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지혁명이 교육개혁을 가져왔는가?-교육심리학-Ⅰ. 序 論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며 우리는‘평생학습’이란 말을 자주 거론한다. 또한 하루가 달리 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되며, 정보를 얻지 않으면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평생학습이나, 지속적인 공부는 즉, 교육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사람에게 있어서 교육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 도구라 하겠다. 인간은 태어나서 능동적으로건, 수동적으로든 교육을 받음으로써 원초적 동물에서 지혜를 갖추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동물로 성장한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교육이 잘못되면 여러 사회문제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는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요컨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교육이라는 것, 배움이라는 것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반면 교육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지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연구 측면에서 새로이 등장한 것이 인지과학이라 할 수 있겠다. 인지주의란 인간을 대상으로 삼던 심리학에 정보의 개념을 도입하여 지각, 기억, 추론, 학습 등의 사고 전반의 과정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방법적으로는 실험 심리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과학적 실험을 통한 실증을 중요시하고 있으며, 인지주의 입장에서 학습은 인지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지주의에서 말하는 학습이란 학습할 내용과 그것과 관련된 기존의 인지구조가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 있게 연결됨으로써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인지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브루너(Bruner), 삐아제(Piaget)가 있고, 위에서 말한 인지혁명이란 즉 심리학에서의 심리적 사상들이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한 과거의 사고에서 심리적 사상들이 상황적 조건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한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인간행위를 설명하는 과학적 관점을 혁명적으로 바꾼 인지혁명은 1950년경에 시작하여 미국의 교육에 큰 개혁을 불러온다. 이 시점에서 인지혁명이 왜 어떻게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 교육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앞서 인지혁명에 의한 교육개혁이란 세찬 물결을 가져온 주역인 Bruner의 교육관을 통해 미국의 교육개혁에 대해 살펴봄이 선행되어야 하겠다.Ⅱ .本 論Bruner는 이전 미국 교육을 주름잡던 John Dewey의 진보주의교육을 비판하며 등장한다. John Dewey의 진보주의교육은 인지혁명에 의한 교육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교육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1940년대를 장악하던 John Dewey의 진보주의교육은 Bruner가 비판하고 나서며 그의 영향력은 인지혁명이 일어난 1950년 전후 크게 잃게 된다. 그렇기에 인지혁명이 왜 교육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 규명하기 위해선 인지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미국 교육계를 주름잡던 진보주의이론의 단점을 짚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되겠다. Bruner가 John Dewey의 진보주의교육을 비판하며 등장했듯이 말이다. 진보주의 교육은 여러 측면에서 우리가 흔히 일컫는‘열린 교육’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아동과 학습에 대한 신념에 있어 진보주의교육과 열린 교육은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l945년, 미국의 교육계는 학생들의 인성개발을 목적으로 1950년대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대대적으로 열린 교육을 추진하지만 그 교육의 결과는 참담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난폭해졌고 성적이 하락하는 결과만을 나았다. Bruner는 Dewey가 이전의 아동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학교수업의 단조로움과 경직성이 팽배했던 교육을 시정하는 영감을 불어넣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기에 그 반대로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인지혁명은 Bruner로 대표되어지기에 그의 교육관을 통해 인지혁명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자 한다. 그의 교육에 대한 신조는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교육에 관한 항목이다. Bruner는 마음의 능력과 민감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교육이 추구하는 과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그 자신이 만든 문화적 유산의 일부분을 써서, 그 자신의 세계에 관한 의견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지각연구가 이끈 인지혁명이 지각경험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인지구조의 풍요로움이 필요하다는 지식을 교육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주의교육론을 펼친 Dewey는 그의 저서에서 참된 교육은 아동이 그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의 요구에 따라 능력들이 북돋아지는데서 나타난다고 이야기 한다. 