역사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리학적 짐작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위치인데 문명이 발달하기에 적합하다는 북 온대 지역에 위치한 것도 그렇지만 해양 교통과 육상 교통이 가능한 반도에 위치한 것도 우리의 고난의 역사의 큰 원인이다. 이러한 위치는 문물 수입이 빠르고 문화가 퍼지는 데 유리하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늘 남의 쳐들어옴을 입어서 독립을 지켜나가기 어렵다는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우리나라의 지리학적 위치가 역사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지리적 위치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역사이다. 지리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는 하나 그것은 주어진 터전일 뿐 그 흥망의 원인은 되지 못한다. 역사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사람에 달려 있다. 한국역사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역사는 오직 한국 사람의 역사인 것이다. 그리고 고난의 역사의 주인으로써 한국 사람은 한국의 역사를 자기와는 관계없는 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슴속에서 찾아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6.09.14| 2페이지| 1,000원| 조회(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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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천신학에 대한 질문
    1. 실천신학이란 무엇인가?- 실천신학은 선교학이나 에큐메닉스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실제적인 모임(Sammlung)과 보냄을 받음(Sendung)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향한 그리고 교회를 통한 성령과 말씀의 역사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성령과 말씀은 교회를 불러모아 세계로 내어 보낸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대한 교회의 참여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교회를 다루는 학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실천신학이 신학 전체와의 관련 속에서 설명되고 현실 교회와의 관계가 규명되는 것이다. 신학이란 관점에서 보아 교회와 세계는 바로 실천신학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관계의 장이다.2. 실천신학과 다른 신학과의 관계를 설명하라.가. 실천 신학의 우위성- “신학은 하나의 특출한 실천과학이다.”라고 헴니츠는 말했다. 최근에 이르러 특히 헤르만?디임같은 사람은 모든 신학의 교회적 특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 “신학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을 통해서 확증되는 사건,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신학이 실천성 여부에 따라 그 본질이 규명된다는 말이다. 신학이 성서주석을 무시할 수도 없고, 역사를 도외시 하거나 조직적 사고를 포기할 수도 없듯이 프락시스도 부인할 수 없다. 신학이 행여나 실천적 성격을 무시하려든다면 비록 그것이 하나의 학문일 수는 있을 지언정 결코 신학이라 불리어질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성서주석학이 성서본문을 바탕으로 하는 전문분야라 한다면 실천신학은 프락시스를 바탕으로 하여 모든 신학과 연관을 맺는 전문분야인 것이다. 신학이 교회적인 학문인 이상 교회와 관련을 맺을 때만 객관성을 인정받는다. 신학의 객관성이 ‘교회적’학문이란 점에서 본질을 찾는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바로 “실천신학이 모든 신학분야의 객관적 학문연구의 전제가 된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신학자가 학자로서의 객관성을 견지하고 의미 깊게 연구활동에 종사하려면 반듯이 교회의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회가 어떻게 존재하고 어떤 운명 속에 몸담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모든 신학적 연구의 전제가 된다.이러한 입장을 두가지 측면에서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교회를 아는 것이 모든 신학적 통찰력의 전제가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실의 교회를 올바르게 보고 이해함으로써 신약성서의 문제점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주석이 현실교회에 대한 이해를 필수요건으로 삼았던들 그처럼 수 많은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연구도 역시 객관성을 띠기 위해서는 실천신학의 도움을 받아 마땅하다.둘째로, 신학의 객관성이 단지 교회와의 연관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회가 존재했었고 또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에 신학도 있다는 것만은 아니다. 신학은 교회가 지금 존재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성서주석이 복음의 선포를 목표로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실천신학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현실의 교회를 눈여겨 보지 않고서는 목표를 도달할 수도 없거니와 마침내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교의학이 설교의 심장이라고 한다면 조직신학자는 설교라는 과제를 늘 새겨 두어야 한다. 말하자면 현실의 교회를 전반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에서 실천신학이 모든 신학분야의 연구에 전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역시 모든 신학의 목표라는 입장에서 검토되는 것이다.신학 전반을 통틀어 신학자가 객관적인 위치를 고수하려면 실천신학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것은 바로 신학이라는 학문에서 차지하는 교회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말이다. 실천신학은 현실교회와 세계의 문제들을 신학에 명확하게 제기해 주고 있다. 만약에 실천신학이 모든 신학분야와의 연관성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경우에는 신학과 교회는 분리될 수 밖에 없으므로 양편 모두가 무익한 것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나. 