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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무자녀 혁명 감상문
    이 세상에서 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을 읽고 나서 -2005년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출산율이 낮아져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불과 30년 전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인구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저 출산 정책을 펼쳤다.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포스터 구호는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의 어머니들은 삶의 목표이자 의미가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것이었다. 이런 자식들이 훌륭하게 자라는 것이 어머니 본인의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자식에게 양보하면서 자식을 키웠다. 하지만 이렇게 키워진 자식들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어머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까? 어떤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지금과 같은 저 출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이가 없는 여자가 많아지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없는 여자라고 해서 모두 같은 이유로 아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의로 또는 타의로 여러 가지의 이유를 가진 여자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가 없는 여자에게는 무엇인가 정상적이지 않는 듯 한 눈으로 쳐다보게 마련이다. 아이가 없다는 것으로 일단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곤 한다. 이런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며, 아이 없는 여자들도 자신의 이유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라는 책은 매들린 케인이 100여명의 무자녀 여성을 실제로 인터뷰 해보면서 쓴 책이다. 저자는 딸을 가진 부모이지만, 자신의 친구들과 만나면서 친구들 중에 있던 무자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그들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무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숨겨온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예전 우리의 생활에서는 아이를 가져서 자신의 핏줄을 남기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현재에 와서는 그것이 큰 이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자녀가 없는 여성들은 그 이유가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세 가지의 세분화된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로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확신을 가진 여성들이 있으며, 둘째로 자신의 종교를 따라서 영적인 길을 가기 위해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여성들이 있었으며, 셋째로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여성들이 있었다. 먼저, 자신의 개인적인 확신을 가진 여성들은 자신의 결정에 미련이 없는 결정을 했던 것이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과거나 현재의 경험에 의해서, 아이를 가지는 삶보다는 없는 삶이 더욱 자신에게 행복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다음으로 종교를 위해서 아이를 포기한 여성들의 수는 다른 이유보다 적다. 하지만 그녀들의 이유는 자신이 믿고 있던 종교를 위해서 자신의 모성애를 억누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수녀가 된다던가, 시나논 이라는 단체 회원인 경우에는 아이를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환경을 생각해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이유는, 지구에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 결국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끼치기 때문에 개개인이 아이를 줄임으로서 크게는 지구의 인구를 줄이는 것으로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개인의 확신이나 종교적인 이유는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지만, 마지막의 환경을 위해서 자신의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은 조금 생소한 주장이었다. 물론 그들의 이유는 지구를 위해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의 인구의 증가는 새롭게 출생하는 자녀들이 늘어서가 아니라 인류의 생명이 길어지면서 늘어난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따라서 자녀들을 줄여버리면 지구는 단지 나이든 사람들만 남게 될 지도 모른다. 이들은 일 할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을 부양해야할 새로운 젊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의 생각은 환경을 위해서 자식을 줄이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 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들은 자식을 가질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과 결정을 통하여 자녀 없이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이면에는 피임약의 등장이 이들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매들린은 생각하였다. 쉽게 먹는 피임약이 등장하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임신을 조절 할 수 있게 되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자신의 삶을 더욱 쉽게 선택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의 여성들에게는 임신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없었다. 하지만 사후임신약이 등장하게 되자, 여성들에게 선택의 조건이 크게 향상되어서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아이를 가지지 않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육체적인 문제로 인해서 아이를 가지지 못한 여성들도 있다. 이런 여성들에게는 질병에 의해서 출산 능력을 잃어버렸거나, 동성애를 하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기도 하며, 특별한 질병은 없지만 임신이 되지 못하는 불임인 경우도 있다. 