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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교육자의 자질과 교육의 3요소
    Ⅰ. 교육의 개념철학자들이 다루어온 정의나 지식과 같은 말은 여러 가지 상이한 용도를 가지고 있으며 소크라테스에서 무어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이런 여러 가지 용도를 공식화하려 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이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말의 용도는 하나의 정의로 포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복잡한 유사성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교육이라는 용어(활동으로서의 교육이 아닌 용어로서의 교육)의 용도 또한 명확한 정의로 포괄될 수 없는 용도가 있음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이란 말의 핵심적 어의에 부합하는 사용기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용어의 용도 중에서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을 분간하고 어떤 용어를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때 그 용도사이의 같은 점 뿐 만아니라 다른 점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어의 사용기준을 공식화하는 일은 용어의 여러 가지 용도를 함께 묶는 그 용어의 명백한 의미를 제시하려는 노력이다.-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 의미에 관한 사람들의 오류-모든 단어는 사물의 이름이 그 전형적인 지시대상과 관련하여 의미를 가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 이런 용어에 속한다. 예컨대 교육이라는 용어는 재배라는 단어와 달리 어떤 특정한 활동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교육은 교화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활동이나 과정을 꼬집어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활동이나 과정이 갖추어야 하는 기준을 명시하는 것이다.Ⅱ. 교육의 목적교육의 내재적 목적은 개인의 잠재능력의 발달이나 지력과 인격의 발달이다.지력과 인격을 개발한다는 것은 곧 가치 있는 것을 개발한다고 하는 말의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어떤 사람을 교육한다는 말의 의미이다. 따라서 교육목적은 특정한 성취 또는 정신상태를 명백히 규정함으로써 교육받는 사람 이라는 형식적인 개념에 실질적인 내용을 부여한다.이러한 결론은 목적의 개념을 잘 분석해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목적이란 말은 추진 중인 활동의 초점이 되는 것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뜻과여 무엇을 성취하고자하는가를 언제나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성취를 하기가 그다지 쉽지 않은 활동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취할 가치가 있는 것에 관하여 명확한 인식을 가지게 하고 그것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다.그리고 외재적 목표를 알고 싶을 때, 의도가 무엇인가, 그 일을 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교육자체에 관해 물을 때는 이상하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전달하는 일이며 따라서 그 질문은 마치 좋은 삶을 사는 의도를 묻는 것 같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교육에 속하는 여러 가지 세부적인 활동에 관해서는 충분히 물어 볼 수 있는 질문이다. 흔히 교육의 목적과 의도사이의 혼란은 교육적 가치를 가질 수 있고 또 통상 가지고 있는 활동에 관하여 말해야 할 내용을 교육 그 자체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Ⅲ. 교사의 정의일반적 교사 개념은 어원, 사전적 의미 등을 통해 볼 때, '교사라는 개념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는 '스승, 선생으로서의 교사 개념',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교사 개념', '교원으로서의 교사 개념'으로 나눌 수 있다.첫번째 '스승, 선생으로서의 교사 개념'은 흔히 이해되는 교사의 뜻이다. 즉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닌, 근대 학교 설립 이전의 교사 개념인 스승, 선생의 의미가 '교사'라는 말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이는 교사(敎師)라는 말의 뜻에서도 드러난다. 각 한자의 뜻을 살펴본다면 '본을 보임으로써 가르치는 어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교사라는 말에는 '사범(師範), 사표(師表), 모범(模範)'이 되는 스승이나 선생으로서의 인격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두번째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교사 개념'은 위에서 말한 것과는 달리 '가르치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이를 때 쓰는 교사라는 말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사학교라는 조직을 전제로 이해될 수 있으며, 국민교육제도 수립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학생은 학교를 통해 교육을 받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교사는 교원양성기관을 통해 제도적으로 교사로서 자격을 인정받게 되는 공교육체제하에서의 교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직업인으로서의 교사의 출현을 의미한다.이 개념은 근대적 학교교육이 일본, 서구를 통해 들어오면서 'teacher'라는 말을 선생, 교사로 번역하며 사용하면서 일반화되었다고 보는데, 이 말은 곧 교사양성기관이 출현했을 때의 개념인 'teacher'라는 말이 소개되면서 이미 '전문직업인 혹은 자격자'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teacher'라는 말의 차용어로서의 교사 개념에는 일정한 자격이 있어야 하는 전문적 직업으로서의 의미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세번째 '교원으로서의 교사 개념'이다. 교원(敎員)은 학교 기관에서 가르치는 모든 사람을 집단적으로 통칭하는 말로 교사라는 용어와 거의 혼용해서 쓰이고 있다.현재 교육법상 교원은 각 학교에서 원아, 학생을 직접 지도 교육하는 자를 가리키며, 교원에는 학교의 장이 포함됩니다. 