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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츠부르크 뮤직 페스티벌과 제주축제
    Ⅰ. 서 론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 동쪽 변경이 된 동방의 나라, 즉, 오스트마르크(ostmark) 라고 불렀다. 신성로마 제국으로부터 시작하여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해오는 나라이다. 그들의 문화중에는 음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음악은 그들에게 있어서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 때문인지 모차르트라는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했고,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거쳐가게 한 문화적으로 성숙된 나라였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모차르트의 탄생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축제이다. 잘츠부르크는 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도시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관광지임을 자랑한다. 일본에선 여행하고 싶은 유럽 도시로 잘츠부르크가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차갑고 맑은 공기, 만년설의 드높은 명산과 푸른 숲들, 그리고 동화 속의 나라처럼 산 위에는 성체가 있고 강가엔 첨탑들이 늘어선 소도시, 그 모습은 확실히 어려서부터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유럽 고도시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오스트리아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축제를 바라보고 현재 제주도의 축제인 관악제에 대하여 알아보고 우리의 축제들이 세계화로 갈 수 있는 방향에 대하여 얘기해 보고자 한다.Ⅱ. 오스트리아의 역사ⅰ. 신성로마제국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는 이민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서 퇴위함으로서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다. 그 후, 서로마제국의 대부분이 게르만 족들이 세운 여러 나라들로 채워지게 된다. 그 중,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는 갈리아 지방을 점령하여 프랑크 왕국의 기반을 세운다. 후에 그 자리에 메로빙거 왕조가 자리잡게 된다. 분열과 통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실권은 궁재라 불리는 일종의 재상에게 넘어가게 된다. 특히, 궁재였던 charles Martel(688~744)의 시기에 오면 권력이동이 심화된다. 그는 에스파냐로 쳐들어온 이슬람교도들을 물리치는데 이는 왕국을 구한거였고 그리스도 교를 구한 것이다. 이후 찰스 마르텔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휴는 부르크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고 그 이후 600년간 오스트리아를 다스린다. 특히, 루돌프 4세때에는 빈을 유럽에서 가장 앞서 가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거처를 빈으로 옮기기 까지 했다. 14~15세기에 합스부르크가는 카린티아, 티롤, 포어아를베르크, 슬로베니아, 트리스테 땅을 차지하는데 오스트리아 공국을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대공국으로 승격된다.합스부르크가는 전쟁보다 결혼이라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많은 영토를 획득했다. 필립2세가 스페인과 네덜란드 영토를 차지하고 결혼정책으로 독일어권 영토뿐 아니라 보헤미아와 헝가리를 차지하게 된다. 결혼정책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된다.“힘 센 자들이여, 전쟁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는 결혼할지니. 그들에게는 마르스가, 우리에게는 비너스가 있으리.”오스트리아는 페스트와, 1618~1648년 30년 전쟁 등의 시련을 격기도 하지만 1713년 두 번째 페스트가 완전히 지나가자, 빈에는 새로운 삶의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합스부르크가와 그들을 따르는 귀족들은 이 도시로 돌아왔고, 체코, 폴라드, 헝가리 등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이곳은 다인종 국가로 변모했다. 18세기에 인구는 20만명에 이르렀고, 벽을 쌓아 도시를 지킬 필요가 없게 되자 빈은 점점 교외로 뻗어나갔으며, 경제적으로도 계속 발전을 거듭했다. 예술이 장려되는 분위기 속에서 문학과 음악, 건축 분야에 창조적인 에너지가 넘쳤다.ⅳ. 유럽 최초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1713년 아들이 없던 카를 6세는 공주도 정식으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게 법을 바꾸어 그가 죽으면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관을 쓰도록 만들었다. 1745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은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황제로 임명되었다. 테레지아의 아버지는 그녀가 오스트리아의 지배자가 될 수 있도록 칙령을 내렸지만, 여자의 몸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왕이 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1765년 남편이 사망하자 그녀는 아들 요제프 2세에게 공동 통치자라는 칭호를 주면서 자신도 권력을 나+러시아+이탈리아+미국+일본미국이 참전하고 전황이 불리하게 진행되는 동안 오스트리아 내부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반란이 일어났고, 내우외환에 고립된 오스트리아는 1918년, 단독 강화를 맺고 전선을 이탈한다. 그 결과 합스부르크 왕가가 붕괴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었으며,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의해 많은 민족이 신생 독립국이 되어서 독립, 알프스에 있는 티롤주의 남쪽을 이탈리아가 가져가는 등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고 오늘날의 국토가 된다. 