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을 느끼며..........당신에게 누군가가 절대적인 대통령 지명권을 주고 지금이나 그 때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 때 대통령을 누구로 선출하겠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우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겨준 사람이었을 때나 현 정부에 불만을 느낄 때는 아마 마음에 꼭 찍어 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무자비한 학살과 국가 재산을 은닉한 죄로 내가 지명권을 가진다면 전두환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봉암에 대한 평전을 읽고나서는 그보다 더 이승만을 조봉암으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봉암은 한 때 공산주의와 관계된 일을 하긴했지만 감옥살이 후 전향을 하고나서는 바른 판단으로 정치에 임했던 것 같다. 외부에 많은 박해, 특히 이승만의 탄압으로 그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의견과 생각이 정치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면 그 정책이 현시점과 미래에 반석이 되어서 지금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그의 농업 정책방향과 평화통일정책이 50년이 지난 지금시점에서 돌아봐도 훌륭한 정책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는 첫 발을 잘못 내디뎠다. 일본 유학시절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했다. 이를 통해 첫 번째가 틀린 길로 간다면 나중에 아무리 옳은 길을 간다고 해도 힘들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공산주의였지만 일제시대 많은 독립운동의 선봉자였다. 그리고 정열적으로 최선을 다한 애국자이기도 하다. 해방되기 까지 그가 국내에서 한 운동은 3.1운동과 사회주의 청년운동과 대중활동이 있고 조선 공산당과 고려공산 청년회의 조직이 있다. 국외의 운동은 해외 조선공산당에서 활동과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반일활동들이다. 일제하에서는 국민들에게 강의를 통해서 민족정신을 강하게 일깨워주었으며 일제의 탄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민들에게는 애국정신을 일깨웠고 나라에는 독립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 것을 선물로 선사했다. 그리고 공산주의 노선과 민주주의 노선 양갈래 길을 가고 있는 운동가들이 함께 힘을 모아 조국의 해방을 함께 맞이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했다.우리 국민의 오랜 숙원인 이 땅에서의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온 나라는 피폐해져있었고 정치가들은 나라를 걱정하고 나라를 위한 바른 판단은 뒷전이고 사리사욕을 채우기도 바빴다. 자기자리를 지키기 위한 권력남용 또는 국가재산 갈취등이 난무해 있었던 때이다. 권력남용이 없는 바른 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 때였다.이렇게 해서 일제가 패망하고 종적을 감춘 뒤 조봉암은 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사회주의에 대해서 갈등을 느꼈던 것 같다. 점점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새로운 정치노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조봉암은 이런 시점에서 역사적으로 평가해볼 때 바른 판단으로 정치에 임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생각들이 정치에 적용되기 보다는 반대세력에 의해 제재당했다. 그는 남한과 북한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원했지만 이해관계가 얽혀서 단독정부 수립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농림부장관을 지낼 무렵 그의 생각은 농촌경제회생을 위해서는 농민들이 잘 살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농민에게 이로운 정책들을 실현시켰으며 이것이 잘 이어져 내려왔다면 지금의 농촌들은 부자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도 그 때의 정책을 잘 살린다면 고수익고창출의 희망이 있지 않을까?그는 새로 진보당을 개설했다. 한 때에 인천에서 기반을 닦았고 농림부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농민들의 많은 지지가 뒤따랐다. 이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인데 투표에서 부정투표만 아니라면 이승만을 압도할만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이승만 정권은 대통령에 위기를 느껴 조봉암세력을 탄압했다. 제1대, 2대, 3대 이승만은 부정투표로 부산정치파동으로 어떤 술수를 써서라도 조봉암을 꺾고 모두 대통령은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이승만의 특징은 정치적 라이벌이나 이승만 정권을 방해하는 자는 박해로 응징을 하는 것이 그의 관례였다.