교원은 각급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를 포함하여 교장, 교감,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강사, 유치원장, 원감 등을 포괄하여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교원은 교육법 용어로서 상용되고 있다.위 세 가지에서만 봐도 교사라는 개념은 포괄적인 개념인 걸 알 수 있다. 교직이 점차 분화되어 감에 따라 교사는 인생에 모범을 보이는 인격자라는 의미에서 점차 전문적 지식이나 기능의 교수자로서 국가 공인 기관에 의해 자격을 인정받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전문 직업인으로 의미가 변화되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교사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 안에는 스승, 선생으로서의 교사라는 의미가 남아 있다.Ⅳ. 교사의 자질{{1교사는 교육자에게 필요한 학생관과 교육에 대한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교사는 학생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대한 신념과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 교직을 생계유지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미래의 주체에 대한 교육을 미래 사회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최고의 수단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이러한 확신 또는 사명감은 평생 동안 지속해야 하는 것인 바, 때로는 자신감이 떨어지고 회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교사는 관련 인문과학 서적을 탐구하거나 동료 교육자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함으로써, 자신의 확신과 사명감을 굳게 유지하여야 한다.2교사는 학생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지녀야 한다.교사는 학생의 지적 정의적 신체적 발달에 대하여 상식이나 개인적 경험에 입각한 지식을 넘어서는 전문적 지식과 이해를 지녀야 한다. 아동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학생이 속한 사회의 특성과 변화 방향에 대한 수준 높은 식견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아동의 성장 발달을 기대하고 그것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조력하려는 의지, 즉 아동에 대한 헌신적 애정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교사는 아동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긍정적 측면과 능력을 강조하고 신장시키는 노력을 전개하게 된다. 그 결과 교사와 아동의 상호작용이 더욱 원활하게 되어 최대한의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3교사는 교육내용에 대한 이해와 교수 능력, 그리고 탐구 능력을 지녀야 한다.교사는 평소에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여야 하며, 이는 초등학교 교사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교사의 교육내용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 수준에 머무르게 되면, 그 교사는 아동들에게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내용 요소와 주변적인 내용 요소를 구분하여 제시하지 못하게 된다. 본래 강조를 두어 가르쳐야 할 개념이나 원리 등에 대해서는 피상적 제시에 그치고, 중요하지 않은 주변 활동에 지나치게 많은 교수-학습 시간을 소모한다. 또한, 교사는 교육 내용을 아동들에게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효과적인 학습을 도와주는 기법을 내면화하고 있어야 한다. 같은 교육내용이라도 아동의 특성에 따라, 교수-학습 여건에 따라 다른 교수법을 필요로 할력은 스스로의 성취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사로부터 행동의 모델을 찾는 아동들의 탐구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4교사는 적극적인 행동 의지와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교사는 대체로 매우 다양한 역할과 과다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형편에 있다.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자칫 모든 업무에 소극적이 되고 최소한의 노력만을 전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사 본연의 업무인 교재 연구와 아동 이해를 위한 연구, 교수-학습 자료 수집 등을 소홀히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교사 역할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교사들은 교육 환경의 어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교사들의 이러한 삶의 자세와 행동 양식은 아동들의 행동과 인생관에 귀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교사는 평소에 축적해 온 삶의 자세와 아동관에 일관된 행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그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5교사는 학부모와 지역사회 인사, 선후배 교사들과 효과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과 인격적 감화력을 지녀야 한다. 교사는 필요에 따라 학부모와 아동에 대한 면담을 수행한다. 때로는 다른 기관과 접촉하여 청소년 선도를 위하여 협의하고 공동 노력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교사는 공식적인 학교 조직의 일원으로서 선후배 교사들과 교재 연구, 또는 학교 환경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협의를 하게 된다. 교사는 이러한 다양한 상호작용의 상황에서 설득력 있는 의사소통을 전개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짧은 시간 내에 최선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개인적 경쟁이 심화되고 물질숭배 의식이 높아질수록, 아동들과 더불어 순수한 삶을 살며 자신을 갈고 닦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 교사들에 대한 기대와 존경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교사는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교육자로서의 품위를 견지해야 한다.Ⅴ. 교육의 3요소1교육이 이루어지기 위.
