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Ⅰ. 서 론Ⅱ. 정부의 역할과 기능 : 작은 정부론, 큰 정부론1. 정부의 역할과 기능2. 큰 정부 vs 작은 정부Ⅲ. ‘작은 정부와 큰 정부’의 논쟁에서 논의되어야 할 핵심 이슈와 한국의 정부1. 우리나라의 큰정부 vs 작은정부 논쟁의 주요핵심2. 과거 참여 정부의 ‘큰 정부론’ 평가3. 현재 이명박정부의 ‘작은정부론’ 평가Ⅳ. ‘작은 정부와 큰 정부’의 논쟁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바람직한 논의 방향1. 작은 정부 큰 시장 지향2. 정부규모 기준의 재정립3. 작은 정부의 큰 재산권 보호라는 딜레마 극복 - 거버넌스 차원의 리더십확보4. 작은 정부 실현을 위한 총량적 재정준칙 마련5. 정부규모의 공공성 및 사회복지와의 조화Ⅴ. 결론Ⅵ. 참고문헌Ⅰ. 서 론‘큰 정부, 작은 정부’ 논쟁은 우리에겐 외환위기 이후 익숙했던 흘러간 이야기다. 하지만 쟁점은 여전히 살아 있는 현재 진행형의 최대 고민거리다. 예컨대 ‘작은 정부 큰 시장’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 초 구상이었다. 하지만 1급 이상 46명으로 출발한 청와대만 해도 이젠 1급 이상 61명으로 몸집이 크게 불었다. 방만한 재정 운영이나 준조세 부담, 공공기관과 공기업 개혁은 현 정부가 마무리해야 할 큰 숙제다.‘작은 정부론’은 ‘공공선택이론’에 기반 한 주장이다. 정부는 공공재의 생산자로 시민은 공공재의 소비자로 규정하고, 공공부분을 시장 경제화하여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입장이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가 민간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비효율성과 불공정성을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정부 혁신을 통해 정부의 규제 범위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큰 정부론’의 만능형 정부 지향에서 벗어나 민간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은 민간에게 과감히 넘기고 정부는 시장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그래야 정부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 효율성 부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경제 활성화를 통해 세계화의 파고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규모와 규제 영역을 과감히 줄여 나가야 한다.국가는 외적의 침입을 막는 국방, 도둑을 존재 등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시장경제기능을 기조로 하면서도 그 결합이나 한계를 공적인 규제나 공유화에 의해서 보정?수정하는 동시에 전체적인 경제의 운영방향이나 목표를 설정하고 각종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그것을 달성하려는 혼합경제체제를 실시하고 있는 정부가 오늘날 수없이 많다.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시장경제와 사유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다분히 국영과 정부에 의한 계획을 받아들인 혼합경제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2차 대전의 영향을 받아 그 후 부흥을 위해 정부의 계획적 통제가 강하게 경제체제를 특징짓는다.프랑스와 이탈리아 경제체제는 이른바 혼합경제체제로 일반적으로 평가되나 각각의 국정과 이념을 반영한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형 혼합경제는 2차 세계대전 후부터 오늘에 이르는 경제계획의 실시와 계획의 촉진요인으로서의 공유화, 또는 공사혼합화의 진전, 더 나아가 공적 부문과 사적부문과의 소위 협조경제에 그 주요 혼합 경제적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반면 이탈리아형 혼합경제는 경제계획 면에 있어서나 공유화 면에 있어서 프랑스만큼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주요산업 및 기업레벨에 있어서 공사혼합기업의 비중이 증대하고 있으며 시장경제기능에 대하여 구조적인 규제 작용을 미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프랑스의 경제계획의 기본적 성격은 유연한 계획이라고 불릴 정도로 탄력성이 있고 또 지시적?유도적인 점에 특징이 있으나 계획달성수단이 그와 같이 간접적인 유도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고 계획을 유효하게 기능시키는 요인이 프랑스의 경제체제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경제는 자본주의를 기조로 하면서도 기간산업 부문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국유화 또는 공사혼합화 되어 있다. 국유기업 외에 또 프랑스에는 주식회사 또는 유한회사의 형태로 되어 있는 사기업에 정부가 투자한 공사혼합기업이 있다. 