◇6장 잠재적 교육과정을 읽고 정리잠재적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의도하거나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받은 결과 학습하게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즉 일반적인 수준에서 정의를 내리면 의도 되지 않은 학교 교육의 결과를 뜻한다.이는 예전과 사뭇 달라진 것들이다. 예전 교육은 의도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가 가장 중요한 목표였고 이를 측정하기 위해 ‘목표 평가’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교육에서는 학교에서 의도하거나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의도된 교육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학습결과를 중 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런 잠재적 교육과정을 주변에서 중심자리로 이동하자는 주장도 제기되 었다.예전의 교육과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가장 중요시하였다. 표면적, 격식화된, 공식적인, 외현화된, 쉽게 눈에 띄는 교육과정으로 묘사된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잠재적, 숨겨진, 비구조 적, 비공식적, 내현적, 비가시적, 비형식적, 쉽게 눈에 띄지 않는으로 표현할 수있다.잠재적 교육과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보수적 관점과 급진적 관점이 이에 해당한다. 보수적 관점은 학교의 사회적 기능을 긍정하고 부수적 사회적 기능으로 본다. 보수적 관점에 동의한 학자들은 잭슨과 드리븐과 김종서가 있다.첫째, 잭슨은 군집과 상찬과 권력에 관해서 언급을 하였다. 군집을 통해서 다른 학생과 어울 려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상찬을 통하여서 여러 가지 형태의 평가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권력을 통하여서 조직의 권위관계를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들은 학교생 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것들은 교육의 목표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얻는 효과이다.둘째, 드리븐은 학교 교육이 수행하는 사회화 기능의 관점에서 잠재적 교육과정을 분석하였 다. 학교는 ‘독립심’과 ‘성취감’이라는 규범을 학습하고 ‘성인 권위의 수용’을 형성한다고 하였 다. 이는 산업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는데 필요한 것을 학교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사회에서 처하게 되는 권위관계에 적절 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셋째, 김종서는 잠재적 교육과정을 보다 더 구체화시키고 명료화하기 위해서 잠재적 교육과정 이 내재하는 학교를 물리적 조건, 제도 및 행정조직, 사회 및 심리적 상황으로 구분하고 잠재 적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경험을 이야기 한다. 또 김종서는 잠 재적 교육과정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정의를 내렸고 의도되지는 않았어도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은연중에 배우게 된다고 하였다. 또 지적인 영역보다 비지적인 영역과 관련이 있는 것이 다.급진적 관점은 학교의 부정적 기능을 강조하였다. 이에 동의한 학자들은 일리치, 보울즈와 긴티스, 애플과 지루가 있다.첫째, 일리치는 학교 교육의 구조 자체가 부정적인 잠재적 교육과정의 원천이라고 했다. 학교 는 부정적인 잠재적 교육과정이 나타나는 원천이라고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학교를 폐지 해야만 한다. 일리치가 정의 내리기를 강제로 교육과정에 종일제로 참석해야하는 연령 집단별 조직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자아실현을 위해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잠재적 교육과정과 연결되 어 있다.둘째, 보울즈와 긴티스는 잠재적 교육과정을 학교 교육의 숨겨진 기능으로 규정했다. 대응이론과 밀접하게 보았다. 숨겨진 기능을 통해서 사회 구조는 효과적으로 재생산 된다. 즉 학교교육은 자본주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필요한 생산 관계를 효과적으로 재생산한다.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계속 재생산된다. 이들은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즉 오래전에 불평 등으로 사라진 현대판 양반과 머슴관계를 재생산한다. 예를 들면 사장과 부하직원, 고용인과 피고용인등이다.셋째, 애플은 잭슨의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견을 시작하 고 있다. 애플은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분석한다. 애플은 공식적 교육에서 잠재 적 교육과정을 분석한다. 잠재적 교육과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관점을 제시한다.음악중에 동요는 받아들이고 대중음악은 다루지 않는 것처럼 지식을 선택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는 권력관계와 합법성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는 관점을 수용한다고 하였다.