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조사자료전함 포템킨(The Battleship Potemkin)1) 기본정보감독 :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주연 : 알렉스드로 안또노프장르 : 드라마상영시간 : 75분제작년도 : 1925국가 : 소련2) 줄거리1905년 6월 오제싸 항구에 정박한 포템킨호에서는 혁명의 기운이 넘치고 있다. 썩은 고기를 수병들에게 먹으라고 하자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갑판위에 집합도중 수병들에게 총살형을 내리자 바꿀린추크는 반란을 부르짖는다. 수병들은 권력을 가진 사관들을 제압하고 반란을 승리로 이끌어내지만 바꿀린추크는 사살되어 버린다. 바꿀린추크의 시신은 오쩨사 방파제 천막에 안치되고, 오제싸 주민들의 그를 애도하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주민들은 포템킨호의 수병들을 돕기 위해 전함으로 향하지만 그것도 일순간. 오제싸 계단에는 병사들이 나타나 주민들을 진압하기 시작한다. 병사들의 총구는 불을 뿜고 주민들은 혼비백산하며 시체로 나뒹군다. 이때 포템킨에서 군본부로 대포를 발사하고 사태는 진정된다. 그러나 포템킨호를 향해 다른 전함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전함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다른 전함은 포템킨을 향해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1905년. 혁명전야의 제정러시아. 전함 포템킨에서 장교들의 학대와 열악한 근무조건에 불만을 품은 수병들이 선상반란을 일으킨다. 1905년. 혁명전야의 제정러시아. 흑해 선단의 일원인 전함 포템킨에서 장교들의 학대와 열악한 근무조건에 불만을 품은 수병들이 선상반란을 일으킨다. 전함을 완전히 장악한 이들은 승리감에 젖어 흑해 연안의 오데사 항구로 향하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시민들도 수병들을 환영하러 부두가로 몰려나온다. 시민들이 오데사 부두로 통하는 계단에 운집하여 멀리 나타나는 전함 포템킨을 보고 환호할 때, 그리들의 등 뒤로 짜르의 명령을 받은 정예 코자크 군대가 출동한다. 그리고 불순분자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발포와 학살이 이들에 의하여 저질러진다. 수많은 희생자가 나지만, 분노한 시민들은 수병들과 합세하여 봉기, 짜르의 군대와 싸우며 23일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948년 2월 11일 50살의 생애를 마감했다. 부유한 유대계 토목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에이젠슈타인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 불어와 독일어를 할줄 알았으며 학교에서는 영어도 습득했다. 10살 때 도미에의 화집을 구입해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림에 대한 꿈을 키우기도 했다. 1917년 알렉산드리키 극장에서 상영한 를 보고서 연극에 뛰어든 에이젠슈타인은 1919년에는 적군에 지원해 전쟁을 참가했다. 전쟁중에도 코미디 델라르테와 프로이트, 파블로프의 심리학을 연구하고 무대관계 스케치를 제작하기도 했다. 에이젠슈타인가 연극계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을 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그는 프세볼로트 메이어홀트에게서 혁명 후 새롭게 제기된 연극의 길에 대해 가르침을 받으면서 전위예술가들과의 교류도 가졌다. 1923년 에이젠슈타인은 몽타쥬 이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였으며 그에 입각해 (1924), (1926), (1928)을 만들어 순식간에 러시아 인민들의 추앙을 맏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탁월한 화면 구성, 편집을 통한 새로운 의미 생성, 치밀하게 계산된 기계와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마치 음악처럼 리듬감을 가지고 전개된다. 5막으로 구성된 은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장면으로 손꼽히는 오데사 계단 학살 장면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애초에 짜르 체제에 대항한 1905년 1차혁명 20주년 기념작으로 대서사시와 같은 구조로 만들려고 했으나 포템킨호의 반란과 포템킨호를 환영하는 시민들이 코자크 기병대에게 학살당하는 사건에 한정하여 만들어진다. 은 10월혁명 1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제작된 작품으로 1917년의 노동자 봉기를 다소 형식주의적이라고 비판받을만큼 치밀한 계획아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의 제작일정이 밀려 다음 작품 은 1929년에서야 완성된다. 소설가 업톤 싱클레어의 제작으로 (1932)를 찍지만 촬영마지막 단계에서 싱클레어는 에이젠슈타인을 불신하고 제작을 중단시킨 후 감독의 뜻과는 무관하게 임의로 영화를 편집 실현시키고 화면에서 대비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1945), (1946)은 에이젠슈타인 미학의 결정체로 평가되는 이 작품에서 그는 색채를 통한 실험까지 시도하고 있다. 한평생 7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가장 르네상스적인 지식인이자 예술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 에이젠슈타인 예술세계의 폭과 깊이는 헤아리기 힘들정도이다. 연극, 회화, 문학, 심리학, 민중극, 일본 가부키등 그는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을 뿐아니라 영화사에 혁명적 발전을 가져왔던 몽타쥬을 체계화시킨 사람으로서 그는 20세기 위대한 예술가중의 한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4) 소비에트 몽타주Soviet Montage. 1920년대의 탁월한 소련 감독들, 다시 말해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레프 쿨레쇼프, 푸도프킨, 지가 베르토프 등이 구사한 다양한 편집 기법을 일컫는 용어이다. 몽타주는 원래 ‘조립(組立)하는 것’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다. 영화는 촬영(撮影)되는 것이 아니라 조립되는 것, 다시 말해서 원래 따로따로 촬영된 필름의 단편(斷片)을 창조적으로 접합(接合)해서 현실과는 다른 영화적 시간과 영화적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 새로운 현실을 구축하여 시각적 리듬과 심리적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데서 영화의 예술성이 성립된다고 보고 그 방법을 명확하게 하려는 이론이 몽타주이론이다. 