이렇게 둘은 교육에 관해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두 번째, Bruner가 말하는 학교는 보다 폭넓은 경험을 하게 되는 지역사회나 일상경험과의 연속선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 그는 “학교는 마음의 삶으로의 들어감”이라고 전제하면서, 학교는 중심적인 기능의 하나로 수월성의 심상을 육성하는 것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 교과에 관해서는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분명히 자연계의 지식, 인간조건이 지식, 사회의 본질과 역동성에 관한 지식, 과거사에 관한 지식은 현재를 경험하고 미래를 열망하는데 쓰여 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교육된 인간에게는 본질적인 것이다.” 네 번째는 교육방법의 본질에 대한 것인데, 그는 교육의 과정과 목표는 하나이며 같은 것이라 하며 아동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아동은 그가 학습한 것에서 충분한 이득을 얻도록 북돋워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Bruner는 진보주의 교육이‘적응’에 초점을 둔 것과는 달리 학교는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데서 일어나는‘변화’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교육이 사회변화의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지혁명이 왜 어떻게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이렇게 인지혁명으로 교육개혁을 일으킨 Bruner의 교육관을 먼저 살펴보았다. 그럼 이제 인지주의가 교육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원인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과학을 근거로 삼은 점이다. 세계적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제3의 물결》에서 제2의 물결로 산업혁명을 꼽고 있다. 이 산업혁명은 과학의 발달을 베이스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제2의 물결이 존재했기에 제3의 물결, 오늘날의 제4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 시대를 이끌어가던, 또한 오늘날까지도 그 무엇보다 중요시 되어지는 과학으로 인간행위를 설명한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혁명인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를 과학으로 설명함에 따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두 번째, 구조 중심의 학습개념의 타당성을 들 수 있겠다. 위에서 잠깐 Bruner의 교육방법의 본질에 대해서 언급했듯이, 그가 말한 지식의 연결성을 존중하는 방식의 교육은‘발견학습’이라는 개념을 재강조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구조가 강조된 학습개념은 일일이 조건과 반응으로만 일어나는 S-R연합과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S-R연합 이론에 의거하면 인간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일일이 모든 정보에 대한 조건과 그에 응당한 반응이 이루어 져야하며, 결국 인간이 많은 지식을 얻기에는 한계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Bruner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구조에 의한 응용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교육개혁을 촉진시킨 환경적 요인들을 들 수 있겠다. 미국에 앞서 소련의 인공위성 Sputnik가 세계 최초로 발사되는 사건은 세계 강대국이던 미국인들에게는 무엇보다 큰 심리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사건으로 미국인들은 단순히 과학과 수학영역에서 소련에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의 인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초점을 교육계로 돌려 미국인들은 미국교육이 비능률적이라고 인식하면서 기존에 미국 교육을 지배하던 진보주의교육에 회의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대적 여세를 타 인지주의 교육관은 박차를 가하며 교육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의 삶의 질을 추구한 운동인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미국인들은‘학교를 개혁해야 한다.’며 요구하였고 인지혁명의 논리에 당시 미국의 주변적 요인들이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교육개혁은 급속히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이다. 넷째, 당대 시기에 걸맞는 평등성 논리와의 부합이다. Bruner의 교육관은 한마디로 소수의 엘리트가 아닌, 평등한 지적성장을 목표로 하는 만인의 교육을 추구하는데 있다. ‘특정 교과목에서 구조를 강조하면서 펼치는 질 좋은 수업은 아마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학생들보다 능력이 좀 떨어지는 학생들에게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졸렬한 수업 때문에 가장 쉽게 교육에서 내팽개쳐지는 학생들은 전자보다 후자의 학생들이기 때문이다.’1960년에 발간한 그의 보고서 《교육의 과정》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위의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Bruner는 모든 학생들이 지닌 지적인 능력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을 주장하며 지적 수월성을 추구하는 일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그의 교육의 목표와 교육관은 균등한 교육적 수혜를 요구하던 당시 시기상과도 부합한다.
? 인터파크와의 비교를 통한 아마존의 강점 ?웹상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려는 기업가 뿐 아니라, 이비지니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인터넷 구매를 즐기는 고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amazon.com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제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 아닌, 지구촌의 가장 큰 서점이라는 타이틀로 거론된다. 닷컴 기업의 신화를 쓴 아마존은 e-bay와 함께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성공사례로써, 오늘날 경영인들의 이비지니스 사업 구상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버렸다. 요즈음 아마존의 성공신화가 다소 하락세를 걷고 있지만, 아마존이 이전의 성공신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에, 우리가 배울 점들은 여전히 많다. 