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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적 내용 - 남북관계와 통일 전망
    1. 남북관계와 통일전망(1) 남북 관계1) 북한의 대남시각북한이 남한을 인식하는 시각에는 대표적으로 ‘미국의 식민지’론과 ‘파쇼’론이 있다. 해방 직후 김일성은 미국이 한반도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고 ‘괴뢰’ 정권을 세우려 한다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김일성의 시각은 이후 북한의 대남 인식 기초가 되었고, 이것이 미국의 식민지론이다. 남한을 식민지로 보는 시각 때문에 북한은 우리가 일제식민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항일무장독립투쟁을 한 것처럼 ‘미제식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항미무장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해 왔으며 북한이 미국에 대한 도발을 지속하고 핵?미사일 문제로 미국과 지속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며 ‘선군정치’를 지속하고 있는 이유도 이로부터 출발한다. ‘민족론’ 및 ‘민족해방론’을 주장하는 이유도 유사하다.그리고 남한정권에 대한 북한의 기본인식은 ‘파쇼’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북한은 기회 있을 때마다 ‘파쇼타도’와 ‘민주정권 수립’을 주장한다. 민주정권 수립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파쇼론’은 남한 최고지도자를 인정하지 않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도록 한다.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북한은 미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해방’과, 파쑈적 반동세력에 대한 ‘혁명’을 통해 남한에서 공산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대남전략의 목표로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대남인식과 전략목표는 1990년대 이후 대내외적 환경변화로 체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차츰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불어 닥친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인한 세계정세의 변화와 계속되는 북한경제의 발전지체현상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존 북한 대남전략의 상당 부분을 해체 시키는 한편,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도 변화를 요구하는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남조선 혁명을 통한 공산화 통일’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앞서 당면한 생존전략 차원에서 체제유지에 주력하는 전술적 변화를 모색하게 만들었다.2) 남한의 대북 시각남한이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한통일정책민족의 실질적 통합, 민주적 합의, 공존공영, 민족복리한반도의 공산화,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통일 접근 방법자주적, 평화적, 민주적 방법자주적 방법, 공산당만이 주도통일과정화해 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완성남조선 혁명-흡수적화통일전제조건없 ??음선결조건 제시남북교류당장 실시연방제 실현 뒤상호인정실체로 인정남한 체제 부정외세에 대한 입장주변국의 이해 확인외세의 개입 반대4) 남한의 통일 정책1. 통일 정책의 일관된 흐름남한의 통일 정책은 정권 교체에 따라 변화되었지만 천명해오던 기본 이념과 방법은 차이가 없었다. 기본 이념과 방법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통일이며 통일 문제는 '같은 민족은 마땅히 함께 살아야 한다.'는 당위론적 문제에 머물러 있었다.2. 통일 정책의 변천 과정대북 인식통일 방식발표 계기 및 방안제1공화국(1948-1960)* 실체 불인정* 실지 회복의 대상* 유엔 결의 남북한 총선거* 북진 통일론* 정부 수립 선포* 제네바 정치 회담(1954)제2공화국(60-61)* 북진 통일론 폐기* 유엔 감시하에 총선거* 외무부 장관 7개황 외교 정책 성명(1960)제3.4공화국(61-79)* 실체 불인정* 실지 회복의 대상 - 실체 이정, 평화 공존의 대상* 실지 회복에 의한 국토 통일* 선건설 후 통일 정택* 남북한 자유 총선거* 평화 통일 구상 선언(70)* 7.4남북 공동 성명(72)* 6.23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73)* 평화 통일 3대 기본 원칙 천명(74)제5공화국(80-88)* 실체 인정* 평화 공존 대상* 통일 헌법에 따른 총선거* 민족 화합 민주 통일 방안 천명((82)제6공화국(88-93)* 상호 체제 인정* 선의의 동반자* 남북 연합의 과도 단계를 거쳐 통일 헌법에 의한 총선거* 7. 7 특별 선언(88)*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89)문민정부93-98)* 상호 체제 인정* 화해 협력의 대상* 화해.협력 - 남북 연합 - 통일 국가 완성의 3단계 접근 방식*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94)국민의 정부(98-03 자유로웠다. 하지만 곧 장면 정권은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고, 통일을 위한 실력 배양을 약속한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전복되어 논의의 장을 사라졌다.(3) 제 3 공화국(1961-1972)박정희 대통령은 선건설 후통일 원칙 천명하며, 우리의 지상 명제는 바로 '조국 통일 ' 이고, 조국 근대화야말로 남북통일을 위한 대전제요, 중간 목표라고 주장했다. 통일의 꿈이 근대화에 있고 근대화의 길이 경제 자립에 있는 것이라면 자립은 통일의 첫 단계이기 때문에 먼저 국가를 근대화 시킨 후 통일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박정희 대총령은 197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선의의 경쟁'을 강조한 '평화 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구상' 을 발표했고, 1972년 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7 . 