이 당시에 확정된 국경이 현대 유럽국경의 토대가 되고, 오스트리아는 바다가 없는 땅이 된다ⅶ. 세계 2차대전1938년 오스트리아 나치의 지도자인 자이스 잉크바르트가 내각을 조직, 독일군을 불러들여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완전한 병합이 이루어진다.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독일의 한 주가 된 오스트리아. 1945년 전쟁에 패해 패전국이 되었으나, 중립국화를 전제조건으로 하여 군비제한 및 독일과의 경제적, 군사적 결합금지의 제약을 받지만, 배상금은 없게 되었다. 1945년 3월, 수도인 빈에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독일보다 한 발 먼저 점령된 오스트리아는 (1945년 4월 30일 히틀러 자살)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4개국의 분할 점령하에 놓이게 되고 10년간의 신탁통치를 받은 후, 1955년 비로소 독립을 하게 된다. 1955년 신탁통치가 끝남과 동시에 UN에 가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1960년 유럽자유무역지대(EFTA) 가입 1979년 빈에 유엔지부의 설립을 거쳐 현대의 오스트리아가 형성되었다.Ⅲ. 오스트리아의 문화(RepublicofAustriav)위치: 유럽중부수도: Wien(약156만명)면적: 83,857㎢인구: 810만명(2002년)민족: 독일계(97.1%), 슬라브계(2.7%),아시아계(0.2%)공용어: 독일어종교: 카톨릭(85%),개신교(7%),이슬람교(8%)국가형태: 9州 연방공화국정부형태: 내각책임제대외정책: 영세중립 EU회원국, NATO가입논의유엔가입: 1955년 12월 14일국경일 : 10월 2실내작곡가작품 : '마적',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빈 소년 합창단빈 궁정성당 소속 성가대-1498년 황제 막시밀리안 1세에 의해 조직되어-5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님- 1918년 독일 사회민주혁명, 활동 중단- 1924년 다시 조직- 종교음악 연주 외에 민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등폭넓은 레퍼토리, 오페라와 영화 등에도 출연하였다.-Franz Haydn, Franz Schubert, Klemens Krauss-Wolfgang Mozart 합창곡을 작곡해 주기도 했다.- 7~15세의 변성기 이전의 소년들로 구성되며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음악훈련을 받는다.-각 21~25명으로 구성된 4개 팀이 있으며, 이 가운데 1개 팀은 국내에 남아 교회의 예배나 연주회 활동을 하고, 나머지 3개 팀은 해외 순회공연을 한다.오스트리아의음악-축제비엔나 페스티발(5-6월)비엔나 재즈페스티발(7월초)뮤직필름 페스티발(7-8월)잘츠부르크 페스티발(8월)짤즈브룩 모짜르테움(Mozarteum)1841년 설립빈 음대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음악 교육의 양대 산맥.1998년 음악원에서 대학으로 그 명칭이 변경 되었다.카라얀의 모교,각국 음악도들과 한국 유학생들도 다수 공부하고 있다.오스트리아의풍습겨우살이비엔나커피던들간판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스포츠 교류서정원 선수는 오스트리아의 프로축구 선수로 활약하며(잘츠부르크 선수로도 활약한바 있음) 오스트리아의 언론이 선정한 올해의선수로 선정 되면서 스포츠 교류를 통한 오스트리아국가의 대해 다소 생소한 한국국민들의 관심이 많아짐.Ⅳ. 잘츠부르크 페스티벌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역사18,19세기 합스부르크가의 후원 때문에 전 유럽의 작곡가들은 오스트리아에 몰려들었다. 때문에 수많은 음악의 거장이 음악적 재능을 키울수 있게 해주었고 지금도 비엔나 필하모니와 소년합창단, 국립 오페라 등에서 그 전통을 잇고 있다.덕분에 언제나 음악축제가 끊이지 않고 열리는 것이 당연한 나라, 오스트리아, 그 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해야할 청중들에게 현대적 표현방식을 통해 전달한다. 이를 통해 전통과 혁신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한다. 둘째,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작품들을 세계 최고의 수준의 형태로 보여준다. 셋째, 충분한 공간이 현대적 작품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넷째 모든 이벤트들은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젊은이들을 위한 싼 가격의 티켓수를 늘리고, 세로운 공연 장소들을 확보한다.ⅲ.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개최 시기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세계적으로 가장 수준 높고 유명한 음악 축제로서 매년 7월 화순에서 8월 말까지 약 6주간 열리는데 개최 일자와 기간은 해마다 약간씩 변한다.여름 축제 기간이 되면 세계 각국의 음악 애호가들이 잘츠부르크로 모여든다. 축제 기간 동안은 온 도시가 그대로 음악회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모차르트와 음악을 비롯한 주옥같은 작품들이 공연된다. 베를린, 빈, 필 등 세계적인 필하모닉들이 연주하고 당대를 대표하는 명 지휘자들이 음악 팬을 사로잡는다.ⅳ.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특징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세계 최고의 음악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움과 같다.○격조 높은 공연장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연주의 특성상 주로 실내에서 공연된다. 그러므로 음악 감상에 효과적인 좋은 공연장은 필수적 요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청중의 68%가 외국인전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이 이 축제를 기대한다. 좌석의 93%이상이 항상 채워지고 그중 63%가 외국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33개 국가에서 수많은 언론사들이 취재를 위해 몰려들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축제이므로 인기가 많은 공연의 경우 사전에 티켓을 예매해야하는데 축제 시작 여러 달전부터 표가 매질될 정도로 대단한 경쟁을 보인다.○감독위원회의 축제 운영잘츠부르크 축제재단이라는 공식 조직이 축제를 총괄하고 책임진다. 이 페스티벌을 위해 일하는 직원의 수는 모두 수천명에 이른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축제의 기획이 가능하게 다.
