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기독교 - 아시아 8개국 선교역사Samuel H. Moffett,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Asia, Volume II: 1500-1900.Scott W. Sunquist, Dictionary of Asian Christianity말레이시아선교단체&선교사연 도중 요 내 용(선교방법)비 고로마 가톨릭1641포르투칼 선교사들을 추방1710가톨릭 억압의 완하로 새로운 가톨릭회가 창설1874팡코르 조약으로 인해 말레이 사람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제한조치가 취해짐.영국국교회챔버스 주교1870최초의 영국국교회 주교 챔버스가 싱가포로에 임명됨.로야펜발라벤드룸1871타밀의 교리문답 전도사 로야펜 발라벤드룸이 임명.영국 국교회 원주민 공동체 성장에 매우 중요한 사건.1980년 부제로 임명, 복음전도협회의 부분적 후원을 받아 영국 국교회 선교사들이 더 토착적이고 빨리 성장하는 해협정착지의 인도 공동체로 밀어넣어줌.영국국교회1786영국국교회가 말레이시아에 정착. 그러나 100년 이상이 지난 후에 어떤 영국국교회 주교가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때 그는 큰 실망감을 표현. 말레이시아에서 영국국교회는 로마 가톨릭 선교회와 감리교 선교회에 비해 뒤처져서 시야에서 사라진 것 처럼 보였다고 기록.W.G 셀라베어1887년말레이 반도에 첫발을 내딘 후, 말레이어로 된 새로운 성서번역에 헌신, 말레이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만국어로 된 찬송가들 가운데 가장 정교한 몇몇 찬송가들을 작곡.감리교 선교사1885최초의 감리교 전임선교사가 말레이시아에 도착1888제임스 토번은 벵골만을 가로질러 150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말레이시아와 자신의 원래 교구였던 인도를 모두 관리하는 최고의 감리교 감독이 되었다. 세계적인 감리교 선교 사업의 강점들 중 하나는, 필요할 때 아시아 내부에서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영토로 시기적절한 침투와 조직적 지원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감독 제도였다.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개신교 선교미국 감리교 선교사들로 판명1889말레시키기 위한 성경학교 설립1896대영제국이 이슬람 술탄 영지들 강운데 4개의 지역을 말레이주 연방으로 분류태 국(자유의 땅)선교단체&선교사연 도중 요 내 용(선교방법)비 고도미닉인,크루즈와 칸토1567가장 먼저 시암에 온 것으로 알려진 선교사들은 도미닉인, 크루즈와 칸토로 1567년 구 시암의 수도인 아유티아에 도착.1569버마가 시암의 수도를 점령했고, 선교사들은 버마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성당에서 참수 당함.예수회1606세퀴에라가 수도에 도착.그러나 약 3년 동안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1626예수회 선교사들이 지속적으로 거주 할 수 있게 됨.스페인 사람인 모레혼이 선교회의 수장이 되었고, 일본 기독교 피난민들을 위한 사역을 위해 일본인 선교사 닉시를 데리고 왔다. 이 피난민들은 그들의 고향의 박해로부터 피난한 것으로 아유티아에 거주하였는데 아름다운 성당을 건설하도록 허락받음.1628스페인 해적들이 시암의 해안을 따라 습격해 오기 시작하면서 외국인을 적대함. 그 후 4년 동안 외국인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서양인들을 신뢰하지 못했고 분개한 기독교 배교자들이닉시를 국외로 추방.발구아르네라1655두 번째 예수회의 선교는 시암 사역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예수회 서뇨의 수장으로 지명된 발구아르네라가 포르투갈 공동체를 위해 성당가 작은 산살바도르 대학을 세움.앤 헤셀타임 저드슨1817개신교와 시암의 첫 만남. 남편은 버마어로된 요리문답, 마태복음을 태국어로 번역. 세람포르에 있는 침례교인들에 의해 시암어 서체로 인쇄, 방콕으로 보내짐제이콥 톰린1828첫 개신교 선교사로 6개월 동안 사복음서와 마태복음을 시암어로 번역하였으나 시암에 오래 머무르진 않음.런던 선교회칼 구츨라프복음전도자, 언어학자, 의사칼 구츨라프1831성경전체를 시암어로 대략적으로 번역.데이비드 아빌시암의 첫 미국인 선교사이자 미국 해외선교위원회(ABCFM)선교사존 테일러 존스1833최초의 장기거주 개신교 선교사.윌리암 딘183511명의 신도들을 가진 중국인들을 위한 침례교회이자 시암최초의 개신교회를 위한 장로교 기숙사 학교 설립.1852년 소년들을 위한 주간학교 설립.장로교18584명의 안수 받은 미국인 선교사들로 노회를 구성.개종자 0명1851몽쿠트왕은 3개 미국 선교회(장로교, 침례교, 독립교단)여인들이 왕실 여성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도록 왕실을 개방.1830-1893귀츨라프의 성경 번역 후 66년만에 성경 전체 출판인도네시아선교단체&선교사연 도중 요 내 용(선교방법)비 고네덜란드 선교사 협의회1797네덜란드 선교사 협의회 설립. 인도네시아에서 개신교의 역사는 네덜란드 침략과 동인도 회사의 설립으로 시작.1798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지배 종식.네덜란드 식민지 정부가 지배권 획득.로마 가톨릭1808로마 카톨릭이 선교 사역 갱신 허락1820윌리엄 1세, 개신교회 연합 명령미국해외선교위원회1883~1834사무엘 문손과 헨리 라이먼 바탁족에 의해 살해당함. 탐험을 시작했으나 그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함. 그러나 그들의 순교로 바탁 기독교 개신교회틑 탄생.회중교회 선교사요셉 칼렐 캄1813영국 선교회인 런던선교회의 후원으로 자진해서 옴.민족지도자 훈련을 실시, 1885년 원주민 선생 양성학교로 발전.1854식민지 정부가 선교사드루에게 허가권 요청1858부호브가 신학적 이유로 NZG로 부터 사임.사임이유 : 내가 더 이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1860노예제도 폐지 : 회벨의 영향1981선교사 살해로 발리에서의 선교사 거주 종지부 찍음1890왕실 네덜란드 석유회사, 수마트라에서 석유생산시작캄보디아선교단체&선교사연 도중 요 내 용(선교방법)비 고가톨릭1950가톨릭이 선교를 캄보디아에 선교를 시작한 것은 16세기이며, 1950년까지는 십만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었다.첫 캄보디아 신부는 1957년에 탄생한다.캄보디아는 가톨릭을 핍박하였으며, 많은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순교하였다. 15년 동안 생존한 신자들은 지하로 들어갔다.주요 선교회예수회, 프란시스코 수도회, 파리이방 선교회 마리아 수도회 등1990정부가 공식적으로 첫 신학교가 시작되었다.버 마선교단체&선교사연 도중 요 내 용(선교방법)비 고필릭스1807윌리엄 케리의 아들 필릭스는 영국 침례교 선교회를랑군에 설립하려고 시도해 왔지만 실패.아도니람 저드슨1813저드슨 부부가 버마에 도착한다. 세람포르 영국 침례교도들에게 인도도 쉬운 선교지역은 아니였지만, 그들은 저드슨 부부에게 버마는 더 어렵고 위험할 것이라고 경고.