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근대문학사】-목차(개요)-1.移行期,啓蒙期,文明開化의 小說2.寫實主義3.浪漫主義4.自然主義5.反自然主義(1)餘裕派(2)耽美主義(3)白樺派6.新現實主義(1)新感覺派(2)奇蹟派7.プロレタリア文學과 新感覺派8.戰後文學(1)民主主義 文學(2)無賴派(3)第1차 戰後派(4)第2차 戰後派(5)第3의 新人일본근대문학일본의 근대는 메이지유신(1868)이후를 말한다. 일본의 근대화는 서양 문명의 강렬한 자극과 그 수용으로 이루어지는데, 일본의 근대 문학도 서구 문예사조의 번역 소개로 그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해 왔다. 봉건 사회와는 달리 근대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시민 사회가 성립되었으며, 개인의 자아 발전과 각성, 개성의 존중에 따른 자유주의, 개인주의 사상이 급속도로 전파됨으로써 이러한 사상이 문학 속에 그대로 반영되게 된다. 즉 근대문학의 여러 작품들에는 개인의 자기 주장이 억압 되었던 봉건 시대적 사고 방식과 환경에 대항하여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내용이 다각도로 조명되어 있다. 이러한 것이 근세와 근대를 구분 짓는 차이점이다.메이지 유신 이후를 각각 20여 년씩 나누어보면,1기(1868-1885) - 문명 개화와 문학의 공익화의 시대로 계몽 사조와 번역문학, 정치소설이 유행하고, 츠보우치 소오요오(坪內逍遙)가 서양에서 수입한 사실주의의 문학 평론 ‘소설요론(1885)’이 발표되었던 초창기를 말한다.2기(1886-1905) - 문학의 자각과 실천의 시대로 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품이 쓰여지고 모리 오오가이(森鷗外) 등에 의한 낭만주의의 도입과 함께 하이쿠와 와카가 근대에 맞게 혁신되었으며, 시마자키 토오송(島崎藤村)의 ‘와카나슈우(若菜集)-1897’등 새로운 형식의 근대 자유시가 쓰인 시기를 말한다.3기(1906-1926) - 문하그이성숙과 다양화의 t대로 일본 근대문학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워, 만흔 작가와 작품, 독자를 확보한 시기이다. 우선 토오송의 ‘破戒-1906’, 타야마 카타이(田山花袋)의 '이불(蒲團)-1907'등의 대표작을 비롯한 자연주의 문학 운동으량시키려는 운동이다. 시가와 연극의 개량운동과 함께 坪內逍遙、二葉亭四迷가 사실주의를 제창하고 명치 20년대에 들어와서 이 사실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활발한 창작 활동을 전해겠다.(1)坪內逍遙일찍부터 새로운 문학이론을 확립하려고 명치 18년부터 다음해에 걸쳐서 영문학의 소양을 기반으로 정리한 문학론이 「小說神髓」이다. 이것은 문학에 있어서 공리주의를 배제하고 문학의 자기목적성을 명백하게 하고 황당무개한 줄거리를 배제, 심리묘사에 치중해야함을 주장한 것으로 권선징악이 대부분이었던 기존의 문학에 획기적인 충격을 준 것으로 근대문학의 일대 지표가 되었다. 하지만 사실주의 문학이론의 실천이라고 보여지는 소설 「當世書生氣質」는 시대의 최첨단을 밟고 있는 엘리트인 대학생들의 풍속과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낸것에 불과하고 戱作문학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인물의 묘사도 피상적이었다.(2)二葉亭四迷「小說神髓」는, 정치를 향해있던 청년들의 눈을 문학세계로 이끄는 계기를 준 것으로 영향을 받은 한명이 二葉亭四迷이다. 그는 트루게네프, 푸쉬킨, 콘챠로프 등의 러시아 근대문학에 강하게 끌려있었지만 「小說神髓」를 읽고,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것 사이에 의문을 느껴, 직접 坪內逍遙를 만나, 그 시사하는 바에의해 「浮雲」의 집필에 착수하여 명치 24년에 발표했다. 당시는 그 가치가 충분히 이해되지 못했지만, 근대적 자아에 눈떠 인간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주인공, 현실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소외되어 어쩔수 없이 독립해야만 하는 고뇌나 회의는 다시 말하면, 근대 지식인의 내면의 심리이다. 그것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이 작품은, 일본근대문학의 여명을 고착한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문체는 자유롭고 유유한 ‘언문일치체’로 이 점에서도 선구적 작품이라 할수 있다. 더욱이 「小說神髓」의 이론을 한층 더 추진시켜 「小說總論」도 썼다.그후 번역으로 눈을 돌려 트루게네프의 작품을 번역한 ‘あひびき''めぐりあひ'를 발표해, 그 깨끗하고 새로운 자연묘사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3)硯友社와 尾 풍속을 도입한 「多情多恨」「金色夜叉」등을 쓰고, 문체에 개량을 더해 심리묘사에도 조금 보아야 할 것이 있었지만, 피상적 묘사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5)幸田露伴일한의 고전이나 불서를 시작으로 근세말의 讀本등에 친숙해, 한 때 전신기수로써 홋카이도에 부임해 있었는데 20년에 귀경해 「露團?」으로 작가에 입문하고 「風流佛」로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같은 예술지상주의적 골격을 가진 「五重塔」을 남성적으로 웅대하고 거침없는 필치로 표현해 문단적 지위를 확림했다. 이 동양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이상주의적 문학은 여성적인 풍속을 즐겨 쓴 尾崎紅葉와 나란히, 명치 20년대에 紅露時代를 이루었다. 그 이외에 「風流微塵藏」「天うつ浪」등의 사실적 작품도 발표했다. 문체는 漢語, 프랑스어를 온통 섞어 쓴 시원시원하고 분명한 擬古文調이다. 명치말년 이후는 취미에 몰입해서 사전(역사와 전기), 고증, 수필 등을 세상에 내놓고 「評釋芭蕉七部集」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6)?口一葉명치 26년 쯤 혜성같이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진 여류작가에 ?口一葉가 있다. 처음에 硯友社풍의 소설을 쓰다가 平田禿木을 이해해서 문학계 동인들에 접근하게 되고부터 그 현실적 인생관이 작품에 투영도기 시작하고 만년에 「つごもり」「たけくらべ」「にごりえ」「十三夜」라는 참신한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학대받고 사는 당시의 여성의 불만을 구체화하고, 인생에 소극적이면서 도전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고, 그것이 아속절충(雅俗折衷)의 의고문체로 쓰여져있다. 그 중에서도 「たけくらべ」는 당시의 문단에 절찬을 더해 받은 작품으로 사춘기의 소년소녀의 미묘한 심리가 확실하게 표출되어 있다.