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 감상문< ‘이희아의 희망콘서트’를 보고>2007년 12월 2일, 정말 보고싶었던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의 희망콘서트를 보기 위해 풍성한 교회로 향했습니다. 안상철 교수님이 직접 참가하시는 추일서정 음악회를 가지 못하는 큰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못지 않은 좋은 기회로 이희아씨의 피아노 공연을 가게 되어 굉장히 기뻤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오기 시작했지만 이희아씨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풍성한 교회로 향하는 언덕길도 힘차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예상했던 대로 공연장 안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7시부터 공연이었지만 6시반이 된 시간에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동하며 감동과 희망을 주고 있는 스타이기 때문인지 더욱더 공연장이 붐비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피아노를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에 배워서 그런지 피아노 공연이라면 더 마음이 갑니다. 피아노를 배운 지는 굉장히 오래 되었지만 마음에 근심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전 항상 피아노와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장애를 피아노를 통해 극복한 이희아 양의 사연이 더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공연 전에 약간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는데 그걸 보다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그녀의 공연은 단순한 피아노 연주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가슴을 울리는 장면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건반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네 개의 손가락으로 신기한 듯한 시선이 갔었지만 어느 새 그 시선들은 사라지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그녀의 놀라운 피아노 음반의 소리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쳤던 쇼팽의 곡 중 즉흥환상곡은 정말 저를 놀랍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실력은 손가락 열 개 모두를 가진 정상인들에 절대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면서 저는 또 새로운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노력이 있었는가라는 생각이 문득 제 머릿 속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곡까지 듣고 난 후 저는 정말 기립박수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공연은 저에게 음악적 아름다움만을 전해 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운, 삶의 아름다움까지도 전해준 것 같았습니다. 안상철 교수님의 과제 덕분에 이런 감동적인 공연까지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음악을 단순한 음악으로만 감상하지 않고 저 자신과 또는 삶과 연결시켜 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광고와 카피◇- 대상별 광고카피 전략에 대한 광고사례 분석-동덕여자대학교 중국어과20030301 전예리◆ 여성을 대상으로 한 광고 ◆여성과 광고 남자가 벌어들인 돈은 여자가, 여자가 번 돈도 여자가 소비하는 여자 소비 주도의 세상이라는 말처럼 남자에 비하여 여자는 막강한 구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남자들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던 자동차나 주택 등도 이제는 여자의 입김으로 선택되어집니다. 여자 자신을 위한 상품 즉 화장품, 보석, 의류, 패션 액세서리는 물론 가족 단위에 필요한 식품, 각종 필수품은 여자의 선택권이 절대적이고 아울러, 남자에게 필요한 면도기, 넥타이, 구두, 내의 등도 여자의 마음에 들어야 구매되어집니다. 일반적으 로 소비제품 구매력의 80%이상을 여자가 차지한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날의 여성들은 교육수준과 사회참여의 증대로 사회적 위상과 역할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통계에 의하면 여자의 취업률이 40%를 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구매패턴도 많이 바뀌어서 전 통적인 라이프 스타일에서 일탈한 현대 여성들은 가족을 위해 구매하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를 위해 구매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광고 사례☞ ‘빈스 에비뉴’ 광고내용: 한 여성이 고급 스포츠카에 타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그녀에게 계속 매달리지만 그녀는 가라고 밀쳐냅니다. 그리고는 차 속에서 미소를 띠며 커피를 마십니다.분석:'나쁜 여자 마케팅'이 일고 있습니다. 고된 현실에 위축되는 남성들, 그에 반비례해서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여성들을 컨셉으로 한 책과 광고, 음악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언제나 당당하고 강한 여자라는 현대적인 의미를 담아 반어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에게 약하다는 편견을 깨고 남자를 냉정하게 차버리고 혼자 커피를 마시는 여성의 모습이 남자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 하는 새로운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CARA 광고내용: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웨딩드레스를 입은 결혼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분석: 카라는 그 점에 여성에게 결혼만큼 행복한 것이 없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대한민국 여자라면 누구라도 결혼식의 주인공처럼 축복받고 행복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카라는 전달합니다. 