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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벌
    목차1. 체벌(體罰)(1) 체벌의 개념(2) 체벌의 역사(3) 최근에 대두된 문제점2. 교사와 관련(1) 바람직한 교사상1) 교사의 가치관2) 교사라는 직업의 특징과 자질(2) 체벌교사1) 체벌에 관한 규정2) 체벌 사례 - 규정을 넘어선 체벌 교사들3. 체벌받는 학생(1) 체벌후 행동 변화(2) 체벌과 공격성(3) 체벌과 자아존중감4. 결과및 대안점 모색1. 체벌(體罰)(1)체벌의 개념체벌은 관리주의교육(엄격한 규칙과 체벌로써 학생들을 관리하는 형태의 교육)을 위한 한 수단으로써, 몸에 직접 고통을 주어 벌하는 것, 또는 그런 벌을 말한다. 벌은 고통, 형벌과 관계되는 용어로써, 심리학에서의 벌의 종류는 크게 신 체벌(physical punishment)과 심리 벌(psychological punishment)로 구분되고 있다. 이러한 벌의 의도는 권위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체벌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어떠한 위반행위에 대한 벌로써 인간의 신체를 제한하거나, 고통을 가하거나, 침해를 가하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내려지고 있다. 이것은 학생을 직접적으로 때리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명령에 의한 간접적인 벌에 의해 신체적인 해를 끼치는 행위도 포함된다.(2)체벌의 역사역사를 살펴보자면 유럽에서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었으며, 체벌도구로서 회초리 등을 널리 사용하였다. 반면에 체벌에 대한 비판도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J.A.코메니우스, J.J.루소, J.F.헤르바르트 등은 체벌에 반대한 사람들이다. 19∼20세기에 이르러서는 체벌에 대한 비판·반대론이 일반화되어 많은 나라에서 법률적으로 체벌을 금지하게 되었다. 스웨덴에서는 1979년에 모든 체벌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미국 대부분의 주(州)와 영국 등에서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 체벌이 용인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대표적인 체벌은 달초(撻楚) 또는 초달이라고 하는 회초리 매이다.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전날 배운 학과를 다음날 학우들이 열좌사람은 교사이다. 사람의 어떤 행동을 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다. 교사의 가치관과 체벌에 대해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조사를 하기 위해, 교사의 가치관(국가관, 인간관, 교직관)을 기본으로 조사를 하였다.) 조사결과, 국가관에 있어서 애국심이 굉장히 강하며, 특히 통일에 대해서는 폭력과 무력을 허용하지 않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번째 인간관에 있어서도 타인에 대해서 배려할 줄 아는 성격을 가졌으며, 마을의 공동 작업에도 적극 참여할 줄 알며, 특히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책임감이 강해 타인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도덕과 예절을 지키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교직관에 있어서는 대체적으로 지금 현재의 교직생활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사의 가치관이 학생체벌에 관한 교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가? 우선 일반적으로 선생님들은 대부분 학교에서의 체벌을 허용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체벌을 교사와 학생간의 최후 수단으로서 긍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괜찮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되어진 교사의 세 가지 가치관 중, 교직관만이 체벌과 관련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교직에 대해 불만족스러울수록 체벌수용정도가 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2) 교사라는 직업의 특징과 자질바람직한 교사상, 교사의 자질 등은 역사 속에서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예를 볼수가 있다. 교사는 다른 직업과는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교직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 있지만, 교사는 인간의 어느 부분적인 기능만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으로서의 인간, 즉 지적, 정신적,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정치적 특징을 지닌 인간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둘째, 교직은 주로 인간의 정신생활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다. 