이러한 프랑스경제는 구조적으로 국유기업과 혼합 기업이 산업부문의 상당히 넓은 범위에 걸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들 기업을 통제함으로써 프랑스 경제의며 감세와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데 반해 진보는 공동체주의를 바탕으로 시장실패를 강조하며 증세와 큰 정부를 주창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정부규모에 대한 논의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 개혁작업은 민주화이후 정부주도의 개발연대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시각에서 비롯되으며,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정부규모의 변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김영삼정부는 과거 정부주도 개발연대의 관료 주도적 정책집행이 오히려 도약의 장애요인이 됨에 따라 과거의 비민주적?독점적?폐쇄적 제도와 관행을 민주적?개방적?능률적으로 바꾸기 위한 각종 규제완화와 민영화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작지만 강한 정부’를 표방하였다. 이어 IMF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김대중정부는 정부혁신의 비전을 ‘작지만 효율적으로 봉사하는 정부’를 표방하면서 정부조직과 인력감축, 공기업 민영화, 민간위탁과 자산매각, 산하기관 폐지와 통폐합 등 정부규모의 축소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때 모두 85,731명의 공무원이 감축되었으며, 공교육 활성화와 국민생활 안정화정책 추진을 위한 공무원 증원으로 54,175명의 증원이 이루어져 결과적으로 31,556명의 감축이 이루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규모면에서 작은 정부가 아닌 ‘일잘하는 정부’를 지향하면서 정부조직이나 정원을 획일적으로 줄이는 구조조정 방식의 조직개편하지않고 필요에 따라 신축성있게 확대와 감축이 모두 가능하도록 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특히 공무원수와 관련하여 각급 기관별로 기존의 기능을 재조정하여 폐지되는 기능을 공무원 수는 기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적인 정부 또는 ‘일잘하는 정부’는 작은 정부의 포기 또는 큰 정부의 추구로 인식되어져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이러한 큰정부 vs 작은정부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이에 참여정부시 논란이 논쟁이 되었던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재정규모실제로 정부 규모를 놓고 따진다면 우리나라는 큰 정부가 아니다. 재정 규체제 아래 정부는 시장과 시민사회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다.기업에게 투자를 강요하기도 했고, 노동임금의 수준을 결정하기도 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일도 빈번했다. 불평과 불만을 털어 놓거나 소요를 일으키면 국정원이나 검찰 그리고 국세청과 금융감독원과 같은 ‘칼’을 과시하며 겁을 주거나 실제로 휘둘렀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대단히 ‘큰 정부였던 셈이다.반면 ‘어머니’와 같은 역할에 있어서는 매우 ‘작은 정부’였다. 즉 시민사회와 시장이 요구하는 양질의 인재를 길러내는 일, 소득양극화를 완화시키는 일, 그리고 이를 통해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막고 사회통합을 강화하는 일, 중산층을 육성, 보호하여 내수시장의 안정을 기하는 일,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일, 재교육과 재훈련 그리고 보건정책 등을 통해 노동력을 재생산해 내는 일, 각종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일, 등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부분, 즉 ‘어머니’와 같은 역할이 작았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와의 비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아래의 그림들은 GDP에서 차지하는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과 보건지출(expenditure on health)의 정도를 보여주고 있다.둘 다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낮다. 그냥 낮은 정도가 아니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사회지출의 경우 OECD 평균은 20.6%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 3분의 1 수준인 6.9%에 불과하다.공공부문의 보건지출 역시 큰 차이가 난다. OECD 평균이 6.4%인데 비해 우리는 3.5%에 지나지 않는다. 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OECD 국가의 사회지출: GDP에 대한 비율(%)출처: OECD, ,2009.