제품에 대한 정보는 없고 축복 받는 여성의 이미지만을 전달합니다. 그 행복한 이미지를 카라의 브랜드 자산화하려는 속셈이다. 카라는 여성을 동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고 그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이는 여성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며 세상에 유일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제공해주었으며 여성이 주인공이 된다는 이미지를 통해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여러 카피전략을 총동원함으로써 여성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한 광고인 것 같습니다..☞ 냉장고 ‘지펠’ 광고내용: 이영애는 남자의 환상적인 깜짝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어두운 집에 들어서는 드레스 차림의 이영애. 그가 문을 열자 갑자기 남편이 집안 가득 배치해 놓은 2천여개의 촛불이 한꺼번에 빛을 발한다. 남편의 사랑스러운 깜짝쇼에 감동한 여인의 입가에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미소가 피어난다. 남편의 품에 한달음으로 달려가 안기는 이영애의 한마디. ‘지펠은 사랑입니다.’분석: 이 광고가 정말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한 광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말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주인공, 멋진 남편이 주는 선물, 정말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부러울 것입니다. 자신도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와 그들을 따라가려는 욕구가 이 제품을 구매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광고는 여성이 남성에게 너무 의존적이고 물질적인 것에만 큰 행복을 느끼는 편협된 여성상을 만들어 내지는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광고 ◆?현재 사회적인 풍토가 많이 바뀌었으나 아직도 남성우월주의적인 의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광고에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남성은 부와 권력을 중시하며 큰 야망과 성공을 품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남성이 오히려 여성보다도 약하고 여성에게 의존하는 듯한 모습을 담은 광고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남성의 약점을 공략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광고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광고 사례☞ktf 기업 광고내용: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두 남자가 나오는데 한 남성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출근을 하며 한 남자는 고급승용차를 타고 출근합니다. 고급승용차를 탄 남성이 다른 남성을 약간 하찮게 바라봅니다. 그런데 회사에 도착해 우연히 만난 이들의 관계는 인라인을 탄 남성이 고급승용차를 탄 남성보다 더 높은 직위에 있습니다.분석: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요즘 들어 디지털과 21세기 신 유목민을 소개하는 광고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사회가 실제로 그렇게 변화해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과거의 고정관념을 깨는 이 광고는 야망과 성공을 꿈꾸는 남성들에게 더 자극적으로 다가갔을 듯 합니다. 사회의 틀에 맞춰가며 성공만을 위해 따라가는 그들에게 새로운 남성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성취욕과 관심을 끌어들입니다. 이는 남성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전략인 것 같습니다.☞ 금연 광고내용: 황량한 허허벌판에 쓰러져 있는 말과 황당한 표정으로 쓰러진 말을 내려다보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말보로 맨, 간접흡연의 폐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게 해 줍니다.인도에서 만들고 올해 2002년 칸 국제광고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광고(광고14)를 보면, 금연광고도 이제 충격적이고 쇼킹한 비주얼로 담배의 해독을 직격탄으로 보여주었던 기존의 금연광고에서 발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분석: 이것은 딱 남성만을 위한 광고라고는 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요즘 여성들도 흡연자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성을 중심적으로 만든 광고라고 보고 분석하자면 그들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광고 인 것 같습니다. 흡연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해를 가져오는 지를 절실히 느끼게 하며 금연이라는 것을 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 광고는 상품 판매 목적이 아닌 광고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위기의식을 주는데 효과적인 광고 인 것 같아서 조사해 보았습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광고 ◆청소년들을 어리게 보았던 시대는 이제 지난 것 같습니다. 가끔씩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마케팅에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들의 반응이 광고 마케팅의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늠하기도 합니다. 