    교육학| 2005.11.12| 7페이지| 1,000원| 조회(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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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상]민족주의
    Ⅰ. 머리말Ⅱ.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Ⅲ. 민족주의의 원초성과 근대성Ⅳ. 민족주의의 보수성과 진보성Ⅴ. 맺음말 - 민족주의의 현재참고문헌Ⅰ. 머리말사회적 삶의 기본 단위로서 다른 어떤 단위보다 앞서 민족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정치이념이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상인 민족주의는 인류역사의 기원과 더불어 존속해온 민족이란 개념으로부터 파생되어지는데 민족주의를 알기에 앞서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연구가 되어야한다. 민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는 민족이 초역사적 상수인가 아니면 특정시기에 출현한 역사적 변수인가, 초역사적 상수라면 민족은 영구불변의 인간본성인 군집성의 원초적 형태로부터 진화한 것, 혹은 역사적 변수라면 민족은 역사의 어떠한 조건들 속에서 형성되며 또 그것이 수행하는 역사적 역할은 무엇인가. 즉 민족은 보편적 자연현상인가 아니면 특수한 역사현상인가 등의 의문부터 탐구되어야한다. 이러한 의문이 해결되어지지 못한 채 이데올로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차원의 복잡한 변수들이 개입하며 민족주의이론은 발전하여왔는데 이처럼 민족주의는 혼돈스러운 개념이며 자기모순을 지닌 개념인 것이다.Ⅱ.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민족개념은 민족주의 연구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결론인 것이다. 민족개념에 대한 논의는 크게 민족의 영속적 성격을 강조하는 원초론(primordialism) 과 민족을 근대화의 부산물 간주하는 도구론(instrumentalism)"이 있다. 전자는 인종적 공동체의 영속성에 주목하면서 민족주의가 종족, 조상, 종교, 언어, 영토라는 원초적 유대에 기초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후자는 민족주의란 결속에서 발현한 이데올로기라고 간주하면서 그 역사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국가민족 에서 출발, 민족공동체에 기꺼이 자신을 귀속시키고자 하는 민족성원의 주관적 의지가 민족을 만들어낸다고 믿는 주관적 민족이론과 문화민족 언어, 공통의 문화유산, 종겨, 관습 등과 같은 객관적 기준을 민족의 기초로서 강조하는 객관주의적 민족이론이라는 두 연루논쟁을 야기 시켰다. 주관주의적 민족이론사회변혁이나 정치적 행위의 지침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민족주의 이론의 문제점들 때문에 민족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조건과 맞물려 어떠한 기능을 하였으며 또 역사 조건의 변화에 따라 그것이 어떻게 그 성격과 역할을 변모시켜왔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Ⅲ. 민족주의의 원초성과 근대성민족의 구성양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토, 종교, 언어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총합에 의해서 규정되어지는데 이들 중 영토, 문화, 언어, 종교 등은 영속적인 것이며, 정치, 경제 등은 역사적 변화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역사적인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 구성양식 중에 민족구성의 영속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원초론 을 낳았고 민족형성의 역사적 측면에 대한 강조가 도구론 을 낳았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양면성은 어의의 변천을 의미론적으로 추적하는 개념사적 접근방식과 사회적 조직양식의 변화를 구조 속에서 설명하는 구조사적 접근방식의 결합을 통해서 알 수 있다.민족 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Demos 와 Ethnoi , 라틴어의 Populus, Civitas, Gens, Natio 등으로 소급된다. 오늘날 포괄적인 의미에서 민족 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Ethnos, Ethnie, People, Nation 등은 이상의 고대어로부터 파생된 것 이다. 고대세계에서 이런 용어들은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정치집단의 크기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Demos, Populus, Gens, Natio 등은 고대세계의 다양한 공동체를 표상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때때로 용법이나 의미를 달리하였는데 Demos, Populus, Civitas 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면 Ethnoi, Gens, Natio 는 외부의 공동체나 적대적 부족국가를 뜻하였다. 이 용어들은 고대사회의 배타적인 집단적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어원이 되는 고대어들이 지녔던 이러한 다중적 의미망은 그 기원에서부터 민족개념이 원초성 과 역사성 을 동시에 지녔다는 것을 말해준다. 에트노 집단적 연대감이 형성되면서 고향 이라는 뜻의 파트리아(patria)가 민족적 집단에 대한 담론체계의 중심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그러나 14세기에 이르러 파트리아의 외연이 왕조국가로 확산되는 즉, 집단적 충성의 대상이 교회나 가족 또는 지역공동체로부터 국가로 옮겨가는 양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적 감정의 차원에 머물고 이데올로기의 차원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집단적 유대감이 지역주의나 왕조적 충성심의 차원을 벗어나 적극적 민족의식으로, 또 자연적 감정의 발로인 애국주의가 이데올로기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 와 그들 을 가르는 봉건적 신분제를 철폐하고 우리 라는 연대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새로운 질서 위에 공동체를 재편해야한다는 것과 둘째, 민족의 수직적 통합을 정당화시켜주는 이데올로기가 요구되어야한다는 두 가지 전제를 충족시켜야 한다. 