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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결혼과 다문화 가정.
    ▣. 목 차 .▣♣. 머 리 말 .♣사례지역 ( 1. 선정이유. 2. 자료조사 방법.)♣. 본 론 .♣1. 단일민족 한국과 국제결혼1). 문화와 국제결혼2). 결혼 및 가족에 대한 의식(가치관) 변화2. 국제결혼의 현황1). 국제 결혼 건수와 비율(1). 국제결혼 (전국 - 이민자수와 이민자 지역)(2). 국제결혼과 지역사회 (전국)(3). 농촌 지역의 국제 결혼3. 국제 결혼의 특징1). 결혼 이민의 배경 및 원인(1). 한국(2). 이주국가①. 한국 입국 목적2). 이동경로.(1). 국제결혼 과정(전국)①. 배우자 소개 경로ㄱ. 배우자 소개 경로ㄴ. 배우자 소개시 소개비 지출 유무ㄷ. 입국 전 한국의 친인척 거주현황3). 결혼시기, 결혼 연령 및 결혼 유형(1). 결혼시기 및 결혼 기간(2). 결혼 연령(3). 결혼 유형4). 결혼 이유(1). 외국인 부인의 한국인과의 결혼 이유(2). 한국인 남편의 외국인과의 결혼이유(3). 결혼시장의 현실 및 국제 결혼 시장의 상품화(4). 외국인 부인 본국 가족의 경제적 배경①. 외국인 부인 본국 가족의 경제상태②. 입국 전 본국 가족의 생계 책임자4. 국제결혼(연기군, 청원군, 청주시 - 조사지역 청원군일대지역으로 한정. )1). 조치원, 청원군(강외면인근지역), 청주시 가경동 (조사 범위 축소)의 국제 결혼(1). 조치원, 청원군 일대의 국제 결혼 여성의 설문조사(2). 조사지역의 국제 결혼의 시작과 국제 결혼 방법(3). 국제 결혼의 지리적 속성5. 다문화 양상1). 공동체 변화 및 해체 원인(1). 공동체 변화 원인 (전국)(2). 공동체 변화 원인 (조사지역)(3). 공동체 변화와 결과 (전국과 조사지역)①. 지역사회의 변화②. 가족 구성원 변화 및 다문화 가정 2세대 (조사지역의 초등학교 방문조사결과를 토대로)③. 언어경관 변화④. 건축물의 변화 (주택지역)6. 공동체 변화 문제점1). 문화 차이 및 언어차이2). 가족 관계와 가족 생활3). 사회생활과 경제활동4). 자녀교육 및 부모 - 자녀와의 관계5). 4.6%, 미국 3.4%, 일본3.3%,대만 2.9%♣. 2006년 대비 중국이 6.3%, 동남아시아는 0.7% 증가한 반면, 기타 국가는 감소하는 등 일부 국가에편중하여 집중적으로 유입되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2). 국제결혼과 지역사회.(전국)면동 단위로 90일 이상 사실상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의 실태 외국인주민의 실태를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외국인주민 722,686명중 외국인근로자는 35.9%인 259,805명, 국제결혼이주자가 12.2%인 87,964명, 국제결혼가정자녀는 6.1%인 44,258명이고, 외국인중 국적취득자가 7.5%인 54,051명이었다 2006년과 비교하여 외국인주민이 큰 폭으로 증가한 요인은 먼저, 지자체 국제결혼 비용지원 등으로 국제결혼이주자 및 자녀가 46.1%(42천명), 국적취득자가 36.8%(15천명) 증가하였으며 이것은 우리가 현재 다문화사회로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는 단면을 보여준다. 국제유입의 원인도 성차이에 따라 다른데 외국인근로자는 남성이 70.7%인 반면, 국제결혼이주자의 경우 여성이 86%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국제결혼가정자녀(44,258명)의 연령별 현황을 조사한 결과, 6세 이하가 59.8%, 12세 이하가 32.5%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취학전 아동의 한국어 활용능력 향상과 사춘기에 접어든 아동에 대한 학습지도, 차별?소외감 해소 등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결혼이주자 및 자녀의 증가(41천명) 추세와 함께 2006년 최초 조사시 누락된 기타 외국인중 일부가 추가로 조사됨에 따라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3). 농촌 지역의 국제 결혼2000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인의 국제 결혼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에 전체 혼인 가운데 한국인과 외국인과의 혼인 비율이 3.7%이었지만 2004년부터 11.4%로 급격히 증가하였고 2005년에도 13.6%로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농촌지역에서 국제 결혼을 한 한국인의 성별은 2000년에는 남자가 59.2%, 여자419.69.330-39세44.752.445.355.862.764.381.540-49세29.021.41.935.622.412.59.350-59세14.98.3-4.81.53.6-60세 이상4.70.60.9----(3). 결혼 유형외국인 부인과 한국인 남편 부부의 결혼 유형은 부인과 남편이 모두 초혼인 경우가 69.4%로 가장 많았으며, 부부 둘 중 한 명 이상이 재혼인 비율은 30.6%였다. 부인이 초혼이고 남편이 재혼인 비율이 부인은 재혼이고 남편은 초혼인 비율보다 3%가량 많았으며 부인과 남편이 모두 재혼인 부부도 16.3%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부부가 동갑인 경우에는 82%가 둘 다 초혼이었으며, 남편의 나이가 부인보다 20세 이상 많은 부부 가운데 59.6%는 둘 다 초혼이었고 34%는 부인은 초혼이고 남편은 재혼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부인의 출신국적별로 결혼 유형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는데 중국 조선족 부인 부부는 둘다 재혼인 부부가 많았으며 일본 부인 부부는 대부분이 둘다 초혼 이었다. 필리핀, 태국, 베트남, 몽골 부인과 한국인 남편 부부는 70%이상이 부인과 남편 모두 초혼이었으며, 베트남 부인 부부의 19%는 부인은 초혼이고 남편은 재혼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부인이 일본과 베트남 출신인 경우는 남편은 초혼이고 부인은 재혼이 부부가 전혀 없었다. (단위 : %, 명)중국 조선족중국한족일본베트남필리핀몽골태국초혼(여) : 초혼(남)47.163.796.280.888.176.887.0초혼(여) : 재혼(남)6.310.12.819.27.510.78.6재혼(여) : 초혼(남)10.67.1--1.57.15.7재혼(여) : 재혼(남)36.119.00.9-3.05.416.34). 결혼 이유(1). 외국인 부인의 한국인과의 결혼 이유외국인 부인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로 1순위 남편을 사랑하였기 때문이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경제적으로 더 발전한 한국에서 살기 위하여, 종교적인이유로, 가족과 친척등의 권유로, 본국 가족도와 가정 생활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 지역 국제 결혼 여성들은 자국의 문화와 차이는 느끼나 어느 정도의 안정과 만족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제 결혼 여성자들의 가족 구성 형태가 시부모님을 중심으로 하는 대가족 형태가 대부분 이었으며 남편이 농업에 종사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산업화에 따른 농촌 여성인구 급감과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와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농촌 지역으로 결혼 하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가정내 언어 사용의 경우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많은 언어적 제약이 따른 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별도의 교육기관에서 교육 받지 않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 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국제 결혼 여성에 대한 문화적, 정신적 유대에 대해 소홀하며 이들을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이방인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조사 결과 현재 조사지역에는 많은 국제 결혼 여성이 있지는 않지만 이들이 조사지역에서 문화적 교류를 하며 문화적 접변을 통해 지역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국제 결혼 여성이 엄연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인식 이에 맞는 지역문화사업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2). 