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틸의 변증학 서평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정말 꼭 필요한 귀한 책을 읽었다는데 대하여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대에 들어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문화에 의해 점점 사람들 자신이 자기 욕구적 해결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 떠나거나 자기에게 필요한 하나님을 구하고 있다. 우리 기독교 안에도 점점 하나님 중심을 배제한 인본주의, 기복주의 신앙이 들어와 사람들의 영혼을 갈아먹고 있는 이 시대에 반틸의 변증학은 정말로 모든 개혁주의 자들의 하나님 중심사상을 대변하고 있는 사상이다.반틸은 비기독교인과의 접촉점을 인간의 이성에서 찾으려고 하는 가톨릭 신학자들과 알미니안 신학자들을 규탄하였다. 그리고 반틸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인 카넬, 클라크, 버스웰의 비기독교인의 자율적 이성관을 규탄하지 않고 비기독교인과 합리적인 변론을 할 것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카톨릭 신학은 ‘양심건재설’을 주장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타락한 결과 인간은 ‘본래적 의’라는 것을 잃어버렸으나 하나님의 형상은 보존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와 같은 사실은 인간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영과 육의 조화를 상실했음을 의미할 뿐 계속 그가 건전한 이성적 능력과 의지의 자유를 구사할 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한다. 카톨릭 신학자 마리땡은 말하기를 “신학은 어떤 자연적 진리를 전제로 하고 그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신학이 전제하는 자연적 진리는 이미 철학자들에 의해서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터득된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런 카톨릭의 이성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고 고대 중세철학의 사변적 지식에 근거를 두고서 하나님과 우주, 인생을 거론하는 이론적 신학이라는 것이다.알미니안 신학은 로마 카톨릭신학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보다 인간의 이성적 지식을 진리탐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시 하고 궁극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한 알미니안은 카톨릭과 같이 무신론적 이성주의로 세뇌된 현대 인간과 더불어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합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즉 명석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이 증언하는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그 가능성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것이다.그러나 우리 개혁주의 입장에서 볼 때 카톨릭과 알미니안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또한 그렇게 해서 얻는 지식이라도 그것은 ‘신지식’을 개발하는 길 외에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가 아니면 타락가운데서 구원받을 수 없는 철저한 죄인이다. 오직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반틸의 변증 사상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다.반틸은 보수 신학계의 대표적 인물로서, 칼 바르트를 비롯한 진보적인 신학자들을 대항하여 싸웠다. 빈틸의 입장에서 칼빈주의 신학자 찰스 핫지와 워필드는 그들이 칼빈주의의 위대한 ‘지로적 신학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변증신학적 차원에서 만큼은 합리주의적 사고성을 현저하게 노출했다.반틸은 또한 “모든 현대 과학자들은 성경적인 하나님의 개념을 부인하는 일에 뜻을 모으고 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이 우주의 외인이거나 이 우주 내에 존재하는 어떤 원리를 의미할 따름일 것이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배제하는 과학의 위험성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과학의 일번주자였다고 볼 수 있는 데카르트는 그의 우주수학의 연구결과로써 ‘수리적 우주’의 존재를 이야기 한다. 영국의 물리학자 뉴톤에서부터 시작된 ‘경험적 우주관’은 갈릴레오, 록크, 버클리, 데이비드 흄, 칸트에 이르기까지 계속 발전했다. 칸트는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인간이 이성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그런 문제는 아니지만 인간의 심중에 존재하는 실천이성, 즉 양심이 하나님의 존재를 요청하고 있다는 대답을 한다.반틸은 과학을 ‘칸트 이전의 과학’과 ‘칸트 이후 과학’으로 나누고 칸트 이전 과학의 특징은 인간 이성의 제한된 성격을 깨닫지 못하고 논리적이며 수학적인 방법으로 우주와 자연을 측정, 계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에 칸트 이후 과학은 인간이성의 제한된 성격을 인정하고 우주와 자연에 대해서 수리적 접근법 대신에 통계학적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밝혔다.콩트는 인류의 사상사를 3시대로 구분하고 신학적 시대와 형이상학적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며 오늘날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실증주의 시대로써 신학과 형이상학은 인간의 뇌리에서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다고 단언했다. 콩트 이후의 실증주의는 영국의 밀, 스펜서 등의 학자들에 의해서 수차에 걸쳐 수정을 보았으나 원칙적으로 무신론적이며 과학주의 적인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죠지 로메인스는 그의 저서 “종교론”에서 순수한 불가지론자는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과학의 미명 하에 성급하게 그의 존재를 불법화하려고 들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종교심 또는 신 의식을 현상학적으로 관찰, 연구하고 그것이 기독교인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한 번 쯤은 생각해 보는 아량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하지만 반틸은 “소위 순수한 불가지론은 불순한 불가지론 못지않게 처음부터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작정하고 시작한다고 나는 본다.”라고 했다. 그들은 표면상으로는 기독교가 존재한다고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편견 없는 중립’을 지키고 있는 듯이 보이나, 내용적으로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의 주권과 여성의 자율성 그리고 과학만능사상에 저촉되므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로 처치해 버린지 오래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로메인스와 같은 현대 과학자들은 실상 ‘위장중립’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과학자들과 “하나님은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과학자들 사이에 기본적인 사상적 차이성은 없으며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성이 구태여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표현상의 것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반틸은 기독교는 인간을 위한 삶과 빛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비기독교 철학의 소유자인 현대 인간을 기독교로 개종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신지식에 호소하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모두가 신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진리를 알 수 있고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반틸은 현대인이 소원하는 자유, 신으로부터의 절대적 자유는 기독교의 신의 존재를 부인하며 인간의 이성을 신의 자리에 앉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이야기하면서 비합리주의 자가 된 현대 인간은 역사적 기독교의 제 교리의 진리로서의 가능성을 인정하는데 지나지 않으며 사실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그의 ‘이성적 해석’을 통해서 합리화시킨 후에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반틸은 책에서 자신의 기독교 철학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합리주의, 비합리주의, 연속성, 불연속성, 구체적인 전칭 명제 등의 어려운 철학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는 그런 언어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기독교 철학’은 결코 실존주의 철학에 기초한 철학이 아니라 역사적 칼빈주의에 기초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현대인에게 철학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반틸은 현대인의 위험한 생각이 칸트이후 이성주의 철학으로 더욱 합리화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받아들이려는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반틸은 철저한 칼비니스트로서 현대 인간은 신을 떠나 먼 나라로 갔고 거기서 ‘자율적 이성’이라는 우상을 섬기면서 신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꾼 결과 ‘진리의 가난’속에 살면서 탕자처럼 ‘죄의 쥐엄열매’를 먹고 있음을 이야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