저드슨 1850년 사망1817저드슨이 번역한 마태복음 800부를 포함 버마에서 최초의 인쇄물을 만들어 냄.182017년간의 미국 침례교 선교 사역 후 저드슨은 단 10명의 버마인 개종자들을 보고하였으나, 그는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버마어 문법책을 쓰고 성경 번역을 하였다.1823저드슨이 버마에 온지 10년만에 그 작은 교회의 인원이 18명으로 늘었고 마침내 신약성경 전체의 버마어 번역의 초고를 완성 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1824영국과 버마의 전쟁. 영어를 하는 미국인들이 너무나도 쉽게 적군으로 오해 받아 첩자라는 혐의 받음. 저드슨과 프라이스는 난폭하게 체포되었다.1826버마의 항복으로 수개월간 버마는 저드슨에게 평화 협정을 위해 통역자로 봉사하도록 강요.(조약에 종교의 자유를 넣고자 함)1834~1866침례교회 회원이 32년 동안 평균 8년마다 두 배씩 증가함.아도니람 저드슨1827저드슨은 초기 개종자 중의 한 사람인 노예의 빚을 갚아주고 해방시키면서 선교사로서는 처음으로 그들과 접촉.보드먼1828전직 강도였던 그 카렌족으로 열심이 눈에 띄어 보드먼이라는 새로운 선교사 부부가 함께 남쪽으로 보내짐.비(非)불교 카렌족으로 보냄아도니람 저드슨1834성경전체를 버마어로 번역함24년간 번역1835성경이 인쇄되고 출판됨.사라 커밍스1832물메인 북쪽 말라리아가 득실대는 살윈 강 계곡에서 카렌족 전도자들과 홀로 일하기를 택하나 2년내에 열병으로 사망엘라노르 매코머1835머나먼 버바 선교단체에 합류. 외딴 카렌족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안수받은 선교사들이 지도를 받을수 있을 정도로 양육시켰다. 그러나 5년 뒤에 정임금으로부터 선교를 허락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선교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예수회 선교회1616베트남에 온 예수회 선교회 선교사들은 5명의 일본인들을 대동하였다.초기 선교는 비교적 순조로워 슈란니에는 교회당을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곧 베트남인들로부터 박해가 가해지기 시작했다. 발단은 어느 해 한발로 농사가 안되자 미신적인 농민들은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옴으로 흉년이 든다고 외국인들을 원망하기 시작했다.프란시스토 수도회1621선교의 열매로 베트남 신자 82명, 일본인 신자 27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이들 선교사 중에서 프란시스토 수도회의 프란시스코 푸조모가 큰 열할을 함. 그는 이후에도 크게 선교하여 24년 동안 무려 12,000명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줌.18601861왕의 반 기독교 칙령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음1822~1841매우 많은 프랑스 선교사, 원주민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았으며, 1차 박해 또는 대박해라고 함.1848~18612차 박해로 재앙의 해들이라고도 하며, 57년~61년까지 4년간 5명의 대구목장들, 9명의 프랑스 사제, 116명의 안남 원주민 사제들이 순교를 당함. 약 10,000명의 지방 가톨릭 신자들이 투옥되고 순교자들의 총계가 40,000명에 달한다.1862,1874프랑스의 승리와 1874년 종교의 자유를 약속하는 최종 평화협정을 통해 가톨릭 미래의 기초를 놓은 반세기 동안의 죽음과 수교의 고통이 막을 내림.베트남의 개신교 선교는 로마 가톨릭보다 늦게 시작되었으며, 19세기에 영국 성서공회가 성경을 보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 개신교 목사가 프랑스어로 성경 보급과 선교를 함.교회설립은 못함.CMA1911CMA 에 의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1922~1940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많은 베트남인들을 개종시키고 교회를 설립함. 이 시기에 약 2만명의 신자들이 세례를 받음.베트남 정부의 기독교 정책은 억제와 개방의 이중성으로 베트남 교회 상황은 좀 복잡하며, 베트남 교회는 3부류로 나눌 수가 있는데 CMA 중심의 베트남 복음교회와 여기에 속
목 차Ⅰ. 들어가는 말 .......... 1Ⅱ. 이혼의 상승과 원인 .............. 21. 이혼율의 상승 ..... 22. 성격 심리적 원인 ................ 33. 경제적 원인 ......... 34. 종교적 원인 ......... 45. 사회적 원인 ......... 56. 성적인 원인 .......족원간에 상호적용이 원만하지 못하고 역할수행을 할 만한 능력과자원이 충분하지 못하면 가족 내에 갈등과 긴장이 극대화대어 가족의 화합은 깨어지고 가족의 병리현상을 초래하여 결국은 가족 단위가 해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현대의 가족 해체 현상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그것이 가장 표출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상이 이혼이다. 2000년도에 12만쌍이 이혼해 전년 11만 8천쌍보다 17% 증가했다. 이는 70년 1만1천600쌍이 이혼한 것에 비하면 10배로 늘어나고 하루 평균 329쌍이 이혼한 꼴이다.) 이처럼 한국의 이혼 상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것도 특정한 연령층이 아니라 전 연령층에서 가정의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혼이 증가한다는 것은 오늘날 가정의 위기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혼자들은 결혼 생활의 단절에 따른 상처를 지닌 채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혼자들의 상처에 대한 인식조차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혼의 원인과 성서에서 바라보는 이혼에 대한 관점, 그리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Ⅱ 이혼의율의 상승과 원인1. 이혼율의 상승한국 사회에서의 이혼은 전통적 가부장제도에 있었다. 