4 남북 공동 성명은 최초의 남북한 합의 문서로 '자주 .평화 .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공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남북 대화는 북한 측의 일방적인 중단 선언으로 오래 지속하지 못하였다.(4) 제 4공화국(1972~1979)박정희 대통령은 제 4공화국에 들어서서 6 .23 선언으로 평화 통일 외교 정책을 선언했다. 이 선언을 들여다보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에 정치 체제가 있다는 현실을 인정했고, 극단적이고 경직된 기존의 대북관에서 다소 개방적이고 수용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이 의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대북관의 변화로 말미암아 1974년 8월 15일 발표된 평화 통일 3대 기본 원칙은 현재까지 우리 통일 정책의 기본 원칙이 된다. 이 3대 원칙은 한반도 평화 정착, 남북 간의 신뢰 조성,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 자유 총선거 실시를 말하며, 종전에 내새웠던 '선건설 후통일'이 '선평화 후통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5) 제 5공화국(1980-1988)5공화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적극적인 통일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는데, '남북한 당국 최고 책임자 간의 직접 회담'을 제의하고 구체적인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 1982년 1월 22일 발표된 민족화합 복으로 쌍방이 합의한 민족 공동체 헌장을 채택하고 과도기적 통일 체제인 남북 연합과 총선거를 거쳐 통일 국회와, 통일 정부를 구성한 뒤 완전한 통일 국가인 통일 민주 공화국 수립하겠다는 방안이었다.(7) 문민 정부(1993~1998)문민정부는 1994년 7월, 3단계 3기조 통일 정책을 발표한다. 3단계는 화해·협력 → 남북 연합 → 통일 국가로 이어지는 단계적인 방안이며 3기조로는 민주적 합의·공존공영·민족 복리를 채택하였다. 북한을 고립·봉쇄시키지 않으며, 특정 이념과 체제보다 민족 복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였고, 북의 '핵 개발'과 대북 사찰의 남북 긴장 관계를 정상 회담으로 타개하려 하였으나 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무산되었다.1994년 8월 15일에는 인간의 존엄성, 평화 및 복지 지향의 세계적 흐름을 반영한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 방안이 제시되었는데, 이것은 경제·사회·문화 공동체 회복으로 정치적 통합(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을 이룩한다는 방침이었다.(8) 국민의 정부(1998~2003)국민의 정부는 평화 공존과 화해 협력 정책을 적극 추진하였고 이러한 일관된 대북 포용정책의 결과 2000년 6월13일부터 15일로 이어진 남북 정상 회담 성사(2000.6.13.)와 '6·15' 남북 공동 선언'은 남북 사이의 화해·협력 및 평화 공존의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다. 출범이후 적극적인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했던 국민의 정부는 현실적인 대북관을 바탕으로 당장의 통일보다는 우선 평화공존과 남북관계 개선에 역점을 두고 대북정책의 원칙과 기조를 확립하였으며, 남북관계, 상황변화에 동요됨이 없이 '안보와 화해협력 병행 추진'기조를 일관되게 견지하는 등 한반도 긴장의 확대 재생산을 방지하면서 남북 간 협력의 틀을 정착시켰다. 또한 교류 협력 분야에서는 당국 간 회담이 중단 된지 3년 9개월 만에 남북당국대표회담을 개최(98.4.11-17)하였으며, 남북기본합의서 이행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제하하였다. 98년 4월에는 '남북경위역량의 조기 확충 등을 들며 국민의 정부시절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터져 나온 북핵 위기에서는 단호한 의사를 밝히며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열망을 조율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하지만 대북 지원에 있어서나 인도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햇볕정책을 펴, 결국 또 한 번의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만들어 냈다.5) 북한의 통일 정책1. 북한의 통일 목적노동당의 당 규약 전문에 한반도 공산화가 명문화되어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한반도 전체에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통일의 제일 목적으로 삼아왔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 변천1960년 연방제과도적인 통일 형태│1973년 고려 연방 공화국조국 통일 5대 강령│1980년고려 민주 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완성된 형태로서 연방 국가2. 북한의 통일 정책의 특징은 사회주의 체제에 의한 연방제 통일 실현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연방제는 궁극적으로 북한 주도의 공산화 실현을 의미해왔다.3. 북한 통일 정책의 변천(1) 1950년대북한 정권 수립 초기단계에는 정치 협상을 통한 통일을 시도했지만 불발되자, 6·25 전쟁으로 공산화를 시도한다. 결국 참전국들 중심의 제네바 협상으로 통일 한국 건설 협상은 실패하고 만다.(2) 1960년대 연방제 통일안북한은 60년도 들어 남한이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인 대책으로써 남북 조선의 연방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을 편다. 이 연방제는 남북한의 정치 제도를 그대로 두고 두 정부의 독자적 활동을 보존하면서 최고 민족 회의를 구성하고 양측 대표로 구성하여 남북한의 경제·문화 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3) 1970년대 고려 연방 공화국안이것은 1973년 남한의 ‘6·23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에 대응하여 발표된 것으로 단일 국가로서 유엔 가입을 주요 내용으로 ‘조국 통일 5대 강령’을 발표하였다.(4) 1980년대 고려 민주 연방 공화국 창립 방안북한은 1980년 10월 상대방의 사상과 체웠다.