조사지역의 국제 결혼의 시작과 국제 결혼 방법청원군(중봉리~ 궁평리), 연기군, 청주시 가경동 일대에 국제 결혼을 통한 이주의 시작이 언제부터 인가는 확실한 통계자료는 존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중학교의 자녀를 둔 가정이 2가정이며 고등학교 연령대의 자녀가 없는 것으로 볼 때) 12-16년 사이에 소수의 국제 결혼이 이루어 졌을 것이라고 추정되며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과 영유아의 자녀를 둔 가정이 많은 것을 보았을 때 이 지역의 국제 결혼은 약 10년 사이에 급증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국제결혼 시기는 농촌 총각 장가 보내기 일환으로 계획 되었던 결혼 정보 회사의 중국, 동남아 지역 교류를 통해 이루어 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조사 결과 이 우 전화조사 결과 어머니가 일본인 이기 때문에 어떤 문화적 혼란을 겪고 있냐고 질문한 결과 큰 혼란은 겪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그들은 모두 한 가정 자녀로 학교 생활에 큰 제약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 결혼 여성이 일본인과 독일인 각각 1명씩에 제한되어 있어 국제 결혼 여성에 대한 특정한 결론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한국어와 일본어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좋으며 친구들이 자신들을 궁금해 한다고 답했다. 이것은 일본과 한국이 지리적, 심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등학교다문화 가정 자녀수지역없음고등학교의 경우 다문화 가정 자녀는 없었다. 이것은 이 지역의 국제 결혼 여성의 결혼 이주가 자녀를 고등학교에 보낼 나이 즉, 17 -19년 정도의 기간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에 집중 분포 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치원, 청원군, 가경동 인근 지역은 국제결혼이 시작된지 약 10여년 안팎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학생수와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존재 하지만 지역 조사를 통해 살펴본 국제 결혼의 여성 나이가 20대 초반부터 30대 초중후반 까지의 나이 분포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지역의 국제 결혼은 그리 오래 되 보이지 않았다.또한 결혼 기간이 아직은 가시적인 문화 공간을 만들거나 문화를 변화 시킬 만큼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런 국제결혼 여성의 한국 거주 기간은 한국 문화와 그들의 자국 문화가 접변되는 기간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며 이들간에 현재 얼마나 융합되었는지를 알 수 없지만 문화접변이 일어나고 있음은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 지역은 국제 결혼 여성의 수와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현재 문화 접변에 따라 변화 하고 있거나 국제 결혼 여성의 문화가 한국문화에 융화되고 있는 시기라고 보여진다.③. 언어경관 변화우리나라의 국제 결다.
    사회과학| 2008.03.17| 31페이지| 4,000원| 조회(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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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해시의 인구특성
    ♠. 목 차 .♠Ⅰ. 서론1. 동해시 선정 이유2. 동해시의 유래 및 지리적 특징3. 동해시의 행정 현황Ⅱ. 본론1. 인구현황1). 인구추이 및 인구밀도2). 인구동태4). 인구 이동2. 동해시의 인구 특성1). 동해시 인구의 특성2). 인구변화의 원인3). 인구문제의 해결방안(1). 지원 및 추진방안(2). 산업구조 (북평산업단지, 동해자유무역지대)(3). 출산장려정책(4). 전입세대 정착지원Ⅲ. 결론Ⅳ. 참고문헌 및 참고사이트♣. 동해시의 인구 특성 .♣강원도 영동지방 중남부에 있는 시.♣.면적 : 180.01㎢♣. 인구 : 9만 8,154명♣. 인구밀도 : 545명/㎢♣. 가구수 : 3만 6,693♣. 행정구분 : 10동♣. 소재지 :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806Ⅰ. 서론1. 동해시 선정 이유동해시는 여름의 계절적 인구 이동에 따른 유동인구집중 현상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통해 인구의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출산률 감소에 따른 자연적 인구 감소와 전출증가에 따른 사회적 인구 감소는 전체 지역 주민 수 감소라는 심각한 인구문제를 등장시켰다. 현재 인구의 지속적인 전출로 동해시는 인구 과소화 현상을 겪고 있는데 이것은 동해시의 존립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동해시는 적절한 인구규모 유지를 위해 출산지원정책이나 사회적 감소를 막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에 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레포트 에서는 동해시의 특이한 인구 특성을 파악하고 인구변화의 원인과 해결책을 알아 보겠다.2. 동해시의 유래 및 지리적 특징1941년묵호항 개항1942년강릉군 망상면이 묵호읍으로 승격1945년삼척군 북평읍으로 승격1979년북평항 개항, 동해시 설치 법률 공포(법률 제 3188호)1980년동해시 승격 묵호읍 + 북평읍1981년내동, 호현동을 북평동에 편입, 향로동 일부를 동호동에 편입1984년북평역을 동해역으로 개칭1986년북평항을 동해항으로 개칭1990년부곡동 일부를 향로동에 편입1993년단봉동, 대구동되어 계곡형 관광지인 무릉계곡과,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암의 매장량이 풍부하다. 태백산맥의 동쪽이 급경사인 관계로 강 유역이 짧아 범람은 없으나, 강물의 유속이 빨라 갈수기에는 용수부족 현상이 간혹 있으며, 긴 해안선의 발달로 추암해 금강등 빼어난 해안절경과, 전국에서 제일 넓고 깨끗한 망상해수욕장을 비롯한 군소해수욕장이 산재해 있어, 도시민의 여가선용지로 이용되고 있다.3. 동해시의 행정 현황면적은 180.01㎢ 이며, 세대수는 36,092 가구 이고 인구수는 9만 8,154명이다. 동해시는 천곡동, 송정동, 북삼동, 부곡동, 동호동, 발한동, 묵호동, 북평동, 망상동, 삼화동으로 크게 나뉜다. 천곡동의 면적은 10.41㎢이며, 세대수는 9,154가구 이고 인구수는 27,113명이다. 송정동의 면적은 5.16㎢이며, 세대수는 2,259 가구 이고 인구수는 8,223명이다. 동호동의 면적은 2.88㎢이고, 세대수는 2,273가구이며 인구수는 6,136이다. 발한동의 면적은 1.10㎢이며, 세대수는 2,683이고 인구수는 6,795명이다. 묵호동의 면적은 3.31㎢이며 세대수는 2,173가구이며 인구수는 5,267명이다. 북평동의 면적은 19.32㎢이며, 세대수는 4,4121가구 이고 인구수는 11,848명이다. 망상동의 면적은 25.73㎢이고, 세대수는 1,853가구이며 인구수는 4,835명이다. 삼화동의 면적은 90.33㎢이며 세대수는 1,708 가구 이며 인구수는 4,944명이다.Ⅱ. 본론1. 인구현황1). 인구추이 및 인구밀도 - 지속적인 인구 감소.동해시의 인구추이와 인구밀도는 현재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해시의 인구추이를 도표와 그래표를 통해 살펴보면 1995년 처음으로 인구 10만을 넘어 섰고 2000년대 까지 꾸준한 인구 증가가 있었으나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계속적으로 인구 감소가 이루어 진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동해지역의 관광산업 위주의 3차 산업 구조와 출산률 감소등과 많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동해시의머지 9개 동지역은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발한동과 묵호동 등 북부지역 인구는 시개청 당시보다 절반가량 감소해 지역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동해시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북평산업단지 활성화가 유일한 희망이지만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입주업체 유치가 부진해 인구 유입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원주를 제외하고는 도 전체가 인구감소를 보이는 추세다”며 “공단활성화 등 다양한 인구 늘리기 정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했다.