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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리적 글쓰기 - 客顚倒의 한국사회
    酒客顚倒)의 한국사회요 몇 주전 언론매체엔 낯익은 기사가 등장했다. 요지인즉 모 대학교에 다니는 신입생 한 명이 MT에서 선배들의 강권하는 음주로 인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꿈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온 젊은 여학우가 술로 인해, 그것도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술을 마셨다는 것이 안타까웠다.한국사회에서 ‘술’이 차지하는 것은 마시는 행위 이상의 것이 담겨져 있다. 남자 단 둘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기울인다면, 그것은 소주를 마시는 행위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진솔한 고민이나 힘듦을 나눌 수 있는 사이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미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렇게 묘사해왔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상징성있는 행위로 받아들인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두 사람 사이의 어떠한 고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약 호프집에서 후라이드치킨에 맥주를 친구들끼리 웃으면서 마신다면, 그들 사이엔 무언가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술 마시는 행위가 단순히 행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현상을 담아내고 있는 하나의 기호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술의 의미는 이렇듯 서양에서 여기는 ‘음료’로서의 개념이 아니다. 하나의 ‘사회’가 ‘술’이라는 것 안에 담겨있다는 것이다.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술’이라는 것은 꽤나 큰 상징성과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육례(六禮)를 보더라도 그 안에 ‘향음주례(鄕飮酒禮)’가 포함되어 있다. 술을 마신다는게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등의 행위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철학이 있었고, 예법이 있었다. 어쩌면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향음주례’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사회가 지금 ‘술’을 단순히 ‘음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종의 ‘통과의례’ 내지 ‘사회상을 반영하는 모습’으로 받아들이 것일련지도 모르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발생하고 있는 ‘대학 내 음주사고’는 이러한 ‘음주’의 행위가 ‘대학생 집단’까지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함부로 술을 권하고, 별 생각없이 ‘음주’를 하는 대학생들의 문화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서열’문화와 합성되어 무서운 폭력으로 다가서고 있다. ‘고민을 해결하고, 인생의 힘든 고단한 서민의 친구’로 보여지는 포장마차의 소주를 내세운 술자리나, ‘즐거운 일을 함께 나누고, 왁자지껄 웃을 수 있는’ 호프집의 맥주를 내세운 술자리 같은 상징성이 ‘대학교 내 음주문화(특히나 MT나 OT에서)더 이상 보여지지 않는다. 그나마 80년도 MT땐 술자리가 메인 이벤트가 아니었다. 통기타가 있었고, 레크리에이션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학내 MT 술자리는 어느샌가 술자리가 메인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거기엔 어떠한 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어떤 술자리를 갖더라도 거기엔 술자리를 가져야할 이유가 있다. 즐거움,슬픔,위로 같은 인간의 감정을 같이 나누는게 술자리의 목적이지,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술자리의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상위에서 언급한것처럼 현재 대학교 내 MT의 목적은 ‘마시고 취하자’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음주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시인 조지훈은 주도에도 등급이 있다하여 주도를 18등급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것은 술을 잘 또는 많이 마신다고 올라가는 등급이 아니다. 술의 철학을 이해하여야만 등급이 상승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 목적도 없이 그저 술 마시는 행위만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현실속에서 조지훈은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것인가? 최고등급인 9단이 ‘폐주’라 하여 ‘술로서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고 있지만, 그것은 그 밑의 단수를 모두 거쳐갔기에 받을 수 있는 등급이다. 1~8단도 거치지 않은채 그저 많이 마시기만 하여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9단’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독후감/창작| 2011.08.27| 2페이지| 1,000원| 조회(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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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리적 글쓰기-우리사회에 무소유는 존재하는가
