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0. 목차01 pageⅠ. 들어가며02 pageⅡ. 유비쿼터스 기술이란?02 pageⅢ. 유비쿼터스의 특징.04 page1) 네트워크 접속.04 page2)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인식조차 없다.05 page3) 상황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가 변화한다.05 pageⅣ. 유비쿼터스 실용사례.06 pageⅤ. 유비쿼터스 기술에 대한 세계의 인지도.10 pageⅥ. 우리나라 유비쿼터스의 발전방향.11 pageⅦ. 유비쿼터스의 문제점.12 page1) 물질적인 문제점.12 page2) 정신적인 문제점.13 pageⅧ. 마치며.14 page참고문헌15 pageⅠ. 들어가며.21세기(世紀)에 들어선지 어느덧 6년이 지난 지금 2006도 어느덧 그 해가 다 지나가고 새로운 해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20세기부터 시작된 정보통신(情報通信) 기술의 발전(發展)은 과거에 과연 그 누가 현재 이렇게까지 발전했으리라고 생각했으리만큼 빠른 속도와 거대한 규모(規模)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발전된 정보통신 기술은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간단한 우편 및 전화에서부터 시작되어 팩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E-mail, 그리고 최근에 개발(開發)되고 있는 화상통화까지. 또는 그 이상의 기술이 앞으로의 우리 생활에 유용(有用)하고 편리하게 다가 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의 변화(變化)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世界)에서 가장 많은 국민대비 컴퓨터 보유량(保有量)과 초고속 인터넷 사용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젠 전국 곳곳에서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곳은 산간 ? 도서지역(島嶼地域)을 제외하고는 찾기 힘들어지는 실정이다. 이렇듯 튼튼한 우리나라의 IT(Information Technology) 인프라를 생각해 볼 때,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시켜 주요 소득(所得) 원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어떤 것일까. 그 기술은 바로 유비쿼터스(Ubiquitous) 기술이라고 생각한다.Ⅱ. 유비쿼터스 기술이란?앞서 설명(說明)한 것과 같은질 것이다.)또한 이러한 유비쿼터스 기술이 장기간에 걸쳐 적용(適用)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기에 그 중요성(重要性)이 한층 더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인터넷, 휴대전화 등이 우리나라에 보급(補給)된 기간을 생각한다면 유비쿼터스 기술도 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 것으로 생각된다.Ⅲ. 유비쿼터스의 특징.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지금의 휴대전화처럼 자연스럽게 녹아 스며들 유비쿼터스란 기술은 과연 어느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특징에 대하여 유비쿼터스 기술의 특징을 3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1) 네트워크 접속.앞의 서론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유비쿼터스 기술의 가장 큰 특징(特徵)은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接續) 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컴퓨터이기만 하면 유비쿼터스인가?」라는 논제(論題)는 성립(成立)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여러 장소로 이동하는 사용자에게 컴퓨터가 그 사람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접속이 필수적(必須的)이기 때문이다.2)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인식조차 없다.두 번째 특징(特徵)으로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는 인식(認識)조차 없을 정도로 그것의 이용이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또한 초대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창시(創始)자인 마크 와이저는「유비쿼터스 컴퓨팅에서의 컴퓨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란 과연 어떤 것일까?이것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의 컴퓨터 시스템을 살펴보면 항상 사용자가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키보드라는 입력(入力)장치를 사용하여 컴퓨터에 전달(傳達)하고, 모니터라는 화면을 통해 그 결과를 출력(出力) 받는다. 또한 애초에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전원을 넣고 모니터를 키는 것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들 또한 이러한 것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이에 비해 마크 와이저는 유비쿼터스에서의 컴퓨터는 현재 종이와 같은 역할(役割)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수 있었다. 적용 사례 분야(分野)는 전력산업, 위치기반서비스, U-헬스케어, 스마트 타이어, 스마트 디스플레이, UFID 프로젝트, FM라디오 기반 데이터 방송, BMS 프로젝트, 홈 네트워킹, 차세대 네트워크 프로젝트, 스마트 웨어이며 각각의 적용 사례가 어떤 방식으로 유비쿼터스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는지 살펴본다.1) 전력산업.전력산업은 개인(個人) 정보단말기기의 지향적(指向的), 접속의 이동성(移動性), 컨텍스트(Context)) 지향적 개념 등의 필요성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어떤 디바이스를 가지고도 각종 전력설비나 기기 등에 탑재된 컴퓨터를 통해 가치있는 실시간 정보를 인식해야 한다. 이에 대한 적용(適用) 사업으로는 최근 전력계통에서 보호(保護) · 감시 · 미터링 · 진단 등에 가장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 IED(Intelligent Electric Device)로 유비쿼터스 환경에 가장 접근 해 있다. 고주파인식시스템(RF-ID) 기술 및 지능(知能)형 기술을 소프트웨어와 결합(結合) 하여 홈 네트워크 분야의 가전 기기, 에너지, 조명, 방범방재, PC등과 어우러진 정보통신분야와 기술간 융합(融合)을 통하여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진화되고 있다.2) 위치기반서비스(LBS).LBS(Location Based Service)는 휴대폰 속의 칩을 이용해 가입자(加入者)들의 위치를 반경 수십 센티에서 수십 미터 내에서 언제든지 확인 할 수 있도록 해주며 사용자가 원하는 각종 정보를 개인화 된 환경에서 서비스가 가능(可能)하도록 해 준다. 