여성의 순결은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져 왔으며 순결은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또한 강한 가족주의 가치관은 가문의 유지존속과 가족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가족구성원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따라서 이혼한다는 것은 가족의 해체이고 비극이며 가족구성원의 씻을 수 없는 수치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윤리관과 남녀관계에 대한 이중적 규범이 역사적으로 여성의 침묵과 순종을 강요함으로서 이혼을 막고 가정이 유지되는데 기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급속한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윤리관과 성차별적 규범이 현실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세기 후반 이후 우리 사적혼란으로 야기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전통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동일한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부부간의 신앙의 유형이 상이 할 경우 갈등과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신앙을 소유한 반면에 그 아내가 광신적이고 신비적인 신앙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그 가정은 기독교 가정이라 하더라도 부부간의 신앙적인 갈등이 발생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하여 부부갈등의 문제로 심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불신 가정의 경우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볼 때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사회는 가부장적인 전통사회인데 만일 아내가 기독교인이며 남편은 불신일 경우 아내는 남편과의 가정생활을 위해서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거나 감추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샤머니즘과 불교, 유교 등의 전통 종교와 토착종교의 신앙이 한국인의 삶의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남편이나 아내들이 그 배우자와 배우자의 가족들과 겪어야하는 갈등과 문제는 심각한 가정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실제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목회 프로그램도 연구되어야하는 교회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5. 사회적 원인가정을 이룬 부부들이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특히 한국사회는 가부장적인 대가족제도의 전통이 남아 있어서 아내들이 부부생활이외에도 ‘시댁’이라고 하는 가정 사회에 적응해야 하며 남편의 어머니와 남편의 누이들과 겪어야하는 문제와 갈등이 한국사회에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른바 고부간의 갈등으로 이혼하는 가정이 늘어가고 있다. 남편들은 직장이라는 사회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긴장, 심리적인 좌절감과 부담감 그리고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감과 그에 대한 부담감에서 오는 심리적인 부적응 등이 부부갈등의 사회적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배우자에 대한 불만과 자녀에 대한 기대의 불만족 그리고 사회적인 생활에 대한스스로가 경험하는 좌절감 등은 가정에 대한 무력감으로 이어지게 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나 이혼으로인해서 청소년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식하게 되며 부모 각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새롭게 평가를 하기도 한다.)특히 이혼남자의 경우는 자녀의 양육과 학교생활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혼여자의 경우는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에 대한 부담감이 클 것이다. 그리고 편부모로부터 역할모델밖에 제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건전한 태도를 길러주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2. 경제적인 문제이혼 후 가장 큰 과제는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하는 경제적 대책문제이다. 이혼 여성의 경우는 전 남편으로부터 받은 재산이나 양육비에만 의존해서는 안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생활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양쪽모두 남성과 여성의 보완적 역할이 결핍된 상태이므로 일상의 생활정리와 경제적 자립을 구체적으로 해결해야하는데 어떤 경우는 빠른 재혼을 통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목적이 되어 재혼한다면 과거의 악순환을 그대로 안고 있는 상태만 될 뿐이다. 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이혼한 남자들은 이혼한 여자에 비하여 집안일과 일상적인 일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갖는다고 하였으며, 이혼한 여자들은 이혼한 남자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악화된 상태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경제적인 문제는 하나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자녀양육 문제와 정서적, 육체적인 문제와 복합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3. 정서적인 문제새로운 인생을 사는 방법으로 이혼을 선택한 이상 전 배우자와의 감정정리를 잘하고 현실생활에 잘 적응해야하는데 그러기위해서는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감정을 조절하여야 할 것이다. 이혼한 사람들 중 이혼 후에 경험하고 있는 문제 및 스트레스의 내용과 힘든 정도를 알아보면 외로움이나 개인적 실패감, 죄의식, 자기비난 등에 대해서는 남녀모두에게 비슷한 정도의 스트레스 양상을 드러냈다. ) 이혼 후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적 압박은 여자보다도 남자에게 더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즉 이혼 직후에는 여자에게 충격이 더 크지만 이혼 풍속은 간음하는 남자들을 양산해 내는 구조임을 비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마태복음 19장 3-9절, 마가복음 10장 2-12절에서 또 한번 이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이 두 본문은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의 질문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에 대한 예수의 답변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을 본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창세기 1장 27절과 2장 24절을 가지고 답변하셨다. 