셋째, 교직은 미성숙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다. 넷째, 교어야 한다. 같은 교육내용이라고 아동의 특성에 따라, 교수-학습 여건에 따라 다른 교수법을 필요로 할 수 있다. 다양한 교수법을 상황에 적절하게 제시하는 교사의 능력이야말로, 기능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는 다방면에 대한 탐구 의지와 탐구 능력을 지녀야 한다. 교사의 탐구 능력은 스스로의 성취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사로부터 행동의 모델을 찾는 아동들의 탐구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넷째, 교사는 적극적인 행동 의지와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교사는 대체로 매우 다양한 역할과 과다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형편에 있다.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자칫 모든 업무에 소극적이 되고 최소한의 노력만을 전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사 본연의 업무인 교재 연구와 아동 이해를 이한 연구, 교수-학습 자료 수집 등을 소홀히 하게 될 가능성이 잇다. 교사 역할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교사들은 교육 환경의 어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교사들의 이러한 삶의 자세와 행동 양식은 아동들의 행동과 인생관에 귀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교사는 평소에 축적해 온 삶의 자세와 아동관에 일관된 행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그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다섯째, 교사는 학부모와 지역사회 인사, 선후배 교사들과 효과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과 인격적 감화력을 지녀야 한다. 교사는 필요에 따라 학부모와 아동에 대한 면담을 수행한다. 때로는 다른 기관과 접촉하여 청소년 선도를 위하여 협의하고 공동 노력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교사는 공식적인 한교 조직의 일원으로서 선후배 교사들과 교재 연구, 또는 학교 환경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협의를 하게 된다. 교사는 이러한 다양한 상호작용의 상황에서 설득력 있는 의사소통을 전개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짧은 시간 내에 최선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특히 현수도 있다.제12조(기합의 종류) 기합은 다음과 같은 종류로 한다.1. 손바닥, 팔 및 몸을 펴고 땅에 엎드려 있기2. 무릎을 꿇고 앉아 있기3. 무릎을 꿇고 앉거나, 서서 손을 높이 들고 있기4. 일정한 거리를 정한 시간에서 뛰기5. 청소하기제13조(기합의 강도 제한) 기합은 학생의 발달단계, 체력, 성별 등을 사전에 고려하여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행하여야 한다.제14조(기합에 의한 체벌) 기합에 의한 체벌은 다음의 경우에 행한다.1. 이유 없이 교사의 개인적 훈계를 2회 이상 어겼을 경우2. 남의 자유, 권리, 재물을 침해하여 타인을 괴롭히는 사례가 2회 이상 반복될 경우3. 남에게 폭력·폭언·협박·공갈 등으로 타인으로 하여금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경우4. 생활태도가 불성실하여 교사가 훈계를 하였으나 이를 반복하여 어겼을 경우5. 기타 기합에 의한 체벌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제15조(기합의 정도) 기합의 징계를 행할 경우 학생에게 무리를 주어 학생의 신체 또는 정신에 부작용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제3장 매에 의한 체벌제16조(징계의 단계) 매에 의한 체벌은 교내 봉사의 전 단계의 징계로 행한다. 다만, 사안의 정황과 교육적 효과를 고려하여 징계의 단계를 지키지 않을 수 있다.제17조(매에 의한 체벌) 매에 의한 체벌은 다음 각 호의 1의 경우에 행한다.1. 교사의 개인적인 훈계 내용을 이유 없이 반복하여 어길 경우2. 학습태도가 불성실·태만하여 교사의 반복적인 지도에도 변화가 없을 경우3. 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신체·정신·인격 또는 물품 등에 손상· 손해를 끼치는 사례가 반복될 경우4. 타인을 협박·공갈·위협하는 언행으로 남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는 행위를 반복할 경우5. 남을 해칠 목적으로 흉기 등을 소지하는 경우6. 다른 학생을 상습적으로 괴롭히는 경우7. 기타 매에 의한 체벌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제18조(매의 횟수 제한)①매에 의한 체벌을 할 경우 하나의 사안에 대한 체벌로 5대를 넘지 못한다.