문학에서의 낭만성은 시대와나라를 초월하여 작가와 작품에 따라 고전문학 속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일본문학사도 그 예외는 될 수 없는데. 일본 근대문학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일본의 낭만주의를 다음과 같이 전기. 후기. 신낭만주의로 구분한다.전기 낭만주의(명치20년대) - 문예잡지인 ‘ 문학계 - 1893~1898’ 동인인 키타무라 도오코쿠(北村透谷트러진 머리’는 그 분방한 정열과 현란한 재질에 의해 한 시대를 풍미하였고, 낭만주의운동의 추진력이 되었다. 그 서정의 중심은 청춘과 정열에 대한 찬가이며 인간성을 충족시키려는 욕구인데. 이는 연애 감정으로 본능에 치중한 저에 특징이 있는 한편, 회화적 정취의 창조라는 아키코의 독자적인 비범한 상상력의 소산이었다.신낭만주의 - 1905년을 전후로 하여 자연주의가 대두하여 문단을 풍미하였던 바, 신낭만주의는 이에 반 자연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생겨났다.일본에 도입된 낭만주의 문예사조는 주로 당시의 동경 유학생들에 의해 한국과 중국에 전해졌는데 한국의 경우 1920년대 (백조)파 낭만주의 문학의 성립에 자극제가 되었다.낭만주의는 18세기말부터 19세기 전반에 서구자국에 전서의 타파, 자유스런 창조적 개성의 신장, 범신론적 자연관 등이 특징이다. 일본에서는 명치 20년대부터 30년대에 걸쳐, 시가와 소설이 일대 주류가 되고, 특히 森鷗外、北村透谷를 중심으로 하는 ‘文學界’사람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1)森鷗外4년간의 독일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森鷗外는 군의사관인 동시에 ‘しがらみ草紙’를 창간하고 외국문학의 번역과 시, 소설, 평론 등의 다채로운 활동에 의해 문학의 계몽을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早稻田文學’지상의 坪內逍遙와의 사이에 주고 받았던 ‘몰이상논쟁(沒理想論爭)’은 유명하다. 소설의 처녀작인 ‘舞姬는 서구의 자유스런 공기 안에서 근대적 자아에 눈뜬 청년이 일본의 특수한 세속성 앞에 좌절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계속해서 ’うたかたの記''文づかひ'를 가문체로 발표했다.또 안데르센의 ‘즉흥시인’은 번역하면서 낭만적 심정을 잘 표현해 원작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얻을 정도였다.(2)文學界와 北村透谷명치 26년에 창조된 잡지 ‘문학계(文學界)‘는 뒤늦게 北村禿木를 지도자로 해서 島崎藤村、平田禿木、 뒤늦게 馬場狐蝶、上田敏이 참가했다. 그 젊은 정열과 자아의 각성과 확충에의 욕구는 낭만주의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北村透谷는 시인으로서 활동 외에 평론가로서도 정열적인 논조 사회악을 드러내 보였던 ’良人の告白'와 함께 칭찬받은 사회주의 소설이었다.(6)國木田獨步서정시인으로서 출발한 國木田獨步는 트루게네프와 워즈워스의 영향아레 섬세한 자연관점과 시정(詩情)에 찬 ‘武藏野'를 썼다. 그 외에도 ’源叔父‘ ,’忘れぬ人?','牛肉と馬鈴薯'등을 발표했으며, 만년의 작품은 점점 자연주의적 색체를 띠고, ‘窮死','竹の木戶'등으로 과도적 위치를 보였다.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학상의 주의로, 일본에서는 특히 에밀졸라의 영향이 강했다. 자연과학적 방법을 문학에 응용시키고, 유전과 환경을 중시하는 소위 졸라이즘의 방법으로 小杉天涯는 ‘はつすがた,','はやり唄에서, 永井歌風 '地獄の花'에서 이 방법에 의한 작품화를 시도하였지만, 급속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 일본의 특수한 사회사정에서 충분히 성숙하기 이전에 일본독자의 사소설적 자연주의가 차츰 분단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1)島崎藤村문학계 동인으로서 낭만적인 시를 발표했고 명치 30년대 중반 산문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며 명치 39년에 자연주의 문학의 최초 성공작이 된 '破戒'를 발표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모습에 자기자신의 청춘기의 각성과 좌절의 편력을 투영시키고, 사회적인 여파를 보여주는 근대문학의 가능서을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러나 문학계 동인ㄴ들의 애환을 자전풍으로 그린 ‘春’이후는 자기표현의 문학에도 스스로를 몰아 넣은 작품을 쓰게 되어 '家'에서는 일본의 전통적 가족제도의 문제를 규명하고, 혈통에 속박되어 사는 사람들을 그리고, 대정기에 들어서는, 자신과 조카딸과의 연애문제를 대담하게 보여준 ‘新生'에서 반향을 불렀다. 이윽고, 소화4년부터 10년에 걸쳐 부친을 모델로 명치유신이라는 격동의 역사를 더듬어 최대의 장편 ’夜明け前'가 쓰여졌다. 더구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東方の門'을 쓰기 시작하여 건대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갑자기 세상을 떠나 애석하게도 미완성으로 끝났다.(2)田山花袋島崎藤村과 더불어 자연주의 문학운동을 전개한 사람이었으며, 자연주의 문학의 최초의 작론이다.
목 차Ⅰ. 서 론Ⅱ. 본 론1. 영재의 정의 및 영재 교육의 개념2. 영재의 특징과 판별3. 영재 교육의 목적 및 대상4. 영재 교육의 필요성① 국가적인 차원② 개인적 차원5.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현황6. 영재교육의 방법7.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문제점① 행?재정 지원의 미흡 - 일반학교와 특수학교의 문제점② 영재교육의 비전문성 및 질적 수준 미흡가. 영재 판별 도구의 미비나. 너무 늦은 영재 발굴 시기다. 영재교육 담당 교사의 전문성 미흡③ 영재교육에 관한 사회적 편견 - 학생들의 편견 조사④ 영재교육과 우리나라 교육체제의 관계가. 특정분야에 치우친 영재교육나. 입시 준비로 창의성을 상실시키는 교육8.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개선 방안① 피라미드식 영재교육 체제 구축② 대학과의 연계교육 통해 창의성 계발에 초점③ 영재교육 정책 추진에 필요한 정부의 도움④ 영재교육 담당 교원을 양성할 수 있는 방안 마련⑤ 지속적인 영재교육 기회 제공⑥ 일반시민과 일반 교사들의 영재교육에 대한 인식 제고⑦ 다양한 영재교육 기회 제공9. 과거 한국의 영재교육 - 신사임당의 영재교육① 한국에서의 영재교육② 신사임당의 교육이 현대 영재교육에 미치는 효과10. 외국의 영재교육 사례①미국②이스라엘Ⅲ. 결 론♧ 참고문헌Ⅰ. 서 론현대 사회는 지식?