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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 엘리뇨의 복합적 원인과 영향에 대한 연구
    엘리뇨의 복합적 원인과 그 영향에 대한 연구요약엘리뇨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해수와 대기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인해 일어나는 거대한 움직임이며 라니냐와 다른 현상이 아닌 ENSO로서 함께 설명 가능한 복합적 자연현상이다. 이는 동, 서태평양의 국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데 득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와 우리를 위협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엘리뇨와 그 복합현상들을 더 깊이 탐구하고 더 나아가 전지구적 기후의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Abstract'El nino' is not a simple natural phenomenon. It is caused by complex action both sea water or atmosphere, and It can be explained ENSO ; huge and complex natural phenomenon. El nino affect immense infuence to nations near Easetern & Western Passiffic, but Almostly It's harmful and makes big calamity. from now we will research this phenomenon deeply.I. 서론엘리뇨(El nino)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2~6년 주기로 평년보다 2~3도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엘리뇨는 지구의 기후시스템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며 지구 곳곳에 겨울철 이상고온, 홍수, 가뭄 등의 이상기상 현상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이상기상현상은 태평양 연안의 인접국가들에 큰 피해를 끼쳐 오늘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태평양 연안에 속해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비록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분명 그 영향권 안에 있으며, 그러므로 이를 연구하는 일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엘리뇨 현상과 그 영향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 우리나라에서의 엘리뇨의 의미와 그 영향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기예수의 의미를 가진 엘니뇨(El Nino)라 불렀다).같은 현상에 대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에 엘리뇨란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①은 엘리뇨의 난류 정체현상이 가져온 어장의 피해(멸치어획량의 감소) 때문에, ②는 난류 정체현상으로 인한 새로운 어장의 형성 때문에 엘리뇨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맞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현재 엘리뇨가 페루해안 연안에 주고 있는 피해를 고려해 볼 때 첫 번째 이야기가 더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로 보인다.기상청은 “열대 태평양 엘니뇨 감시 구역 해수면온도 편차의 5개월 이동평균이 6개월 이상 플러스 0.4도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엘니뇨로 정의하고 있다). 엘리뇨의 정의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소간의 견해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의 공간평균값(Nino3 지수 또는 Nino3.4 지수)이 평상시보다 0.5도 이상 따뜻한 상태가 5개월 이상 지속될 때를 엘니뇨 시기로 정의한다). 즉, 해수의 온도가 이상(異象)적으로 높은 시기를 말한다.2. 엘리뇨의 발생 원인엘리뇨의 발생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고 있으나 계속적인 과학적 조사가 거듭되고 있고 그 해석의 틀도 다양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무역풍에 관계한 페루해류의 유입 여부가 엘니뇨의 발생과 관련이 깊다.보통 때의 태평양의 해수면온도분포는 서태평양이 고온이고, 동태평양 남미연안에서는 남쪽으로부터 페루 한류가 흘러들어서 저온이 된다. 또한 남미연안에서는 용승)(湧昇)현상으로 차가운 하층해수가 해수면으로 용출함에 따라 동태평양 페루연안에서는 차가운 해수가 늘 유지된다. 대기의 대순환은 이러한 해수면온도분포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적도지역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은 서태평양의 더운 해수와 동태평양 차가운 해수분포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무역풍이 해수면이 따뜻한 물을 태평양 서쪽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난수층의 두께는 서쪽에서 두껍고 동쪽에서 얇아지고 해면수 위는 동쪽보다 서쪽이 40cm정도 높아진다. 이 무역풍이 약해지면 서쪽은 복잡한 대기와 해수의 순환 시스템에 영향을 받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최근의 논의들은 이러한 복합적 환경시스템으로써 엘리뇨 현상을 해석하려는 것들이다.즉, 엘니뇨는 대기와 해양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해수면 온도의 상승은 해양의 반응이라면, 남방진동)(Southern Oscillation)은 해수면 온도 변화에 따른 대기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남방 진동과 엘니뇨는 독립된 현상이 아니라 서로 결합된 동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1970년대 이후 관측과 자료분석을 통해 엘니뇨와 이 남방진동이 밀접히 연결된 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과학자들은 이 두 종류의 현상을 합해 ENSO(El Nino Southern Oscillation ; 엘니뇨-남방진동)라고 부른다.엘리뇨와 정반대의 현상, 라니냐는 이러한 전체적인 맥락에서 함께 분석된다.(아래의 설명은 서울대학교 대기과학과의 홈페이지를 인용했다). 이는 엘리뇨와 라니냐, 그리고 그들의 해수, 대기와의 복합적인 매커니즘을 잘 분석하고 있다.)ENSO 역학을 설명하기 위하여, 일단 동태평양에서 평소보다 따뜻한 해수면 온도 편차가 있다고 가정하자. 평소보다 따뜻한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대기를 가열하므로, 동태평양에서 상승, 서태평양에서 하강하는 대기 순환을 유도한다. 그러므로 열대태평양의 하층에서는 서풍 바람 응력) 편차가 나타나게 된다. (이는 무역풍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 서풍 바람 편차는 해양에 강제력으로 작용하여 동태평양에서는 해수면 고도가 높고 서태평양에서는 해수면 고도가 낮아지게 된다. 즉 바람 응력과 수압경도력)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동태평양의 해수면 고도가 높아지면 수온약층의 깊이는 깊어지게 되고 해수면 온도는 더 따뜻해진다. 