② 사안별 매의 횟수제한은 다 주장이 학생들로부터 제기됐다. 200대 체벌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ㄱ군 등 두 학생 외에 또 다른 학생도 같은 날 체벌을 받고 병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ㄱ군의 같은 반 학생들은 ㅂ 교사가 ㄱ군 등을 때린 뒤 전날 자습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ㄷ(18·3년)군을 당구채 굵기의 지휘봉으로 40대 가량을 때렸다고 증언했다. 3학년 ㅁ군은 지난 9일에도 지각했다는 이유로 ㅂ 교사에게 100대를 맞았고, 또 다른 학생은 10일 영어듣기 교재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도에서 80대를 맞았다고 증언했다. ㅂ 교사는 “열정이 지나쳐 물의를 빚은 데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편, 대구 수성경찰서는 이날 “현재까지 고소·고발은 없었지만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등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③ "너 때문에 열받았어"... 여고생 체벌 동영상 파문 )체벌 4일째, 그러나 OO양의 팔에는 여전히 피멍이 남아있다."기자님! 우리 애가…."훌쩍거리는 한 어머니의 제보를 따라 서울로 향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중년 여인의 얼굴은 부석부석했다. 그는 11월 3일,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딸애의 얼굴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딸애의 얼굴은 벌겋게 부풀어 있었고 팔뚝은 시커멓게 멍이 들어있었다. 머릿속은 불룩하게 혹이 나있었고. 눈은 실핏줄이 터져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함께 온 친구를 통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으며 사지가 후들거렸다고 한다."어디서 말대꾸야, 기침도 못 참아?"친구의 말에 의하면 딸이 다니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7반의 7교시, 사회시간이었다. 5분 정도 늦게 들어온 OO양은 엎드려뻗치라는 이아무개(41세) 교사의 지시를 받았지만, 교복치마를 입었기에 차마 엎드려뻗칠 수가 없어 끓어 앉아서 두 손을 드는 벌을 받고 있었다. 그때 남학생들이 떠들자 화가 난 교사는 "한 마디만 더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계속 떠들자, 화가 난 교사는 청소도구 빗자루로 남학생의 팔뚝을 대여섯 차례 때렸는데 손톱이 부다.
    교육학| 2007.12.19| 11페이지| 2,500원| 조회(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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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 (1914~1918)(1) 배경삼국협상(영국 프랑스 러시아)과 삼국동맹(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의 대립: 1904년부터 1914년 사이에 유럽은 네 번에 걸쳐 전면전쟁의 위기를 겪었다. 1905~1906년에 모로코에서 프랑스의 세력 확장을 막으려는 독일의 시도가 계기가 되었고, 1909년 2월에서 3월 사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합병에 따른문제로, 1911년 7~8월에는 독일정책으로 새로이 모로코 위기가 일어났을 때, 그리고 1912~1913년에 두 번에 걸친 발칸 전쟁을 통해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해관계가 위험하게 대립되었을 때이다. 이와같은 불안정의 원인은, 민족감정의 왕성한 표현을 들수가 있는데, 그것이 때로는 큰 국가들의 팽창적 민족주의로 나타났다. 다른 한편 경제적, 재정적 대립을 들 수 있다. 민족감정의 물결과 물질적 이해관계는 정치적 위기와 결합하여 정신상태를 조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이 네 번의 위협적으로 다가온 전면전쟁이 머지 않아 일어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각자 주된 관심사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미 1907년에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협상이라는 두 진영으로 나누어지면서 이른바 무장평화에 가려져 있던 전쟁의 기운이 점차 농후해져 갔다. 한마디로 당시의 분위기는 전쟁이 일어나기 좋은 상태였다. 당시 제2인터내셔널은 국제반전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독일 사회민주당은 가장 유력한 정당이었다. 그런데 마침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대공비가 오스트리아령 보스니아의 도시 사라예보에서 비밀결사 소속 민족주의자들에게 (오스트리아 시민이었지만 민족감정상으로는 세르비아인이었다) 암살됨으로써 유럽전쟁으로 치닫는 국제위기가 일어나게 되었다.(2) 과정세르비아 정부가 암살사건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오스트리아전세를 뒤집는 듯 했으나 이는 영국과 경제적으로 굳건히 맺어있는 미국의 참전을 가져 오게 되었고 전세는 독일 측에게 불리하게 되어, 패배는 결정적인 것으로 되었다. 