상품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청소년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청소년을 분석하고 그들의 약점이나 관심사를 조사하는 것이 요즘 광고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김태성 교수님◆ ?천안문?을 읽고 나서.. ◆동덕여자대학교 중국어과20030301 전예리개인적으로 중국과 관련된 서적은 거의 처음으로 접해보았습니다. 또한 두께도 두껍고 낯선 인물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천안문」이라는 책의 겉모습을 보고 한숨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권해 주신 그 많은 책들 중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다른 책보다 얇아 보여서도 아니고 생각 없이 선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책의 서문을 살펴보고 사진들을 보니 중국의 중심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 또는 알려 지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다른 중국사에 관한 흔한 서적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아니면 접하기도 힘든 중국의 진정한 훌륭한 인물들을 통해 중국사를 더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가지고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쉽지 않고 어려울 것만 갖고 지루할 것만 같은 천안문이라는 책을 들고 첫 장을 천천히 넘기기 시작했습니다.시작부분에서는 캉유웨이에 대한 내용이 중심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캉유웨이는 서구 문물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공자개제고」에서는 유교원천에는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내용을 실었으며 열강의 위협에 대처하는 갖가지 방안들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을 봤을 때 변화를 질서에 해로운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속도가 느렸으며 이로 인해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캉유웨이는 제도를 개혁하고 인재를 등용하면 “국가의 정기가 살아날 것”이며 수도를 옮겨야 “국가의 기반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보수적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시기에 이런 근대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캉유웨이는 여러 정치 단체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베이징에 가식적인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베이징의 거리를 정비하고 화교를 국가에 이롭게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쑨원은 해외 화교사회에 접근을 하였습니다. 그는 서양의 힘은 단순히 군함과 총모가 아니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이에 그는 나약한 만주 정부를 혐오하게 됩니다. 캉유웨이와 쑨원을 비교해보자면 캉유웨이는 황제에게 개혁을 촉구하며 만주왕조를 보전하면서 중국을 강하게 하려 하였으며, 쑨원은 중국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만주 왕조를 쓰러뜨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890년 말 반기독교적인 감정과 서구 열강의 북중국 침략에 분노를 느껴 의화단이 탄생하게 되고 이는 캉유웨이와 쑨원에게 야만을 이룰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캉유웨이의 지지자들이 체포되고 그는 휴양지 생활을 시작하여 사고를 해방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포착합니다. 그는 대동사회 이룩을 원했습니다. 민족의 구분이 없고 가족과 성의 차별을 철폐하길 원하며 「대동서」를 집필합니다. 그의 뛰어나면서도 절제된 표현력과 뚜렷한 이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정열과 노력은 뛰어났으나 그의 대동사상은 시대에 너무 앞서있었으며 이로 인해 대동서 출간 제의를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새로운 인물 ‘루쉰’의 문체는 비타협적이고 예리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문화적, 정치적 변혁을 꿰뚫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추방을 감수하고 변발을 잘랐으며 근대화에 도움이 되는 특수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 서양의학을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신개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문학이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문예운동을 제창하기로 결심합니다. 또한 정치의 현실을 느끼고 의학을 그만두었듯이 정치마저 그만두고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게 됩니다. 이 시기에 캉유웨이, 쩌우룽, 추진은 중국이 개혁하지 않으면 외세의 압력에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루쉰은 1912년 초, 짤막한 소설을 통해 아직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기대와 우려가 어우러져 있는 혁명의 비전을 포착하기 시작했습니다.국회 대총통으로 위안스카이가 임명되고 그는 캉유웨이 논리와 비슷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캉유웨이는 공화제는 비현실적이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위안스카이는 군주제의 재건을 통해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기로 결심하였으나 년에 유명한 사건이 5월 3일 일어나게 됩니다. 