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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단청
    {丹 靑1장. 序작년 여름 무렵에 중국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배를 타고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중국의 가장 동쪽에서부터 북경에 이르는 조금은 기나긴 여정이었다. 고대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기대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조금은 힘든 여행길을 나서게 되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역사책에서나 보아오던 문화와 유적 중국의 여러곳을 돌면서 많은 역사적 흔적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선조의 역사를 보면서 난 참 안타까웠다. 지금의 우리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겠지만, 공안들의 눈초리와 유적들을 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그곳의 사람들의 성의없고 어의없는 태도들... 광개토대왕릉비를 관람하다 어처구니없게도 캠코더를 빼앗겼는데 처음에는 법을 어긴것이라 압수한 것이라하더니 나중에는 돈을 주면 캠코더를 돌려주고 묵인해주겠다는 일도 겪어서 중국 사람에 대한 나의 불신은 더 커져만 갔다. 거기다 내가 더욱 더 화가 났던것은 그들의 유적이 아니라 일개 변방민족의 유물이라고 밖에 치부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였다. 먼 옛날 그 웅장했을 국내성의 성곽은 낡은 푯말 하나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어느 아파트의 화단 한 구석에서 쓰러져가고 있었고, 논 한가운데 있는 유적들 하며 어느 하나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곳은 없었다. 가장 가슴을 아프게 했던 유적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벽화였다. 어느 외곽의 동네 한 구석에서 오회분 무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잡초더미 속에 묻혀있는 그곳의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정말 화가 나고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화려하고 찬란해야할 벽화는 습기를 머금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벽을 따라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림들 속에 박혀 빛을 밝혀줘야 할 보석들은 누군가의 손에 떨어진지 오래였고, 무덤속을 지키고 있어야 할 사방신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대로 관리해도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는 것들을 물 속에 담가둔 꼴이었다. 손으로 만져질 정도의 물기는 화려한 색들을 퇴색시키고 있었다. 잘 정리되고 보관되어있는 유적들만을 접하다가 본 그 장면들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기록(記錄)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의 단청(곽동해저 학연문화사) 110쪽 참고, 단청(임영주 저 대원사) 16~17쪽 {http://www.danchong.co.kr(한국단청연구소)■단청의 유래중국의 단청이 다소 어두운데 비하여 우리나라의 단청은 화려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우아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하여 일본의 단청은 적색과 검정색 그리고 황금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화려 하지는 않다. 즉 한국의 단청은 불교문화의 유입과 함께 유래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중국에서 한국으로 일본으로 전래된 고대문화의 흐름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청은 삼국시대 고문벽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역사가 오래 되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 단청은 거의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왜냐하면 단청의 색소는 거의 천연광물에서 채취하였기 때문에 그 수명이 수백 년 가지만 더러는 쉽게 탈색하여 백년 안팎에 다시 칠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화학안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색감은 아름다우나 예전의 단청처럼 은은하고 무거운 맛은 없으며 그 수명도 짧은 것 같다.