혁명 이후 모든 예술 분야에서 일어난 왕성한 실험에 고무된 소비에트의 감독들은 시민을 교육하고 규합하는 영화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표현 수법을 모색했다. 몽타주(표현주의적 편집), 특히 정서적, 물리적, 이념적인 의미를 낳는 쇼트의 연결과 충돌은 영화 예술의 정수로 인식되었다. 편집을 영화적 표현의 우선적인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1920년대 소련 감독들은 몽타주의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더했으며, 스스로는 그 역동적인 방법론을 통해 중요한 영화 형식주의자로서 자리를 굳혔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VS 푸도프킨 (몽타주의 차이)a. 푸도프킨구성적 편집. 그리피스의 제한적 편집을 비판기보다 대상물의 병치가 정치적 의미 창조에 더 큰 역할(배우의 소도구화). 퍼붓는 클로즈업 세례가 정서적, 심리적 및 추상적 관념까지 제시.b. 에이젠스타인편집기술면에서 몽타주가 영화예술의 기초라고 믿음. 편집의 변증법 주장. 정과 반인 두 개의 쇼트의 갈등이 전적으로 합으로서의 새로운 관념을 창출 날카룝고 충격적인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한 쇼트의 연결을 주장. 에이젠슈타인의 충돌 몽타주이론은 주로 전위영화에 응용되어 발전했다.--> 간단히 말해서 장면과 장면의 연관이라기 보다 충돌로 인한 강렬한 이미지의 몽타주 표현이 에이젠슈타인의 방식이라면, 푸도프킨은 좀더 부드러운 장면과 장면의 대비로 표현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5)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장 누아르와 그리피스 그리고 에이젠슈테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서양 영화 초창기의 맥락과 영화이론을 이해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 서양 영화가 동양영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할 때 비록 그 영향이 때로 강압적이었더라도 이 세 감독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거쳐야만 할 과제이다. 특히 에이젠슈테인이 사회주의 영화를 대표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한, 타락한 영화세상에서 사회주의 영화를 통해 어떤 희망적 단서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찾아가곤 했다. 그 대표작이 바로 (1925)이다. 전함 포템킨의 수병 반란, 그리고 오데사 계단에서의 대학살극이 을 이루고 있는 핵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가 무기가 될 수 있으며, 대중교육책이며, 뛰어난 선동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억누르는 전함의 장교와 억눌리는 수병들, 압살하는 백군 기병대와 코사크 군대와 피를 흘리는 인민들, 모든 것이 극단적인 대조를 통하여 표현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고 극장의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던 에이젠슈테인에게 그러한 서술상의 대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정작 에이젠슈테인을 에이젠슈테인으로 만든 것은 그의 화법이었다. 그것은 흔히 몽타주로 알려진 것이다.그의 선배 프도프킨이 필름의 결합을 통 대조적인 쇼트들을 통합해 새로운 개념을 창조했다. 코사크 병사가 내리치는 칼, 깨어져 뒹구는 안경, 피 흘리는 여인 얼굴의 클로즈업…. 이런 편집을 통해 에이젠슈테인은 상황묘사라든가 감정의 고조를 넘어서서 관객들에게 단호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는 논리로 떨쳐나갔던 것이다. 물론 그는 이 오데사 계단 장면뿐만 아니라 많은 장면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크기로 쇼트들을 찍었다. 그는 찍힌 것을 어떻게 편집하느냐가 영화 창작의 처음이자 출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은 이렇게 포템킨호의 선상 반란에서 시작하여 오데사 계단 그리고 마지막 승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쇼트도 낭비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끌어간다. 서구 무성영화 특유의 지루하고 나른한 느낌은 이곳에서 찾을려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몽타주론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치 않았다. (1929) 등에 대한 비판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는 자신의 몽타주론을 완성하기 위해 낮에는 소련영화학교의 강단에서, 밤에는 연구실에서 일했다. 급기야 그는 형식주의자로 매도당했고 어떤 영화는 정부에 의해 제재를 당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위대한 사회주의'를 믿었지만 그것을 온순하게 따르는 멍청한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형식을 연구하는 사람을 형식주의자라고 한다면 매독을 연구하는 사람은 매독주의자다"라고 항변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이후는 불행으로 이어졌다. 결국 은 소련 영화의 명예로 남아 있을 뿐 자신의 조국에서는 이어지지 않았다. 또 그의 독특한 인물 전형화론 등의 이론은 이제 후학들의 과제로만 남아 있다. 역설적으로 그의 몽타주 기법과 사회의식은 1930년대 영국의 사회적 다큐멘터리로 전수되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제 거의 모든 할리우드 영화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그의 편집 기법을 써먹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몽타주론은 이 타락한 영화세상 만큼 통속화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흥행작들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시 을 읽미래를