나는 아마존의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국내 기업인 인터파크와 비교해보고자 한다. 아마존이 가상 서점으로 알려졌다면 인터파크는 도서무료배송이란 서비스로 유명해진 곳이다.‘도서’상품으로 정평났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에 국내 전자상거래 기업 중 인터파크를 선택하게 되었다.1. 회원가입상의 차이회원가입상의 차이는 아마존과 인터파크만의 대조가 아닌, 미국과 한국의 전자상거래 회원가입 상에 존재하는 차이가 되겠다. 우리에겐 회원가입 시 이름에서 주민등록번호, 주소, 집 전화와 휴대폰 번호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항도 빼놓지 않고 모든 사항을 기입해야만 가입이 가능하며, 가입을 해야만 상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아마존을 비롯한 외국의 사이트는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상품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여 홈페이지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을 뿐 아니라, 제품을 구입하거나 회원가입 시 자신의 메일주소와 패스워드만을 기입하면 된다. 가입절차의 편리성은 고객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우연히 사이트에 접속하였다가 제품 정보를 얻으려 하니 회원가입을 필수로 요하여, 번거로움으로 그냥 그 사이트를 나온 경험이 한 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물론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의 욕구가 강렬하다면 그러한 번거로움 쯤은 감수하겠지만, 그러한 강렬한 욕구를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차별화 전략을 세워야만 한다. 하지만 이비지니스에서는 정보가 공유력이 높은 만큼 모방력도 높아 곧 추종 기업들이 생길 것이며, 끊임없이 선도적으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기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또한 사용자들의 전자상거래 이용을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자기 정보의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어느 웹 사이트든 모두 주민등록번호의 기입을 요하며 가입자가 외국인일 경우 외국인 등록 번호를 기입하여야 한다. 싸이트 이용 시 이렇게 많은 내용을 기입하여야 하는 복잡한 절차는 고객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될 수 있겠다.2. 아마존의 고객중심화아마존의 철저한 고객화는 이미 정평이 난 사실이지만 특히 “Toys & Games”메뉴를 들어가면 아마존의 고객화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제품별, 브랜드별, 캐릭터별 구분은 인터파크에서도 접할 수 있는 목록이지만, 아마존은 또 하나! 아동의 연령별로 나누어 상세화된 제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의 고객을 위한 또 다른 서비스는 선물코너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놀랄만하다. 인터파크에서는 흔히 제품을 구입하며 마지막 결제 시 구입하는 제품이 선물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선택하게 된다. 반면, 아마존의 선물코너에 들어가면 부모님에게 선물하는 것인지, 애인에게 하는 것인지 등등의 선물의 주인공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제공되는 제품서비스로 선물할 품목을 결정하게 된다. 지인의 생일이나 기념일 등 어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슨 선물을 해야할지의 선택이 누구에게나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 중 하나이다. 아마존의 이러한 서비스는 철저히 고객중심으로 사고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마존의 고객중심 정신은 글로벌 경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마존은 현재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의 홈페이지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아마존의 일본 싸이트는 amazon.jp, 아마존의 프랑스 싸이트는 amazon.fr로 되어있는 반면 중국 싸이트로 접속해보면 joyo.com으로 명명되고 있다. 중국시장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여 amazon이란 이름을 고집하지 않는 일종의 고객중심의 현지화 전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3. 텍스트 위주의 아마존 vs 이미지 중심의 인터파크아마존과 인터파크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였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심플함 vs 화려함이었다. 아마존은 제품 정보부터 모든 내용이 텍스트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고, 반면 인터파크는 이미지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위의 사진은 같은 상품을 검색하였을 때 제품설명이 나열된 화면을 캡쳐한 것으로 좌측이 아마존이며, 우측의 것이 인터파크에서 보여지는 화면이다. 이렇게 아마존은 텍스트 위주로 작성되어 있었으며, 인터파크를 비롯한 국내 쇼핑몰의 홈페이지는 이미지를 적절히 혼합하고 있었다. 이미지성과 텍스트성을 함께 추구한 인터파크의 제품설명이 더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인터파크는 이미지성이 너무 강하여 번잡함을 주는 느낌도 적지 않았으며, 이미지 위주의 인터파크는 클릭할 때마다 많은 배너 광고들이 난무하여 불편함을 주었다. 많은 광고를 제공함에서 오는 수익성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고객들의 편리성을 우선시해야하지 않을까? 너무 텍스트 위주로 되어있는 아마존은 시선을 사로잡진 못했지만 메뉴를 알파벳순으로 나열하여 쉽게 제품경로를 찾도록 하는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 CEO 칭기스칸,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젊은 층의 대대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재임기간 내내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문제부터 북핵문제에 이르기 까지 다른 당들의 반발과 국민들의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이렇게 하염없이 하락하고, 이러한 비판적인 평가만이 계속 이어질까? 진정 현재 국민들의 평가대로 노대통령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일까? 