    사회과학| 2007.12.14| 9페이지| 2,500원| 조회(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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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학 논쟁 -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 평가A+최고예요
    미끄러운 경사면 위에 공이 하나 놓여 있고, 버팀목이 그 공이 굴러내려가는 것을 막고 있다고 해 봅시다.버팀목을 치우면 공은 경사면 아래까지 굴러가게 됩니다.미끄러운 경사면은 일종의 인과연쇄와 같습니다.그리고 공은 인과관계에서의 한 사건을 뜻합니다.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이 원인이 되어 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그 다른 사건이 다시 원인이 되어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합니다.결국 공이, 미끄러운 경사면과 같은 인과연쇄의 끝에 도달하면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게 됩니다.1.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 도덕적 사유나, 법에서 제시된 변화에 반대하기 위한 논증- 제안된 행동의 부정적인 결과를 지적2.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의 패러다임식 형식의 개괄적 특징 ① A행위가 바람직하거나 법적으로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논의에 사용 ② A행위를 금지하는, 규범의 유지나 법적인 권위를 상실하지 않기 위한 현상유지의 입장에 주로 사용 ③ A행위를 허용, 수용하자는 입장은 경사길의 꼭대기로 표현. ④ A행위 허용에 대한 반대는 A 행위 자체의 반대가 아니며, 부정적인 결과 때문에 회피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님.⑤ “그러한 움직임”은 경사길의 바닥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A행위의 수용이 N행위 까지 수용하게 하는 인과적 메커니즘 존재. 반대하는 것은 “A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런 행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고려하는 결정”
    사회과학| 2007.12.14| 3페이지| 2,000원| 조회(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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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학]민법상 권리의 주체
    법률 관계란; 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생활관계, 즉 권리와 의무로 이루어지는 생활관계-> 공법관계 - 사법관계권리의 개념: 일정한 사람에게 일정한 이익을 누리게 하기 위해 법이 인정하는 힘※ 참고; 권리와 혼동되는 용어1) 권한; 타인을 위해 일정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행위를 할 수 있는 법률상의 자격예; 대리권; 대리인이 갖는 권한2) 권능; 권리의 내용을 이루는 각개의 법률상의 힘예; 사용권,수익권, 처분권은 소유권의 내용으로서 권능이다.3) 반사적 이익; 법이 특정한 사람 또는 일반인에게 어떤 행위를 금지하거나 명령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받게 되는 이익예; 교통법규의 과속 금지 규정 때문에 일반인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이익권리의 종류- 사권1) 권리의 내용에 따른 분류(가) 재산권; 경제적 이익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 (종류; 물권, 채권, 무체 재산권 )(나) 인격권; 인격적 이익 즉 생명, 신체, 명예, 성명 등의 자유를 침해 받지 않을 권리(다) 신분권( 가족권 )※종류; ㄱ) 친족권; 친족으로서 일정 지위에 따른 이익을 누릴 권리(*친권자, 후견인이 가지는 권리 * 배우자가 가지는 권리 * 부양 청구권 )ㄴ) 상속권; 상속인이 가지는 권리 (* 재산 상속권 * 유증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라) 사원권; 단체의 구성원이 그 단체에 대하여 가지는 권리2) 권리의 작용에 따른 분류(가) 지배권; 권리의 객체를 직접 지배하고 타인에 의한 침해를 배척하여 그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권리 (종류; 물권, 무체 재산권, 친권, 인격권 등)(나) 청구권; 특정한 사람이 다른 특정한 사람에 대하여 일정한 행위(작위 또는 부작위)를요구할 수 있는 권리 (종류; 채권, 물권적 청구권, 부양 청구권 등)(다) 형성권; 권리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법률관계의 발생, 변경, 소멸을 일어나게하는 권리 (종류; 법률행위의 동의권, 취소권, 계약의 해제권 및 해지권 등)(라) 항변권; 청구권의 행사에 대하여 그 효력을 저지할 수 있는 권리 즉 상대방의 청구를거절할 수 있행위능력이란? : 단독으로 유효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행위능력자는 완전한 의사능력을 가진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행위무능력자의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이는 의사능력과는 달리 획일적?형식적으로 결정된다. 로마법에서는 행위능력을 부모로부터 독립한 성숙남성에게만 부여했으나, 현행법은 만 20세가 넘은 모든 여성?남성에게 원칙적으로 행위능력을 부여한다(예외는 금치산?한정치산선고).(5) 소송능력이란? : 법률행위에서 행위능력의 관념은 소송법에서는 소송능력이라고 일컬어진다. 소송능력은 단독으로 유효하게 소송행위를 하거나 또는 받을 수 있는 능력이다. 소송능력은 소송법상의 관념이기 때문에, 민법의 행위능력규정이 그대로 적용될 성질의 것은 아니나, 우리 민사소송법은 민법 기타의 법률에서 행위능력이 인정되는 자에게는 당연히 소송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민사소송법 제47조). 소송능력이 없는 자가 한 소송행위는 취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효이다.(6) 책임능력이란? : 법률행위에 있어서의 의사능력의 관념은 채무불이행과 불법행위에 있어서 책임능력이라고 일컬어진다. 현행법은 원칙적으로 과실책임주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책임이 생기려면 자기 행위의 결과가 위법한 것으로서 법률상 비난받는 것임을 인식하는 정신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요컨대 자기 행위의 책임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책임능력인 것이다. 이는 구체적인 행위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판정된다.자연인※ 자연인; 자연적 생활체로서의 인간※ 민법 제3조;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권리능력평등의 원칙을 표현)(1) 권리능력의 시기: 자연인이 권리주체로 평가되는 시기를 말한다. 