-위 기사내용은 동해시의 인구 감소에 따른 각종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동해시가 인구 증가를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2). 인구동태인구동태를 살펴 보면 동해시는 출생은 2000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여성의 사회진출과 경제활동 증가, 출산을 기피하려는 사회풍조, 여성의 교육기간 증가, 자녀양육의 부담 및 양육의 어려움등 때문이며 동해시도 전국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사망의 경우 출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과는 달리 비교적 균등한 사망 현황을 보인다. 이것은 의료기술 발달에 따른 생명 연장 등에 따른 결과로 앞으로 출생과 사망이 이런 형태로 계속된다면 영유아 및 청장년층은 계속 감소할 것이며 노년층이 증가하여 동해시의 인구에 심한 연령 불균형 현상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지역의 인구 자연 증가율은 그림에서와 같이 0.0 - 1000.0의 낮은 분포를 보이고 있음을 알수 있다. 혼인과 사망을 살펴보면 2000년에서는 혼인이 이혼 보다 월등히 높은 것을 알 수 있으나 2005년도에는 혼인과 이혼이 그래프 폭이 많이 감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미혼 여성, 남성의 독신주의 증가와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풍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3). 연령별 인구성별 및 10세 계급별2000년2001년2002년2003년남녀남녀남녀남녀0 - 9세748*************73756************* -19세78*************27114659069 따른 인구 감소를 대비하고 다양한 인구 유인 정책을 펼쳐 인구 이동을 막아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동해시의 인구이동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지속적으로 전출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인구 고용 창출을 할 수 있는 산업 기반 시설이 없고 북평공업 지역과 같은 공업단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유치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으며 동해항 자유무역지대를 통한 산업 활성화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전국과 비교 했을 때 동해시는 많은 인구를 다른 시, 도에 빼앗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는데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산업기반의 고용창출 저하와 관광관련 시설의 집중 투자로 인해 교육과 문화, 도로, 주택과 같은 도시 기반 시설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그리고 동해시의 인구 유입은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2000년도에 3401명에서 2005년도에 2756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것은 동해시가 인구 유입의 매력, 즉 주민들의 편의시설이나 기업, 교육시설등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지속적인 인구 유입 감소는 동해시가 시로 존립할 수 있는 인구와 재정을 유지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기 때문에 동해시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 협력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그리고 인구 유출의 경우 동해시는 영동권의 거점도시인 강릉시를 중심으로 인구 유출이 시작되면서 2004년도 이후에는 수도권과 영서권으로의 유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림에서 살펴보면 동해시는 서울과 경기도의 이동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 동해시에 전입인구는 거의 없고 서울과 경기로 전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지역황폐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2. 동해시의 인구 특성1). 동해시 인구의 특성동해시 인구는 인구추이, 인구밀도, 인구동태, 연령별 인구, 인구총이동에서 보듯이 전입보다 전출이 많아서 인구의 밀도가 낮아지고 출생, 사망, 혼인, 이혼 등에 따른 인구 감소도 증가하였다. 위의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출산률이 감소 하므로 영유아시도 출산률이 감소하고 있다. 이런 출산률 감소는 자연적 감소 이외에도 한 자녀만 낳는 가정이 많아 지면서 자녀의 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부모들을 등장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출산률 감소를 막고 교육 이동을 막기 위해 현재 동해시에서는 출산률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좀 더 좋은 교육 서비스와 문화혜택을 지역주민에게 제공하도록 노력중에 있다.3). 인구문제의 해결방안(1). 지원 및 추진방안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일정한 고용 규모를 가진 기업이나 관공서 등이 지역에 입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동해시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북평공업공단의 활성화를 통해 많은 공장들을 입주 시켜야 하며 동해시에서는 동해시에 입지하는 기업을 위해 세금감면이나 면세정책등과 같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써 노력해야 한다. 또한 출산장려 정책 이외에도 여성의 경제적 활동이 늘어나면서 결혼 자체를 꺼리거나 자녀를 낳지 않으려는 여성들이 늘어 나고 있음으로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고용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영유아들의 유치원등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주거여건과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대책이 마련되야 한다.♣. 동해시 인구 2년만에 증가 전망 .♣-감소폭 대폭 둔화 ? 지난달 9만7,106명 기록 -사망자 대비 출생률 늘어 10만명 회복 기대동해시가 인구 10만명 회복 운동을 역점시책으로 벌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동해지역의 인구감소가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12월 10만4,409명을 정점으로 지난해 말까지 매월 평균 150여명의 감소세를 보였으나 지난 4월 7명, 5월 23명으로 감소폭이 대폭 둔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 달 9만7,106명을 기록한 시인구는 이달 들어 증가세로 전환돼 2005년8월 인구 10만 붕괴이후 22개월만에 처음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해부터 사망자 대비 출생자 비율이 60%이상 증가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부터 추진한 출산장려 분위기 확산 시책과 주요기관, 학교, 기업체 임직원의 동해 주소갖기 운동추진 등 인구 늘리기 시책의 추진.