오늘날의 국민들의 평가가 과연 옳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는 그가 정권을 잡고 있는 지금이 아닌, 다음 세대에 역사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옳지 못한 판단 같을지라도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면 옳은 판단이자 정치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 역사에 따른 평가도 항상 절대적인 것만은 아닐테다. 역사에 자신들의 감정을 이입하여 왜곡된 판단을 할 수도 있으며, 잘못된 오해가 개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는 지금까지 와전되었던 역사 속 인물을 다시 평가하고 있다. 그 잘못된 역사의 주인공은 칭기스칸이며, 몽골제국의 유목민들이다. 저자의 말에 따라, 칭기스칸이 야만족이자 파괴자라는 등등의 평가가 오해로 채색된 것 일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것 일수도 있겠지만, 작은 몽골이 100~200배나 되는 덩치 큰 나라들을 150년 동안 아울렀음엔 무언가 그들만의 비결이 있었을 것이며 그 핵심역량은 오늘날 우리가 가히 배울만한 것 일테다. 저자는 이전까지의 평가와 달리 칭기스칸과 그의 민족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유목민들은 이미 800년 전 21세기에 걸맞는 경영전략으로 전투를 행하고 있었다 설명한다. 그가 말한 유목민들이 수행한 21세기 경영전략의 정책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첫째, 오늘날의 스톡옵션이다. 오늘날 흔히 일컫는 주식옵션이란 회사가 임직원에게 일정기간 내 자기 회사의 주식을 당초 약정된 가격으로 일정수량 만큼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는 조직원들로 하여금 사기를 부여시키는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칭기스칸은 800년 전에 개인적인 약탈을 금하면서 선행하였다.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가축이든 여자를 취했던 이전의 선착순 약탈방식에서 누가 얼마만큼 공을 세웠느냐에 따라 나눠 갖는 공동 분배제를 취함에 따라 불공평을 해소하고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 전투력이 올라가게 하였다. 이 공동 분배제가 요즘 말로 스톡옵션을 줘서 생산력을 능리는 방식이라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스톡옵션 도입의 기업 성공사례로 시스코를 꼽을 수 있겠다. 시스코는 스톡옵션을 도입해 사원들이 회사에 자긍심을 갖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내며 3%란 낮은 수준의 이직률을 이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둘째, 스피드 경영이다. 국내에서 불과 3년 전 핸드폰이 카메라를 달고 나오더니, 이젠 디지털 카메라 수준을 능가하는 고화질의 카메라 뿐 아니라, MP3는 물론, DMB라 불리우며 휴대폰 안에 TV를 달고 나왔다. 이렇게 오늘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고, 오늘 우리가 얻은 지식은 내일이면 옛 것이 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21세기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스피디라는 속도가 가장 중요시 되어진다. 칭기스칸은 누구보다도 속도에 관한 열렬한 숭배자였다. 유목민, 그들은 馬의 효용성에 주목하여 ‘말의 가축화’를 이루어 내고 군사 장비도 경량화 하여 속도를 늘렸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속도의 중요성은 포스코의 사례로 충분히 알 수 있겠다. 포스코는 ERP나 전자상거래, 활동기준 원가회계와 같은 신경영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기존 기업경영에 혁신을 가하여 한 달 이상 걸리던 사안을 사흘안에 처리하는 속도를 가져왔다.셋째, 지식경영이다. 오늘날 ‘지식사회’라 불리울 정도로 그 지식과 정보는 이전의 자본이나 토지보다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 칭기스칸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정보 마인드에 있다. 유목민들에게도 정보는 생존을 위한 필수 과목이었다. 유목민들은 새로운 곳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외지인을 배척하기 보단 환영하고 환대하였고, 정보화 마인드로 무장한 칭기스칸 군대는 첩보전과 심리전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우리 기업 중 부도 위기까지 갔던 이랜드가 지식경영으로 1년에 영업이익 60억 원을 창출하는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지식 경영 또한 오늘날 기업 경영을 성공하기 위한 핵심이라 하겠다.넷째, 유연성과 호환성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유자재로 모양이 변화하는 장난감 레고를 빌어 유연성과 호환성을 이야기 한다. 오늘날 인재상에 있어 가장 큰 핵심은 오픈마인드를 통한 유연성을 지닌 자일테다. 이제 한 가지 일만 잘하면 되는 세상은 갔다. 다양성을 수용하고 서로 간에 조화를 이뤄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유럽을 앞설 수 있었던 것도 유연한 사고로 민족과 인종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칭기스칸은 이질적인 사람이나 사회를 수용하면서 그 어떤 차별도 하지 않는 정책을 펼침으로써 광활한 지역에 걸친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의 대제국을 경영할 수 있었다. 칭기스칸 군대는 조직원들 역할에 있어서의 호환성은 전쟁에서 이긴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로들을 흡수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적과 나를 적대적으로 바라보거나 구분 짓지 않고 쓸모 있는 모든 사람을 확보하려 했다. 이제는 개인의 다양성을 전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이러한 유연성과 호환성에 초점을 둔 경영방식이 오늘날 핵심 역량은 기업이 주관하고 그 외의 업무를 외부에 위탁하는 ‘아웃소싱’인 것이다.다섯, 네 번째가 사고의 유연성이었다면 다섯 번째 요소는 조직운영에 있어서의 유연성이다. 저자는 유목민들의 조직을 바둑으로 비유한다. 바둑은 장기나 체스와는 달리 모든 돌이 똑같고 평등하다. 또한 각 돌들은 서로 연결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상생으로 전체가 사는 방식이 된다. 이러한 바둑식 사고를 하는 몽골 군대는 체스식 사고를 하는 유럽 군대를 격파했다. 요즈음의 기업들에게선 부서체제가 아닌 팀제를 성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서제를 팀제로 개편하는 것은 팀워크를 증진, 조직 전체의 시너지를 높이는데 그 핵심 목표가 있다. 일본 닛산 자동차 신화의 비결 뒤에도 이러한 팀제의 도입과 파벌주의 타파가 존재하고 있었다.