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반만년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일제 치하의 암울한 36년의 역사는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지울 수만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은 역사 일지도 모른다. 많은 민초들은 혼란한 시대 상황 앞에서 전시대보다 더 힘든 삶을 걸어야 했고, 마을을 떠나 살아본 적도 없는 이들이 머나먼 타국 땅에서, 그리고 이름 모를 섬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된 채 짐승처럼 일하다가 결국은 그 땅속 깊은 곳에 묻혀야 했다. 심지어 여자들마저도 전장에 끌려 나가야 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대우를 받아야 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독립을 외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고, 일부는 나라를 등지고 머나먼 이국땅에 새로운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숟가락, 젓가락, 놋그릇까지 전쟁을 위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다 수탈해가던 그 때, 과연 그 시대는 우리에게 축복이었을까?Ⅱ.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개발저자는 일제 강점기 36년의 기간 동안,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서, 눈부신 근대화를 이룩했다고 주장한다. 그 요점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일제시기에는 조선에 사회간접자본이 확대되고, 경제성장이 가능해져 상당한 정도의 개발이 이루어 졌다. 둘째, 화폐 · 금융 · 행정 등의 근대적 시스템이 확립되고,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다. 셋째, 조선 총독부의 개발 정책과 일본인 자본의 진출에 자극받아 조선의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도 개선되었다. 이러한 논지는 일제시대 동안 조선국토에 대한 유린과 조선인에 대한 일제의 수탈과 착취만 행해져왔다고 배워왔던 가치관에 상당한 혼란을 안겨주었다.물론, 일제시기에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생활이 급격히 바뀐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정 정도의 근대적 모습을 띄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근대의 성격이 무엇이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일제시대 경제적 양적 성장을 강조하면서 그 주체가 누구였는가를 따지지 않는 것은 일제의 개발이 식민지 조선인에게 미친 영향, 광복 후 한국 사회 · 경제의 발전과의 관련성을 왜곡할 수 있다. 일제시대 경제 통계 연구는 조선을 하나의 경제 단위로 설정한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 경제는 생산수단을 일본인이 집중 소유하는 일이 두드러졌고, 민족별 소득분배도 불평등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조선 지역의 경제 발전과 조선 민족의 경제 발전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경제 성장률이 높아질수록, 즉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일본인과 조선인의 소유와 소득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1940년경 조선 농업 인구의 0.2%에 불과한 일본인이 논의 50%, 밭의 5%를 소유했다. 광공업 설비 자산의 95%는 일본인 소유였다. 농업부문에서는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100배, 광공업 부문에서는 20배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요컨대, 일제 시기의 경제발전은 일본 제국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개발이었고, 성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장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식민지라는 특수 시기와 민족차별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어떠한 경제 생활을 영위했는냐 하는 것이다.Ⅲ.연평균 3.7% 고성장의 허구성책의 내용 중에서 “조선의 식민지 경제는 1911년부터 1938년까지 연평균 3.7%의 성장을 보였고, 이는 당시 세계 경제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장기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었다.” 라는 부분이 나온다. 일반적인 나의 상식으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일제시대라면 수탈만 있었다고 생각해왔고, 그렇게 배워왔기에, 3.7%라는 높은 성장률은 믿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놀랍기까지 했다. 그러나 3.7%라는 추계치가 정확한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비슷한 정도의 고성장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 볼 수는 있다.문제는 이런 개발이 조선을 위한 개발이 조선인을 위한 개발로 이어졌는가 하는 점에 있다. 조선의 1인당 미곡 소비량이 감소했다는 계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듯이, 바로 이 고성장의 시대에 조선인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조선의 인구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작농의 생활이 향상되었다거나, 조선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증가했다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이 때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대부분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해야 했고, 오히려 부농들은 더 배가 부르게 되는 극심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초래되었다.