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5
검색어 입력폼
  • 영국 온천의 문화- 건전한 스포츠로부터 퇴폐적인 향략에 이르기까지...
    < 영국 온천의 문화 - 건전한 스포츠로부터 퇴폐적인 향략에 이르기까지...>I. 머리말레저는 현대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여행, 스포츠, 공연이나 영화, 그리고 오락, 나아가 쇼핑에 이르기까지 레저 활동은 오늘날 부가가치가 놓은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사회에서 레저는 일과 일 사이의 휴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단지 더 나은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기도 한다. 또한 레저 활동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기도 하고, 일상생활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삶의 양식을 제공 할 뿐만 아니라 소비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정점을 기록하기도 한다.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레저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하여, 이를 역사적인 대상으로 고찰하는 연구는 아직도 미약한 상태에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난 세기를 주도해온 역사학의 이분법적 전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연구의 대상을 일과 여가(work and leisure), 정신과 육체, 과학과 미신(science and superstition) 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후자에 속하는 범주에 흔히 열등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따라서 레저, 스포츠 및 오락과 같은 주제는 발전과 진보라는 기존 모델에서 열등한 범주에 놓였던 만큼 역사가들의 충분한 관심을 끌지 못하였던 것이다.그러나 1970년대를 기점으로 좀더 입체적이고 균형 있는 과거를 이해하고자 하는 새로운 역사학의 경향은 열등한; 범주에 속하였던 주제에 새로운 관심과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1986년,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는 영국이 18세기에 레저와 스포츠 분야에 주도적인 국가가 되었으며, 레저 활동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충동적인 본성이 좀더 체계적으로 조직화되고, 그 보이지 않는 통제 속에서 레저는 사회적으로 획득되어야 할 재산의 일종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레저를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물질적으로 풍요해진중심의 하나이자 근대사회의 독보적인 레저의 장이었던 온천장의 문화사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II. 본론1. 온천장의 탄생온천장의 탄생은 중세를 통해 지속되어온 거의 모든 사회계층의 레저에 대한 추구, 특히 순례(pilgrimage)라는 관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순례는 중세 사람들에게 놀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일종의 휴가여행을 가능하게 한 기제였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관습이 금지되자 순례를 통해 떠났던 놀러 나가는 전통은 합법적 틀을 제공할 대안을 찾게 되었다. 따라서 여행의 목적지를 제공할 장소가 필요하게 되었고, 기존 순례장소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온천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순례를 일종의 휴가라는 측면으로 바라보면, 면죄와 기복에서 나타나는 형태와는 약간 다른 성격의 구제와 희망이 나타난다. 즉, 구제와 희망은 면죄와 기복(복을 내려 주기를 기원하는 일) 유형의 가시적 고통으로부터의 구제책이 아니라. 비가시적으로 잠재한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로부터의 구제, 그리고 동시에 희망을 내포하는 것이다. 순례는 그가 속한 일상적 구조로부터 탈피이자, 일시적인 생활양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즉, 순례란 각박한 일상적 존재로부터의 물리적인 탈출과 새로운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합법적으로 부여하는 기회였다는 것이다.중세 사람들에게 순례는 오직 종교적 신앙심만을 고취하는 수단은 아니었다. 성인의 발자취를 더듬어 영혼을 정화함으로써 전국 행을 꾀한다는 원칙적 이상아래 순례는 실제적으로는 현세에서의 어려운 삶의 구조 내에서 구제와 희망을 주어 그 삶을 지속시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중세의 순례가 제공하던 다양한 위안과 여흥이라는 요소는 종교적 체제의 변화와 관계없이 삶에서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구제와 희망이라는 기능을 제공해줄 대안, 즉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고, 새로운 순례지로 여행할 수 있는 과거의 순례라는 관습과 같은 합법적 구실 또한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의 종교개혁에 이다. 종교개혁이 이른바 미신적인 물의 사용을 파괴하는 작업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대안으로서의 과학적인 물의 사용이 대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등장한 수치료학이 과거 순례자들이 필요로 하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물 자체를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기초를 다졌으며, 이러한 개념의 변천을 통해서 영국의 온천장들은 과거의 성천을 대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온천장이 성립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물과 물을 찾는 행위 모두를 합법화시키는 과정이 자리한 것이고, 그 역할이 담당한 것이 수치료학 이였다.샘을 숭배하는 불경한 사제들은 물 자체가 약효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값싸고 갑작스 런 치유를 샘을 관장하는 신의 탓으로 돌린다. 샘에 돈이나 물건을 바치는 것은 예전에 에드거 규율에 의 해 금지된 바 있다. 그리고 해먼스 박사는 옥스퍼드에 있는 성 클레멘트의 샘을 제외한 성 에드먼드의 샘 에서 숭배를 반대하는 금지명령을 언급하였다. 이후 가톨릭 사제들은 이 옛 관행에 따라 광천을 특정한 성 인들에게 갖다 붙이게 되었다. 그래서 벅스턴에 있는 한 우물은 성 앤의 샘이라고 불렸는데, 속기 쉬운 평 범한 사람들은 헌물, 순례,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성인들이 기적적인 치유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는다.