    생활/환경| 2009.12.03| 11페이지| 1,500원| 조회(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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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즘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나서.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나서레포트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무작정인터넷을 뒤졌다. 델마와 루이스나 피아노 이런 영화들이 페미니즘이랑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긴 했지만 이 영화들은 내용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색다른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영화 자체도 평점이 높을뿐더러 여성에 대한 심리 묘사등이 잘 표현 되있어서 더욱이나 보기 좋았다. 페미니즘 영화라 무거운 내용일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보고 나니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큰 웃음이나 큰 감동은 없었지만 소소한 웃음과 함께 마음속에서 조용히 감동이 일어났다.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부부가 사막한가운데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서로 화를 내고 있다. 후진을 두어번 하자 트렁크가 열리고 여자는 짐을 가지고 사막한가운데로 홀로 가버린다.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몰고 떠나버린다. 여주인공 야스민은 홀로 도로 한복판을 걷고 있고 오묘한 음악이 나온다. 흡사 이 음악은 광고에서 들었던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남편은 다시 돌아와 아내를 찾지만 아내는 이미 숨어버린 후다. 남편이 들어간 카페 안은 맥주도 팔지 않고 커피도 팔지 않는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커피 메이커는 이미 고장난지오래고 술은 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팔 수 있던 물건이 없었던 것이다. 커피메이커를 사러간 남편이 사오질 않자 화가난 카페주인 여자 브렌다와 남편은 화가나 역시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 커피메이커 대신 길가에 버려진 보온통을 가지고 온 것이다. 화가난 부인은 그만 남편을 내보내 버리고 남편은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떠나버린다. 다신 돌아오지 말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이내 울어버린다. 한창 카페 밖에 앉아 울고 있는데 걸어오고 있는 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전에 부부싸움을 하고 남편의 차에서 내려 온 야스민이었다. 야스민은 땀을 닦고 있고 브렌다는 눈물을 닦고 잠시 동안 서로 쳐다 본 뒤 안으로 들어간다. 여자는 뜻밖에도 택시가 아닌 하룻밤 묶겠다고 하는데 돈을 지불하라고 하는데 그 모습에 순간 주인을 보는 야스민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열어 본 순간 남편의 짐과 자신의 짐이 바뀌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다. 브렌다는 손님이기는 하지만 야스민이라는 여자의 존재자체가 거북스러웠던 것 같다. 자신과 다른 피부색에 몸도 둔하디 둔하게 생겼고, 자신과 다르게 생긴 모습과 말투에 이질감을 느꼈던 것도 같다. 야스민의 방을 청소하러 가는데 방안에서 남자옷을 보고는 수상하게 여겨 보안관에게 신고하게 하고 쫓겨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딱히 이렇다할 수상한 점이 없고 죄를 저지를 만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쫓겨나지도 않게 된다. 그렇게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 안에 있는 모텔에서 숙박을 하게 되고 브렌다는 그녀를 내쫓아보고자 한다. 하루는 브렌다가 시장을 간 사이에 야스민은 그녀의 사무실을 청소하고, 간판도 닦고 이리저리 깨끗이 청소를 한다. 시장을 보고 온 브렌다가 이것을 보고 크게 화를 낸다. 또 브렌다의 딸에게는 호기심을 자극 시켜주고, 큰 오빠의 피아노 연주를 경청해주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배려해주고 있는 그녀를 보고 애들은 점차 마음이 야스민에게로 끌린다. 그렇게 야스민의 방에서 놀고 있었는데 브렌다가 방문을 열고 크게 화를 낸다. 그리고 그녀에게 한마디 내던진다 ‘당신이 원하는게 뭐야? 당신 자식들이나 돌보시지’ 이 말에 야스민은 그녀를 보며 한마디 던진다 ‘나는 애가 없어요’ 문을 닫고 나간 브렌다가 잠시후 문을 열고 진심이 아니었으니 나가지 말라고 한다. 야스민이 잠시 의기소침해 있다가 다시 바그다드 카페로 들어온다. 브렌다와 그의 아들딸이 모두 기뻐한다. 그녀는 또한 남편의 짐 속에 들어있던 마술세트로 마술을 보여주는데 이 마술 때문에 이 곳을 경유해 지나가던 트럭기사들이나 여행객들이 발을 멈추고 그녀들의 마술을 보고 가게 된다. 그들의 마술은 점점 하나의 공연이 되어가고 라스베가스의 공연보다 더 재밌다는 찬사를 받게 된다. 그러나 마술공연도 잠시 보안관이 나타나 야스민의 체류기간이 지났다고 하여 그녀를 추방시킨다. 다시 바그다드카페돌아가게 되고 의미 없는 날들이 지나간다. 브렌다는 카페 밖에 의자에 앉아 먼곳만 볼뿐이다. 이때 멀리서 오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야스민이 다시 돌아 온 것이다. 그녀와 그녀는 감격의 포옹을 한다. 그리고 카페의 온 식구들이 그들을 환영한다. 이윽고 그녀들의 멋진 마술공연은 시작되고 브렌다를 떠났던 남편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브렌다는 남편을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의 손님이자 화가인 루디에게 청혼을 받는다. 그리고 야스민의 마지막 한마디 ‘브렌다하고 상의 해볼게요’ 를 하고 영화는 끝이난다.야스민이 처음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혼자 걸어가고 있을 때 남편이 바그다드카페에서 그녀를 찾는다. 물론 야스민이 도착하기 전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야스민을 찾은 것이 아니고 그의 짐을 찾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어떤 남자가 아무리 화가 나도 먼지만 날리는 사막(?)한가운데에서 사랑하는 부인을 놔두고 혼자 떠나겠는가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리고 나자 남편은 차 뒷 자석에 있던 로젠하임이라는 스티커가 붙여진 보온통을 버리고 간다. 이 버려진 보온통을 브렌다의 남편이 주워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 알 듯 말 듯한 관계로 얽히게 된다. 남편들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아예 사라지게 되고 이야기는 브렌다와 야스민에게 집중이 된다. 바그다드카페로 들어가 모텔에 숙박을 원하던 야스민에게 브렌다는 적대 의식을 느끼게 된다. 자신과는 다른 모습에 여행자수표를 들이미는 그녀의 모습이 반갑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모텔은 관리를 거의 안하는 수준이라서 귀찮아 했을런지도 모른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면 비단 그녀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본 여자가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면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말에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처음부터 마음을 쉽게 열어주지는 않는다. 브렌다도 어쩌면 그런 성격일런지 모른다.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에 커피가 없다는 사실을 듣것이 아니고 커피메이커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끓여서 내어오는 커피는 물이나 마찬가지고 서비스도 위생도 형편없어 보였다. 또한 카페에서 그의 아들이 피아노 연주를 가끔 하는데 브렌다는 손님이 있을 때는 피아노를 치지 말라고 아들에게 강압적으로 나간다. 또한 딸에게는 반대로 해달라는 것은 다해주는 편이나 남자친구와 오토바이를 타고 영화를 보러가겠다고 하자 선뜻 돈을 내어주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편파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속된 말로 까칠한 여자인 것이다. 야스민이 시내가 어디인지 물어보자 브렌다는 여기가 시내라고 한다. 야스민은 어쩔수 없이 여기서 계속 묵게 되는데 그녀가 나간사이에 그녀의 사무실을 청소하고 간판도 닦고 있었다. 여기서 간판을 닦는 모습이 너무나 익살스러웠다. 그리고 청소를 했다고 브렌다에게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그녀가 브렌다의 아들,딸들에게 관심을 보인 면모는 정말 다정하다라고 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바그다드 카페엔 헐리우드에서 영화의 배경을 그렸던 루디 콕스, 트럭 운전수들에게 문신을 새겨주는 젊은 여자 데비, 남편 살, 10대인 딸, 피아노를 치는 아들, 그리고 그의 아기, 카페에서 주방을 맞고 있는 인디언 청년이 모여 산다. 