즉 이혼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라고 한 것도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였기 때문이지 본래 창조질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여기서도 예수의 관심은 어떤 경우에 이혼을 허락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허락이 되지 않겠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복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예수께서 이혼의 가능성을 부정한 의도는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성경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가 조건으로 깔려 있다. 이러한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이혼의 불가함을 역설할 수 있는 현실적 근거가 주어질 뿐 아니라 실제로 이혼을 하지 않는 결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7장 10-15절에서는 이혼에 대한 바울의 권면이 나온다.바울의 권면도 역시 이혼은 불가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하나의 예외조항을 두는데,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해서 살 경우 그 믿지 않는 자가 살기를 좋아하면 함께 살고, 만일 살기를 싫어하면 헤어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믿는 자의 입장에서는 먼저 결혼의 관계를 파괴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3. 이혼에 대한 세 가지 입장성경은 일관되게 결혼의 영속성과 신성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이혼이 불가피한 경우 이혼을 성령 훼방 죄처럼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정죄해서도 한다.
비평적 연구방법1. 본문비평 (원문에 가까운 본문으로 재구성하는 작업)- 텍스트의 복원과정에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개입하는 연구방법(역사비평의 기초)- 성경은 원문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가깝게 해석- 히브리 성경, 헬라어 성경(70인역), 아랍어(탈굼), 시리아(페쉬타) 번역본 사용1) 과학적인 비평, 분석a. 현재 남아 있는 사본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여 군집별로 가르고 묶어놔야 한다.b. 각사본의 역사적 배경을 추적ㆍ현존하는 텍스트 유형화 작업2) 수많은 텍스트들을 포개어 읽어라.- 각 텍스트사이의 차이점을 발견, 그 사본들 간의 차이를 면밀하게 비교, 검토한 뒤에 어느 텍스트가 원본에합쳐지거나 더 근접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림a. 어느 어휘나 문구가 다른 사본군에서는 나오지 않거나 어순이 달리나오는 경우b. 선택된 어휘가 다르게 나오고 문단이나 문장 전체의 배열이 상이한 경우c. 문단이나 문장 전체가 일부 사본에만 등장 할뿐 다른 사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우3) 판단의 준거로 작용하는 규칙a. 본문의 연대기적 질적 가치의 착안- 사본들끼리의 비교에서 연대가 오래된 것일수록 신뢰도가 높다는 기준- 사본이 필사되는 과정에서 후대의 것이 선대의 것에 비해 더 많은 교정과 편집의 기회에 노출되어 있었을것이라는 추론에 의거b. 본문의 양적ㆍ수적 가치에 편승한 결과- 특정형태의 문구나 문장, 어휘가 다수의 사본에서 탐지되면, 소수의 사본에 나오는 것보다 신빙성이 높다는 기준c. 세부적 기준- 짧은 현태의 텍스트가 비교적 긴 텍스트에 비해 신뢰도가 높다.- 난해하고 어색하게 보이는 텍스트가 잘 정돈된 텍스트에 비해 원문일 가능성이 높다.2. 문학비평(용어상의 모순, 문체상의 반복, 본문의 단점)- 문학비평은 성경 기자들이 사용한 문학적 인습과 문체를 규명하고 이해하려고 시도1) 구약역사서의 특징a. 익명성이 강하다. → 유대인들은 옛 선지자들의 글이라 불렀다.- 성경 기자들은 자기 신원을 밝힐 만한 단서를 나타내지 않음 →전지하신 분의 각도에서 써나가고 있기 때문- 경우에 따라서는 신원을 밝힘(설화자가 하나님의 태도나 생각을 나타내야 할 경우)2) 성서 기자들의 목적- 하나님의 뜻을 설명→ 왜 하나님이 한 왕을 택하시고 다른 왕을 배척하였는지, 왜 이스라엘이 어느 때는 번영하고 다른 때는 쇠퇴했는지3) 희브리 산문체의 특징a. 포함법 : 한 문장의 시작과 끝을 같은 단어 내지 귀절로 열고 닫는 것이다.b. 반복법 : 2중어적 또는 3중어적 문장 형태에서 가능하며, 교차대구법인 "압바" 문장 형태가 있다.c. 반복서술 : 교차대구법의 확대된 형태로 이야기의 후반부가 구조적으로 전반부를 반사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3. 전승사 비평1) 전승사 비평의 정의와 의의a. 성경의 어떤 역사 혹은 전승이 처음 언급된 때부터 그것이 기록된 때까지 그 내용의 발전을 추적하는 일ex) 아브라함에 이야기들은 후대에 창세기의 저작자가 사용한 어떤 기록된 자료로 구체화되기 이전에 구전되었다.b. 문서화 되기 이전의 구두 전승단계 추적(본문으로 쓰여지기 이전에 어떻게 구전되었는가?)c. 현존하는 자료로부터 탐지하여 재구성하되 그 본래의 형태와 규모, 구조, 출처를 해명해야 한다.2) 전승사 비평의 세 가지 연구흐름a. 양전승의 전달자들과 그들의 제도상의 임무에 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전승의 진정한 의미와 고대 이스라엘인의삶 속에서의 전승의 생생한 역할에 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b. 어떤 전승과 관련된 지역이나 지방은 전승사의 흥미 있는 주제→ 전승의 지방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의 삶에 영향을 준 전승의 의미와 기능이 무엇인지 알려준다.c. 전승이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 구전의 형성과 그 전달의 성격과 역동성을 연구한다.4. 편집비평 (누구에 의해서 언제, 왜 기록되었는가?)1) 편집비평이 하는 일→ 편집자가 자료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무엇을 생략하고 무엇을 덧붙였는지, 특별한 선입관이 무엇인지 규명해내는 것2) 편집 비평의 특징a. 자료비평이나 양식비평과 단절된 것이 아닌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b. 자료비평을 대상으로 한다→ 저자가 사용된 자료의 유무와 그 내용을 대상으로 한다.c. 편집 비평의 방법은 양식비평의 연장선상에 있다.→ 저자가 처함 신학적 삶의 자리를 연구한다.5. 양식비평 (문서화된 본문의 문학 장르 파악)1) 양식 비평의 정의→ 구약성서 각 책에 사용된 문학적인 장르를 규정하고 분류하며 각 장르들이 구전적인 형태에서 기록적 형태로