우리민법은 제3조에서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하여 탄생과 동시에 권리능력을 취득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탄생의 시점에 대해서는 태아가 모체에서 분리되는 시기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학설이 나뉜다.1) 진통설 (분리개시설) :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권리능력한자의 범위는 대법 원 규칙으로 정한다(동조 제3항; 1990.12.31. 신설). 출생 신고서에는 의사て조산원 기타 분만에 관여한 자가 작성한 출생증명서를 첨부하여야 한다(동조 제4항; 1990.12.31. 신설). 혼인 중 출생 자의 신고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하여야 한다(동법 제51조 제1항). 반면 혼인 외 출생자의 신 고는 어머니가 하여야 한다(동조 제2항). 호적의 정정에는 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동법 제 120조 이하).3) 입증책임 : 출생시기결정에 있어서 사산이냐 살아서 출생했느냐의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자가 부담한다. 산모의 질에서 전부 노출된 태아라 하더라도 7개월 미만이면 사산으로 추정한다.(3) 태아의 보호1) 연혁 : 태아는 사람이 아니므로 권리능력이 없다. 따라서 민법 제3조에 따르면 태아는 상속능 력도 손해배상청구권도 없다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일찍부터 로마법과 우리민법규정(제1000조 3항, 제1064조)은 태아(유복자)에게 상속과 유증을 인정했다. 로마법 상 태아는 사람이 아니므로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었으나 태아의 이익을 위하여서 출생 시까지 상속은 연기되었다. 또한 로마법은 태아의 보좌인(curator ventris)을 둘 수 있게 하였으며 특히 유복자는 로마 상속법 상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한편 태아의 이익과 관련하여 로마법학자간에 태아가 모체에서 분리된 독자적인 권리주체이냐 아니면 모체의 구성부분에 지나지 않느냐에 관하여 견해의 차이가 있었 으나, 유제는 시민법 상 이미 태아는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하였으며, 중세법학은 유제의 칙법규 정(C. 5. 2. 11)을 근거로 태아는 그의 이익에 관하여 출생한 것으로 본다는 출생의제의 일반원 칙을 확립하였다. 또한 불법행위의 경우 태아는 복수권의 주체로 가해자를 반격(원수를 갚는다) 할 수 있었다. 즉 가해자의 반격에 갈음하여 태아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행사할 수 있었으므로 태아는 권리의 귀속주체이지 현실적 인 상속권문제 : 판례는 유복자의 상속권을 당연히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복자가 태아이던 중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어머니와 기타 가족이 상속재산을 분할 취득한 경우, 유복자 는 출생 후에 상속재산회복청구소송으로 그의 상속분을 회복할 수 있다.6)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문제 : 예를 들어 운전수가 임신 8개월인 산모를 들이받아 태아를 사산한 경우 법원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태아를 대신하여 행사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인하였다. 다만 아버지나 어머니 자신의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만을 인정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정지조건 설에 따라 태아는 살아서 출생하였을 때에만 상속, 수증,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는 것이다. 살 아서 출생하기만 했다면, 태아의 법률관계, 혼인의 원인은 묻지 않는다. 법률혼, 사실혼, 동거, 범죄(강간)로 인한 임신 모든 것을 묻지 않는다.7) 상속과 수증문제 : 정지조건설은 태아를 법률관계에서 제외하지만 해제조건설은 태아를 법률 관계에 산입.8) 법정대리인문제 : 민법은 태아의 법정대리인을 규정한 바 없다. 어머니를 태아의 법정대리인 으로 인정하지만, 이는 재산상속의 경우일 뿐이다. 어머니가 법정대리인일 경우에도 이해가 상반 될 때에는 특별대리인을 선임한다(제921조). 또한 자기계약て쌍방대리의 금지도 고려해야 한다 (제124조). 태아의 권리보호를 위하여 법정대리인을 두어 가정법원의 감독하에 두어야 한다는 필 요성이 인정되고 있다(독일민법 제1912조).9) 유증과 사인증여 : 태아의 유증수령능력은 인정하나, 사인증여수령능력은 부인한다. 증여는 계약당사자능력을 요구하는데, 태아에게는 당사자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제삼자를 위한 계약(제 539조)에서 태아가 수익자가 될 수 있는가 여부에 대해서도 판례는 법적 안정성을 위해 수익자 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10) 인공수정문제 : 인공수정에는 배우자간 인공수정(AIH; artificial insemination by husband)과 타인으로부터의 인공수정(AID; artificial insemina리인의 동의 필요 또는 법정 대리인이 대리㉡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미성년자 단독으로 할 수 있다.㉢ 미성년자가 혼인을 하면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도 혼자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 법정대리인이 미성년자의 행위를 동의하면 유효하다◎ 특성㉠ 친권자( 부모 ), 후견인 순으로 법정대리인이 된다.㉡ 미성년자 단독으로 한 행위는 취소가 가능하다.(나) 한정 치산자; 본인, 배우자, 후견인 등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으로부터 한정치산의 선고를받은 자㉠ 대상; 심신 박약자(귀머거리, 벙어리, 소경 등) 또는 재산 낭비자㉡ 법률 행위; 미성년자와 동일(다) 금치산자; 법원으로부터 금치산의 선고를 받은 자㉠ 대상; 심신 상실자㉡ 법률 행위; 법정 대리인이 대리㉢ 특성;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얻고 한 행위도 취소할 수 있으며, 법정대리인은 동의권은없고 대리권만 있다.☆ 법정 대리인이 미성년자, 한정 치산자, 금치산자를 위하여 영업하는 때에는 등기하여야 한다. (상법 8조 )1) 기준 : 신체적 능력에서 정신적 능력으로 변하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출산능력을 기준으로 남자는 14세, 여자는 12세가 되면 행위능력을 얻었으나, 현행법은 남녀 모두 20세가 되어야 행위능력을 갖게끔 하고 있으며(제4조 및 제5조), 그 밖에 심신박약자와 낭비자로서 법원의 한정치산선고를 받은 자는 한정치산자라 하고(제9조 및 제10조), 심신상실자로서 법원의 금치산선고를 받은 자는 금치산자라 하여 행위능력을 박탈하고 있다(제12조 및 제13조). 한편 부모의 동의를 얻어 약혼할 수 있는 연령은 남자는 18세, 여자는 16세이며(제801조), 유언능력은 남녀 모두 17세면 갖게 된다(제1061조).2) 미성년자의 취소권 :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제5조 1항 전단). 그러나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후단).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제2항). 행위무능력자의 취소권의 행사는 선의의 제삼자에게도 대항할 수3조).