·존 플로이어, 「영국 온천의 올바른 이용과 약용」중세 영국의 일상생활에서 물은 친숙한 물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물을 신성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때로는 위험한 물질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성천의 물은 기적을 가져오는 힘이 있다고 생각되었으므로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기적적인 치유를 구하였고 하였다. 성천이 간직한 치유의 힘은 물 자체가 갖고 있는 화학적 성분 때문이라기 보다는 근원적으로 초자연적인 권위로부터 비롯한다고 여겼다. 한편, 보통 물을 마신다는 것을 일종의 문화적 금기였는데, 이는 물이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또한 기독교의 전파 과정에서 목욕이 퇴폐적인 관행으로 비난받으면서 최소은 젊은이나 사랑의 열병에 빠진 사람을 안정시킨다 는 주장도 있었다.이런 영향 아래 영국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공중목욕탕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런던에 집중된 공중목욕탕은 고대 로마 스타일을 재건하고자 한 것으로 스튜라는 이름 대신 이탈리아어인 Bagno(바뇨: 땀을 빼는 곳) 나 아랍어인 Hummum(후뭄: 온탕)이라는 이름을 선호하였다. 이들 목욕탕은 대중에게 개방되었으며 중세 증기탕의 난잡한 성격을 상당 부분 일소하고자 노력하였다. 성별 분리의 원칙 아래 여성 전용실이 따로 있어서 불미스러운 일을 사전에 막고자 하였다. 또한 의사와 같은 의학 전문가들을 상주시켜 건강회복의 장으로서 그 성격을 굳건하게 하고자 하였다.이제 물의 활용은 일상의 위생이라는 측면에서도 과거와는 달리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목욕이 일상생활에서 위생을 위한 보편적 관행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다. 청결의 기준이란 개인이 느끼는 것보다는 사회적으로 보이는 데서 불쾌감을 주느냐의 여부가 그 기준이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위생이란 바로 보이는 깨끗함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16·17세기 물의 활용은 과거 사회적 금기를 벗어나 일상생활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며 새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는데, 영국의 경우 대륙의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의학적 측면에서의 적극적 도입 때문에 일상의 위생보다는 질병의 치유책으로 각광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3. 빈자의 탕온천장에는 전 사회계층을 망라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온천장에서 볼 수 있는 신분으로는 부자와 빈민이라는 단 두 집단만이 있는 듯이 보였다. 1587년 윌리엄 해리슨이 온천장의 일상이란 부유한 사람들은 있는 동안 돈을 쓰는 것이고, 가난한 이들은 구걸을 하며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라고 관찰한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온천장이 급속하게 상업화되어감에 따라 화폐경제에 기반을 둔 이 공간에서 신분적 구분이랑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던 것이다. 즉 이제 온천장에서는 돈을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올 필요 없이 간단한 치료법을 찾는 것이 낫다. 는 주장 등은 16·17세기 영국에서 빈민을 보는 의식의 변화를 뚜렷이 반영하는 예이다. 여기에 빈민은 자선의 대상도, 소요를 일으킬 만한 위협도, 쓸데없이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 잠재적 노동력도 아닌, 구매력을 갖춘 부자에 상반되는 개념으로써 전통적 자선을 기대하고 시대착오적으로 찾아든 귀찮은 무임승차자일 뿐이었다. 무임승차자로서의 빈민이라는 개념이 1834년 신빈민법의 제정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변천을 겪었는가 하는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와 복지라는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한 그대 영국사회의 변동을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리라고 본다.4. 쾌락의 탕온천장은 비단 건강을 회복하는 요양소만은 아니었다. 그곳은 근세 영국 사람들에게 다양한 오락을 제공하는 곳으로 가장 발달된 레저의 장이기도 하였다. 1660년 위티라는 사람은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온천장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일들로부터 벗어나고 친구들과 더불어 위안을 얻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16·17세기 영국에서 여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최소한 귀족들 사이에서는 보편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1550년대부터 벅스턴은 귀족층의 피서지로 각광받았다. 내란의 혼돈 속에서도 온천장을 찾는 관행은 이어졌다. 배스에는 평상시와 마찮가지로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기존주장과는 달리 청교도의 엄격한 지배 아래서도 온천을 찾는 관행은 지속되었고 이것은 16세기 중반부터 계속 존재해왔던 것이다. 기원을 찾아보자면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순례로부터이다. 온천으로의 여행은 중세 순례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건강에 좋다는 환경 아래서 온천장은 다양한 여흥을 제공하였다. 우선 온천장은 근세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가장 활발한 스포츠의 장이었다. 스포츠는 특히 온천요법에서 빠질 수 없는 보조기제로 홍보되었기 때문에 온천장에서 스포츠 활동이 활발히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치료법에서 격렬한짙었다.
    사회과학| 2007.10.25| 7페이지| 1,500원| 조회(284)
    미리보기
  • 다시보는 전후 일본외교를 읽고
    # 다시보는 전후 일본외교를 읽고.Ⅰ.서론한국은 주변강국 중의 하나이며 식민통치의 쓰라린 경험을 안겨 주었던 일본이 추구하는 국가노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 우리는 일본의 외교정책의 방향에 대해서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바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논의, 자위대의 해외파병 등에 관한 문제 등 새로 취임한 고이즈미 총리의 시기에 들어서 이러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예견된 일'로 바라보고 있다.아시아의 리더라고 자부하고 있는 일본의 장래가 많이 언급되는 있는 요즘이다. 중국의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의 동아시아 정책의 바탕을 두드리는 것은 결코 침략주의만으로 끝나지만은 않는 아시아주의, 일본외교의 기본방침을 이해해하고자 함 일 것이다.이러한 견지에서 이 책은 일본의 외교정책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며 하는 의도에서 저술되었다고 생각된다.Ⅱ.본론패전과 폐허로부터 재출발한 전후 일본은 냉전체제라는 국제환경 아래에서 서방측에 속하는 경제국가로서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이루었다. 