엄밀히 말해 데니와 루디 콕스는 이 모텔의 손님이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기에 익숙한 존재들이다. 아니 정말 가족과 같은 존재다. 가끔 트럭 운전수들이 피곤을 몰고 와 커피나 음료를 마시며 쉬고 갈 뿐, 그곳은 늘 불어오는 사막의 바람처럼 변화 없는 일상의 짜증이 묻어 있다. 그러나 브렌다는 일상의 짜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익숙한 것은 편안한 법이다. 사실 브렌다는 새로운 것에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런 그녀에게 야스민은 익숙한 일상을 깨뜨리는 이방인이다. 바그다드 카페 식구들은 조금씩 야스민에게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메말랐던 바그다드 카페도 혈색을 찾아간다. 몇몇의 트럭 운전수나 들어왔던 카페에는 야스민의 마술을 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이제 그녀들의 공연은 라스베가스 공연보다 더 재밌는 볼거리가 된것이다.야스민이 바그다드에 온 후 사람들은 변했다. 브렌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해해주고 음악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야스민 때문에 아들은 딱딱한 음악 연주가 아닌 비로소 부드러운 연주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 장면도 참 볼만 했다. 그리고 루디 콕스는 그녀를 통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영감을 얻었다. 그녀의 초상화부터 시작해서 누드화 까지 모든 그림을 그려봄으로써 그의 예술적 영감을 충만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오직 문신을 새겨주던 데비만이 새롭게 변화한 행복의 공간을 떠나버린다.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떠나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너무 다정해서”였다. 데비는 가끔씩 오는 손님들에게 문신을 새겨주고 햇빛 좋은 날에 일광욕을 즐기는 삶을 좋아했던 것이다.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던 주인의 퉁명스러움이 데비에게는 편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행복의 조건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은 아닌가 보다. 야스민은 떠나고 일상의 짜증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공허함이 그들 곁에 자리한다.그리고 배낭 여행객의 부메랑 던지는 장면이 후반부에 많이 나왔다. 부메랑을 보면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는 두가지의미로 함축되겠는데 하나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모습이다. 다른 곳을 가고 싶어 시도를 해보려하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야스민의 삶의 방향이기도하다. 이 곳 바그다드 카페에서 여러 과정을 거치고 다시 자신이 살던 독일로 떠나가지만 결국엔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야스민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설정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남편과 고향을 버리고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선택한 그녀의 삶, 그리고 그녀의 용기에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남편이 한번 붙잡았을 법도 하지만 그녀는 부인이 아니라 야스민 자체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
    예체능| 2009.12.03| 5페이지| 1,500원| 조회(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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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질 리우 카니발과 제주 축제의 비교 평가B괜찮아요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과제주의 탐라 문화제 비교과목명 : 세계문화 컨텐츠교수명 : 문혜경 교수님학 과 : 사학과학 번 : 0200303034이 름 : 김성희제출일 : 2008년 12월 1일 월요일Ⅰ. 들어가며축제를 비교함에 있어서 제주도와 브라질을 비교하게 된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문득 축구를 잘하는 호나우두와 호나우지뉴가 있는 축구의 나라,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정열적인 삼바 춤의 나라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제주도를 대표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저 환상의 섬이라 던지 국내 관광지 중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는 것 이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계자연유산이 있다는 사실 뿐이다. 브라질 하면 삼바에 어울리는 리우카니발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환상의 섬, 평화의 섬 이미지에 맞는 축제가 어떤 것이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깊게 하게 된다. 나도 리우카니발을 정했을 때, 과연 제주의 축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올해로 41회를 맞는 탐라문화제가 생각났다. 바로 작년만 해도 한라문화제였지만, 포커스를 제주도로 맞추었기 때문에 탐라 문화제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언뜻 보면 전혀 다른 행사 같지만 공통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리우카니발과 탐라 문화제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다른 점이 어떤 것이 있는지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Ⅱ. 브라질과 대한민국브라질은 남미대륙 중앙에 위치한 나라로 남(南아메리카에서 가장 넓고, 세계에서도 러시아·캐나다·중국·미국에 이어 제5위이다. 국경의 총 길이는 23.086 km이고 이 가운데 남미국가들 중 유일하게 칠레와 에콰도르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과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국가들과의 국경길이만도 15,719 km에 이른다. 그리고 대서양 쪽으로 뻗어있는 해안선은 총 7.367 km이며 국토의 총 면적은 8,547,403.5㎢로써 남미 최대 국가이면서 세계적으로는 러시아, 캐나다,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5번째로 큰 나라이다. 역삼각형의 모습을 띄고 있는 브라질은 남북길이(4,394.7 km), 동서길이(4,319.4 km)가 거의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브라질과 우리나라는 면적은 약 37배 정도 차이가 나고 인구 역시 3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런데 표에서 보면 1인당 GDP의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2.5배 정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 보다 면적은 높지만 잘사는 나라에 속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Ⅲ. 리우데자네이루와 제주도위의 표에서 보면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의 넓은 땅을 증명 해주듯이 인구나 면적 면에서 제주도와 차이가 많이 난다. 세계3대 미항이라고 불려 질 만큼 그 경관은 뛰어나며, 최근에 유전이 발견되어 러시아 보다 각광받는 산유국이 될 것이라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세계 3대 미항답게 그 나라의 위상은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그야말로 환상의 도시이다. 제주도 역시 세계 자연유산인 검은 오름 용암 동굴계, 한라산, 성산일출봉이란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는 동북아의 중심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컨벤션 센터 등 관광 뿐 아니라 각종 회의와 이벤트의 메카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도 큰 매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리우데자네이루에는 리우데자네이루를 대표하는 리우카니발이 있다. 그런데 제주도를 대표하는 축제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나는 탐라문화제와 비교를 할 것이기 때문에 탐라 문화제라고 써놓았지만 아직도 의문이 드는 건 마찬가지이다.