서비스 방식에 따라 이동통신기지국을 이용하는 방식과 위성을 활용한 GPS(Global Positioning Service)로 구분되며, 서비스 유형별로 위치추적서비스, 공공안전서비스, 위치기반정보서비스 등으로 분류된다. 최근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에서 카 내비게이션, 위치 기반 콘텐츠, 모바일 옐로 페이지 서비스 등 그 활용(活用)분야가 확대되는 추세이다.3) U-헬스케어).집안 곳곳에 심어진 각종어(制御) 할 수 있는 쉽고 편안한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를 가능하게 해 준다. 스마트 디스플레이는 사무공간의 유비쿼터스화에도 적용되어 사무실(事務室)에서 장소를 이동하며 작업을 하거나 PC를 직접 들고 다니기 곤란할 때, 프린트 할 때 등 언제 어디서나 자유로운 업무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다.6) UFID 프로젝트.건물, 문화재(文化財), 도로, 교량, 하천, 호수, 해안 등 인공 및 자연 지형지물에 부여될 전자식별자(UFID : Unique Feature Identifier)는 쉽게 말해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동일(同一)한 개념으로 지형지물 관리기관별로 관리해온 데이터베이스에 UFID를 주 검색기로 사용함으로써 국가기반시설물들을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UFID 활용체계가 구축되면 항목, 위치, 행정구역, 지도, 관리기관등 개별 식별자만으로도 원하는 종류의 각종 속성정보를 검색하고 출력할 수 있다. 또한, 개별 관리되는 데이터베이스에 동일 지형지물의 정보를 중복 입력하지 않게 되므로 정보의 일관성(一貫性)을 유지하고 정보 수집 및 입력 시 중복 투자도 막을 수 있다.7) FM 라디오기반 데이터 방송.보통 라디오방송국에서 사용하는 FM주파수에는 다른 방송국들과 혼선을 막기 위해 음성정보가 실리지 않는 여분의 주파수 대역이 존재(存在)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남은 FM주파수 대역을 이용해 초당 12Kbps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스폿(SPOT : Smart Personal Object Technology)` 이란 기술개발(技術開發)로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뉴스, 날씨, 교통, 주식 및 기타 개인정보 등의 문자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전역의 FM라디오 방송국들과 주파수 임대계약(賃貸契約)을 체결했으며 현재 전국토의 80%를 서비스 영역으로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에 쉽게 접속하는 유비쿼터스 시대를 본격 구현하고 있다.8) BMS 프로젝트.버스종합사령실(BMS : Bus Management System)은 위치측시도하더라도 콘텐츠와 전자기기(電子器機)들의 사용이 가능하며 초고속 광대역으로 통신을 할 수가 있어 그동안 꿈꿔왔던 상상 속의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을 구현 할 수 있게 하며, 이를 위해 KT는 오는 2007년을 목표로 NGN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다른 국내외 사업자들도 2010년 까지는 NGN 환경을 갖춰나갈 계획이다.11) 스마트 웨어.선진국에서는 이미 웨어러블 컴퓨터), 스마트 섬유, 스마트 패션등 다양한 형태의 스마트 웨어(Smart wear) 관련 연구들이 가시화 되고 있는데 스마트 웨어를 입으면 굳이 컴퓨터 앞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해 원하는 작업 처리가 가능한 네트워크의 중심이 된다. 스마트 웨어는 21세기에 들어 IT, NT, BT, ET 등의 기술혁신과 전 산업분야에서의 기술융합이 가져온 대표적 산물로 미래 유비쿼터스 시대의 통신 주체이자 섬유, 패션 산업지도를 한순간에 바꿀 기폭제로 다가오고 있다.Ⅴ. 유비쿼터스 기술에 대한 세계의 인지도.차세대 주요 네트워크 기술로 지목되고 현재 많은 사업 분야(分野)에서 적용 및 연구되고 있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日本)을 비롯하여 세계 많은 선진국(先進國)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다.그 좋은 예로 2004년 일본에서 발간한 정보통신백서에 의하면, 일본의 유비쿼터스 시장의 규모(規模)는 2010년 약 87조엔으로 예측(豫測)된다고 보고 있다). 또한 현재(2006년 11월 기준) 오는 20일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미래주간 2006 행사에서 둘째날에는 영국, 미국, 일본 등 유비쿼터스 통신환경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유비쿼터스 사회에 대한 전망과 정책방향을 모색하게 된다고 정보통신부에서 말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 주요 선진국이 유비쿼터스의 발전가능성과 시장에 기대를 하고 있는 점도 유비쿼터스가 앞으로 우리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이다.Ⅵ. 우리나라 유비쿼터스의 발전방향.이미.
목 차0. 목 차01 pageⅠ. 들어가며02 pageⅡ. 산업 로봇의 종류02 pageⅢ. 일본의 로봇 산업 현황03 pageⅣ. 일본의 신(新) 로봇 산업론05 pageⅤ. 미래의 로봇 산업07 page1) 엔터테인먼트 로봇07 page2) 의료 로봇08 page3) 일반 로봇08 pageⅥ. 우리나라의 로봇산업09 pageⅦ. 로봇산업의 과제11 pageⅧ. 마치며12 page참고문헌13 pageⅠ. 들어가며.현대시대의 인간들은 과학기술(科學技術)의 발전이 상당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매우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이렇듯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동차, 휴대 전화기, 컴퓨터, 인터넷, 수준높은 의료 서비스 등등. 그러나 이러한 것들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이 모든 것을 손쉽게 만들어내고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하는 로봇 기술에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부품(部品), 전화기의 조립(組立), 컴퓨터 기판의 조립, 의료 서비스에서의 로봇 이용 등 우리 생활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로봇 기술은 다른 실용기술을 뒷받침하며 편리한 생활을 만들어내고 있다.한 가지 더 재미있는 점은 일본과 한국이 각각 설정한 차세대 신 성장 동력산업(각각 7가지와 10가지)에서 일본이 로봇산업을 신 성장 동력산업으로 채택(採擇)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 뉴스에서 여러 차례 우리나라의 세계 로봇 대회 1위가 발표되었듯이 우리나라의 로봇 산업 또한 상당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의 로봇 산업은 과연 어떤 상호관계(相互關係)를 갖는지, 일본에서의 로봇에 대한 인식(認識)은 어떠하며 실생활(實生活)에 어떻게 응용(應用)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앞으로 일본이 경쟁력(競爭力)을 갖추려고 준비하고 있는지 등, 일본 로봇산업에 대해 전체적(全體的)으로 살펴본다.