그리하여 독일은 10월부터 미국을 상대로 평화공작을 시작했지만 평화공작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일어난 출동명령에서 독일군들은 명령을 거부하고 평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폭발하여 폭동을 일으킨다. 독일을 비롯한 삼국동맹측의 모든 나라가 연합국에 항복을 함으로써 4년간 지속되었던 1차 세계대전은 끝이 난다. 열강의 제국주의적 성격에서 비롯된 이 전쟁은 4년에 이어 30개국을 포함하는 대전(大戰)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위기는 외교적 수단으로 해결되지 않았을까?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사라예보 사건을 이용해서 무력으로 세르비아 민족운동을 억누르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는 세르비아가 짓밟히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렇게 될 경우 거의 한 세기 이래 양대 제국이 영향권을 다투던 발칸의 전지역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그들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생각하였다. 영국은 자국의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서 대륙에서 독일의 주도권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전쟁참여의 주된 동기는 제국주의적인 영토분할과 권리획득이어서 이것을 둘러싸고 여러 국가들 간에는 몇몇 비밀조약까지 체결되었다. 예를 들면 일본은 중국에서의 독일의 권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탈리아는 영,프,러와의 조약에서 영토 확대를 약속받고 전쟁에 참가한 것이다. 전쟁의 양상도 종래와는 달리 잠수함, 전차, 비행기 심지어 독가스까지 등장하는 근대전의 성격을 띠었고 또 사상 유례없는 총력전이 전개되었다. 투입된 병력도 엄청나 전사자, 부상자의 수도 역사상 유례없는 놀라운 숫자를 기록했다. 또 전쟁은 국민생활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쳐 국민들은 생필품의 부족으로 고통 받고 부녀자나 노인까지 노역동원에 끌려 나가야만 했다.(3) 결과독일에서의 혁명으로 인해 황제 빌돌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전쟁 때문에 일반 국민생활도 피폐해져, 도시에서는 빵과 연료가 부족하여 국민들 사이에 전쟁을 혐오하는 기운이 높아져갔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황제(차르) 니콜라이2세(재워,1849~1917)는 소심한 군주였다. 니콜라이는 어느정도 야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유부단하게 측근의 의견에 좌우되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 라스푸친(1872~1916)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폭주와 음란으로 소문난 수상쩍인 인물이었지만 기이한 매력과 우연히 황태자의 병을 고친 인연으로 황후의 총애를 받아 1911년경부터는 궁정을 좌우하는 실력자가 되었다. 그는 니콜라이 2세가 15년 여름 최고사령관으로서 전선에 머무르게 되자 그 대신 고관의 임면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였다. 결국 그의 권세를 시샘한 반대파는 그를 암살하기로 결의했다. 이 암살의 명분은 황제 측근에서 간신을 몰아낸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라스푸친이 황후를 꾀어 제정붕괴의 위기를 피한다는 이유로 독일측과의 단독강화를 꾀했기 때문이었다. 점점 제정은 국민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16년 말부터 17년 초 농산물의 수확은 저조해지고 산업은 황폐해졌으며 운송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 속에서 병사와 노동자들은 적기를 휘날리고 라 마르세이예즈를 노래하면서 국회가 있는 궁전으로 모여들었다. 국회는 급히 임시위원회를 만들고 질서회복에 나서게 되었고, 노동자와 병사 대표자들은 소비에트(노.병평의회)와 그 집행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리하여 국회측과 혁명측에 따로 이중권력이 생겨났고, 아직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기 못하고 있던 소비에트가 양보함으로써 임시위원회가 임시정부로서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때 니콜라이2세는 퇴위하게 되고, 로마노프 전제왕조는 그 막을 내리고 러시아는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3월혁명 (러시아력으로는 2월혁명)이었다. 제1차 대전이 일어나고 있던 그 당시 레닌은 스위스에 망명해 있었는데 혁명의 소식을 듣고 망명가들의 바람은 러시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1917년 4월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주의도 유태인의 영향에서 벗어남으로써만 진정한 사회주의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반유태주의, 본볼세비키즘, 사회주의, 민족주의가 이렇게 해서 훌륭하게 결합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나치즘이었다. 