    무소유는 없다.법정이 입적하고 난 뒤, ‘무소유’책이 품절되는 현상이 전국 서점에서 일어났다. ‘무소유’뿐만 아니라 법정이 썼던 많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가고, 법정의삶을 조명한 TV 프로그램이 상영되는 등 한국사회에는 ‘법정 열풍’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만큼의 추모 분위기가 일었다.사실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 추모분위기가 돌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단지 법정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노무현때도 그랬고, 김대중때도 그랬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였을 때도 우리 사회에는 높은 추모의 열기가 불어닥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이 입적하였을 때,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정의 사상에 있다.‘무소유’로 압축될 수 있는 그의 사상은 단순히 우리가 ‘소유’를 하지 말자는게 아니라, ‘집착’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자는게 핵심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말했던 성철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무소유의 핵심 요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소유’를 ‘소유’하려고 했다. 중고서점에서 책이 20만원이 넘게 거래가 되고, 못 구해서 발을 동동구르던 사람들은 서점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 ‘책’이 언제쯤 서점에 풀릴 수 있을지 물어봤다. 서점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하니, 이 정도 수준이면 ‘무소유 광풍’이라고 부를만도 하겠다.사실 법정이 원했던 것은 소리소문없는 사라짐이었다. 자연으로부터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 어쩌면 법정의 진정한 소원이었을 것이다. 생에 대한 집착도 포기한채, 그저 모든 것이 흘러가는대로 따라가기만 한다면 그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여겼던 그에게 있어 무소유를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결국 미천한 대중들이 또 다시 그의 사상을 여전히 이해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1.08.27| 1페이지| 1,000원| 조회(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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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의 사회참여적 역할에 비추어 쓴 4가지 관점에 기초하여
    O.시 선정 및 시 선정 이유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삼천리 화려 강산의을숙도에서 일정한 郡을 이루며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우리도 우리들끼리낄낄대면서깔쭉대면서우리의 대열을 이루며한 세상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주저 앉는다― 황지우, 필자가 이 시를 처음 만난게, 고등학교 때였다. 그저 시라면 한용운의 이라던가, 김영랑의 같은 아름다움이라던가, 서정성을 노래한 시만 알고 있었던 필자에게 이 시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상의 시처럼 무언가 기괴한 문자가 숨어있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시였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모르는 짜릿함과 통쾌함이 느껴지곤 했었다. 고등학교 때 만났던 이 시를 그동안 배웠던 시론(詩論)을 통해 부족하게나마 분석해보고자 한다.O-①.연구방향그동안 배워왔던 이론을 종합적으로 적용해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시를 바라보는 4가지 관점(모방론, 표현론, 효용론, 구조론) 등으로 분석해보고자 하나,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은 ‘표현론’과‘효용론’이 될 것이다. 또한 시의 사용된 언어학적 측면(시문법) 적인 측면에서도 다루어 볼 것이다. 또한 전체적인 글의 입장은 ‘문학의 사회 참여적 역할’에 비추어서 작성될 것이다.I.서론정권이 바뀌게 되자, 각 부처에 장관들도 대폭 물갈이 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유인촌 장관이 내정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서울시장 때부터 이명박 정권의 신임을 받아온 유인촌 장관은 ‘서울문화재단’이사장을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국가의 문화를 책임지는 자리의 수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그러나 정권이 사람을 모자라게 만든다고 했던가? 공석과 사석을 구분 못하고 쏟아지는 그의 정치 편향적 발언과 현 정권의 대한 과도한 충성심은 ‘행정’을 수행하여야 할 자리에 맞는 언러한 어수선한 시기에 황지우의 시를 선택한 것이 결코 잘못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에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적절한 시라고 생각하는 바이다.II.