Ⅱ. 산업 로봇의 종류.로봇은 다른 신 성장 동력산업(유비쿼터스, 신 연료 전지 산업 등)과는 달리 이미 실제로 산업() 지침을 마련했다. 사람을 돕는 차세대 로봇의 수요(需要)가 향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가까운 미래(未來)에 도래할 로봇 사회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구상에서 마련한 것이다. 특히 중점을 둔 분야는 로봇 몸통에 부착되는 감지기의 작동(作動) 분야(分野)로써 차세대 로봇은 감지기를 통해 주변상황을 파악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구조여서 사람과의 충돌(衝突) 우려가 있는 만큼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감지기의 작동에 안전성(安全性)을 확보토록 제조업체(製造業體)에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로봇 안전실험을 설치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사고 시 상해, 손해보험(損害保險)을 적용하기 위한 관련법 정비에도 나서기로 했다.)이렇듯 일본 로봇 산업이 정부가 나서서 정리할 만큼 로봇에 대한 일본의 정신은 깨어 있다. 그렇다면 투자나 시장의 규모(規模)에서는 어떠한 특징(特徵)을 보이고 있을까.오랜 기간 경기침체(景氣沈滯)에 빠져 있던 일본의 경기가 호전세로 돌아섬에 따라 일본 국내 설비투자(設備投資) 증가 등에 힘입어 20개월 연속 성장세를 보인 가운데 2003년도 산업용 로봇의 수주액이 전년대비 33.3% 증가한 4,228억엔으로 호조를 보였다. 또한 이와 같은 성장세에 힘입어 일본 로봇 제조사들 또한 생산과 판매를 확대하는 계획을 세웠다. 예를 들어 아크 용접 로봇 부문의 대기업인 安川電機㈜는 2002년 초에 수립한 9,800대 생산 계획을 2003년 1만2,000대로 상향 조정했다. 또한 FANUC사도 2003년도 9월 말부터 전 사업에서 차지하는 로봇 부문의 판매액이 50%를 넘어서는 호조를 보임에 따라 향후 이 로봇 시장의 전망 등을 재점검하고 있으며, 이 회사는 시장의 지속적인 신장세를 자신하고 현재 풀 가동중인 생산라인을 더욱 확충해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한다는 계획이다.)이와 같이 일본 로봇 산업이 최근(2003년 이후) 30%대의 고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로봇 부품(部品) 업체들도 동(同) 시장의 상승세(上昇勢)체들이 채산성 문제 등으로 인해 자동차 등 대형시장 중심으로 로봇 기술을 개발했으나 향후에는 다양한 분야에 투입이 가능한 부품의 호환성을 기반으로 중소규모 틈새시장에서도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결국 현재(現在) 일본의 로봇 산업은 단순하게 생산(生産) 로봇에 국한(局限)된 것이 아니라 그 아래 부품(部品) 업체(業體)들까지 로봇산업의 밝은 미래(未來)를 예상하며 그 시장을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無妨)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거기에 일본사람 특유(特有)의 꼼꼼함이 더해져 문자 그대로 초정밀 로봇을 만들어 낸다면 일본의 로봇 산업 경쟁력(競爭力)은 전 세계에서 선두(先頭)를 다투는 강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Ⅳ. 일본의 신(新) 로봇 산업론.지금까지 현대시대에서의 로봇의 중요성(重要性)과 일본에서 로봇을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현실에서 어떻게 변화(變化)하고 있는지에 살펴보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점은 이미 생산설비에선 로봇이 하는 일이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로봇 산업을 신 성장 동력산업 7가지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기존에 어느 정도 현실화(現實化) 되어있는 산업을 어째서 신 성장 동력산업으로 포함시킨 것일까? 이에 있어 일본의 신(新) 로봇 산업론을 소개한다.일본로봇공업회가 발간한「Robot」誌(2003년 1월)에 게재된 최근 로봇산업에 대한 기술동향 및 향후 전망에 대한 특집기사로 소개된 신(新) 로봇 산업론은「무엇이 로봇인지 알 수 없게 된 최근의 혼돈(混沌)에서 얼마나, 어떻게 탈피(脫皮)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흥미(興味)를 추구하는 것 외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장난감 로봇을 만들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장난감 로봇 중에서도 쓸 만한 물건이 있을 지도 모르겠군.” 이라는 시각을 제공하는 목적(目的)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단순히 생산용(生産用) 로봇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分野)에서의 로봇을 발전시키한 정신적인 지주이며, 다시 말하자면 일본인의 마음 한편에 흐르는 로봇에 대한 인식이다.즉 이런 인공물(人工物)에 대한 일본인의 냉정한 고찰, 제품으로서의 경제 감각, 이것과는 다른 로봇에 대한 따뜻한 친근감, 동지의식, 축제적인 분위기, 이와 같은 다면적(多面的)인 인식과 감정이 우리의 어떤 마음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이것을 “관점”이라고 하는 단어에서 끄집어내어 본질적(本質的)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보고서에 대한 서론이 길었으나 결론의 핵심을 종합해보면 기술의 축적은 있지만 산업적 응용이 없기에 인간을 즐겁게하고 즐길 수 있는 로봇기술에 투자하자는 점, 단순 생산 로봇이 아닌 실용적인 로봇으로 발전하여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을 개발하여 일상생활에 이용하자는 점, 그리고 로봇은「하드웨어본체 + 컨텐츠」라고 하는 복합구조체일 것 과 같은 내용들을 주장하고 있다.)Ⅴ. 미래의 로봇 산업.지금까지 일본의 현재 로봇 상황과 그들이 추구하는 로봇의 활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럼 만약 그들의 발전대로 로봇산업이 발전했을 경우, 단순히 생산로봇이 아닌 그 이상의 로봇은 어떤 쪽으로 발전할 것인가?1) 엔터테인먼트 로봇.개인적인 생각을 우선 밝혀보자면 미래의 로봇 산업은 우리가 꿈꿔오던 그 생활에 함께 포함되어 있는 로봇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로봇이나 집안에서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살림 도우미와 같은 로봇, 길 안내 및 교통정리를 해 줄 수 있는 로봇, 또는 물건 배달, 물건 구입을 할 수 있는 로봇과 같은 것이 그에 해당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실제로 일본에서는 얼마 전 애완용 강아지 로봇을 만들어 선보인적 있으며 로봇 댄스 파티, 로봇 격투기 대회 등 많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들을 보여주고 있다.2) 의료 로봇.로봇의 사용은 비단 이런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로써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의료 산업에서의 로봇 이용률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이 하기 어려운 암(癌) 수술을부는 밝혔다.