    사회과학| 2008.03.17| 12페이지| 2,000원| 조회(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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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소수민족 백족(바이족) 조사
    ♠. 나라 속의 또 다른 나라. ♠ ♠. 소수민족에 관하여 .♠♠. 바이족 (白族, 백족, Pai Nationality) .♠- 중국 속의 또 다른 중국 백족의 문화를 찾아서 -(바이족 - 산 위의 바다에서 노젓는 뱃사공 )아프리카에서 태초의 인류로 시작해 인간은 생물학적(형질 인류학적)으로 분화된 후 자연환경과 이를 통해 획득한 문화적 환경으로 민족을 형성해 나갔다. 그러나 자연자원의 부족이나 인ㄱ나이 얻고자 하는 만족감의 극대화로 인해 보다 많은 보다 좋은 환경을 얻기 위해 인간은 타 민족을 억압하며 자신의 민족이 우위로 득세함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 시켜 나갔으며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현재 세계는 한 국가와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시대로써 이질적인 타문화를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국가의 존립과 사회의 성격이 변화된다.민족은 인종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는 인간 집단)으로 유구한 세월 속에서 고유의 문화를 통해서 민족만의 경관을 만들어 낸다.15세기 이후 이런 민족들은 정글의 법칙 속에서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통해 발전하거나 도태 되었다. 15세기 이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속에서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적으로 타문화와 접촉하면서 민족 고유의 문화가 쇠퇴한 민족들은 현재 한 나라 속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많은 탄압과 악재 속에서 민족의 뿌리를 지키며 생존하고 있다.소수 민족은 다수민족과 동화되어 공존하거나 반발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 나라만의 그 지역만의 특이한 공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가 약육강식의 법칙에서 벗어나 함께 공존하고 협력하는 공존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보호를 받으며 존립하고 있는 실정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관찰은 어느 민족에게나 필요하다고 보여진다.이 레포트 에서는 현재 까지도 열악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에 대해 살펴보고 다수민족에 의해 교묘한 탄압을 받고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바이족의 역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요소들인 것이다. 이것은 한족을 비롯한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국가공동체를 운영하면서 상당히 안정적인 정책으로 소수족과 한족이 공존하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중국은 중국특유의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실현하고 있는데 소숨니족의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만큼, 소수민족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공존해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7. 소수민족의 거주지와 거지주의 특징대부분의 소수민족은 산촌이나 초원 및 해도 중국의 변방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조건은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여 이를 봉쇄 시킴으로써 이들이 발달한 현대 문명을 수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따라서 소수민족들은 전반적으로 생활 정도가 저하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폐쇄적 조건과 사회환경이 오히려 각 소수민족의 독특한 풍속을 보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은 어느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고, 이미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소규모로 생존해 오고 있던 민족이 발전, 형성된 것이어서 한족을 비롯한 55개 민족들은 모두 각자의 기원을 갖고 있다. 바이족은 운남성에 거주한다.♠. 대부분 소수민족들은 광대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것이 특징이며 인구가 현격히 적어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생산력이 상당히 뒤떨어지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의 대다수는 국토의 변경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 변경지역에는 거의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소수민족들은 필연적으로 한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상 민족이동이나 둔전, 정책으로 인구변동이 많았던 관계로 소수민족의 거주지에도 한족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족의 거주지에도 일부의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등 이들간의 잡거와 총거로 인해 교착 거주하는 형편이 없지 않다.♠. 소수민족 거주지의 특징.♠♣. 인구는 적지만 분포지역이 넓고 점유면적이 넓다. (전국토의 62%차지)♣. 대잡거, 소잡거, 교착잡거 형태를 띤다역은 관광으로 생활하기도 한다.