    생활/환경| 2009.12.03| 5페이지| 1,500원| 조회(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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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우의 생애에 그에 대한 평가
    항우의 생애와 그에 대한 평가Ⅰ. 머리말항우 본기를 논함에 있어 사마천이란 사람을 알아야한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역사가 집안이며 한 무제때 태사령이 되었다. 당시 이릉(李陵)이라는 장수가 음모에 휘말려 적의 포로가 되자 그의 처분을 두고 모든 사람이 능지처참을 원했는데 홀로 그가 용감하고 훌륭한 장수라고 옹호하면서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사형을 면하기 위해서 많은 양의 돈과 궁형 중에 선택을 해야 했는데 당시 명망은 있었으나 그에게는 재물이 넉넉지 않아서 궁형을 택하게 된다. 그 후로 그는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사기를 완성하여 후세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 치욕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사기를 완성시키려고 하였다. 사마천은 자신의 명성뿐 아니라 타인의 명성에 큰 관심을 보였고, 특히 치욕을 감수하고 후세에 명성을 날린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도 모두 이릉의 사건 이후 사마천의 인생관을 반영한 것이다.사기를 쓰기 위해 그는 천하를 5번이나 유람했다고 한다. 물론 처음 유람한 것은 20대 초반부터라고 한다. 사기 본기(本記)는 왕들의 이야기를 서술해 놓은 것인데 그 중 제왕이 아닌 항우의 얘기를 수록 했나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수업을 들을 때에는 초한쟁패전시기에는 이렇다 할 왕이 없었고, 또한 항우가 서초패왕이라고 칭하였기 때문에 짧은 시기이지만 왕이라고 할 만한 업적은 쌓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사마천역시 항우를 매우 인간적인 면으로 다루고 있는데 항우는 유방과 달리 정이 많았다고 한다. 전쟁에는 항상 우미인이라는 애첩을 데리고 다녔으며, 초나라와 한나라가 대립을 오래 하면서 피폐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 유방과 직접 맞서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유방은 수레에 같이 탄 아들딸을 버리고 홀로 도망 갈 정도로 정이 없었으며, 아버지가 가마솥에 삶을 위기를 맞이할 뻔했는데도 냉정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정이 많았던 반면 남을 믿지 못하고 처세에 능하지 못했다고 모두들 평가하고 있다. 유일한 모사인 범증을 믿지 못하고 그를 떠나가을 보고 진시황을 대신할 뜻을 품게 되는데 이는 훗날 항우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될 거라는 일종의 암시 였던 것 같다. 진승과 오광이 난을 일으키고 이에 먼저 일어서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先則制人), 뒤처지면(혹은 나중에 일어나면) 남에게 제압당한다는(後則人制) 논리를 앞세워 회계수 은통을 처음으로 살해하게 되고 옛 초나라의 후손을 찾아 회왕으로 맞이하여 초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였다. 이렇게 반진세력이 커지게 되고 진승이 죽게 되자 야심을 크게 품게 되는데 그러나 반감을 사게 된 진나라 장수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고 항량은 전사하였다. 그러나 시국은 어지러워져있고 하늘이 진을 망하게 한다(且天之亡秦)고 하여 망하게 된다. 이렇게 항우가 진나라를 망하게 하고 열심히 싸우는 동안 유방은 운이 좋은 건지 머리가 좋은 건지 몰라도 먼저 수도인 함양에 들어오게 되고 함곡관을 차지하게 된다. 또한 간신 조무상이 항우에게 유방이 관중이 왕이 되고자 한다고 이간질 하게 되고 이에 분노한 항우는 대군을 이끌고 유방을 치려고 했으나 이 소식을 장량의 은인이자 친구인 항백에게 먼저 듣게 되고 100여명의 기병을 끌고 와 사죄하게 이른다. 그러나 유방의 책략에 속아 넘어간 항우는 유방을 놓아주게 되고 홍문연에서 유방을 죽이려했던 항우의 유일한 모사인 범증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항우는 다시 서쪽으로 진격하여 함양을 공략하여 진나라의 왕 자영을 죽이고 진나라 궁궐을 불태운 다음 무수한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약탈하여 동쪽으로 돌아갔다.항우는 회왕을 의제(義帝: 명목상의 황제라는 뜻)로 삼고 침현에 도읍을 정하도록 한 다음, 다시 제후들을 분봉하고 자신은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에 올랐다. 그리고는 도읍을 팽성(彭城)에 정하고 18제후들에게 분봉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유방을 한왕(漢王)에 봉했다. 항우는 즉시 군대를 돌려 팽성을 지원하여 유방의 군대를 대파하였으며, 유방은 형양(滎陽)으로 퇴각하였다. 유방의 편이었던 제후들은 다시 한나라를 배반하였다. 그러나 팽성 전투에서 항우가많았으며, 잔인하고 포악하였다고 한다. 패망원인을 자세히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첫 번째로, 항우는 전쟁에 있어 지략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가 진승오광이 패망하고 반진을 일으켰을 때에도, 또한 서초패왕이 되었을 때도 그의 곁에는 숙부인 항량과 모사인 범증이 있었다. 이들의 판단과 간언이 있었기에 항우는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 가 있었다. 또한 송의를 죽여 버림으로써 장차 쓸모가 있는 사람을 져버리고, 홍문연의 연회에서도 그러했듯이 범증의 지략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유방을 보내주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또한 그가 거록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후에 서초패왕이 되어서 18제후들에게 분봉을 한다. 그러나 분봉을 하는 과정에서 錯封하여 봉하지 말아야 하는데 봉해주는가 하면 유방을 나중에 한왕으로 봉해준 것은 중요한 실수였다. 또한 失封하여 봉해주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또한 봉해준 것 또한 큰 실수였다. 사마흔이나 동예 같은 사람은 진나라에 항복한 장수이고 공도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을 옛날 진나라 땅에 봉해줌으로써 봉지에서 민심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진나라 사람들도 항우를 싫어하게 되고, 봉지를 받은 제후들까지 불만이 쌓이게 된다. 