여섯째, 기술의 중요성이다. 칭기스칸은 일찍이 신기술을 지닌 자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칭기스칸 군대는 기술을 향상시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특히 숫자가 적은 군대가 멀리 수천, 수만 킬로미터를 달려가서 원정 전쟁을 벌이자니 그 열세를 속도와 기술력으로 보완하는 길밖에 없었다. 지금과 같은 벤처 시대엔 기술을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가 기업 운명과 직결되며 특히 독자적인 원천 기술 개발은 기업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불 수 있겠다.일곱 번째는 공정성과 열린 태도이다. 칭기스칸은 차별을 싫어하여 자신에게도 ‘각하’나 ‘님’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였다. 심지어 정복한 민족과 정복당한 민족 간에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이것은 2002년 한국 축구의 신화를 일으킨 감독 히딩크의 선수 선발에 있어서의 공정성과도 같다. 선후배간의 서열을 없애 완전경쟁 시장을 만들었고 각종 인연으로 얽힌 부패 구조를 청산하고 능력위주 선수진을 탄생시켰다. 그의 이러한 혈연, 지연, 학연에 따르지 않는 열린 태도와 공정성으로 4강이란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공정성은 오늘날 특히 기업 경영 중 인사관리에서 중요시 되는 개념이다. 인력의 선발과 같은 절차의 공정성, 성과의 배분에 있어서의 분배의 공정성, 업무 전반에 걸친 시스템 공정성이 이뤄져야만 능력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인력관리는 기업의 높은 성과로 까지 이어질 수 있겠다.여덟 번째, 윤리경영이다. 윤리경영은 오늘날 기업이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자 하는 전략 중 하나로 구사되고 있다. 윤리경영은 기업의 이비지니스의 수행과 함께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칭기스칸은 일찍이 인치가 아닌 법치의 원리를 세웠으며, 이 법칙들은 일반인들의 삶이나 사회의 안정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보았을 때, 윤리경영을 하고 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 이제 기업들은 단순히 나라에서 규정된 상법을 준수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아홉 번째, 인재양성 전략에 있다. 칭기스칸은 노예도 능력이 있으면 리더가 될 수 있게 하는 천호제와 엘리트들을 모아 전문교육을 시키는 케식텐을 두었다. 이러한 인재양성 전략의 대표로 삼성전자의 지역전문가 제도를 들 수 있겠다. 지난 90년부터 시작된 삼성의 지역전문가 제도)는 오늘날 초일류 기업으로서의 역량을 발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기업은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재 육성에 적극 투자하고 인재를 중요시해야만이 최고가 될 수 있다 하겠다.열, 조직 구성원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이다. 칭기스칸은 모든 문제를 독단이 아닌 합의에 따라 처리했고 이를 제도화 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여 서로의 다양한 정보를 보다 원활히 교류할 수 있고, 자신의 의사를 발현함에 따라 조직원들의 사기를 향상시키고 종업원의 이직도 방지할 수 있다.열하나, 분산시스템이다. 칭기스칸 제국에는 오늘날의 정보 인프라이자 물류 시스템이며 군사 고속도로라 할 수 있는 역참제가 있었다. 이 역참제는 반 중앙집중적 정보전달 체제이자 릴레이 방식을 써서 최종 전달자가 이동한 가능한 시스템으로 오늘날의 인터넷 프로토콜 방식과 흡사하다. 내부 정보가 한 가지 루트로만 전달되는 게 아니라 매우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전달됨에 따라 상부 권력자에게만 하중이 집중되는 걸 피하면서 업무 추진 속도도 높일 수 있다. 이는 오늘날 페덱스 기업이 성공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겠다.
建安風骨에 대한 硏究▶ < 目 次 > ◀Ⅰ. 序論Ⅱ. 建安文學Ⅲ. 風骨Ⅳ. 建安風骨Ⅴ. 結論Ⅰ. 序 論중국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漢이 멸망하고 그 다음 새로운 정치의 역사가 정착되기 까지 겪어야 했던 그 혼란한 시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고대의 유가사상과 질서를 배경으로 중국을 약 사백여년 동안 지배하였던 漢이 멸망한 후, 중국은 곧바로 새로운 정치와 사상으로 사회질서를 세우지 못한 채 장기간 혼란기를 맞게 된다. 魏晋南北朝 시대(220-589)는 서한 유학 통일기 이후 동한의 혼란 끝에 도래된 본격적인 분열기이다. 370년간에 걸친 위진남북조 시대는 남조와 북조로 대별된다. 남조에서는 魏?蜀?吳의 삼국 중의 吳와 六朝가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지금의 남경인 建康에 도읍하여 세습 귀족적 문벌 사회를 꽃 피웠다. 북조에서는 흉노와 탁발족 등의 다섯 이민족이 교차적으로 통치한 오호십육국 등을 거쳤는데, 남조의 문화력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는 사회적 혼란으로 염세주의적 풍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문화적으로는 한 대 이래의 유가 중심의 문화가 와해되면서 주변의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가 섞이면서 상호 유입?소통되어 역설적으로 오히려 새로운 변화와 탄력이 붙은 시대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비록 시대상 정치적?문화적인 공백 기간으로 끊임없는 전란이 일고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전쟁과 같은 세월의 시기였으나, 문학적 발전에 있어서는 기존의 漢代 문학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의 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는데 중요한 시기였으며, 또한 이 시기동안 문학적으로 많은 발전을 보였다. 중국의 문학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문학의 대가인 魯迅의 말을 빌리자면 문학의 자각적인 시대에 들어섰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실제로 이 시대는 위나라 曹操가 천하의 권세를 잡았던 동한 獻帝때부터 시작된다. 동한은 말년으로 올수록 황족들의 생활은 부패해져만 가고 외척(外戚), 환관(宦官)과 관료들 사이의 심한 세력 다툼으로 정치는 극도로 혼란하고 불안정한 정치로 한다. 이것은 민간의 가요가 발전해서 문인들 사회에 들어온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시와 관련한 건안문학을 요약하자면, 그들은 한 대 이래의 樂府?民歌와 賦의 두 전통위에서, 이들로부터 일정한 자양을 섭취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문학적 전통을 만들어 나가며 樂府民歌의 애잔한 슬픔과 賦의 영물?