7장 하나님의 보편계시계시의 성격인간은 유한하고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 자신의 계시가 인간에게 나타나야 한다. 이 계시에 대한 두 가지 분류가 있다. 일반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의 모든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전달하는 것이고, 특별계시는 특정한 시간의 특정한 사람들에게 하나님 자신의 특별한 전달과 나타남을 수반하는데, 그 전달과 나타남은 오직 거룩한 문서들을 참고함으로써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일반계시의 주제(Loci)일반계시의 전통적인 주제는 세 가지, 즉 자연과 역사와 인간의 내면이다. 성경은 창조된 물질의 이치를 통해서 친히 이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식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주장한다. 자연 시편들과 같은 수많은 다른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그가 지으신 세계 내에 자신에 대한 증거를 남겨놓으셨음을 암시하고 있다. 두 번째 주재는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목표를 향하여 움직이신다면, 역사의 일부분으로서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그의 사역의 방향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주제는 하나님의 가장 존귀한 창조물인 인간자신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일반계시는 인간의 육체적인 구조와 정신적인 자질들 속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성은 인간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자질들 속에서 가장 잘 인식된다.또한 일반계시는 인간의 종교적 본성에서도 발견된다. 모든 시대의 모든 장소에 있는, 모든 문명 속에서 사람들은 그들 자신보다 더 지고한 실재가 있다고 믿어왔다. 그 성격은 종교간 상당히 다르고, 거룩한 것을 예배하는 보편적인 경향 속에서 손상되고 왜곡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고 작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과거의 지식이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일반계시의 현실과 유효성자연신학자연신학은 자연과 역사와 인간의 인격과 같은 영역들 속에 유효하고, 객관적인 하나님의 계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영역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어떤 참된 지식을 실제로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모든 진리는 두 영역중 하나 논평들에 대하여 좀 더 일관성이 있는 것으론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에 관한 객관적이고 유효하고 합리적인 계시를 자연과 역사와 인간의 인격 속에서 주셨다는 견해이다. 비록 인간의 타락에 의하여 상당히 훼손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계속되는 섭리에 의해서 이미 존재하고 있다.그러나 바울은 인간은 일반계시 안에서는 하나님을 명백하게 인식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죄는 일반계시의 효율성에 이중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죄는 일반계시의 증거를 손상시켰다. 조물주에 대한 증거는 희미하게 되었다. 죄와 타락의 더 심각한 결과는 인간 자신에 대한 것이다. 로마서 1:21에서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만 이 지식을 거절하였고, 눈멀음이 따라왔다고 말한다. 이 눈멀음을 사탄의 작용으로 돌리고 있다. 이 눈멀음은 의심할 바 없이 피조물들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일반계시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지식에 이르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칼빈이 “믿음의 안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안경을 쓰게 되면, 분명하게 볼 수 있다.일반계시와 인간의 책임하나님께서 인간을 정죄하시는 것이 의롭다면,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몰라서 죄를 범한다면, 그것은 특별계시 없이도 인간이 하나님의 정죄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부의 계시로부터 그 기준에 따라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모든 사람들이 가진 하나님지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범죄 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할 것이다.그리스도와 그의 대속 사역에 관한 교리는 이 백성들에게 충분히 계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구약의 백성들은 죄의 용서에 대한 준비가 있다는 것과, 또한 자기들이 그들 자신의 공로에 입각해서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용납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일 것이다.그렇다면 로마서 2:1~16에 나오는 바울의 주장으로부 입장은 역사를 통한 계시로서 규정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신정통주의의 견해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일해 오셨고,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셨다. 즉 계시는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표명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의 말과 행동들을 통하여 왔지만, 그 말들과 행동들은 그 자체가 계시는 아니었다. 계시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오시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역사적 사건은 불투명하다. 따라서 성경의 기사 자체가 계시는 아니다. 하나님은 계시에서 전적으로 주권적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께 자신을 계시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소망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다.3. 계시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마지막 입장은 계시를 역사로서 본다. 사건이 곧 하나님의 계시였고 또한 계시인 방식으로 역사 속에서 활동하셨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만이 아니라, 전 역사를 하나님의 계시로 간주한다. 그렇게 하면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구분을 없애 버렸다.