먼저, 질병에 의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성들은 자녀가 없게 된 것에 대해 큰 실망과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육체적인 장애로 인하여, 사랑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는 직접 겪는 여성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삶을 찾으면서 아이가 없으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이를 원하지만 자신의 현재 상황에 만족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두 번째로 동성애자들은 당연하게 아이를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를 원하는 여성이 존재한다. 이들은 아이를 가지고 싶기에 시험관 수정 같은 것을 통해서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그 가격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입양을 통해서도 방법은 있지만 자신은 원하지만 자신과 같이 생활하는 동거인에게는 불편함과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도 겪어내야 한다. 이런 방법도 안 되면 남성친구와 성관계를 통해서 아이를 만드는 동성애 여성도 있지만 나중에 법적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게 되어 혼자만의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동성애 여성들에게 큰 문제를 안겨주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큰 문제로 발전된 불임도 무자녀 여성들에게 큰 이유가 되고 있다. 불임이라는 것은 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는 것으로, 그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여성의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늦은 결혼, 늦은 출산, 산업화로 인한 오염된 환경 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따라서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큰 충격을 주게 된다. 이런 여성들은 임신을 하게 되면 자신의 일을 못하기 때문에 임신을 늦추고 자신의 일을 먼저 하게 된 여성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임신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듣게 되면 자신의 지금껏 해온 모든 일이 허사가 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런 여성들은 불임클리닉을 통하여 여러 가지 시술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시술 또한 고비용일 뿐만 아니라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 지루한 생활을 해야 한다. 계속된 호르몬 투여로 인하여 항상 임신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지만, 임신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하는 경험을 수차례 경험하게 되면 결국 아이를 포기하게 된다. 그런 고통을 겪는 것 보다는 자신을 위해 다른 생활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불임이라는 것은 다른 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다가가는 방법도 모르게 되어 다른 사람들은 불임인 여성들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결국 불임 여성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었다.지금껏 알아본 것과 달리 특별한 이유가 없이 단지 살아오다 보니 아이를 가지지 않게 된 무자녀 여성들도 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부모님들을 보아 오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나 자녀 출산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받게 되어 아이를 가지는 것을 반대한 경우가 있다.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서 부모님의 생활과 꿈을 다 포기하는 것을 보아왔다던가, 부모로서의 자격이 부족한 부모로부터 자란 자녀들이 자신이 또한 자신의 부모님처럼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인해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부모의 교육을 통해서라기보다는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아이의 인생에는 부모가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기에, 자신이 부모로 받은 영향으로 인해서 자신의 자녀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도덕적인 문제로 자녀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포기하는 것이고 , 이미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남자가 새로운 아이를 가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아이를 포기한 경우도 있다. 많은 여성들이 이혼남과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혼남들은 이전에 가졌던 자녀들을 키우는 자본적인 부담에다가 새로운 자녀가 생겼을 때 더해지는 부담을 견디지 못한다. 따라서 새로운 부인이 될 여성에게 자신을 위해서 출산을 포기해주기를 바란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을 위해서, 자신의 육아의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부부들이 이미 결혼하기 전에 충분한 합의를 통해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으로 누구 하나의 결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문제가 생길 일이 없게 된다. 만약 미리 합의를 통하지 않고 누구 한명의 주장으로 인해서 결정이 된다면, 이것은 나중에 큰 문제로 발생하게 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6.01.09| 5페이지| 1,000원| 조회(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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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사회 계약론을 읽고 평가B괜찮아요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고 나서우선 사회계약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면, 루소가 말한 사회계약이란 사람들이 같이 무리지어 살게 되면서, 조금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 서로 계약을 맺게 되어 살게 되면서 생긴 것이 가족을 만들게 되고, 큰 사회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루소는 ‘사회적 질서는 신성한 권리로서 다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룬다. 그런데 이 권리는 자연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계약에 기초를 둔다.’ 라고 말을 한다. 곧 사회적인 질서 속에서 산다는 것은, 속박이 아니라 인간의 신성한 권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권리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계약에 기초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모든 사회 형태에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가족사회이다. 