본론①전제‘시’라는 것의 문학적 정의는 제쳐두고라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의 대한 통일된 답이 있겠는가 라는 질문이다. 이 부분은 ‘소설’이나 ‘시’나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시’란 만든 사람 본인이 읽는 작품일수도 있겠으나, ‘독자’가 존재하는 작품이다. 이럴 경우 ‘독자’의 ‘상태’의 따라 시가 다르게 읽혀질 수 있다. 똑같은 문학작품을 보고 다른 감동을 받아내는 경우에 대해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리다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잘 소화한 것. 그것이 문학 이해의 기본이라고 필자는 생각하는 바이다. 따라서 본 논의에 있어서 ‘절대적인 답’을 찾는 것은 ‘현대 문학’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일 것이다.)②모방론적 관점시를 ‘현실의 모방’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일상적 진실’에는 접근이 성공하였으나, ‘당위적 진실’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평하고 싶다. 먼저 이러한 논의를 하기에 앞서 ‘중립’이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역사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논의가 조금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주관적 사실을 남긴 것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사실로서의 역사’는 말 그대로 사진을 찍어 놓은 듯한(즉, 주관적 판단을 제거하고,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는 것) 역사이다. 이렇게 될 경우 모방론적 관점의 경우 ‘후자’의 해석에 가까워야 한다. 가치판단은 이루어져야 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시론’에 대입시켜본다면 현실에 대한 객관적 표현은 ‘당위적 진실’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그런 면에서 본다면 의 경우 ‘일상적 진실’의 관점적인 표현에서는 잘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현실과 인생의 모방. 즉, 당위적 진실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저평가될 것이다. 만약에 이것을 당위적 진실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주저 앉는다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詩論』에 따르면, 표현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는 진심에서 우러나오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은 성실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표현론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성실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경우, 이 시는 상당히 진실한 마음에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실된 마음은 시의 후반부분에서 나타나게 된다.우리도 우리들끼리낄낄대면서깔쭉대면서우리의 대열을 이루며한 세상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주저 앉는다전반부에서 나타난 애국가의 대한 엄정성, 국민의례에 대한 필요성을 여실히 뭉개 버리고 있다. 그와 동시에 국민의례를 할 때 등장했던 새들을 동정하면서, ‘나도 저 새들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라고 상상하는 그 순간 애국가는 끝나버리고 우리는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게 돼버린다. 시인이 상상하는 이상향은 다른게 아니다. 민주사회의 실현과 권위의 대한 불복종이다. 8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가. 전혀 민주적이지 못했던 유신정권이 끝나게 되었으나)그 뒤에 이어진 정권은 전 정권보다 더 아이러니하였다.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군인이 집권하는 시대가 이어졌으며,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정치가 아닌 ‘통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였으며) 민주화를 염원하는 세력은 찍어 눌렀다. ‘인권’이라는 기본적인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졌을 때였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은 오히려 을숙도에서 떠 노니는 ‘새들’이 오히려 더 자기 자신보다 자유로웠을 지도 모른다.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그들에게도 ‘규칙’이 있다. ‘일렬 이렬 삼렬 횡대’ 군대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줄을 세우고 규칙에 따라 그들도 움직인다. 이것은 새들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들끼리 낄낄대면서처음엔 ‘끼룩’이라고 표현했는데, 뒤에는 ‘낄낄’댄다고 표현하였다. 새들은 ‘끼룩’대면서 울지 ‘낄낄’대진 않는다. 