만약 분봉을 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간언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편 진평이 범증과 항우의 사이를 이간질하고자 했던 계략에 속아 넘어가는 실수를 했다. 또한 한나라의 장수 기신을 불태워 죽인 것 또한 한군의 반감을 사게 하는 중대한 실수였다. 만약 죽이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사기가 오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또한 관중의 왕이 되기를 사람들은 바랬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다시 동쪽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는 관중 땅을 유방에게 내놓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또한 의제 초회왕을 죽인 것 또한 정치적 고립을 생각하지 못한 처사라고 본다. 이런 그의 사리 분별없는 행동에 답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물론 그가 반진을 하게 된 배경이 초나라를 괴롭히는 진나라에 대한 반감이면서도 진시황제의 행렬을 보고라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가 대대로 장수의 집안이었다는 것과 당시 시대적 배경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이고 살인이라는 것이 정당화 할 만한 명분이 있으면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풍토상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항우뿐 만 아니라 유방 또한 나라를 세우면서 개국공신들을 다 해치웠다는 면에서 볼 때 당시 풍토는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유방의 경우에는 자신이 나라를 세우고, 불리해질 것을 감안해서 미리 숙청을 한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이라 하겠지만 정치적으로는 꼭 필요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항우는 항복한 진나라 병사 20만을 묻어 죽이고 또한 유방의 신하였던 기신을 불태워 죽이는 등 잔인하고 감정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물론 개인적인 행동이라는 면에서 비슷하지만 유방은 후일을 생각하고 판단하여 잔인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는 점과 항우는 노예로 만들어도 됐을 법한 병사들을 생매장 시켜버리고 또한 포로로 사로잡아도 될 만한 장수를 자신의 화 때문에 죽였으니 후일을 생각하지 않은 이러한 처사라고 본다. 또한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 왕 자영을 죽이고 진나라의 궁실을 불태우고 함양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재물과 아녀자를 약탈하여 동쪽으로 돌아갔는데 이러한 행위 또한 잔인하다 못해 인간답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전에 어떤 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을 봤는데, 전쟁 중에 병사들이 아녀자를 겁탈하는 하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야만스러운 행동인 것 같았다. 물론 항우만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포악한 행위는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이고, 백성들에게 불만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가 해하의 전투에서 유방에게 쫓겨서 도망갈 때도 농부가 일부러 길을 잘못 가르쳐 준 것처럼 그의 잔인하고 포악한 행동은 바로 민심을 잃고, 또한 제후들마저 등 돌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항우을 거라는 가정이다. 항우가 회계수 은통을 칠 때에도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가능했었는데 그가 힘이 세서 범증이 표시하는 것을 못 봤을 리는 없을 것같다. 그는 범증의 생각을 무시한 것도 있겠지만 유방을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죽이지 않았던 것같았다. 또한 그가 함양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오로지 서쪽으로 진격하지 않고 오로지 금의환향을 위해 고향인 동쪽 초나라로 가려고 했던 것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고집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오강을 건널 때에도 사공의 말을 듣지 않고 자살을 결심한 것도 하늘의 뜻이란 명분도 있었지만 그가 건너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오강을 건너서 자그마한 세력이라도 있었더라면(물론 그러지 못할 거라는 것은 본인이 더 잘 알았기 때문에 자살을 택했으리라고도 본다. 한편, 유방의 경우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대업을 세워나갈 계책을 세웠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항우는 유방만큼 지략이 뛰어나지 못했고 이미 민심을 잃었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소신대로 자살을 택했으리라고 본다.이렇게 항우라는 인물은 역사 속에서 패자로 인식 된다. 그러나 항우가 유방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항우는 자기의 고향사람인 초나라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이 있었다. 초나라 사람들을 위해라는 명복 하에 송의를 죽이긴 했으나 어찌하였듯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닌가! 그가 반진을 한것도 나라를 세로 세우려했던 것도 모두 초나라사람들을 위한 마음이고 또한 초나라의 영웅이 되고자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초나라만을 봤지 정작 대업을 이어 갈만한 큰그릇이 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항우를 얘기할 때 유방을 절대 빼놓을 수가 없는데 내가 봤을 때 유방은 억세게 운이 좋은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방탕하기가 그지없었는데 관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부인을 얻게 되고 어찌 보면 평범했을지 모르지만 공사로 향하던 죄인들을 인솔하는 과정에서 죄인들이 도망가자 자신도 도망길요.”