그런데 이 가족사회에서도 자식들은 자신들이 자립해 나갈 수 있을 정도까지만 부자간의 유대를 계속해 나갈 뿐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자립해 나갈 수 있게 되면 자연적인 유대관계도 끊어진다. 자식들은 부모에 대한 복종의 의무를 벗어나게 되고, 부모들도 자식들의 양육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어, 쌍방이 모두 독립하게 된다. 만약 이들이 계속 결합관계를 유지한다면, 이것은 자연적이 아니라 의지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결국 가족이란 사회도 규약에 의해서만 유지되게 된다. 가족사회는 정치적인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배자는 아버지의 모습이고, 국민은 자식들에 해당된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양도 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가족사회에서 아버지가 자식들을 양육 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지만 국가의 경우에서는 지배의 희열 때문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강한 힘을 가질 경우 그 힘을 권리로 그리고 그에 대한 복종의 의무로 바꾸지 않으면 영원한 지배자가 될 만큼 강할 수가 없다. 힘이 다했을 때 함께 없어져버리는 그런 권리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힘의 강압으로 복종을 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의무로써 복종할 필요는 없으며, 복종하도록 강요당하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복종할 의무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힘이 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오직 정당한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데 에 동의하게 된다.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남에게 양도할 수 있다. 양도한다는 것은 내어준다는 또는 팔아 버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남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은 자신을 내어준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신을 판 것이다. 노예제도라는 것은 전쟁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되어 온 것 같다. 전쟁의 포로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팔게 하여 생명을 주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명을 가지고 하는 거래는 인간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다. 노예권을 이용하여 생명을 이어주고 다시 그 생명을 가지고 노예권을 성립시키는 것은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뿐이다. 또한 자기 자신은 양도한다 하더라도 그 자식들은 양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며, 그들의 자유는 자기들의 것으로 누군가가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럼, 사회계약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해보자. 사람들은 조금 더 편하게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전체에 양도를 한다. 따라서 그 누구도 남에게 속해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 지는 것이므로, 자신이 상실한 모든 것과 동일한 대가를 얻고, 자신의 소유에 대해 큰 힘을 얻게 된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새로운 힘을 만들 수 없기에, 기존의 힘을 통합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운영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단결하여 저항들을 이겨 낼 힘을 이루며 그것을 단 한가지의 동기로써 가동시키고 합심해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루소는 “모든 공공의 힘으로부터 각 구성원의 신체와 재산을 방어하고 보호해 주는 한 연합의 형태, 그리고 이것에 의해 각 개인은 전체와 결합돼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연합의 형태를 발견한 것” 이것이 곧 사회계약이 풀어야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개인들의 인격들이 모두 결합하여 공적인 인격을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주권자가 된다. 따라서 주권자로서는 개인들에 대해, 국가의 구성원으로는 주권자에 대해 계약 이행의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약속을 지켜야 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는 민법상의 준칙을 적용시킬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 의무를 가지는 것과 자기가 속하는 전체에 대해 의무를 가지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의 근원이 되는 계약을 파기하는 것은 자신을 소멸시키는 것이 되므로 자신의 일부를 양도해서는 안 된다. 또한 다수가 결합하여 한 단체를 이룰 수가 있다. 주권자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로 형성된 것이므로 그들의 이익에 상반되는 이익은 갖지도 않고 또한, 가질 수도 없다. 따라서 구성체가 구성원 모두를 해치려고 할 수는 없다. 주권자는 주권이 존재한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항상 있어야 할 모습으로 존재한다. 실제로 각 개인들은, 전체 의사에 상반되거나 그것과는 다른 개인 의사를 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에 따른 타인의 부담이 자신의 치르는 부담보다 가볍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체 의사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전 단체에 의해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되어야 한다는 약속을 사회계약내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조건이 없다면 사회적 계약들은 불합리하고 포악해지며 엄청난 폐단을 일으킬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4.12.08| 2페이지| 1,000원| 조회(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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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전쟁과 사회-한국 전쟁의 왜곡된 진실 평가C아쉬워요