필자는 이 부분을 새들이 영화를 보고 있는 ‘시인’에게 보내는 ‘조롱’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새’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새’들은 자유롭게 어디론가 떠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만물의 영장이니 하는 표현은 이제 모두 쓸모가 없어졌다. ‘새’보다도 못한 인간에 대한 자조적인 마음이 ‘낄낄’이라는 표현으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시의 후반부에도 또 다시 나타나게 된다.우리도 우리들끼리낄낄대면서깔쭉대면서우리의 대열을 이루며영화관에 모인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날아가고 싶어 한다. 왜 낄낄거리고 깔쭉댔을까. 여기의 시인의 ‘절망적 현실’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날아가지 못한다는 냉소적 표현이 진정성으로 표현된 것이다. ‘에이~ 인간이 어떻게 날아가겠어. ‘퍽이나 우리가 여기 떠나겠다’ 라는 허탈한 웃음만이 이 시에서는 감돌고 있는 것이다. 웃긴 웃는데, 웃는 것이 아니다. 웃긴 웃는데 허탈하다. 웃긴 웃는데 냉소다. 비웃음이다. 자조 섞인 웃음이다. 결국은 이렇게 살아간다는 절망적 웃음이다.시에서 의식은 어떤 대상을 지향한다고 하였다. 이 경우 지향해야 할 대상은 ‘을숙도에 머물고 있는 새떼’들이다. 새보다도 못한 우리는 새를 동경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새보다 나은 상황인 것 같은데,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라는 권한 없이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진정성과 절박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다시 황지우가 그의 저서에서 말한 부분을 살펴보자. “현실 말고 또 다른 현실이 있으리라는,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현실이 그 현실이 바꿔졌으면 좋겠다는 기대, 소망”) 그는 시 속에서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드러내보였다. 그 소망을 시 속에서 한번 뒤집어 본 것이다. 차라리 ‘새가 되어도 좋다. 나에겐 자유가 필요하다’라는 말의 외침이 느론 필자는 영화관에서 국민의례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민족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는 한국의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일정부분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 시가 딱히 어렵지도 않았다. 어려운 내용으로 비현실적인 내용을 저술한 것도 아니고, 가장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들을 가장 일상스러운 배치를 통해 독자였던 필자에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민주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였고, 한국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시’가 이러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시’로서도 촌철살인적인 풍자와 비평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⑤구조론적 관점구조론 적인 관점에서 이 시를 바라본다면 필자는 행의 배열, 그리고 ‘언어적 장치’에 의한 메시지 전달에서 찾아볼 것이다. 우선 몇 가지 ‘단어’의 사용을 보자.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과연 이것이 ‘경청’일까? 누구도 하기 싫어하고, 누구도 영화관에서 애국가를 트는 것은 형식적인 애국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경청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는 지루함에 치를 떠는 부분이다.)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삼천리 화려 강산의을숙도에서 일정한 郡을 이루며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우리도 우리들끼리낄낄대면서깔쭉대면서//낄낄,깔쭉 등의 표현은 웃음의 표현이다. 웃음의 표현이긴 한데, 무언가 기분 나쁘고 자조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을 배치함으로서, 시적인 분위기를 더욱 이상하게 몰아가고 있다.우리의 대열을 이루며한 세상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주저 앉는다//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각각자리에 앉는다.라는 표현 뒤에 주저앉는다 라는 표현이 바로 나온게 아니라,
    인문/어학| 2011.08.27| 8페이지| 2,500원| 조회(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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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주중흥가