그리고 1960년대의 고도성장에 뒤이어 몰아친 70년대 국제 변동의 파도를 뒤집어쓰면서도 다시 부상했고, 80년대에는 세계의 3극 가운데 하나를 이루는 경제대국으로서 글로벌한 역할을 해내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일본은 세계에 있어 하나의 중심적인 국가로써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특히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다원화된 세계 정치체제에 있어 일본은 이제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고 있으며 특히 외교에 있어서는 점차로 자국 중심의 외교로 나아가고 있다.일본외교는 고대로부터 천황제와 신토오를 기반으로 일관된 확대 지향적인 외교행태를 끊이지 않고 맥을 이어오고 있음이다. 국력이 상대국보다 약할 때는 의식적인 면만이 부각되어, 겉으로는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나 일본의 국력이 인접국을 압도할 때는, 언제든 팔굉일우 사상(팔방을 덮어 집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전세계를 일왕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사상에 의하여 침략적으로 돌변한다. 이는 일본인의 잠재의식 속에 천황이 우주를 지배 한다. 는 신토오와 융합된 확대지향적인 사고에 연유한다고 생각된다.일본의 외교 스타일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해당국의 역사와 문화 및 심리적 요인도 있지만 그 나라가 가진 힘과 국제사회의 지위를 들었다. 결국 '국력이 약한 쪽은 강한 쪽에 예를 다하여 일종의 복종관계를 맺음으로써 국가간의 평화적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는 게 외교라는 것이다. 일본은 이 같은 본질을 밑바탕에 깔고 각 나라의 외교관계에서 어떤 때는 예의가, 어느 시기에 힘이, 또 어느 나라와의 교섭에서는 능청이, 또 어떤 국면에서는 밀사가 제 역할을 해왔다.먼저 점령하의 일본의 환경 즉 미국과의 관계를 살펴보자.참전이전에 미국은 일본의 '전후 계획'(군정)을 수립하고 있었다. 영국의 처칠과 에서 전쟁 후 모든 국민에게 자유, 평등, 평화를 보장하는 신세계를 주창하는 한편, 헐(Cornbell Hull) 국무장관에게 비밀리에 전후 세계모습을 연구하라고 지시한 것이 그 내용이다. 1942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세계대전에 참가한 미국의 루즈벨트는 일본의 항복을 쉽게 허용하지는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타도하지 않은 사실의 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킨 요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43년 1월 카사블랑카 '무조건 항복'을 주장했고, 1943년 11월 에서 일본의 영토에 관한 방침도 정했다. 미.영,소 중심의 강대국 협조에 의해 전후 질서를 잡아 평화를 지킨다는 에 근거하여 일본의 항복 후 군 기관과 내각, 의회, 주요 정부기관 해체 및 점령 군정의 입법 기관 및 행정기능 및 최고 권력 장악을 확정했다. 1945년 7월 26일 을 통한 일본의 조건부 항복을 유도하였으나, 일본 정부에 의해 묵살되었으며, 그 결과 3일과 9일 원폭투하와 소련의 대일 참전을 야기했다. 이때 소련의 스탈린은 예상했던 것보다 관동군의 저항의 미약했던 탓으로 여력을 모아 사할린과 치사마, 훗카이도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9일 대일본 참전의 가능했고, 아울러 미군에 훗카이도 북부지역 절반만을 소련 점령지역으로 요구했다. 포츠담 회담 전 미국은 소련과 영국을 염두에 두어 소련과의 분할통치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소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얻었기에 스탈린의 조건을 거부하고, 분할점령이 아닌 미군정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처럼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가 소련을 견제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유럽에서 독일의 점령지였다가 러시아가 점령한 동유럽의 대부분지역이 공산화가 되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연합군과 소련은 서로 얼마나 세력을 넓히나에 신경을 써 서로의 진격속도를 높이게 된다. 그런 일 때문에 2차 세계대전 후 독일도 분단이 되게 된다.소련은 유럽전선의 전쟁이 끝이 나자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행사를 목적으로, 바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게된다. 하지만 그것을 미국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이 크다면은 여러가지로 이익이 많아지게 됨으로.그래서 소련을 견재하여 전쟁을 빨리 끝을 내기 위해서 핵을 쓰게 된다.전쟁이 빨리 끝이 남으로 해서 러시아는 아시아에 영향력을 많이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게됩니다. 이런 상황이 전개 되는 중에도 일본은 이미 이렇게 영향력을 상실한 소련이 자기들을 끝까지 도와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던 것이다.일본의 히로시마에 핵이 터져 항복을 선언하기 직전까지 일본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자기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파악을 하지 못했기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철저히 현실주의의 빈곤에 빠져있었다.Ⅲ.맺음말어떤 국가일지라도 공통된 국가의 목표는 ‘국가의 안전과 번영’ 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외교의 목표는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 과정이다. 외교의 목표를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국익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른 새로운 국제체제의 태동을 앞두고 일본도 그의 경제력과 정치력에 걸 맞는 방위력을 보유하고, 국제사회에서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서의 일본의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외교정책들이겠다. 일본에 원폭이 투하되고 나서야 항복을 한 것도 안타까운 결과로 이끌어간 아둔한 결정으로 보이나, 그것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였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7.10.25| 3페이지| 1,000원| 조회(236)
    미리보기
  • [한국지리] 한국기후의 특성