정보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지식의 생산, 소비, 확산, 활용 능력이 개개인의 삶의 질과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는 지식기반사회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의 창출 기반을 확충하고, 창출된 지식을 상업화할 수 있는 창의적 고등 인력을 양성하는 일이야말로 각 국이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는 다름 아닌 ‘교육’이 담당해야할 역할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새로운 교육적 관심은 앞으로 천재로 성장할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교육적 조치가 무엇인가에 그 초점을 두어야 한다. 전체인구의 3~5%가 영재이며, 15~20%모가 판별해내야 하는데 기독교 방송문화센터 영재연구실에서 펴낸 자료를 인용하면 영재의 판별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① 수 개념의 발달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여 유난히 빠르다.② 수자와 수자간의 관계에 대해 대단한 흥미를 보인다.③ 글을 읽기 시작한 시기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이르다.④ '왜' 라는 질문을 귀찮을 정도로 해댄다.⑤ 책을 너무 좋아하고, 많이 읽어서 책을 너무 좋아하고, 많이 읽어서 책을 공습하기가 곤란할 정도이다.⑥ 한가지 문제나, 활동에 빠지면, 불러도 듣지 못하거나, 밥먹는 것도 잊어 버릴 정도이다.⑦ 한번 들은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을 만금 기억력이 뛰어나다.⑧ 어느 특정 기간 동안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그 외의 주 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http://myhome.hanafos.com/~pinsoo/gifted2.htm#3.%20영재교육%20왜%20필요한가? 인용)3. 영재 교육의 목적 및 대상영재교육의 목적은 영재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함으로써, 그들의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국가 사회가 그 부수적인 효과로 안보, 복지, 문화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하여 영재교육의 목표는 영재들에게 창의적 문제 해결력, 지도력, 자율적 탐구 능력을 신장에 두어야 할 것이다.재능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계발되지 않으면 그 재능은 흙 속에 묻힌 진주와 같다. 따라서 기초 기능, 기초 개념의 습득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되겠지만, 풍부한 학습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많은 의문을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되도록 영재 교육을 실시하여야겠다. (출처 : 영재넷)영재교육의 초기에는 대단히 우수한 영재들만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었다. 전통적으로 영재성의 기준으로 상위 1-3%를 제시하여왔다. 그러나 연구가 거듭될수록 그 이하에 있는 학생들 중에서도 높은 수준의 성취를 할 수 있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소위 일류 대학의 학생들은 지능지수가 상위 20%에 해당 두뇌를 길러냄으로써만 가능하다. 치열해진 국제 경쟁 시대에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고급 두뇌 인력을 배출하는 영재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많지 않고, 인재만이 살길인 나라에서는 더더욱 영재의 육성이 중요하다. (출처 : 21세기 영재교육센터)5.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현황우리나라가 정보화, 개성화, 세계화에 발맞추어 각 분야에서 독창성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하여 영재교육을 실시하여 온 것은 1983년도 경기 과학고등학교를 설립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영재교육이 일반학교, 교육청, 대학부설 과학영재교육센터, 특수 목적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최근 들어 영재교육을 실시하는 초?중등학교의 수가 1994년부터 1998년의 4 년 동안 급격히 감소했다. 그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과학 고등학교의 변천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과학 고등학교가 전성기를 누리던 1994년도에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초등학교가 많았지만, 과학 고등학교에서 지필 검사를 이용한 입학전형을 할 수 없게 된 1996년부터 영재교육 실시 경향이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또한, 1994년도에는 영재교육을 실시하는 초등학교의 77.8%가 방과 후 특별반을 운영하였고, 14.8%가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1998년도에는 영재교육 실시학교 중 특별반을 운영하는 학교는 전혀 없고, 방과 후 심화학습 프로그램만 실시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과학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진로가 불투명해지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에서의 영재교육이 상급학교와 연계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영재교육에 대한 관심이 감소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교육청이 운영하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1998년 현재 전국의 202개 교육청 중에서 63개 교육청(전 교육청의 30%)이 지역공동영재반의 형태로 영재교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학 부설 과학영재교육센터가 최근 설치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이 센터들의 수와 영재교육 대상자의 수는 증가하고목적 고등학교는 영재교육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교육과정의 특성이나 법적 지위 면에서 모호한 측면을 가지며, 비평준화 지역의 우수고등학교 학생들과의 판별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는다.