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사고의 기본규칙을 형성함으로 학생들의 사고행위의 정당성이나 합법성을 규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 과학과 사회에서 지적 및 규범적 갈등이 지니는 가치 와 중요성을 나타내주는 내용을 학습할 기회의 배제를 통해서 위의 것들을 수행하게 된다. 즉 갈등의 긍정적인 측면을 교육에서 배제함으로 학생들에게 갈등이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도록 한다. 애플은 영교육과정과 같이 해석 했다.지루는 지배적인 헤게모니에 비판을 하면서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하고자했다. 잠재적 교육과 정을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으로부터 문화적 중재와 사회적 행위자에로 옮김으로 교 육 및 사회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과 해결방안학교에서 의도한 교육을 하는 중에 잠재적으로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성과들을 평가 내릴 때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첫째, 개개인이 얻는 잠재적 교육과정은 각각 다른데 담임선생님이 이들을 평가하다보면 획일적인 기준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학생을 평가하여 K라는 학생이 교육을 통해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그 기준에는 다르지만 기준보다 높은 잠재적 성과를 얻었지만 최하점수가 된다는 것이다. 해결방안으로 교실에 담임선생님의 역할을 하는 역할자 가 더 많이 투입되어 학생들의 보조역할을 해주어야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된다.
▷상해임시정부의 삼균제도1931년 4월 상해임시정부가 건국원칙으로 삼균제도를 천명했다. 삼균주의는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을 원칙으로 했다.삼균주의의 이념은 처음 조소앙선생이 제창했다. 조소앙 선생의 노고에 의해 이론이 체계화되었고 동시에 백범선생도 당의 창건과 유지에 주도하여 왔음으로 그 이념이 한국독립당의 이념이 되었다.삼균제도의 취지는 국가와 국가,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이 균등한 생활을 하게하는 주의이다. 이 것을 이루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개인과 개인이 균등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고 각 분야의 균등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첫째, 정치의 균등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즉 균권을 실현하고자 하였다.그에 입각해서 보통선거제와 민주공화제를 실시하였다. 국권을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감찰권으로 나누어 국민의 기본적 권리보장과 국민의 의무가 있는 형태를 취했다. 인권과 평등권과 인신자유, 정신자유, 단체자유도 세부적으로 나누었다. 이로써 단군신화에서 나타난 신 앞에서 만민의 평등과 자율적인 의사결정의 자유가 근대적인 의미의 국민의 권리로 제천명되었다.둘째, 경제의 균등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즉 균부를 실현하고자 하였다.경제발전을 인류사회 전체에 적용하는 것으로 복지사회를 실현하면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았다.이 것은 5사로 대표되는 단군신화에서 드러난 360여가지의 세상사에 근간이 되는 것으로 일반 국민에게 보장되어야 근대적 의미의 사회정의가 실현된다고 했다.이에 입각해서 토지국유제와 기업국가경영제를 실행하였다. 불합리하게 소유 축척되었거나 일제침략에 의하여 불법적으로 착취된 재산은 모든 국민에게 그 이익이 똑같이 돌아가도록 하였다. 이 것을 통하여 농민의 지위향상과 국민생활과 경제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국가차원의 지도계획과 분배의 합리적 조정으로 국민의 생활권을 보장하고자했다.모든 대규모 생산기관은 국가가 경영해야한다고 했다.셋째, 교육의 균등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즉 균학을 실현하고자 하였다.이는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교육이념 아래 국비에 의한 의무교육제도로 글을 모르는 이가 없고자 했다. 그리고 각급 교육기관 설치를 주장했다.상해임시정부가 삼균주의에 입각한 건국강령은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이념 아래 일제치하에서 민중을 의식하여 대내적으로 철저한 평등 이념으로 국민의 정치 참여기회와 경제적 조건 및 교육기회의 균등화를 달성하고 대외적으로 민족 자결의 원칙에 입각해서 식민지배를 청산하고 국제간의 침략전쟁을 끝내고 세계평화를 달성하고자 하였다.하지만 우리나라의 독립이 민족국가 형성의 독립은 차단되어서 우리 나라에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미군정은 상해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환국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분단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삼균제도에 따르는 정책과 사회주의관련토론도 1949년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미군정과 친일파세력의 정권으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국영기업도 희생의 제물이 될 정도였다.