    1. 한국의 지형, 기후의 특성과 자연환경이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 우선 기후에 대해서 알아보자. 기후란 무엇인가?-기후란 어떤 장소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대기의 종합적인 평균상태를 말하는 것이다.-기후요소기후는 대기의 종합된 상태이므로, 이를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를 구성하고 있는 몇 개의 요소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나누어 진 요소를 기후요소라고 한다.주요 기후요소는 기온, 강수, 바람, 습도, 일사, 증발량 등이 있다. 어느 지역의 기후를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면, 위의 여러 기후 요소를 적절히 종합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기후인자기후는 기후 요소의 지리적 차이에 의해서 지역별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나타난다.이와 같이 기후 요소가 지역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기후인자이다. 이 기후 인자에는 구체적으로 위도, 지형, 수륙분포, 해발고도, 위치, 대기 대 순환,기단, 전선, 제트류,해류, 식생 등으로서 비교적 영속성이 높은 그 지역 고유의 여건들이다.-우리나라는 중위도에 자리잡아 4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온대성 기후의 특징을 가진다. 또한 유라시아대륙의 동쪽에서 태평양을 접하고 있는 반도이므로, 시베리아와 몽골 등과 같은 대륙성 기후와 일본과 부근 섬과 같은 해양성 기후의 중간 성격을 띠고 있다. 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한랭 건조한 기후가 나타나고 여름에는 온난 다습한 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대륙의 동해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위도에 위치하는 다른 지역에 비해 겨울이 한랭하며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심하다. 장마와 태풍의 영향을 받는 우기가 있고 겨울엔 대설이 내리기도 하는데 장마에 의한 비는 주로 내륙에, 눈은 주로 영동과 호남지역에 많이 내린다. 연 강수량은 세계적으로 볼 때 비교적 습윤한 지역에 속한다.<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지형학적 측면한반도는 대체로 북위 33°와 43°사이에 위치하므로 기후 특색도 이 위도차에 의해서 발생된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지만 노년기 산지로 구성로 진출하며 특히 4월에서 6월에 걸쳐 빈번하게 통과한다. 4, 5, 6월은 시베리아 고기압의 쇠약으로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이 우리 나라를 많이 지나게 된다. 특히 6월에는 장마기가 시작되고 저기압이 연달아 우리 나라 부근을 지나게 되며, 겨울철에는 동해에서 저기압이 발달하여 심한 추위와 강한 바람을 동반한 한파가 내습한다.우리 나라에 영향을 주는 고기압으로는 겨울의 시베리아 고기압과 여름의 태평양 고기압이 있는데 이들은 정체성 고기압으로 같은 장소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계절에 따라 발달하거나 쇠약해진다. 시베리아 고기압에서 돌출된 고압부가 분리되어 생기는 이동성 고기압은 한랭 고기압으로 4∼5월경에 우리 나라로 이동해 오면 야간에 기온이 내려가 늦서리가 내리는 경우도 있으며 봄이나 가을철에 남쪽에서 이동해 오는 고기압이 우리 나라를 덮고 있으면 온화한 기후가 나타난다.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기단은 발생장소에 따라 시베리아 기단, 오호츠크해 기단, 북태평양 기단, 양자강 기단 등이 있다. 시베리아 기단은 북서 계절풍으로서 우리 나라로 이동하여 한랭하고 건조한 일기를 나타내며 때때로 한파로 인한 혹한을 동반하기도 한다. 한편, 이 기단의 공기는 해상을 지날 때 수증기를 얻어 산맥을 타고 상승하여 많은 눈을 내리게 할 때도 있다. 시베리아 기단은 시베리아 고기압의 5∼7일 주기의 발달 및 쇠약 현상과 더불어 그 이동경로와 속도가 다르므로 우리나라의 겨울철에 삼한사온 현상이 나타난다. 늦은 봄에서 이른 여름에 걸쳐 발생하는 오호츠크해 기단은 비교적 한랭하고 수증기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장마기에는 이 기단이 동서로 확장되어 열대 해양성 기단인 북태평양 기단과 더불어 장마전선을 형성한다. 오호츠크해 기단은 우리나라 장마의 초기에 있어 한랭하고 습한 일기를 초래하며 이 기단이 우리나라에 장시간 머물고 있으면 장마가 늦어지게 된다. 북태평양 기단은 온난 다습한 기단으로 내륙지방에서 지표면으로부터 가열된 적란운(積亂雲)이 형성되어 한여름에 소나기나 번개를 동반하게 된다. 지역 중 가장 현저한 곳이 섬진강 유역과 남해안 일대이고, 이 지역의 연강수량은 1,200∼1,500㎜가 된다. 이외의 다우지역으로는 개마고원, 대동강 하류부, 그리고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분지가 있는데 이 지역은 태백 및 소백산맥과 해안산맥 등으로 습기를 품은 바람이 분지에 유입되기 전에 대부분 비를 내리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강수 분포는 대체적으로 남에서 북으로 울라감에 따라 점차적으로 감소되며, 남해안지역이 1,500㎜로 가장 많고, 백두산 남동부가 500∼600㎜로 가장 적다. 섬지방에서는 제주도의 남동해안지역이 1,800㎜ 내외로서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강수 분포를 나타낸다.-바람우리나라 각 지방의 풍향은 대체로 겨울철에는 북서풍이, 여름철에는 남풍이 많이 분다. 봄철과 가을철에는 특히 뚜렷하게 집중된 방향은 없으나 지형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다. 풍속은 지형적인 영향을 받으며 일반적으로 섬 지방은 해안지방보다 바람이 강하고, 해안지방은 내륙지방보다 바람이 강하며, 대체로 12월에서 4월까지 풍속이 강하게 나타난다.열대성 저기압은 보통 태풍이라고 부르는데 폭우, 수해 등을 초래한다. 우리나라는 중요 태풍경로에서 다소 벗어나 있으나 중부 및 남부 지방과 때로는 북부지방까지도 태풍의 피해를 받을 때가 있다. 태풍은 일년에 평균 26개 가량이 발생하는데 7, 8, 9월에 가장 많고 맹렬하다. 태풍이 가장 많은 시기는 7∼8월이고 전체의 85%가 이 시기에 나타나며 빠를 때는 6월, 늦을 때는 10월에도 태풍이 내습하여 피해를 주기도 한다.-적설겨울철 강수는 상당량이 눈으로 내린다. 우리 나라와 같이 겨울이 길 때에는 강설 기간도 길고 강설량도 중요하다.평균 초설일은 북부 개마고원 일대가 가장 빨라서 10월 7일이고, 남쪽으로 내려감에 따라 차차 늦어져 남해안에서는 약 2개월 후인 12월 20일경이다. 반대로 평균 종설일은 북부 개마고원 일대가 가장 늦어서 5월 10일이고 남쪽으로 내려감에 따라 점차 빨라져서 남해안 동남지방에서는 2월 20일경이다. 남쪽과 고 긴 사면과 넓은 용암평원이 발달한 동·서 양측에는 수계의 발달이 미약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하천은 한라산·어승생오름·성널오름 등 여러 산을 동서로 연결하는 분수령에 의해 남류 또는 북류하고 있는데, 긴 하천이라도 그 길이는 겨우 30㎞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15㎞ 내외이다.이 하천들은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기 쉬운 다공질의 현무암 위를 흐르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물이 없는 건천이다. 해안을 따라서는 지하수가 솟아나는 용천이 분포한다. 한라산을 정점으로 한 두부침식의 최선단은 해발고도 1,600m에 이르며, 큰 하천의 수원은 1,400∼1,600m 지점에서 발원한다. 이들 유로는 단사면에서 직선적으로 흐르므로, V자곡을 형성하며, 해안선 가까운 곳까지 하각작용이 매우 활발해 유년기 지형의 특색을 잘 드러낸다. 남북 양사면의 하천발달은 약간의 차를 나타낸다. 남사면의 하천들은 하류에서 깊이 30∼40m에 달하는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데 반해 북류하는 하천들은 하류에서 하폭이 20∼30m에 달하나, 곡심은 3∼5m에 불과하다.