하나님의 언어계시의 두 번째 주요한 양태는 하나님의 언어이다. 구약성경에서 아주 일반적인 표현은 “ 여호와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는 진술이다. 예언자들은 그들의 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은 단순히 행동들을 통해서 자신을 증거 하시지 않는다. 그는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자신과 그의 계획들과 그의 뜻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어가 어떤 양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어떤 양태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신체적 부분을 갖지 않으시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떤 언어도 갖고 계시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어가 직접 계시되었다기 보다는 매개된 계시라는 사실을 지시한다.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떤 사건에 대한 해석이었다. 여기서 제시되는 논점은 사건뿐만 아니라, 그 해석도 하나님께로부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여기에서 베드로는 구약성경은 인간적인 기원이 아닌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감동하심을 입었거나 산출된 것이다. 저술의 추진력은 성령으로부터 왔다.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기에서 받는 인상은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운을 사람에게 불어넣으신 것과 같이 성경이 하나님에 의하여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둘째, 초대교회의 설교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구약성경에 대한 유사한 이해를 발견하게 된다. 사도행전 1:16에서 베드로는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라고 말하고, 이어서 유다의 운명과 관련하여 시편 69:25와 109:8에서 계속 인용하려 한다. 이것은 예언자들 자신이 제시한 증거와 잘 조화된다. 그들은 반복해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선포하였다. 이와 같은 진술들은, 예언자들에게서 다시금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것을 알고 있었음을 지시하고 있다.마지막으로, 우리는 구약 성경의 글들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 스스로 취하신 입장을 주목한다. 부분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성경관에 대하여 언급하신 방식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성전과 성경이 예수시대의 이스라엘에서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그의 태도와 성전에 대한 그의 태도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대조가 나타난다.성경 저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하였으며, 또한 인간에 대한 그의 메시지라고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영감교리를 표명하는 데서의 문제점들1. 우리는 실제로 영감 교리를 형성할 수 있는가? 우리는 성경이 어떻게 영감 되었는지를 묻지 말고 오히려 성경이 영감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우리는 성경의 본성에 대한 절대 교리의 토대위에서 료에 기초하여, 성경의 영감이 단어의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특성들도 고려해 본다면, 약간 다른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조화시키기 아주 어려운 연대기적인 문제들있다고 주장한다. 사도행전 7:4에서 스데반이 아브라함이 그 아버지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을 떠났고,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죽기 약60년 전의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비글은 신약성경에 있는 인용절들은 영감과 권위성의 충분한 증거가 아니라고 결론짓는다.영감의 방식영감이 축자적이라고 결론을 내릴 때,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고 정확하시고 성경을 영감 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전적으로 특별한 용어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씀이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단어에 대비되는 사상의 조화가 정확한 것이라면, 단지 하나의 단어만이 쓰이는 대목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 개념이 생각의 명료성이나 분명함의 정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명심하라.여기서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성경 저자의 생각들을 지도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하시에 그의 생각들이 우리들의 생각보다 더 정확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이유 없는 것이 아니다.하나님께서는 저자가 그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특정한 단어들을 사용하도록 지도하시지만, 이 관념 자체는 아주 일반적일수도 아주 특정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성경이 언제나 최대한의 확대나 상당히 세세한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상세삼이나 특정성의 정도와, 그러한 확대의 수준에서 그가 작정하신 개념만을 표현할 것이다. 이것은 때때로 성경이 우리가 기대하거나 소망하는 것만큼 그렇게 상세하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우리는 영감이 축자적이며, 단어의 선택에까지 미친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축자적이지만은 않은데, 그 이유는 때때로 생각들은 이용될 수 있는 단어들 보다 더다.