교육부문의 지출도 사회정책 영역에 있어 우리 정부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짐작하겠지만 우리나라의 교육비 지출은 다른 OECD 국가에 뒤지지 않는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지출을 합치면 2005년 한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상황에 있어 대통령이나 정부가 그런다고 해서 그 근본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당연히 고함을 지르거나 칼을 드는 것이 아니라 정책행위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를테면 사회안전망과 직업안정망과 같은 사회정책들이다.지금의 정부를 탓할 일만도 아니다. 문제는 '작은 정부' '큰 정부'와 관련된 우리사회의 담론 수준이다. 올바른 고민 없이 정부의 역할, 특히 사회 정책적 역할을 키우는 것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는 한 우리는 이러한 이중성을 계속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이중성의 결과가 어떠할까? '잃어버린 30년'을 향해 가는 일본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일본이 저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정부역할을 잘못 규정한 것도 큰 원인 중의 하나이다. 즉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부론'에 빠져 세수를 제대로 늘리지 못했고, 이것이 결국은 국가부채가 GDP의 200%를 넘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채가 많으니 재정 정책과 이자율 정책 등에 제한이 가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은 다시 자본의 해외이탈 현상 등으로 이어지며 일본 경제를 오늘과 같은 상황으로 몰고 왔다.정부역할에 대한 올바른 담론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국가부채와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가는 우리의 현실도 안타깝긴 마찬가지이다.Ⅳ. ‘작은 정부와 큰 정부’의 논쟁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바람직한 논의 방향1. 작은 정부 큰 시장 지향작은 정부론이나 최소 국가론은 사회계약론에서 시작해서 공리주의와 실용주의, 그리고 세계주의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핵심적 주장이다. 공화주의나 사회복지국 패러다임과 경쟁관계를 형성해 온 자유주의 패러다임은 행정 권력의 역할을 개인들 사이의 사적 이해관계 충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거나 타협토록 하는 매개자로 한정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정부가 아닌 시장이 국가경제의 기획과 통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2010학년도 1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동서양고전학 번 : 200822-128770성 명 : 이 용 헌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제유형 : ( 공통 ) 형○ 과 제 명 : 『에우튀데모스』, 플라톤, 김주일 옮김, 이제이북스, 2008,421쪽부터 480쪽까지Ⅰ. 발췌 요약1. 크리톤 : 소크라테스, 어제 자네가 뤼케이온에서 대화를 나눈 사람은 누구였나? 정말 무리가 자네들 일행을 둘러싸고 있는 통에 듣고 싶은 마음에 다가갔지만 나는 무엇 하나 똑똑하게 들을 수가 없었네. 그래도 목을 빼고 보니 볼 수는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 자네가 대화를 나눈 사람은 외지인 같더군. 그 사람이 누구였나?2. 소크라테스 : 크리톤, 대체 어느 쪽 사람을 묻는거지? 외지인은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이었거든. 크리톤, 자네가 묻는 분은 에우튀데모스란 분이고, 내곁 왼편에 앉아 있던 분은 그분의 형제인 디오뉘소도로스란 분일세. 이분도 논의에 참여 한다네.3. 크리톤 : 나느 어느 쪽도 모르네, 소크라테스. 그 사람들은 신종 스피스테스인 모양이군, 또. 어디서들 왔는가? 그리고 그들의 지혜는 어떤 것인가?4. 소크라테스 : 전혀 아닐세, 크리톤. 걱정 안해도 될 만큼 충분히 격려가 되는 증거를 내가 알고 있네. 바로 이 두 분이 노인이 거의 다 되어서 내가 탐내는 이 지혜, 즉 쟁론술을 시작했거든. 작년인가 재작년까지는 두 사람 중 누구도 쟁론술에 대하여 지혜롭지 않았네. 다만 한 가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번에는 외지인 두 분이 또 나 때문에 망신을 당하시지나 않을까 하는 것일세. 그런데 크리톤, 저번에는 내가 나보다 나이든 다른 분들게 나와 학우가 되어 같이 배우러 다니자고 설득했었지만, 이번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보려네. 자네도 같이 배우러 다니지 않겠는가? 그 두 분을 미끼로 자네 아들들을 데려가세. 