    한국 전쟁의 왜곡된 진실이 책에서는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판된 한국전쟁 관련 서적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껏 한국전쟁 관련 서적들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의해 다시 되찾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모든 전쟁의 이유는 소련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북한의 남한의 무력통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남한의 대처능력의 부족도 한 가지 이유이다. 또한 우리는 북한 인민군들이 남한국민들에게 행한 사건들은 알고 있으면서, 전쟁 중 일어난 남한에서의 또 다른 학살은 모르고 있었다. 최근에 들어 ‘노근리 사건’이 사회 이슈가 되면서 남한에서의 대민학살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 국민이라면 6월 25일이 무슨 날인지는 다 알고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말 보다는 6.25라는 말이 더 쉽게 나온다. 하지만 이 전쟁의 정식 명칭은 한국전쟁이 맞다. 그런데 왜 우리는 6.25라는 말을 더 많이 할까? 이것은 전쟁의 뒷모습을 감추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된 한국전쟁으로 사람들이 알게 하기위해서 6.25를 강조하게된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한국전쟁은 북한이 무력통일을 위해 남침한 것으로, 남한 측에는 전쟁발발의 책임이 없으며, 남한 측에서 발생한 대민 학살 사건들을 감출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남한 측에서도 전쟁의 발생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전쟁 발발시점의 전날인 1950년 6월 24일에는 육군 장교 클럽 개관식을 하느라 군 수뇌부들은 파티를 즐겼었으며, 일반 사병들조차 전 병력의 1/2 ~ 1/3 병력이 외출이나 휴가상태로 부대를 떠나있었던 상태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한국전쟁 발발 시점에 북한과 남한의 군사력을 비교해보면 북한이 압도적으로 군사력에 강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우리 군이 헤이해진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으로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4월부따라서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부대에 대한 정보도 없었으며, 부대가 이동하는 상황에서 전쟁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침략사실은 6월 25일 새벽 4시에 국방부에서 알게 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 사실을 6시간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대통령이라면 전 군의 통수권자인데, 6시간동안 전쟁발발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이 의문이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초기 북한의 침략을 사소한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발표하면서 외부적인 경로로 원조요청만 하며 국가의 내부적인 문제를 수습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발발 전 이미 미 CIA에서는 북한의 남한 침략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시기가 6월중이라는 것을 미 국무장관에게 알렸지만 이는 묵살되었다. 당시 남한의 상황에서 북한의 침략을 당하면, 남한정부는 전멸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미국에서 왜 이 정보를 묵살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이렇게 한국전쟁은 발발하게 되었고, 남한은 군사적으로 밀리게 되어 서울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군에서는 끝까지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의정부가 점령당하자 서울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 시민들에게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알려주어 서울에 남게 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그 사이에 서울에서 피난을 떠나버렸다. 이것은 국민을 국가가 버린 것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국민들을 지켰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이 곧 국가이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국 전쟁 중 미국으로 떠나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마키아벨리의“ 훌륭한 군주는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보다는 아무리 파렴치한 일이라도 그 결과만을 좋게 만들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필요에 따라 신의를 져 버릴 수 있는 인간”이라는 말을 곧게 따른 것이었다. 전쟁 이후에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기간 중에 자신이 보여준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한다.피난을 떠나려는 국민들은 2가지 경우로 나뉘게 되었다. 먼저 정치적으로 북한의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따르는 사람들과 계급적으로 어느 정도 부를 가진 사람들이 포함하게 된다. 두 번째 부류는 잔류하게 되는 사람들로 중도파 정치가, 지식인 그리고 자영업자가 있다. 이 사람들 중에 중도파 정치가들은 북한군이 내려오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 선택을 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 또한 국민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이승만의 적이 된 사람들은 피난을 떠나도 생명의 위협은 마찬가지라며 잔류를 하게 되었다. 또한 중도적 지식인들은 어느 것이 옳은지 않지 못했기 때문에 중간적인 입장을 띄면서 잔류하게 되었다. 자영업자들은 피난을 떠날 수 있었지만, 인민정권이 들어와도 자신들에게 크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미국이나 이승만 체제, 소련이나 김일성체제의 어느 쪽에도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피난은 정치적과 계급적인 동기에 의해 선택을 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생존을 위한 피난을 들 수 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피난 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폭격을 피해서 피난을 떠난 사람들과, 서울과 남한 전역이 수복되었지만 다시 후퇴하게 되자 인민군에게 보복을 당할까 걱정해서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이었다.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은 진정한 인민의 지배, 민주주의, 민족해방, 계급해방, 여성해방, 인류의 해방 등을 실천하겠다며 외쳤다. 북한은 전쟁에 대해 식민지 잔재의 청산과 ‘미 제국주의 지배’를 거부하는 일종의 민족해방‘혁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들은 먼저 당의 건설을 하였고 그 다음에 국가기관인 새로운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또한 토지개혁을 위해 농촌위원회를 조직하면서, “일본인에게 소속되었던 토지와, 조선인민의 이익에 손해되도록 일본 통치기관에 열성적으로 협력하던 우리 인민의 변절자인 조선인에게 속한 전 토지를 몰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몰수한 토지를 농가별 점수에 따라 재분배하였다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으로 국가가 국유화 시킨다는 것이었다. 토지를 받은 농민들은 이러한 북한이 의도하는 토지개혁이 무엇인지 몰랐다. 