성인의 식자율과 영아 사망률, 1세 영아의 예상 수명 등 세가지 항목을 물질 생활의 질을 나타내는 지수(PQLI)를 구성하는 지표로 이에 따르면 바이족은 중등급으로 분류되지만 물질생활의 질 지수가 낮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사회발전의 상황과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민족합계남녀만주족90.7490.9790.67조선족88.0286.4789.64바이족79.1681.9176.08묘족70.1274.7365.13이족64.6567.5961.04와족45.0546.5143.63(출처 : 중국 국가 통계국)(출처 : 현대 중국의 전통문화와 문화접변)바이족이 속한 윈난성은 다른 지역보다 한족과의 교류나 좋은 기후조건으로 평균수입이 타 지역에 비해 비교적 높으나 이것을 한족과 비교해 보았을 때는 열악한 상황이다. 이것은 바이족의 생산방식이 농경과 같은 1차 산업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으며 바이족의 경제적 자립도가 상당히 낮아 바이족을 위한 경제, 정치적 여건을 마련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바이족은 문화를 개방 경제적인 부를 획득하는 것을 알 수 있다.바이족은 지리환경과 언어문자, 경제생활등으로 전통문화 예술이 각각 특색을 갖고 있다. 바이족의 사회구조 상황은 한족의 선진적 생산기술과 생산공구를 채용 하므로써 경제발전에 있어서 한족과 기본적으로 같은 수준에 있었다. 봉건지주제도아래 일정한 정도의 자본주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고 사회경제적 발전이 한족과 같은 상태이다. 이것은 현재 원시공산사회제의 잔재가 남은 소수민족과 노예제 단계의 소수민족과 비교해 볼 때 아주 발전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바이족의 주요한 경제 분야는 농업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에 바이족의 대부분은 봉건지주경제 발전 단계에 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산간지대에는 여전히 노예제와 원시 공동체 잔재가 남아 있었다. 바이족의 종교 신앙은 그 사회적 경제조건과 역사적 환경이 다름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하며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⑦. 바이족의 교육수준.다른 대를 매어 늘인다. 젊은 부녀의 두식은 홍색을 위주로 하고 흑색과 백색을 병접하여 만든 포고)에 상하단은 은포로 장식한다. 신발은 화려한 수화혜를 신는다.㉯ 음식평원지역이나 산지에 거주하는 바이족들은 모두 농경위주로 생활하며 어업이나 목축업 및 수공업을 겸하고 있다. 음식에 있어 바이족의 주식은 쌀과 보리이지만 산지 사람들의 주식은 옥수수와 메밀이다. 평원에 거주하는 바이족은 경제가 비교적 발달하였고 조리와 위생을 중시한다. 자주 사용하는 조리법은 무치기, 삶기, 볶기,찌기, 곡기, 굽기, 튀기기 등이다. 이들은 음식의 다양화와 영양의 합리적인 배합을 중시하며 매일 두 번 주요 음식을 먹는데 일반적으로 채소와 짠지를 반찬으로 먹는다. 산지의 바이족은 생활이 비교적 어려워 잡곡을 많이 먹고 채소와 부식도 비교적 적으며 결혼이나 장례식 또는 기념일과 귀빈이 방문했을 때에라야 풍성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바이족은 시고 짜고 매운 맛을 좋아하여 여자들은 햄이나 소금 절임 고기와 절인 돼지간 및 각종 짠지를 잘 만들고 루산), 간나), 설탕 절인 과일, 양념으로 조리한 매실이나 고은 매실등을 만들며, 물고기나 조류에 대한 가공 조리법도 비교적 특색이 있다.대리의 요리중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는 대리사궈위이다. 이 요리는 대리주 상운현에서 구운 뚝배기를 써야 그 akst이 제대로 나며 이해 지역의 살아있는 생선을 주재료로 하여 20여종의 부재료를 배합하여 맑게 고은 것으로 그 맛이 신선하고 개운하여 최고의 손님 접대용 음식이라 할 만하다. 그 다음으로 둬성인데 이것은 바이족의 중요한 음식 풍습으로 문헌에 따르면 당대에 이미 이 음식이 있었다. 둬성은 돼지고기나 양고기 또는 우렁이를 불에 구워 70% 정도 익힌 뒤 파, 생강, 마늘 식초 등의 조미료를 더해 먹는 것이다. 이외에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요리로는 솬라위) , 니치우좐둬푸), 동위) 등이 있다.바이족은 손님을 환대하는 편이다. 손님을 대접할 때는 8가지 요리를 올리는데 8가지 요리 중에는 반드시 등포뤄와 술에의 노래를 화답해 부름으로써 친밀한 반려자라는 뜻을 지닌 쟈니가되고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이 때부터 부부가 되지만 대다수가 그저 임시로 짝을 이룰 뿐이다. 그 중 어떤 쟈니들은 매년 행사 기간동안 공개적으로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바이족들은 유고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러한 행위는 풍속을 문한하게 하는 것이라 여겨져,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무나 제사활동 또는 장사 등에만 참여할 뿐이다. 검천의 석보산 노래 모임에도 쟈니를 찾는 행사 내용이 있다.늑묵인의 관난하오에서 관은 구경한다는 뜻이고 난은 연인이며 하오는 방이다. 즉 관난하오의 뜻은 연인의 방으로 아가씨를 찾아간다. 는 것이다. 늑묵인의 풍습에서는 처녀가 13살이 지나면 부모가 집 가장자리에 작은 방을 하나 지어준다. 이곳은 처녀가 거주하는 곳이면서 사교의 장소이기도 하다. 총각은 밤에 처녀의 방을 찾아와서 연애하면서 혼전의 성적 자유를 누릴 수 이TEk. 만약 여자가 임신을 하면 남자는 여자가 분만하기 전에 아내로 맞이 하여 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이룬다.중혼은 1950년대 초까지 이원현 서산의 바이족 사회에 남아 잇었다. 이것은 젊은 남녀가 부모의 결정에 의해 부부로 맺어진뒤 두사람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연인을 찾을 수 잇도록 하는 결혼 형식이다.일부일처제는 바이족 사회에 일찍이 나타났다. 역사서에 따르면 적어도 당나라 초기에 바이족의 중심 거주지역에서 이미 나타났다. 당대 벉가의 8과 송대 양좌의 원대 이경의 등의 책에는 모두 바이족이 혼전에 연애자유가 있었지만 결혼한 뒤에는 어길시 정절을 지켰으며 이를 어긴 자는 호된 벌을 받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다고 기록하고 이TEk. 명대 이후에는 고나가에서 오랑캐의 풍속을 강제로 개혁했기 때문에 젊은 남녀는 혼인 자주권을 잃고 부모의 명과 매파의 말을 중요시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두 집안이 걸맞는지를 따지는 납채 예물을 보내고 혼수를 가져가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태내 아이의 혼사를 미리 정하거나 데릴사위 민며느리를 데려오는 등 젊은 남녀에게 극심한 고통을 각한다.