특히 공기의 오염이 단청의 수명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http://www.ihelles.com(한국의 美-丹靑) 단청의 유래에서 참고2) 단청의 건축물별 특징■.사찰건축남아있는 거의 대부분의 목조건물은 임진란 이후에 재건된 것으로 단청의 유구가 풍부하지만 조선 초기에 이어지는 고격한 맛은 많이 감소되었고 문양의 구성과 장식이 복잡한 것은 물론 다채로운 색조의 대비와 극도로 화려함이 성행하였다. 색채의 사용이 매우 원색적, 표현적이며 다채롭다.■.궁전건축정적이고 웅건한 맛을 느끼게 하는 의장적 특성이 있고, 독특한 권위적인 상징무늬와 색채가 호화로우면서도 은근히 기품을 준다.■.유교건축검소하고 검양하며 그러면서도 웅미, 건실한 의장이 특징이다. 주로 긋기 단청으로 고상하게 장식하고 성전의 기품을 나타내기 위해 부분 적으로 모루단청을 첨가하여 의례적인 정신을 강조하였다.{ {http://www.ihe장식에 있어서도 색조는 역사적으로 민족성과 생활감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자연환경과 생활감정에 순응하는 색조의 기호는 변천되어 시대성을 지니기도 하였지만 우리의 독자적 감성과 표현수법의 특이성을 나타내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고대의 색조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보여 주는 다종다양한 색채는 선조들의 색채감각이 면밀하고 우수함을 나타내고 있다. 지하건설물이기는 하지만 평양 쌍영총과 안악 제 2호분의 벽화에 보이는 전각도(殿閣圖)의 기둥의 문채를 보면 색동저고리의 색조와 같이 여러 색을 규칙적으로 나열 반복하는 형식으로 하여 색깔이 율동성을 갖도록 표현하였으며 각종 장식도안의 색채의 용법 또한 선명하고 미려하게 구사하고 있다. 고분벽화에서 색의 대비는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백색을 잘 써서 다른 색의 효율을 높이고, 천장화 등의 색조를 둔화시키는 먹석에는 선의 명확성과 색조의 강조를 위하여 먹색 밑에 가는 분선을 받쳐서 문양도색이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흑백대비 또는 보색대비에 의한 당식적 표현수법은 단청에서만이 아니라 건축 기물 의상에도 적용시키고 또 계승되어 온 것이다. 지붕마루(용마루 추녀마루 합각마루 등)의 흑색와색에 백회를 발라서 얻는 미적 효과, 복장에서 흰 동정 끝동 등의 화려한 율동미를 얻으며, 자개 백동장식수법 등에서도 나타나는 이러한 수법은 우리 고유의 감정기화와 생활습성에 결부되어 독특한 표현수법으로 발전하여 온 것이다.■고래대의 단청색고려대에는 단청화공들이 색조의 구사법이 완숙되어 미적 조화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때의 화공들은 외광(外光)을 받는 기둥에는 붉은 색을 칠하여 힘과 능력을 강조하고, 추녀나 처마부분에는 녹청색으로 처리하여 그늘진 곳의 명도를 높여서 전체조화를 이룩하였다. 또 동일부재라도 광선을 많이 받는 옆면에는 각종 색을 넣어서 미려하게 장식하고 그늘진 밑면에는 명도가 높은 붉은 미색을 써서 공간미와 율동미를 더하였다. 즉 위는 푸르고, 밑은 붉게 소위 상록하단(上錄下丹)의 원칙을 지킨 것 같다.■조선대의 단청색조.ihelles.com(한국의 美-丹靑) 단청의 색조 조선시대 단청의 색계열표,한국의 단청(곽동해저 학연문화사) 146~153 참고,5)단청의 기본 빛의 순서와 종류{빛의 순서빛의 종류초빛장단육색삼청황양록석간주2빛주홍주홍군청장간하엽다자3빛다자다자먹주홍군청먹양록(洋綠) 50여년 전에 쓰이던 계표(鷄票) 양록은 진채의 하나로 석록(石綠)과 같은 진한 빛이어서 색상이 선명하여 초록빛에 노란기 마저 들 정도로 눈부시게 맑고 푸르렀다. 그 후에는 일제 물감이 쓰이게 되었으나 위의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고 분말 입자도 거친 편이었다. 40여년 전(1960년)에 경복궁 경회루 단청보수공사를 전후하여 쓰이게 된 양록은 푸른 기운이 낮고 뿌옇기까지 하였다.[주기] 양록은 서양에서 온 물감이란 뜻인데 양록(兩綠) 또는 이록(二綠)으로 해석하는 듯하다. 채도로 보면 양록 양청 양주는 삼록 삼청 삼주보다 짙은 빛이다.뇌록(磊綠) 오래 전에는 단색 뇌록이 있어 조채하지 않고 쓸 수가 있었으며, 색상은 옥색 비슷하면서도 초록기운이 돋았다. 현재는 곱게 수비(水飛)한 백토에 수양청(水洋靑)을 섞어 끓인 것을 말려서 부수어 분말 안료로 하여 쓰기도 한다. 그 후는 패분(貝粉)에 양록과 양청(洋靑) 및 먹 황토 등을 혼합 조색하여 썼으며 근자(1970년대)에는 씨아닌 그린(cyanine green)을 사용하게 되었다. 예전 뇌록빛은 현재의 뇌록빛보다 뽀얗고 은은한 옥색 초록빛이었지만 현재는 초록기가 센 무거운 감이 드는 것이다.장단(長丹) 장단은 전에는 노란기가 들면서 눈부실 정도로 곱게 붉은 빛이었으나 1950년대 이후는 산화황토에 주홍을 혼합 조채하여 썼으며 그 후 생산되는 장단은 빛이 곱지 못하고 색상도 흐린 편이지만 근자에는 아주 좋은 안료가 생산되고 있다.양청(洋靑) 전에는 당청(唐靑)이라 하여 좋은 안료로서 빛도 고왔으나 근자에 와서는 양청으로 군청(群靑,prussian blue)과 코발트청(cobalt blue)에 티탄백 진분 정분 등을 약간씩 섞어 썼다. 이것은 오래 되면 극, 나선형, 격자, 만(卍), 아(亞), 삼원(삼보), 곱팽이, 직선 등이 있다.표3-1참고■당초문당초무늬는 초엽무늬라고도 하여 인동당초.