    1. 선택 이유본고가 를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광해군의 학정에 시달리던 끝에 인조반정의 밝은 세상을 다시 만나게 된 기쁨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연군지정의 뜻을 밝히는 가사와 다르다고 생각됐다. 아래에 지속적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겠지만 의 경우 에둘러 말하는 다른 가사 화자들과는 달리, 굉장히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목소리를 통해 군주에게 바른 정치를 촉구하고, 새 시대를 칭송하며, 학정을 비판하는 등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더불어 생각해볼만한 가사라 판단하여 이 가사를 선택하게 되었다.2. 간단한 서지 사항 (어디에 수록, 작가)의 작가는 정훈(鄭勳)이다. 정훈(鄭勳)은 자는 방로, 호는 수남방옹으로 경주 정씨성을 가진 사람이다. 전라도 남원에서 1563년에 태어난 사람이다.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임진왜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인조반정, 병자호란 등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난이란 난은 모두 겪어본 사람이다. 그는 효성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1891년에 사헌부 감찰에 추중되었다고 한다.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 애국심이 들어가있는 시가를 지음과 동시에 생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시가로 옮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특히 그가 애국심이 들어가있는 시가를 짓게 된 원인에는 그의 이외의 다른 가사작품 ,,등에도 나타나있는데, 거기에는 그가 이괄의 난때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나간 점과, 정묘,병자호란 때 두 아들을 출정시킨것과 연관이 있을것이라 사료된다.)3. 형식과 내용의 분석 (서사와 구조)기본적으로 정훈(鄭勳)의 가사는 우국과 충정의 정서가 많이 드러난다고 많은 논문이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갓고로 ?렷다가 글러나 니러셔셔/ 春風에 숨내쉬여 北極을 바라보니/ 陰雲이 消盡?고白日이 中天하샤/ 人間 ?枉을 곳고지 다 빗최니/어와 살앗다가 이 時節 보관지고/ 北向再拜?니 눈물이 절로 난다/ 대한 화자의 진술은 반정의 주체인 인조에 대한 칭송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겨울바람이 지나가고 봄바람이 와서 인간의 무고한 누명을 밝혀주는 밝은 해는 일반적인 가사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군주에 대한 비유이다. 작품 서두부터 감격에 벅찬 목소리로 시작한 부분은 첫 부분이 뒤로갈수록 지속적으로 그 감격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인륜을 밝히니 만백성이 엎드려 복종하고, 옛 사람을 쓰시니 옛 법이 새롭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나온 옛 사람을 쓰니, 옛 법이 새롭게 되었다고 밝히는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유교문학의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특히 성리학적 유교관에 비추어보았을 때, 당시의 광해군의 행위는 분명히 지탄받아 마땅하였으며, 왕의 치적보다는 인간됨을 더 중요시 보았던 성리학적 유교관에 비추어보았을 때, 옛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즉, 는 인조반정으로 새 왕위가 옹립된 것의 대한 칭송이 서두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또한 이러한 어조가 작품을 전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龍樓 問寢에 孝誠도 至極?샤 라는 부분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孝誠’이다. 정훈은 지극한 효자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으며 밤마다 부모의 침소에 나아가 잠 든 뒤에야 물러났다고 한다. 그의 나이에 30세에 임진왜란이 발생했는데 이 때 외친상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를 다하여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왜구가 침입했을 때에도 적은 쌀을 구했더라도 어머니에게 봉양할 만큼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손가락을 잘라내어 어머니께 피를 흘려 어머니에게 온기를 찾게 해줬다고 한다. 그 효성이 나라를 아끼는 마음보다 더 했다고 한다.)성리학적 사상으로 봤을 때 한 나라의 임금은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종종 표현되는데, 이것과 연결시켜 ‘효성’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다시 비유법으로 돌아와보자. 정훈은 가사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비유법을 강하게 사용하고 있다.여? ? 虎 宮闕을 만히 딧다 몃 間의 살고마? / 無辜? 窮民을 그대도록 보챌셰고 / 八方貢膳을 얼마 먹고 니블 거? / 벼? ?라 銀 뫼화 어듸 두로 싸하시며 / 私進上 바다드려 므어싀 다 ?던고 / 우히 그러커든 아래히 ?자???가 / 上下交證 ?니 國體? 진일런가 / 數百年 基業이 一髮에 危殆?니 / 江湖애 ?려신? 社稷을 니?손가 / 柴扉? 닷고 안자 애?와 닐은 말이 / 大臣이 업거든 世臣이나 이시 되야 / 다 기운 宗社? 바칠 ?? 모로?다신랄한 비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천명’과 ‘천상’을 언급한 부분에서, 그리고 ‘방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부분에서, 나라의 근본을 훼손한 무리들을 꾸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무리들이 국체와 수백년 기업이 무너진 반정 전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 작자의 목소리는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이며, 그러했던 현실을 개탄하는 것을 느??? 수 있다. 이것이 백성의 뜻을 반영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작자 자신만큼은 당시의 안타까웠던 현실을 회상하며 논지를 전개해가고 있다. 