또한 사회혁명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동무로 통일되었으며, 양복저고리를 벗어버리고, 남루한 옷을 입은 것이 자랑이 되었으며, 그 반대의 사람들은 주변의 비판과 질책으로 고통을 받았다.북한의 정책에 제일 찬동한 사람들은 좌익 세력이었다. 1949년부터의 좌익세력을 말살시키는 정책에 의해 남한의 좌익세력들은 무척 위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의 북한군에 동조를 했다. 이들은 이승만 정권에서는 지하에 숨어있었다가 북한이 점령함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세상을 찾은 듯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미쳐 피난 가지 모했던 우익정치인들이나 지주계층의 사람들, 중도적인 지식인과 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결국 인민재판에서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처형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북한에 비판적이지 않았던 중도적인 지식인들이 북한의 점령정책을 받으면서 비판적으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도의 입장을 계속 지킨 대다수의 국민들과 일반 농민들에게 북한의 정책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농민들에게 있어서 이승만 정권시의 농민정책이나 북한의 새로운 정책이나 비슷비슷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승만 정권의 점령지 체제는 북한과는 조금 다른 양상의 체제로 성립된다. 서울을 수복한 이승만 정권은 북한 정권에 부역으로 협력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실시한다. 이승만 정권의 점령지에 대한 정책은 남겨진 자와 떠난 자의 이중적인 구분으로 차별을 실시함으로 써 이루어졌다. 특히 이러한 처벌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힘을 가진 경찰과 군인들에 의하여 재판을 거치지도 않고 무자비하게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을 받거나 억압을 받은 대다수 사람들은 북한 정권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던 보통의 농민들이었다. 이와 같이 양 국가가 점령지에서 행한 정책은 누가 정복자이고, 해방자인지 알 수 없는 체제였다. 모두 찬 인민대표들에게 곤욕을 치루고 국군의 수복 후에는 피난을 가지 않았고,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 없이 처벌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로에 대한 원망이나 복수, 사사로운 감정싸움은 결국에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복수극으로 나타나게 되었다.한국전쟁의 숨겨진 역사 중에 하나가 학살이다. 최근 한국군이나 미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사회의 이슈가 되었다. 이에 한국전쟁 당시 이루어졌던 학살에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군사작전의 수행 가운데 발생하는 학살로는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지역으로 숨어들어간 빨치산들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구별하기 힘든 내전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합군은 군사적 작전수행을 위해서 적이 활동하는 지역의 민간인들까지 모두 적으로 분류하여 소탕하는 것이었다. 남한을 점령한 김일성 정권은 초기에 인민재판을 통하여 우익인사와 지주세력 등을 처형하였으며, 남한 역시 전쟁 발발 직후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을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형하였다. 남한정부가 계엄령을 명분으로 하여 ‘적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학살한 예는 수감된 정치범이나 국민 보도 연맹원을 처형한 일이다. 그리고 민간인들 간의 사적인 보복으로써의 학살이 있는데, 국가가 바뀌는 과정에서 군?경의 부역자들에 대한 보복과 좌우 양측에 가담한 민간인들 간의 사적인 보복이 대부분 발생하였다. 양측에 의해 저질러진 보복적 살해는 국가권력의 방조 속에서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이 학살은 양은 적지만 증오와 광기에 의한 학살이기 때문에 잔인한 면모를 띄고 있는 학살이다. 위에서 알아본 3가지 학살의 유형은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학살이지만, 모두 상층부의 최소한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전쟁 당시의 학살은 아주 잔인하게 나타났다는 특징이 있다. 죽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증오감을 나타내는 형태로 남한과 북한 양쪽 모두 학살을 저질렀다. 이런 학살은 이미 전쟁 전 남한에서 벌어진 좌파세력 토벌 때에도 나타났다. 한.
    독후감/창작| 2004.12.08| 4페이지| 1,000원| 조회(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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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현대사]상상의 공동체-민족주의 평가B괜찮아요
    민족주의에 대해서- 상상의 공동체를 읽고2002년 월드컵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보여준 ‘붉은 악마’의 응원전은 세계가 놀랄 정도의 하나가 되어진 움직임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각각 연락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모일 수 있었을까? 여러 사람들은 이것이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의 한 형태라고 한다. 서로가 제각각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으로 한순간에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민족’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민족의 기상’, ‘민족정신’같은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미 민족주의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응원을 위해서 사람들과 같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같이 껴안으면서 기뻐했던 것은, 우리는 모두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 국가에서는 무엇보다도 강한 것이 민족정신이다. 우리는 각자 성씨의 시조가 다르지만, 민족의 조상은 ‘단군’이라는 한명으로 모두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의 모든 어른들은 곧 자신의 친부모와 비슷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단일민족이 아닌 곳에서도 민족주의가 일어난 곳들이 있다. 그들은 왜 민족주의를 내세웠을까? 그럼 민족주의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기 위해서 베네딕트 앤더슨이 쓴 ‘상상의 공동체’란 책을 읽어보았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 책의 부제로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부제가 알려주듯이 이 책은 민족주의의 문화적 기원과 발달에 관한 책이다. 그럼 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해보겠다.