민족주의의 존재조건이기도 한 이 두 가지 전제를 충족시켜준 것은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근대 민족주의는 바로 이러한 역사상황의 산물이다.근대 민족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해 준 것은 구체제의 모순이 첨예였던 1750년대에 등장한 신고전주의 였다. 그것은 이상적 공동체로서 스파르타와 로마의 공민적 공화정 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교육받은 공중 , 즉 부르주아의 정치철학 이였다. 그들은 이상적 공동체의 세 요소로써 공동의지에 기초한 공동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나누는 시민집단, 스토아적 미덕으로 무장한 시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적극적인 헌신을 꼽았다. 즉, 공동체에 규범 속에 용해된 개인적 자유라는 개념의 곡예를 통해 이들은 집단성원들의 헌신적 애국주의와 개체적 자유를 동시에 껴안았던 것이다. 이것은 성원들이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집단적 주권의 주체인 민족을 형성하였다는 것을 내포한다. 이렇게 볼 때, 낭만주의를 민족주의의 철학적 기반으로 간주하기보다 고대의 특권적이고 제한된 시민공동체를 평등주의적이고 자유로운 민족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계몽사상의 이념적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대중을 정치적 행동으로 유도한 것은 계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쉽게 접목되는 이차적 이데올로기 라고 규정되는 민족주의의 기본성격은 이미 프랑스혁명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고대의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프랑스 대혁명기의 근대 민족에 이르기까지 민족 공동체의 발전과정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점은 첫째, 민족의 구성양식은 영토, 언어, 종교, 문화 등 원초적인 요소와 사회구조, 정치, 경제적 관계 등 역사적인 요소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역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민족의 구성양식은 공동체의 사회적 존재형태가 진화해 온 길을 따라 같이 변화해 왔다. 즉, 민족의 구성양식은 결국 그 영속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변화에 민감하였던 것이다. 셋째, 객관적 동질성에 근거한 집단적 충성심이라는 자연감정인 애국주의는 근대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와 구분되어야 한다. 민족주의의 주체는 정치적으로 의식화 된 민족공동체이고 객관적 민족 집단의 잠재력은 화학적 결합을 통해서만 현실화 될 수 있다. 즉, 민족주의는 화학적 결합체로 발전하는데 필수불가결의 이념적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민족의 화학적 결합을 가로막는 공동체 내부의 수직적 상호관계를 수평적 평등관계로 대체하고 대중의 정치해방을 약속하는 이데올로기여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족주의의 주로 담론이 신고전주의의 공화사상과 인민주권설이였던 것이 이해되어진다. 또한, 민족공동체에 대한 강조를 민족주의의 새로운 담론으로 요구하였는데 이에 민족주의의 전개는 보수와 진보의 양면성을 띠게 되었다.Ⅳ. 민족주의의 보수성과 진보성프랑스 혁명의 지적유산인 민족주의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을 통해 전 유럽으로 확산 되었으나 중동부 유럽에서는 피히테(Johann G. Fichte), 아른트(Ernst M. Arndt)등의 낭만주의가 새로운 정신질서를 지배했다.독일에서 시작된 낭만주의적 민족이론은 러시아의 슬라브주의자들에 의해 절정에 올랐는데 이는 그리스 정교나 슬라브적인 공동체 생활의 원리로 되돌아가야만 진정한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정서가 지배적인 민족주의는 독일을 비롯한 동유럽의 사회적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발전의 프로이센적 길 로 요약된다. 여기서 프로이센적 길 의 특징은 농업혁명의 부재와 봉건유제의 완강한 존속, 자본주의 발전의 지체와 그로 인한 부르주아의 비 혁명성 등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동유럽의 민족운동은 애초부터 부르주아가 아닌 봉건귀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계몽사상은 동유럽의 지식인에게 정신적 문화영역에서 의식을 각성시키는 계기였는데 이러한 자각은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의 토대위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이는 봉건사회의 폐쇄적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민족적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진일보된 의식이었으나 민족에 대한 이들의 담후에서는 프랑스의 부르주아가 제시한 정치해방이나 사회해방의 사상이 전적으로 결여된 것이다.이들의 민족의식은 봉건 귀족의 계급적 배타주의를 깔고 있어 봉건귀족만을 민족의 성원으로 인정하려는 귀족민족 이었다. 이러한 계급적 배타주의에서는 민족성원을 아우르는 수직적 민족통합의 이념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세 차례 폴란드 귀족이 주도한 낭만주의적 봉기나 1848년 민족의 봄 을 맞고자 했던 슬라브귀족의 민족봉기가 실패한 이유와 같다.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에게 사회해방의 메시지가 결여된 귀족들의 민족운동은 농노제적 과거로 복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농민들은 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는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성과를 수용하여 민족개념을 민주화하고 낭만주의적 민족주의를 민주주의적 해방으로 승화시킨 1848년 마샤르 귀족의 운동과는 대조적인 것이다.동유럽 민주주의의 보수적 경향은 서유럽의 합리정신에 철저했던 19세기 후반 동유럽의 부르주아에게서도 발견되는데 이는 콩트(August Comte)의 실증주의, 다윈(Charles Darwin)과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진화론적 진보관, 뷔흐너(Karl Buchner)의 과학적물질주의 등을 사상적 기반으로 다.