학생들의 반란에 대해 정부가 처벌하려 하자 ‘쑨원’은 학생들이 애국심 때문에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곧 국제연맹이 결성되자 캉유웨이는 이는 대동사회의 첫걸음이라고 확신하였으며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서 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처음으로 ‘인민권’이 정당하게 실현된 드물고 고귀한 사건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처음에는 남학생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곧 투옥자가 많아져 여학생이 시위를 주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새롭고 놀라운 발전이었으며 중국에서의 여성의 권리가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성교육의 진전과 과부의 재가 허용, 전족단습, 여아살해 관행이 종식되어야 한다고 강조되고 있었는데 여전히 여성에 대한 악습은 온존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의 변천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 언제나 여성의 권리는 남자보다 늦게 인정되고 불평등이 존재하는지 약간의 분노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여성교육기관이 많이 건립되며 사회적으로 여성교육이 용인되고 격려되기 시작했습니다.또한 이 책을 읽고 잊지 못할 것 같은 인물 ‘딩링’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그녀는 후난 지역 여성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목격하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서른에 학교에 들어갔지만 머지않아 바깥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됩니다. 전족을 풀고 학교에 등교하였으며 체육시간에 참여하며 전족을 풀고 난 후의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었습니다. 전족을 푼 후 한참동안은 정상적인 신발을 신고 다닐 수가 없었으나 끈질긴 인내와 노력으로 그것을 참아내고 결국은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후에 교편을 잡게 된 그녀의 끈질긴 투쟁의 승리에 대해 마음속으로 조용히 박수를 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불평등하고 개혁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딩링의 어머니 같은 인물은 해낸 다는 모습을 바라보며 무엇이든지 끈기와 노력이 성공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애국심과 자유에 대한 여성의것이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딩링의 어머니와 비슷하게 추진이라는 여성도 신여성이 갖추어야 할 정신을 역설하였으며 전족을 벗고 새로운 여성 정신을 중국신문에 주창하였습니다.풍운아처럼 보이는 쉬즈모라는 인물은 별 고통과 어려움 없이 자라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힘써 일하고 고행을 참으며 자기 연민 따위를 걸러내고 현실과 정직하게 맞서 자신을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애국적인 젊은 중국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습계획을 야심적으로 실천했지만 정작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괴로워하기 시작하였으며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는 부인과의 이혼을 통해 과고 20년 동안 근대적 지식인들이 공격했던 모든 전통적 제도와 인습에 대해 최후의 도전을 하였습니다. 그는 루쉰 다음으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하였는데 그 때로는 암울하고 파괴적인 문체로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썼고 때로는 환상적인 필체로 창공을 나는 기쁨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31년 전세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사망하게 됩니다.1920년대 중앙정부는 약해지고 북부 군벌세력의 입김은 날로 거세졌으며 남·서 중국의 지배권은 몇 사람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게다가 재난과 내란으로 중국의 세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루쉰은 커다란 채찍질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는 곧 1925년 제국주의 열강의 강점을 의미하게 됩니다. 공장은 중국인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서구 열강과 일본이 이권을 노골적으로 빼앗아가 반외세 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파업과 시위의 물결이 공장들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 지도자는 쑨원에서 장제스로 바뀌게 됩니다. 복잡한 시대에 심미적 작품이나 기고 작품이 실리도록 되어있었던 「문학란」이라는 공간에 정치적인 문건이 대신 들어서기도 하였습니다. 장제스는 쑨원이 이루지 못한 국가의 통일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정치를 하기 시작합니다.1930년대에 루쉰은 진정를 있는 그대로 묘사했습니다. 취추바이 또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보급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935년에 이 책속의 인물들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딩링은 공산주의자였기에 1933년에 체포되었으며 1935년 취추바이 또한 총살당했으며 루쉰은 1936년 「죽음」이라는 글을 쓴 뒤 1936년 상하이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살해되었을 것이라 예상됐던 딩링은 처형되지 않고 국민당 정부에 의해 연금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그녀를 체벌하는 것이 아니었고 동료들로부터 격리시켜 공산당을 위한 선전사업을 그만 두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딩링은 작가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문학적 가치에 관계없이 그녀의 일기의 몇 부분이 유명한 잡지에 실려 신비로운 느낌과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 