* 제주도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섬으로 가장 따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많이 오는 이유가 뭘까?제주도는 기온이 따뜻하기 때문에 해수의 증발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구름이 많이 형성 된다. 이 구름이 가면서 제주도의 높은 한라산에 도달하면 한라산을 오르면서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 온도도 서서히 떨어지고 결국 구름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눈이나 비가 많이 온다.⊙울릉도신생대의 화산작용으로 형성된 이중의 종상화산으로 조면암·현무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형은 섬의 중앙부에 솟은 성인봉을 중심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나 해안은 90m 이상의 절벽으로 되어 있어 항구의 발달이 어려워 교통이 불편하다. 기후는 온화한 해양성기후이며, 연평균기온 12℃, 1월평균기온 0.6℃, 8월평균기온 23.9℃이다. 연강수량 1485㎜이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식생은 향나무·박달나무가 대표적이다. 주민은 어업과 농업을 겸하며, 축우·양잠·약초재배도 ingㆍ3월(March)이 달은 대륙성고기압의 세력이 더욱 약화됨에 따라 겨울철 기압배치가 무너지기 시작하여 날씨의 변화가 심한 달이다. 즉, 기압계의 변화 주기가 2∼3일 정도로 빨라지면서 본격적으로 봄에 가까워진다. 기온은 중부 산간지방을 제외한 전국의 월평균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 남부 및 제주지방이 4∼9℃, 중부지방이 3∼5℃의 분포를 보이는 한편, 중부 산간지방은 아직도 -1℃ 내외의 분포를 나타낸다.강수량은 제주도와 남해안지방에서는 70∼100mm, 울릉도와 동해안 일부지방에서는 60∼80mm, 그 밖의 지방은 40∼60mm의 분포를 보인다.절기로는 5일이 경칩이고, 20일이 춘분이며, 폭풍으로 인한 재해가 많은 달이다.ㆍ4월(April)이 달은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아 맑고 건조한 날이 많으나 하순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기온은 급상승하여 전국이 영상의 기온 분포를 보이게 되는데 지역적으로는 남부 및 제주지방이 12∼14℃, 중부지방은 11∼12℃정도이고, 중부 산간지방은 6℃ 내외로 낮은 편이다.강수량은 제주도와 남해안 지방에서는 대체로 100∼190mm의 분포이나 그중 제주도와 목포만은 100mm 내외로 적고, 그 밖의 지방은 80∼120mm정도가 된다.절기로는 4일이 청명이고, 20일이 곡우이며, 계절적으로 나무심기에 적당한 달이다. 또한 폭풍으로 인한 재해가 자주 발생하기도 하며, 강한 바람과 함께 황사현상이 자주 나타난다.ㆍ5월(may)이 달은 따뜻한 성질의 이동성 고기압이 우리나라를 자주 지나가게 되므로 전국적으로 맑고 온화한 날이 많다.기온은 남부 및 제주 지방이 17∼18℃, 중부지방은 16∼18℃이나 중부산간 지방은 12℃ 정도의 낮은 분포를 보이는 곳도 있다.강수량은 서귀포가 206㎜로 가장 많고 삼척이 55㎜로 가장 적으며, 남해안지방이 150∼170㎜, 그 밖의 지방에서는 60∼110㎜의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 너무 덥죠? - 여름 Summerㆍ6월(June)이 달은 점차 고온 다습한 북다.
    인문/어학| 2004.11.01| 11페이지| 1,000원| 조회(1,575)
    미리보기
  • [지리] 한국지리
    1. 한국기후의 요소별 특성과 기후지역 구분.-기후란 어떤 장소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대기의 종합적인 평균상태를 말하는 것이다.-기후요소기후는 대기의 종합된 상태이므로, 이를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를 구성하고 있는 몇 개의 요소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나누어 진 요소를 기후요소라고 한다.주요 기후요소는 기온, 강수, 바람, 습도, 일사, 증발량 등이 있다. 어느 지역의 기후를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면, 위의 여러 기후 요소를 적절히 종합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 나라는 아시아 대륙의 동안에 위치한 관계로 편서풍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반면에 계절풍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이로 인해 같은 위도의 대륙서쪽에 위치한 곳보다 여름이 덥고 겨울이 춥다. 우리 나라는 국토의 면적이 좁기는 하지만 남북이 길며, 동쪽은 대양을 접하고 서쪽은 서해 건너 거대한 아시아 대륙에 접하기 때문에 남북으로, 또한 동서로 지역별 기후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그러면 우리 나라의 이러한 기후에 영향을 주는 주요 기후 요소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1) 기후 요소별 특성.(1) 기온대기의 온도를 기온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상학에서는 지상 1.5m 높이의 반 그늘 상태인 백엽상 안의 공기 온도를 기온이라 정의한다. 이 높이는 인간이 호흡하며 생활하는 높이에 해당한다.우리 나라 연평균 기온은 8-14℃로 북한의 개마고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온대 기후에 속한다. 우리 나라 기온 특색은 바로 대륙을 덮고 있는 시베리아 기단과 바다를 덮고 있는 북태평양 기단 의 상호 작용에 따라 계절적 변화를 겪게 되는데 전체적으로 바다의 영향보다는 대륙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그리하여 겨울과 여름의 온도 차이가 심한 대륙성 기후가 나타나게 된다. 우리 나라는 대륙성 기후로 겨울이 추운 것은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이고, 여름이 더운 것은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이다. 우리 나 기온은 겨울철에 있어서 기온의 남북 차와 함께 동서 차가 나타난다. 기온의 동서 차에는 지형과 바다의 영향도 기단-적도지방에 형성되는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단. 이 기단은 태풍의 북상과 함께 나타나며 큰비를 몰고 오기도 한다.2)기후 지역 구분세계의 기후를 분류하는 방법으로 가장 보편화된 쾨펜의 방법에 따르면, 우리 나라 기후는 크게 온대기후 (C기후)와 냉대기후 (D기후)로 나뉜다.최한월(1월)평균이온 -3℃의 등온선을 기준으로 하는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경계는 원산 남쪽에서 시작하여 태백산맥의 동쪽을 따라 남하하다가 소백산맥을 따라 서쪽으로 구부러진 다음 서해안쪽으로 북상하여 태안반도의 중앙을 지난다. 그리고 하위분류를 적용하면 4개요형의 기후구가 구분되는데, 이 같은 구분은 너무 개괄적이어서 우리 나라와 같이 면적이 넓지{않은 지역에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우리 나라의 기후 구는 12개의 기후 구와 1개의 특수지역으로 정해졌다.* 온대기후구(1) 남해안형-남해안의 전부와 영일만에서 부산에 이르는 남동해안이 포함된다. 1월 기온 0℃~2℃, 8월 기온 26℃내외, 연평균 기온 13℃~15℃로 가장 따뜻하고 비가 많다. 난대림의 분포지역과 일치한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사철나무 등이 자생하고, 문주란, 귤 등의 난대성 내지 아열대성 식물이 자란다.