싸리당초.보상화당초.포도당초.국화당초등 명칭이 있으나 그 넝쿨의 모양새나 잎은 같으면서 부분적으로 꽃무늬가 들어간 것을 뜻한다. 당초문의 형상은 곡선으로 뻗은 줄기에 잎새가 좌우로 휘어 돋아나고 그 사이에 싹이 돋거나 꽃.열매등이 맺힐 때가 있다. 보상화는 불교에서 숭앙하는 이상화로서 만다라화라고도 한다. 이것은 당초문과 같이 넝쿨에 돋을 때와 한 자리에 족생할 때가 있는데 보상화 잎은 줄기의 안팎에 교대로 붙으며 줄기를 감아 도는 형태로도 한다. 표3-2참고■.자연문ㄱ.천문 : 일.월.성진 등을 문양화하여 천문과 오행설 또는 신앙이나 인간의 바램에 합치되는 문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음양의 태극문, 십이지신상은 동물의 용모로 신격화 착의로 표현되며 방위신은 형상과 빛깔로 구분 표현된다.ㄴ.지리문 : 자연의 여러 현상을 사실적으로 또는 동안화하여 나타낸다. 그 중에서도 구름 .물결.번개.화염 등은 지상의 저승 즉 현실과 내세의 가교로서 도안화되고 있어 회화.단청.조각들의 중요한 대상이 되며 그 주위환경을 조성하는 배경으로도 쓰인다. 용봉.비천.선인.비마가 하늘을 나르는 상태를 구름으로 공간을 표시하고, 어패류의 서식처인 바다.호수.폭포.냇물.파도등은 물이라는 환경을 표시하고 농경.수렵.생업의 배경으로 산야와 암석.수림이 묘사된다.ㄷ.구름무늬(雲紋) : 운문은 구름의 현상을 단적으로 표현하여 점운(點雲).비운(飛雲).유운(流雲).용운(聳雲).십자운(十字雲)등 여러 상태로 도안화하고 있으며 특히 고대의 유운의 화법이 율동적이며 미려한 것에 비하면 후세의 운문은 공간장식 또는 번잡성으로 쇠퇴한 감이 드는 것도 있다.표3-3 참고ㄹ.물결무늬(波紋) : 물결무늬는 파도무늬와 함께 사실적 묘사 또는 약식 도안화하여 표현되며 고대 애급의 것과 동양의 것은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ㅁ.암석.산 : 산은 수렵지역으로 고대분묘의 벽화에도 221쪽
    예체능| 2004.07.02| 14페이지| 2,000원| 조회(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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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석탑과 특징 평가C아쉬워요
    고려 석탑에 관해서....1. 들어가기한국 미술사의 수업을 들으면서 석탑이나 불상, 석등, 부도 등도 미술사에서 연구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처음 배웠다. 나는 이런 것들이 그저 고고학에서만 다루는 것인 줄 만 알고 있었다. 이유는 미술사라고 하면 그저 그림 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에 석탑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저 절에 가면 그저 있는 것이 석탑인 줄 알았고, 모든 석탑은 그냥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며 다 그 탑이 그 탑이거니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탑하나하나가 다 이유가 있고 그 배치 역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왔다. 그리고 또 탑의 부분부분이 모두 명칭이 있으며 그것이 목조 건축물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사실도 나를 놀라게 했고 그 모든 것이 기가 막히게 맞아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탑에 들어간 옛 선조들의 정성이다. 비록 종교적인 신앙적인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놀라운 정성과 혼이 느껴지는 듯 했다. 정말 사학과였던 나에게 좋은 경험이 있었던 수업임을 밝히며 이제 고려 석탑에 관하여 쓰려고 한다.내가 이제 쓰려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석탑에 대한 내용이다. 고려시대에는 국초부터 불교를 국시로 삼은 까닭에 앞시대에 비해 불교가 더욱 발전해 마침내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왕건의 훈요십조에 반영된 도참사상은 불교의 대중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석탑, 박경식, 연민사, p243훈요십조첫째로 우리나라의 대업은 반드시 여러 부처님의 호위하는 힘에 힘 입은 것이다. .......둘째로 모든 사원은 다 도선이 산수의 역을 가리고 점쳐서 개창한 것이다. .........{) 사료로본 한국문화사 이기백, 문현구, 일지사 p20이렇듯이 고려시대는 불교가 가장 화려하게 꽃 피웠던 시기이다. 국교도 불교였고 가장 완숙한, 아니 이미 완성된 불교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때문에 불교 미술품도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보나 미술품, 혹은 보물이라는 것들 중에 보인다. 