그의 감금 생활 속에서 그녀는 탈출을 계획하고 탈출하였으며 중일전쟁이 일어나 겨우 안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1943년에서 1944년 사이에 공산당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그들은 대중노선 정착을 채택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원이둬는 45세로 정치·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학문의 세계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당군의 부패와 경직성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학문과 문학의 즐거움이 시들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젊은이들의 공동의 적인 일본이 아닌 자기들끼리 싸우다 끝나는 비극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였고, 정치 지향적인 글을 정열적으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혁명만이 중국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1940년대에 샤오쥔이라는 인물은 라오서 이래로 가장 유명한 만주족 출신의 문인이었습니다. ‘정풍’을 겪어 공산당은 그를 훌륭한 선전요원으로 지목하였습니다. 그래서 「문화보」의 편집장으로 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문화보 1호 발행 때 공산주의 작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풋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멸하였으며 엄격한 당의 규율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1948년 그를 비판하는 글들이 나와 그는 탄광으로 다.
◆ 미국과의 문화차이로 인한 해프닝◆《예시 1》미국에 아들을 따라 이민을 간 할머니가 공원에서 미국 꼬마를 보고 하도 귀여워서, 한국에서처럼 고추를 따먹는다고 꼬마의 고추를 만졌는데 이것을 본 미국 부모가 이 할머니를, 미성년자를 상대로 하는 변태성욕자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 풍습과 한국 풍습의 차이에서 오는 웃지 못 할 사건입니다.비슷한 사건이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도 있었다. 북한 체조 코치가 지나가는 아이의 체격이 체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리와 팔을 좀 만져 보았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고소를 당했다고 합니다.⇒ 미국에 처음 간 사람들은 대부분 인형처럼 생긴 미국 애들이 매우 귀엽게 봅니다. 그렇 다고 마음대로 애를 만지거나 쓰다듬으며 안 됩니다. 어린이를 만져 보려면 반드시 부 모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옆에 없는 아이는 만져볼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예시 2》거리를 돌아다닐 때 하나 주의할 것은 남자끼리 손을 잡고 다니든가 어깨동무를 하지 마라. 십중팔구 Homo취급을 당한다고 합니다. 한국에 처음 온 미국인에게 친절히 하는 것은 좋으나, 걸어갈 때 너무 가까이 붙거나, 식당에서 옆에 너무 가까이 앉아 친절히 이야기하면 Homo로 오인받기가 쉽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디스코 덱이나 나이트클럽에서 남자끼리는 절대 춤을 출 수 없습니다.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귀걸이를 한쪽만 하는 것이 흔하지만 미국에 가면 그것 또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알리는 것이 된다고 합니다.《예시 3》우리나라에서는 길가다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냥 친근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어디가십니까?” 라고 묻는데 이런 행동은 미국에서는 자제해야 합니다. 이는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에서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불쾌해 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매너가 아닙니다.《예시 4》음식문화에서의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우리나라는 집단주의고 미국은 개인주의라는 점에서도 음식문화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마시고 한잔을 마셔도 화끈하게 한번에 다 비우는 것을 서로의 예절이라 치지만, 미국인들은 한잔씩 사마시며 천천히 홀짝홀짝 마시고 남이 천천히 마시는 것에 대해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미국에 가게 된다면 음주자리에서 많은 불쾌감을 느끼고 낯설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예시 7》미국의 주택가를 가보면 보통 집 앞에 잔디밭이 있는데, 잡초 한 포기 없이 모두 짧게 깎아져 있다고 합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어쩌면 한 집도 빠짐없이 잔디 손질을 저렇게 잘 해 두었을까 ?' 궁금증을 갖게 되는데 이는 잔디밭을 손질해 두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는 미국의 법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록 잔디밭이 개인 소유라 할지라도, 길 가에 있으면 다른 사람이 보게 되므로 손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이와 비슷한 경우로 겨울철에 자동차 위에 눈이 쌓이면 눈을 깨끗이 쓸고 다녀야 합니다. 잘 모르고 앞 유리에 쌓인 눈만 쓸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경찰에 적발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합니다.《예시 8》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 가서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또 있습니다.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이 바꾸어지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한국인은 30분이 넘도록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미국 신호등에는 중간쯤에 버튼이 달려 있어서 이 버튼을 누르면 신호가 바뀐다고 합니다. 