영화조사자료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1) 기본정보출연: 피에르 밧체프, 시몬느 마뢰일, 루이 브뉘엘감독: 루이 브뉘엘각본: 루이 브뉘엘, 살바도르 달리촬영: 알베르 뒤베르게국가 : 프랑스제작: Video Yesteryear제작년도 : 1929상영시간 : 17분2) 루이 브뉘엘루이 브뉘엘은, 1900년 스페인 태생으로 유복한 가정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마드리드 대학에서 철학 및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페데리코 가르시오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등을 만나 대학 영화협회를 창설하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라는 매체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192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브뉘엘은 장 엡스땅(Jean Epstein)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었으며, 파리의 초현실주의 집단에 자연스레 속하게 되었다. 1929년 살바도르 달리와 공동으로 각본을 쓴 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발표 당시에도 대단한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초현실주의적 아방가르드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30년 파리의 지식인 사회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를 발표하였는데, 작품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이 스크린에 산과 잉크를 던져 훼손하고 극장 좌석을 찢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영화계에 한바탕 화산 폭발을 몰고 온 이후, 브뉘엘은 다시 고국인 스페인으로 돌아가 사회 비판적인 다큐멘터리 작품 를 만들었고 이후 한동안 영화 제작은 보류한 채 프랑스와 미국 등을 오가며 편집, 더빙 등의 활동을 계속했다. 1946년 멕시코로 간 그는 작품 활동을 재개, 1947년 , 1949년 등을 만들었고 1950년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을 만들게 된다. 건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멕시코 아이들의 황폐한 삶을 다룬 이 작품은 그 해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였다. 계속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친 그는 , , , , , , 를 발표한다. 60년대 초 스페인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한 브뉘엘은, 거지와 부랑자를 예수에 빗대 표현한 를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은 정작 고국에서는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그 해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브뉘엘의 걸작 중 한편으로 평가받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스페인에서의 창작 활동에 한계를 느낀 브뉘엘은 1963년 이후 프랑스에 거점을 두고 작업하였는데, 그의 영화들 중 후기 작품에 속하는
영화조사자료칼리가리 박사의 밀실(The Cabinet of Dr. Caligari)1) 기본정보* 국가 : 독일* 감독 : 로베르트 비네(Robert Wiene)* 제작년도 : 1919년* 배우 : 베르너 크라우스, 콘리드 바이트, 프리 드리히 훼어2) 줄거리1830년경 주인공이 칼리가리라는 연쇄살인범을 회상하면서 애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괴상한 칼리가리박사(베르너 크라우스)는 몽유병환자인 세자르(콘라트 바이트)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다니며 최면술을 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칼리가리박사는 세자르에게 살인을 범하게 한다. 세자르는 어느 학생에게 "새벽까지 밖에는 살지 못한다."고 예언했다. 그 학생은 정말 죽었다. 세자르가 몰래 죽인 것이다. 그 학생의 친구(프리드리히 페허)는 칼리가리박사를 의심한다. 칼리가리박사는 또 어떤 젊은 여자 쟈네(릴다고버)를 최면술로 일으켜 세우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실패하여 그녀는 죽고 세자르도 쇠약해서 죽어 버리고 그의 스승 칼리가리박사는 잡혀서 감옥에 간다. 그러나 칼리가리박사는 그곳을 도망하여 정신병원으로 몸을 숨긴다. 그의 추적 끝에 칼리가리는 18세기에 있었던 대리살인을 재현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빠진 정신병원의 원장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이제까지 이 이야기를 해준 주인공은 사실 정신병원의 환자이며 칼리가리는 사람은 그를 담당한 의사라는 것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소리치며 병실로 끌려가고 의사 칼리가리는 그제서야 그의 증상을 이해했다고 한다.3) 로베르트 비네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선구자 로베르트 비네는 1881년 독일의 사스쿠란 마을에서 태어났다.베를린의 "레싱 극장"에서 연출가, 극작가, 배우로 활동한 비네는 흑백 무성영화 < Arme Eva>(1914)로 영화 감독에 데뷔한다. 이후 네 편의 영화를 연출한 비네는 표현주의 영화사조의 포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1920)을 만들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몽유병자를 관속에 넣고 다니며 살인을 감행하는 칼리가리 박사를 그린 이 영화는 강렬한 표현성과 극단적인 흑백의 대비를 보여주면서 지금까지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혀지고 있다.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혼란한 사회상과 전쟁에 대한 공포가 어울어진 시대상을 반영한 표현주의 영화사조는 과장되고 형이상학적인 세트와 과장된 연기, 대담한 형식으로 당시 영화판을 뒤흔들어 놓는다. 의 뒤를 이어 < Genuine>(1920)과 같은 표현주의 영화를 만들어오던 비네는 1924년 나찌를 피해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 < The Hands of Orlac>(1924)을 만든다. 