    인문/어학| 2005.11.12| 10페이지| 1,500원| 조회(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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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생활교육의 중요성 평가D별로예요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종전의 주입식 교육은 그 성과를 얻기 힘든 것이 되었고, 그에 따라 일상생활에 활용 가능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절실해지게 되였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된 제 7차 교육과정에서는 “21세기 정보화 사회를 맞이하여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아래 실제 생활 속 활용 가능한 생활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제 7차 교육과정에서는 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종전 제 6차 교육과정의 이론을 주입식으로 가르치던 방식과 달리 학생들의 실생활적 경험과 교육내용을 접목시킬 수 있는 탐구학습이라는 방법을 도입시켰고, 각 과목마다 활동학습영역이 차지하는 시간을 대폭 늘려 본 수업내용을 학습자로 하여금 실생활 속에서 실제 활용하기 용이하게 내면화 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교과서의 내용 또한 실제 생활에서 자주 접해볼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하였다. 이처럼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시대적 필요성과 더불어 생활교육을 강조하며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활교육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생활교육이란 무엇인지 정확한 개념, 생활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여기서 살펴보고자한다.생활교육이라 함은 학습자를 주체적 생활자로 인정하고 학습자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 ? 기능 ? 태도 등을 습득 ? 형성시키려는 교육을 말하는데, “생활에 의한, 생활을 위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교육을 실생활에서 유리된 관념적인 지식의 주입이라 생각한 권위주의 ? 형식주의 ? 주입식 교육에 대응되는 것으로 JJ. 루소, JH. 페스탈로치, J. 듀이 등에 의하여 실천적으로 발전되고 이론화되어 19세기 말엽부터 생활학교(Lebensschule) · 활동학교 · 노작학교(Arbeitsschule)의 이름으로 각국에 확대되었다. 이들 학교는 아동의 흥미나 요구를 무시하고 고답적인 대량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경향에 대항하여 아동중심주의 운동 또는 교육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생활교육을 구체화시켰다. 생활교육의 사상이나 교육실천의 형태는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동일할 수는 없지만, 장래 생활의 준비를 위한 준비교육만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아동의 신체적 성장에 따른 사고의 발전에 의거한 교육내용 편성을 중시하여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밀접하게 관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러한 생활교육은 지식습득을 중시하던 과거의 교육과정에서는 지식을 중시한 나머지 등한시 되었으나, 현재 정보의 흐름에 부합하는 실용적인 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다시 부각되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종래의 교육은 지식의 주입이라는 주입식 교육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교육과 실제가 분리되어 교육이 실제적으로 곧바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닌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따로 습득해야 하는 문제점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교육은 시대적으로 뒤쳐진 후진성을 보이며 사회의 요구에 부흥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학교교육의 문제들은 사교육이라든지 다른 교육적 문제점들을 야기 시켰고, 이 문제들 속에 태어난 것이 이번 제 7차 교육과정이다. 7차 교육과정은 종전의 교육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이는데 우선, 학생의 자발적 탐구학습을 통해 실제 경험을 연상하게 하며 교육적 이론을 유출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써 따로 실용적 교육이 필요 없게 하였던 것이다. 또한 내용도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하였다. 이처럼 제 7차 교육과정에서는 생활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활교육은 어떤 점에서 중요한 것인가?생활교육은 우선, 학습자의 경험을 통해 교육을 더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실제와 동떨어진 이론만을 주고 암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연상하게 하면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에 학습자는 보다 쉽게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실제 상황에서 이를 좀 더 빠르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또한 그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창의적 능력까지도 학습할 수 있게 된다. 즉, 생활교육은 하나을 배워 열을 깨우칠 수 있는 교육인 것이다.