로봇의 보급(補給)은 더 많이 보급되면 보급될수록 그 편리함 또한 계속해서 증대(增大)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지금의 인터넷이나 휴대전화가 인간생활에 큰 편리함을 제공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Ⅵ. 우리나라의 로봇산업.앞에서는 일본의 로봇산업과 미래 일본 로봇산업이 성장해 나아갈 방향, 그리고 응용(應用) 분야(分野)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았다. 그럼 우리나라 로봇 산업의 현재 위치(位置)는 어디이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發展)해 나아갈 것인가? 그리고 투자 규모(規模)나 정부의 지원은 어떠하며 이미 로봇의 중요성(重要性)을 인식(認識)하고 정부에서 헌법(憲法)까지 마련한 일본과의 경쟁력(競爭力)은 갖출 수 있을 것인가?우리나라의 로봇 산업 기술력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 예로 위에서 나타난 격투 로봇 가제트의 경우나, 시범(示範) 서비스에 들어간 국민(國民) 로봇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뉴스에서 각종 로봇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떠올려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로봇 기술력이 크게 뒤처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국민들의 로봇에 대한 관심이나 정부의 투자 규모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실 일반 국민들 중에 로봇이 우리 생활에 곧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가지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질적(實質的)으로 로봇기술의 경쟁력(競爭力)도 선진국(先進國)에 비해(선진국을 100%라고 했을 경우) 약 80~85%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15~20%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으나 이것이 지속될 경우 그 기술격차는 3년에서 5년으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측(豫測)된다).로봇의 중요성(重要性)은 인식하고 있으나 그 연구가 소홀하여 20%정도의 격차를 가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우리나라 로봇 산업의 다른 큰 문제점(問題點)은 핵심(核心) 부품(部品)과 소재의 경우 국산화율(國産化率)이 20%에도 못 미치고었다.
0. 들어가며.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이하 모차르트), 전 세계 어느 곳에 태어나더라도 살면서 이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서양 고전음악(古典音樂)의 대가로서 짧은 생애도 불구하고 불후(不朽)의 명작(名作)들을 남기고 간 모차르트. 그의 음악성 출중함(出衆)은 더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그러나 음악을 전공할 만큼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않는 일반 사람에게 모차르트는 그냥 「서양의 위대한 작곡가」정도일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별반 다를 것 없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그 격동(激動)의 시대를 읽어보면서, 책의 지은이가 왜 혁명(革命)의 서곡(序曲)이란 부제를 붙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만큼 모차르트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과 함께 이해하면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Ⅰ. 시대와 정세.1. 국제적 정세.모차르트는 1756년 現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잘츠부르크는 그 당시 정치, 경제 체제였던 봉건주의(封建主義)의 대표적 도시였다. 당시 오스트리아에 세워져 있던 나라는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하는 신성로마제국으로, 봉건주의가 팽배한 주요 국가 중 하나였으나 모차르트가 태어난 그 시대의 봉건주의는 조금씩 그 변화(變化)를 맞이하고 있었다.그 변화는 바로 귀족과 평민의 중간 계층인 부르주아의 등장이었다. 부르주아는 평민 중 의사, 변호사 등 고급 직종에서 많은 돈을 모은 평민으로, 르네상스 예술을 촉발시키기도 한 계층이다. 돈 많고 영향력 있는 부르주아들은 점차 지배층에 조금씩 침투(浸透)되었으며 부르주아의 관료 체제 차지는 봉건주의의 퇴보(退步)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결국 재구조화된 봉건적 정치 질서에서 부르주아와 타협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포용하는 절대주의(絶對主義) 국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절대주의 국가가 두르러지게 나타난 곳이 바로「태양왕 루이 14세」가 있던 프랑스를 필두(筆頭)로 한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제국 등이었다. 반면에 네덜란드, 영국을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혁명(革命)의 시대는 한층 더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이러한 부르주아의 압박은 계몽주의(啓蒙主義)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8세기 사상가(思想家)들은 사회, 정치, 문화의 각종 문제들에 대한 이성과 과학의 원리를 적용하려고 하였다. 디드로, 달랑베르, 볼테르, 몽테스키외, 장 자크 루소 등 수 많은 사상가들이 활동하였고, 탄압(彈壓)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결국 부르주아의 영향력 증대를 의미하고 있었고 결국 고위층은 부르주아 세력을 끌어들여 사회를 재조직(再組織)함으로써 계몽적 절대주의가 실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 도중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개혁 기도와 정책 포기, 반동으로의 회귀하는 과정은 모차르트의 생애를 구성하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된다.2. 오스트리아 정세.요제프 2세에 의한 오스트리아 혁명의 주요 목표는 국가의 세입 증대와 통일성(統一性) 확보였다.) 제국 통일성에 기여하여 가톨릭교회와 수도원의 권한을 축소, 국가에 종속시키고 프로테스탄트와 비 가톨릭교에 대한 차별을 철폐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어를 국가 공용어(公用語)로 승격시켰다. 독일어 후원은 연극과 오페라에 이어지며 1776년에 빈에 독일 국립극장이 설립(設立)되었다. 