먼저 앤더슨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베트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간에 일어난 분쟁에 관해 언급을 하면서 사회주의 국가간의 분쟁이 민족국가간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사회주의 이념에 의해서 민족국가간의 갈등이 무마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민족과 민주주의는 근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여기는‘사회공동체’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논라고 말한다. 이는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역사적 공동체라는 말이다. 또한‘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라고 말한다. 민족은 서로 알아보지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제한적인 것은 하나의 민족 외부에는 다른 민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민족주의라는 것이 계몽사상과 혁명이 신이 정한 계층적 왕국의 합법성을 무너뜨리던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자유의 표식과 상징은 주권국가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로 상상되는 것은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이러한 민족주의의 문화적인 기원을 찾아보면 어떤 문화체계로부터 나왔고 또한 그 문화체계에 대항하여 나온 것이다. 그 문화체계로는 종교 공동체와 왕조국가이다. 먼저 종교 공동체는 하나의 종교로 이어진 공동체이다. 모든 다른 사람들은 같은 종교를 믿는 것으로 사는 지역이나 세속왕조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신성한 우주질서에 속하여 있으며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친교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먼 사람과의 연결이 어렵던 그 시절에 마을이나 지역공동체를 뛰어넘는 방대한 종교공동체에 속한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문화적 매개자와 매개물에 의해서 가능했다. 앤더슨은 세 가지로 나누웠는데 첫째는 교구의 목사이다. 목사는 성서를 알기 쉽게 교구인들의 일상생활에 적합한 언어로 번역을 해주었다. 두 번째는 교회의 스테인 글라스처럼 형상적 이미지들이었다. 성서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풍경과 모습, 복장으로 그려내서 사건들이 현재에 재현되는 삶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성지순례를 들 수있다. 성지를 향하는 경험속에서 일상적인 삶에서 적용되는 차별적이고 계층적인 관계를 벗어나 형제애에 기초한 공동체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중심 지향적이고 계층적인 종교이념은 왕조국가의 정당성을 부여한다.러자 성서에 나온 것은 이미 너무나도 오래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시간을 앤더슨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알려주는 소설이나 신문을 동시대인이라는 의식발달의 매개물로 이용되었다. 같은 곳에서 알지는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동일한 사회적 실재 안에서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런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상상은 이들과의 친교와 공동체 의식을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또한 신문은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같은 시기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상상하게 해준다. 신문은 같은 시간에 서로 연결되지 않은, 다른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기사화 한다. 이로서 그 사건이 일어난 곳에 있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그곳에 있었던 사람과 같은 것을 경험한 것이 되면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해보면 특정한 정본언어가 바로 진리와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제공한다는 개념으로 이것은 바로 종교의 매개물이 될 수 있다. 또한 다른 인간들과 구별되며 어떤 우주적 형태의 섭리에 의해 통치하는 군주라는 상위 중심부의 주변과 그 밑에서 사회가 자연스럽게 조직된다는 믿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우주관과 역사가 구별되지 않고 세계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시간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된 확실성들이 서서히 퇴조하면서 우주관과 역사사이에 이어지는 것을 끊어버렸다. 이런 퇴조는 경제변동, 발견, 그리고 빨라진 커뮤니케이션의 발달 등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그 다음으로 민족의식의 기원에서 앤더슨은 민족을 상상하게 하는 데에 서적, 특히 인쇄자본주의가 한 역할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인쇄시장이 널리 퍼지면서 유럽의 중심어 이었던 라틴어가 각각의 지방언어로 바뀌면서 인쇄되어졌다. 따라서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게 됨으로 인해서 같은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이 그래서 라틴어는 일상생활에서 더욱 멀어졌다. 즉 텍스트로서의 지위 때문에 신비스러웠다. 둘째로 종교개혁의 영향이었다. 동시에 종교개혁의 성공은 인쇄자본주의의 힘입은 바가 크다. 종교개혁으로 인해서 많은 책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신교와 인쇄자본주의의 연합은 값싼 대중판들을 개척하면서 곧 새로운 독자층을 창출하고 동시에 이들을 정치적, 종교적 목적에 동원하였다. 셋째요인은 앞으로 절대군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요직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행정의 중앙집권화의 도구로서 특정 지방어가 지역적으로 서서히 불균등하게 보급된 점이었다. 각각의 지방어들이 세력어의 지위까지 상승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라틴어의 경쟁어들이 됨으로써 기독교 세계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쇠퇴시키는 데에 독자적인 공헌을 했다. 오늘날 근대에 생겨난 거의 모든 민족과 민족국가들은 ‘민족활자어’를 가지고 있고 그 중 많은 민족들이 공동의 언어를 쓰지만, 어떤 민족들에서는 인구의 극소수만이 대화에서나 혹은 인쇄물에서 민족언어를 사용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근대 민족국가의 구체적 형성이 결코 특정 활자어의 결정적 도래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18세기말과 19세기 초에 새로 출현한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은 유달리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 이유는 19세기 중엽 유럽의 민족주의로부터 쉽게 도출되기 때문에 민족주의의 기원에 관한 유럽인들의 사고를 많이 지배했던 두 요소들로 이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을 설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는 크리올 공동체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전에 그들의 민족됨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여기서 크리올이란 순수 유럽혈통이지만 유럽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에는 스페인인들이 살게 되었다. 