그분들이 자네 아들들을 노려서에우튀데모스는 자네를 속여 넘기고 있어. 나한테 말해보게. 배운다는 것이 누군가가 배울 것에 대한 앎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아닌가?” 클레이니아스는 받아들이는 것이라는데 동의했네. 그분이 말했네. “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앎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지?” 그가 동의했네. “그러면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앎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겠고?” 그분에게 그가 동의했네. “그러면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인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속한다고 자네가 동의한 셈이 아닌가?” 그가 끄덕였네. “그러면 배우는 사람들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속하고, 가지고 있는 사람들엑는 속하지 않겠지?” 그가 인정했네. “클레이니아스, 그러니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배우는 것일세.”10. 사실 프로디코스가 말하듯이 처음에는 이름들의 올바름에 대해서 배워야 하기 때문일세. 외지인 두 분이 자네에게 밝혀 보여 주는 것도 이와 다른 것이 아닐세. 누군가가 처음에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아무런 앎도 갖고 있지 않다가 나중에 그것에 대한 앎을 받아들일 때, 사람들은 그 상황에도 ‘배우다’는 이름을 붙여 부르지만, 이미 앎을 갖고 나서 동일한 대상을 이 앎을 가지고 헤아릴 때에도 같은 이름을 붙여 부른다는 것을(그 경우에 사람들이 ‘배우다’라고 부를 때보다는 오히려 ‘이해하다’라고 부를 때가 더 많긴 하지만, 때로는 ‘배우다’라고도 부르지), 자네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두 분이 밝혀 보여 주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자네는 이분들이 밝혀 보여 주고 있듯이 반대되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즉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이름을 주어져 있다는 점을 간과했네.11. “자, 우리 사람들은 모두 다 잘 살고 싶어 할까? 그게 아니면 이 질문은 방금 내가 걱정했던 우스꽝스런 것 중 하나일까? 그런 것들은 묻는 것부터가 멍청한 짓일 수것 같군. 그것들에 대한 설명은 그것들이 그 자체로 본성상 좋은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것이 될 듯하네. 만약 그것들을 무지가 인도하는 경우에는 나쁜 인도자에 더 잘 봉사할 능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들은 반대되는 것들보다 더욱더 큰 나쁜 것이 될 것이고, 분별과 짛{가 인도한다면 더욱더 큰 좋은 것들이 되겠지만, 그것들 중에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일세.” “제 생각에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말했던 것들로부터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지혜와 무지 말고 다른 것들은 어느 것이든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이 둘 중 지혜는 좋고 무지는 나쁘다는 것 아니겠나?” 그가 동의했네.18. 그러자 나는 그 말에 기뻐하며 말했네. “디오뉘소도로스와 에우튀데모스, 내가 갈망하는 종류의 권유하는 논변들의 본보기는 이와 같습니다. 두 분은 어느 분이시든 원하시는 분이, 같은 이것을 하되 기술적으로 우리에게 입증해 보여 주십시오.19. “어때, 자네는 정말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크테십포스?” 에우튀데모스가 말했네. “물론이지. 아님 내가 미쳤게요.” 그가 말했네. “그 말에 관련되는 사물을 말할 때인가, 말하지 않을 때인가?” “말할 때죠.” 그가 말했네. “그가 그것을 말한다면, 그가 말하는 바로 그것 말고 있는 것들 중 다른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크테십포스가 말했네. “그가 말하는 그것도 있는 것들에 속하겠지? 다른 것들과는 구별되기에 하나고 말이야.” “물론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은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예.” “그런데 있는 것과 있는 것들을 말하는 사람은 참된 것을 말한다네. 그리하여 정말로 디오뉘소도로스가 있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는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이지 거짓말로 자네를 모략하는 것이 전혀 아닐세.”20. “있지 않은 것은 있지 않을 뿐이겠지?” 에우튀데모스가 말했네. “있지 않지요.” “그러면 적어도 있지 않은 그런데 지혜에 대한 사랑은 앎의 획득일세, 그렇지 않은가?” 내가 말했네. “예.” 