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생산수단인 토지나 자본이 민족별도 극단적으로 불평등하게 소유되어 있었고, 그 불평등도가 후기로 갈수록 점점 심화되어 갔기 때문이다. 조선의 경지에서 일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910년 1.6%인 것이 1935년에는 10.3%로 늘어났다고 한다. 논만 보면 2.8%에서 18.6%로 늘어났다. 소수의 일본인들의 토지가 급속히 늘어가면서 민족별로 경지 면적의 차가 확대되어 갔다. 농업 인구 1인당 경지면적의 민족별 격차는 1915년 15.5배인 것이 1942년에는 63.6배로 커졌다. 정말로 일본인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부자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공업부문에 대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1942년의 경우, 공업 자산 중에서 일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잡아 95%에 달한다. 나머지 5%가 조선인 자산인데 거의 무시할 정도로 낮다. 간단히 말하자면 조선에서 일어난 공업화는 ‘일본인 공업화’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동안 논란이 돼온 사형제를 폐지하도록 국회에 의견을 표명키로 했다. 국가인권위가 폐지 권고키로 한 사형제는 법조계나 학계뿐 아니라 국민 사이에서도 각기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다. 전문가를 통해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어본다.[贊]法 앞세운 反인륜 살인행위허일태 동아대 교수·형사법과거 유신정권에 맞서 전국의 학생들이 총궐기하려 했던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무고한 젊은이 8명이 온갖 고문과 조작에 의해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날이 1975년 4월 9일이다. 이날은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법 살인’의 날이다. 벌써 30년이나 되는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치유하지 못한 그 날의 상처는 사형제도의 존속이 얼마나 반인륜적 살인행위를 할 수 있는 위력적인 수단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때 한강교의 폭파 책임을 맡았던 최창식 대령에 대한 사법 살인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최창식 대령의 억울함이 밝혀졌지만, 그는 이미 고인이 됐다. 이처럼 너무나도 부끄럽고 면목 없는 그런 일을 야기케 한 원인도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 사형제도가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다.사형제도의 존속이 범죄의 억지력에 있다는 가정 하에서 무고한 국민을 멋대로 죽이게 했던 이런 법적 장치를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적지 않다. 또한 이들의 생각을 감정적인 차원에서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가정 파괴범이나 흉악범 같은 반인륜적인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감정적 차원에서 사람의 생명을 논하지 말자. 감정으로 사람의 생사를 논하는 것 자체가 반윤리적이기 때문이다.또한 사형제도가 범죄 억지력이 있다는 주장도 매우 의심스럽다. 사형제도가 범죄억지력이 있었다면 사형의 집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사형을 받을 만한 범죄의 건수도 이에 상응하게 감소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반세기 동안 사형을 받을 만한 범죄의 건수는 우리 국민의 인구 증가에 따른 변동을 제외하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외국에서도 사형제도의 폐지가 나중에 사형을 받을 만한 반인륜적 범죄의 증가세로 눈에 띄게 돌아섰다는 보고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쪽도 무조건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종래 사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범죄자에 대해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인정된 예외적인 경우에 국한하여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하자는 것이다.사형제도라는 것은 역사적 필요성에서 기인한 것에 불과하다. 국가의 재정과 인적 자원이 한없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모든 중요 범죄에 대해 사형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형수쯤은 평생 먹여 살릴 수 있는 재정 형편이 됐으며, 우리 헌법도 인간 존엄을 보호하고 그 본질의 불가침성을 천명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은 사람의 삶 자체이기 때문에 생명의 보호는 인간존엄 보호의 핵심이다. 더욱이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데에 핵심적 역할이 주어져 있다.최근에 국민의 인권의식이 점차 높아져가면서 사형제도의 폐지 쪽 견해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사형제도를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한다면 전국민 60% 이상이 사형제의 폐지에 찬성하겠다고 한다.