    교육학| 2005.11.12| 3페이지| 1,000원| 조회(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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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대 문학사]60년대 문학사와 시인 박재삼 시 연구
    Ⅰ. 머리말 - - - 2Ⅱ. 60년대 문학의 양상 - - - 21. 시 - - - 2(1) 순수, 참여의 논쟁 - - - 21참여시 - - - 22순수시 - - - 32.소설 - - - 31특징 - - - 32작품경향 - - - 3Ⅲ. 박재삼 시 연구 - - - 41. 작가의 생애 - - - 4- 박재삼의 시세계 - - - 4- 박재삼의 시세계와 자연(自然) - - - 52. 모성 이미지 - - - 53. 자연과 인간의 조화 - - - 7Ⅳ. 맺음말 - - - 9참고문헌Ⅰ. 머리말김소월, 서정주로 이어지는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불리는 박재삼 시인은 전통적 가락에 향토적 서정과 서민생활의 고단함을 잘 표현해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에 시달렸으며,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끊임없이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창작활동에 전념하였다. 또한 그는 폐허 위에서 '한(恨)'이라는 재래적인 민족 정서와 어조를 끈질기게 환기시킨 시인 이였다.본고는 60년대 문학의 양상을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60년대 시인인 박재삼의 시적 경향과 시작품을 살펴보기로 하자.Ⅱ. 60년대 문학의 양상사회의 부조리와 비인간화 현상에 대한 비판과 저항 의식을 목적으로 하는 현실 참여적 성격의 문학이 강력하게 대두되었고, 6.25 전쟁의 상흔과 인간의 비참한 삶, 민족분단이라는 비극을 사실적으로 증언, 육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사실주의 경향의 문학이 등장하여 역사와 사회에 대한 주지적 인식의 바탕에서 현실을 개관적으로 묘사하였다. 참여 문학의 강력한 세력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서정주의와 독특한 문학적 기교를 추구하여 문학의 예술성을 높였고, 탈춤, 판소리, 무가, 민요 등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그것을 작품에 원용하였다.1. 시(1) 순수, 참여의 논쟁1950년대가 혼란기이면서도 시의 세계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 단계였다면, 이어진 1960년대는 순수, 참여 문학의 논쟁으로 문단이 가열되었던 시기이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순수, 참여 시비에도 불로 변형, 심화된 시기였다. 이러한 조건은 참여시 또는 민중시의 발생론적 조건이 되었다. 여기에 기존의 전통 서정시와 순수시와의 충돌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참여 쪽은 순수가 고통으로 가득 찬 현실과 민중의 삶을 외면하며 건전한 오락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순수와의 결별을 선언한다.흔히 참여시로 구분 짓는 일련의 이 움직임은 김수영, 신동엽, 이성부, 김지하, 조태일 등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2순수시1960년대 참여시의 강세 속에서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의 순수 서정시풍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가 언어의 미적 구조임을 강조한 이 계열의 시인들도 내면의 시정신이 시의 본류임을 인식하고 서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순수 쪽은 순수 문학과 현실 외면은 결코 동의어가 될 수 없으며 참여 문학론자들은 역사 진보와 사회 발전을 믿는 낙관론자일 뿐이라고 반박하였다.2.소설1특징지식인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세련된 감수성이 나타나고, 농촌과 농민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었다. 또 냉전 의식에서 벗어나 분단의 현실에 대한 심화된 인식이 형성되고, 구세대 작가들에 의해 역사에 대한 거시적 안목이 형성되었다.2작품경향ㄱ전쟁의 상흔과 민족의 비극조명: 6.25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전쟁의 비극성을 증언함으로써, 비참한 인간의 삶과 민족의 비극을 조명하였다.ㄴ현실 비판 의식: 4.19 혁명과 5.16군사 쿠데타를 통해 드러난 사회 모순과 부조리한 현실, 서민층의 비참한 삶의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고발하였다.ㄷ근대사를 다룬 역사 소설: 1930년대의 야시적, 복고적 특성이 많았던 역사 소설에서 탈피하여, 진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만족의 근대사를 추적하였다.ㄹ내성적 관찰: 내성적 기교주의 경향, 개인주의적 내성과 새로운 감성의 세계를 섬세한 언어 기교로 그렸다.ㅁ정치적 모순비판: 4.19 혁명의 역사적 개안과 5.16군사 쿠데타에서 오는 좌절로 인해 남북 분단 및 어두운 정치 내면 등 정치적인 문제를 하였다.박재삼은 1936년 어머니의 고향인 삼천포로 이사를 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에 대해서 주로 바닷가에서 미역을 얻어먹고,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던 것 같다고 하였다. 이러한 삼천포 바닷가에 대한 기억은 애틋한 향수로 훗날까지 그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으로 들어가 일을 하였는데, 이곳에서 시조시인 김상옥을 만나 시를 쓸 결심을 하게 되었다.박재삼은 1948년 교내신문에 「강아지」라는 동요와 「海印寺」라는 시조를 발표하였고, 제 1회 영남 예술제의 한글시 백일장 에서 시조「촉석루」로 차상에 입상하였다. 그 후 1953년 처음으로 『문예』 11월호에 모윤숙의 추천으로 시조 「江물에서」를 발표하였으며, 1955년 『현대문학』6월호에 유치환의 추천으로 시조「섭리」를, 11월호에 서정주의 추천으로 「정적」을 발표하였다. 1955년 25세의 나이로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며, 그 해 「춘향이 마음」으로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다.박재삼은 1955 1964년 월간 현대문학사 기자를 거쳐 1965 1968년 대한일보 기자, 1969 1972년 삼성출판사 편집부장 등을 지냈다. 1980년 위궤양으로 입원한 상태에서도 그의 문학활동을 끊이지 않았으며, 병마와 싸우는 시인 이었던 박재삼은 1995년 가을, 백일장 심사 도중 신부전증으로 별세하였다.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춘향이 마음》 《천년의 바람》 《뜨거운 달》, 수필집 《아름다운 삶의 무늬》 등이 있다.- 박재삼의 시세계박재삼은 기소월, 서정주로 이어진 전통 시의 맥을 잇는 시인이다. 그이 시에는 우리 고유의 정서인 한(恨)이 질펀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처음에 그가 썼던 작품들이 시조였으나 후에 시로 전환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이러한 까닭에 그의 작품에는 자연히 고전적인 정서와 정한(情恨)이 짙게 배어 있다. 또한 박재삼 언어의 소박한 질감이나 낡은 상태 그대로의 언어 사용을 통한 눈물겨움의 정서는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전 컸던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가난하면서도 가람 시조집 , 초적 등을 빌려 베끼고, 이를 외우면서 시 창작의 꿈을 키웠던 문학적 체험과도 연결된다. 