삶을 변화시키는 가르침? 내 용 요 약삶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은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는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직접 교육자로서 가르쳐온 기술을 집약하여 총 7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교사(teacher)의 원리, 교육(education)의 원리, 활동(activity)의 원리, 전달(communication)의 원리, 마음(heart)의 원리, 격려(encouragement)의 원리, 준비(readiness)의 원리가 그것이다.1. 교사의 원리(The Law of the Teacher)저자는 유능한 교사란 자신이 계속해서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즉 자신이 가르쳐야 할 것을 모른다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 또한 항상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만일 내가 오늘 성장하기를 멈춘다면 내일 가르치기를 멈춘다”이 말은 교사 또한 영원한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비록 같은 말씀을 보더라도 그 말씀을 이해하는 정도가 계속해서 변해간다. 또한 교사는 항상 변화하여야 하며, 정신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님은 지적영역의 성장을 위하여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꾸준한 공부와 독서 생활을 하라. 만일 당신이 독서하기 위해 1시간을 할애한다면 처음 30분은 읽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30분은 읽은 것을 되새기는 데 사용하라.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을 되새김으로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많은 것을 아는 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얻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앞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요인이기 때문이다. 둘째, 계속 교육 과정에 등록하라. 당신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이 가진 기술도 발전시키기 위해 계속 교육과정에 등록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교육 과정은 당신 자신의 개인적인 성경 공부 프로그램이다. 셋째는 당신의 학생을 알아라.그들 연령층의 욕구와 일반적인 특징에 관해 권위자가 되라. 그리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라. 학생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한 최대한 알아야 한다.2. 교육의 원리(The Law of Education)교사는 학습자의 자발적인 활동을 자극하고 지도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교사인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고 당신이 가르친 결과 학생이 무엇을 배우느냐 하는 것이다. 올바른 교사란 단순히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학습자의 자발적인 활동을 자극하고 지도”할 수 있는 자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는 “학습자가 스스로 배우고 행할 수 있도록 아무 것도 말해주지 말아야 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즉 교사는 학생을 자극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이며, 학생은 탐구자, 발견자, 행동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우는 이가 긴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올바른 긴장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심리학자 아브라함 마슬로우의 학습의 4단계를 따라 단계적으로 학습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1단계, 무의식의 무능력은 무지하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단계이며, 2단계 의식의 무능력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있는 것이다. 3단계 의식의 능력은 무엇을 배우고 실행하는 단계이며, 4단계 무의식의 능력은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데도 그 능력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상태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학생들을 처음의 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학습자들이 적절한 긴장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교사들은 학생을 가르치기 이전에 분명한 목표를 정해 놓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 목표를 세 가지로 볼 수가 있다. 첫째,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라. 이는 한 개인을 영구적으로 변화 시킬 수가 있다. 만일 행동만 변화 시킨다면 그는 자신이 왜 변화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배우는 방법을 가르쳐라. 배움이란 언제나 하나의 과정이다. 그것은 항상 계속되고 있다. 살고 있는 모든 순간에 배운다. 배움의 방법을 모른다면 어찌 제대로 배우고 그것을 습득 할수 있겠는가? 셋째,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치라. 교사의 의무는 빠르고 쉬운 해답 즉 삶의 현실에서는 통하지 못하는 이론에 불과한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생각하고 토의한 문제 때문에 해답을 찾고 싶어하던 문제 때문에 머리를 긁적이며 강의를 끝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학생 스스로가 해답을 찾게 하는 것이다.3. 활동의 원리(The Law of Activity)“최대의 학습은 항상 최대의 참여에서 나오는 결과”라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즉 학습자가 관계하는 활동은 반드시 의미심장한 것이어야 한다. 이 조건은 교육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암시해 준다. 즉, 학습활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기독교 교육은 듣기 위주로 되어 있다. 그래서 가끔 비효과적일 때가있다. 만약 여기서 듣기에 보기를 덧붙인다면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더 높아진다. 그래서 시각자료가 중요한 것이다. 그냥 재미있기만 하고 바쁘기만 했다면 무가치한 것이라는 말이다. 