이러한 독일어 승격은 모차르트에게도 영향을 주고 모차르트의 독일어 오페라「후궁으로부터의 탈출」과「마술 피리」는 독일어로 쓰인 최초의 주요 오페라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요제프 2세는 국가수입을 최고 주요정책으로 삼아 농민 학살 등 다른 분야에서는 반감(反感)을 일으키고 있었으나 무서운 속도의 개혁(改革)을 통해 더욱 급진적인 문화적, 지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개혁 정책을 지지해 줄 계몽적 부르주아 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急進的) 개혁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변화를 맞이하니, 바로 1789년 프랑스에서 일어난「프랑스 대혁명」이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지배층은 공포에 떨었고 누구보다 혁명을 두려워한 사람은 바로 급진한 개혁을 통해 음악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주요 배경이다.3. 프리메이슨과 모차르트.지하조직 프리메이슨 - 요즘 유명한 작가 댄 브라운의「천사와 악마」,「다 빈치 코드」와 같은 소설에서도 가끔씩 언급(言及)되는 조직(組織)이다. 당시의 프리메이슨 조직은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와 그들의 의식 발전을 반영하는 운동이었다. 모차르트는 한 때 자신이 주도하는 프리메이슨 지부를 결성하려고 할 만큼 적극적인 프리메이슨 단원으로서 활동하였다. 그의 많은 음악에 프리메이슨 정신이 반영되었으며 특히 한 오페라는 프리메이슨과 깊은 관련(關聯)을 맺고 있다.문제는 프리메이슨의 사상(思想)이었다. 개혁, 진보를 내포한 프리메이슨의 사상은 사회 곳곳에서 기성 질서와 충돌(衝突)했고, 결국 가톨릭교회와 1738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프리메이슨 비난으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충돌하게 된다. 다만 당시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그 탄압이 요제프 2세에 의해 조금 덜하였는데, 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리메이슨을 탄압한 내용은 모차르트의 오페라「마술 피리」의 밤의 여왕 캐릭터로 나타나기도 했다. 프리메이슨은 개혁상태인 요제프 2세의 후원자(後援者)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가 절대주의로 돌아선 요제프 2세에 의해 후에 탄압을 받았다. 음악은(문학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이러한 개혁 사상이 모차르트의 음악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충분히 상상 할 수 있었다.4. 음악사회의 변화와 모차르트.18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서양의 음악은 종교(宗敎) 음악, 또는 궁정(弓旌)에 묶여있었다. 음악가들의 신분 또한 미천했다. 모차르트의 선배이자 동시대인인 하이든 또한 음악가로서는 성공했지만 헝가리 에스타르가지 가문의 하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점차 청중, 시장 구성에 있어 새로운 음악 세계(世界)를 가져왔고 곳곳에서 연주회(演奏會)가 열렸다. 또한 춤곡, 무도곡, 세레나데 등 새로운 음악 형태를 원했다. 이러한 청중의 수요(需要)는 모차르트의 음악 작곡다. 이 와중에 피아노가 탄생(誕生)하였고, 음의 강약(强弱)조절이 가능한 피아노에 맞춰 모차르트는 피아노를 위한 위대한 곡들을 작곡하였다. 이렇듯 음악 세계가 변함에 따라 작곡가들은 하인 신분(臣分)에서 벗어나 스스로 신분을 유지하는 부르주아적 전문 직업인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Ⅲ. 모차르트와 그의 음악.1. 모차르트.모차르트가 큰 음악가로 성장하는데 있어 어릴 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바로 그의 아버지 레오폴드였다. 물론 모차르트 스스로가 음악적 자질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걸 일깨우고 개발시켜 준 그의 아버지가 있었기에 어려서 음악의 신동(神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법학을 포기하고 음악을 선택한 레오폴드는 잘츠부르크 대성당에 봉직(奉職)하며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음악인으로써 삶을 꾸렸다. 그는 모차르트가 태어나자 모차르트와 그의 누이 나네를(Nannerl)을 직접 지도하며 유럽의 여러 궁정을 순회(巡廻)하며 공연했다. 그들은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거의 모든 주요 지배자들 앞에서 연주했는데 공식적인 기록을 보더라도 그의 재능(才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눈을 가리고 연주한다거나, 즉흥 시제에 곡을 붙이는 것과 같은 묘기 등 다양한 연주 실력을 발휘(發揮)했다.) 많은 여행을 통해 당대(當代) 다양한 음악 형식을 흡수했으며, 후기 음악을 보면 그가 이러한 종합(綜合)을 통해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창조(倉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70년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알레그리」합창곡(合唱曲)을 단 두 번 듣고 아홉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전곡(全曲)을 완벽히 옮겨 적었다는 기록은 그가 어릴 때 들은 다양한 음악을 후기에 종합한 그의 기억력을 뒷받침해 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그러나 그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고 신동이라는 의미가 퇴색(退色)해 가면서 점차 정착하여 음악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교회 악단에 임명된 그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작곡에 갑갑함이 되기는 했으나 그의 삶은 불안정(不安定)했다. 하이든처럼 하인으로 산 것도 아니고 베토벤처럼 단기간에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기성 제약들을 거부했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했다. 이러한 그의 갈망(渴望)은 그의 음악과 오페라에 반영(反映)되었다. 모차르트는 남은 생애를 작곡가, 연주자로 생계(生界)를 유지했는데 이 기간이 모차르트에게는 가장 창조적인 기간이었다. 그는 특히 탁월(卓越)한 기량을 지녔던 피아노 연주자로서 생계를 꾸려갔는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훌륭한 피아노 협주곡들을 썼다.그는 다른 작곡가들이 그렇듯 의뢰(依賴)받아 작곡해서 그 곡들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오페라, 미사곡, 무도곡, 교향곡, 세레나데 등 어떠한 장르라도 의뢰에 응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 교습도 했다. 이렇게 그가 벌어들인 돈은 일반 농부에 비해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금액으로, 그가 후기에 재정적으로 빈곤하다는 소문은 “문제는 있지만 빈곤은 아닌” 실제 상황이 과장되어 부풀려 진 것이다. 