그래서 초기 시는 괴로워 우는 그와 그의 가족을 한국인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바꿔 놓고 그 한(恨)을 객관화하고 있다. 한을 기초로 한 보편적인 한국인의 심정은 그의 시에서는 결국 자연, 대부분의 경우 초기에는 바다와 후기에는 햇볕과 합일한다. 노장의 허무주의와 불가의 윤회설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그의 자연과 인간의 화해라는 주제는 그가 죽음을 경험한 이후 더욱 심화된다.2. 모성 이미지박재삼 시에 나오는 어머니 는 초인적인물이 아닌 끈끈한 땀 냄새와 체온이 배어있는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묘사로만 끝나지 않고 작가의 유년 시절, 더 나아가서는 근원적인 모성애를 표현하고 있다.새벽 서릿길을 밟으며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먼지만 뿌옇게 쌓여있는데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 것들이방안에서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보는 이 없는 것,알아주는 이 없는 것,이마위에 이고 온별빛을 풀어놓는다.소매에 묻히고 온달빛을 털어놓는다.「어떤 路」이 시에는 자식들을 위하여 고생스러운 하루를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소박하게 나타나있다. 시대상황도, 이념의 대립도 찾아볼 수 없지만 가난함 속에서도 생명력이 넘쳤던 한국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서린 새벽에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장터로 나가는 어머니, 떼어 온 물건을 다 팔 때까지 밤이 늦어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참으로 따뜻하다.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 것 에게로 돌아오는 모습은 원형적인 모성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오탁번, 모성이미지와 화합의 시정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 연구소,1999마지막 연에서는 화자가 바라본 현실 대응 방법의 순수함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있다. 그는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어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오명 가명신새벽이나 달빛에 보는 것을,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추억(追憶)에서」「추억(追憶)에서」의 화자는 어머니의 모습을 중심으로 하여 추억의 세계를 그려보고 있다. 1연에서는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을 나가던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魚物)전의 모습이 제시된다. 해가 진 좌판에 남아있는 고기의 눈깔들은 은전(銀錢)으로 비유했으며, 고기를 남김없이 다 팔아야만 이윤을 얼마라도 남길 수 있는 어머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수지타산의 슬픔을 또한 은전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2연의 울 엄매 는 우리엄마라는 표면적인 뜻을 지니면서도 엄매 라고 부르면서 울고 싶은 화자의 어린 심정을 반영하고 있다. 한(恨)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러한 심정에서 작가의 가난했던 유년의 그림자를 포착할 수 있다. 3연에서도 눈깔 , 은전 등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별밭 이 나온다. 그리 멀리 있는 별밭 은 작은 골방으로 연결된다. 손 시리게 떨어야하는 작은 골방은 아이들에게는 하늘의 별빛이며 생선 냄새가 배어있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이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에서는 4연에 등장하는 진주 남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라고 울음 섞인 영탄으로 받음으로서 옹기전의 옹기들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밤이슬을 맞아 글썽이고 달빛을 따라 반짝이는 옹기의 모습이 때로는 눈물 훔치며 언덕을 올라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과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3. 자연과 인간의 조화자연과의 화합과 일치를 꾀하는 것은 동양적 사고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지향하는 시정신은 곧바로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인생관으로되는가
    인문/어학| 2005.11.12| 12페이지| 1,000원| 조회(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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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교육론]문학교육의 변화와 새로운 시도
    현대 21세기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빠른 정보의 흐름 속에 종이에 활자로 적힌 한권의 문학작품은 뒤로 물러나고 점차 각종 매체를 통한 정보들이 중시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의 위축을 불러왔다. 하지만 문학은 인간의 정신과 논리를 함께 충족시키며 인간의 내면의 내밀한 사색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이러한 현상은 아주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 속에 많은 논의점들을 배출하고 있다.인류 정신문화의 최후의 보류이자 복잡하고 빠른 사회의 흐름 속에 정신적 휴식처이며 탈출의 통로라고 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존재가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그 의미를 통해 미래의 문학의 존재방향을 전망해보기로 한다.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사회에서 문학은 여러모로 필요한 존재이며 여러 의미를 갖는데 그러한 현대사회에서의 문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자.첫째, 문학교육은 전인교육을 지향하면서 지속되어진다.) 전인교육의 이념은 개인과 사회의 원활한 관계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며 현명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지향하는 것이다. 이는 문학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전인적인 인간상은 감성과 논리가 맞물리고 개인과 사회가 융합되게 통합된 그러한 인간상이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깨달음”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문학을 매개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은 소통의 통로가 간접적이기 때문에 현실원칙에서 벗어나 초월을 시도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 역할을 한다는 점이 전인교육의 가능성으로 부각된다. 