더욱 따뜻해진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대기를 가열하여 서풍 바람 응력을 강화시키므로 동태평양의 해수면 고도를 더욱 발달시키게 된다. 이러한 양의 피드백에 의해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점점 상승하여 엘니뇨 절정기 상태차 소멸하게 된다. 적도 지역의 질량 발산은 엘니뇨가 소멸한 이후에도 계속 진행되므로 동태평양의 해수면 고도가 음의값을 가지게 되며 음의 해수면 온도 편차가 발달하게 된다. 음의 해수면 온도 편차는 동풍 바람응력을 생성하게 되어 라니냐가 발달하게 된다.라니냐 절정기 이후에는, 지균 균형에 의해 적도 지역으로 질량이 유입되므로, 동태평양의 해수면 고도가 점점 증가한다. 해수면 고도의 증가는 수온약층이 깊어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음의 해수면 온도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질량의 유입은 라니냐가 끝날 때 까지도 계속되어 동태평양의 양의 편차 해수면 온도를 만들어낸다. 이 양의 해수면 온도가 발달하여 다음 엘니뇨로 발달하게 된다.위의 분석들에서 보았듯, 엘리뇨는 단순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자연 현상이 아니며 사실 지구란 환경 안의 복잡한 시스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하나의 순환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의 활동과 메커니즘을 분석하려는 인지과학의 시도가 무척이나 어렵듯이, 복잡한 지구환경시스템을 완전히 분석해내려는 것은 또한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ENSO로 설명되고 있는 이 현상은 엘리뇨와 라니냐를 한 현상으로 보며 엘리뇨 현상 분석의 틀을 제시하고 있지만 완벽한 설명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더 복합적일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분석의 틀이 제시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여야 좀 더 완벽한 분석의 틀이 만들어질 것이다.3. 엘리뇨의 영향)이상기후현상인 엘리뇨는 많은 재해를 몰고 다닌다. 처음에 어원을 분석할 때 보았듯, 처음에는 온난한 물의 동태평양으로의 유입이 동태평양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상승기류로 인한 비로 홍수의 피해가 심각해졌고, 이에 반해 서태평양의 여러 국가들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는 하강기류로 인한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기도 하는 등 매우 큰 피해를 주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과거 기후기록을 찾아보면, 기상재해에 의한 인명피해는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가 다른 기간에 비해 매우 크다. 엘니뇨가 발생했던 1난동으로 IMF로 어려웠던 겨울을 에너지 걱정 없이 지날 수 있었다. 근래의 기후변동이 우리가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엘니뇨 또는 ENSO의 메커니즘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이와 같은 기후이변이 모두 엘리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보다 다양한 분석 방법이 모색되어야 좀 더 정확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4. 우리나라에의 영향우리 나라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로는 시베리아 고기압을 비롯한 중위도 대기순환의 변화, 설빙 면적과 중위도 해수온도의 변화 등이 있으며, 이들 요소가 늘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때로는 어떤 요인에 의한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다른 때에는 그 영향을 거의 탐지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지기도 한다.그렇다면 이러한 복합적 작용상에서 엘리뇨란 현상은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 현재 한국도 엘니뇨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엘니뇨의 피해는 1997년 4월 이후 태풍, 고조, 대설, 홍수, 가뭄, 산불 등으로 사망 16명, 재산피해 2천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의 위 그림은 한반도 기온과 엘니뇨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E로 표시한 것은 엘니뇨 시기를 나타낸 것인데 그림에서 나타나듯 엘니뇨 여름철은 평년보다 기온이 낮게 나타난다. 15개의 엘니뇨 여름철에 기온이 높은 해는 한 해에 불과하였다. 엘니뇨 겨울철은 평년보다 기온이 다소 높았음을 알 수 있다. 15개의 엘니뇨 겨울철에서 두 겨울철만이 평년보다 0.5도 추웠고 그 이외의 해에는 평년과 비슷하던지 다소 온난하였다. 엘니뇨와 강수량의 관계는 온도만큼 명확하지 않지만, 엘니뇨의 여름철에는 강수량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엘니뇨는 한반도에 많은 피해를 입히는 태풍에도 영향을 미친다. 의 밑 그림은 엘니뇨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 한반도 주위를 통과한 태풍의 발생 지점을 표시한 것이다. 엘니뇨 시기에 태풍의 발생지역이 남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열대 태평양의 광범위한 수렴구조가 엘니뇨에 의해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엘니뇨 시기에 발달
    자연과학| 2004.09.15| 16페이지| 1,000원| 조회(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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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미학] 칸트 - 판단력 비판의 도입 계기에 대해 평가A좋아요
    칸트가 끌고 나간 철학, 그 완성의 지점에 위치한 판단력1. 주체와 인식, 그리고 진리 찾기인식 주체인 우리는 상식인으로서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해 인식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니 확신조차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흄의 말처럼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상식인들에겐 전혀 의미가 없는, 철학자들의 닫힌 논의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또한 철학자들의 자기성찰일 뿐이다. 개개인으로 인식하고 욕구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주체 안의 자아를 통해, 자아의 지성과 이성적 작용을 통해 진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세상의 존재 양식에 대한 탐구, 나를 넘어선 그 무언가에도 반드시 있을 그것을 알아내려는 노력은 어쩔 수 없이 자아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나약함을 느끼게 해주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인식노력에 어쩔 수 없는 나와 세계란 양분이 있다.칸트는 이러한 근대 서양의 철학적 문제의식의 끝을 보려고 한 듯하다. 