    인문/어학| 2009.12.03| 9페이지| 1,000원| 조회(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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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덕의 생애와, 문화컨텐츠
    김만덕과 문화컨텐츠...Ⅰ. 서론김만덕은 조선시대 후기에 태어난 의녀(義女다)이다. 척박한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의 백성들을 구휼한 만덕은 오늘날에도 추앙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건입동 모충사 부지에 그녀를 기리는 비가 세워져있다. 변방의 섬에서 태어나 출륙금지령이 내려졌는데도 김만덕은 정조를 만나고 금강산을 유랑하는 영광을 누린 제주도 최초의 여성이기도하다.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은 유교를 앞세운 남성위주의 사회였는데도 불구하고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거상이기도 한 여성이다. 만덕의 기부정신은 오늘날 우리들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김만덕을 조사하면서 제주의 여성상을 생각하게 한다. 제주는 삼다의섬(女多)으로서 여자가 많은 섬이기도 하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바다를 나가 물질을 하는 해녀또한 있었다. 이렇게 섬지역의 특수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주는 유난히 여자들의 경제활동등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런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부각 시키기 위한 컨텐츠들이 많이 있지만 이 컨텐츠들을 포괄하여 형상화 시킬만한 매개가 없는 듯하다. 김만덕의 이야기와 함께 김만덕 뿐만 아니라 제주여성을 함께 포괄할 수 있는 컨텐츠들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김만덕의 생애김만덕은 조선 영조 15년(1739년)에 태어나 순조12년(1812년)까지 살다간 제주여성이다. 만덕은 어린 시절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여의고, 평소 어여삐 여기던 퇴기 월중선에게 의탁하여 살게 된다. 잠시 관기로 생활하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녀가 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만두게 된다. 그 생활을 청산하고 장사를 시작한다. 만덕은 장사에 소질이 있어, 큰 돈을 모으게 된다.정조임금 때 제주에는 심한 기근이 들어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관에서는 조정에 도움을 청하나, 곡식을 수송하던 배가 오다가 침몰하는 등 제때 도착하지 못해 굶주리는 자가 많았다.이를 보다 못한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육지의 양곡을 사들였다. 10분의 1은 친족과 친지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만덕은 궁에 들기 전 의녀반수를 제수 받고 임금님을 알현한다. 정조는 친히 만덕의 손을 잡아주며 칭찬하고, 후한 상을 내렸다. 만덕은 서울에 머물며 궁을 구경하고, 금강산 유람을 마친 후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게 된다.이때, 병조 판서 이가환은 만덕에게 시를 적어 주고, 좌의정 채제공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글을 지어 주었으며 옥지환과 김만덕의 사적을 엮은 책「만덕전」을 선사했다. 사후에는 대정현에 귀양왔던 김정희가 김만덕의 진휼 행장에 감동하여 손수 은광연세(恩光衍世:은혜로운 빛이 여러 세대로 이어진다)라는 큰 글씨를 써 주었다.김만덕의 묘는 현재「구휼의녀 김만덕 기념탑」과 함께 사라봉 모충사에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는 매년 제주여성 중 모범이 되는 여성 1명을 선정, 탐라문화(구 한라문화제) 만덕제 때 '만덕봉사상'을 시상하고 있다.◎ 병조판서 이가환(李家煥)의 시만덕은 제주의 기특한 여인인데육십의 얼굴이지만 사십쯤으로 보이네천금으로 쌀을 사들여 백성을 구제하였으니한번 바다 건너 궁궐을 찾아 뵈었구려다만 한번 금강산을 유람하는 게 소원이었는데산은 동북녘에 연기와 안개로 싸여있네임금님이 끄덕이며 날쌘 역마를 내리셨으니천리의 광휘가 강관을 떠들썩하게 하네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는 마음과 눈은 장한데표연히 손을 흔들면서 바다 구비 돌아가네탐라는 먼 예로부터 고량부가 살던 곳인데여자로서 이제 비로소 임금 계신 서울 구경하였네돌아오니 찬양하는 소리가 따옥새 떠나갈 듯하고높은 기풍은 오래 머물러 세상을 맑게 하겠지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름을 세움이 이와 같으니여회청대(女懷淸臺)로 이름은 어찌 족히 몇이나 있으리◎ 박제가귤 밭 깊은 숲속에 태어난 여자의 몸. 의기는 드높아 주린 백성 없었네.벼슬은 줄 수 없어 소원을 물으니 만이천봉 금강산 보고 싶다네.이렇게 만덕을 표현하여 남겼습니다.◎ 채제공의 만덕전만덕의 성은 김이요, 탐라의 좋은 집안의 딸이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어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기생집에 의탁하여 살고 있었는데 점차 성장하자 관청에서는 거절하였다. 그 재능이 식산 축재하는 데 뛰어났으므로 시기에 따라 물건이 귀하고 천함을 잘 알아 내치기도 하고 사들이기도 하니 수십년에 이르러 큰 재산가로서 이름이 높았다.정조 19년 을묘에 제주에는 큰 기근이 일어나서 백성들이 많이 죽어가므로 왕명으로 구호곡을 배에 실어가서 먹이도록 하였으나 8백리나 되는 험난한 바닷길이라 풍선으로 북같이 왕래하니 오히려 시기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때 만덕이 천금을 연출(捐出)하여 육지 여러 고을에서 쌀을 사오게 하니 뱃사공들이 때를 맞추어 도착하였으므로 만덕은 그 중 십분의 일을 가지고 친족들에게 구호곡으로 주고 그 나머지는 모두 관가로 보내었다. 굶어 부은 사람들이 이를 듣고 관청마당에 구름과 같이 모여들었으므로 관에서는 그들의 완급을 지어 차등을 두고 나누어 주었다. 남녀 노소는 거리로 나와서 만덕의 은혜를 칭송하였다.