현재 국가적 차원에서는 유일하게 한국교육 개발원에 영재 교육 팀이 있기는 하지만, 부족한 연구 인력과 예산으로 자료와 검사 도구를 개발하기 때문에 영재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물론 교사 연수는 더 더욱 어렵다. (출처 : 마이클럽 영재교육 부분)② 영재교육의 비전문성 및 질적 수준 미흡가. 영재 판별 도구의 미비각 특수재능 분야별로 특별히 우수한 학생을 판별해내는 데 필요한 검사도구가 거의 개발되어 있지 않은 현실이므로,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지적으로 우수하거나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판별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 또 현재로서는 각 분야별 특수재능을 측정하거나 이를 길러줄 교육 프로그램이 제대로 개발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예를 들면, 과학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판별하는 과정에서 1994년도까지는 중학교에서의 전 과목 성적이 전 학년 상위 1-3%에 드는 자를 학교장이 추천하는 방식으로 첫 번째 선별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 단계에서도 과학 수학에 중점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기타 과목에서의 성적이 50%를 차지하는 입학고사를 실시하여 왔다. 이러한 문제점이 누누이 지적되어 오다가 최근에 서울과학고등학교는 개별적으로 전형 방법을 개선하여 1995년도부터는 과학 수학 과목만을 입학고사에 포함시키기로 결정 하였다. 그러나 과학 수학 과목만으로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지필 고사를 중점으로 실시하기 때문에 과학 분야에서의 전문가에 의한 문제 해결 과정의 관찰을 통한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나. 너무 늦은 영재 발굴 시기일반 학교의 경우, 영재교육을 실시하는 초등학교에서조차도 4학년 이상에서만 주로 영재교육을 실시하는 점에서는 재능 계발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있다고월 15일 목요일 ‘초중교 「문제아」 장현민군, 영재고교서 두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혔던 천재소년. 다양성이나 창의성을 키워주기보다는 집단에 적응하기만을 강요하는 학교에 염증을 느껴 9년여 동안 낙오자의 길을 걸어가던 학생. 소년은 이제 한 영재교육 전문가의 도움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민족사관고 1학년에 재학 중인 경북 안동 출신의 장현민(張鉉民·16)군. 그의 중학교 성적은 전교생 3백82명 중 평균 이하. 하지만 그는 전국의 영재들이 모인다는 민족사관학교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장군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장군의 부모는 아들이 초등학교 때 교사로부터 “수업시간에 잠만 자고 선생님 말도 듣지 않는 이상한 아이다.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 부모는 아들을 데리고 연세대의대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검사를 한 뒤 “전혀 이상이 없고 천재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이므로 영재교육을 시켜보라”고 권했다. 부모는 1주일에 한 번씩 서울의 영재교육프로그램에 다녔으나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3개월 만에 그만둬야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장군은 학교수업과는 완전히 멀어졌고 집에서는 밤새도록 만화 컴퓨터게임 모형 만들기에 열중했다. 일본 만화와 영어나 일어로 된 모형비행기 조립안내문을 읽기 위해 스스로 영어와 일어를 깨쳤다. 졸업 무렵이 되자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무래도 아들이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영재교육 전문가인 한국교육개발원 조석희(趙夕姬)박사를 찾아갔다. 조박사는 장군에게 ‘수학 및 과학 창의적 문제 해결력 조사’를 실시했다. 전국 중학생 중에서 2% 이내라는 결과가 나왔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했다. 조박사는 장군을 민족사관고에 추천했다. 학교측은 장군의 학교성적에는 개의치 않고 영재로서의 잠재성을 인정해 입학을 허가했다. 장군은 “이제는 학교생활이 재미있다”며 “아직 뚜렷하게 진로를 정하지는 않았지다.
피부와 생활건강 레포트-황사와 여드름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요―‘ 물론 내면도 중요하지만 외면도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 또 화장품 광고 문구를 보아도 ‘진짜 미인은 피부미인’이라는 등, 하얗고 잡티 없는 피부는 모든 여성의 선망의 대상임은 분명하다.2004년도를 기점으로 웰빙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 뿐 아니라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건강하게 아름답길 원했고 그 흐름에 맞추어 피부 관리와 성형수술, 요가가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피부 관리 뷰티샵는 비싼 가격으로 연예인과 같은 특수 계층만 가능하다는 인식을 무너뜨리고 가격 면에서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점점 ‘피부 관리’란 단어가 생소하지 않고 가깝게 느껴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피부 관리나 마사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세상의 흐름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그 물길 속에 금요일날 피부과에서 점과 주근깨를 빼는 간단한 수술 아닌 수술을 하였고 그전에는 원래 없었던 몇 개의 여드름으로 속이 상해 엄마와 피부과에 갔었다. 사실 ‘피부와 생활건강’이란 이 과목을 수강한 근원적 이유도 피부와 관련된 부분들을 조금이나마 대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였다.