그에게서 중요한 것은 분명 주체이며,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주체가 보편을 사고하는 것이 당위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방식은 철저히 논리적으로 논해지며 체계적으로 구성된다. 즉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이라는 세 가지 비판은 완벽한 체계로서 구조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의 세 번째 비판서, 판단력 비판은 본디 그의 철학적 체계 구상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실한 요청에 의해 이 세 번째 비판서를 쓰게 된다. 그 연유는 무엇인가.2. 칸트 비판 철학의 구조 - 1,2비판서의 체계와 결함의 발견칸트의 저술 중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 비판, 그리고 판단력 비판이 그의 철학체계를 구성하는 기둥들이며 이 세 비판서로 짜여진 골격에 따라 칸트의 사상을 설명하는 일이 가능하다. 철학체계를 건축에 비유하곤 하는데 이는 그만큼 부분들이 명료하게 완결되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오성Verstand이 선험적 원칙들Prinzipien에 따라 자연계에 자신의 개념들을 적용하여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대상들’을 확정하는 활동을 다루고 있는 제1비판, 순수이성비판은 오서의 활동을 그 완결된 역학 속에서 구명하는 철학서이다. 그런데 이 책은 오성능력에 따른 개념적 인식가능성을 그 한계 속에서 밝혀냄으로써 오성의 한계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제 1비판서는 이렇게 하여 건물의 다른 축을 필요로 인정하는 한 축으로 자리잡는다. 현상계(감성계)와 물자체Ding an sich(초감성계)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골, 칸트철학은 이렇게 경험적 인식의 한계를 확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자연법칙에서 벗어난 인간의 인식활동 영역을 구명한다. 이 제 2비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도덕적 판단으로 사회화될 때 적용되는 선험적 원칙들을 밝히는 데, 여기에서 이 자유의 선험원칙이 적용되는 영역과 자연개념들이 선험적 원칙에 따라 관철되어나가는 영역이 절대적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이 논증되고 있다. “자유는 체험대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은 이를 가장 장 특징짓는 말이다.)하나의 지성을 가진 주체를 생각해보자. 그는 그가 감지할 수 있는 시공간의 한계 안에서만 지각할 수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자연개념). 하지만 세상은 분명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물자체Ding an sich, 자유가 있을 것이다(자유개념). 자연 속에는 자유개념이 실현되어 있고, 그렇기에 적어도 이는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개인의 경험은 한계를 지니기에 ‘이것이 자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개인,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현상 속에서 이념이 실현되어 있는 가능성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즉 현상과 물자체는 어떤 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3. 판단력 도입의 계기칸트의 3비판서는 인간의 정신작용에서 각기 다른 능력을 다루고 있다. 제1비판서인 순수이성 비판 은 경험세계와 관계하는 인식의 영역을, 제2비판서인 실천이성 비판 은 물자체에 관계하는 자유의 영역을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비판서인 판단력 비판 은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쾌와 불쾌의 감정Gefhul der Lust und Unlust, 즉 미감판단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그런데 제3비판이 다루고 있는 것은 다른 비판서들이 다루고 있는 것들과는 다르게 개별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쾌와 불쾌의 감정이라는 것은 어떤 개념법칙이나 사유원리가 아닌, 개개인의 심정상태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이것이 인식적 판단이나 도덕적 판단과는 다른 또 하나의 판단 형식으로서 보편성을 지님을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개별적이며 특수한 것이,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성 역시 지닌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모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칸트가 직접적으로 매개한다vermitteln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처럼 특수와 보편을 가로지르는 것이 판단력에 대한 비판작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오히려 이것이 칸트의 비판기획을 해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인식 가능성과 인식 작용은 보편적이지만 인식경험 자체는 개별적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 자체는 개별적이지만 그것이 도덕적 판단으로 사회화되는 것은 보편적이다. 더구나 자유의 선험원칙이 적용되는 영역과 자연개념들이 선험적 원칙에 따라 관철되어나가는 영역은 절대적으로 구별된다. 그러므로 앞의 두 비판에서는 보편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고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세계에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미감판단은 개별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서 드러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물자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제3비판은 단순히 세 번째 인식의 능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앞의 두 비판의 상호불가침을 해소하고 있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다시 한번 짚어 보자. 자연에는 합법칙성의 원리에 따라 이성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되는 사물들과 우연과 무질서의 지배를 받는 사물들이 나란하게 있다. 이 ‘자유로운’ 자연은 독자적인 제 3의 원칙과 나름의 통합원리를 필요로 하며, 그리하여 순수이성이나 실천이성과는 다른 능력에 의하여 ‘인식’될 수 있어야만 하였다. 이러한 요청은 칸트철학이 체계로서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한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미감판단에 관계한 판단력을끌어들임으로써 칸트는 이러한 요청에 부응할 수 있게 된다. ‘자유로운’ 자연에도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하여 우리의 인식에 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에 법칙부여 과정이 탐구되었다. 판단력비판은 이 능력이 현상계와 물 자체 사이의 메울수 없는 골에 놓여진 중간자이며 별개인 두 영역을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을 밝힌다. 