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2004년 12월 9일 재적 반수가 훨씬 넘는 국회의원 175명의 발의로 ‘사형제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제안 이유로는 “국가가 범죄예방과 진압의 수단으로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국가사회의 구성원인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훼손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인간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결과가 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또한 지난 6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의 폐지 권고안’을 공식적으로 의결한 바 있다. 이들 견해는 사람의 생명을 중시하는 우리 헌법 정신에 걸맞은 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反]정의·질서 지키는 최후 수단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사형은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하여 검찰이 구형하고 법원이 선고한 후 사형집행관이 집행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점에서 혹자는 사형제도는 국민의 동조 아래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제도적 살인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국가는 국민의 생명권 보장을 확보하려고 살인범을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국가의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생명권의 절대적 보호 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 논리를 펴는 것은 자기모순이다.사형제도 존폐를 주장하는 각각의 견해는 인간의 기본권은 존중돼야 한다는 논점을 두고 상반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형제도는 존속돼야 한다고 본다.사형제도는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흉악범을 제거하여 법적 정의를 실현하고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보존하는 수단이다. 타인의 생명을 잔혹하게 빼앗은 사람들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범죄를 막는 상징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형폐지론자들은 사형제도가 흉악범죄 감소와 직접 연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흉악범을 처벌함으로써 다른 범죄자들에게 경고를 주는 최소한의 심리적 효과는 있다. 사형제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면서 인류의 축적된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사형제도가 왜 필요한지 형벌의 역사는 이를 분명히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다른 한편 사형제도는 개인적 보복이라는 악순환을 막아준다. 살인이라는 행위는 피해자측에게 극도의 고통과 원한을 심어주고 있다. 이를 막으려고 국가차원에서 살인범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현대 법치국가에서 사법제도의 완비는 인간의 오판 가능성을 없애주고 있다. 사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범죄자의 인권과 생명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인의 생명을 해친 사람들의 생명까지 법으로 무조건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본다. 인간의 존엄은 인격에 기초하고 있으며, 타인의 생명을 존중할 때 자신의 생명도 존중받는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오히려 타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이자 법적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다.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를 읽고.....벌써 초겨울의 쌀쌀함을 느끼게하는 이 계절에 정말 뜻밖의 엄청난 책을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빨리 학창시절에 이 책을 접했더라면 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왔을 거라는 것을 확신해 보면서, 내 자식에게는 반드시 이러한 교훈들을 심어 줄 것이며 내 자신 또한 더 늦기 전에 내 인생에 확고한 비전과 머나먼 인생의 보람찬 날들을 설계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에 마음 부풀어 있다.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냥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살고 간 최소한의 흔적은 남겨 두어야 하지 않은가? 내 이름 석자, 아니면 나의 자랑스러운 업적, 또는 착하고 훌륭하게 성장한 나의 자식, 이 길고 긴 인생에 정말 보람된 그 무언가를 남겨 놓아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물음과 방법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고, 그 해답도 찾아갈 수 있음을 배웠다.참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왜 그리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정말 어이없는 하찮은 일로 나 스스로 일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뭐가 중요한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항상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어리석고 바보 같은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일의 순서와 특별한 목표의식도 없이 손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왔던 것이다. 아마 10명에 8,9명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며 또 그렇게 일을 할 것이다.변해야 한다. 먼저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해야 한다. 