    법학| 2007.07.16| 8페이지| 1,000원| 조회(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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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리아스란?는 '일리오스(트로이)의 노래'라는 뜻으로 (오디세이아)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시이다. 《일리아스》(일리오스의 노래)의 구성은 전편이 그리스 문자의 24알파벳 순으로 24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장마다 5백 행 내지 8백 행의 시로 되어 있으므로 전체 행수는 1만 5천 6백 93행 행에 이른다. 트로이 전쟁 10년째 되는 해 전후 51일 동안 전쟁터에서 생긴 일들이 이 속에 담겨져 있는데, 그 중 중요한 사건은 제 1장, 제 9장, 제 15장, 제 16장에 나타나고, 그 밖의 장들은 이를 이어가는 삽화들이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제 1장부터 9장까지는 전편, 제 10장부터 17장까지는 중편, 제 18장부터 24장까지는 후편이라고 볼 수 있다.이와 같이 (일리아스)는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여 트로이 격전중의 50일간에 일어나는 순정의 영웅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한 아흡 기사의 이야기 속에 10년의 전망을 담았으며,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암시함으로써 비극성을 강조하였고, 여러 가지 비유로 자연계와 인간계의 관계를 특색 있게 묘사하였다.무용(武勇)을 노래하고 그리스의 기사도를 찬양한 이 시는, 마침내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가 되었고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그 언어와 기법은 유럽 서사시의 모범으로서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2. 작자 호메로스에 대해서유럽 최고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자인 그리스의 시성인 호메로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따라서 학자들 중에는 그를 실재 인물이 아니라 전설적 시인으로, 또는 개인이 아니고 편력시인의 집단명, 장님인 걸식시인이라고 보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이 두 서사시가 호메로스의 작품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철학자 크세노파데스와 역시 기원전 5세기의 사학자인 헤르도투스의 저서에서 언급되는 역사적 증거 및 근대의 역사 학문, 고고학적 발견과 연구 및 언어학당의 조사연구에 의해 호메로스는 실재의 인물이고 이 두 서사시 우선 형태와 플롯의 완벽한 통일성과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와 모티브의 파악, 보편적인 견지에서 본 위대한 인물들의 나무랄 데 없는 개성화, 인생의 위엄과 쾌락과 비극, 죽음의 고찰과, 종교와 윤리 등은 훗날 서구문명의 조류를 이룬 그리스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방대한 스케일을 건전한 모랄에 의해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룩한 데 그 영원성이 있다고 하겠다3. 일리아스의 줄거리와 인물탐구그리스 전설 속에 나오는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일리아스》의 배경이 되고 있는데, 그 전쟁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불화의 신 에리니스는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자기만이 불청객임을 알고는 부아가 나서 신들도 참석한 피로연의 많은 손님들 앞에서 황금의 사과를 던지며 최고의 미인에게 주라고 외치고 사라진다.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딸들인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모두 이것을 차지하려고 만만치 않게 경쟁한다. 거북해진 주신(主神) 제우스는 최고의 미인을 스스로 지명하지 않고 프리아모스 왕의 미남 아들 알렉산드로스(파리스)에게 심판하도록 한다, 헤라는 그에게 재물을 약속하고 아테네는 무사의 영광을, 또한 아프로디테는 미모의 여인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유리한 심판을 내려 그녀에게 황금의 사과를 주었다. 실제로 천하제일의 미모를 가진 여인은 이미 아가멤논 왕의 동생인 스파르타 왕자 메넬라오스에게 시집간 헬레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황금의 사과의 대가로 그녀를 원했고 아프로디테 여신은 약속대로 그를 헬레네가 살고 있는 집으로 안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알렉산드로스는 메넬라오스의 집에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을 받으면서 머물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로 데려갔다.아내를 잃고 분개한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 왕과 의논하여 트로이 원정군(遠征軍)을 편성한다. 원래 만약 헬레네를 남편에게서 뺏는 자가 있으면 힘을 합하여 복수하기로 맹세했던 그리스 여러 영주들 -예를 들면 아킬레우스, 오딧세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등 기라성 실로 맏딸을 보내어 희생시키자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한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 잔인한 희생을 알고는 영영 남편을 용서하지 않는다.트로이 섬에 도착한 그리스 군은 해안에 진을 치고 트로이 성을 공격하기를 9년--트로이 성주(城主) 프리아모스 왕은 이미 늙었으나 그의 용맹한 아들 헥토르의 분투와 이웃 나라 동맹군의 응원으로 끈질기게 대항한다. 그들은 그리스군의 으뜸가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두려워하여 성문을 굳게 잠그고 들판에 나와 싸우기를 꺼려했으며 한편 신들은 변덕스럽게 이편을 도왔다 저편을 도왔다 한다. 그리하여 사상자는 헤아릴 수 없고 기나긴 혈전이 계속되었으나 트로이 성의 함락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언 원정한 지 10년째 되는 해를 맞이하는 그리스 군 내부에 영웅간의 불화가 생기는 데서부터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전편 부분에서는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 왕이 아킬레우스에게 점령한 도시에서 데려온 여인 브리세이스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아킬레우스는 전공(戰功)과 명예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고 몹시 분노한다. 