이리하여 칸트가 구상하고 초석을 세워나간 건물을 지붕을 얹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한다. 우리의 감정 Gefuhl이 인식 능력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판단력이 자연대상들에 대해 독자적인 퍼스펙티브를 구축해나갈 때, 여기에 적용되는 제 3의 선험적 원칙이 좋고 싫음을 가리는 우리의 감정능력Geguhl der Lust und Unlust에 근거를 두고 판단력의 활동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이다. 판단력비판은 쓰여질 때 미학을 위하여 쓰여진게 아니었으나 이렇게 미학을 다룬 책이 된다.4. 반성적 판단력에 의한 미감판단과 합목적성칸트는 판단력이 쾌와 불쾌의 감정에 관계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자 그러한 활동을 하는 판단력과 오성에 의한 인식과 관계하는 판단력 사이에 구분을 두게 된다. 그는 그것을 반성적 판단력이라 명명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성한다는 것은 곧 주어진 대상을 그 표상에 의하여 가능한 개념에 관하여 다른 인식능력과 비교하고 대조하거나, 또는 자기의 인식능력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판단력이 이러한 반성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통일성과 합목적성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반성은 맹목적인 것이 되고, 인식과 자연의 조화라는 미감판단의 근거는 사라져버린다.반성적 판단력의 고유한 원리는, 자연은 판단력을 위한 논리적 형식의 체계에 맞도록, 자신의 보편적 법칙을 경험적 법칙으로 특수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합목적성의 개념이 드러난다. 목적은 객체 속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관 속에서, 그것도 주관의 반성하는 능력 속에서 세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 아래 반성적 판단력이란 말이 미감판단의 본질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미감판단에 관계하는 판단력이 반성적 판단력이라는 사실은 쾌와 불쾌의 감정이 주관적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보편성을 지닌다는 것, 더 나아가 그것이 물자체와 현상계를 매개하여 인간에게 초월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쾌와 불쾌의 감정은 물론 현상계의 대상을 통해서 촉발되지만 그것은 그 현상계의 대상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마음의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다. 받아들여진 자료인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판단이 쾌와 불쾌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 마음의 내부에서 물자체를 형성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쾌와 불쾌의 감정은 외부적인 대상을 가지지 않고 그 자신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때 일어난 판단은 물자체이면서도 경험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일으키는 합목적성이 바로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며 초월을 낳는다.
    인문/어학| 2004.09.15| 4페이지| 1,000원| 조회(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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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하버마스의 현대성에 대한 성찰 평가B괜찮아요
    하버마스의 현대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현대성이 우리의 삶의 근저에 자리하고, 우리의 삶을 논하는 게 철학이라면 철학은 이미 현대성을 논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철학의 문제라 함은 일반적 인식으론 보다 고상한 저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현대의 철학’이 풀어내야 할 과제이다. 철학이라는 인간에 대한 작업을 직업으로서 수행해야만 하는 현대의 철학자들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크게 인문학의 위기에 포섭되는 이 문제는 모두들 ‘자본주의적 성공’이란 대타자를 욕망하는 현대인에게 ‘인간적 삶’이란 대타자를 욕망하게 하는 길을 연다는, 철학자들이 풀어가야 할 난제를 제시하고 있다.현대성은 우리 인간과 그 삶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낸 기제이다. 1세대 비판이론가들이 제시했던 현대성에 대한 암울한 전망은 우리에게 변화된 인간 삶 기저를 명확히 인식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이상을 우리에게 제시해주지는 못하였다. “너는 지금 이런 잘못된 세상에서 살고 있어. 그러니 고쳐야 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차마 몰랐던 것의 깨달음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방법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못했다.하버마스는 이들이 ‘이성’이라는 개념을 잘못 사용하였고, 이성의 권위를 복권함으로써 현대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강하게 믿었다.『유래없이 미래에 대해 열려 있으며,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현대성은 자신의 규범을 그 자신으로부터 가다듬어야 하기에 그것에 규범적 원칙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이성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기존의 이성은 도구적 이성이고 이것은 자기를 폐쇄하는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떤 목적을 지향해, 그것의 완성을 위해 이성이란 도구를 사용하지만 그 완성은 결국 어떤 맥락을 띠고 그 맥락을 따라간다. 이는 포퍼가 그렇게 열렬히도 역사주의를 비판하던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역사주의는 역사의 한 방향으로의 필연적 귀결을 맹신하여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을 할 가능성을 막는다. 맥락주의는 맥락에 대한 사전이해가 그 맥락적 지평 안에서 성장하고 그 안에서 말하는 자를 배후에서 인도하는 방식이 되기)에 뭔가 생산적인 장을 만들어낼 여지가 없다.이렇게 잘못 사용되고 있는 이성에는 탈현대론자들의 말처럼 해결 방법이 없는가? 하버마스는 이점에 대해 부인하며 이성을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용법을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긍정적 이성은 의사소통의 이성이다. 우리 모두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라는 공통의 기반 하에 있고 이는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견고한 지반이다. 그는 두 이성을 구분했지만 난 의사소통의 이성 또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도구는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이다. 