사람이 빈번히 오가는 도심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호등이 버튼을 눌러야 신호가 바뀝니다.◆ 미국의 국민성과 문화적 특징 ◆◎ 미국의 통합적 국민성미국인의 경우에는 형식에 매이지 않는 것을 원하고 사고방식도 귀납적이고 분석적이면서 설명을 해도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합니다. 미국은 개인주의와 신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미국식 자본주의로 인해 사회 계층의 수직 이동이 심한 나라이지만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개인을 존중하다보니 보수적인 면도 있습니다. 미국인의 대화는 가족, 직업, 레크리에이션, 돈 등에 관해서는 자유로이 이야기하지만 성문제, 개인의 수입, 종교 등의 원칙적인 문도 서로 격식 없는 바비큐 등으로 대인 관계를 쌓고 서로 간 에 물건과 음식 나누는 것을 즐깁니다. 개인의 가치와 서로의 말을 신뢰하는 편입니다.?°서부⇒ 매우 사교적이지만 유동적인 분위기로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세부적 미국의 문화적 특징?보수주의와 인종차별미국인들은 그 조상의 출신이 지역별, 민족적으로 다르더라도 모두 미국적인 것을 좋아하고 비미국적인 것을 배척하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미국인들은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자유 및 평등주의에 입각한 이념에 대한 반대논리에 대한 배척이 강한 미국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며 자제하는 중산층의 자유주의와 기독교적인 윤리관, 평등주의와 개인주의가 융화된 경쟁위주, 능률위주, 기업체 중심의 Americanism을 고수하고 있습니다.?Achievement, Action, Work and Materialism미국인이 사람들을 칭찬할 때 "He's a hard worker" 또는 "She gets the job done"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람들이 임무를 의식적으로 끈질기게 수행하여 훌륭한 결론에 도달했을 때, 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경탄의 대표적 표현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미국인의 태도 속에 나타나는 의도를 "성취동기"라고 합니다. 또한 미국인들은 대부분 "Action"을 좋아합니다. 직업 또는 일상의 책임 업무에 있어서 Action은 상당한 활력을 준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취적인 생각과 도전 정신이 존경받는 문화 및 분명한 개인 책임 소재가 따르게 되는 미국 사회에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보여 집니다.반면 미국인들은 빈번히 너무“Materialistic"하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일에 대한 성과를 철저히 따지고 분석하여 이에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업무를 이행하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대한 평가만이 우선되므로 목적 달성 후에 받는 보상에 대한 떳떳한 생활 문화가 일반적입니다. 이로 인해 오해를 받을 수는로 이야기하기를 꺼립니다. "No"라는 말을 해서 외국인이 불쾌해 하거나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느낄까봐 간접적으로 말하려고 합니다.?????Equality미국인들은 그들의 독립 선언문에 언급되어 있는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고에 대하여 믿는 정도가 아주 특별합니다. 특히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 미국인들은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 적어도 모든 미국인은 평등한 가치가 있으며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믿습니다. 성별, 나이, 富,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따른 차별을 안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미국인들의 평등에 관한 독특한 인식은, 누구나 인생에서의 시작이 어떠했든 간에 모든 개인은 높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아무리 불운하다 하더라도 어떤 정당한 기본적인 수준의 대우는 받을 가치가 있다고 하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Goodness and Humanity인간의 천성은 기본적으로 좋고 근본적으로 사악하지 않다고 미국인들은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선하고 개선될 수 있다는 가정에 의하여 미국인들이 행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Getting More Education or Training미국인들은 신체적인 결함뿐만이 아닌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을 ?복구시키려는 많은 노력을 합니다. 생활의 개선을 시키는 것이 단지 정부 또는 공식적인 단체의 행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미국인들은 그들 자신이 개선 가능하다는 믿음 아래 사회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Educational Campaign(Smoking, Drugs, Alcohol, Child Abuse)을 벌린다.?Informality평등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고는 그들의 일반적인 태도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상당히 Informal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가게의 점원들이 그들의 이름(First Name)으로 그들 자신을 소개하고 고객들에게 친구처럼 대합니다. 상당을 길렀습니다. 오늘날의 미국을 건설한 근간이 이러한 Pilgrim들의 정신입니다.?????The Communicative Style of Americans미국인들은 처음 만났을 때 "Small Talk"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즉, 날씨, 그들이 현재 있는 방 또는 건물 등 과거의 경험, 직업, 오락, 집, 가족, 스포츠, 차 등이 주요 소재입니다. 