그는 부하들과 같이 자기 함선에 틀어박혀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은 아킬레우스 없이 계속된다. 발 빠르고 용맹한 그를 겁내어 아직까지 성 밖으로 나오지 않던 트로이군은 총사령관인 헥토르의 지휘하에 들판으로 쏟아져나와 일대 공세를 취한다. 그리스군도 이아이스, 디오메데스, 오딧세우스 등이 선전하지만 후퇴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어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이때 비로소 아가멤논은 자기의 경솔을 후회하고 아킬레우스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많은 선물로 보상할 뜻을 전하며 출진을 간청하나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선진 가까이까지 밀린 그리스군은 방루(防壘)와 참호에 의지하여 버티어 보려 하나 이미 많은 장병들이 쓰러지고 함선이 모두 불타 버릴 듯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른다.이때 아킬레우스의 가장 친한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이 곤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한번 출진하한 아킬레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만든 새 갑주로 무장하고 싸움터로 나가 종횡무진으로 적병을 무찌른다. 몰린 트로이군은 성 안으로 쫓겨가고 헥토르만이 홀로 남았으나, 아킬레우스는 그를 쳐서 죽이고 그 시체를 수레에 매달아 끌고 간다. 파트로클레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 밖에도 포로 열 두 명의 목을 베고 성대한 장례식을 올리기로 한다. 이때 트로이의 노왕(老王) 프리아모스가 신의 도움을 얻어 남몰래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찾아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증오의 화신처럼 분노했던 아킬레우스도 가엾은 노왕의 모습을 보자 늙은 자기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배상을 받고 시체를 돌려준다. 약속대로 양군(兩軍)은 장례식을 위해 일시 휴전했으나 이미 헥토르를 잃은 트로이군의 패배는 명백해진다.이와 같이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열화 같은 분노가 빚어내는 잔인한 전쟁의 이야기이며, 방대한 규모의 전투 장면과 용사들의 용맹이 독자들의 마음에 생생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노를 터뜨리고 복수심에 불타고 혹독한 살육을 마구 하던 영웅도 마침내 고통을 통하여 연민에 도달하게 되고 인간의 고귀한 가치인 높은 품위를 보인다는 점이다.에는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고, 이 영웅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 시대를 살고있던 인물들의 전형, 인간 군상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 그리스 연합군 측에서는 뮈케나이의 왕이자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의 형인 아가멤논이 총사령관에 있었다. 이 아가멤논은 지극한 권력의 전형으로서 오만불손하고 횡포가 심하지만 지위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대를 위해서 자신을 굽힐줄도 아는 인물이다. 아킬레우스와 불화가 있었으나 그리스군에게 꼭 필요한 인물임을 알기에 그에게 기꺼이 사과하고 자기의 과오를 깊이 뉘우친다. 권력보다는 상황에 민감하고 위신보다는 실리에 밝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이아스는 덩치가 우람하고, 견줄 데 없이 용감했지만 다른 장수들에 비해 성질이 불같이 급하고 지적인 능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레우스의 사이가 벌어져 아킬레우스가 참전을 거부하고 그리스군에 피해가 커지자 아킬레우스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설득하여 그리스군에게 닥쳐온 위기를 잘 넘길수 있게한 숨은 공신이었다. 트로이아군에도 그리스 못지않은 영웅들이 많았다.프리아모스는 예부터 현명한 군주로 유명했다. 국내의 정치에 힘을 쏟고, 이웃 나라들과의 동맹으로 나라의 기틀을 탄탄하게 다져 놓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에서 주목해야할 두명의 영웅이 있다. 바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이다. 그들은 바로 신적 성향을 지닌 아카이아인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인간적인 영웅이자 트로이아인들의 영웅 헥토르이다. 아킬레우스는 인간인 아버지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인 어머니 테티스 사이에 태어난 반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간이면서도 신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강력한 힘과 불사의 몸을 지니고 있었서 전쟁에 임할때는 항상 힘에 흘러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공과 명예를 중시여기고 물질적인 가치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여색을 즐기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기간 중에도 자신을 유혹하는 무리로부터 그 자신을 지켰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신적인 성향이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가리고 있는 것 같다. 에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다. 예를 들어 아가멤논과의 불화로 심한 모욕감을 받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까를 고심하는 장면이나,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 또는 프리아모스가 그의 아들 헥토르의 시체를 얻기위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는 장면등이 있다. 이렇듯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을 정도의 힘과 육체를 지닌 아킬레우스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보인다. 이런 아킬레우스에 반해 헥토르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 출생에서부터 그는 트로이왕 프리아모스와 헤쿠베의 아들로 신과는 직접적인 어떤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전쟁하는 동안에도 그의 가족들을 더 위로하고 그의 아들을 축복해주는 등 가족을 매우 인.