그리고 끝 부분는 사직을 잊을 수 엇어 시비를 닫고 애닳아 하면서도 다 기운 종사를 받칠 수 없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토로를 덧붙임으로서 정서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하지만 뒤에도 언급하겠지만, 이러한 토로는 작품 끝까지 이어지게 됨으로서, 결국 다른 연군지사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게 됨을 보여준다. 다음 파트를 이어서 보도록 하겠다.千愁 萬恨을 ?업시 품엇더니 / 丕塞이 已極이라 泰運이 도라오니 / 天視 自民이라 聖人이 나단 말가 / 天人助順도 眞實로 올커니와 / 穆陵先靈인? 곳 無心 ?실런가 / 撥亂 反正에 功德이 巍巍?니 / 아므리 三讓?? 天命을 어이?고 / 貧賤 獨夫? 어듸 가 容身?다여기에 나오는 진술은 이제 반정이 일어난 뒤에 상황이다. 이제부턴 다시 인조에 대한 칭송으로 전개된다. 반정 전에 품었던 각종 시름들과 한이 풀린 것은 막혔던 운수가 극에 달해서 태평한 운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한 탄식이다. 이미 화자는 멀리 떨어져 있으며, 군주에 대한 칭송을 하고는 있지만, 화자는 다시 자신의 처지를 상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진술에서 다시 반정에 대한 기쁨과 반가움이 표현된다.京城은 눈에 보고 外方은 귀예 듯고 / 一時 鼓舞?니 有光타뎌 新王아 / 다 이운 草木애 時雨인? 이러?가 / 東方 十六年이 夷狄이 다 되얏더니 / 一朝 匡復?니 반가옴이 ?이업다 / 이 몸이 이제 죽다 셜운 일이 이실손가 / 誠歡 誠喜라 머근 ?이 업건마?龍顔이 遠隔?니 누를 조차 ?오려뇨춤을 추고 북을 두드리면서 새롭게 왕이 된 인조를 마지하는 반가움과 기쁨이 표현되고 있다. 16년동안의 오랭캐와 같은 시절을 하루아침에 회복한 것 같은 반가움을 드러내고 있다. 역시 비유적 수사법이 사용된 부분이다. 아울러 본인이 죽어도 서러운일이 없다는 등의 표현으로 자신의 기쁨을 솔직하게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도 임금님과 멀리 떨어져있기에,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다시 고민하게 된다. 결국 본인 역시 등용되어, 임금과 가까이 있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물소개에 나왔던 평생 관직과 멀리하였다는 말과 배치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미 작가자신은 우국충정을 표현하며 은연중에 자신도 관직에 나아가고 싶다는 것을 암시하게 된다. 이나,에서 나타나는, 아니 전반적인 연군지정 가사에서 나타나는 감정이 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만 다른 작품과 달리 ‘여성’의 목소리를 빌리지는 않고 있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송강’의 ‘연군지정’가사 와 가장 많이 다른 점일 것이다.純孝至誠은 宣廟도 아르시니 / 中興盛德을 고칠 주리 업거니와 / 人心이 물 ??여 引導로 마히 되니 / 君臣 邪正을 乃終내 ?희쇼셔 / 忠言이 逆耳?고 順志? 易狎?니 / 自古 賢君이 몃치나 고쳐된고 / 一人이 正?면 一國이 다 正?고 / 一人이 貧戾?면 一國이 作亂이라 / 興亡 前轍이 긔 아니 거울인가 /冕旒 蔽目?나 末形을 ?피은 충고를 넘어선 경고의 수준에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초반에 나타났던 연군지정의 情을 잠시 눌러뜨리고, 공인으로서 객관적으로 어떻게 국정을 운영해나가야 할지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화자의 입을 빌리지 못하고,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했다는 점에서 다른 ‘연군지사’와 차이가 있다고 하겠지만, 결국 화자 자신도 두려움을 느꼈는지 결구에서 한 걸음 물러난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을 미천한 사람으로 표현하여 앞에서 언급한 다소 강한 어조의 비판을 다소 완화하고, 왕에게 축수무강을 비는 내용으로 마무리 함으로서, 자신의 주장은 철저하게 ‘주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4. 사회학적, 철학적, 세계관 등 연구 방법 적용초반에도 언급했지만, 당시의 사회는 그렇게 안정적인 사회는 아니었다. 광해군이 정치를 잘했다고는 치지만, 광해군이 자신이 정치를 잡기 위해 썼던 수단들은 당시 성리학적 유교관을 가졌던 사대부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안 그래도 조화를 꿈꿔왔던 당시 조선조 유교지식인들의 소망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갖가지 전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것은 저자 자신으로 하여금 더욱 더 안정적이고 조용한 세계를 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그의 문학적 측면에 그대로 녹아들었을 것이다. 특히 가사문학 자체가 유학의 이념이 그대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이 나타났으리라 추론해볼 수 있다.특히 이 작품이 17세기에 씌여졌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16세기 말~17세기 초는 조선에 가장 치명적이었던 란인 임진왜란이 발생했던 때였다. 유교적 신분제의 근간이 흔들렸고, 당쟁으로 인한 분열, 보수와 개혁 노선의 대립, 가문이나 개인별 신분적 위사의 변화 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었다. 특히 향촌사족이었던 정훈에게 있어서는 이미 자신의 가문이 정계에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훈이 왕을 송강처럼 여성화자의 입을 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왕에게 충언을 한 것은(물론 글 말미에 한 걸음 물러서긴 했다.다.