사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까지만 하여도 주근깨와 점 몇 개 있을 뿐, 여드름의 ‘여’자도 모르고 있었던 나였다. 그러던 나의 피부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작년 봄, 내 피부는 악화 되어갔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 울긋불긋한 내 피부에 난 적응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심할 때는 대인기피증이라고 느낄 정도로 사람을 마주치기가 무서웠고 사람과 가까이서 이야기 할 때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 일쑤였다. 내가 심한 여드름은 아니었다. 단지 불그스름한 여드름 많아도 5,6개가 고작이었지만, 원래 없던 녀석이 내 얼굴에 같이 살자 유난히 그렇게 신경이 쓰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피부과를 찾았다. 내가 곰곰이 고민을 해본 결과는 그 즈음, 고등학교 때부터 써오던 기초 화장품을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화장품에 유분이 과도하게 들어있었다고 생각했다. 피부과 선생님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술과 화장품의 원인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늘 학교에 있던 예전과는 달리 외출도 잦고 그래서 황사나 건조한 공기 탓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전 황사로 인한 피부질환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았다.**황사, `피부'에도 악영향외부로부터의 바이러스 침투를 막아내는 피부라지만 강한 바람과 흙먼지를동반한 황사에는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황사바람이 직접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접촉성 피부염이 발생하기 쉽다. 또 건조하고 세찬 황사바람은 피부의 수분을 앗아가 피부 건조증을 유발,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기도 한다. 접촉성 피부염에 걸리면 수포가 생기면서 진물이 나오고, 환부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간지러워진다. 수포가 터지면 딱딱한 딱지가 앉기도 하고 피부가 두꺼워지기도 한다. 이 때 물에 젖은 가제를 덮어주면 증상이 완화된다.약으로는 가려움증 해소를 위한 항히스타민제와 소염작용이 있는 스테로이드 연고나 크림이 처방된다. 예방을 위해서는 외출 전에 수분 크림을 발라 피부 보호막을 만든다. 특히 피부가 얇은 눈가에는 듬뿍 발라주는 것이 좋다. 바깥 활동을 하고 돌아온 후에는 온몸에 황사 먼지가 묻어있으므로 깨끗하게 씻는 것이 중요하다. 세안이나 샤워에 사용하는 물의 온도는 미지근한 것이 좋다. 너무 뜨거운 물은 피지를 과도하게 없애 피부건조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세안 후 피부 보습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피부가 유난히 버석거릴 때는 영양크림과 에센스를 섞어 3~4분간 마사지한 후 스팀 타월로 닦아낸다. 얼굴이 가렵고 열이 나거나 발진이 생길 때는 차가운 수건으로 피부를 진정시킨다.술과 화장과 공해에 시달린 내 피부 탓에 그때 처음으로 나는 피부과에서 여드름을 제거하는 눈물 나는 시술을 받았고 거금 5만원을 대가로 지불하여야 했다. 2.3일 동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도 들지 못하고 다녔다. 그것은 내가 외출을 삼가면 되는 문제였지만 여드름은 보험도 되지 않아 진료비와 약값에 한번 병원을 갔다하면 7,8만원은 그냥 나가게 되었다. 나는 슬슬 화가 났던 게 사실이다. 여드름이 어떻게 질병이 아니란 말인가. 왜 보험이 되지 않는 것일까. 학생에게 매번 7,8만원이라는 돈은 참 크다.
초 급 일 본 어학교과이름차 례Ⅰ. 머 릿 말Ⅱ. 내 용1. 회화에 대한 일본어 학습법2. 문법에 대한 일본어 학습법3. 청해에 대한 일본어 학습법Ⅰ. 머릿말 - 내가 생각하는 일본어학습법과 일본어에 대해.최근 불고 있는 일본어 열풍과 함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일본어를 학습하고 있다. 일본어를 학습하는 목적은 크게 실용과 교양이라는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또는 일본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일본어를 학습하는 사람은 실용성을 일본어 학습의 목적이고 일본의 만화나 j-pop같은 문화에 대한 흥미나 학교 교육차원에서 일본어 교육이 행하여지는 경우, 일본어 교육은 교양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그러면 먼저 언어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잘 읽을 수 있는 것. 즉, 서로의 마음을 읽는 의사소통인 것이다. 우리는 외국어를 빠르게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습득해 왔다. 가장 처음 접한 외국어는 영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훌륭한 학습방식(?)으로 공부한 덕에 그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노력과 부담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어에 숨 막힐 듯한 부담감만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영어가 싫어 일본어를 배워보려고 시도했고 내 친구들 역시‘영어가 싫어서’혹은‘영어를 잘 못해서’라는 사람들 일본어에 입문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상당한 시간, 영어를 학습했음에도 외국인과 대화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비능률적 학습 환경에서 우리는 기초적인 의사전달이라는 외국어학습의 핵심목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외국어를 배운다.'라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읽고 쓰기가 강조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읽기 쓰기를 절대 소홀히 해선 안 되지만 우리는 이 시점까지 너무나 읽기 쓰기에 치우쳐져 말하기 듣기를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외국어학습은 대화와 듣기 능력의 배양이라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또 일본어를 배우고자 하는 친구들이 “일본어는 처음에 배우기가 쉽다던데?”