이들이 그곳에서 자란 크리올들은 본국에서 심한 차별을 받았다. “비록 순수한 백인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해도 유아기에 인디언 유모의 젖을 빨았기 때문에 그들의 피는 영구히 오염되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사회적인는 루소나 허더의 글들이 영향을 미쳤다. 이로부터 야만적인 대륙에서 태어난 크리올이 중심부 사람과 자연히 다르고 열등하며, 따라서 고위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리하고 조야한 추론을 해내었다. 이것은 반본국 저항의 복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는가를 설명한 것이다.유럽의 민족주의는 종족과 언어가 민족을 구성한다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되는 종족언어 민족주의의 성격을 띤다는 특성을 갖는다. 유럽에서의 민족은 오래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지만 그 동안 잠들었던 자신들의 민족의식을 깨워야 했다. 이 시점에서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옛 신성한 언어들은, 인쇄자본주의에 의해 시장에서 초기에 지위가 격하된 것을 보완해주는 동향으로 평민들의 온갖 지방 경쟁어들과 대등한 존재론적 위치를 가지고 섞이도록 강요당했다. 그래서 지방어로 번역된 고전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되었으며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만큼 오래된 어떤 것, ‘민족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상상하였다. 이런 종족언어 민족주의는 당시 제국주의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왕조국가들에 의해 의식적으로 모방된다. 언어집단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가 민족구성원들의 동질성과 형제애라는 이념에 기반한 대중 민족주의적 성격을 띤다.종족언어 민족주의적 사고는 왕조들에게 고민을 주었다. 왕조 안에는 다양한 언어집단들이 존재할 뿐 아니라 제국주의적 식민정책에 의해 이들은 자신들의 왕조 안으로 더 많은 나라를 식민지화를 통해 다양한 언어집단을 통합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민 제국주의 국가들은 무엇보다도 행정상의 목적을 위해 차츰 특정지방 활자어를 본국어로 정착시켰다. 동일 언어와 문화를 소유한 민족공동체가 공동체의 규범이 되어가는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식민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의 영토 안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전통을 강요하는 동화/귀화정책을 추진한다. 이런 제국주의의 시도를 앤더슨은 “제국이라는 거대한 몸체 위에 민족이라는 짧고 꼭 끼는 가죽을 펼쳐 씌다.
    독후감/창작| 2004.12.08| 5페이지| 1,000원| 조회(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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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 과학을 읽고
    나는 원래 창조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어느 정도는 믿게 되었다. 이 책은 이해가 쉽게 어느 정도의 설명과 어느 정도의 예제그림을 넣어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럼 책 안에 무슨 내용이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먼저 생명의 발생부터 알아보도록 해보자. 자연발생가설은 오파린이 쓴 이라는 책에서 발표된 이론이다. 오파린의 가설에 의하면 원시대기(메탄,수소,수증기,암모니아,네온,헬륨,아르곤등으로 구성)가 공중방전에 의해 코아세르베이트란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그리고 코아세르베이크가 성장한 것이 원시생물로 발전된 것이라 하였다. 후에 오파린의 가설은 밀러와 폭스의 실험으로 뒷받침이 되어진다. 하지만 밀러의 실험과 폭스의 실험 모두 과학적으로 맞지 않은 게 있었다. 먼저 밀러의 실험은 실험에서 사용된 혼합가스의 조성이 원시대기조성과 같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며, 실험에서 사용된 냉각장치가 원시대기에 존재할 수 있었느냐와 실험에서 탄생된 L-아미노산은 단백질합성에 필요한 존재였으나 D-아미노산은 생명합성에 방해가 되는 성분이었다. 폭스의 실험에서도 아미노산이 생성될 때는 물이 필요하며 그 다음 프로테노이드가 합성될 때는 물이 없어야하며 마이크로스피아가 합성될 때는 다시 물이 있어야하나 이런 연속조건은 실험실에서나 가능한 문제였다. 그리고 프로테노이드가 자연적으로 생성되어도 농도가 낮고 저절로 합성이 되지는 않으면 실험중 온도가 아주 높아지거나 반응시기간이 길게 되어버리면 아미노산은 분해 파괴되어버린다. 이렇게 자연발생설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못했다.두 번째로 열역학적인 방법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사람의 조상은 원숭이이며 포유류의 조상은 파충류 그것의 조상은 양서류 물고기 원생동물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 결국 유전인자와 단백질 등이 무기물에 자연적으로 결합 조직되어 생명이 발생된 것으로 가정한다. 즉 무에서 유가 생성되는 단계가 필요하게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것은 열역학제1법칙에 위배된다. 열역학 제1법칙에 의하면 에너진 서로 창조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보존되어야한다. 또한 원소들이 결합하여 질서도가 높은 단백질이나 핵산이 되는 것이 오파린의 화학진화가설이다. 이 가설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간다는 열역학 제2법칙과 상반된다. 열역학 제2법칙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질서도가 감소하는 것이지만 진화론은 진화가 됨에 따라 질서도가 증가되는 것으로 가정한다.세 번째로 생물학적인 고찰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이론이 있다. 먼저 진화론자는 원자에서 화학진화론하여 우연히 생명체가 생기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창조론 자는 생명체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화론자는 한 종에서 보다 진보적인 종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하지만 창조론 자는 생물체는 처음부터 기본 종류대로 만들어졌으므로 기본 종은 불변이라고 주장한다. 진화론의 첫단계는 원자에서부터 생명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다루는 화학진화로서 밀러의실험, 폭스의실험, 오파린의 이론등이 여기에 속한다. 한종에서 다른종으로 진화되었다는 진화론의 주장을 중심으로 알아보면 어떤한 종의 집단내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이를 소진화라 말하고 한종에서 새로운 종이 생겨 더 고등생물체의 종으로 변화되는 것은 대진화라 부른다. 진화론자들은 소진화가 점점쌓여 대진화가 일어나서 지구상에 이처럼 다양한 생물군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진화론이 본격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고 부터였다. 다윈은 진화가 일어나는 요인으로서 자연도태설을 제안하였다. 즉 다윈의 진화론은 여러종의 생물들이 생존경쟁이나 적자생존에의한 자연선택에 의하여 일어 난다고 제안하였다. 