    인문/어학| 2011.08.27| 5페이지| 1,500원| 조회(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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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의 상자 - 2PM의 박재범..그리고 관용없는 한국사회
    ‘변화’와 ‘삭막하지 않은 생활’을 기대하면서 ‘나’와 아내는 신도시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옆집부부’가 이사를 오게 되면서 ‘아내’의 삶에도 변화가 오게 된다. ‘옆집부부’를 만난 뒤 부터 아내는 평소에 가지지 않던 ‘자기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아내’는 점점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간 뒤 외간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게 되고 이러한 외도가 남편에 의해 발각된다. ‘아내’와 ‘나’는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고 부부관계는 피상적인 관계로 변질되고 만다. 결국 남편은 아내를 정신병원에 가둬놓게 되고, 아내의 짐을 모두 정리한 채 신도시를 떠나게 된다. 여기까지가 ‘아내의 상자’의 줄거리다. 간단하기도 하고, 어떻게 본다면 특별할 것도 없는 줄거리일련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최근 일어났던 2pm의 박재범군 퇴출 사태를 보면서 느낀 점은 ‘한국사회의 다양성이 얼마나 더 필요한가?’라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하나 올린 것을 가지고 ‘애국심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박재범을 증오했다.많은 사람들이 다양성을 말하고 관용을 외친다.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획일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입받고 있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을 우리는 거부한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외침은 언제나 공허하다. 그것은 그러한 캠페인을 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이다. 우리의 현실은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아내의 상자’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아내’의 다름과 ‘남편’의 평범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조화가 아니라 ‘합일’이 안 되었다는 뜻 일것이다. 단적인 예로 아내는 결혼하기 전부터 ‘예민’했다. 수능을 보기 볼 때부터 그녀는 물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병원에서 내린 처방은 ‘입시강박증’이라는 ‘병명’뿐이었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남편이 ‘증언’하고 있으나, 소설 속‘아내’의 모습에선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 그려진다. 자신이 읽은 책등은 ‘상자’에 넣어두었으며, 잠도 많았다. 외출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남편인 ‘나’는 이러한 아내의 성격을 그저 ‘방관’하였다. 아내가 커텐을 바꾸자면서 어떤 색 커튼이 좋으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그저 TV에서 지나가는 커텐을 성의없이 말할 뿐이었다. 아내에 대해 처음에는 다 안다고 생각했으나, 아내가 나간 뒤에는 아내의 행적을 전혀 유추할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괜찮다고 여겼고, 아내에 대해서 모든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가 나가고 난 뒤, 나는 ‘아내’의 행적조차 기억해내지 못하고 그저 걱정하고 있는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그리고 ‘아내’의 불륜행위 뒤에도 남편은 ‘아내’를 정신병원에 수감한 뒤 무한한 증오를 표출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증오’도 그저 하나의 ‘일상’으로서 ‘나’는 받아들이게 된다.소설 곳곳에서 ‘아내’는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뉴스’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러했고, ‘인공적인 향’을 싫어한다는 아내의 의견도 그러했다. 하지만 남편의 모습은 ‘무관심’ 이었다. 이것은 부부의 정상적인 ‘섹스’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특히 필자는 ‘섹스’에 조금 더 주목해보고 싶다. ‘나’는 아내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고 억지로 ‘성관계’를 진행하게 된다. 남편은 ‘우리는 부부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애써 자위하지만 이미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준비가 안 된 아내‘의 몸은 차갑기 그지 없다. 섹스라는 것은 부부가 가져야 할 일종의 특권이자 축복이기도 하다.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섹스‘전 전희의 단계에서 충분히 여성의 몸이 준비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섹스‘에서는 즐거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형식적인‘ 섹스의 모습만이 그려진다. 준비안된 ’아내‘의 몸(단단히 웅크린 그녀의 입구를 찾지 못해))그리고 그 후에도 ’아내‘는 ’모든 것이 말라버린다‘는 비명으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간장 접시도 말라 있고, 사과도 말라있다. 시멘트가 집에 있는 수분을 모두 흡수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 부분 역시 논의를 확장해보면 ’전희‘를 느끼지 못해 육체적으로 ’섹스‘에 반응하지 못하는 아내의 몸 상태를 우회적으로 표현한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듯 가장 원초적인 단계인 ’육체적 합일‘의 단계에서도 남편과 나는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합일‘의 실패는 ’불륜‘으로 그려지게 된다.)