비네는 30년대 또다시 프랑스로 이주해 작품생활에 전력하지만 독일에서 만든 작품처럼 뛰어난 작품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비네는 1938년 2차 대전을 무대로 한 사랑이야기 < Ultimatum>을 마지막 작업으로 파리에서 암으로 사망했다.4) 독일 표현주의1914년에서 1918년까지 진행된 제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유럽의 영화들이 진통을 겪을 때,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의 영화는 급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 당시 미국의 영화는 다분히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등장이다. 이 때 독일의 영화는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내던 군국주의적 홍보영화를 벗어나 다양한 영화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런 시도 중에서 1920년대 독일 영화의 상징이 되는 것은 UFA가 이끄는 대규모 상업영화가 아닌, 마이너리티에서 참신한 감각으로 시도한 표현주의 영화였다. 표현주의 영화란 20세기 초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미술사조인 표현주의를 영화로 차용해온 것이다. 미술사적인 의미에서 표현주의는 '형태가 객관적인 현실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반응으로부터 나타난다고 보는 미술 운동'을 의미한다. 표현주의는 영화로 건너오면서 다분히 미술적인 경향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는 무엇보다 )미장센에 크게 의존하였다. 에서 등장하는 아이리스(Iris : 연극용 조명기에 쓰이는 빛 조절 장치) 샷에서 보여지듯이 이러한 미장센과 표현양식은 표현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 연극의 무대 디자인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온 것이다. 감정적인 면을 중요시하고, 과장, 전도의 효과를 중요시하는 표현주의 연극의 특징은 영화로 다시 옮겨지게 된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은 현실적인 공간이 아니라 주인공의 의식에 의해 왜곡되고 과장되어지며, 그러한 요소들이 개별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한 편의 독특한 그림을 연상시키듯이 상호작용한다. 또한 연극을 영상물로 옮길 때처럼 단순히 3자적 시각을 견지하던 카메라도 인물의 심리와 관점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각은 인물의 불안한 심리와 회의적인 마음을 표현해내는 새로운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것은 표현주의 영화의 내용적인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부분이다. 영화배우인 수잔 헤이워드는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기울어진 카메라 각도는 신체와 사물의 형태 그리고 무대를 왜곡시켰다. 세팅은 기괴하고 부조화로 가득 차 거의 괴기적 분위기를 창출한다. 조명도 극적인 그림자를 강조하는 대조가 강한 것을 사용하였고 매우 양식화한 것이었다. 다루는 주제 또한 초현실적이거나 괴기적이며 부자연스러운 행위나 그러한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등장인물의 주관적이고 때로는 광적인 세계를 스크린 위에 투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독일의 표현주의 영화의 시작이라고 하면 1919년 로베르토 비네가 감독한 을 꼽는다. 이 영화의 스타일은 지금 우리가 제시하는 표현주의 영화의 표본이다. 연극적인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표현주의 연극에서 옮겨온 영향도 있고, 시대적인 한계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표현주의 영화라는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이 영화가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영화속으로 그대로 옮겨온 내용이다. 칼리가리 박사는 몽유병 환자들을 통해 얻어내는 연구의 과정은 프로이트의 그것에 비교되고, 이것은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담아내려 노력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주제의식으로 연결된다. 독일 표현영화는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전쟁 이후의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일시적으로 등장하는 사상으로 간주되었을 뿐, 사회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 기능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표현주의에서 제시된 무대양식과 카메라 테크닉, 조명 같은 표현방법은 연극적인 한계에 막혀 전진이 없던 영화에 돌파구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면은 나중에 프랑스의 전위 예술 영화나 70년대 빔 벤더스를 중심으로 한 뉴저먼 시네마, 그리고 현대의 필름 느와르로까지 이어지게 된다.5)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사실 마지막 장면은 관객을 당황 시킨다. 관객은 이제까지 자신들이 보고 들었던 것이 정상인이 아닌 미친자가 꾸며낸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관객들은 그가 정말 미쳤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 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객의 의심은 영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시각적 스타일들로 인해 소멸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장면은 사실 현실감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세트 곳곳에 표현주의 회화의 특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형태와 색채를 통한 왜곡, 구성의 부조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세트를 살펴보면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원근감이 과장되어 있으며 또한 사물들의 형태들이 왜곡되거나 각이 져있는 모습들로 등장하고 있다. 