    사회과학| 2008.03.17| 41페이지| 4,000원| 조회(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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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교육과 한국의 지리교육의 변천 (1차~7차까지) 평가A좋아요
    ♠. 한국지리교육의발달-중등학교 ♠.- 한국의 역사와 함께 해온 지리교육의발달과정을 찾아 떠나는 여행. -♣. 지리교육은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지리라는 것은 지표면 상의 현상으로 우리가 어느 지점으로부터 다른 지점으로 이동을 하려고 할 때 혹은 지구상의 자연환경을 파악하고자 할 때 사용 해 왔다. 즉 인류가 생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리는 삶의 기본적 현상을 파악 해주면서 우리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의 지리교육의 발달 과정을 고찰해 보고 지리의 중요성 인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Ⅰ. 들어가며. (머리말.)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지리적 사고에 눈을 뜨며 살아간다. 즉 어머니의 모유를 먹기 위해 동물적 본능을 이용해 어머니에게 다가가기도 하며 성인이 되어서 좋은 환경이나 윤택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지리는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교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지리를 교육과정안에 도입하였으며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지리적 사고를 배우게 된다. 이런 지리교육은 시대와 함께 변화하게 된다. 과거 학교교육이 도입되면서부터 지리교육은 그 국가, 사회, 개인의 틀 안에서 그들에 맞춰 변화하게 되었다.현재는 정보화 시대로 인식되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21세기는 국가간의 상호 의존성이 강화될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의 상호 경쟁성은 심각해질 전망이다. 이에 대비하여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러 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변화와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교육분야의 변화와 개혁에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각 분야를 맡고 있는 주체인 사람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그 결과 현재 지리교육은 과거 개화기부터 시작되어 온 지리교육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지리교육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가치와 태도를 지닌 인간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기능적인 측면에서도 학생들이 매일같이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게 되는 공간과 장소, 위치 등이 상호간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전제임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도, 인공위성사진, 지구본 등 각종 학습자료뿐만 아니라 영상매체의 도움을 받아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에 적합한 지리적인 기능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리적 의문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리적 정보를 얻고, 획득한 정보를 지도에 표시하거나 도표화한 다음 이를 분석하여 해석하고 그 결과를 일반화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력을 신장시킬 수 있고 모든 사회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이 길러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지리적 기능에 대한 교육은 지리교육이 지니고 있는 도구 교과적인 성격을 보다 충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며, 학생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이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지리교육이 단순하게 백과사전적인 지식만을 가르치는 암기과목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은 이같은 지리적 기능을 육성할 수 있는 측면에서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환언하면 지리교육의 모학문인 지리학이 지니고 있는 종합학문적인 성격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식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측면에서의 우리들의 삶을 보다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일상적인 삶의 실천 속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지리적 기능에 대한 교육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3. 지리교육의 목적 및 목표한국의 지리교육이 발달하려면 그에 타당한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지리교육의 전체적 목적과 목표를 살펴보념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이후 연구들의 기본 틀이 되었고 약간의 가감만이 이루어졌다.국내에서 기본개념에 대한 논의의 시작은 1960년대 말이었지만, 그 논의가 지리교육계에서 활발해진 것은 1970년대인데 김연옥, 조광준, 강신호에 의해 논의가 이끌어져갔다. 김연옥은 기본개념을 분포, 지역, 인간-자연관계, 공간관계로 매우 간명하게 제시하였고, 조광준은 지도화, 분포, 지역, 인간과 자연관계, 공간관계, 지구의 6가지를 기본개념으로 선정하고 이들을 구체적인 수준으로 번안하여 상세화하였다. 임덕순은 처음으로 국내외에서 제시된 지리 기본개념에 대한 비교 연구를 시도하면서 지도화, 축척, 분포, 지역, 인간-자연 관계, 공간관계의 6가지를 지리교수용 기본개념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지리의 기본개념은 지리학의 패러다임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기석은 보여주었는데, 공간조직 패러다임에서 중시되는 공간분포, 지역, 변화, 입지, 내적 응집력 등과 같은 개념들만을 기본개념으로 제시한 바 있다. 1990년대에 지리 기본개념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1991년부터 제6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종래의 지리교육과정에 대한 접근방식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요구가 생기면서 지리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다. 류재명은 지리학 연구의 순차적 질서에 따라 자연토대, 공간행태, 지역분화, 공간관계, 지역계층, 공간구조의 6가지를 기본개념이라고 제시하여 결과적으로 공간조직 패러다임에 입각한 개념들을 중시하였다. 서태열은 지리의 기본개념에 대한 논의를 확대하여 교육과정의 구성을 위해서는 조직개념으로 제시할 것으로 주장하였다. 한편, 전문학자들이 이해하는 지리학과 현장교사들이 이해하는 지리 교과간의 괴리, 즉 이론과 실제 간의 괴리를 개념 및 기본개념을 통해 이해하려는 연구도 있었다. 이 연구에서 교사들이 기본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개념들을 보면, 인간-자연 관계, 입지, 지역, 지도화, 지역적 차이, 문화, 지리적이 등장하는 등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1차 성장기인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각 대학에서 지리교육 석사논문들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지리교육 연구가 활성화되고, 이 시기에 지리교육 전문가 1세대 집단이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주로 지리교육의 당면 과제나 개선 과제와 같은 총론적인 논의가 많았지만 지리교육과정, 지리 교수-학습, 지리교육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지리교육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들이 진행되어 지리교육 연구의 튼튼한 뿌리를 형성하였다.2차 성장기인 1990년대의 지리교육은 연구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갖추어지면서 양적, 질적 측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는데, 지리교육 전문가 2세대 집단이 형성될 뿐만 아니라 지리교육 연구 자체도 교과교육학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체계화된다. 