하지만 나는 예술품이나 문화는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면 그 예술품이나 문화의 특성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통일신라가 기울면서 지방의 유지 세력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중앙이 부패하고 지방까지 손이 뻗치지 않자 지방의 유지들은 자신들의 세력들을 규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유지들과 영세 농민과의 이익도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조세에 대한 저항이다. 두 세력은 대항 관계가 있었지만 기존 공동체 원리의 해체와 더불어 국가의 지배체제가 모두에게 질곡으로 나타날 때는 정치적 변혁을 지향하는 세력으로서 결합하고 그 내부의 대항 관계는 부차적으로 처리된다. 이러한 수취체제에 대한 저항을 중심으로 한 호부층과 영세 농인사이의 관계가 제휴단계에서 일차적인 자위력이 형성되고 이차적으로는 공동체의 방어기능을 중심으로 자위력이 강화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 채웅석 - 고려전기 사회구조와 本貫制 1985지방 호부들은 스스로 장군을 자처하며 나름대로의 정통성을 성립해 가면서 세력을 키워 나간다. 그래서 결국 통일 신라말에 완성된 것이 바로 후백제, 고려, 신라의 후삼국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이것은 왕건의 세계를 보면 나타난다.호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스스로 성골장군이라 하고, 백두산으로부터 여러 곳을 거쳐 송악산의 왼편 골짜기에 이르러서 아내를 얻고..........{) 사료로본 한국문화사-고려편 ,이기백, 문현구, p13, 일지사이들이 이렇게 성장하면서 이들의 세력은 결국 신라를 멸망시킨다. 이런 여러 호부층들이 귀부{) 귀부란? 지방호족들이 자기 지방에 이익에 따라 강한 호족 집단에 포함되는 것을 말한다. 강 한 집단으로 혼처로나 인질로 자식을 보냄으로서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의 세력에 대한 권리 를 인정받는 제도이다. 후 삼국시대에 가장 빈번히 일어났으며 고려가 통합된 이후에도 왕건 은 이 호족세력을 감당하기 위하여 수많은 아내를 맞이했다. 후에 광종 때에 이르러 이 호족 층에 대한 숙통해서 볼 때 적어도 목종 4년 이전에 본관제도가 성립되어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통일 신라에도 기록은 있으나 본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혈연과 지연의 표기가 분리 되었있는 기록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본관의 성립은 호부층의 발전과 더불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성씨가 그 지역의 유력한 호부층임을 볼 때 혈연과 지연의 결합이라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고려가 지역 색이 강할 수 밖에 없었던 모습을 보여준다.살펴본 바 통일 신라때에 잠들어 있었던 지역간의 모습들이 통일신라말 국가가 흔들리면서 호부층(호족층)이 성장하게 되고 그리고 호부층 스스로의 권리의 정당성으로 내세운 슬로건이 나는 고구려의 후손이다. 나는 백제의 후손이다. 하며 나타난 지역색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것이 고려로 넘어가면서 중앙 집권화 되고 호부층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많은 정책들이 있었으나 이미 형성된 지역의 색깔 마저 누를 수는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지역의 유력자들에게 그 지역의 본관을 주고 그것을 승격시켜 주며 그들의 명예로서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본관제가 나타나게 된 것도 그 영향이 아닐까 싶다.이제 석탑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종교적 행사나 종교적 공사들을 하는데 있어서 향도{) 대표적인예로 김유신의 용화향도 가 있다. 하나의 종교결사의 의미를 띄고 있고 지역별로 조 직적으로 대규모 공사나 종교적인 행사등이 있을 때 동원되는 그룹들이다.라는 조직들이 지역별로 만들어져서 그것이 또한 지역 호부층과 연관된다. 따라서 통일 신라 시대에는 정부에서만 할 수 있었던 대규모 사찰과 탑 등의 조형물들이 고려시대에 오면서 지방 영세민과 유지들이 합동으로, 즉 지방 자체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하게 된다. 때문에 고여 시대에 석탑들의 모습이 앞에서 언급했던 지방적인 색체와 더해져서 고구려계, 백제계 석탑이 생겨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완전히 백제형 고구려형 신라형이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고려 석탑의 특징에 이 지방색이 더해 진 것초층 옥신에만 8면 중 4면에 감실을 마련하였고, 각층의 옥신석에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 받침의 수법은 각형(角形)과 큰 원호(圓弧), 각형의 3단으로 되어 일반형 석탑과 그 양식을 달리하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보륜까지는 돌로 만들었고, 그 위의 보개, 수연, 보주 등은 금동제이다. 