히틀러는 빈 시대의 체험과 바그너의 구제사상에 관한 지식을 합쳐서 나치즘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특출한 선동연설을 통해 당세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당내에서의 지위도 높아져 1921년 7월에는 당내에서 독재적인 지도자로 되었다. 이 기간 동안 20년 2월에는 25개조 강령이 발표되고 그 직후에 당명도 민족 사회주의적 독일노동자당으로 바뀌었다. 그는 천재적인 언변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그가 주장하는 독일의 장래에 대한 황금빛 내용들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히틀러는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선전기술을 철저하게 연구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에는 대중심리에 대한 두려울 정도로 예리한 통찰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기존의 정당보다는 히틀러의 과격하지만 직선적이고 매혹적인 공약들을 사람들은 믿었다. 히틀러는 나치당의 뮌헨 폭동을 책임지고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으나, 출소 후 다시 정치활동을 시작하여 1933년의 선거에서는 나치당이 국회의석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그당시 샤하트 등 일부 자본가는 히틀러에게 접근해 있었지만 아직 많은 자본가들은 히틀러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32년 듀세르도르프에서 히틀러가 노동운동의 탄압과 자본주의적 경영의 옹호를 자본가들 앞에서 보장하자 그들은 호의를 표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게르셍키르헨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은 광산회사 대표인 프리크가 브류닝그 정부에 압력을 가해 액면가의 22%로 떨어진 증권을 액면가의 90%, 즉 시장 가격의 약 4배로 매상케 만든 이른바 검은안개 사건이었는데, 이로 인해 자본가들의 부패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당시 독일에서 창궐하는 공산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히틀러를 지지하던 독일 재벌들의 후원을 입으며, 대통령 힌덴취임했던 히틀러는 먼저 국회를 해산하여 권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총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정권의 기초를 굳히려고 하였다. 2월 28일 히틀러는 을 발표했다. 이로써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은 정지되고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경찰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3월5일의 총선거에 이르기까지 나치 이외의 정당, 특히 사회민주당, 공산당에 대한 미증유의 선거방해공작이 병행되었다. 이렇게 해서 3월5일 총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을 제안하여, 나치당에게 독재의 권한을 주게 되는 법률을 발표하였다. 이 제안에 대해 사회민주당 오트 베르스는 결연히 반대하였지만, 히틀러의 독재 권력은 합법성으로 성립되었다. 결국 히틀러는 모든 다른 정당을 해산하고 나치 일당독재를 명확히 성립시켰으며 1934년 8월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히틀러는 이 지위를 겸하여 국가 총통(Mein Fuhrur : 마인 퓨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제2차 세계대전(1939~1945)(1) 배경 : 독일의 세력히틀러가 이제 독일에서 세력이 커지게 되었다. 그는 일관되는 일상적인 사무를 싫어했기 때문에 일단 권력을 확립하자 국내정치에 대해서는 기본방침을 결정하는 것 이외에는 담당자에게 맡겨 버리고 자신은 오로지 외교정책과 군사문제에 열중했다. 물론 그 목적은 재무장과 베르사유 체제의 타파였다. 그는 이미 1920년대 속에서 대외적 요구를 쓰고 있었다. 일단 1914년 당시의 독일 국경선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비스마르크가 형성했던 제국과 같은 소독일주의적 독일에 만족하지 않고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대독일주의적 통일을 실현할 것을 목표로 했다. 히틀러의 목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생존권(生存權)을 동유럽 특히 러시아에서 구했다. 히틀러는 공산주의자, 즉 유태인을 모두 죽이고 열등민족인 슬라브인을 노예로 삼아 지배민족인 독일인을 최고정점으로 하는 , 즉 유럽의 재편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우선 1933년 10월 제네바에서
    인문/어학| 2007.05.22| 8페이지| 1,000원| 조회(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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