자연의 묘사성은 상호 작용을 하여 五言詩로 정착해 갔다.) 즉, 조조 3부자와 건안칠자는 한 대 악부시의 사실주의 정신을 이어받은 새로운 抒情詩 창출에 크게 기여했으며 특히 五言古詩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던 셈이다. 이들의 시는 五言詩가 위주였으며 또한 내용 면에서는 그들의 지휘 아래 있던 문인들과의 교감을 통해 강개한 슬픔을 주된 정서로 채택하는 방식을 취하여 抒情詩가 그 주류를 이루었다. 건안 시기 문학은 시가의 창작이 가장 왕성하였고, 그리하여 이 건안시기의 시가를 ‘建安詩歌’라 일컫는다. 당시 曹操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대부 세력의 현실에 대한 관심과 변혁에 대한 야심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양식은 樂府詩 였다. 樂府詩는 원래 민가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현실적 문제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양식이었으며, 형식의 자유로움과 창작의 용이함 등으로 인해 더욱 애용되었다. 후대 시인들이 서민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다룬 시를 지을 때 樂府詩 형태를 상용한 사실 역시 이와 같은 이유에서라 볼 수 있다.)셋째, 사회 현실의 반영이다. 건안시대는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민생의 피폐함과 사상의 혼돈 상태가 극도로 동란의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어 갔었고 이 시기의 작가들은 모두 생활상에선 물론이거니와 사상 면에서도 큰 변화를 직접 겪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의 작품에 있어서 당시 현실 생활은 시의 주요 제재로 작용하였다. 또한 사상적인 혼돈 상태로 인해 선진 이후로 없어졌던 제자의 학설이 다시 부상하는가 하면 도가나 법가, 묵가, 병가, 음양가 등의 사상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회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건안의 문인들은 한악부민요의 사실주의적 정신적 풍토를 요약한 建安風骨은 중국문학비평사상 대단히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建安風骨이란 문학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풍격이되 建安文學만이 지닌 풍격이기에 建安風骨의 풍격을 알아보기에 있어서는 먼저 風骨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風骨 개념을 먼저 알아보고자 한다. 風骨이란 風과 骨 두 단어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개념이지만, 두 단어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風은 정신적 기질과 비슷한 말로 虛와 상관된다면, 骨은 골격이나 자태를 중시하여 實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결코 분리시켜 개념화할 수 없을 뿐이다. 왜냐하면 風과 같은 초일한 기질이 없다면 몹시 수척하고 준수하다고 해도 골이 있다고 보기 힘들고, 마찬가지로 골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는 영기가 없는 셈이 되어 풍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劉?의《文心雕龍》이 다른 어떤 詩文論書보다도 風骨의 개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정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劉?의《文心雕龍》을 통해서 風骨의 개념을 알아보겠다. 《文心雕龍 ? 風骨》은 風과 骨의 정의, 風骨의 효용성, 風骨 개념의 연원, 내용 방면에서의 風과 형식 방면에서의 骨의 관계, 儒家 經典의 학습을 통한 風骨의 습득이 주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文心雕龍 ? 風骨》에서 風에 관한 서술은 다음과 같다.《詩經》에는 여섯 가지 법칙이 있는데 風이 그 첫머리를 차지한다. 풍이란 사람을 감 화시키는 본원적인 힘이며, 작가의 사상과 감정 및 기질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절실하게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풍에서 시작해야 한다. 풍을 잘 이해하는 작가는 감정을 분명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풍이 요구되는 것은 사람의 형제 안에는 기운(생명력)이 있어야 함과 같다. 작가의 사상과 감정과 기질이 예리하고 명쾌하면 작품의 풍도 뚜렷해지는 것이다. 작품에 나타난 사고가 원활하지 못하고 삭막하여 기운(생명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는 작품에 풍이 없다는 증거다)詩總六義 風冠其음을 지적한 말이다. 즉, 그들의 작품은 수사와 같은 기교를 통한 유미주의의 아름다운 표현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 내용으로도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건안풍골을 처음 언급한 것은 宋代 嚴羽의 《滄浪詩話?詩評》에서이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도 建安文學의 風格上의 특성을 鍾嶸은 ‘建安風力’이라 했고, 당나라의 陳子昻도 漢魏風骨이란 용어로 건안풍골을 거론하고 있으며 李白은 “봉래의 문장에다 건안의 풍골 (蓬萊文章建安骨)”을 지니고 있다고 찬미하면서 분명히 건안풍골을 문학 수업의 교과서로 인정하고 있다.) 건안풍골을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世說新語》의 주석을 한 劉孝標가 인용한 각종 서적들을 살펴보면 風姿特秀하다든가 風神淸令하다든가 風期高亮하다)는 문장을 통해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이 建安風骨의 개념은 南朝에서 唐에 이르기까지 줄곧 사람들이 문학을 비평하는 중요한 표준이 되었으며), 金元代에는 元好問의 시문에서 建安風骨의 특성이 계승 발전되었으며, 明代에는 復古運動의 기치 아래에서 建安風骨의 ‘意氣駿爽‘한 특성이 주목받았고, 建安時期 문인과 작품에 대한 평가도 시도되었다). 建安風骨은 劉?의《文心雕龍》과 鍾嶸의《詩品》에서도 접할 수 있다. 중국문학사에서 가장 비중 있는 文論書로는 劉?의 《文心雕龍》을, 詩品評書로는 鍾嶸의《詩品》을 들 수 있다. 이들 詩文論書는 建安風骨을 고찰하는 데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왜냐하면 《文心雕龍》에서 을 두어서 風骨에 대하여 가장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風骨의 개념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鍾嶸의 《詩品》은 당시까지의 五言詩를 품평함에 있어서‘風骨’대신‘風力’이라는 용어를 써서 ‘建安風力’이 시 품평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의 하나임을 밝혔다. 이른 바, 風骨論은 《毛詩序》와 曹丕의 文氣論을 통하고 劉?