그렇게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생의 마지막을 꾸리던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 동료 발제크-슈무파흐 백작이 아내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의뢰한 장송곡인「레퀴엠, Requiem Mass」를 작곡하다가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된다. 이 레퀴엠은 그의 제자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뒷부분이 마무리 되었는데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다고 한다는 사실이 떠오르고, 그의 죽음이 한층 더 아쉬워지는 부분이었다.2. 그의 음악, 소나타, 교향곡, 그리고 오페라.모차르트가 살던 시대는 사회적 변화만큼이나 음악적 변화도 컸고, 그만큼 음악의 형식들도 많이 개편(改編)되었다. 18세기에 창조된 우리가 이제「고전 음악(classic)」이라고 부르는 이 음악은 기존 바로크 음악과 템포, 강약, 성부, 반복, 대조 등 모든 면에서 대조를 이루었다. 모차르트 또한 이러한 여러 가지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연구하고 활용했다. 그러나 하나 재밌는 점은 모차르트는 새로운 가능성을 극점으로 까지 .
Ⅰ. 들어가며.오늘날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기업조직의 경영자들은 수많은 윤리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지속가능경영(Sustainable Business))이라는 새로운 기업 전략이 나올 만큼 기업의 윤리적(倫理的)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이 사회의 구성체로서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경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이익단체와 그 지도자들에 대해서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자와 그가 경영하는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매우 유보적이었으며 또한 기업과 기업의 행위에 대한 윤리성을 검증할 만한 연구나 노력들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 기업경영 환경은 윤리적 가치와 관행이 확립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처지이며, 기업윤리(企業倫理))에 대한 기업과 연구기관에서의 관심도 미약했었다.이제 기업경영과 기업의 전략 환경은 변화하고 있다. 세계는 점점 비윤리적인 행동에 제제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그 실례로 1999년 2월 15일 경재헙력개발기구(OECD)의「국제상거래에서 해외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 협약」이 발효되어 윤리라운드 및 부패라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도 1998년 12월 28일「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을 제정하였으며, 이제 기업윤리 문제는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무시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기업윤리는 과연 어떠한가. 1960년대 이후 급성장을 한 한국경제의 이면에는 재벌과 정부의 정책적 관계가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기업가와 정부 모두 기업의 행위는 이윤증대에, 그리고 이러한 이윤증대는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기에 당시에는 윤리적 측면이 중요하게 관리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자기이익의 추구만을 노리는 것에서 벗어나 이웃과 사회가 잘되는 공리성(功利性)을 추구하는 사회로 바뀌면서, 국내 많은 기업들도 윤리 경영을 도입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Ⅱ. 한국기업의 윤리경영 현실.현재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윤리 경영을 도입, 실천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적으로 윤리적 경영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경제정의연구소」에서 수여하는「경제정의기업상」이 있을 만큼 그 관심이 남다르다. 경제정의연구소에서 발표한 윤리경영 우수 기업으로는 (주)유한양행, (주)태평양, (주)웅진닷컴, 삼성전자(주)등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70여개의 회사들이 선정되었다.) 여기에서는 그 중 하나인 주식회사 풀무원의 윤리경영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Ⅲ. 한국기업의 윤리경영 사례 - (주) 풀무원.Ⅲ-1. 풀무원의 역사.주식회사 풀무원(이하 풀무원)은 1981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조그만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 이라는 야채 가게에서 출발한 풀무원은 1984년 5월 풀무원식품(주)로 법인화하여 1995년 상장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두부와 콩나물로 대표되는 기업이다. 풀무원은「내 가족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전한다.」는 정신으로 식품의 양의 시대에서 질의 시대로 전환시키는 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을 받는다.1980년대 먹거리의 질보다는 양을 추구했던 우리나라 사회에서, 벌레 먹고 출고량도 적은 이른바 ‘유기농법 재배’로 무농약 농산물을 최초로 브랜드화 하여 시장에 내놓은 풀무원은 식품 시장에서 ‘안전 식품의 대명사, 풀무원’으로 차츰 자리잡게 된다. 1984년 풀무원식품(주)의 법인화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하여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꾸준히 환경 캠페인을 전개한 결과, 유기 농산물의 가치를 고객들의 인식 속에 뿌리내리게 된다.1990년대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면서 풀무원은 국산콩을 사용한 두부와 콩나물의 브랜드화, 유통의 콜드체인)화를 통한 제품의 고품격화를 통해 급격히 시장을 확장했다. 90년대 초에는 면시장에 최초로 ‘생면’ 개념을 도입하고, 당시 열풍이던 다이어트에 저열량식 특수영양식품인 ‘풀무원 다이어트’를 출시해 분말 대용식 다이어트 제품 시장의 선발업체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제품의 개발 및 사업 영역의 다각화는 1995년 상장을 계기로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이로써「식문화의 질적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 되었다.