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 불륜이 의미하는 것은 이미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적인 만족감을 채워준 것이든 아니면 성격의 차이이든 자신의 배우자를 저버린 채 법적으로 금지된) 불륜을 저지른다는 것은 더 이상 ’나의 남편‘에게서 기대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자신의 남편에게서 만족하지 못했던 부분이 다른 사람에게서는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내의 극단적인 행동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특히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아내의 행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난 뒤부터 아내는 지극히 평범한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음식을 할 때의 모습. 그녀의 모든 동작이 ‘나의 눈’에는 지극히 평온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아내’의 자아는 자신 스스로를 잃었다. 그리고 아내는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러한 행동을 ‘남편’의 탓으로 돌리기엔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남편이 그렇게 된 것은 ‘남편’이 선택해서 된 것이 아니라, ‘남편’이 살아오면서 받아온 무언의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현대인의 삶을 답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도 등장하지만 남편은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다. ‘회사’라는 조직내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모든 것이 정형화되고, 수치로 매어지는 현대사회에서, 하다못해 거주공간조차 모든 것이 똑같은 모양인 아파트에서 ‘사람’이 똑같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우리가 만약 ‘남편’만을 비난하게 되면 제 2의 ‘남편’,제 3의 ‘남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남편’을 그렇게 만든 사회의 문제적 본질을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남편’만을 비난한다는 것은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행동과 같다.)단지 아내는 자신만의 자아가 확고하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아내가 ‘옆집아내’와 더 자주 어울렸던것도 결국 ‘그 아내’도 남들과는 다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끌린 것이 아니었을까?‘아내의 상자’를 읽으면서 필자의 과거가 불현 듯 스쳐지나갔다. 중학교를 졸업하기 4개월 쯤에 필자는 부모님께 일련의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학교에서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모두들 필자를 뜯어말렸다. 고등학교를 왜 관두냐는 물음에서부터 크게 후회할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3개월 동안 시달린 각종 상담시간만도 수십시간에 이르렀다. 하지만 필자는 인생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무턱대고 관둔것도 아니고 그저 새로운 교육모델을 내 자신에게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었다. 기존교육이 주지 못하는 감성과 인성.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보기 위해 모두의 반대를 무릎쓰고 충북 제천에 있는 한 대안학교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른바 ‘소수자’의 삶을 맛보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국사회에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삶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서럽고 어려운 일인지 몸소 느꼈다.)남편의 행위도 어떻게 본다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아내’의 모습이 비정상적으로 보였기에 ‘그’는 그것에 대한 치료 방법으로 ‘정신병원’을 택했다. 끝까지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남편’ 또한 정신병 아니겠는가? 단지 이분법적 측면에서 ‘정상-비정상’을 갈라놓은 채 사회에서 학습된 채로 ‘비정상은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는 것. 아내의 사전징후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관점에서 아내를 대하여 온 점. 이것역시 ‘정신병’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편을 만든 것은 현대사회이다. 경쟁사회에서 사람을 최고로 등극하기를 요구하며, 점점 개인주의화되어가는 이 사회속에서 인간이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가지고 나와 다른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일 인가 생각해본다.다시 박재범 사건의 본질을 바라본다. 과연 이것이 그토록 지탄받을 일인가. 나와 다른 점을 추호로 인정하지 못하고, 다소 과장된 내셔날리즘의 울타리, 한국인의 울타리, 한민족의 울타리, 한국에서 교육받은 울타리, 등이 그대로 남아서 외부에서 다가오는 자극을 적으로 간주한 채 사정없이 찔러죽이지 않는가. 범위를 크게 잡아서 그렇지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마음과 지금 우리가 박재범을 나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른점이 무엇일까?2009년 가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또 다른 ‘아내의 상자’를 진행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박스에 쳐 넣은채’ ‘폐기처분’하고 있을련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의 재능이나 다양성을 이러한 방식으로 버려가고 있을련지도 모른다.하지만 필자는 희망을 가진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젠간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변화를 일으킨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필자는 대안학교를 다녀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자도 그러한 점을 느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획일화된 관점을 주관적으로 바라봄으로서 남들이 보지못한 점도 볼 수 있고, 조금 더 참신한 의견이나 생각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필자가 괴짜들을 응원하는 이유이며, 괴짜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문/어학| 2011.08.27| 4페이지| 2,000원| 조회(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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