이는 삶의 대리체험과 공감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논지이기는 하지만 문학이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다룬다는 점에서 교육의 최종목표로 상정하는 전인성과 상통한다.둘째, 사회교육으로서 문학교육의 중요성이다.) 모든 교육은 자기교육을 지향한다. 자기교육은 제도를 통해 공부한 내용과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고 더욱 심도를 깊게 해 나가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투여하면서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문학교육의 최종 양태는 자기교육이라 할 수 있는데, 평생교육 또는 사회교육으로서의 문학교육이 문학교육의 최종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영역의 지식이나 기술은 그 영역의 발달로 인해 일과적인 속성을 지니는 것이지만, 문학은 학습 자체가 체험으로 축적되는 것이고 그 효과가 거의 영속적이다. 결국은 개인들이 주체로서 문학현상에 참여하는 가운데 문학적인 인식을 넓히는 것은 사회교육으로서의 문학교육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개인들의 문식성의 증대로 말미암아 문학의 창작주체로 문학현상에 참여하여 문학적 문화의 주체로서 자아를 실현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문학교육은 사회교육의 한 양상으로 자기정립을 해 나갈 것이다.셋째, 기술문명의 인간화라는 과제와 문학교육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정보화 사회로 지칭되는 현대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데 따라 인류문명의 미래가 달려있다. 문학은 인문학의 한 분야로 인류의 운명과 장래를 반성적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문학이 어느 시대의 문제를 전적으로 담당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당대의 문제를 점검하고 그의 해결이나 극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함으로써 인류문학의 계승에 문학이 수행하는 역할은 막대하다. 문학은 자기시대의 삶과 문화에 대한 반성의 장치로서 우리 삶을 비익(裨益)되게 한다. 현대 세계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기술문명의 팽배로 인한 인간과 문화의 비인간화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장치로서 문학은 자기위치를 되찾게 될 것이다. 물론 지배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당대의 문화를 왜곡하는 문학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러면서도 문학은 자기반성을 부단히 지속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문학의 이러한 자기반성적 속성이 문학의 자멸을 방지해 줌은 물론 현대문명의 비인간성을 반성하는 촉매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문학의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문학 자체의 이러한 철학성을 문학교육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넷째, 문학외적 환경의 하나인 매체의 변화와 문학교육의 방향이 맞물려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다.) 문학의 존재 양태는 매체의 발달과 함께 변화를 겪어 왔다. 구두 언어를 중심으로 한 문학이 책의 발명으로 인해 문자언어를 중심으로 한 문학으로 변화되었다. 영상매체의 보급과 함께 문학은 영화나 텔레비전극 등으로 양상을 달리하여 왔다. 이들은 상호영양을 행사하는 가운데 기법의 발달과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문학은 이른바 복제시대(複製時代)의 예술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학교육은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는가 하는 점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원작의 의미가 상실된 시대에서는 작품을 읽지 않아도 다른 매체를 통해 내용을 접한 결과, 작품을 읽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착각은 문학의 형상성과 구체성이라는 점에서 문학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빚게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평문활동의 활성화는 정서적인 담론인 문학작품을 논리적 담론으로 환원하여 읽게 함으로써 문학적 체험을 간접화시킨다. 문학의 구체성과 직접성을 살리는 문학교육이 모색되어야 문학외적 환경의 변화를 정당하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요즘 학자들 간에 논의의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는 매체론과 연관되어 있다.또한 문학교육과 문학이론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문학교육은 문학연구의 결과나 평론의 결과를 전달하고 보급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에 대한 교육적 시각이 문학연구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아야 하고 그러한 연구의 결과가 문학연구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되돌려 주어야 한다. 문학교육은 비평 활동의 한 유형이며 문학연구의 구체적인 실천형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학교육의 논리가 문학교육을 방향 잡아가게 하면서 문학연구 자체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 것이다. 이는 문학교육과 문학이론 또는 문학연구의 상호작용을 생각하여 고려한 학문체계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교육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연구와 교육을 분리시킬 것이 아니라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자신이 연구한 바를 통해 교수론을 세우고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을 실천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렇게 볼 때, 연구와 교육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현상으로 봄으로써 교육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서로 맞물려 있는 문학현상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제도 차원의 교육과정에 다시 피드백하여 재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문학교육은 제도화와 탈 제도화의 역동성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인문/어학| 2005.11.12| 5페이지| 1,000원| 조회(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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