이외에 인물 또한 분장이나 의상을 통해 그 세트의 일부분인 것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조명을 살펴보면 명암의 대비가 극단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상당히 기교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극히 양식화된 장면이 창조하는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세계이다. 표현주의 영화 특히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서 공간의 표현은 곧 정신의 표현을 의미한다. 이는 영화 속 공간에서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불안과 과대 망상증으로 가득찬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이 작품이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의 제작자인 에리히 포머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의 작품은 살펴보면 완성된 작품과는 정반대로 칼리가리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미친 악당으로 등장하게 되어 있었는데 원래의 작품을 뒤집어 주인공을 광인으로 설정하고 미국영화와 경쟁하기 위해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표현주의 회화기법을 영화에 도입한 것도 그의 결정이었다. 여기에 세트 디자이너인 헤르만 바름 등의 역할이 상당히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영화 이론가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그의 저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Von Caligari zu Hitler)"에서 이 영화 속에 담긴 심리가 곧 있을 )히틀러의 파시즘을 예고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탄생’에 관한 조사1. 기본정보*감독 :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제작 :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원작 : by 토마스 딕슨*각본 : 프랭크 E.우즈*배우 : 헨리 B.월털, 메 머슈, 릴리안 기슈*상영시간 : 159분*제작년도 : 1915년2. 줄거리는?남북전쟁 직전의 미국, 남부와 북부의 명예로운 큰 가문인 카메론 가문 사람들과 스톤맨 가문 사람들은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북부 스톤맨 가문의 가장(家長) 오스틴은 열렬한 노예해방론자였고 남부의 카메론 가문은 그 반대의 이념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각기 다른 지역적이고 경제적인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나름의 주장을 지니게 된 것이었지만 이런 상반된 가치관이 이 영화 속에서는 갈등을 고조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오스틴 스톤맨에게는 두 아들과 딸 엘지가 있다. 카메론 또한 맏아들 벤을 비롯해서 두 아들과 딸이 있다. 당시, 미국을 지역적 정치적으로 나뉘게 만든 노예제도는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과 북쪽과 정치적으로 결별하려는 남쪽의 분리선언으로 인해 전쟁으로 비화되고 양 가문의 남자들 모두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링컨과 오스틴 스톤맨이 주축이 된 북부가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자 북부에 대한 남쪽의 반감은 더욱 심화된다. 결국 링컨대통령은 윌키스에게 암살되고 무정부적인 혼란속에서도 실권을 장악한 스톤맨 가문은, 2년여의 전쟁을 통해 황폐해진 나라를 다시 세우기 흑백혼혈인 정치가 실라스 린치와 함께 흑백평등안을 추진하는 등 나름대로 애를 쓰지만 북부와의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벤 카메론의 여동생이 흑인병사 거스의 겁탈을 피해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분노한 벤은 그녀의 원수를 갚고자 KKK(큐 클럭스 클랜)단의 리더가 되어 북부 주정부를 공격해온다. 이때 북부의 실권을 잡은 실라스 린치는 오스틴과 그의 딸 엘지 스톤맨을 강제로 붙잡아놓고 있었다. 벤의 백인 KKK단과 흑인병사로 이루어진 린치의 주정부군과의 대전투가 벌어지고 벤에 의해 스톤맨 가족과 카메론 가족이 모두 구출된다.3. 그리피스는 어떤 사람이지?본명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 그리피스는 세계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감독이다. 그는 편집을 발명했고 영화에서 스펙타클이 무엇인가를 알아내었다. 켄터키주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책 외판원으로 인생을 시작해,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이 된 그리피스는 원래 극단의 배우였지만 배우로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미국 영화사 초기의 5센트 짜리 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한다. 그리피스는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영화 기법들을 발명해낸다. 아이리스와 페이드 기법과 교차 편집, 클로즈업을 발명한다. 또 릴리언 기쉬나 메리 픽포드 같은 신인배우들을 발굴했다. 그는 1914년에 과 를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하고 을 준비한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자본을 모아서 남북 전쟁을 영화로 표현한다. 그러나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는 인종차별주의 적이었고 전쟁 이후 재건기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카메라의 영역을 확장시켰고 파노라마로 촬영한 전투 장면을 스펙터클 그 자체였다. 는 페르시아의 바빌로니아 정복을 다루고 있는 대단한 영화였지만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구성은 관객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그에게 경제적 파산을 가져다주었고 그 이후에는 매너리즘에 빠진 영화만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세계 영화사에서 그의 업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영화사의 위대한 이름들 중의 하나가 바로 그리피스이다.4. 