라고 가끔 물어본다. 접근이 쉽다고 알려져 있는 일본어에 있어서는 다른 언어들에 비해 초, 중급 단계에서는 비교적 용이한 목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공부해본 결과 얕은 지식이지만, 접근은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학문과 마찬가지로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현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탓도 있지만 언어를 공부할 때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을 만만하게 봐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적어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까지 모두 이해하고 나서야 정말 그 언어를 잘 배웠고 또 잘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한국식 일본어(코페니즈)에 얽매여 잘 고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중급 이상 한국인의 일본어는 한국인만이 늘 틀리기 쉬운 표현이 따로 있고, 따라서 일본어회화실력이 그 이상 향상되지 못한 채 몇 년 째 제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최근에는 인터넷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지닌 매체를 통해 외국어를 듣고 말할 수 있는 학습수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말하기는 조금 힘들더라도 듣기능력과 우리가 직접 일본에 가지 않아도 거의 대부분의 일본 문화의 체험은 가능해졌다. 단순히 외국어를 읽고 쓰는 학습보다는 듣고 말하기 위주의 외국어 학습이라는 외국어 학습의 핵심목표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학습수단들이 많이 늘어난 만큼 이제 외국어 학습은 달라져야 하고 현재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면 내가 경험한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Ⅱ. 내 용1. 회화에 관한 내가 생각하는 효과적인 학습법흔히 말하고 듣는 의사소통이 회화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전달한다는 어려움이 있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거부반응 같은 것들이 있어서 우리가 언어를 배우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힘든 부분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말을 잘하려면 얼굴을 두껍게 하고 부끄럼을 타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 이제 20대, 숙녀가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고 외국어를 배우기란 쉽지 않다. 나도 꽤 명랑하며 밝은 성격이라고 생각 하지만 아무리 노력 해봐도 그것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있다. 여행사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 끝에 과선배가 근무하는 것을 알았고 나는 무조건 그 선배에게 매달려 일본인들이 한국에 투어를 오면 가이드 옆에 따라다니고 일본인과 같이 여행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한달에 두 번 정도 일본인들과 함께 부산을 놀러 다니면서 관광 가이드 선생님(내가 배우는 입장이므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이 하시는 말씀이나 사람들의 반응을 처음 한달은 그냥 듣고 보고 배웠고 두 번째 달부터는 조금씩 말도 하고 내가 들었던 것을 설명도 해주고 개인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실 투어로 오시는 일본인들은 나이가 조금 되시는 분들이라 내가 일본어를 잘 못해도 이해해 주시고 잘 설명해 주시고 비슷한 나이의 또래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같은 것들도 느끼지 않았다. 내가 부산에 투어 온 일본인들과 말문을 여는데 절실히 느꼈던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신감이었다. 내가 가이드 선생님의 말을 듣고 들었을 때 그것이 말들이 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었을 때, 입으로서 말이 나왔다. 어쩌면 얼굴을 두껍게 뻔뻔하게 라는 말도 자신감을 조금은 대신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님의 말하는 방법을 계속 듣고 말 한마디를 낸 후 부터는 술술술 말을 하듯이 외국어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먼저 듣고 내 머릿속에 익숙해 진 후 자신감을 더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전달하는 것. 그것이 회화의 기본 밑거름인 것 같다. 회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 그리고 꾸준히 듣는 것, 그리고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또 실생활에서 쓰이는 자연스러운 일본어 표현과 대화, 상황별 표현과 좀 더 높은 수준의 회화로 올라가고자 한다면 많은 관용 표현을 집중적으로 익혀 두면 참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시중에 보면 실생활 회화를 비롯하여 여러 경우의 회화 교재를 구할 수 있는데 교재를 선택할 때는 현재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에 주안점을 둔 살아 있는 교재를 골라야 한다. 쓸데없이 어렵고 흔히 코페니즈 표현만 잔뜩 실린 낡은 회화 책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재를 선택할 때는 전문가나 선배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2. 문법에 관한 내가 생각하는 효과적인 학습법사실 우리나라는 문법에는 굉장히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화보다 훨씬 배우기도 쉽고 또 마음만 있으면 노력을 하면 금방 눈에 띄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JPT나 일본어 능력시험을 위해 학원에 가면 문법과 단어를 위주로 공부한다. 