(2) 남부서안형- 차령산맥 이남, 전주와 고아주를 잇는 선의 서쪽 지역으로 만경평야, 김제평야, 나주평야가 이에 포함된다.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산지에는 겨울에 눈이 비교적 많이 내리고, 겨울과 봄에는 흐린 날이 많다.(3)남부내륙형- 소백산맥의 동, 서사면과 낙동강 중상류의 넓은 내륙지방이 이에 속하며, 지형의 높낮이가 상당하다. 연평균기온이 11℃~13℃이고, 대체로 여름 기온이 높다.비가 적고 여름기온이 높은 대구분지는 특수지역으로 취급된다.(4) 남부동안형- 금강산 이남에서 영일만에 이르는 태백산맥의 동사면이 이에 속한다. 근해에서는 동한해류와 북한해류가 교류하며, 태백산맥이 북서계절풍을 가로막아 주기 때문에 겨울이 비교적 따뜻하다. 겨울에 눈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5)울릉도형- 해양성 기후의 특색이 잘 앙등,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비롯한 국제경기의 후퇴, 국내적으로는 소비재산업의 미성숙으로 인한 초과수요인플레이션 구조, 전통적 부문과 현대적 부문의 불균형발전에 기인한 이중구조의 심화, 그에 따른 저급노동력의 과잉공급과 고급노동력의 과소 공급현상 등 수많은 문제점에 직면하게 되었다.더구나 1970년대 후반 역점을 두었던 중화학공업화는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중화학공업화 율을 1961년의 22.3% 수준에서 1977년에는 42.3%로 제고시켜 놓았지만, 내용 면에서 볼 때는 노동생산성이 낮은 장치산업에 치중되었고, 방위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화학 공업부문이 세계시장에서 이미 어느 정도 공급과잉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 화학공업·섬유공업 등 광범한 분야에서 석유를 기초원료로 사용하는 수입원료·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로 재편되었다는 사실이 난관이었다.1980년대에는 이러한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조정 등 산업구조의 재편이 추구되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합리화에 노력하였다. 산업구조의 고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1차 산업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지고 2·3차 산업의 비중이 증대하여 1993년 말 1·2·3차 산업의 비율은 7.1:41.0:51.9로 선진공업국의 구성을 보인다. 그러나 산업부문간 불균형 성장, 수출산업과 내수산업간의 격차, 대외의존도의 심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산업의 현황산업의 분류방법을 한국의 산업구조 전개에 적용시켜 보면,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추진한 주도산업은 기계·조선·전자·석유화학·철강 등의 중화학공업이었다. 경공업중심에서 중화학공업중심의 산업구조로 바뀐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인데, 적극적인 기술도입과 대규모 시설투자로 중화학 공업화 율을 급속하게 높였다.제조업에서는 자본집약형 산업을 중심으로 노동생산성의 향상, 생산비 절감, 국제경쟁력 강화를 이룩하였으며 중화학공업의 수출이 현저히 늘어났다. 80년대에는 1970년대 말의 석유파동 등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불황과, 산유국의 경기침체로 종합무역·조선·해조류·해조류 등이 주종을 이룬다. 해양화학적 자원은 바닷물의 구성성분 자체로서 물 이외에 소금·마그네슘 등을 말한다. 해양물리학적 자원은 파도·해류·조류의 힘과 온도차에 의한 힘 등 바닷물의 물리적 작용에 의한 동적인 힘이다.4) 에너지자원-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힘·열·빛을 얻기 위한 기본적 자원이다. 노예나 가축을 이용한 근육에너지자원, 수력·조력·풍력과 태양열·지열 등을 이용하는 자연에너지자원, 석탄·석유·가스 등 을 이용하는 화학에너지자원, 원자력과 같은 핵융합에너지자원으로 구분된다.5)기술자원- 기술의 진보는 기존의 생산기능을 변화시켜 생산활동을 촉진하고 생활을 윤택하게 만든다. 기술발달이 세계문화의 전환을 가져온 예로 석기·불의 이용, 청동기·철기의 사용, 연금술의 개발 및 문자의 사용, 인쇄술·항해술·증기기관의 발명, 전기·석유의 사용, 엔진기관의 개발, 핵기술·우주과학기술의 발달, 컴퓨터 사용 등을 들 수 있다.6) 관광자원- 우리 나라는 국토가 좁지만 절경이 많다. 다만 절경의 규모가 대개 작을 뿐이다. 절경은 산과 골짜기와 바닷가에 널리 흩어져 있다. 예로부터 지방에 따라서는 경치 좋은 곳을 골라 8경을 정해 놓고 이를 예찬해 왔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관동팔경이다.우리 나라는 출중한 경승지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재가 전국에 널리 분포한다. 자동차가 크게 늘어나고 도로가 대대적으로 확충된 오늘날 일반인의 관심을 끌 만한 관광자원이 있으면 어디서나 이의개발과 홍보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힘을 기울이고 있다.한국의 에너지문제에너지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점차 수입석유의존형의 에너지공급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1970년 1차 에너지자원별 구성비에서 47.2%를 차지한 석유는 73년의 제 1차 석유 파동 때는 53.8%, 제 2 차 석유 파동 때인 79년에는 62.8%로 계속 증가하였으나, 제 2차 석유 파동 이후 원자력발전 및 적극적인 소비절약정책으로 89년에는 49.6%로 감소하였다. 여전히 에너지원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석유는의 평야 지대 : 논농사 지역으로 인구 조밀b. 북동부의 산간 지대 : 밭농사 지역으로 인구 희박2 최근 : 산업화, 도시화, 이촌향도 현상a. 집중 지역 : 대도시와 주변 지역, 신흥 공업 지역b. 희소 지역 : 농어촌 지역, 산간 지대3) 우리 나라의 단순 인구 밀도 : 세계 3위의 인구조밀국, 1994년 477명/㎢2) 인구 이동(1) 국내 이동1 조선시대 : 북방 변경의 방어와 개척 → 북방 사민 정책 실시2 일제 강점기 : 병참 기지화 정책 → 남부의 농민들이 북부 광공업 지역으로 이동3 광복과 6.25a. 최대 규모의 인구이동 : 귀환 동포와 북한 월남민(사회적 증가)b. 대도시의 인구 증가 → 도시의 무질서한 팽창(과밀화, 슬럼화)4 60년대 이후 : 공업화, 도시화 → 이촌향도 현상→ 대도시 인구의 급증( 농어촌 인구는 절대적으로 감소 )5 80년대 이후 : 대도시에서 위성 도시로의 이동(역도시화)(2) 국외 이동1 해방 전 : 일제 탄압, 황무지 개간, 강제 징용에 의한 이동a. 중국 : 약 180만 명이 간도 등으로 이주(현재 연변은 한민족 자치구)b. 일본 : 징용 및 강제이주에 의해 약 200만 명이 이주. 현재 약 70만 명c. 소련 : 연해주, 사할린, 중앙아시아 등지에 약 40만 명 거주d. 합법적 이주는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계약 이주한 것이 최초.2 해방 후 : 1962년 해외 이주법 제정후 활발해 짐.a. 미국 최대 : 78만 명, 캐나다 : 5만 명b. 남미의 농업이민, 중동·동남아시아·아프리카·유럽 등지로 건설 기술자 진출3)인구구조인구는 일종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동한다. 이러한 인구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스냅사진과 같이 어느 한 순간의 인구정태(人口靜態)를 조사하는 방법과, 어느 기간의 인구변화를 파악하고 그 변화요인(출생·사망·이동 등)을 조사하는 방법이다. 인구정태를 조사하기 위한 가장 큰 조사는 국세조사이다.한국에서는 1949년 처음으로 대규모 조사가 실시되었고, 그 뒤 있다.