기존의 도구가 주체 대 타자의 관계에서 주체가 타자를 망치질하기 위한 도구였다면, 이 새로운 도구는 주체 대 주체의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몸의 모난 부분을 쳐서 다듬어 주기 위한 도구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사소통 행위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해관계는 서로 다른 욕망을 하는 주체들이 이성을 무기로 한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함으로서 그 충돌 부분을 다듬어 나갈 수 있다. 즉 ‘상호이해의 성취’가 우리 인간이 현대성이란 새로운 지반 하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현대성이란 새로운 지반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현대비판적 이론들과 대비되며 긍정적이다.『체계의 증가하는 복합성은 그 자체로는 소외효과를 낳는 경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체계와 생활세계 간의 기능적 분화가 관찰되는 한, 오히려 학습능력을 제고하고 기회구조를 확대합니다. 병리현상은 일차적으로 상업적 거래와 관료적 조정이 사적 영역과 공론장의 소통과정의 핵심을 왜곡시키며 개입하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사회과학| 2004.09.15| 3페이지| 1,000원| 조회(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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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사상]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평가B괜찮아요
    사회사상사 기말 Report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 도입 : 종교와 자본주의라는 숭고한 대상들의 접속1.1. 자본주의의 태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 - 맑스는 너무 꽉 막혔다?지금부터 우리가 할 논의에 앞서, ‘정신’이란 것을 규명하려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의 모양새가 항구불변하다는 말이 틀리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철학은 대체 인간의 정신구조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인류 역사 이래 끊임없이 지속해 왔다. 데까르뜨 이후에 변한 인간의 본성이 있으며 그것은 인간의 삶의 양태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근대적으로 생각하는 우리는 분명 정신적으로 근대성을 체화한 주체들이며, 근대 이전의 인간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의 작용이 현대의 합리성이 만연한 사회를 이루는 근간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정신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인간과 그들의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자본주의 사회라는 거대한 담론에 있어, 그것의 생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어떠한 ‘정신’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맑스적 도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이다. 베버는 분명히 당대의 여느 학자들처럼 맑스 이론의 거대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베버는 당대의 여느 학자들을 넘어서는 사고를 보여주었다. 그는 맑스의 역사주의적 도식에 반대하였으며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를 만들어냈다는 식의 결정론적 주장이 아닌, 종교적 동기가 주요한 상호적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 그리고 그 이후에는 자본주의는 종교적 본질을 잃고 그 방식만 남아 작용하고 있다는 - 온화한 주장을 펼쳤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에 대한 그의 심도 있으면서 철저한 과학적 규명성을 갖춘 논의는 그의 말에 더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1.2. 정당화의 논리 - 정당성 입증하기 vs 억지로 정당하게 만들어주기하지만 여전히 찜찜한 기분은 남아있다. 종교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암묵적 감정과 상징적 관념을 창출해 내는 방식을 이해하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다. 종교 영역을 훨씬 넘어서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으로 정치와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회 집단 간에 갈등을 가능하게 하는 유대의 역동적 측면을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종교는 사회의 바깥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다. 사회 자체에서 생성된 것이요, 이것이 사회의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성을 부여하는 종교적인 현실은 자연도 아니고 형이상학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 자체이다. 신은 사회의 상징이다. 신이 사회와 관계맺음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신은 사실 사회 자체이고, 분명히 사회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것이며 - 이것이 종교가 드러내는 근본적인 진실이다. 신은 사회의 상징이다.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집단의 계율을 어기지 않는 이유는 - 도덕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이유는 - 집단이 그러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또 개인이 집단에 속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하려고 하는 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그 집단이 요구하는 도덕성에 부응해야하게 되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무의식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인간은 거의 누구나 집단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집단에서 얻는 중요한 혜택은 개인의 희생이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을 만큼 편안하다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선 궁중의 욕망의 방향성에서 나오는 정서적 에너지는 개인의 욕구에 따라 하는 행위에서 나오는 그 이상의 옳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그러한 방향성에 대한 개인의 지향이 도덕성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 그것이 옳은 것이요, 도덕적인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가 도덕적이라고 평가되는 순간, 자본가적 행동방식이 극한의 추진력을 얻게 된다는 가정에서 볼 때, 종교적 도덕성에 대한 이해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2.2.