    독후감/창작| 2007.03.18| 6페이지| 2,000원| 조회(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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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정치사] 고대정치사상
    민주주의에 대한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과 평가고대정치사상◎ 목차1. 서론2. 본론-민주주의의 개념-플라톤의 ‘철인 통치론’과 시대상황-플라톤의 민주주의 비판-플라톤의 민주주의 비판이 가지는 현대적 의의-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정부 형태-아리스토텔레스의 플라톤의 주장에 대한 비판과 민주주의 옹호논리3. 결론1. 서론현재 세계 거의 대부분의 국가는, 그 국가가 ‘사회주의’국가이건 ‘자본주의’국가이건 간에 민중이 주인이라는 뜻의 ‘민주주의’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민주주의’는 역사가 만들어낸 최선의 정치체제라고 인식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물론 학자마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하지만 이 ‘민주주의’의 개념이나 실행은 현대에 와서만 성립되고 수행되어진 것이 아니다. 먼 옛날 그리스 아테네에서 먼저 민주정이 실시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때의 민주정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먼 옛날 먼저 민주정을 실시했던 아테네의 위대한 철학자 두 사람이 이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였던 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들의 주장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체제적인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 방향을 찾고 앞으로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수 있겠다.대체적으로 이상 국가를 지향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있어 각기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한다. 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졌는가, 그리고 어떠한 근거로 그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했으며 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2. 본론민주주의의 개념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어의 ‘데모크라티아 democratia’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인민을 의미하는 ‘데모스 demos’와 지배를 의미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이다.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인민에 의한 지배’로 정의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일차적으로 ‘인민에 의한 지배’로 이해할 과 도시 국가내의 계급끼리의 내분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특히 국가 구성원들 사이의 분쟁과 반목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의 혼란과 타락이 극에 달했다.거의 모든 도시국가들은 과두제를 지지하는 귀족 계급과 민주제를 지지하는 자유 시민들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이로 인한 정치적 반목과 갈등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와중에서 대체로 귀족계급은 스파르타와 과두정을 지지하고 자유 시민들은 아테네와 민주정을 지지함으로써, 더욱 격렬해졌다.(중략)그러면 도시국가 내부의 정치적 갈등은 얼마나 치열했는가? 당시 그리스 정치는 갈등과 변화, 혁명과 파벌, 정부 형태의 어지러운 순환에 의해 특징지어졌다. 게다가 아테네에는 민주주의가 확대됨에 따라 대중의 즉흥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선동정치가들이 출현하게 되었고, 이들은 공동체에 만연한 불만, 적개심, 야심을 교묘히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고자 함으로써 정치의 장을 더욱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플라톤이 보기에 당대의 정치 질서는 격렬한 당파 싸움, 사회 계급간의 갈등 및 전통적 가치에 대한 신뢰의 상실로 인해 끊임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 파멸로 치닫고 있었다.)정권 경쟁이 끝난 후, 승리한 쪽은 공적인 업무 수행을 완전히 독점하여 (중략) 패배한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그들의 자손들마저도 그 어떠한 관직도 차지할 수 없었다. 각 당파는 상대방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질시 어린 우려를 가지고 서로를 감시했다. (중략) 그러한 사회는 더 이상 질서 정연한 국가가 아니며……)이렇게 정권 쟁탈전의 와중에 아테네 민주정의 즉흥성, 다양성, 소란함이 병든 정치제의 징후를 적나라하게 보이는 시대 상황에서 플라톤은 지혜를 추구하는 철인왕이 통치하는 국가야 말로 이런 정치적 해악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철학자들이 나라들에 있어서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 또는 ‘최고 권력자’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지혜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게 즉 ‘정치권력’과가 분쟁과 내란을 겪은 후에, 가난한 사람들이 이겨서, 다른 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추방한 다음, 나머지 시민들에게는 평등하게 시민권과 관직을 배정하게 되고, 또한 이 정체에서 관직들이 대체로 추첨에 의해서 할당될 때’ 민주정체가 생기게 된다.)고 말한다.민주정체에서 시민들은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을 가지게 된다. 이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는 국가 내에서 온갖 부류의 인간과 온갖 부류의 정체를 보이게 한다. 이 자유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수행하는데 있어서 강제를 가질 수 없는 치명적 문제가 있다.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는 또한 인간의 교육을 관대함이라는 이름으로 경시한다. 플라톤은 이 민주정체에 대해 “즐겁고 무정부 상태의(장이 없는) 다채로운 정체이며, 평등한 사람들에게도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평등(산술적 평등)을 배분해 주는 정체”) 라고 말한다.