에 의해 정립된 것이다. 즉 劉?의 風에 대한 견해는 《毛詩序》와 曹丕의 文氣論에서 연원하여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劉?은 에서 내용으로서의 風과 형식으로서의 骨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화려한悲큰 곰은 나를 바라고 엎드렸고 熊?對我?표범은 길을 막고서 울부짖고 虎豹夾路啼계곡엔 사람이 별로 없고 溪谷少人民눈은 어찌 이리도 날리어 떨어지는지 雪落何??고개를 뽑아 길게 탄식하며 延頸長嘆息멀리 걸어가니 감회가 무량하다 遠行多所懷내 마음 우분에 사무침은 我心何阿郁오로지 동으로 가고픔이리. 思欲一東歸물은 깊은데 다리는 끊어져 水深橋梁絶길 복판에서 망설이도다. 中路正徘徊미혹하여 옛 길을 잃어버리고 迷惑失舊路날이 저무니 묵을 곳도 전혀 없구나 薄暮無宿棲가고 가 이미 해는 기울었는데 行行日已遠사람과 말이 모두 굶주려라. 人馬同時飢배낭을 진채로 땔나무를 주워 擔囊行取薪얼음을 캐어 죽을 끓인다 斧?持作?저 슬픈 동산의 시가 悲彼東山詩아득히 나를 애처롭게 하는구나. 悠悠令我哀고한행(苦寒行)은 호리행(蒿里行)이나 단가행(短歌行)과 함께 曹操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는 작품으로서,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의 괴로움을 주제로 삼아 병사의 입을 통해 종군의 고통과 향수에 젖은 심정을 그리고 있어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위 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다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지어낼 수 없는 씩씩하면서도 굳세고 참참한 맛을 지니고 있다. 풍조가 비장하며 기백이 웅대하고 침울하다. 산은 굽이굽이 험하기만 하고 다리는 끊겨있으며 사람이며 말이며 모두가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 날리는 눈발 속에서 갈 곳조차 없다. 시속 화자의 상황은 너무도 애처럽고 구슬프지만, 주인공에게서 처량함이나 비침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어떤 직접적인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았음에도 그 안에 용기를 잃지 않는 듯한 강한 힘이 느껴진다. 조조의 시는 대체로 짙은 抒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의 작품은 호리행(蒿里行)이나 해로행(?露行)과 같이 대체로 당시 그 때의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작품과 위에서 읽어본 고한행(苦寒行)처럼 전장에 나간 병사들의 고통을 이야기한 것들로 구별된다. 그러나 이 구별을 떠나 그의 시의 특징은 질박한 표현 속에서 거침없는 기백과 정열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는 천하를 호령했던 영웅이었지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어린왕자》를 통해 바라본 순수함과 자연성매 해를 거듭할 때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얻게 되는 강점으로 연륜과 삶의 지혜가 있다면 고정관념에 의한 자기만을 고집을 갖게 되는 약점도 따르게 마련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기만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흔히 말하는 고지식한 사람이 되곤 한다. 흔히 CQ(Corpose Quotient)라 불리 우는 시체지수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나에게 “너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엇이니?”라 묻는다면, 서슴없이 나의 자부할 만한 한 가지 좋은 습관을 꼽겠다. 나는 매일 하루를 마무리 지으며 일과 중 있었던 나의 실수를 체크하고 반성하는 좋은 습관을 지니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고운 말을 사용하였는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해주었는지, 흥분하거나 감정적이진 않았는지, 많이 웃었는지, 화를 내진 않았는지 등과 같은 항목의 내용들이다. 이러한 이미지 체킹과 더불어 그날 하루의 아쉬움을 더해 훗날 더 나아진 나의 모습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을 알아도 고치려 노력하거나 그 노력을 지속하는 이는 많지 않을 거라 보아진다. 나의 이런 끊임없는 자기반성의 노력은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좋은 습관이리라 자부한다. 특히 나의 반성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 중 하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어른’이라 함은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당당한 성인으로서의 '어른’이 아니라 흔히 세상에 찌들어 눈으로 보아지는 겉모습을 중요시하고 숫자로 수치화하여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어른’을 지적한 표현이다. 나는 누구보다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고자 하며,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안경너머의 진심을 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나의 노력은 가끔씩 파도에 휩쓸려 무너져버린 모래성처럼 한 순간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낙담하곤 한다. 특히 이렇게 어린 아이의 동심을 담은 도서를 읽을 때면 더욱 그러하다. 누가 들으면 상아탑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으로서의 수준이 의심 된다며 피식 웃을지 모르겠지만, 《어린왕자》는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도서이자, 좋아하는 책이라서 거의 해마다 한두 번 정도는 꼭 읽는 도서이다. 물론 여러 번 읽다보니 어떨 때는 통독보다도 더 단순히 눈으로 훑고 마는 수준에 머무는 정도로 끝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여러 번 다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새로운 감정과 감동이 일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도서 감상문을 작성하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통한 그 순수함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어린 아이 제제의 성장과 우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유달리 감성이 예민하고 조숙한 제제, 그는 글씨를 배우지 않고도 5살이란 나이에 글을 깨우칠 정도로 영특하며, 그의 이러한 영특함은 세상에 대한 갖은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인한 영리함이다. 