이러한 결과로 많은 지리교육 전문서적들이 저술되거나 번역되고, 지리교육사, 지리교육철학, 지리교육의 목적과 목표, 지리교육과정, 지리교수법, 지리학습, 지리 교수-학습자료, 지리평가 등 지리교육의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연구방법을 이용하여 광범위하고도 전문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한편, 그 동안의 지리교육 및 지리교육 연구의 주체들을 살펴보면 지리교육 전문가와 지리교사 집단이 중심이 되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전문적인 조직인 학회나 교사조직이 지리교육의 발달에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지리교육은 기본적으로 지리의 교수-학습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학교교육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지리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장 많이 가진 집단은 지리교사들이다. 그렇지만 지리교육 및 지리교육 연구의 주체로서 지리교사들은 지리교육의 실행에만 주로 관심을 가지며, 지리교육 현상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하거나 문제에 대해 전문적 처방을 내리는데는 어려움을 보인다.지리교육에 대한 전문적 연구를 주도하는 것은 학회인데, 지리교육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표방로 나눌 수도 있다.유흥식은 지리교육 연구 분야를 교육총론, 교육내용, 교육동향, 교육방법, 교육자료의 5가지 영역으로 나눈바 있고, 남상준은 지리교육의 연구영역을 지리교육단행본, 지리교육총론, 지리교육의 목적과 목표, 지리교육의 내용, 지리교육의 교수 학습방법, 지리교육연구 등의 10개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류는 다양한 연구물을 포괄하기 위해 적절히 조정하여 분야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아 그 근거가 모호하였다.그 동안 우리나라의 지리교육과 관련한 연구물들을 분석한 연구로는 정장호, 강환국 정환영, 이중우, 유흥식, 조광준, 남상준, 서태열등의 연구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해방 이후부터 연구가 진행된 당시까지의 지리교육 연구물들을 분석하였는데, 연구물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몇 번의 급성장기를 보여준다.가장 대표적인 급성장을 보이는 시기는 앞에서도 언급한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와 1990년대이다. 이러한 급성장기는 교육과정의 개편시기와 맞물려 있거나 대학원 석 박사과정의 설치와 같은 제도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의 급성장은 제2차 교육과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증대하고 지리교육 전문가 1세대 집단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1990년대 초반에 지리교육 연구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교육과정 개편기를 전후하여 지리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과 대응방안에 관련된 연구물들이 다량으로 산출되었기 때문이다. 즉 1992년에 제6차 교육과정이 제정되고 공포되어 고등학교까지 사회과의 통합이 진행되어 공통사회가 등장함으로써 지리교육에 위기감이 조성되고 이에 따라 지리교육에 대한 체계적 연구의 필요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성장은 또한 대학원의 지리교육 전공 석 박사과정 설치와 같은 제도적인 변화로 인해 새로운 지리교육 전문가 2세대 집단이 형성된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유흥식(1988)에 따르면 1985년까지 연구가 많이.
    교육학| 2008.03.17| 38페이지| 3,000원| 조회(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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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빈토플러의 제2의 물결과 제3의 물결 비교 평가A+최고예요
    ♠. 제2의 물결을 뒷받침하는 6가지 원칙과 제3의 물결과의 차이점.인류의 삶은 시간의 변화 속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으며 이것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인류의 생활방식의 획기적인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삶은 생존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세 번의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흐름을 어떤 시대적 구분선에 맞추어 구분 짓는가? 하는 문제는 염두 해 볼 필요가 있다. 인류의 문명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지만 세 번의 큰 흐름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예를 들면, 현재 선진국은 고도의 지식정보화 사회로 정보폭발현상이 일어나는 반면 후진국은 농업경제가 아직도 존속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큰 세 번의 물결은 모두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류 문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시점을 기준으로 앨빈 토플러의 구분은 타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현재 우리는 1만년 전부터 시작된 농업혁명을 시작으로 제1의 물결을 형성, 산업혁명을 통해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 하였으며 다시금 불어온 제 3의 물결)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급격한 속도의 차이를 보이며 발전했는데 산업혁명에 의해 시작된 제 2의 물결은 약 300년을 통해 생활 전반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지만 제3의 물결은 불과 20-30년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삶을 바꿔 놓았다. 이런 변화는 인간의 전반 생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구조를 변화시켰으며 제2의 물결과 제3의 물결로 흘러오면서 우리는 많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으로 구분 짓기도 하고 문자 발생기점과 1950년대경 컴퓨터의 등장을 기점으로 구분 짓기도 한다. 특히 컴퓨터의 발전은 많은 양의 자료를 분석하고 보급하는데 기여 하게 되면서 빨라진 정보유통과 지식습득을 통해 획기적인 발전을 했다. 이런 획기적인 생활의 변화는 기존의 생산방식을 진부한 것으로 변화시키고 제2의 물결 사회의 특징들을 넘어 에너지, 부, 권력의 집중화의 길을 개척했다. 버리게 되면서 양자가 나뉘게 되는 현상을 나타냈다. 즉 제2의 물결은 공업산업 경제 사회를 의미하며 도시집중화에 따른 인구집중화와 가족형태의 변화, 자원의 변화에 따른 생산 시스템의 변화로 압축할 수 있다. 이런 제2의 물결에는 일정한 특징과 원칙이 존재하는데 어떤 문명이든 그 문명의 고유 암호가 있다. 암호란 문명의 모든 활동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몇 가지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 제 2의 물결에서는 여섯가지로 분류 되며 이 분류는 생산과 소비의 결정적인 분리에서 파생된 것이다.첫째 표준화(standardization)로 제2의 물결을 뒷받침하는 여섯 가지 원칙들 가운데 가장 알기 쉬운 것은 "표준화"이다. 산업사회가 무수한 규격품을 생산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표준화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은 시어도어 베일이다. 그는 미국전신전화회사를 설립하고 우편물에 규격화를 도입하여 우편산업에 혁명을 이룩 했으며 미국의 가정용전화기를 모두 규격화했다. 그는 규격화가 진행된 공장을 중앙에서 관리함으로써 교환업무, 법률 관계업무 분야등에 경비절감을 기대했으며 제2의 물결의 세계적 성공을 위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모두 규격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프레드릭 윈슬로우 테일러는 노동자의 일을 규격화)하면서 노동을 과학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제2의 물결 사회에서는 노동 그 자체의 규격화와 함께 고용절차 까지 규격화 되면서 규격화된 시험에 의해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배제 했는데 이것은 행정 분야에서 특히 철저했다. 