뿐만 아니라 플라톤이 이 정체에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일반 시민이 가지고 있는 자질의 문제였다. 정책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자질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자질의 결여가 잘못된 지도자를 선출하게끔 하고 잘못된 법률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그리고 자질 부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도자를 선출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적 선거로 지도자를 뽑을 때에는 좋은 지도자를 뽑을 수 없다는 것이다.플라톤이 보기에 민주주의는 국사를 다수의 변덕에 맡기는 체제였다. 대중은 많은 정치적 문제에 관해 훌륭하지 못한 판단자이다. 그들은 복잡한 정치 문제에 관해 폭넓은 경험이나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합당한 판단을 기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또한 대중은 이성이 아니라 즉흥적인 충동, 변덕스러운 감정, 또는 비합리적인 편견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을 신뢰할 수도 없다.)(중략) 어떤 사람이 어떤 종류의 일들에 종사하다가 정치 활동을 하려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하지 않으면서, 그가 대중에 대해서 호의를 갖고 있다고 말하기만 하면, 이를 홀리다 욕망실현의 정점인 참주가 되기에 이른다. 결국 민주주의란 무지한 대중이 잘못된 방향으로 정치를 이끄는 것 뿐 아니라 참주정치로의 결말을 맺는데 있어서도 큰 위험이 있는 것이다.플라톤의 민주주의 비판이 가지는 현대적 의의플라톤이 지적한 대중의 자질문제는 오늘날에도 계속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물음이다. 대중이 국사를 판단할 수 있는 적절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올바른 정치 지도자를 구별할 수 없으며, 나아가 그들의 즉흥적이고 변덕스러운 취향에 부합하는 지도자를 양성하고 선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했다.우리는 이 플라톤의 비판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것이 단지 민주주의 시행 초기의 부작용이나 개선 가능성이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현대에서도 꾸준히 통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정부 형태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 형태에 진정한 형태와, 왜곡된 형태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진정한 형태로서 1인이 통치하는 정부형태 중 공동이익을 고려하는 것을 왕정이라고 칭하고 1인 이상이지만 다수가 아닌 자들이 지배하는 정체를 귀족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정체의 전제는 지배자가 덕성을 가진, 가장 좋은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 대부분이 공동이익을 위해 국가를 운영할 때, 정부는 입헌정체라고 칭해진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정체에 대해 왜곡된 형태는 이것이다. 왕정은 참주정, 귀족정에 대해서는 과두정, 입헌정에 대해서는 빈민정이다. 참주정은 참주 한 사람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군주정의 일종이다. 과두정은 부자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고 빈민정은 가난한 자의 이익을 목표로 하여 이들은 모두 모든 자의 공동이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민주정치란 위에서 얘기한 다수의 시민이 다스리는 입헌정에 가까울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입헌정에 대해 왜곡된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 빈민정에 대한 논의와 과두정에 대해 논한다.따른 비례적 평등이 아니다. (중략) 민주주의적 주장에 따르면, 각 시민은 다른 모든 시민과 평등한 기반에 서있다,(중략) 다른 형태의 자유는 시민적인 것인데, ‘자기 좋은 대로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자들은 그러한 생활이 자유인의 본분이며, 이는 노예의 본분이 그들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민주정치의 두 번째 목표다.)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민주주의는 출생에 의하여 시민이라는 평등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의 원칙에 기반을 두어 공직에의 참여를 보장받고 다수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해 나가는 것이 보장된 체제이다. 즉 그에 의하며 민주주의는 ‘평등에 기반을 둔 자유’ (freedom based upon equality)에 기반을 둔 체제이며, 또한 그러한 자유를 극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단순히 출생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에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평등한 것은 평등하게 불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 대하라”는 비례적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아리스토텔레스가 는 다수의 대중이 정치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지 않았다. 무지한 대중이 정치를 함으로써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다는 플라톤의 주장에 반기를 든 것이다.소수의 우수한 자들보다는 대중들이 주권자야 한다는 원칙에는 비록 난점이 없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으로서 보통 사람에 불과한 자들이 다수 모이면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볼 때 소수의 우수한 자들보다 더 훌륭할 것이다. 이는 마치 여럿이 추념을 낸 향연이 단 한 개의 주머니에서 베풀어진 식사보다 나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 이유는 다수 속에 개인은 덕과 지혜를 각자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이 합치면 그들은 마치 많은 수족과 감각을 가진 일개인과 같이 되어 품성과 지성에 있어서도 그렇게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덧붙여 다.)
    사회과학| 2005.08.31| 8페이지| 2,500원| 조회(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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