    인문/어학| 2004.11.01| 11페이지| 1,000원| 조회(588)
    미리보기
  • [행정] 세계화를 통하여 바라본 조직변동의 배경 평가B괜찮아요
    과제명1. 세계화를 통하여 바라본 조직변동의 배경 .I.머리말조직은 탄생된 후 끊임없이 변동한다. 조직은 고정 불변의 물체가 아니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태적인 유기체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쇠퇴하여 죽는 것처럼 조직도 탄생, 성장, 쇠퇴 그리고 사면의 길을 걷는다.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변화를 겪지 않는 조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조직의 환경이 변화하고 고객의 욕구와 의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조직이 생존을 하려할 때는 물론이고 조직이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때는 더욱 적극적인 조직의 전략과 구조를 변화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조직들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결여되면 조직은 쇠퇴하거나 멸망하게 된다. 즉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환경적응의 노력이 요구된다.이런 조직이 변화하는 모습은 천태만상으로 나타난다.여기서는 우리 사회와 전 세계 사회들의 겪어왔고 또는 겪고있는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세계화를 통해, 그 속의 각 국 나라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II. 본론로봇들이 일본 도요타자동차 공장에서 최고급 승용차 '렉서스'를 조립한다. 반면 중동에서는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이스라엘인들이 아직도 '올리브 나무'를 놓고 서로 제것이라 티격태격한다.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근본적이면서도 아주 오래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생계유지와 생활수준의 향상, 번역 그리고 근대화 등 오늘날 세계화 체제에서 펼쳐지고 잇는 인간 욕망의 전개 모습 그대로다.렉서스는 오늘날 우리가 더 높은 생활수준을 추구하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할 글로벌 시장의 발아와 성장, 금융기관 그리고 컴퓨터 기술 등의 대표격이다.물론 개발도상국 내의 수많은 사람들은 물질적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아직도 이와는 다른 방책을 쓰고 있다. 즉,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고, 맨발로 황소를 몰아 발을 갈고, 머리에 장작을 이고 수 십리 길을 오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갈수록 덜 일가들 사이의 체제 경쟁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패배하고 말았다. 그래서 두개의 블록으로 나누어져 있던 시장이 하나의 자유시장(one single free market)으로 통합되게 되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권이 자유시장체제로 통합되면서 세계화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었다. 동구권이나 소련, 중국까지도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내의 경쟁도 치열해 졌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영미식 자본주의, 유럽식 자본주의, 일본식 자본주의가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90년대 초에 이르러 영미식 자본주의가 경쟁력의 우위를 획득하면서 세계화 물결의 견인차 노릇을 하게 되었다.70년대 중반부터 권력의 이동이 정부로부터 시장(민간)으로 이동되기 시작하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항상 우월하고 선하다고 믿었다. 정부의 지식이 시장의 지식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정부의 정책실패가 시장의 실패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이 증명되기 시작하면서 정부 우월주의자, 규제주의자들이 경제의 고지에서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각 나라마다 세계화 흐름에 걸 맞는 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정보화, 지식화, 네트워크화는 세계화를 더욱 촉진하게 되었다.세계화는 바로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진행되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보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자 국가가 시장에 권력을 넘겨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1. 오늘날 우리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세계화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또 그 작동원리는 무엇인가.냉전 체제는 그 나름의 독특한 권력구조를 갖고 있었다. 미소간 힘의 균형이 바로 그것이었다. 냉전체제는 그 나름의 규칙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외교정책에 있어서 두 초강대국은 어느 쪽도 상대방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지역은 침범하지 않았다.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도 후진국들의 경우 자국 산업에 증진에 진력하고,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추구하며, 공산권 국가들의 경우 자급자족 체제를, 그리고 서방 제 규범, 곧 개방, 규제완화, 민영화를 중시한다. 이는 자국 경제가 한층 더 경쟁력을 갖추고, 외국인 투자가들이 매력을 느끼도록 하지 위한 것이다.세계화를 회피하고자 하는 정부는 자신들이 내놓는 대안이 세계화만큼이나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든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이 알아가는 상황 속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비록 현재 매주 30만 명의 사람들이 새로이 인터넷에 합류하고는 있지만, 오늘날의 세계화는 글로벌하지 않다. 세계화가 이룩된 상황을 모든 인류가 온라인으로 접속된 세상이라고 규정할 때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먼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세계화 체제의 핵심이라고 할 기술의 민주화, 금융의 민주화 그리고 정보의 민주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이로 인한 제약뿐만 아니라 기회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세계화는 이미 글로벌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여기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하여 이 세계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계이다. 