미국인들은 특별히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종교, 정치에 대하여는 이야기하지 말도록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것, "Financial Matters"에 대하여도 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꺼립니다.미국인들은 혼자 오래 이야기하는 것보다 서로 돌아가며 이야기하고 경청 하도록 교육받아왔으며, 작고 의식적인(Ritual) 대화에 익숙하며 논쟁을 피하려고 합니다. 논쟁하기 보다는 화제를 바꾸거나 자리를 뜨는 것을 선택한다. 만약 논쟁을 피할 수 없을 경우, 미국인들은 조용한 소리, 적당한 어조, 최소한의 몸짓으로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큰 목소리, 팔의 움직임, 한번에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은 미국인에게는 싸움 또는 비생산적인 소리 지르기 시합의 신호로 느껴집니다. ???Level of Meaning Emphasized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감정적인 내용의 정보보다는 사실에 대하여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들은 보통 이상의 감정표현에 대하여 불편함을 느끼며 학교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에서 감정적인 표현을 찾아내면 무시해 버리라는 교육을 받습니다. ?????The Future Change and Progress미국인들은 대체로 역사와 전통에 관심을 가지고는 있으나 중요한 것은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역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역사를 보존하고 전통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 비생산적인 과거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미래의 생산적인 일들을 위해 과감히 무시하기도 합니다. 성숙하고 똑똑한 사람은 미래를 향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하여 조직적으로 일한다고 믿습니다. 미국인들은 ?
부산 시립 미술관을 다녀와서...10월 6일 아침, 저는 여전히 나른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기숙사 창문을 활짝 열어보니 두말할 필요도 없는 맑은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별 일도 없는 주말이어서 한가로운 주말을 어떻게 즐겁게 보낼까 고민을 하던 중에 갑자기 미술 수업의 과제가 떠올랐습니다. 기숙사에서 시립미술관까지는 엄청 멀 것 같았지만 저는 운동도 하고 부산 구경도 할 겸 자전거를 끌고 나갔습니다. 거의 1시간 반을 낑낑거리며 끌고 가서야 시립미술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술관을 들어갈 때는 너무 조용한 탓에 개방을 안한것인가 하는 의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토요일이라 공짜라는 말에 더 기분이 좋아진 채로 먼저 2층의 베르나르 브네의 실에 들어가 감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벽에는 두껍고 시커먼 쇠같은 것이 붙어있고 그것을 돌리며 그려낸 듯한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너무도 단순하고 무식한 듯한 작품이었지만 그 그림 속에는 선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의도가 있다는 것을 슬슬 알 수 있었습니다. 직선의 철로만든 작품들도 있지만 곡선의 마치 인간의 머릿속의 복잡함을 말하는 듯한 복잡한 원형의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나무에 흑연을 칠한 것이었는데 마치 철인 듯한 생각을 들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베르나르 브네의 작품들은 저에게 너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어려웠습니다. 무심코 작품을 대충 보고 지나가다가도 다시 돌아와 보면 이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작품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비결정적 선이라는 것은 아마도 끝이 없는 선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특히 곡선형태로 막 꼬아놓은 작품들은 끝이 없어보입니다. 선의 끝은 또 다른 어떤 곳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으며, 누군가에게 통제될 수 없는 듯한 자유로운 선으로 보였습니다. 그의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작품들을 감상하며 저는 한가지 재밌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각 작품마다 작품 옆 구석에 조그마한 손바닥 도장이 찍혀있었습니다. 이것은 과연 작가의 손바닥일까요?저는 또 다른 기대감을 한가득 품고 3층 전시관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라는 주제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베르나르 브네의 작품과는 달리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작품들이 있어서 왠지 모르게 더 친숙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특히 관심이 갔던 작품은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림 속은 정말 단순합니다. 목욕탕 욕조 속인듯한 곳에 두 아이가 배꼽까지 담근 채 우리의 눈을 향해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제목을 먼저 보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그림 속 한 꼬마의 배에 있는 불그스름한 것들을 보며 이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작품명이 상처라는 것을 알고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제가 감동받은 것은 아이들의 표정을 정말 잘 그려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림 속 아이들을 보며 무언가에 대해 저항하고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