▷삼균제도 비판삼균제도는 한 편으로 사회주의에 가까운 사회민주주의 이론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지금은 그런 의미에서 삼균제도는 크나큰 모순을 안고 있다.사회주의였던 많은 나라들이 폐쇄적인 사회주의의 벽을 허물고 이념을 바꾸어 자본주의 노선을 채택하는 이 때에 현 시대에 걸맞는 제도와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모순점을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균등정책의 일환으로 토지국유제가 있고 대규모 생산기관 국가경영제도가 있다. 대규모 생산기관은 국가가 경영을 하자는 주장을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경영하는 공공기관과 민간인이 경영하는 민간인기업이 있다. 두 가지가 다 문제점과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산기관이 공기업화 된다면 그 기관에서일하는 인력들을 국가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부담이 커진다. 두 번째 문제는 그렇게 되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점으로 노동자들의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없다. 똑같은 대우와 똑같은 직급으로 대우한다면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또 국가차원의 생산기관이 민간인 관리로 넘어갔을 때 더욱 성공하는 예는 많이 볼 수 있다. 국가에서는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야하지만 민간기업은 정말 나의 것으로 생각하고 아끼면서 그 생산기관을 관리할 것이 분명하다.하지만 삼균제도는 지금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국가나 현시대가 기본으로 삼고 있는 기본권분류에 근간이 되는 것들을 안고 있기도 하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그것이 미군정의 통치속에 빛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소앙선생이나 김구선생이 삼균제도를 당의 이념으로 할 뿐만 아니라 미군정의 통치속에서도 그 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미군정이 들어서기 전에 조치를 취했어야한다고 생각된다.▷황국신민화교육비판(상해임시정부입장에서 비판)개인과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서로 대등하게 하는 것이 삼균제도의 요점이다. 국가와 국가가 균등하게 되는 것은 식민지를 배격하고 전쟁행위를 하지 않음으로 침략이 없고 모두 평화를 누리며 시계일원이 되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제시대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우리 나라 사람들을 교육시킨 것은 대한민국을 배제한 것이다. 즉 대한민국을 자기의 나라보다 낮게 여긴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래서 일제의 교육은 교활, 간교, 비인간적인 교육정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제의 교육정책은 일본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그 때마다 바뀌어갔다. 세 단계정책이 있는데 첫째 단계에는 무단적 식민교육을 실시하였다. 교원까지도 학교에서 제복을 입고 칼을 차게 하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경찰과 군사력으로 교실안에서도 협박이 이루어졌으며 학생들도 의사표현의 자유나 모든 것들이 억압되었다. 둘째 단계에는 유화적 식민지 교육 정책기에는 헌병경찰제를 폐지하고 조선어 신문의 발간을 허용하고 관습을 존중하며 조선인 관리에 대한 차별을 철폐한다고 속임수를 쓰고 유화정책을 폈다. 셋째 단계에는 천황에게 충성을 강조하며 내선일체정책을 폈다. 이 것들은 군국주의 일본의 도구화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일제시대의 교육은 인간평등을 무시했으며 민족문화말살로 식민지화할려고 했다. 이는 삼균제도의 하나인 교육균등에 어긋난다. 그리고 다른 나라를 우리 나라와 대등하게 보지 않는 것은 삼균제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인이 이상적인 사회건설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적야욕의 눈으로 그 대상을 우리 나라로 삼았으며 그 것의 증거는 교육과 위에서 본 일본인이 취한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교육속에서 일본인들은 소수사람들은 식민지배가 잘못되었다고하는 의식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힘은 미미하게 그쳐버렸고 대부분의 일본시민들과 일본의 지배계급들은 자민족우월주의를 가졌을 것이다. 이런 일본인의 시각도 삼균제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냈으며 오늘에 우리를 있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