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풀무원은 ‘21세기의 바이오 사업의 리더’로 자리잡기 위한 일환(一環)으로 향후 미래 식품 기술과 관련한 신소재 개발과 화학 첨가물 없이 식품의 맛과 영양을 살리는 연구 및 환경 지향적 제품의 개발, 전통 식품의 과학화(科學化)를 위한 신기술 개발 등 다양한 연구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Ⅲ-2. 풀무원의 이념.풀무원은 꾸준한 성장을 통해 이익의 증가도 함께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윤 증가의 한 원인에는 풀무원의 이상적인 철학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풀무원의 이상적인 철학은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과 사회적 공리성, 사회적 책임이 대립(對立)되는 개념이 아닌 상호보완(相互補完)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풀무원 농장의 기본 철학이웃 사랑, 생명 존중▼풀무원의 기본 철학내 가족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바른 먹거리의 제공▼풀무원의 비전모든 사람이 자연과 조화된 건강한 생활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연 건강 생활 기업’▼풀무원의 경영 이념(理念)인간과 자연을 함께 사랑하는 ‘고객 기쁨 경영’표 1 : 풀무원의 철학)표 1에서 제시하는 풀무원의 생각은 사업 초창기 원경선 풀무원 농장 원장은 남승우 사장을 불러 풀무원이 만들어 파는 상품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러한 철학은 풀무원이 하나의 기업으로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에도 영향을 미쳐 ‘자연 건강 생활 기업’이라는 풀무원의 비전으로 구현된다. 그리고 이 비전은 풀무원의 ‘고객 기쁨 경영’에 반영된다. 풀무원이 말하는 고객은 소비자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러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자연까지 포함시키는 개념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연과 인간을 함께 생각하는 경영 이념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자연주의,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존중하는 인간 생명 존중 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다.Ⅲ-3. 풀무원의 원칙.풀무원은 식품 제조에 원칙이 있다. ① 신선하고 안전한 원료를 사용한다. ② 맛, 향, 색의 증진과 보존 기간의 연장을 목적으로 한 ‘화학적 첨가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③ 식품이 본래 가지고 있는 맛, 향, 영양을 유지하면서 고객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생가공 원칙’을 준수한다.) 이 3가지고 풀무원의 제품 제조 원칙이다. 제조 원칙에서도 풀무원의 자연과 인간의 공존 이념을 다시 한 번 찾아볼 수 있다.Ⅲ-4. 풀무원의 자연보호.풀무원은 자연이 건강해야 인간도 건강할 수 있다는 철학 아래 꾸준한 환경 보호 운동을 벌이고 있다. 1993년 1월부터 풀무원 제품에「지구 사랑 마크」를 표기하고 제품 총 판매액의 0.1%(약 2억 원 규모)를 환경보전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금으로 샛강 살리기 운동, 재활용 캠페인, 환경 오염원 지도 제작, 쓰레기 봉투 제작 등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환경 보전 운동은 일회적 이벤트가 아닌 꾸준한 활동이 되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환경 보호 운동에 이웃 사랑 운동을 포함시켜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Ⅰ. EFTA의 뜻과 생성과정 및 유럽의 변화.1) EFTA의 뜻과 목적.EFTA란 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 의 약자로써, 유럽공동체) (共同體, EC : European Community)를 제외한 서유럽의 지역경제기구를 말한다. EFTA는 자유무역(自由貿易)지역의 실현(實現)에 그 뜻을 두고 있으며 공업품(工業品)에 대한 역내관세의 철폐, 수량제한의 철폐 및 역내무역의 자유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2) EFTA의 생성과정).OEEC) (Organization for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유럽경제협력기구) 회원국들은 EEC(European Economic Community:유럽경제공동체) 비가맹국들을 포함하는 자유무역권을 설정하고 유럽 지역의 경제공동체를 만들 것을 제안하였으나, 1958년 11월 협상이 결렬되었다.EFTA는 1960년 5월에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7개 국가의 합의로 자유무역지역을 결성하였다. 당시 핀란드는 준 가맹국이었으며 1970년 3월 아이슬란드가 가맹하였으나 1973년 1월 영국과 덴마크가 EC에 가입하면서 탈퇴하였다. 1986년에는 포르투갈이 가입하였다.EFTA는 유럽 전체를 결집하는 자유무역지역 설립의 구상이 깨진 뒤 영국이 중심이 되어 EEC) 에 대항하여 결성한 것이며 각 회원국은 비회원국보다 독자적인 통상정책을 구성한다. 행정기구에는 매년 2회 여는 장관급 회담과 격주간 여는 실무자급 회의가 있다. 결정사항들은 각국 정부들이 자발적으로 이행하며 EFTA가 권한을 행사하지는 않는다.또한 EEC 범위 밖의 서유럽 국가들 간에 공업품에 관한 자유무역지역을 실현한 것으로 공업품에 관한 역내관세 및 수량제한의 철폐와 역내무역의 자유화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관세동맹은 아니기 때문에 대외 공통관세는 설정하지 않았다. 1959년 11월 스톡홀름조약에 가서명하여 1960년 7월부터 발효하였다. 또 1966년 말에는 공업품의 역내관세를 약간 생소한 나라이다. 나라의 크기는 로마 시내의 바티칸 시국(市國), 이탈리아 중부의 산마리노, 프랑스 남해안의 모나코 공국과 같이 작은 소국(小國)의 형태(形態)이다. 인구 수 또한 3만 5천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통화 단위로써는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스위스 프랑을 사용한다. 주요 수출품은 전자계측기, 정밀기계, 치과용기기, 수입품은 기계, 금속 등이고 주요 무역 상대국은 EU(European Union:유럽연합)와 EFTA(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유럽자유무역연합) 국가들이며 특히 스위스와 거래가 많다. 작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총생산이 엄청나게 높은 부유한 국가이다.위치유럽 중부 내륙면적160만㎢인구3만 4100명 (2003 기준)인구밀도213.1명/㎢ (2003 기준)수도파두츠정치체제입헌군주제공용어독일어통화스위스 프랑환율1.39 스위스 프랑 = 1 달러 (2003. 9월 기준)1인당 국민총생산6만 3550 달러 (2003 기준)3) 노르웨이.유럽 북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반부를 차지하는 노르웨이는 면적(面積)은 32만 3758㎢, 인구는 456만 9000명(2003)이다. 인구밀도(人口密度)는 14.1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노르웨이왕국(王國)(Kingdom of Norway)이다. 