어쩌면 가장 쉽게 눈에 띄는 부분이고 단기간 내에 점수를 올릴 수 있는 부분이라고 나도 느낄 수 있다. 문법은 벼락치기도 가능하지만 이것도 역시 언어를 배우는 방법 중 하나기 때문에 꾸준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면서 문법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이 바로 일본 신문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조금 딱딱하고 실생활에 바로 쓰일 수 있는 단어들도 많지만 신문을 읽으면 문법뿐만 아니라 지식적인 약간의 수준이 있는 단어를 비롯하여 일본의 문화와 경제까지 골고루 섭렵할 수 있다. 인터넷의 이로움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처음으로 교수님께서 숙제를 내주셨을 때 나는 어떻게 숙제를 해가야 할지 정말 앞이 깜깜했다. 이탈리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전혀 내용을 해석할 길이 없을것이라는것이라고 생각도 했었지만 먼저 줄거리를 비롯한 ‘La Traviata'의 모든 자료를 찾는데 있어서도 꽤 어려웠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POP위주의 음악감상으로 인하여 오페라의 자료는 인기 가요 감상과 같은 사이트에 비하면 정말 빙산의 일각이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오페라 공연까지 보여주는 사이트는 하나도 없었고 그나마 한두개 있는것도 중요 아리아만 있었다. 하긴 나도 이런 숙제가 아니었으면 오페라는 검색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막무가내로 음악만 듣고 감상문을 써서 학교에 갔는데 정말 다행스럽게 오페라를 보여준다고 하셨다. 하지만 학교 음악감상실이라는 곳에서 오페라를 본다고 하길래 ‘그냥 교실에서 하지 왜 그까지나 가서 하지..’하고 투정을 부렸었다. 그리고 감상실의 의자가 너무 편해서 ‘아 한숨 자야겠다~’라고 생각한 나는 오페라가 시작되자마자 잠이 달아나 버리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했다. 컴퓨터로 귀로만 듣고 내가 상상했던 오페라의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공연을 보는 무대와 오케스트라의 조화는 정말 훌륭할 정도로 멋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연극은 몇 번 접해 보았지만 오페라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나는 오페라도 연극의 무대처럼 단순하고 작은 소도구만으로 이뤄진 것일거라고 생각해 버리는 실수를 했던 것이다.라트라비아타 초연장소 '베니스 페니체 극장'‘La Traviata'라는 오페라의 작곡은 주세페 베르디(G. Verdi, 1813-1901)가 대본은 피아베(F. A. Piave)가 이탈리아어로 썼다. 등장인물로는 여자주인공 비올레타,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 그녀친구 플로라, 알프레도의 아버지 조르주, 비올레타의 보호자 두폴남작, 의사 그랑빌, 비올레타의 하녀 안니나가 있다. 연극의 때와 장소는 1800년경 파리 및 그 교외를 나타낸다.처음 오페라의 막을 여는 아다지에 사랑이 불타네 자, 마음껏 즐기며 마시자 이 밤이 다 지나기전에 우리 같이 사랑의 꿈을 꾸자)를 부른다.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따딴~딴딴딴따딴따~아~같은 왈츠곡이 나온다. 오페라 감상하면서 혼자 흥얼흥얼 거렸고 내가 알던 곡이 오페라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축배의 노래를 비올레타가 부르다가 모두 합창을 한다. 그러나 이 즐거운 노래를 마칠 때쯤 비올레타가 갑자기 심한 기침을 발작적으로 하고 기진맥진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방으로 다 가고 혼자 남아있던 알프레도는 비올레타를 진심으로 염려하고는 진정이 되자 '추억의 그날부터'라는 노래(행복하고 지순했던 날 당신은 나의 마음에 깃들었다오 신비롭고 거룩한 우주의 고동같은 그 사랑을 알았다오)로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때를 이야기하며 얼마나 그녀를 그리워하며 사랑했는가를 고백한다. 이 아리아는 정말 내 마음에도 와닿았는데 이 다음에 나에게 ‘추억의 그날부터‘의 음을 흥얼거리면서 다가와서 고백하는 남자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올레타는 이 고백을 가볍게 넘겨 버릴려고 하나 큰 감동을 받고 혼란스러워 진다..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이 갔을 때 비올레타는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기며 '아, 그이었던가'를 부르는데 이 곡에서는 그에게 이처럼 새로운 커다란 기쁨을 안겨준 사랑의 행복감이 깊이 베어있는 것 같다. 이 때 밖에서 부르는 알프레도의 노래가 비올레타를 놀래킨다. 멍하게 서있던 비올레타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래를 계속한다. 1막의 마지막부분이 되니까 무척 화려하고 밝고 고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사랑의 감정이 고조됨을 웅장한 음악으로 강조하면서 1막을 마쳤다고 생각되었다.나는 이 아리아를 들으면서 비올레타역을 하는 저 아가씨는 도대체 사람일까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유창하게 저리도 잘한다는 것이 무척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움까지 느껴졌다. 이 아리아가 끝나며 막이 내린다.2번째 막은 알프레도와 비올레타는 교외에 있는 자그만 집에서 행복한했었다. 알프레도는 돈을 마련하러 파리에 간다.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와의 사랑을 막 노래하고 있는데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방문한다. 그는 처음에 선량한 자기 아들을 유혹하여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비올레타를 엄격히 꾸짖는다. 그러나 비올레타의 사랑이 자기가 상상하던 방종한 생활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솔직하게 알프레도의 누이동생이 혼담 중에 있으나 오빠인 알프레도의 방종한 생활이 소문나서 이 결혼이 파혼될 위험이 있으므로 알프레도와의 관계를 끊어 달라고 말한다. 