이 영화의 영화사적 의미* 근대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피스의 대표적 영화* 상영시간이 3시간 가량인 최초의 장편영화*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영화 (5센트 극장의 개념을 탈피해서, 이 영화의 극장 관람 료는 무려(?) 2달러나 되었다고 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에서 이 후 영화사에서 문학과의 관계를 극명히 보여준다.* 6주 간의 리허설, 1914년 7월부터 10월까지의 촬영, 편집 3개월 등 당시 6주 이내였던 평균 제작 기간과는 대조를 이루었다.(자본영화)5. 촬영기법 & 편집기술클로즈업미디엄쇼트롱쇼트흔히 그리피스(Griffith)를 영화언어의 창시자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가 현대 영화에서 사용하는 영화표현기법의 많은 부분을 최초로 창안하고 사용한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가 익스트림 롱 쇼트, 클로즈업, 컷어웨이, 그리고 트래킹 쇼트와 같은 다양한 쇼트의 효과적인 사용, 평행 편집과 다양한 편집 호흡의 사용을 통한 극적 구조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바는 실로 대단하다. 포터가 편집을 통해 영화적 내러티브를 명백하게 나타냈다면, 그리피스는 극적인 효과를 살리는 적절한 쇼트의 병치를 잘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클로즈업을 물리적인 표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최초로 사용하였다. 포터가 비록 쇼트의 개념을 발견하기는 했으나 이후의 작품에서는 다시 신을 최소의 단위(close up)로 하는 단계로 되돌아 갔을 뿐 아니라, 그의 쇼트 개념은 신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카메라를 움직일 때는 물리적인 불가피함 때문이었다. 포터는 신을 중심으로 영화적 줄거리를 전개했으나 그리피스는 쇼트를 통해 극적구조를 자유로이 운용하는 교차편집(cross cutting)기법, 플래시백(Flash back)을 고안했다. 그리피스는 쇼트를 극적국면과 재현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고전적 편집(classical cutting, de'coupage classique)에서 전형적인 쇼트분할(프랑스어의 de'couper,분할하다 cut up에서 유래한 용어)의 기법을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그리피스는 관객들을 점차적으로 어떤 장면에 정서적으로 몰입시키기 위해 롱 쇼트에서 미디움 쇼트, 클로즈 쇼트로 분할하여 보여주었다. 이러한 식은 후에 편집의 기준으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리피스의 모든 영화적 발견이 그랬듯이 그의 클로즈업은 즉시 다른 영화감독들과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리피스는 종종 추적과 구출장면을 병치시킴으로써 서스펜스를 구축하였다. 그는 장면의 극적 효과를 위해 각 쇼트의 길이를 더욱 짧게 편집하였다. 그 결과 서스펜스는 강화되었고 구조장면은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들었다. 이 교차편집은 또한 시간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각 행위들의 완전한 시작과 끝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충분히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이런 영화적 시간이 현실의 시간보다 더욱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다시 얘기해서, 그리피스가 ‘국가의 탄생’과 ‘인톨러런스’를 통해서 (과제는 ‘국가의 탄생’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으로 되어있었지만, 촬영 기법이나 편집방법을 설명할 때, 영화보다는 그리피스 자신에 초점을 맞춰 설명된 자료들이 많아서 이건 합해서 조사하였습니다.) 선보인 편집기법들(세가지 기본유형)은 다음과 같다.*연속커팅(물리적, 순차적):대부분의 극영화에 사용되며 설명적인 시퀀스에 주로쓰임. 사건의 모든 행위를 전부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도 행위의 연속성을 시도.연속커트를 위해 사용된 그리피스의 연출법 : )롱쇼트로 시작 → )미디엄쇼트 → )클로즈업 → 재확인 쇼트 삽입*고전적 커팅 (심리적): 극적인 집중과 감정적 강조를 위해 고안된 기법. 클로즈업의 사용으로 심리적 상태의 표현을 시도.병행편집(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생하는 행위를 한씬 속에 같은 쇼트로 연결하는 것)과 교차편집(둘 또는 서너개의 씬을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결하는 것) 으로 감정의 고저와 시간의 긴박, 이완을 조절.(국가의 탄생 결미부분)*주제적 몽타즈 (개념적, 비순차적) : 현실적 시공간의 연속성을 무시하고 관념들 사이의 결합을 강조.주제적 몽타즈를 사용한 작품 : 인톨러런스→소련영화의 몽타즈 이론에 기초를 제공, 전세계 감독들 이 시간의 주관적 처리 방법면에서 그리피스의 실험에 많은 혜택을 입음**그리피스의 발명품 박람: 장소전환, 시간격차, 쇼트변형, 인물의 심리적, 신체적 특징강조, 대체적 윤곽, 상징적인 인서트, 화면의 병행과 대조,결합, 시점이동, 동시성, 동기의 반복 등의 편집 기초.6. 한계...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한 자기방어적 차기작 ‘인톨러런스’인종 차별주의자 집단인 KKK단을 마치 십자군이나 된 듯이 위풍당당하고 멋지게 그려놓은 장면들이 사실 이 영화에서는 가장 근사하고 빛나는 연출력의 결실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두고 두고 그의 영화이력에 흠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의 어머니라면 그리피스는 영화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고 있음에도 그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다소 떳떳치 못한 가장이라는 족보를 남기고 셈이다. 그리피스는 월트 휘트먼의 애독자였다. 그는 특히 '역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된다'는 )휘트먼의 시집 의 한 구절을 늘 외우고 다녔다. 그런데 그 구절을 영화화한 것이 바로 그에게 엄청난 명예와 부를 안겨다 준 이다. 그 인종차별적 색채로 말미암아 흑인 인권 운동가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쿠 클럭스 클랜(KKK)단을 옹호하다가 궁지에 몰리게 된 그리피스는 오히려 흑인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러한 무자비한 불관용이 전 인류사를 통해 반복되었으며 그래서 역사가 그 목적을 잃게 되었다는 자기방어적인 작품을 들고나왔다. 그것이 바로 (1916)이다.