다른 신학분야의 우위성- 지금까지는 실천신학이 모든 신학의 전제가 된다고 했는데 이제 반대로 모든 신학이 실천신학의 전제가 된다는 주장을 간추려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모든 신학이 실천신학에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객관성을 인정 받는다고 하면, 실천신학의 객관성도 모든 다른 신학에 의존치 않는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신학연구의 목표를 두고 생각해 보면 실천신학은 다른 신학분야의 전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필수적인 귀결도 된다. 실천신학은 모든 신학분야의 공과를 교회의 프락시스를 중심으로 하여 평가한다. 이런 점에서 실천신학은 “교회를 위한 모든 학문적 노작의 실현을 다루는 학문”(M. Fischer, L. Fendt)인 셈이다. 교회의 현실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실천신학도 성서주석, 교회사, 조직신학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다른 신학분야는 실천신학의 객관성을 보존하는 전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이것이 실천신학의 정수를 찌른 말이라고 하면, 다른 분야들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근본적으로 하나의 종속적인, 말하자면 뒤에서 따라가는 위치에 있는 셈이 된다.여기서 실천신학이 프락시스를 문제시 하는 학문이라고 해서 단순하게 프락시스로 끝나고 만다는 것일 수는 없다. 실천신학은 프락시스라는 측면에서 다른 분야들을 결실로 이끄는 작업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를 위한 모든 학문적이고 신학적인 연구의 실현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독자적인 학문성을 갖는다. 그것은 또 구체적인 실례를 통하여 검토해 보는 역할을 하며, 또한 학문적인 결실 여부를 그 효용성과 영속성에 따라 측정해 보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실천신학은 신학 전반을 비판하는 기능을 가진다. 다른 신학분야들이 실천신학을 객관적으로 정당하게 추구해 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전제가 된다고 하면, 결국 그것은 모든 분야들이 프락시스를 지향하는 것이고, 바로 이런 점에서 실천신학은 모든 신학의 전제일 뿐만 아니라 규준이 된다. 나아가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제시하는 가치를 점검하고 그 본질을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3. 실천신학과 교회, 실천신학과 세계와의 관계를 설명하라.가. 실천신학과 교회- 실천신학이 교회의 소리를 학문이란 세계에서 부각시킨다는 것은 곧 신학을 교회 안에서 대변한다는 말이다. 실천신학이 신학의 세계에서 교회를 변호하는 역할을 떠맡고 있다는 것은 곧 교회 안에서 신학을 변호한다는 말이다. 베버의 말대로 신학을 “사고라는 영역 속에서의 선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실천신학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 그것을 위해 보냄받은 사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를 문제시 한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과 말씀의 역사를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실천신학은 교회의 현상을 비판하며 또 한편으로는 교회의 행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교회에 대한 비판- 실천신학이 객관성을 묻는 것이라면, 그에 앞서 교회의 진실을 물어야 한다. 실천신학이 교회의 선포와 행위를 신학적으로 비판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구체화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교회의 말씀과 행위가 본래 뜻하는 바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혹은 오해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등등의 문제를 밝혀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신학적으로 검토한 결과 현실교회가 성서가 말하는 바와 다른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하면, 실천신학은 “교회에 대한 비판”을 내려 교회를 “비신화화”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실천신학이 현재의 교회를 신학적으로 검토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은 곧 실천신학이 교회를 본래의 모습으로 개혁하는 신학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는, 말하자면 교회 전통을 비판하고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옳다고 믿어 제도적으로 굳어진 것이 아마도 제도화를 낳게 된 본래의 의향과는 일치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물어야 한다. 진리가 무엇이냐를 묻는다는 말은 곧 참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이냐를 묻는다는 말과 같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프락시스 속에 반영된 교회의 모습이 참된 것인지 아니면 거짓인 것이지를 물어야 한다.?교회행위의 방향제시- 실천신학은 교회의 구체적인 “모임”과 “보냄”을 받은 것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성령과 말씀이 교회를 향하여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어떻게 역사하는 가를 문제시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명령으로 받은 바를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교회를 위한 명령의 신학이라는 점에서 특수한 의미를 가진다.교회가 받은 명령은 본회퍼의 말처럼 “선포행위를 통하여 구체화 되는”것이다. 실천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스스로 듣고 배우고 자라야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조그마한 분야에서라도 모범적인 실천가가 되며, 그렇지 못하면 그의 신학은 “비실천적인 실천신학”이 되고 만다. 명령되어진 것은 그것을 실행하겠다는 결단과 그것을 실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모범적인 행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만일 실천신학이 일방적인 입장만 추구하려 들면 교회 프락시스의 다양성은 상실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주도면밀한 선택과 구체적인 방법의 제시를 통해서만 그 방향 제시에 있어서나 모범을 보이는 데 있어서도 구체적일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말씀”은 곧 약속이요, “성령”은 곧 미래를 제시해 준다는 점을 좀더 명심할 필요가 있다.실천신학은 미래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현상분석에만 만족하지 말고 교회의 프락시스를 이론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과 함께 교회의 행동계획을 펼쳐 나가야 한다. 실천신학은 또 투쟁하는 교회로서의 전략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는 항상 계획적이어야 한다.