진휼(賑恤)이 끝나자 제주목사가 이 사실을 조정에 올리니 임금께서 이를 기특히 여기시고 회유하여 말하기를 "만덕이 만약 소원이 있다면 어려운 일이나 쉬운 일을 묻지 말고 특별히 이를 시행하라"하였다. 목사가 만덕을 불러서 임금의 유지(諭旨)를 말하고 "너는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하니 만덕이 대답하기를 "소원하는 바는 없으나 한 번 서울에 올라가서 임금님 계시는 궁궐을 우러러 보고, 이어서 금강산에 들어가 1만 2천봉을 구경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탐라의 여자는 바다를 건너 육지로 가지 못하도록 금하여 있는 게 나라의 법이었다.목사가 그의 소원을 임금께 아뢰니 임금께서 그의 소원대로 하라 하고 역마를 관에서 주고 이어가며 음식을 대접하라고 하였다. 만덕은 배를 타서 만경 운해를 건너 병진년(정조 20년) 가을에 서울에 들어왔다. 임금께서는 선혜청에 명하여 다달이 식량을 주도록 하고 며칠 있다가 내의원 의녀로 삼아 의녀반수로 있게 하였다.만덕은 예에 의하여 내합문으로 들어가 문안을 드리니 전궁(殿宮) 시녀를 통하여 전교하여 말하기를 "너는 한낱 여자로서 의기를 내어 굶주린 천상에 공양하는 것을 본 것이다. 이어 아문령을 넘고 유점을 거쳐 고성으로 내려가서 삼일포에서 뱃놀이를 하고 통천의 총석정에 올라서 천하의 뛰어난 경관을 다 구경한 후에 서울로 돌아왔다. 며칠을 묵고 장차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내의원에 들러서 돌아갈 뜻을 고하니 전궁에서는 모두 전과 같이 상을 내렸다. 이때 만덕의 이름이 온 장안이 칭찬하여 공경대부와 선비들이 만덕의 얼굴을 한번 보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만덕이 출발에 임하여 채상국(蔡相國)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목이 메여 말하기를 "이승에서는 다시 상공의 얼굴 모습을 볼 수가 없겠습니다."하고는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상국이 말하기를 "진시황과 한무제는 모두 해외에 삼신산이 있다고 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한라산은 곧 이른바 영주라하고, 금강산은 곧 이른바 봉래라 하였다. 너는 탐라에서 자랐으니 한라산에 올라서 백록담의 물을 마셨을 것이고, 이제 또 금강산을 편답하였으니 삼신산 중에 그 두 개는 모두 구경한 바이니 천하의 역조 남자들이 있어도 이와 같이 못하는 것인데 이제 작별함에 있어서 도리어 어린 여아처럼 척척거리니 태도가 무엇이냐"고 하면서 그 사실을 적어 만덕전이라 하여 웃으면서 이를 주었다.성상(정조) 21년 정사 하지일 번암 채상국 78세에 충간의담헌에서 쓰다.참고자료김찬흡(2002),『제주사인명사전』, 제주문화사양중해(1988),「김만덕의 자선」,『제주여인상』, 제주문화원제주도(1989),『구원의 여성 김만덕』,김봉옥(2000),『증보 제주통사』,도서출판 세림윤치부(2001),「인물전에 나타난 제주 여성의 삶」,『깨어나는 제주여성의 역사』,제주도여성특별위원회제주도. 제주도여성특별위원회(2002),『제주여성, 일상적 삶과 그 자취』, 대영인쇄사Ⅲ. 제주 의녀 김만덕과 문화컨텐츠김만덕과 관련된 컨텐츠를 찾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발표를 준비하는데에도 그림자료등 다양한 자료가 많이 있었다. 이에 활용해 볼 수 있는 컨텐츠들이 어떤 것이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여인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에 김만덕에 대한 컨텐츠들을 좀 더 구체화 시켜 보고자 한다.ⅰ. 김만덕 투어김만덕이 당시 출륙금지령이 내려졌는데도 유일하게 육지땅을 밟은 사람이고, 정조를 만나서 소원인 금강산을 갔다왔다. 이 대목에서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그것은 바로 김만덕의 고향인 제주도와 육지, 금강산을 잇는 관광코스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금강산과 제주도는 관광지로서는 라이벌 이기도 하다. 그런데 금강산만 관광하는 것이아니라 배를 타고 금강산과 육지, 그리고 제주도를 잇는 투어를 만들면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또한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ⅱ. 관광상품 자판기김만덕이 살았던 곳뿐만 아니라 추사적거지나 여러 관광지를 찾아갈 때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하이킹이나 버스로 이동하기엔 찾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인데 공항 입구에 관광지 안내도와 내가 원하는 관광지를 찾아 갈 수 있는 관광지 셀프 관광 지도를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굳이 네비게이션같은 시스템 없이도 저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배낭여행이나 하이킹이 목적인 관광객들을 겨냥해서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ⅲ. 김만덕 관련 컨텐츠김만덕이 제주도민을 굶어갈 때 자신의 재산을 10분에 9를 털어 쌀을 샀다고 한다. 여기에서 제주쌀을 상품화 시켜서 김만덕을 기려 만든 구휼미로 이름을 붙이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의 쌀은 물을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맛은 그대로라서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김만덕이 10만원권지폐의 주인공이 될 뻔한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쉽게도 신사임당에게 인지도를 빼앗겨 10만원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지만 공덕으로 봤을 때는 김만덕이 훨씬 우위인것에는 확실하다. 아쉽게 10만원권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지만 돈의 가치로 매길수 있는 상품권등에도 김만덕의 이미지를 실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ⅳ김만덕다.
    인문/어학| 2009.12.03| 7페이지| 1,000원| 조회(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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