세계화는 냉전체제 이후 현 세계를 설명하는 시스템으로 세계를 통합하고, 자유시상 자본주의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여 개방, 규제완화, 민영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미국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또한 기술은 컴퓨터화, 소형화, 디지털화되고 위성통신, 광섬유, 인터넷이 이를 뒷받침한다.예전의 냉전체제를 두 세력간의 씨름으로 비유한 반면 세계화는 쉬지 않고 달리는 100미터 달리기라고 표현하고 있다.세계화는 또한 독특한 세력 균형의 구조 즉, 국가와 국가사이의 균형, 국가와 각종 글로벌 시장들 사이의 균형, 개인과 국가 간의 관계인 3극의 균형 위에 세워졌다. 이러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중개가 필요하다.2. 국가, 지역사회, 개인 그리고 환경이 이 시스템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가.컴퓨터는 하드웨어, 운영 체제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세 부분으로 구록 잘 지낼 수 있었다. 소련과 미국은 이들이 자기편에 서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서 해당국이 자기네 브랜드의 하드웨어만 써준다면 보조금 지급과 무료수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양 초강대국은 모두 도미노 이론에 잔뜩 겁먹고 살았다. 이 이론은 특정 핵심국가가 하드웨어를 바꾸면 다른 모든 인근국가들도 이를 따라할 것이라는 가설이다.이런 하드웨어 갈등은 냉전 체제의 붕괴와 힘께 종식되었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다른 혼합 모델들이 일제히 한꺼번에 몸쓸 것으로 낙인 찍혔다. 그리고 우리는 갑자기 매우 뜻깊은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상 처음으로 사실상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동일한 하드웨어, 즉 자유시장 자본주의 하드웨어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결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단 하나뿐인 하드웨어, 즉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돌릴 수 있을까만 걱정하면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 업계에서 늘 하는 이야기로 하드웨어는 항상 소프트웨어와 운영 체제를 앞서간다는 말이 있다. 즉, 더 빠른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나오면 그제야 비로소 새로운 하드웨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운영 체제와 좀더 세련된 소프트웨어들이 뒤늦게 개발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세계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붕괴된 수 러시아와 동유럽 그리고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자유시장 하드웨어를 채택했다. 심지어 일부는 이 하드웨어를 전자투자가 집단이라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연결하기도 했다. 이들 나라는 자본과 에너지의 전류를 적절히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 필요한 운영 체제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다른 관련 기구들도 없는 상태에서 바로 일들 집단으로 연결되는 전선에 플러그를 꽂았다.이는 냉전체제에서 세계화 체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겪는 핵심적인 문제들중 하나인데, 이른바 때 이른 세계화 라는 문제다. 오늘날 전자투자가 집단과 초거대 시장에 접속하지 않는 나라는 번영할 수 없다(번영의 조건). 한편 이들을 최대한 잘 활용하면서도 이로부터 감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도이 관치금융, 정부의 과도한 규제,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에 기인하였다고 할 것이다. 외환위기,금융위기,기업도산,경제위기,실업대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의 노력을 온 국민이 했고, IMF의 금융지원은 우리경제를 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IMF가 돈을 주면서 조건을 내 걸었다. 바로 개혁을 하라는 것이었다. 공공. 금융. 노동. 기업의 4개 부문을 개혁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내용은 바로 Global Standard에 맞는 제대로 된 시장경제 시스템을 갖추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여 조직도 변화, 변동,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3. 세계화 체제에 대한 반발, 또는 세계화에 대한 따뜻한 성원.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자신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토에 대해 애착을 작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국을 위해 노래하고 조국을 위해 눈물 흘리고, 조국을 위해 싸우며, 조국을 위해 죽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세계화는 지정학적 대립상황을 종결지을 수 없을 것이다.세계화는 분명 지정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의 세계화는 현대 국가가 명예, 공포, 또는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을 택할 경우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나 앤젤의시대와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범세계적 통합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오늘날의 세계화는 국가와 국가 간의 상호의존도를 저네 없이 강화시켰다. 경제적 통합과 디지털 통합, 갈수록 긴밀해지는 개인과 국가 간의 접속도, 세계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까지 확산된 자본주의 가치관과 네트워크, 갈수록 심해지는 전자투자가 집단과 황금 구속복에 대한 의존도 등이 세계 각 국 외교정책에 심대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화는 근대 인류 역사상 유례 없을 정도로 각 국의 전쟁 회피 성향과 전쟁에 따른 피해 정도를 크게 증대시켰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전쟁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타당한 이유에서건 말도 안 되는다.
    사회과학| 2004.11.01| 10페이지| 1,000원| 조회(291)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5:2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