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경제이론과 경제학자를 통한 경제교육원화여자고등학교교사 박정희1. 주제 설정의 배경우리 청소년들은 미래의 경제 소비를 이끌어 갈 중요한 경제주체이다.그런데 아이들은 왜 경제를 어렵고 복잡하게 느끼며 재미없다고 생각할까? 학교의 경제교육은 체계적?생활 지향적이라기보다는 암기위주의 이론 지향적 입시위주의 교육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경제이론들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학생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서양학자들 일색이라는 것이다. 즉, 중농학파를 일으킨 프랑스의 케네, 영국의 고전학파 A.Smith, D.Ricardo, Malthus, J. S. Mill 에서부터 케임브리지학파의 A.Marshall , 그의 제자 A.Pigou를 거쳐 Keynes, 통화주의학파의 창시자 M. Friedman에 이르기까지 주류경제학이라고 일컫는 학자들과 비주류경제학자들 독일의 역사학파인 List와 Marx까지도 다 서양 경제학자들이다. 학생들이 동양에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없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난 뭐라고 대답해야 될 지 평소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인간도 Marx가 말한 것처럼 하부구조인 경제문제 즉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떠나서는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고대의 동양에서도 경제문제는 엄연히 존재했었고 경제사상가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2. 중국의 경제학 이론과 경제학자 - 사마천경제수업 교재연구 중에 다음의 문제를 풀다가 나의 의문을 풀 수 있게 되었다.최선의 방법은 백성의 심성을 그래도 존중하는 것이고, 차선책은 이익으로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백성을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다. 강제로 백성을 규제하는 것은 이보다도 못하고 백성과 다투는 것은 최하책이다.그러므로 물가가 싸면 비싸지기를 기다리고, 물가가 비싸면 싸지기를 기다려, 각기 생업에 부지런히 즐겨 종사하는 것은 마치 물이 아래로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상태와 같다. 그러면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자연히 모여들고,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물건을 만들어 낸다. 위의 글을 오늘날에 적용해 볼 때, 어느 경제체제와 관련된 주장인지를 쓰고 주된 특성 세 가지를 쓰시오.위 문제를 읽다 보니 고전학파 A.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자유방임경제이론과 너무나도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이 부분이 「史記」의 어느 부분에 있을지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史記」와 관련된 책을 찾아 보았다. 그 부분은 「史記」의 권말 「태사공 자서」바로 앞, 실질적인 최종권「화식열전(貨殖列傳)」에 있었다. 귀에 익지 않은 이 말은 재화를 모은 사람들 이라는 뜻이다. 이 「화식열전」을 쓰게 된 취지에 대하여 사마천은 아무 계급 관직도 없으면서 정치를 혼란하게 한다든가 백성을 괴롭히는 일 없이 정당한 거래를 해서 재산을 모은 자가 있다. 그래서 이 「화식열전」을 썼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화식열전」에서는 경제의 큰 역할을 논하여 일종의 유물론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공자(孔子)가 덕(德)을 설파할 수 있었던 것도 돈 많은 제자가 뒤를 돌보아 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고전적인 역사책이면서 이만큼 경제에 대하여 논한 것도 없다고 한다. 사마천은 본전(本傳)을 기록하여, 실제 민간 생활에 있어 필요한 운용 법칙을 살펴보는 목적 이외에도, 정부 차원의 재경정책(財經政策)이 다루지 못한 민간 경제정책을 실어 비교?보완함에도 그 의도가 있다고 한다. 서두의 총론에서는 농?공?상이 양생(養生)의 근원임을 설명하고, 근원이 부요해지면 국가가 부요해지고 백성이 편안해져 인의(仁義)가 저절로 행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사마천은 자유방임 정책에 호의를 갖고 있었고 정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경영하던 독점 사업을 인수한 무제의 행위에 분명히 반대했다고 한다. 사마천은 그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처럼 농업이 가장 존중해야 할 사업이고, 국가 안녕의 기초라는 생각에 찬성했다. 그렇지만 그는 극히 현실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에 공업과 상업이 훨씬 이익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너무나 솔직하게 이 견해를 서술했기 때문에 후세의 유자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는다고 한다. 사마천은 기민하게 사업을 하고 장유(醬油)를 매매하고 소금을 전매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이익은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가 주의 깊게 더 붙이고 있듯, 이익은 정부가 그 성취를 위해 추구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정부는 더 높고 더 이타적인 동기에 관심을 갖는 군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마천은 인민과 이익을 다툴 목적으로 국민의 경제 생활에 간섭하는 정부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하였다. 즉, 그는 한 국가의 경제정책은 백성에게 자유롭게 경영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최상책이며, 국가가 간섭하는 것이 최하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바로 현대 자유 경제 체제를 추진시켰던 경제관과 일치한다.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던 자유경제 사상을 이미 2,000년 전에 주장했던 사마천은 가히 고금에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된다.3. 한국의 경제학 이론과 경제학자 - 박제가실학자 박제가는 《북학의(北學議)》에서 ‘비단을 입지 않으니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고, 그릇이 비뚤어지든 어떻든 간에 개의치 않으므로 예술의 교묘함을 알지 못하니, 나라에 공장과 도야(陶冶)가 없어지고, 기예도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필요한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생기는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말이다. 박제가는 ‘우물물은 퍼 쓸수록 맛이 있다’는 ‘우물론’을 통한 경제회복책을 전개했다. 우물물은 일정한 속도로 계속 퍼 쓰지 않으면 물이 고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썩게 마련이다. 샘이 솟는 곳에 우물을 만들었으므로 우물물은 계속 퍼 써야만 다시 깨끗한 물이 차오르고 맛이 좋아진다.한 나라의 부(富)는 마치 우물과 같아서 어떤 물건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그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늘고, 따라서 소비가 생산을 촉진하게 된다. 이러한 구매력을 수반한 소비인 유효수요는 경제발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효수요’란 물건을 살 때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살 수 있는 확실한 구매력이 뒷받침되는 수요를 말한다. 유효수요이론은 영국의 경제학자 J.M.Keynes가 1930년대 대공황을 타개책으로 제기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산출량의 크기와 고용수준은 투자와 소비로 이루어지는 유효수요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당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실업이나 공황은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경제의 자동조절 작용으로 경기불안이 해소되면서 완전고용 상태가 될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법칙을 부정하고 케이즈는 유효수요이론이라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냈다.하지만 박제가(1750~1805)는 위대한 경제학자라고 추앙받는 케인즈(1883~1946)보다 훨씬 일찍 유효수요이론을 제시한 것이다.박제가의 우물론은 검소함에 대한 왜곡을 극복하고 소비의 원리를 정확히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우물물을 퍼낸다는 것은 소비를 뜻한다. 적절하게 우물물을 퍼주는 것이 필요하듯이 꼭 필요한 재화에 대한 소비는 국민의 경제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