반드시 학습의 목표를 정하고 그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도적이면서도 질적으로 수준이 높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자는 어떤 과목을 가르치고 있든지 다섯 가지 형태 모두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첫째, 독재가 아니라 지도가 제공되는 활동이다. 학생은 교사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는 자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학습을 할 때에 교사가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시작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을 주입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교사는 학생이 원하는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교육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라고 말한다.둘째, 기능과 적용을 강조하는 활동이다. 즉, 학습자가 방금 배운 것을 바로 사용하게 하는 활동이다. 이것은 한 번에 소화하여 사용할 수 있는 이상을 한꺼번에 가르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창고교육이라고 칭하는 것을 늘 사용한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나에게서 이 모든 지식을 얻어야 하며 그것을 지금 전부 얻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16:12) 셋째는 계획된 목적을 가진 활동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목적은 결과를 결정한다. 목표로 삼은 것을 성취하는 법이다. 이 말을 유의하라. 시간을 때우기 위한 활동은 생각하지도 말라.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 중에 많은 것들이 무의미한 것들이라고 한다. 만일 시간보내기와 동일한 부류에 속하는 것이라면 단순한 오락과 같다고 말한다. 넷째,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도 관심을 두는 활동이다. 관심을 둠으로써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믿는가를 알 뿐만 아니라 왜 믿는가도 알게된다. 만일 학생에게 결과만 제시 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한계로써 그들을 제한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제시하면 무제한의 길을 학생들에게 열어주는 것이 된다. 즉 학생들이 교사를 능가하고 교사보다 더 유능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올바른 학습활동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문제 해결 상황을 포함하는 실제적인 활동이다. 학생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만일 우리 자신의 문제를 그 해답의 주인이 아닌 학생들이 해결하도록 교실로 가져오면 우리는 거짓 신앙을 만들어낼 위험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진정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늘 살아 움직이는 활동을 하고 그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4. 전달의 원리(The Law of Communication)전달은 ‘교사의 존재이유이며 가르치는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전달”(communication)이란 단어는 라틴어 “communis"에서 파생된 것으로 “공통의”(common)이라는 뜻이 있는데, 전달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반성과 공통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공통성이 크면 클수록 전달의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진다. 또한 모든 전달은 ‘지, 정, 의’ 즉“생각, 감정, 행동”의 세 가지 필수적인 구성요소를 갖는데 거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느끼는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전달자로서 자신이 어떤 일에 대해 철저히 알고 깊이 느끼고 그것에 대해 모순 없이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뛰어난 전달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며, 전달의 출발점이다. 우리들은 지적인 요소만으로 전달하는 것을 만족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전달에는 언제나 감정적 요소인 느낌과 흥분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르칠 때 마다 교사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학생들은 무엇을 알기 원하는지, 교사는 무엇을 느끼고 있으며 그들은 무엇을 느끼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교사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를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5. 마음의 원리(The law of Heart)“영향력 있는 가르침은 머리에서 머리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가슴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원리로서 히브리어에서 “마음”은 인간의 전인격, 즉 지성, 감정, 의지를 의미한다. 마음은 바로 변덕스러운 단어 중의 하나로 감상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단어를 부정확하게 사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명기6:4-6은 마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성경적인 배경을 밝혀 주는 본문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라고 말하였다.소크라테스는 전달의 본질을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라는 3가지 개념으로 요약하였는데, 에토스란 인격의 됨됨이는 교사로서의 목적, 즉 가르침을 달성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 되기에 당신에게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교사를 신뢰하면 할수록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게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