    교육학| 2006.09.14| 5페이지| 1,500원| 조회(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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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사회의 특징
    ▣ 북한사회의 특징1. 들어가는 말- 21세기 이 지구상에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곳은 오직 한 곳 뿐이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이다. 일제 치하의 식민지의 아픔속에서 분단의 현실을 피할 수 없었던 한국과 북한이 바로 그 비극의 주인공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으며 분단되었던 많은 나라들이 통일을 하였다. 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우리의 마지막 과제이다. 21세기는 사이버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속에서 아직도 북한은 과거의 체제를 고집하고 있으며, 현실을 왜곡시키며, 폐쇄적인 정책을 세우고 있다. 이것은 우리 한민족의 큰 아픔이며 고충이다. 21세기 세계에 뒤떨어지지 않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남한과 북한이 하루빨리 통일을 해야한다. 서로 얼굴 붉히며 싸우는 건 반세기면 충분하다. 지구상에 공산주의 국가는 이제 거의 없다. 지극히 북한만이 공산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이제는 서로의 화해를 통해 세계를 향해 한민족이 나아가야 할 때이다.이러한 통일을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보고서에서는 북한사회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2. 북한 사회의 특징- 북한 사회의 특징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① 강성 대국 사회② 우상 신권 사회③ 제한적 개방 사회가. 강성 대국 사회- 북한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3대 기둥은 총대(군사력), 사상, 과학기술이다. 먼저 총대란 북한의 군사력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북한의 군사력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북한의 군사는 대략 69만명이며 군사력은 전 세계의 9위쯤 된다고 한다. 이렇게 북한은 작은 국가임에 불구하고, 군사력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다음으로 주체사상은 북한의 통치이념이다. 통치 이데올로기로써 주체사상의 필요성을 명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1953년 스탈린 사망후인 1955년 12월 28일에 당 선전선동원 대회에서 사상에서의 주체를 주장한데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이것을 대외적으로 공식 선언한 것은 중?소의 이데올로기 분쟁이 두 로기로서 주체사상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 기초로 이루어졌다.)첫째,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완전히 새로운 과학적 해명에 두고 있다.둘째,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이다.’셋째,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의식이다.’넷째, ‘주체사상이란 한 마디로 말하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주도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다섯째, ‘주체사상은 모든 사람의 사고와 혁명 실천에서 자기나라 혁명을 중심에 놓을 것을 요구한다.’여섯째,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기 때문에 인민대중은 마땅히 혁명과 건설에 대하여 주인다운 태도를 가져야 하며, 주인다운 태도는 자립적 입장과 창조적 입장에서 표현된다.’1982년의 김일성 탄생 70돌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 주체사상 토론회가 열렸는데, 이 때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도 발표되었다.김정일의 논문에 나타난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힌 사람 위주의 철학적 원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여기서 사람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이며, 물질세계 발전의 특출한 산물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이 세계의 주인으로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마르크스는 “사람은 역사를 만들되, 그에게 주어진 제 조건의 제약을 받으면서 역사를 창조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역사에 있어서의 사람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에 역사에서의 사람의 역할이 인정된다면 그의 사적 유물론의 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인 치유와 몰락의.북한 통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와는 이론적으로 모순되면서 북한주민을 정치적으로 상징조작하기 위한 북한식 통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북한의 공식 주장에 따르면 주체사상은 유일사상체계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의 주인인 인민은 수령의 주위에 철통같이 단결하여 수령의 영도 밑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노골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이들 주장을 고찰해 볼 때, 논리의 모순이 허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주인인 인민이 수령의 영도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면 그것은 주인이 아니라 비주체?