각부에 균형을 얻고, 조법도 온화하여 고려의 다층석탑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고, 탑 앞에는 보살좌상을 안치하여 공양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1970년 10월에 시행된 해체 수리시 5층 탑신석에서 은제 도금 여래 입상을 비롯하여 많은 사리 장엄구가 출토 되었고 이때 1, 2, 6, 9층의 옥개석은 새로 조성 하였다. 한 편 석탑의 앞에는 한쪽 무릎을 꿇은 석조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팔각다층 석탑의 하나로 분포면에서 가장 남쪽에 건립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백제계 석탑역시 백제의 영토였던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건립된 일군의 석탑으로 미륵사지 석탑과 정림사지 오층 석탑을 양식적 근본으로 삼아 건립되고 있다. 이들은 옥개석의 양식에서 판석형의 낙수면석이고 그 밑의 받침이 별석으로 조성된 목조형식의 일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논문집 4집 한국석탑의 특수양식 고찰 (하)----정영호----단국대학교p84또한 옥개석이 마치 기와 지붕의 모양을 하고 있고 신라 계에 비해 옥개 받침이 넓다. 석탑의 조성이 발달할수록 부재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 이었는데 단지 백제계 석탑에서는 부재의 개별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 결국 백제계 석탑에서 보여준 부재의 개별화현상은 기본적으로는 목조 건축의 재현이라는 석탑의 근본 목적에 충실 하면서도 이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석탑----박경식---------연민사p249몇 개의 석탑을 보면서 그 공통적인 특징을 알아보자.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부여 무량사 오층 석탑,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비인 오층 석탑, 옥구 발산리 삼층석탑금산식과 구별하고 있다.우리나라의 석탑----박경식---------연민사p111이 가해지고 있다. 물론 고려식 석탑에도 표면 장엄은 보이고 있어 신라계 석탑의 특징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백제 및 고려식 석탑에서는 대부분이 단층기단을 구비하고 있지만 신라계 석탑은 2층 기단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연한 옥개받침, 완만한 낙수면, 예리한 전각의 반전 등에서 신라 석탑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석재의 조립 역시 기단부를 4매의 판석으로 조립하고 2내지 4매의 판석으로 갑석을 놓는다던가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일 석으로 구성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 우리나라의 석탑----박경식---------연민사p269고려시대에 건립된 석탑으로는 개심사지 오층 석탑, 보천사지 삼층 석탑, 구례 논곡리 삼층 석탑, 보원사지 오층석탑,광주춘궁리삼층석탑,광주춘궁리오층석탑등이있다{그림 보원사지 오층석탑{그림 보천사지 삼층석탑{그림 개심사지 오층석탑{그림 광주춘궁리오층 석탑{그림 광주춘궁리 삼층석탑위의 8 ~ 12까지의 그림들을 보면 2층기단에 신라석탑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매우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시원기에서 정형기까지 완성을 본 양식인 만큼 매우 안정감을 준다. 완만한 낙수면에 눈에 띄는 반전 역시 신라석탑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진 상으로는 잘 안보이지만 개심사지 오층석탑과 보원사지 오층석탑에 보이는 장엄 조식 역시 신라계 석탑이라는 사실에 일조를 하는 듯 하다.고려식 석탑고려식 석탑은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석탑이 아닌 고려시대만이 지닌 독자적인 양식을 갖춘 석탑을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석탑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확립된 양식에 근원을 두면서 고려 나름대로의 창작의욕과 예술적 능력이 발휘된 석탑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석탑----박경식---------연민사p281신라는 삼국통일후 고려시대와 거의 같은 영토를 지배 하였다. 그러나 오늘 날 남아있는 신라의 석탑은 지역적으로 경주 부근에 밀집해 있다. 그밖의 것
    인문/어학| 2004.07.02| 14페이지| 1,500원| 조회(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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