진화론에 있어서 그 다음의 중요한 단계는 1901년 휴고 드프리스가 큰달맞이꽃의 연구에서 돌연히 나타난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돌연변이형질의 유전을 발견한 이우이다. 신다윈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드프리스의 돌연변이를 조합한 것이다. 돌연변이는 종내에서의 큰변이는 유전학적으로 가능할뿐 아니라 실제로 다양한 생물체를 존재하게 하는데 기여해왔다. 그러나 돌연변이가 한 종에서 더 고등종류의 생물체로 진화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없는 이유는 돌연변이가 드물게 일어날뿐 아니라 거의 항상 해롭게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연도태 적응등은 환경이 생물체에 영향력을 행사 할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진화했단느 소위 대진화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진화론에서 생물분류를 해놓고 진화의 증거라고 하는 것, 동물간의 해부학적 유사성이 진화의 증거라 하는 것, 생물의 발전과정이 진화론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는 것, 흔적기관이 곧 진화의 증거라 하는 것 이것들은 진화의 증거로는 부족하다. 진화론의 뼈대인 획득형질의 유전은 멘델 바이스만등에 의해 부정되었다 유전은 그등의 유전인자에 포함된 정보내에서만 질서있게 유전되며 절대로 새로운종이 생겨날 수없음을 밝힌 이법칙은 진화의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태초에 완벅하게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음을 보여주는 과학적증거가 되고 있다.네 번재로 화석학적 고찰이 있다. 화석과 지층을 해석하는데는 두 모델이 있다. 하나는 지층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고 가정하는 진화론적 입장인 동일과정설이며, 다른하나는 지층이 대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에 의하여 급속히 형성되었다고 보는 창조론적인 격변설이다. 이 두이론은 화석에 나타난 생물의 기원에 대해서도 서로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공통 조상을 가지며 유기물에서 단세포 생물로, 단세포 생물에서 무척추 동물로 수 천만년 동안에 서서히 조금씩 진화했다고 가정한다. 고로 지층 순서의 가장 아랫부분에서는 가장 간단한 생물의 화석이 나와야하고 위로 갈수록 복잡한 고등동물이 나타나야하며 한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로 변화되는 중간 형태의 생명체가 반드시 화석으로 벌견되어져야한다. 창조론에 의하면 대부분의 화석은 천재지변적 대홍수때에 동물과 식물이 매몰되어서 거의 동시에 형성되었으며 지층의 화석분포가 생물의 진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본다. 모든생물은 태초에 각각 서로다른 종류대로 창조되었으며 변이은 주어진 종안에서만 일어나며 종에서 종으로 바뀌는 대진화는 없다고 본다. 진화론자들은 공룡을 발생시켰으리라고 생각되는 파충류를 열심히 찾고있지만 아직까지 그럴듯한 전이 형태를 찾지 못했다. 이에반해 창조론자들은 공룡의 기본모양은 전이형태없이 갑자기 나타났으며 앞으로도 이들 전이 형태의 화석은 영원히 발견되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실제로 공룡들 가운데 가장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텍소러스나 안킬로소러스,트라코돈 등조차 전혀 전이 형태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진화론자들은 시조새의 깃털이 파충류의 비늘에서 진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조새는 완전히 날 수 있는 새의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류가 파충류에서 발생했다는 증거를 찾을수 없으며 진화론에서 시조새가 파충류와 비슷했다고 주장하는 또하나의 특징은 날개의 앞쪽 끝에 있는 발톱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새중에서도 발톱을 가진 새가 있다는 점에서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다음으로 진화론자들이 내세우는 것은 시조새의 치아이다. 그러나 시조새의 치아도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사이의 전이형태의 증거가 될 수 없는데, 이유는 화석으로 나타나는 새들중에는 시조새 외에도 치아를 가진 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른이유는 오늘날 파충류에도 거북이 같은 경우처럼 치아가 없는것도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에서 관심의 초점은 사람의 조상 즉 인류의 기원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은 과연 진화론의 주자어럼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는가, 아니면 성경대로 하나님의 형상을따라 창조되어 근본적으로 동물과 완전히 구별된 존재인가 하는 점이다. 원숭이로부터 사람으로의 진화과정을 설명할때에는 치아의 배열형태, 두개골의 용적,또는 안면경사각 등에 기초를 둔다. 원숭이와 사람의 치아 배열형태의 차이점은 원숭이의 배열형태가 말굽형인데 반해 사람은 포물선형이므로 턱뼈의 화석이 나올 때 그모양으로 원숭이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판별한다. 창조론에 의하면 사람은 다른동물,즉 원숭이와 완전히 구별된 존재이지만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는 고릴라 침팬지 원숭이와 함께 영장목에 속한다.즉 원숭이에 가까울수록 안면이 경사져있으며 사람에 가까울수록 수직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원숭이에 가까울수록 눈두덩이가 두툼하다는점을 든다. 진화론에서는 유인원을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변이형태로 보지만 창조론에서는 원숭이 또는 사람중 어느한편이지 중간형태가 아니라고 본다. 진화론은 계속적으로 변한느 유동적이 모델로서 아메바에서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 및 원숭이를 비롯한 포유류로, 원숭이에서 사람으로의 연속적인 과정이며 불연속이 없어야하므로 진화론자들은 원숭이와 사람을 이어주는 중간형태가 있어야한다는 가정 아래 그 화석을 찾고 있다 이들은 유인원을 원숭이와 사람을 이어주는 사슬의 한 고리로 간주하여 원숭이와 사람사이의 빠진고리의 실제적인 전이형태라고 믿는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때에도 그당시까지의 화석이 자기학설을 지지하지 못함을 시인하였는데 수백만점의 화석이 발견된 오늘날 역시 사정은 그 당시와 마찬가지이다. 즉 원숭이와 사람사이의 전이형태뿐 아니라 모든생물의 종사이를 연결하는 중간형태도 없다는 것이 화석 기록상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모든종이 각각 종류대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창조론을 지지하는 화석의 증거라고 할수 있겠다. 이로써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진화론의 가설은 중간형태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화석자료들이 부정하고 있다 화석상의 증거로 볼 때 사람과 원숭이 뿐 아니라 모든동물의 종과 종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전이형태는 증거가 전혀없다 화석으로 나타나는 생물의 형태는 처음부터 완전하게 종류대로 발견되므로서, 오히려 화석은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4.12.08| 4페이지| 1,000원| 조회(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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