예속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며, 주체를 가진 사람은 복종과 예속을 속성으로 한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체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북한 최고권력계층의 주체만을 인정하고 2천만 북한주민의 주체와 독자적인 가치관을 말살한채로 복종과 예속만을 강요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의 내용면에서 볼 때, 주체사상 이론과 현실과의 괴리 현상과 모순이 너무나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제 27조는 “국가는 언제나 기술발전문제를 첫 자리에 놓고 모든 경제 활동을 진행하며 과학기술 발전과 인민경제의 기술개조를 다그치고 대중적 기술혁신운동을 힘있게 벌려 근로자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며, 육체로동과 정신로동의 차이를 줄여 나간다”고 규정하고 있다.또한 제50조, 제51조에서는 각각 "국가는 과학연구사업에서 주체를 세우며, 선진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새로운 과학기술분야를 개척하여 나라의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에 올려 세운다", "국가는 과학기술발전계획을 바로 세우고 철저히 수행하는 규율을 세우며 과학자, 기술자들과 생산자들의 창조적 협조를 강화하도록 한다"고 규정하였다.헌법에 규정된 과학기술 관련 조문을 근거로 하여 북한이 지향하고 있는 과학기술 정책기조를 정리하면,기술혁명의 계속적인 추진과학자들과 생산자들의 창조적 협조 강화과학연구사업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운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북한은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대중적 지혜의 발양과 소극성, 보수주의, 기술신비주의를 타파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과학연구사업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운다는 것은 주체사상 및 자력갱생 원칙에 따라 과학기술의 발전도 자체의 연구인력과 독자적인 이론개발을 통해 추진한다는 것이며, 연구사업의 중점과업도 내부의 원료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제27조는 "국가는 언제나 기술발전문제를 첫자리에 놓고 모든 경제활동을 진행하며 과학기술 발전과 인민경제의 기술개조를 다그치고 대중적 기술혁신운동을 힘있게 벌려 근로자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며, 육체로동과 정신로동의 차이를 줄여 나간다"고 규정하고 있다.또한 제50조, 제51조에서는 각각 "국가는 과학연구사업에서 주체를 세우며, 선진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새로운 과학기술분야를 개척하여 나라의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에 올려 세운다", "국가는 과학기술발전계획을 바로 세우고 철저히 수행하는 규율을 세우며 과학자, 기술자들과 생산자들의 창조적 협조를 강화하도록 한다"고 규정하였다.헌법에 규정된 과학기술 관련 조문을 근거로 하여 북한이 지향하고 있는 과학기술 책기조를 정리하면,기술혁명의 계속적인 추진과학자들과 생산자들의 창조적 협조 강화과학연구사업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운다는 것이다.기술혁명은 사상·문화혁명과 함께 북한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3대혁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중노동과 경노동의 차이농업노동과 공업노동의 차이를 줄이며여성들을 가사 부담에서 해방함으로써 근로자들을 힘든 노동에서 해방시킨다는 3대기술 혁명 사업의 추진으로 구체 화되고 있다.과학자들과 생산자들의 창조적 협조는 과학연구사업의 결과를 직접 생산기술로 연결 시키기 위한 것으로 실제 경제건설과 생산현장에서 제기되는 각종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과학기술자들과 생산노동자들이 협조하여 창조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북한은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대중적 지혜의 발양과 소극성, 보수주의, 기 술신비주의를 타파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과학연구사업에서 주체를 철일성?김정일 세습 독재체제 유지를 위해 종교를 탄압해 왔다. 또한 김일성?김정일을 교조로 하여 신화를 창조해 놓고 주체사상을 성서로 하여 북한 주민들을 공산주의자의 품성으로만 살아가게 하고 있다. 또한 당간부들을 사제로 하여 공산독재체제 유지의 들러리역을 시키고 있다. 이러한 북한체제의 정치적 특징에서 볼 때, 북한을 하나의 거대한 종교집단?신권체제로 볼 수 있다.더욱이 김일성?김정일을 신으로 묘사한 내용을 보면, 김일성 신권체제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8?15 광복 직후인 어느 해 가을에 유별나게 동해 바다가 설레이고 설악산의 단풍이 붉게 타더니 갑자기 큰 장군별?여 장군별?아기 장군별이 나타났는데, 그 별들이 김일성 수령?김정숙 동지?김정일 지도자입니다.”“김일성 장군님이 물 위에 종이 한 장을 펴시고 강을 건너신다.”“김일성 장군님은 솔방울로 폭탄을 만드시고 모래알로 쌀을 만드신다.”“수령님이 주체라는 신묘한 지휘봉을 한 번 드시면 바다가 훤히 열리고 험준한 산악과 길을 비킨다.”이러한 신화의 내용에서 볼 때,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신격화가 어느 정도까지 왔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을 신격화하여 카리스마적 교조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만경대를 성지로 하여 김일성을 신격화하고 있다.“모든 기독교인들이여, 예루살렘성지를 찾지 말고 평양의 만경대를 찾으라.” 이러한 선전까지 하며 한국 기독교인들을 선동하고 있다.김일성 사후 최근에는 김정일을 ‘우리의 하늘, 운명’으로 ‘위대한 수령’으로 부르고 있다.))다. 제한적 개방사회-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의 강력한 개방 압력 뿐만 아니라, 내부에 서도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다. 북한이 현재와 같은 폐쇄노선을 고집하면서 유일적 지배체제를 존속시키는 한, 그들의 최종목표인 '한반도 공산화 통일' 전략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렵다.현재 북한은 제한적 개방을 통해 딜레마를 극복함과 동시에 남한 당국 배제전략을 통해 내부체제 결속을 다져나가고 있다. 북한도 경수로 사업이나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다.
    인문/어학| 2004.06.05| 6페이지| 1,000원| 조회(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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