수도는 오슬로이며, 공용어(公用語)는 노르웨이어이다. 내륙부에서는 반도의 분수계를 경계로 하여 스웨덴 및 핀란드·러시아와 접경(接境)하고, 해안부는 북극해(北極海)·노르웨이해·북해(北海) 및 스카게라크 해협(海峽)에 면한다. 본국 외에 북극해의 스발바르 제도·얀마옌섬, 남대서양의 부베섬 등을 영유한다. 노르웨이는 세계 유수의 어업국으로 로포텐제도 부근에서 바렌츠해(海)에 이르는 북대서양의 대어장을 끼고 대구·청어·정어리·새우 등의 어획이 많다. 노르웨이는 근대 포경업(捕鯨業)의 선구를 이룬 나라였으나, 근래 국제적인 포경의 제한으로 인해 쇠퇴했다. 노르웨이는 1977년 1월 본토 연안에 200해리 경제수역을, 같은 해 6월 는 수출품목의 46%이상이 어업품목임을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의 뒷받침 될 수 있는 증거가 될 것이다.Ⅲ. EFTA와 우리나라와의 관계 및 FTA 협정의 영향.1) EFTA와 우리나라와의 관계.EFTA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결론(結論)부터 말하면 우리나라가 FTA 협정(協定)을 맺은 3번째 대상이며 그 전에 맺은 칠레와 싱가포르처럼 하나의 국가가 아닌 지역경제협력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또한 EFTA와의 FTA 협정은 EFTA가 사실상 EU시장과 동일(同一) 경제권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제품이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橋頭堡)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그 중요성(重要性)을 더한다.지난 2000년 7월 EFTA측이 한-EFTA FTA 추진의사를 피력(披瀝)한 이후 EFTA측은 우리나라와의 FTA 추진에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2004년 5월 OECD 각료회의를 계기로 한-EFTA 통상장관회담에서 양자 FTA 공동연구 개시에 합의하였으며 2004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동연구 제1차 회의, 2004년 10월 서울에서 공동연구 제2차 회의, 2004년 11월 한-EFTA FTA 추진에 대한 대국민 의견수렴 공청회(公聽會)를 통해 한 ? EFTA 간 FTA 협정 타당성(妥當性)을 검토하여 2004년 12월 제네바에서 양측 통상장과희의시 협상 개시를 선언하였다).그리하여 2005년 1월부터 시작된 EFTA와 우리나라의 협상은 지난 2006년 6월 30일 한 ? EFTA FTA 비준안이 국회에 통과된 이후에 2006년 9월 1일부터 협정이 발효되었다(현재 시행중).2005년 1월 - 7월제 1차 - 4차 FTA 협상 진행.2005년 12월 15일협상문 정식 서명.2006년 6월 30일한 ? EFTA FTA 비준안 국회 통과.2006년 9월 1일한 ? EFTA FTA 협정 발효.이들 국가 중 아이슬란드는 비준동의서의 기탁이 지연됨에 따라 나머지 3개 국가인 노르웨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에 대해서만 협정이 발효되었다. 또한 스위스는 리히텐슈타인과 관 상호 보완적(補完的) 산업구조(産業構造)를 갖는 EFTA와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FTA를 통해 상호 교역이 크게 증가하는 등 상호 이익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양측의 교역은 산업내 무역)의 비중은 낮고 산업간 무역)이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국내 산업구조 조정을 최소화(最小化)하면서 교역자유화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보충자료 Ⅱ - 산업내 무역과 산업간 무역.㉮ 산업내 무역(Intra Industry Trade).산업내 무역은 한 산업내의 원자재 - 중간재 - 최종재 사이에 국가간의 교역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의 경우 부품산업과 완성산업이 서로 다른 국가에 있어서 부품의 교역이 일어나면 이것을 산업 내 무역이라고 한다. 만약 자동차 산업내 무역의 비중이 큰 경우 FTA를 체결하게 되면 국내 부품시장은 해외 자동차 부품시장과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산업간 무역(Inter Industry Trade).산업간 무역은 서로 다른 산업사이의 교역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자동차를 만들어서 수출하고 해외에서 의약품을 수입하면 이것은 산업간 무역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산업간 무역의 경우 FTA를 체결하게 되면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 생산이 없는 의약품을 수입할 수 있게 됨에 따라서 국내 후생이 증대되는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③ 국산 제품의 EFTA 시장진출 확대.EFTA측은 우리나라에서 수입되는 모든 제품(공산품, 농산물)에 대하여 발효 즉시 100% 관세를 철폐하기로 협의하였으며 우리나라 또한 EFTA에서 수입되는 상품 중 EFTA가 원산지(原産地)인 상품의 99.1%에 해당하는 상품의 관세율(關稅率)을 최장 7년에 걸쳐 철폐하기로 합의하여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이거름이 되었다. 지금부터 유럽의 경제통합 모델이 어떻게 변화(變化)하였는지 살펴본다.① 경제 공동체(共同體)에 대한 논의의 시작.앞에서 논한 바이 같이 OEEC 회원국(會員國)들은 비 가맹국(加盟國)들을 포함하는 자유무역권을 설정하고 유럽 지역의 경제공동체를 만들 것을 제안하였으나 1958년 11월 협상이 결렬 되었다. 그러나 OEEC는 회원국간의 교역량 제한조치들을 폐지하고, 회원국간에 부족한 자원을 상호 배분하며, 경제적(經濟的) 공동 관심사를 논의할 정기회담을 위한 체제의 구상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경제공동체에 의식확대 ? 구체적(具體的) 논의의 시발점이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OEEC의 경우는 미국의 전후복구 지원 사업인 마셜플랜을 수용하기 위한 기구이지만 가맹국가 내 상호간 자유무역을 추진함으로써 경제 공동체로도 볼 수 있다.② 1960년 EFTA의 생성.58년 11월 OEEC 주도하 자유 무역권을 위한 협상이 결렬(決裂)되자 오스트리아 · 덴마크 · 노르웨이 · 포르투갈 · 스웨덴 · 스위스 · 영국 등 역외 7(Outer Seven)로 알려진 '아웃사이드' 집단(集團)은 장래에 더 넓은 자유무역권이 형성될 경우 자국의 협상권을 강화하기 위해 EFTA를 결성하기로 하였다.이는 영국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것으로, EEC에 대항하여 결성되었으며 회원국은 비회원국보다 독자적인 통상정책을 구성하고 결정사항들은 각국 정부들이 자발적으로 이행된다. 따라서 EFTA가 강제적인 권한을 행사하지는 않는다.협약의 원안에서는 회원국들에게 공산품의 관세 감면과 할당량(割當量)의 자유화를 허용하고 있다. 또한 자국의 경제에 가해지는 부담이 과중할 경우 조약규정에서 제외될 수 있는 조항과 농산물 교역 개방을 위한 쌍무 협정들도 마련되었다.그밖에 EFTA는 원래의 상품수출국을 가려내는 제도를 수집(원산지 규정 제도)했는데 이 제도는 높은 국제관세율을 피하기 위해 EFTA 비회원국의 상품이 최저 국제관세율의 혜택(惠澤)을 받고 EFTA 회원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