So Fucking Special............이름 그대로 너무나도 특별한 그들... Radiohead“영국 앨범챠트 1위 핫샷데뷔! 새로운 라디오헤드! 올해 듣게 될 앨범중 최고로 행복한 우울앨범!”(Doves 2집 앨범 “The last broadcast” 음반설명 中)“이 앨범을 들어본다면 벽에 붙어있는 라디오헤드와 트래비스의 포스터를 떼어버려야 할 것!”(Coldplay 1집 앨범 “Parachute”에 대한 어떤 영국 평론가의 글 中)“매튜 벨라미의 처절한 보컬과 라디오헤드풍의 기타 톤이 강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매우 사이키델릭한 밴드!”(Muse 1집 앨범 “Showbiz” 앨범 리뷰 中)“버브,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의 특징을 억지로 끼워 맞춘 듯 하다”(Starsailor 1집 “Love is here”의 앨범 리뷰 中)“스웨덴의 콜드플레이! 제2의 엘리엇 스미스! 라디오헤드의 감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Lasse Lindh!! 라이선스 앨범 발매!”(Lasse Lindh 1집 앨범 Wake up at Sea Tac 광고문구 中)지금 위에 나열한 문구들은 흔히 British Modern Rock이라 불리는 장르들의 음악을 하고 있는 밴드들의 CD자켓, 혹은 음반사이트들에 적혀 있는 글들이다. 이 문구들을 자세히 살펴보다 보면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의미로 쓰였든, 나쁜 의미로 쓰였든, 위 5가지 문구들에는 모두 “라디오헤드”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라디오헤드가 이 분야에서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런 수식어로 등장하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생긴다. 혹은 이 British Modern Rock이란 장르가 얼마나 단순하길래 밴드에 대한 설명이 단지 라디오헤드와의 비교로 성립이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그런 것들에 대하여 써보려고 한다.1. British Modern Rock이란??이름을 보고 대강 짐작이 되겠지만, Modern Rock 중에서도 영국에서 특이한 형태로 나타나는 하위 음악장르이다. 자세히 들어가기 전에재지?Radiohead가 명실상부한 British Modern Rock을 대표하는 그룹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98년 9월 영국의 Q 매거진이 독자들을 상대로 [All time greatest Album 100]을 선정한 바 있다. 밑의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The bends] [OK Computer]** All time greatest album 100 ( research by Q magazine)앨범제목 - 아티스트1. OK Computer - Radiohead2. Revolver - Beatles3. Automatic for the people - R.E.M.4. Stone Roses - Stone Roses5. Never Mind - Nirvana6. The Bends - Radiohead7. Sgt. Pepper’s Lonely Hearts - Beatles8. What’s the story about morning glory - Oasis..결과를 보면 Radiohead의 OK Computer 앨범이 Beatles를 제치고 1위에 랭크 되어 있다. 게다가 The bends 앨범 역시 6위에 랭크되었다. 이 Research가 시행될때, Radiohead가 3집 OK Computer까지 내놓은 상태임을 감안해보면, 이들의 앨범 3장중 2장이 랭크되있는 것이다. 비록 90년대 중후반의 시기적 선호 경향이 작용했겠지만, 그 세대의 음악적 마인드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얘기했던 것 처럼,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영국에서 Modern Rock밴드가 데뷔할 때, Radiohead와 비교되는 것은 어떤 통과의례처럼 굳어지고 있다.3, 그렇다면 Radiohead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은 없는 것인가? 만약 있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물론 그것은 부정적인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첫번째가 Radiohead는 철저히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것이다. 초기 1집앨범 Pablo Honey를 영국에서 침 Radiohead가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자 그 화살에 Radiohead에 꽂혔다는 것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Oasis의 보컬인 리엄 갤러거는 “영국 언론은 나의 음악에는 관심이 없고, 결혼 생활을 들춰가며 나를 밑으로 쳐박고 있고, 눈먼 아저씨(Radiohead의 리더이자 보컬인 Thom Yorke를 뜻한다. 그는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의 비정상적 일상에는 관심없고 그를 추켜세우는데만 바쁘다” 라고 말했다.솔직히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도, 영국언론의 과대포장은 조금 심한 구석이 있긴 하다. 만약 Radiohead가 1집의 분위기로 후반부까지의 앨범을 냈다면 나도 이 의견에 동조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Radiohead는 언론의 이런 보도나 평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실험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6집의 앨범이 나왔는데 점차적으로 멜로디를 줄여가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2집 The bends에서 3집 OK Computer에서 나타나는 여린 사운드의 매개체적인 역할을 해주었다면, 4집 Kid A에 가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기타리스트가 3명인데도 불구하고 기타소리를 최대한 배제하고 신디사이저를 통한 일렉트로니카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진행된다. 