그런 방법들을 이 책은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고 손쉽게 이룰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바로〈To-Do-List〉에서처럼 글로 쓴 구체적인 목표들을 지니고 다니면서 계속되는 자기 암시화 속에서 일을 사로잡을 수 있고 손에 보이는 목표들을 보다 손쉽게 성취해 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오늘 당장 만들어서 꾸준히 우리 선생님들과 같이 한, 두 달 계속해서 실천해 나가야겠다. 분명 달라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것임을 확신한다.어떻게 보면 이 책을 우리가 읽기에는 조금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30이 넘기 전에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나의 '미래 이력서'를 충분히 작성해서 실천해 나갈 수 있고, 내 딸과 또 태어날 아들에 대한 확실한 교육 방법과 내 자식의 사명감을 심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정말 그런 것이다."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 들에게"라고 시작하는 이 책에서 '전 세계를 이끌어간 소수의 사람들은 일찍부터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다'라는 말은 정말 무서운 말이라는 것을 절로 느낀다. 즉, '훌륭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목표를 세움으로써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임을 말해 준다.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글로 적어 놓고 또 지속적으로 혼잣말을 하며 그 목표를 꾸준히 기화 해가고, 중국의 고사 "와신상담(臥薪嘗膽)"에서처럼 내 행동을 지배해 가며 언젠가는 목표를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물론 말로서는 엄청 쉬어 보일 수 있다고 여긴다. '작심삼일'이라고 하듯이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러한 목표를 세울 줄 알고 또 그렇게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루어내는 사람은 단 몇%에 불과하다. 나 역시 그러한 꿈과 이상은 가지고 있지만 이 책에서처럼 구체적인 실현 방법과 글로 적어두고 자기화 해 가는 과정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또 적당히 공부하려 했고 일 역시 적당히 하려 했다. 바로 이런 적당주의가 우리를 실패의 길로 몰아 넣은 것이다. 즉 적당히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실패만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고, 그 예로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는 말로 우리를 감동시켜 주고 있다.실패할 수 도 있다. 아니 실패는 반드시 하게끔 되어 있다. 한 예로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타자라 할지라도 60%이상은 반드시 실패하게끔 되어있다. 성공한 사람 치고 실패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즉,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지만 누구에게나성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아니고 다만, 용기를 잃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서 그 목표에 꿋꿋이 도전하는 자 만이 성공할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또한 어떤 한 목표에 도달했다 해서 거기에 안주해 버리면 스스로 도태되서 무너져 버리고 만다는 것을 로마제국이나 신라의 멸망, 그리고 따뜻한 물 속의 개구리의 예에서 뼈저리게 깨닫게 한다.세계 최고의 실력자들조차도 최고의 자리에 안주해 바람직한 비전이 없어지면 그 들 역시 도태해 버리고,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고 만다는 예에서도 내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목표의식으로 살아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준다.즉, 인격수양이 된 출세와 성공을 말해 주고 있다. '인품 없는 목표는 교도소행 티켓이다'라는 말에서 요즈음의 정치 현실뿐만 아니라 우리 세계의 출세 지향주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꼬집어 주고있다. 고시에 합격해서 판사, 검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서 감옥에 간 소위 '출세'했다고 나부렁대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참 뻔뻔스럽게도 많다. 출세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교도소에 한번씩 갔다온 사람들이 꽤나 많다. 물론 거기에서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인생이 되 버리고 말지만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될 것이다. 내 자식 역시 인품이 선행이 된 목표의식을 반드시 심어줘야 될 일이다.'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듯이 내가 먼저 대접해 주고, 내가 먼저 칭찬해 주고, 내가 먼저 정말 잘 해 주어야겠다. 한국사람은 '남이 잘되면 배 아파 한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개개인은 정말 잘 나고 똑똑한데, 합쳐놓으면 제각기 모래알처럼 서로 비방하고 시샘해서 오히려 일이 더 안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예들을 우리 역사에서 얼마나 많이 봐 왔으며, 지금에 와서도 역시 마찬가지임을 잘 알고 있다. 일본과 비교를 많이 하듯이 개개인은 하찮은 진흙 알갱이, 시멘트 가루라고 하지만 뭉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일본의 국민성을 배울 필요가 반드시 있다.