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2.2.1. 자본주의 정신현대적인 자본 소유자와 결합되어 나타난다. 그와 같이 노동을 자기 목적, 즉 자본주의가 요구하듯이 직업(소명)으로 파악하는 것은 이 경우 종교적 교육에 의해 주로 결과된 것으로서 전통주의적 구습을 극복하는 최선의 기회이다.자본주의적인 형태의 경제와 이 경제를 운용하는 자본주의 정신은 물론 일반적으로는 적합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지만 법칙적인 상호의존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부룩하고 우리가 벤저민 프랭클린의 예에서 분명히 했던 방식으로 직업으로서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당한 이윤을 추구하려는 정신적 태도를, 이 책에서 잠정적으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이는 역사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정신적 태도는 근대의 자본주의 기업에서 그 가장 적합한 형태를 발견하였고, 반면에 자본주의 기업은 그 정신에서 가장 적합한 정신적 추진력을 찾았기 때문이다.근대 자본주의의 추진력에 대한 문제는 우선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화폐재고의 원천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의 발달에 대한 문제이다. 그 정신이 개화하여 작용하는 곳에서는 그 정신이 화폐재고를 자신의 작용수단으로 변형시켰던 것이며 그 거꾸로가 아니다. 거꾸로가 아니라는 말은 화폐재고가 그 정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고 이는 맑스의 생각에 반대하는 베버의 생각이 가장 극명히 드러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모종의 정신이 화폐를 제고하는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 기여를 한 것이다.그러한 혁신의 과정에 고객과 노동자의 신뢰를 제공해주며 무수한 저항의 극복을 위한 활력을 제공하고, 무한한 집중력의 노동능력을 가능케 한 엄격하고도 단호한 “윤리적” 자질이 명석한 시야와 추진력 못지않게 필요해짐이 자명해진다. 이는 단적으로 말해 전통에는 맞지 않는 다른 방식의 윤리적 자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생활에 이러한 새로운 정신을 관철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전환을 이룬 사람들은, 경제사의 모든 시대에 볼 수 있는 무모하고 파렴치한 투기업자나 경제적 모험가들 또는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대체적으종교개혁의 성과가 외적으로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교도와 루터 교도들이 칼뱅주의에 보내는 혐오의 근거는 칼뱅주의의 윤리적 독특성에 있다. 매우 피상적으로 관찰하더라도 칼뱅주의에서는 종교생활과 지상의 활동 간의 관계가 가톨릭이나 루터주의와는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잊어선 안될 것은 종교개혁을 경제적 변화로부터 ‘발전사적 필연성을 갖고’연역할 수 있다는 견해를 버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새로이 발생한 교회들이 존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경제법칙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경제적 관점에도 짜맞출 수 없는 무수한 역사적 정황, 특히 순수한 정치적 사건 등이 함께 작용해야만 한다. 물질적 하부토대, 사회적, 정치적 조직 형태 등과 종교개혁적 문화시대의 정신적 내용 간의 상호영향이 매우 혼잡하기 때문에, 우선은 일정한 형태의 종교적 신앙과 직업윤리 간의 친화성이 인식될 수 있는지의 여부와 그 정도를 탐구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할 것이다.2.3. 현세적 금욕주의의 종교적 토대무엇보다도 예정설 때문에 칼뱅주의가 국가에 유해하다는 견해가 나왔다.“... 신은 당신의 영광을 계시하기 위해 당신의 결단으로 어떤 이는 .... 영원한 삶으로 예정하셨고(predestinated) 또 어떤 이는 영원한 죽음으로 예정하셨다.”“... 신은 당신의 피조물을 능가하여 당신의 무한한 힘을 원하시는 대로 칭송하기 위해 당신이 은총을 베풀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하시는, 헤아릴 길 없는 의지의 권고에 맞추어 나머지 인간들을 그 죄에 대한 치욕과 분노로 정하시어 당신의 영광스러운 의로움을 찬미하심을 기뻐하신다.”루터교의 교부들은 은총이 상실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를 참회의 마음으로 받들고 신앙으로 믿는다면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교리로서 확립하고 있었다. 칼뱅의 경우 신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위해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은 오직 신의 위엄을 영광케 한다는 목적의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영원한 진리의 이러한 단편에만 의지할 수신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것이었다. 신도들은 회개와 참회에서 사제에게 바랄 수 있었고 그러면 사제는 죄를 사해 주고 구원의 희망을 베풀고 면죄의 확신을 심어 주었으며, 그러게 해서 빠져나올 수도 없고 무엇에 의해서도 위안받을 수 없는 칼뱅주의자들의 운명이 겪어야 했던 저 엄청난 긴장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이에 반해 칼뱅주의자들에게는 우호적이고 인간적인 위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윤리의 실천은 그 무계획성, 비체계성을 벗어버리게 되었고 전생활방식의 일관된 방법으로 발전되었다. 매순간 모든 행동의 변화를 통해서만 인간을 자연 상태에서 은총의 상태로 고양시키는 은총의 작용이 보증될 수 있기 때문이다.칼뱅주의는 발전과정에서 적극적인 것을 추가했다. 즉 세속적 직업생활에서 신앙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사상이 그것이다. 이로써 칼뱅주의는 종교적으로 지향된 광범위한 층의 사람들에게 금욕에의 적극적 동인은 제공하였고 자신의 윤리를 예정설에 근거시킴으로써 수도승의 탈속세적인 종교적 귀족주의를, 영원한 과거로부터 신에 의해 예정된 성도들의 세속적인 종교적 귀족주의로 대체시켰다.영미의 생활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독일인에게서 느껴지는 영유와 소박, 그리고 독일인의 영미 사람의 생활방식에서 일반적으로 편협, 부자유, 내적 소박 등으로 불쾌하게 여기는 것 등과 같은 것은 본질적으로 칼뱅주의와 달리 루터주의가 삶을 보다 덜 금욕적으로 관철시켰던 것에서 유래하는 생활방식의 대립이다.) 금욕적인 것에 대한 소박한 세속적 인간의 반감이 그러한 인상에서 나타나는 것이다.요약하자면, 모든 종파에서 관찰되는 것은 은총상태를 일종의 신분으로 여기는 점이다. 그런데 이 신분의 획득은 어떤 마술적 성례적 수단이나, 참회에 의한 사면이나, 개인적인 경건한 공적 등을 통해서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단지 자연적 인간의 생활방식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특수한 성질의 품행에서의 증명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각 개인은 생활방식 안에서 자신의 은총상태를 방법적으로 검사하고, 그에 있다.