또한 젊은이를 노동시장에 보내기 위해 교육관계자는 표준화한 교육과정을 도입하게 되었다. 비네와 터먼은 표준화된 지능 검사를 고안했으며 학교의 채점법, 입학시험을 치르는 방법, 졸업 자격에 대한 규정 등도 표준화 했으며 선다형 객관식 시험도 일반화 했다. 그리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같은 광고나, 같은 뉴스를 방영함으로써 규격화된 이미지를 보급시키고 중량이나 길이의 측정방법이나 화폐를 규격화 시켰으며 언어 또한 소수민족의 언어를 과거 제1의 물결에서는 노동 시 기준을 가지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한 마디의 노동가로 리듬을 타며 노동을 했다. 그러나 제 2의 물결에 의해서 기계가 도입되고 노동가가 불리지 않게 되었다. 결국 공업생산이 일반화하자, 기계의 비싼 값과 노동에서의 고도의 상호의존성이라는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동시화가 엄격히 요구되었다. 공장에서 어느 작업 공정을 맡은 노동자 그룹의 작업이 지연되면, 그 다음 공정에서는 지연의 폭이 더 크기 때문에 그래서 농경 사회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시간 엄수라는 것이 사회적 요청이 되면서 시계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1790년대의 영국에서 시계는 이미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도 학교에서 등하교 시간이 습관화 되면서 이것이 공장노동과 연결되어 노동자의 근무원칙이 생겼다. 그리고 이 밖에도 우리생활 전반에서 동시화가 파도쳤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시간체계에 반대하는 이들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남녀의 차로 문제를 제기 했는데 제2의 물결의 주된 노동자는 남성으로 가사라는 상호의존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여성보다 기계적인 리듬에 지배되어 왔고 고도로 상호의존이 필요한 제 2의 물결의 노동과 노동에서 생기는 차이로 남녀를 나누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2물결은 일상적인 잔일까지도 일정한 보조의 산업사회시스템에 정확이 짜여져 버렸고 일의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서로 때를 같이 하고 있으며 문화전체가 규격화 분업화되면서 동시화 되었다.넷째 집중화 (concentration)로 시장이 팽창하면서 제2의 물결의 또 하나의 원칙인 "집중화"가 나타났다. 제1의 물결의 사회는 갖가지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성립된 사회였다. 그런데, 제2의 물결의 사회는 에너지원을 거의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고도로 집중화된 화석연료에 에너지원을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집중화가 진전된 것은 에너지만이 아니다. 제2의 물결은 인간의 집중화까지 촉진시켰는데 지방에서 사람을 동원하여 거대한 도시권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그뿐 아니라 노가 진행되자 어느 나라에서나 중앙집권화가 전 생활 영역에 뿌리를 내렸으며 모든 산업 국가는 정교한 수법으로 중앙집권화를 발전시켰다. 교회를 비롯한 제1의 물결의 많은 지배자들도, 권력을 중앙에 집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루었던 것은, 현대와 비교하면 훨씬 단순하고 소박한 사회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산업사회를 중앙집권에 의해서 지탱하고 있는 인간에 비한다면, 제1의 물결의 지배자는 서툰 아마추어와 같은 존재였다. 복잡한 사회는 예외 없이 중앙집권적 기능과 지방분권적 기능의 공존을 필요로 한다. 제1의 물결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지방분권적이며,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고 지방색이 뚜렷한 경제였다. 이 같은 특징을 갖춘 경제가 통합이 진행된 국가경제를 단위로 하는 제2의 물결의 경제로 옮겨 감으로써, 권력을 중앙에 집중하는 방법도 그 면목을 일신하게 되었으며 중앙집권는 개인기업, 대기업, 그리고 일국의 경제와 온갖 수준에서 구체화되어 갔다. 그 결과 상하전달식의 명령체계의 구조가 되었고 이런 흐름은 정치분야 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 예로 미국에서 1780년 지방분권적 연합규약을 폐쇄하고 중앙집권적인 합중국 헌법을 만들려는 분쟁이 있었다. 이런 중앙집권화는 중앙정부를 통해 군사, 외교, 경제성장에 빠르게 성장을 가져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극단적인 정치적 집권화로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 있는 공업국이 등장했다. 이런 중앙집권화는 중앙은행이라는 기관이 출현하면서 통화와 신용의 중앙 지배를 목적으로 하면서 제2의 물결적 특성이 완성되었는데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제2의 물결 사회는 통화를 중심으로 중앙은행과 중앙정부가 이끌어 가면서 중앙집권화가 제2의 물결에 중요 원칙이 되었다.이런 여섯 가지 원칙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정적인 분리 및 확장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시장의 역할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었으며 이들 여섯 가지 원칙은 상호간에 강화작용을 계속하였는데 그 결과 비인간적인 관료기구를 등장하는 문제점을 낳기도 했다. 이처럼 제2의 생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장은 이 에너지원의 산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경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점차로 한 곳으로 집결되어 도시가 점점 커져 갔다. 그리고 대표 산업군도 석탄, 철도, 섬유, 철강, 자동차등 제조업분야의) 산업이 제2의 물결을 대표했다면 제3의 물결은 지식을 기반으로한 정보화 산업이 주류를 이루며 사회를 구성해 나갔다. 또한 인간의 욕구가 변화함에 따라 생산체제가 변화하게 되었는데 대량생산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통해 기업 생산력을 높여 나갔다. 그리고 물결이 거듭하면서 육체노동의 급격한 감소가 이루어 졌고 컴퓨터산업이 발전하면서 전자산업이 발달하게 되고 과거의 생산공정과는 또 다른 체제의 생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즉 과거에는 자동차등의 상품을 생산했다면 현재에는 전자공학과 테크놀러지를 유전학과 결합시켜 새로운 기술혁신을 통한 산업이 발달 되었다. 즉 제1의 물결이 어민이나 수렵민을 농민으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농민을 공장 근로자로 바꾸어 놓았고) 현재 생산을 중심으로 했던 기업에서 탈피했으며 가정 내에서 컴퓨터로 기업업무를 보는 시스템의 등장으로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생산소비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제2의 물결과는 달리 국가단위의 시장이 세계단위로 변화되면서 다국적기업의 세계적 독점을 통해 기업존립의 위기를 가속화하게 되었다.둘째, 정치부분의 차이로 과거 대량생산을 위주로 국가발전을 중심으로 했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사회에서는 중앙집권을 통해 노동자를 관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교육수준이 증가하고 생활이 풍요로워 지면서 국익보다는 자신의 권리를 중심으로 정치도 발전했다. 과거 중앙집권정치를 벗어나 지방분권주의를 채택하거나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과거와는 또 다른 정치체제를 이루었다. 즉 과거 정당, 의회, 대통령등 소수엘리트에 의해 집단 결정되던 정치체계가 소수엘리트층은 물론 사회단체나 각 개인의 의사를 통해 정치체계를 수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2의 물결시대의 조직체계인 관료체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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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경제| 2008.03.17| 7페이지| 1,000원| 조회(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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