그가 말했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앎을 획득해야 앎을 올바르게 획득하겠는가? 그것은 오로지 우리에게 이득을 줄 것을 획득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입니다.”26. “여보게 그러니 우리에게는 만들 줄 알고 만든 것을 사용할 줄 아는 앎이 함께 속하는 어떤 앎이 필요하네.”27. “그런데 잘 생각해 보게. 우리가 논변 만드는 기술을 배운다면, 이것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획득해야 한 그 기술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클레이니아스가 끼어들며 대답했네.28. “저는 논변을 만드는 어떤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뤼라 만드는 사람들이 뤼라를 사용할 줄 모르듯이, 자신들이 만드는 자신들의 논변들을 사용할 줄 모릅니다. 그러니 이 경우에도 역시 다른 사람들은 저들이 만들어 낸 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반면 논변 만드는 사람들 자신은 할 수 없지요. 따라서 논변들에 관련해서도 만드는 기술과 사용하는 기술은 따로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말했네.29. “내가 보기에 자네는 누구든 획득하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는 그 기술을 논변 만드는 사람들의 기술이 아니라는 충분한 증거를 말하는 것 같네.” 내가 말했네. “비록 이 경우에 오래전부터 우리가 찾아 온 바로 그 앎이 아마도 나타나리라고 내가 생각하긴 했지만 말일세.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그들과 이야기할 때면, 논변을 만드는 그 사람들 자신은 극히 지혜롭고 그들의 기술 자체는 신적이고 드높은 어떤 것으로 내게 보이기 때문일세. 하긴 놀라울 것도 전혀 없지. 그것은 약간 떨어지긴 해도 주술사 기술의 일부니까. 왜냐하면 주술사들의 것은 독사와 독거미와 전갈과 다른 짐승 및 질병의 흘림인 반면, 그것은 재판관들과 민회의원과 그 밖의 다른 무리들의 흘림과 달램이기 때문이지.”30. “어느 것이든 사냥술 자체는 쫓고 잡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쫓는 것들을 잡고 나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사냥꾼과 어부들의 경우는 서 있지 않은 것이야 불가능하기에, 내가 하나를 알고 있으면 모든 것을 알고,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나는 그 앎도 아는군요. 정말이지 당신들의 말씀은 그런 것이고,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지혜로운 것입니까?”35. “소크라테스 당신은 그때그때 이해하게 될 것들과 관련해서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바보 같은 소리나 하고 있고 필요 이상으로 구닥다리니까요.” 그러자 나는 그분이 이름들을 둘러 세워서 나를 사냥할 셈이라서 논의되는 것들을 내가 구별하는 것에 그분이 성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네.36. “지극히 존경받는 에우튀데모스, 정말이지 당신이 참으로 진실을 말씀하고 계시다면, 꼭 좀 당신이 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말했네. “하지만 당신의 형제분인 여기 계신 디오뉘소도로스가 당신과 함께 원하지 않으면,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하시기에 충분하다고는 확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도 함께 원하신다면 아마 그러겠지만요. 내게 말씀들 해 주십시오.” 내가 말했네. “당신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터에,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두고 지혜에 있어 이처럼 기이한 사람들인 당신들과 내가 어떻게 논쟁해야 할지를 다른 경우들에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는, 즉 훌륭한 사람들이 부정의하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에우퉤데모스? 자, 말씀해 주세요. 나는 그것을 아나요, 아니면 알지 못하나요?”37. “다른 누구라도 그렇다네. 말해 보게, 크데십포스. 필요할 때에 약을 마시는 것이 병자에게 좋다고 자네는 생각하는가, 아니면 자네가 보기에 그것은 좋지 않은가? 또는 전쟁에 나갈 때, 무장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무장을 하고 가는 것이 좋은가?” “내가 보기에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뭔가 아름다운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리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가 말했다. “자네는 아주 좋은 것들을 알게 될 걸세.” 그분이 말했네. “대답해 보게. 필요할 때면 사람에게는 약을 마시는 것이 좋다고 자네가 동의했으니 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