    사회과학| 2004.09.14| 12페이지| 1,000원| 조회(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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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학] 정보사회와 주체
    정보사회와 사이버사회 기말 Report - 정보사회와 주체정보사회와 주체- 유비쿼터스 사회와 프라이버시 문제를 중심으로 ;정보사회에서 주체란 무엇인가사회학과 2002-10035 김민균? 도입 - 정보사회에서 우리의 문제의식“생명이란 건 정보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절점과 같은 것이다. 종으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란 기억 시스템을 가지며, 사람은 단지 기억에 의해 개인일 수 있다. 설령 기억이 환상의 동의어였다고 해도 사람은 기억에 의해 사는 법이다. 컴퓨터의 보급이 기억의 외부화를 가능하게 했을 때 당신들은 그 의미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오시이 마모루 감독, 中근대의 시작과 함께 인간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산업화의 물적 기반을 바탕으로 일어난 이 거대한 변화는 시간의 단절을 느끼게 할 정도로 급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더 급격한 변화의 물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바로 정보화의 물결이다. 까마득한 숫자의 인구가 물과 한 세기만에 지구에 더 살게 되었지만 아무리 개체수가 많아졌다고 해도 그들의 사생활을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재판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믿을만한 단서일 것인데 이러한 데이터화된 사적 개인의 정보는 그야말로 범람하고 있다.우리의 기억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컴퓨터로 처리되는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이러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의 무한 전송 및 정보 공유는 꿈만 같은 이야기였으나, 한국을 선두로 하는 초고속 통신망은 이제 전지구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으며 인간이 사는 곳 어디라도 케이블만 연결되어 있다면 막대한 양의 정보가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범람하는 정보를 통제하고 정보의 흐름을 규제할 수 있는 자는 새로운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이러한 정보사회의 도래와 사회적 기반의 변화의 중심에 있는 우리는 정보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심도있게 고찰해 보아야 한다.1. 정보사회의 도래에 대한 예찬론과 암울한 전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리는 정보사회를 어만들어내고 있다.2. 지식정보사회의 도래근래 티비에서 볼 수 있었던 광고 중에 누군가 질문을 하니 경찰이 그를 잡아가는 광고가 있었다. 검색 사이트에서의 검색으로 모든 정보가 공유되어 더 이상 질문이란 것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코믹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네이버 지식검색에서 범람하는 지식들은 실제로 대단한 양이다. 특정 단어만으로도 우리는 왠만해서는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낼 수가 있다.“지식정보사회”(knowledge-information-based society)는 지식화와 정보화를 기반으로 지식이 정보화되고 정보가 다시 지식화되는 사회적 특성을 나타내는 사회개념으로 분석적으로는 “정보기반의 지식사회”(information-based knowledge society)이며 또한 “지식기반의 정보사회”(knowledge-based information society)이며 그 통합형태이다.)지식화 수준(직업)낮다높다정보화 수준(직업)낮다(농민, 장인)- 전통적 지식사회(문인, 예술가, 교사)높다- 고도정보화사회- 정보사회(정보검색사, 프로그래머)- 지식정보사회(정보기반의 지식노동자)정보 기반의 지식사회는 지식의 정보화가 중요한 사회이고 만면 “지식기반의 정보사회”는 고도의 지식이 신속하게 유통되고 저장/가공되어 정보사회의 변동이 고도화되는 사회이다. 무엇보다도 지식정보사회는 정보기술혁신과 그 잠재성을 기술적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이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정보기술의 혁신에 따라 기존의 지식생산구조가 급변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가공과 저장 면에서 누구나 지식에 쉽게 접근한 수 있는 “지식정보창고”가 형성된다. 정보의 신속/대량 전달이 가능해지고 지식창조자들 간에 신속한 소통이 범세계적으로 가능하게 되어 대량의 정보 상호소통할 수 있게 된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고 신속한 검색과 복잡한 프로그램의 실행능력을 가진 정보기술에 의해, 산업사회에서 중요한 ‘어떻게 생산하느냐’와 관련된 인간의 체화된 숙련이나 생산의 다양한 노우상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감지 수단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하지만 이러한 정보의 원활한 흐름이 모두가 전장에서의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가? 아니다. 정보의 흐름을 빠르게 함으로써, 즉 전장에서 획득하는 정보의 역학을 변화시키지만 여전히 결정을 내리는 중심이 있게 된다. 무한 정보의 공유가 곧 우리에게 모든 정보에의 자유스러운 접근을 의미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아무리 정보가 무한으로 개방되어 있고 무한의 양으로 제공된다 하더라도, 시간과 접근성의 제약 속에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되어 있고 이에 따라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게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들은 언론과도 같은 역할을 하며 언론과도 같은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멘텟)의 등장으로 설명되는데 뒤에서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비밀없는 사회의 도래 - 유비쿼터스 사회의 양면성“미래는 부자를 제외하고는 프라이버시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던 과거와 비슷해질 것이다” 모든 컴퓨터와 사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네트워크의 시대를 유비쿼터스의 시대라 부른다. 