소위 Kid B로 불리는 5집 Amnesiac은 4집 Kid A와 동시에 작업된 앨범이기 때문에 사운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우리나라에서 Radiohead에 대해 접해봤다면 아마 대부분이 ‘Creep’을 들어보고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미국 빌보드 챠트의 영향으로 이 곡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지지를 얻었다. 데뷔앨범이 발표된 것이 1993년이었으니까 올해로 정확히 10년이 된다. 10년전에는 이 ‘Creep’을 최고의 팝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았고 Radiohead를 좋아한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Creep’을 여전히 최고의 팝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Radiohead의 팬들도 많을테지만, 10년 전의 팬들과는 그 성향이 다소 다르다. 즉 지금의 는 연인을 잃은 슬픔으로 이 곡을 작곡했는데 그 역시 1968년 겨울,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기 전에 이 곡을 들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에서 이 사건을 “수백명을 자살하게 한 노래”라는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싣게 되면서, 논란이 표면화 되었고, 그로 인해 음악의 사회적 영향성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검토되었던 것이다.(결국 이 곡의 원곡은 레코드가 발매된 각국의 정부로부터 사장되어 지금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Bjork, Sarah Mclaclan 등에 의해 불려지는 Gloomy Sunday는 원곡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그래서 평론가들 중에서도 이런 “사회에 미치는 영향성”에 민감한 사람들은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인 ‘라디오헤드 풍’(Radioheadesque)의 음악들에 반발감을 나타낸다. 안그래도 우울한 감성의 나라에 그런 음악들까지 만연한다면, 그 결과는 Gloomy Sunday 못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우려했던 바와 같이 심각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Radiohead의 음악은 단순히 우울하다기 보다는, 생각할 “꺼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말한 Gloomy Sunday가 단순히 그 시대상의 암울함만을 그에 맞는 멜로디와 더불어 연주한 것이라면, Radiohead의 음악은 일단 문제점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판단은 청취자들에게 맡기면서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4. 그렇다면 Radiohead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는 무슨 뜻이지? 그리고 그 의미는?위에서 최고의 명반으로 꼽았던 OK Computer의 수록곡인 No Surprises에서 그 예를 찾아보자.** No Surprises - Radiohead [OK Computer, 1997]A heart that's full up like a Landfill,a job that slowly kills youbruises that won't heal.매립장의 쓰레기가 가득 찬 것 같은 마음으로천천히 너를 죽여버리자신은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살고 싶다는 독백을 적어놓은 듯한 얘기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다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아무런 경고나 놀람도 없는 그런 조용한 삶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중간에 언급된 ‘정부’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취하고 있다. 절대로 우리를 위해 말하지는 않는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가사를 읊고 있는 가상적인 화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난 아마도 Radiohead가 청취자들이 이 ‘가상적 화자’를 한심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길 원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는 투덜거림이라고 하며, 언젠가는 또 투덜대고... 아무런 변화없이 똑 같은 일상을 추구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는 그런 인간상,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싶기에 자신에게 큰 누가 되지 않는 한 정부나 다른 것들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인 인간상이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 쳐박혀 이런 허무주의적 가사들만 흥얼거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일어나서 무언가 하라는...이들의 앨범 OK Computer의 홍보문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풀잎처럼 여린 사운드에 잡초같이 독한 농담을 섞는 밴드, 라디오헤드” 즉 Radiohead의 장점은 감성에 스며드는 멜로디와 잘 고른 단어들로 이루어진 가사라는 것이다.5. 그럼 Radiohead의 미래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함부로 내가 말할 수 없는 영역이다. Radiohead는 여태껏 대중의 예측과 기대를 무시한 앨범을 들고나왔지만, 그 새로운 앨범이 나올 때 마다 찬사를 받으며 그 지위가 사그러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DJ.Shadow, U.N.K.L.E 등의 Techno 뮤지션들과 자주 접촉하며 음악적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음 앨범은 지금 어느정도 들어와 섞여있는 Electronica의 범위를 뛰어 넘어 Techno의 무한반복 사운드를 도입하겠다는 것인지, 벌써부터 음악잡지들에서는 여러가지 추측들을 하고 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겠지만 그들은 언제나 우...