황산벌...... 2년 전에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봤던 기억은 있는데, 정확히 누구랑 봤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만큼 기억 저편에 있던 영화였다. 단지 ‘거시기’라는 단어와 ‘조금 재미있었지!’가 그 영화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영화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했기에, 감상문을 써야 한다는 구실로 오늘 영화를 봤다. 2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때는 극장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였지만, 오늘은 극장화면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조그마한 컴퓨터 화면이었다. 그마저도 비디오가게까지 가야 한다는 귀찮은 수고를 덜어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던 660년, 딸의 원수인 백제 의자왕에게 앙심을 품은 김춘추는 당나라와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김유신 장군에게 당나라의 사령관인 소정방과의 협상을 명령하여 백제를 치라고 한다. 나이로 밀어붙이려던 김유신. 불과 몇 년 차이로 소정방에게 밀리게 되고, 결국 김유신 장군이 7월 10일까지 당나라에게 조공을 조달해야 한다.반면에 백제 의자왕은 고구려를 치러 가는 것일 거라고 애써 자위하고 있었고, 신라군이 남하하여 탄현으로 오고 있다는 전갈에,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하려는 것임을 확인하며 불안에 휩싸인다.소식을 듣고 신하들에게 막을 방도를 물어보니, 이미 백제는 이미 간신들로 들끓어서 자신들의 군사를 내 주지 못하겠다고 다들 발뺌한다. 아마, 백제의 흥망성쇠는 이때부터 기운 게 아닐까 한다. 의자왕은 자신의 마지막 충신 계백장군을 부른다. 무언의 술 다섯 잔 속에 의자왕으로부터 황산벌 사수를 부탁받은 계백은 목숨 바쳐 싸우기 위해 자신의 일족까지 모두 죽이고 황산벌로 향하는데...욕싸움, 인간장기 게임을 넘나들며 5천 백제군과 벌이는 5만 신라군의 전투는 의외로 4전 4패로 백제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당나라와 약속한 7월 10일이 다가온다. 마지막 전투의 승리를 위해 '김유신'은 병사들의 '독기 진작'을 위한 '화랑 희생시키기' 전략을 마지막 카드로 내미는데...명망 있는 신라 1두품 자식을 말을 태워 백제 적진으로 가게 한 후 조롱을 하게 한다. 백제는 처음에는 비웃고 돌려보내지만, 다시 용기 있게 진격해오는 1두품 자식들을 죽임으로써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신라는 그 광경을 보고 사기가 충천 하게 되는데, 여기서 나온 이가 신라의 좌 장군 품일의 아들인 관창이다. 결국, 관창 역시 목만 신라 군영으로 돌아오게 되는데...‘거시기’ 암호의 해독과 신라군의 사기충천으로 결국 백제 5천 결사대는 신라 5만 군사에게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서기 660년 여름... 황산벌에서의 정복하려는 자와 그것을 막아내려는 자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그렇게 끝났다.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계백 장군과 화랑의 죽음이다. 그들의 죽음은 서양에서 흔히 얘기하는 상류층의 솔선수범 정신인 ‘오블리스 노블리주’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인간답게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치욕적인 삶의 거부이자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던져버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굴욕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의 양심과 소신 앞에 당당하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까 한다. 계백이 가족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 좌 장군 품일 이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밖에 없었던 것, 모두 인간적인 애욕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 즉 일신의 안위보다는 국가가 먼저라는 생각에 기해서 이뤄진 것이다. 그들이 후세에 기억되는 이유도 그들의 애국심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갔던 그 정신이다. 결국 황산벌 전투는 불명예스러운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이들에 의해 그 결과가 달라진, 명예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자들의 위대한 전투였다. 헛된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라 고귀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용기 있는 자들이 죽었던 곳이 바로 황산벌이었던 것이다.고구려, 백제, 신라는 왜 그렇게 싸웠을까? 신라는 왜 그렇게 통일을 원했을까? 어쩜 그 대답은 황산벌 전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황산벌 전투의 피는, 영토 확장에 눈 먼 군주의 야욕이나 헛된 명예를 위해 흘려진 것이 아니다. 삼국 모두 전쟁으로 피폐했고 그래서 삼국 지도부는 그 피폐를 극복하기 위해, 그 결과 민초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그 곳에서 흘린 백제 5천 결사대의 피가 헛되 보여도, 당장은 신라 중심의 통일로 백제 유민의 삶이 비참한 것처럼 보여도, 신라의 통일이 고려의 민족화합으로 이어짐으로서 이 땅 민초들의 삶은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그런 험한 전쟁이 장기간 한반도에 지속되지 않음으로서 한반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를 그 때부터 경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영화에서는 삼국의 사투리 차이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방언의 차이가 있었을까? 아님 지금보다 심했을까? 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곳곳에 나오는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왜 등은 서로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통역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직접 대화하는 장면은 많이 나온다.