비올레타는 손도 떨고 몸도 떨면서 그럴순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제르몽의'천사와 같은 청순한 딸이'를 듣고서는 포기를 결심한다. 이 가사를 보는데 나는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네 눈물에 천사가 보답하기를”라는 가사는 정말 로맨틱하고 시적이면서도 위로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헤어질 때 ‘아띠오’라고 말했던 것 같아서 이탈리아어를 찾아봤는데 내가 생각했던 단어는 없다고 나와서 몹시 궁금하다. 조만간 외대다니는 친구를 만나면 물어볼 생각이다. 비올레타는 이별이 알프레도에게 줄 충격을 덜기 위해 일부러 자기가 딴 남자에게 관심이 있는 듯한 편지를 쓴다. 이윽고 돌아온 알프레도는 어딘가 서먹한 비올레타의 태도에 의심을 품지만 비올레타는 그의 아버지 제르몽과의 약속을 지켜 괴로움을 억누르며 알프레도에게 자기를 더욱 사랑해 달라고 애원하다가 떠난다. 이때의 비올레타는 옷도 바뀌어 져있다. 단정한 느낌을 주는 짙은 연두색의 드레스는 하얀 비올레타의 얼굴과 더욱 대비되어 아픈 마음을 가지고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듯한 비올레타를 더욱 부각시켜 주는 느낌을 받았다. 알프레도에게 매달려 조금은 비참해보이고 안쓰러워 보이게 사랑해달라고 소리치는데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음악에 단지 자막에 의존해 내용을 이해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돌아서 깜짝 놀랬다. 역시 음악은 전세계 언어를 뛰어넘는 공통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두고 거짓을 말해야 한다는 것.. 그가 사랑하는 이는 오직 알프레도이면서도 이 알프레도를 위하여 그는 두폴을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마침내 폭발한 알프레도는 모든 손님들이 보는 가운데에서 자기가 오늘 도박에서 딴 돈을 모두 비올레타의 앞에 던져모욕을 준다. 뼈를 깍는 고통을 참고 거짓말을 말하고 또 그것도 모르는 한 남자의 바보같은 행동은 나를 또다시 눈물이 나게끔 했다. 하지만 울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하품한척 했다. 두폴 남작이 드디어 결투 신청의 표시로 장갑을 벗어 알프레도의 발앞에 던진다. 알프레도가 이를 집어들음으로 이 도전을 수락한다. 이 때에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 다른 심정을 노래한다.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거의 실신상태에 빠진 비올레타, 그녀를 위로하는 여러 친구들, 질투와 분노에 넘치는 두폴, 후회와 비탄에 빠진 알프레도, 여기에 제르몽이 부르는 비올레타에 대한 자비와 동정의 노래가 함께 어울린다. 가사는 각각 다 다르지만 한 대 어울어진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내가 이까지 오페라를 보면서 비올레타를 두고 결전을 벌이고 꼭 그러는 것이 내가 예전에 본 ‘물랑루즈’와 너무 흡사한 내용이었다. 물랑루즈의 여주인공은 사교계의 여왕이고 또 그녀를 사랑하는 한 남자와 돈많은 백작, 그 남자와 돈많은 백작의 결투와 여주인공을 지켜보고 위로해주는 친구들,,, 모두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마지막 3막은 너무나도 차가워 보이는 가구가 딸린 장소였다. 가만히 있어도 차가운 느낌을 주는 흰 시트에 침대인데 거기다가 조명까지 파란색을 써서 정말 입김을 ‘호~’하고 불면 입김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무런 즐거움도 다 잊어 버린 비올레타가 초라한 아파트의 자그마한 침실에 누어 앓고 있다. 한때에는 그가 차지하였던 진귀한 보석들도 지금은 다 없어지고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애석한 일은 비올레타의 병세가 악화 일로에 있으며 이제는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정도인 것이다. 슬픔자고 장래의 계획과 다시 찾은 사랑의 행복을 노래하는 2중창 '파리를 떠나서'를 부른다. 가운을 갈아입고 빨리 교회로 가야겠다라고 말하면서 알프레도와 함께 외출하려 하였으나 기진하여 주저앉고 만다. 이때에 며느리로 맞이하려고 달려온 제르몽과 의사 그랑빌이 도착한다. 이때 제르몽 마지막으로 비올레타는 자기의 자그마한 초상화를 알프레도에게 주면서 훗날 다른 처녀와 결혼을 하면 이 초상화를 보여주며 '하늘에 있는 천사가 이들의 행복을 빌고 있다'고 말해 달라고 한다. 바이올린의 고음을 타고 1막에서 부르던 사랑의 이중창이 흐른다. 비올레타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다시 한번 일어난다. '아, 이제는 고통도 그쳤어요, 한없는 환희가 솟아나는걸요...' 하며 쓰러져 버린다. 알프레도 등 모든 사람이 슬픔으로 넋을 잃고 멍청히 서있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나는 이 마지막 막에서 정말 한편의 영화같음을 느꼈다. 비올레타는 그래도 죽을 때 조금이나마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알프레도와의 행복한 생활은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의 마음을 알프레도도 알았고 알프레도와의 만남을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죽은 행복함. 그에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알프레도의 마음.. 모두 생생하게 그려졌다. 높은 바이올린음은 비올레타의 생명이 끊길 듯 말 듯 겨우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지난날이여 안녕을 부른 뒤의 관현악은 한 생애를 반성하듯이 겸허해 지는것도 느꼈다.‘La Traviata'의 원작은 뒤마 피스의 라는 작품이다. '트라비아타'는 '길을 벗어난, 정도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여인'을 의미한다. 그 소설의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체는 마리 뒤프레시스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원작에서는 비올레타가 마르그리트 고체, 알프레도가 아르망이다. 그리고 자료를 찾으면서 에피소드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초연(1853년 3월 6일)이 실패했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또한 너무 웃겼다. 실제 인물(마리 뒤프레시스)를 형용했던 글을 보면 너무 이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