위에서 살펴본 정보사회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의 누구나 편하게 정보에 접근하는 세상을 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고도로 네트워크화된 세상에서 누군가의 실수는 곧바로 범죄에 이용되고 시스템의 작은 버그는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크래킹에 의한 정보의 유출, 바이러스 유포, 각종 컴퓨터 범죄, 특히 프라이버시, 저작권의 침해는 전세계적 네트워크가 구축된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작용으로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세계가 인간의 실존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현재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말이 아닌 세계, 바로 유비쿼터스의 세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사회로의 돌이킬 수 없는 돌입을 진행 중이다.1. 권력 - 새로운 감시의 탄생푸코는 에서 새로운 시대의 일망 감시법에 대해생각 없이 성명, 주소, 전화번호까지 제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디 그뿐인가. 적립금이나 마일리지 보너스를 위해 멤버쉽 카드를 만들고, 이를 위해 자세한 신상 정보까지도 제공하는 형편이다. 개인정보 유출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감시가 수월한 세상이 정보사회를 통해 구축된다.감시,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자신에 대한 정보를 읽어낸다는 것은 개인을 위주로 사고하는 현대인에게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감시의 눈은 정보사회의 도래에 따라 푸코가 관찰하던 시대보다 훨씬 원활히, 더 넓게, 국가를 넘어 전지구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공개되는 비밀 없는 세계의 출현의 날은 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2. 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 - 유비쿼터스“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당신에게 물건을 팔려고 한다면 그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세일즈맨이 아니라면 세일즈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하짐나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느 판매원이 카메라로 당신의 얼굴을 찍고 그 사진이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의 파일에 넘어간다면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판매원은 당신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당신의 이름과 거래은행, 사는 곳 등 모두를 파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판매원은 그 사진을 다른 사람 손에 넘길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계속하여 통합되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서 정보는 모든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 정보를 소유한 자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인데 정보사회에서 윤리의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이러한 정보소유자의 정보 악용의 가능성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서 S-카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것이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와 그것이 노출되었을 때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이용 가능한 신용카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베이스는 상거래에서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에 있어 무방비 상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멘텟만을 신봉해서는 위험할 것이다.3.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개인의 문제인터넷 연결망이 개인에게 감시의 두려움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목소리를 내기 힘든, 인간 개체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사회에서 개인의 목소리를 살려줄 수 있는 방도가 되기도 한다. 인적 네트워크의 연결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 현상으로 최근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인기현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의 흐름에 있어서 중앙통제적 전달방식이 아닌 개인간?미시적 전달 체계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정보사회의 또 하나의 중심적 이슈로 부각되는 미니홈피에 대해 분석해 보기로 한다.)'자신만의 홈피'가 아주 손쉽게 생긴다는 것은 현대 인터넷 컨텐츠 산업의 눈부신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서 파생되는 놀라운 이윤창출력이 발전 원동력이겠는데, 싸이월드는 이 점을 잘 활용하였다. 시기적으로는 프리챌이 웹상을 점거해가고 있다가 (사후적으로 판단해 볼 때) 경영적 판단미스로 유료화를 감행하여 많은 유저들을 잃게 되었고, 그 이후 유료화에 반하는 많은 사람들이 평생 무료를 선언한 싸이월드로의 이전을 감행했다. 하지만 싸이월드는 보다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영악히 이용하는 형식으로 발전해갔다. 그것은 싸이월드란 공간에 인간의 삶을 초대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웹상에서 게시판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형태는 물론 있어왔지만, 미니룸, 미니홈피란 강력한 기능으로 개인의 삶을 침식해 들어온 건 싸이월드의 이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의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방식의 사진을 찍어 올린다. 디카의 보급도 일조 했다. 미니홈피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려는 욕망을 교묘히 이용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자신을 웹상에서라도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싸이월드의 욕망추동 방식에 따라 돈을 지불해야 했고, 싸이는 엄청난 자본창출을 낳는 기업으로 성장하였다.가만히 관찰을 해 .
    사회과학| 2004.09.14| 14페이지| 1,000원| 조회(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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