Ⅰ. 철학의 어원인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여러 명 배출한 그리스 사람들은 철학을 ‘필라소피아(philosophia)’라고 불렀다. 이 ‘필라소피아’라는 말은 ‘필로스’와 ‘소피아’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필로스’는 ‘사랑’이라는 뜻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다. 즉 ‘필라소피아’란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지혜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 뜻하는 바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즉 철학을 한다 하면 세계에 대한 인식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철학 하면 세계에 대한 근본 인식과 근본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때의 세계란 세계 지도라고 말할 때의 그것과는 달리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 따라서 철학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근본 인식과 근본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는 자연도 포함되고 사회도 포함되고 인간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철학이란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근본인식과 근본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세계에 대한 근본 인식과 근본 태도를 다른 말로 표현하여 세계관이라고도 한다. 즉 철학은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우리라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어떻게 생각하는 가를 가리키는 말이다.Ⅱ.철학이란?철학이라는 학문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보통 자연과학의 분과학문으로서 광물학, 식물학, 동물학 등은 그 학문들이 대상으로 하는 바의 것들이 구체적으로 정하여져 있고, 이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자들이 경험적으로 앞선 학자들이 연구결과나 업적들을 이어 받아, 피라미드식으로 전반적인 지식체계를 구축하여 이론화한 해당 교과서나 개론서들을 통독함으로써 그들의 학문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철학은 이들 경험적 자연과학의 분과학문들과는 달리,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일정한 사회적 현실과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들 나름대로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자기 자신의 사유를 통하여 이론을 정립하고, 그 해답을 얻고자 하였기 때문에, 단순한 경험적 지식축적과 같은 방식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새롭게 철학을 시작하는 양 보인다. 따라서 철학이 경험적 자연과학과 같은 분과적 학문과 마찬가지로 , 전시대의 연구를 토대로 하여 그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가는 듯한 누층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속단함은 무리일 성싶다.인류가 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오래된 사실이지만, 인간이 사유를 통하여 철학을 시작한 것이 다른 어떤 학문들보다도 앞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모든 학무의 시발이며 모태라고 일컬어지는 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첫째, 철학은 근원적 성격을 가졌다.철학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희랍시대의 텔레스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물론 그 이후의 철학자들도 그들의 철학적 추구의 대상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관하여 한결같이 근원적인 것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면서, 그 해답을 얻고자 애썼다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자연학’에 대하여 형이상학으로 규정하고, 이것을 제1철학으로 칭하게 된 연유라든가, 또는 데카르트의 저작중에서 하나의 저작표제를 (제1철학의 성찰)이라고 붙인 점을 보아서도 알 수 있겠다.철학의 관심사가 고대 희랍에 있어서 자연의 존재에 관해서든, 중세에 있어서 자연적 존재물을 낳게 하고, 그들을 주재하는 창조주로서의 신에 관해서이든, 또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서의 우주에 관해서이든 철학자들은 언제나 그들에 관하여 근원적으로 추구하고자 하였다. 비록 그들이 추구한 근원적인 것에 관한 표현은 달랐지만, 근원적인 것에 대한 추구과정이나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합리적인 철학적 사유를 모두가 적용하였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둘째, 철학은 역사적 특성을 가졌다.