또한 그는 유달리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하여 나무나 박쥐와 같은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그의 마음속에 새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제제는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의 마음을 들어주는 친구 뽀르뚜가나 담임선생님 쎄실리아 빠임 앞에서는 누구보다 영특하며 마음 착한 천사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동네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겐 둘도 없는 사고뭉치이자 말썽꾸러기에 불과한 존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제에겐 그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대화가 통하여 심지어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老친구가 생긴다. 항상 말괄량이였던 제제는 그로 하여금 누군가를 위해 착해져야겠다고 마음먹게 했던 뽀르뚜가의 죽음(뜻밖의 사고로 인한)으로 숨도 못 쉴 큰 실연을 겪게 된다. 이 책 마지막에 이 실연을 이겨낸 제제는 자신의 상처를 다스리며 한차례 다시 성장하고, 이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 결국 제제는 "철”이 들어버린다.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제제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며 읽는 이로 하여금 순수한 아이의 생각을 읽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반성케 하며 감동 이상의 것을 불러일으킨다. 제제가 실직하고 무능한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뜻도 모르고 배운 유행가( 나는 벌거벗은 여자를 좋아해 )를 부를 때 어떻게 그러한 노래를 알게 되었는지, 그 가사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고 노래를 부르는지의 여부는 묻지 않은 채, 다짜고짜 아이의 뺨을 때리고, 막무가내로 어린 아들을 계속하여 매질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의 현실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를 몰아붙이며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판단해버리는 어른의 세계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도 그러하다. 한 소년이 커서 비행사가 되어 자신의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다가 도중에 비행기가 고장이나 사하라사막 한가운데에 도착하여 그 곳에서 어린왕자를 발견하게 된다. 어린왕자는 비행사에게 어린 양을 그려주라고 조르고 비행사는 어린왕자에게 양을 그려주지만 그러나 매번 그릴 때마다 어린왕자는 트집을 잡는다. 결국 비행사는 어린왕자가 스스로 상상할 수 있게끔 세 개의 구멍이 난 상자를 그려주고 다행히도 어린왕자는 그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한다. 그 일로 어린왕자는 비행사와 사막 한가운데에서 친구가 되었고 어린왕자는 자신이 살던 별 이야기를 해준다. 어린왕자는 바오밥 나무가 있고 자존심이 강한 장미꽃이 살던 그의 작은 별을 떠나 여행을 하던 중이었고 어린왕자가 찾은 마지막별이 지구였다. 지구에서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났지만 여우와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어린왕자가 떠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와 비행사가 만난 지 몇 일후 어린왕자는 자신의 별로 떠나야만 했다. 비행사가 그려준 양들과 함께 말이다. 나는 《어린왕자》를 처음 읽었을 때, 순수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너무 무심하게 느껴졌고, 나는 커서 무심한 어른이 되지 말겠노라 다짐했었다. 어린왕자가 그의 별 ‘소혹성 B-612호’를 떠나 돌아다녔던 별들은 잘못되었지만 세상에 흔한 어른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잘 꼬집어내고 있다. 첫 번째 별에 살던 왕은 끝없이 남에게 군림하려고만 드는 어른을 가리키는 것이며, 두 번째 별에 사는 칭찬 이외의 말에는 귀담아 듣지 않는 허영장이를 통해 위선 속에 사는 어른들을 말해주고 있다. 세 번째 별에는 술을 마신다는 것이 부끄러워 그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술꾼이 등장하는데, 이 술꾼은 허무주의에 빠져 사는 어른이며 네 번째 별에는 우주의 5억 개의 별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되풀이하여 세고 또 세는 상인이 살고 있다. 그것은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어른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별에는 1분마다 한 번씩 불을 켜고 끄는 점 등인 한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남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하고 있으나, 기계 문명에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처럼 자기 일에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는 어른을 나타낸 것이다. 여섯 번째 별에는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별조차 탐사해보지 못한 지리학자가 사는데, 이 지리학자는 행동은 결여된 채 이론 속에만 빠진 어른이다. 《어린왕자》에서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 한다’는 문구를 읽을 수 있다. 친구를 사귀면 친구란 아이, 그 사람 자체에 관한 관심보다 친구가 몇 평에 사는지, 키는 몇인지, 아버지의 월급은 어떻게 되는지 등과 같은 숫적인 요소와 물질적인 주변 환경을 중요시 한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것들을 수치화 하고 숫자화 하기를 좋아하는 어른,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어린왕자》는 아동도서라 할 수 있겠지만, 정작 어른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도서이기도 하다. 현실에 빠져 사는 어른들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기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이 점이 바로 내가 《어린왕자》를 매년마다 반드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번 읽었지만 매번 읽을 때마다 느낌이 새롭게 다가오며, 해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이 반성은 내가 흔한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