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간적 흐름에 따라 역사적으로 철학의 관심사가 달라짐에 의해 철학하는 자들의 대상들을 보는 눈의 차이에 따라서 또는 그들 대상들의 관계에 있어서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철학사상이 대립 또는 교차하게 되어, 변천을 거듭하여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철학사 전체를 훑어보고 나서야 철학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하는 자도 있으며, 따라서 보편적인 것에 관한 접근이 가능한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어느 경우에는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전시대의 대철학자가 쌓아올린 철학의 큰 체제가 다음 시대에 이르면 그 체계가 토대로부터 흔들려 발붙일 근거도 없는 양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여러 가지 철학 사상들이 있을 수 있고, 유일한 절대적인 철학사상이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셋째, 철학은 지역적 특성을 가졌다.서양에서는 서양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보였거니와, 동양에서도 동양철학 나름대로 인도, 페르시아와 같은 지역에서는 명상적, 신비적 철학이 존재하였으며, 중국에서는 중국철학의 실질적 특색을 가진 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신도 철학이 있으며, 한국은 한국대로 퇴계, 율곡 등의 유교 철학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이와 같이 공간적 축면에서 사회적 현실이 다르고 철학자가 다른 연유로 각 지역은 각기 그 지역 나름대로 고유한 철학의 성격을 가지면서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철학이 무엇이냐”하는 물음에 대하여 해답을 얻기가 어려움을 알 수 있겠다. 그러나 앞으로는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달에 의해 국지적 지역성을 벗어난 지구적인 생활양식의 보급으로 그러한 지역적 특성은 점차 사라져 가는 경향 속에 있다고 봄이 옳을 성싶다.넷째, 철학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적용되는 다양한 특성을 가졌다.철학이 다루는 내용은 인간생활 전반에 걸쳐 있기 때문에, 종교, 예술, 도덕, 교육, 과학, 사회, 경제, 정치, 역사, 법률, 등 제 분야에 관한 철학이 형성되어 전승, 엄존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들 제 분야에 걸친 철학은 어떤 핵심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다양한 분야의 이론을 형성, 전개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도 “철학이 무엇이냐”의 물음에 대해 일률적인 해답을 얻기가 어려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개념규정을 한 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철학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대해서 대략 다음과 같은 해답을 주고자 하였다. 즉, 철학자가 추구하는 앎은 모든 사물들에 관한 전체적인 지인데, 그것은 사물들을 지배하는 정확한 원리나 근계에 관한 지이며, 또한 존재자의 최고원인에 관한 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는 보통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물들에 대한 지각에서 얻는 상식적인 간각지가 아니며, 또한 과학자들이 그들의 대상 분야에서 얻어지는 원리나 법칙에 관한 과학지를 말하는 것도 아니며, 그러한 지를 뛰어넘는 고차적인 지로서 최고원인에 관한 순수지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그의 철학개념은 존재자의 제1최고원인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였음을 알 수 있겠다.Ⅲ. 철학과 과학근대 이후 분과학으로서의 경험적 개별과학들은 각기 그 대상이 일정하게 규정되어 눈부신 학문적 발달과 성과를 이룩하여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로 자연과학에 있어서 광물학, 동물학, 식물학 들은 그들의 대상들을 일정하게 한정시켜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각기 광물들, 동물들, 식물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은 유와 종에 따라 구별되고, 그들은 그들의 대상을 분업적으로 세밀하게 관찰하고 때로는 실험을 거듭하면서, 그들 현상들의 본질 및 사실대로의 관련성을 규명하고 그들에 관한 이론을 구성하여 개별적 자연과학으로서의 지식체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그러나 철학은 개별과학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에 관해 전체적으로 포괄해서 다루고자 한다. 물론, 철학이 개별과학들의 연구대상인 구체적인 “존재하는 사물”들의 일반적인 인식에 관해서도 취급은 하지만 궁극적으로 전체적인 존재, 즉 존재자체를 문제로 상정하여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이 때에 성립하는 전체지로서의 철학은 개별과학들에서 얻어지는 부분적인 지식들이 하나하나 모아져서 이루어지는 합계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올림으로써 이루어지는 축적지와 같은 전체지를 말하는 것도 아니며, 존재하는 것들을 포괄하는 지평에 서서 근원적인 전체지를 지향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Ⅳ. 철학의 대상철학의 대상은 우리가 현실생활에서 경험적 감각에 의해 지각하는 개별적인 사물들이 아니다. 사물들이 비록 우리에게 부딪치면서 사용관심의 대상으로 혹은 순수 인지의 대상으로 알려지면서, 상식 또는 개별과학의 지식을 이루게 함은 물론이다.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대상이란 이들 존재하는 사물들을 무엇이든 포괄적으로 보고 전체지로서 파악하고자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존재”, “존재하는 것의 전체”, 즉 “존재자의 존재”라고 불렀다. 이 “존재자의 존재”로서의 철학의 대상은 결국 구체적으로 지칭되는 “존재물” 때문에 “존재자체”불려지며, 개별과학의 의미에 있어서, 즉 경험적인 대상적 의미에 있어서 인식이나, 그 이상의 인식에 총계로서의 지식으로 알려지는 석이 아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은 과학일반의 백과전서적 박학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